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4~16쪽
위녕, 삶이 힘들까봐, 너는 두렵다고 말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모두가 살아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르막은 올라보니 오르막일 뿐인 거아. 가까이 가면 언제나 그건 그저 걸을 만한 평지로 보이거든.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눈이 지어내는 그 속임수가 또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지. (...)  가야 할 것은 결국 가고 말 것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기까지, 그 모든 것이 혹시 다 내 손에 달려 있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언가가 달라질까하고, 가야 할 것이 가는 시간을 결국 늦추어 놓고 말았던 그 시간까지, 엄마는 참으로 많은 것을 지불했단다. 가만히 고요하게 있을 수 없어서 말이야. 그리하여 이런 평범한 말들은 엄마의 가슴 속에 드디어 사무치게 들리게 되었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되는대로 아무 길이나 들어서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내쉬었던 자신의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네 마음속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마음이 네게 이야기할 때 마음 가는 곳으로 가거라.  (수산나 타마로)


35쪽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안소니 드 멜로


66쪽
우정은 정적이지 않다. 우정은 마치 강물과 같아서 어떤 방향으로건 흐를 때만 의미가 있다. 언제나 발전하고 변화하고 넓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흡수해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잉글랜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친구는 결코 배타적인 소유물이 될 수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일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맥 팔레인

109~110쪽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네가 남에게 사랑을 주든, 미움을 주든,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두려워진다. 정말 두려워져.

236~237쪽
사막을 생각하고 갈 수 없는 나를 생각하고 그러다가 너희들을 생각한다. 그러자 이 도시 한 구석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가 떠날 수 있었던 이유와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가 단지 고비를 횡단하고 나서 늙어보이게 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모든 이유는 같다. 거기에 가지 않을 때 그는 항상 어딘가에 출석했고 언제나 연락이 가능하도록 일상을 성실히 열어두었으며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늘 답변이 준비되어 있도록 공부했기 때문이지. (....) 붙박여 있기만 한 삶도 떠돌기만 하는 삶도 실은 그 뿌리는 같다. 그것은 두려움과 무책임이다. (....) 명심해라 딸, 어디든, 너를 부르는 곳으로 자유로이 떠나기 위해서는 네가 출석해야 하고 대답해야 하는 그보다 많은 날들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매일 내딛는 한 발자국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쪽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은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49쪽
논픽션 작가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이면서 출판 평론가이기도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논지는 매우 분명하다. 지식이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여 주는 지적 작용의 집적과 방향이 끊임없이 확대되어 가는 곳에 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의 지식은 자연과학에 집적되어있으며 그 방향을 향해 확대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대담하게도 그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식론도 이미 과학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하는바,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인식론마저 훤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103쪽
사실대로 말하면 국기, 국가, 국경일 등등의 국가적 표상물은 속이 비어 있는 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불안하게 비끄러매는(단일 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우리 속에서는 얼마나 많은 차이와 대립이 존재하는지!), 급조된 상징 기제(태극기가 얼마나 임의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라!)일 뿐이다.

117쪽
문학이란 무엇인가? 우주 질서(신)라는 더 큰 빚을 의식하는 소수의 작가를 제외한 대개의 문학인은 자신을 키워 준, 산, 강,들,바다(자연)와 이웃(사회)에 글로써 빚을 갚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06쪽
윤해동의 <식민지의 회색지대>(역사비평사, 2003)는 <나치 시대의 일상사>와 공통된 문제 틀을 가진다. 데틀레프 포이케르트가 나치 시대의 일상을 분석하면서 국민들의 광버위한 "체제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면 나치 정권이 유지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윤해동 역시 책 제목과 동일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는 제국주의 지배자의 일방통행적 지배가 아니라, 식민지와의 상호 작용에 의해 유지된다. 따라서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협력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275쪽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일상인들의 삶은 구체적인 다수의 세계인 반면 철학자들은 자신만의 윤리적 이상에 사로잡혀 자신과 다른 다양한 인간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설득과 의견이 조정되는 청치적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내적인 행위가 정치적 영역에서도 모법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견의 복수성이 활동하는 공적 세계에서, 의견의 복수성 자체를 부정하는 철학적 진리는 제대로 된 정치에 접근할 수 없다. 근대의 정치가 윤리나 신학과 결별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한나 아렌트는 플라톤 이래로 서양의 정치철학을 규정해 왔던 진리의 현실 가능성을 거부하고, 인간들 사이의 조정, 균형 그리고 공동체의 법과 공론의 여할을 정치의 실마리로 삼았다.


319~320쪽
20세기 초, 폭력으로 유린된 미국의 노동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잇는 그의 민중관은 그가 신랄하게 비난하는 지식인관과 달리 매우 따뜻하다.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지만 혁명 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그는 대중들이 혁명을 하지 않는 까닭은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누군가가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그의 동료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본인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9쪽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었다.)

184쪽
루드빅, 그는 내 인생 최초의 균열이었다. 지금 나는 익숙해져 있다. 내 인생은 그리 견고하지 못한 집이다.

373쪽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398~399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릴 적에 이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 하는 게 많다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어릴 적에 태권도나 수영 같은 운동을 배웠더라면~
어린 시절에 두리번거리지 않는 아이였었다면 참 좋았을 것을 한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장편이든, 단편이든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어제 오늘 알게 된 사실은 아니지만, 온다 리쿠를 계속 찾아 읽는 이유는 작중에 내가 되고 싶었던 혹은 바라마지 않았던 성품과 환경과 신체와 기타 등등을 갖춘 아이(인물)들이 나와서는 계속 내가 어떤 이상형에 대해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이미 나는 지나쳐 온 시기의 것들에 대한 거라서... 그래서 노스텔지어 라는 이름이 붙는게지.  

95~96쪽
작은아버지는 업계에서 유명한 무대 감독이었으므로 조문객이 많았다.
병원에서 그는 자신의 장례식 스케줄을 짰다. 장례식은 작은아버지가 남긴 예정표대로 진행되었다. 식당에는 작은아버지가 준비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185쪽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따. 자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일렁이는 사람뿐이다. 물 위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깜박이는 사람, 빛나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 형태를 불문하고 주인공의 성장을 테마로 하는 이상, 이 조건은 아마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즉 자기처럼 고민하지 않는 사람,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로서도 에피소드가 너무 없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쪽     (...)  그리고 자네들 젊은 학자들한테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자네들보다 우둔한 상급자들이 앞으로도 결코 없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것일세. 오만함을 다스리려면 그보다 좋은 약은 없는 법이지."

44쪽      "(...) 얘기하지 않아도 좋아. 내가 보기엔 그만하면 충분해. 너는 오전 내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 매우 씩씩하게 해냈어. 지금은 우는 것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

73쪽       "(...) 내가 깨어 있다고 일컫는 사람이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자신을, 즉 자신의 가장 내면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열이나 충동 혹은 약점까지도 인식하고 처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지. (...)"

456~457쪽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단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은 애초부터 감각과 충동, 피끓는 욕망, 죄짓기 쉬운 성향, 쾌락을 즐기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는 성향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수도원장 나르치스는 친구를 생각할 때면 이러한 의문들을 떨칠 수가 없었다.
(...)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러운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11-08-1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와 사랑이죠?? 헷세 책 푹 빠져 읽던 때가 언제인지...^^

icaru 2011-08-21 14:15   좋아요 0 | URL
ㅎㅎ 네네, 맞아요~ 님도 헤세 책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으셨군요...
저도 지와 사랑, 데미안을 읽었던 시기가 같은데,,,, 꼭 무슨 공식같지 않아요. 이성과 감성, 도덕과 쾌락, 지와 사랑 ^^ 이런 이분법이요..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