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쥬디 바레트 지음, 홍연미 옮김, 론 바레트 그림 / 토토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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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추천 목록 속에 이 책이 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 스스로는 발견도 못했고, 설령 발견하더라도 사주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다.  

이게 내가 아이들 책을 고르는 한계이다. 엄마로서 다양하게 책을 읽어 주겠다고는 하지만, 책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설핏 보고 선입견이 작동하여 아이들로서는 흥미진진해 할 만한 책을 외면할 소지가 크다.  

일테면, 매체나 영화가 먼저 상영되고 만들어진 책은 아이가 곤란할 정도로 조르지 않는다면, 먼저는 안 사주려 하는 쪽이다. 파워레인저 엔진포스나, 토마스 기차(?), 타요 버스, 뽀로로 같은 등속들...   

이 책도 어디선가 영화로 상영된 것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검색해보는 바지런함은 못 떨겠다~  

추천 목록으로 만나기 전에도 서점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책 표지에는 뉴욕 타임즈가 '좋은 그림책'으로 선정했고, 미국 내에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초판 발행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언뜻 봐서는 글밥도 많고, 게다가 앞부분에서
주말 아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팬케이크를 먹으려 했다. 할아버지가 요리중이셨는데 갑자기 팬케이크 하나가 후라이팬에 튀어 올라 헨리의 얼굴을 덮는다. 가족들 모두가 웃음바다. 그 광경에서 웃을 수 있는 여유라니, 팬케이크가 뜨거울텐데 화상을 입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이야기는 어차피 이야기라고 여기고 몰입하지 못하는 이 엄마가 소양이 부족한 탓?
하지만 이어서 들려주는 할아버지 꼭꼭씹어꿀꺽 마을의 이야기는 음~ 한번쯤은... 싶게 재밌었다.  

꼭꼭씹어꿀꺽 마을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이의 질문  

"꼭꼭씹어꿀꺽 마을은 어디에 있어? 미국에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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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1-07-1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어디에 있다고 하셨는지요? 아이들에게 듣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이리도 좋은지...

작년인가 재작년에 개봉됐었습니다.(저는 이 책을 읽은 다음이었고 아주 짧게 상영된지라 놓쳤습니다만 영화는 아이들이 좋아할만 했다고 합니다.)
(김서정(?)의 평론집에 이 책에 대한 멋진 평이 있습니다.)

icaru 2011-07-1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모르겠는데~? , 라고 해줬어요. ㅋ
아 그랬군요~ 영화보다는 책이 훨훨~ 먼저였구만요...
 
10살 전 꿀맛교육 - 행복한 일등으로 키우는
최연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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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1년에 몇 번 있는 제사날이 되면 어르신들이 모이신다. 어르신들은 보통 집안의 가장 어린 아이에게 주목하고, 그 아이가 얌전하면 신퉁방퉁하다거나 하시고, 고집을 세우거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아이라면, 고녀석 보통내기가 아니다 라는 찬사(?)를 해 주신다. 하고 많은 말말말 중에 해 주지 않으셨으면 하는 종류의 말이 있는데,  동성인 형제 두 아이를 비교하는 말이다. 대개는 둘째가 야물어서(그럼, 첫째는 물러터졌다는 거?) 좀 있음, 형을 이겨먹을 거라거나. 둘째가 더 사내답다거나. 어른들이 하는 말 다 알아먹는 여섯 살 큰애가 있는 데서.

아마 남매였더라면, 아들만 우쭈쭈~ 치켜세우는 말들을 해 주셔서 지금과는 다른 곤란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집이라면 대개들 둘째가 첫째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첫째보다 빨리 야물어간다고 한다. 그게 그런거 아니겠나...!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르다. 어머님(저자)이 첫째 누나에 비해 둘째 남자아이를 집중력 없는 뺀질이에다가 공부에서 도통 머리를 안 쓰려 한다고 너무 닦아 세운다. 이런 집도 있다. 

저자는 세 아이를 두었는데, 이 책의 장르를 말하자면, 자녀 교육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라는 교육서라기 보다는, 둘째 아들은 배제된 채, 첫째 딸과 막내 딸과 어머니(저자)와의 상호교감과 꿀맛 같은 교육적인 상승 효과에 대해 다룬 재미있는(유머러스하게 말하는 재간이 뛰어남) 수기 쯤 된다. 

그리고 뒷부분은 주로 사교육 하나 안 받고, 명문대에 들어간 자신의 큰딸이 얼마나 올곧으며, 예의바르며, 다정하며 배려심 많은지에 대한 서술로 할애했다.

저자 자신도 어려운 살림(부모님 모두 어업에 종사하셨던 맞벌이 가정) 교육열 높고, 자신을 항상 지지해 주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곳곳에서 상기시킨다. 이 분도 역시나 부모님께 아니 어머니에게 받은 만큼 딸에게 쏟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너무 공감된다며 이 책을 추천해 주셨던 어떤 분 - 어디가 그렇게 공감이었을까? ^^;; 나도 참 공감되는 부분이 있긴 했다. 남편이 아내의 자식들에 대한 훈육 방법을 시끄러운 아줌마의 극성스러운 교육열 쯤으로 치부하는 부분이었다.- 과 꼭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요지 그러니까, 아이와 늘 공유하고 아이의 생각을 읽어내야 하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는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저자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글이라는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노예가 된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는 길이며 그 감옥에서는 영원히 빠져 나갈 수가 없다. 어차피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면 차라리 모범수가 돼라.”

낳아놨음 최선을 다해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쯤 되겠다. 항상 이런 말은 참 좋지만, 말이 쉽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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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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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어딘가에 쏟아 붓고 싶은 심정이다. 이럴 때면 뭔가가 쓰고 싶어진다. 소모적인 감정을 생산적인 뭔가로 전화시키고자 하는 의지. 고작 치부책 수준의 까발림 밖에 되지 못할지언정 말이다.

 소노 아야꼬의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 법, 아름답게 나이드는 법 등에 책을 찾아 보는 게 딱 적절해 보이기는 하나, 달리는 행위를 통해 하루키식으로 나이듦을 이야기한 책을 다시 들춘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라고, 결여된 자신을 혐오하고 그러나 어쩔 수 없으니,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안배가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니(일테면,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고, 마을버스에 시달려 내려서도 5분을 걷는 출근길 예전 같으면, 이 노릇 언제까지 해야 해,라며 힘들어 죽겠다.... 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당장 그 프로세스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 거기-아침에 일찍 일어나 차를 여러번 갈아타 가며 출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의도 묻지 않는다.) 결국엔 체념한다.(그냥 참는다.)

 

달린다는 행위를 통해서 25년여 세월 동안 소설가로서 또 어디에나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나를 정리한 글.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게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 그러한 성격이 누군가로부터 호감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동해주는 사람은 조금쯤은(아마도 아주 적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호감을 얻는 일은 드물다. 협조하려는 마음이 없는 그런 인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혼자 벽장 속에 웅크리고 있으려고 하는 그런 인간에게, 도대체 누가 호의(또는 그와 비슷한 것)를 느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순수한 이론이나 도리를 조립해서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 그보다는 신체에 현실적인 짐을 지우고, 근육에 신음 소리를(어떤 때는 비명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해도의 눈금을 구체적으로 조금씩 높여가게 하여, 가까스로 납득하게 되는 타입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나가면 사물의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품도 든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걸려 가까스로 납득을 했을 때는, 이미 때를 놓쳐버리게 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애당초의 나라는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면, 나는 '오늘은 달리고 싶지 않은데'하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너는 일단 소설가로서 생활하고 있고,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달리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는가?”



 

완주를 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 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것이 나의 육체이다. 한계와 경향을 지닌 나의 육체인 것이다. 얼굴이나 재능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있어도 달리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이를 더해가면 그런 안배가 자연스럽게 가능해지게 된다. 냉장고를 열어 거기에 남아 있는 것만 써서 적당한(그리고 어느 정도는 맛있는) 요리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사과와 양파와 치즈와 우메보시밖에 없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있는 것만으로 참는다.”




나의 인생에도 그런 빛나는 날들이 존재했었을까? 그렇다, 조금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때 내가 긴 포니테일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녀들의 포니테일만큼 자랑스럽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당시의 내 다리는 지금 그녀들의 다리만큼 힘차게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 - 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 -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자세 교정을 위해서 몇 사람인가 수영 코치의 지도를 받았지만, 여간해서 맍고할 만한 사람과는 만날 수 없었다. (…) 소설을 쓴느 법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만(적어도 나로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수영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울 것 같다. 아니, 수영이나 소설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수순으로 정해진 말을 써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있어도, 상대를 보고 상대의 능력이나 경향에 맞춰서 자신의 언어로 어떤 사물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라고 할까.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 혹은 훨씬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 그런 효율은 나쁘지만 의미 있는 행위의 사이클을 언제까지나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나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 해서든 질리지 않고 끈질기게 해왔기 때문에, 어쨌든 계속할 수 있는 한 해보려고 생각한다. (...) 아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다른 선택을 할 만한 여지도 없는 것이다. 자동차의 핸들을 쥐면서 문득 그런 것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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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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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는 이 책의 도입부분에서부터 집중을 잘 못한다. 플럼스터와 플럼스터 부인이라는 기러기 부부 소개 부분 마저도 무슨 이름이 네글자에다가 이렇게 어려워~! 하는 눈치다. 살던 곳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역이고 알을 낳기 위해 자리를 손보고, 참 장황하다고 지루해 하는 눈치다.  

아치, 오스왈드, 제니퍼....티모시, 프레다, 그리고 깃털이 없이 태어난 보르카 하는 부분에서부터 아이 눈이 빤짝... 

엄마가 깃털처럼 보이는 포근한 회색 털옷을 보르카를 위해 짜 주는데, 어찌나 좋은지 날개를 퍼턱이며 빙빙 돌았다. 늘 오돌오돌 떨었으니까...  

그런데, 언니 오빠들에게 가서 자랑하니 놀림거리만 되고, 보르카는 너무 슬퍼서 갈대밭에 들어가 혼자 엉엉 운다. 나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다른 기러기들이 못살게 구는 데다가 털옷은 한번 젖으면 마를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뭔가 제대로 배울 수도 없고, 보르카가 수업에 빠져도 아무도 알아채지도 않고, 설상가상 부모님은 너무너무 바쁘시다.  

겨울이 다가오면, 먹이를 구하기 쉬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철새인 기러기들...  

그러나 보르카는 날수가 없다. 모두들 따뜻한 곳으로 날아간다. 보르카는 숨어서 떠나는 기러기들을 지켜본다. 보르카가 빠져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보르카는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한번은 이 부분을 읽어주면서 나도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그때 울증 기미가 있어서 이기도 했고-  

보르카는 앞으로 어떻게 됐을까? 이 동화도 일종의 로드무비식이라서~  멋진 통과의례가 보르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다른 친구들과 다르기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친구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그 입장이 되어 한번 더 생각해 보면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언젠가 여러분이 큐가든에 가게 된다면 다른 기러기들과는 어딘가 다른 기러기를 보게될 거예요. 그 기러기가 바로 보르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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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침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2
존 버닝햄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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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고물 침대를 가져 왔어? 쇼핑센터에 가서 새 침대를 사 오랬잖아!"  

이것은 다분히 어른들의 현실적인 세계관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말이고,  

 "진짜 좋은 침대예요. 게다가 마법 침대래요. 여기 누워서 여행도 할 수 있대요." 

는 이 세상은 재밌고, 흥미진진한 것들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사고만큼이나 심각하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관이 드러난 말이다.  

"때때로 조지는 돌고래랑 함께 수영을 했어요. 이따금 아침에 조지의 침대가 젖어 있는 건 그래서였지요." 부분에서 아이는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오줌 쌌지?" 한다.  

헉...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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