마구스 3
존 파울즈 지음, 현준만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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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3쪽
모든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무시무시한 공범의 죄의식을 강요하는 법. 모든 죽음은 각기 다 다른 모습을 띠기에 그 죄의식은 돌이킬 수 없고, 그 슬픔은 가라앉지를 않는 법이다.

213쪽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거울과 같은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269쪽
내가 미트포드를 싫어하는 것은, 이 남자가 천박하고 비열한 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 자신이 가진 어떤 자질의 캐리커쳐 또는 연장을 이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종양 같은 게 이자에게서는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311쪽
"나도 예뻤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추함을 감추려는 듯 그녀는 목까지 담요를 끌어 올렸다.
"아름답다는 건 덤에 불과해. 선물을 싼 포장지처럼. 선물 그 자체는 아니지."
길게 침묵이 이어졌다. 거짓말도 때로는 쓸모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녀의 실망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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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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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파 소설이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미로 시리즈 두 권을 읽으면서, 네 권을 모두 다 읽은 셈.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읽은 다음, 천사에게 버림 받은 밤을 읽을 때는 '나쁜 남자에게 매혹됨', 이라는 유사성을 발견했는데, 천사에게 버림 받은 밤을 읽은 다음에 바로 물의 잠 재의 꿈을 읽자니, '십대 여자를 성적 착취함'이라는 유사성으로 묶인다.  

소득이라면, 미로의 출생 배경, 즉 그의 친부모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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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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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은 한번 잡으면 제 자식도 몰라보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번 잡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겠단 생각이 들 만큼 몰입도가 엄청난데, 상황은 별로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서, 달라붙은 아이들을 매몰차게 떼어내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  

항상 무언가 교훈을 남기려는 그러니까, 그의 작품은 주제의식이 투철한 편이다.  

이번에는  칼날이 방황을 한댄다. 정의의 칼날 경찰과 사법부는 범인들을 쫒는 과정에서 부조리함을 느낀다. 범인 가이지를 찾아내는 일은 곧 나가미네가 가이지를 복수할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이고, 경찰이 나서서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원한을 불완전한 상태로 봉인시키는 일이 되기에.   

그래서 이 형사들은 스스로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런 문제에 대해 토론할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 다그치고 있다. 형사인 이상.  

 미성년자가 저지르는 악랄한 범죄에 대한 것. 20세 미만의 나이가 갱생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법은 그들을 보호한다.  그러나 이 법에는 피해자의 입장이 철저히 배재되어 있다.

128쪽 

 아쓰야를 죽임으로써 복수가 허무한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는 또 하나의 짐승을 방치해 둘 수 없다. 그것은 에마에 대한 배신이다. 그녀를 괴롭힌 짐승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자신에게 죄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는가? 아니다.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사건에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그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그것을 보면 법원은 범죄자에게 정당한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구나 아쓰야와 마찬가지로 가이지도 미성년자이리라. 에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는가. 그 인간쓰레기들이 빼앗은 것은 에마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들은 에마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217쪽 

다키아키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체스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처음에는 모든 말을 다 가지고 있지. 그대로 있으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지만 게임인 이상 그런 건 허용되지 않아. 어떻게든 움직여서, 자기의 진지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리고 많이 움직일수록 상대 말을 쓰러뜨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기도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 그런 면이 사람의 인생과 똑같지 않니? 또 상대의 말을 빼앗았다고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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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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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혹 나오는 이야기는 닭을 키우셨던 이야기이다. 놔서 키우는 닭들은 최대한 생산성(?)을 발휘해 어느 정도 알을 낳으면,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알을 낳지 않고, 낳은 알들을 품기 시작한다고. 그 알이 부화하기까지 어미닭은 알을 잘 품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먹지도 않고, 똥을 싸러  나올 때만 빼고는 자리보전하고 알을 품는다고 말씀하셨다. 닭장에서 기르는 닭들 중에, 닭장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치다가 목 언저리만 털이 성성하게 빠진 닭도 있다고.  

토요일에 예매한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개봉되고 한참 시사회를 할 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매스컴에서 주목하고, 한참 방송에도 나와서 그랬던지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요즘에 사람들이 그 영화 많이 본다대, 하셨다.  

어떤 영화에 대해 엄마가 먼저 관심을 표하신 것은 너무 드문 일이라, 게다가 동향 사람이 원작 작가라고 반가워하시길래, 우리가족 모두와 친정엄마 것까지 표를 예매해서 보러 갔다.  

영화로 나오기 한참 전에 이 책을 샀었지만, 읽어보지는 못했었다. 대여섯살짜리 아이들도 읽힐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주문하고 받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게 초등 고학년용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줄거리는 하나도 모르고 갔다는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혼자 숙연해져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 콧물 쏙 빼버렸다.   

난용종 암탉인 잎싹의 꿈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키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낳은 알은 아무리 품어도 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마당을 나오게 된 암탉 잎싹이가 겪게 되는 먹고 먹히는 일, 자신과 새끼(비록 자신이 낳은 알은 아니지만, 자신이 품었던 나그네 청둥오리의 알)를 지키기 위해 하는 일들. 늪에서의 삶이 식생에 맞지 않아, 병약해지거나 날 수 있고, 헤엄칠 수 있는 늪의 다른 생물들과 달라서 오는 따돌림.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세상과 살아가는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고, 먹고 먹히고, 죽고 썩어서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것 같다.  

잎싹이 죽으면서 퀭한 족제비의 눈을 보면서 물컹하던 족제비새끼 그 어린 것들을 떠올렸다. 부드럽게 느껴지던 살덩이. 왠지 그 살덩이가 잎싹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처럼 느껴졌다.    

"자, 나를 잡아먹어라."   

눈앞이 차즘 밝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정신도 말끔하고 모든 게 아주 가붓했다. 그러더니 깃털처럼 몸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크고 아름다운 날개로 바람을 가르며 잎싹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당을 나와서 자신과 다른 청둥오리를 꿋꿋이 길러내고~ 그 아이를 자기 철새 무리에 넣어 보내 준 뒤 드디어, 크고아름다운 날개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다.

"잎싹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믿었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나무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잎싹은 아카시아나무 잎사귀가 부러워서 '잎싹'이라는 이름을 저 혼자 지어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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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9-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참 좋아해요
애니로도 나왔는데 사실 그렇게 줄인 내용이 좋을까 싶어요 원작이 넘 좋아서요

icaru 2011-09-07 11:39   좋아요 0 | URL
네, 원작을 안 보고 봐서 그랬을까, 전 충분히 감동받았거든요. 원작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정말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초등 교과서에도 그리고 개정교과서의 중등국어 교과서에도 지문이 실려 있기도 하고요 ^^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 다이어트 강박증과 마른 몸매 증후군에 숨겨진 여성 심리노트
캐럴라인 냅 지음, 임옥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56쪽
로잘린드 카워드는 <여성의 욕망>에서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런 반응은 평균적인 미국인 모델들의 가늘어지는 실루엣에 명료하게 새겨져 있다.

84~85쪽
여성을 괴롭힐 수도 있는 막강한 사회적, 개인적 질문들(어떻게 이 세계에 존재할 것이고, 얼마만큼의 공간을 차지할 것이며,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이고, 자신을 위해 얼마만큼 요구할 것인가 등등)은 재구성되고 최소화되어 개인적인 문제로 작게 분할되어서는 입맛에 맞을 정도가 된다. 즉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점심으로 무엇을 주문할까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분절된다. 당신은 소문자 식욕(프로스팅, 지방의 무게)을 걱정하고 있을 때 대문자 식욕(기쁨, 열정, 육욕, 허기)에 관해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119쪽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에 비추어 스스로를 비교하고 평가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들의 경험은 어느 정도  어머니의 허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될 것이다.


150쪽
길모어는 무엇보다 남성은,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오늘날 여성의 육체에 대해 양가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의 육체를 보면 강렬하면서도 매우 모순적인 느낌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의 육체는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으로 인해 경외심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의 육체는 남성들에게 사랑과 필요(어머니의 보살핌, 위안, 영양 공급에 대한 필요), 무기력함, 의존성, 분노 같은 유아기적 감정을 환기시키며, 체념에 대한 갈망, 즉 어머니의 전능함이라는 안전한 항구로 회귀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체념 자체는 남성의 독자성과 통제를 위협하므로 그에 대한 공포감도 불러일으킨다. 
 

184쪽
"우와,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재로 존재한단 말이지. 뚱뚱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보다 결코 더 많이 먹지 않고, 어떤 경우 더 적게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 날씬하다고 말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뚱뚱하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이군."다른 말로 하면 이런 사람들은 뚱뚱한 몸에 건강한 자아와 수치심 없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8쪽
우리 여성들이 남성 자체에게 세심한 관심을 보인다면, 남성들은 그와는 달리 우리 몸의 각 부위에 세심한 관심을 보인다. 남성들은 암암리에 여성의 미와 젖가슴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측정한다.(...) 일찍부터 (외부세계의 감언이설을) 받아들인 우리의 교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기검열을 강화하게 된다. 

 
248쪽
거식증에서 떠난 이후에도 그것이 비워놓은 빈자리를 채워주는 문화적 내용물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었다는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이 자연스럽게 비물질적인 것과 연결되면서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이 좀더 심오한 정서적 세계나 좀더 폭넓은 정치적 세계를 지향하도록 해주지도 않았다. 그시절을 돌이켜 볼 때 내가 놓친 것이 었었다면, 지금까지도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폭넓은 대안적 비전이었다. 여성들이 원하는 새로운 물건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는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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