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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ㅣ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친정 엄마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혹 나오는 이야기는 닭을 키우셨던 이야기이다. 놔서 키우는 닭들은 최대한 생산성(?)을 발휘해 어느 정도 알을 낳으면,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알을 낳지 않고, 낳은 알들을 품기 시작한다고. 그 알이 부화하기까지 어미닭은 알을 잘 품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먹지도 않고, 똥을 싸러 나올 때만 빼고는 자리보전하고 알을 품는다고 말씀하셨다. 닭장에서 기르는 닭들 중에, 닭장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치다가 목 언저리만 털이 성성하게 빠진 닭도 있다고.
토요일에 예매한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개봉되고 한참 시사회를 할 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매스컴에서 주목하고, 한참 방송에도 나와서 그랬던지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요즘에 사람들이 그 영화 많이 본다대, 하셨다.
어떤 영화에 대해 엄마가 먼저 관심을 표하신 것은 너무 드문 일이라, 게다가 동향 사람이 원작 작가라고 반가워하시길래, 우리가족 모두와 친정엄마 것까지 표를 예매해서 보러 갔다.
영화로 나오기 한참 전에 이 책을 샀었지만, 읽어보지는 못했었다. 대여섯살짜리 아이들도 읽힐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주문하고 받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게 초등 고학년용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줄거리는 하나도 모르고 갔다는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혼자 숙연해져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 콧물 쏙 빼버렸다.
난용종 암탉인 잎싹의 꿈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키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낳은 알은 아무리 품어도 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마당을 나오게 된 암탉 잎싹이가 겪게 되는 먹고 먹히는 일, 자신과 새끼(비록 자신이 낳은 알은 아니지만, 자신이 품었던 나그네 청둥오리의 알)를 지키기 위해 하는 일들. 늪에서의 삶이 식생에 맞지 않아, 병약해지거나 날 수 있고, 헤엄칠 수 있는 늪의 다른 생물들과 달라서 오는 따돌림.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서 세상과 살아가는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고, 먹고 먹히고, 죽고 썩어서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것 같다.
잎싹이 죽으면서 퀭한 족제비의 눈을 보면서 물컹하던 족제비새끼 그 어린 것들을 떠올렸다. 부드럽게 느껴지던 살덩이. 왠지 그 살덩이가 잎싹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처럼 느껴졌다.
"자, 나를 잡아먹어라."
눈앞이 차즘 밝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정신도 말끔하고 모든 게 아주 가붓했다. 그러더니 깃털처럼 몸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크고 아름다운 날개로 바람을 가르며 잎싹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당을 나와서 자신과 다른 청둥오리를 꿋꿋이 길러내고~ 그 아이를 자기 철새 무리에 넣어 보내 준 뒤 드디어, 크고아름다운 날개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다.
"잎싹은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믿었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나무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잎싹은 아카시아나무 잎사귀가 부러워서 '잎싹'이라는 이름을 저 혼자 지어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