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책 밖에 없다, 는 어떤 님의 서재 제목. 동감한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남는 건 리뷰 밖에 없는 것 같다. 재밌겠다 싶어 대여한 영화가 틀어보니, 예전에 대여해 보았던 영화일 때 느끼는 어이없음과 맞먹을 정도로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 남을 뿐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은 경우가 늘어만 간다. 그나마 리뷰를 보면, 읽었을 때 당시 느꼈던 소회랄지 내용 일부랄지가 되살아나니까.

단순히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하는 거 하나 없이 난 뭘 한 걸까 밑도 끝도 없이 위축될 때 이 서재에 들어와 수삼사년 썼던 리뷰들을 읽으며, 그래 나란 사람 사실은 그래도 조금은 재기발랄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 하며 약간의 에너지를 얻게 된다. 

물론, 눈뜨고 봐줄수 없을 정도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리뷰를 위한 리뷰’도 있고, 쓸 때 당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싶게 ‘평정을 잃은 리뷰’도 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고런 건 스킵하고, 재밌다고 생각되는 거만 골라 읽는다. 

한 때는 맹렬하게 서재 블로그를 꾸리던 시기가 있었다. 리뷰도 열심! 페이퍼도 열심! 리뷰는 당시 서점측에서 20편을 쓰면 5000원의 적립금을 지급해 주는 제도가 있었던 게 동기 부여가 되었었다. 따지면 편당 250원인데, 한낱 감상문 하나가 자그마하나마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에 감동.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제도가 한시적으로 시행되다가 중단됐지만, 이후로도 리뷰 쓰기에 열 올리기는 식지 않았다. 페이퍼는 알라딘에 서재라는 게 생기고 나서 서재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퍼의 경우는 사람 사는 게 그러하듯 재미와 열정도 식고, 또한 지명도 높은 작가가 팬들 의식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습게도 페이퍼를 편하게 작성하지 못하고 쓰면서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쓰고자 한다면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데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이런저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급기야는 카테고리 하나만 남겨두고 다 닫게 되었다. 

하지만 리뷰 만큼은 계속 쓸 수 있었을텐데..... 
 

요즘도 책을 읽기는 한다. 하지만 리뷰는 못 쓰겠더라. 밑줄 긋기도 잘 안 되더라. 위와 같은 이유로 좀더 써보도록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페이퍼도 그렇다. 그냥 편하게 써 보자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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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10-03-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공감...

icaru 2010-03-19 08:47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항간에 평범한 인터넷 서점에 지나지 않은데, 제게는 특별해졌네요. 둥지를 틀고 애착을 갖고 한 세월이 10년이더라고요... 참 .,.

2010-03-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10-03-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고르면서 무심히 읽게 되는 리뷰에서 님의 이름을 여러번 발견했더랬죠.ㅋㅋ 와 취향도 비슷한 점이 있고, 내용도 좋았습니다. 저는 열심히 쓰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읽으며 감탄했고, 행복하기도 했었는데... 여러 사람이 비슷한 상황인가 봅니다. 저도 책을 읽고는 있는데, 가끔 쓰는 리뷰를 아예 손 놓은지 오래네요. 저도 리뷰는 쓰고 싶은데~!! 암튼 페이퍼 읽고 공감 백 개 날려용

icaru 2010-03-19 08:57   좋아요 0 | URL
진복이랑 우리 큰애랑 동갑이라서^^;; 제가 진복이 커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많이 컸죠? 저희 아이도 바람잘날없긴 하지만 열심히 커가고 있어요. 어여쁘신 심상이 최고야 님 서재도 들랑달랑 했었는데, ㅎㅎㅎ
리뷰 써 주시면, 열심히 가서 읽겠습니다~
 
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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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미를 맛보게 해주는 정신적 체제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호기심, 세심한 관찰, 사건의 정연한 기록 방식그리고 자신이 배운 내용에서 기본이 되는 법칙을 도출해 내는 방법을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믿음들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의심과 개방성을 갖추어야 하며, 기꺼이 과거의 연구자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겸손함도 더불어 요구된다. "

 

 

"뛰어난 재능이 없는 한, 글을 써서 부나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적인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우선 글쓰기 는 정리된 표현 수단을 우리 정신에 제공해 준다. 글을 쓰면서 사건과 경험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쉽게 회상하고 되살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서 경험을 정리해 주는 자가 소통의 한 매체가 된다.

시인들과 극작가들이 집단적으로 심각한 우울증 및 다른 정서 장애의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 최근 많은 사람들이 논평을 했다. 아마도 그들이 전업 작가가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의식의 엔트로피에 과하게 둘러싸여  글을 쓴다는 것이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잡아주는 치료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를 창조해 내어 골치 아픈 현실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만이 작가들이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플로우 활동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중독이 되면 위험하다.. 작가가 제한된 범위의 경험만을 하게 되고, 다른 경험들을 접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을 통제하기 위해 글을 쓰되 글쓰기 자체가 내 의식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한 글쓰기는 편안하고 오묘함을 느끼게 해주고 풍부한 보상을 받게 해 주는 도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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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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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 영국.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은 성문화를 화제로 입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한 때였다.

  그런 그들이 결국 신혼 첫날,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경직되고, 너무 소심하고,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교적인 배려로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려서 눈을 멀게 했다고. 두 사람의 미래가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는 사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생각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여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고, 당시 꿈꿨던 역사서 시리즈도 집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을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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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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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에 상경, 먼 친척 할머니 집에서 동거하며 살아가는 여자의 1년을 그린 소설이다. 이렇다할 사건도 없이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에 편입된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먼저 주전자의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식빵을 굽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출근해서 일하는 바쁜 일상의 사회인이 되고 싶은 주인공 치즈. 그녀가 들어사는 집주인이자 동거녀인 일흔한 살의 깅코 할머니는 치즈를 묵묵히 응원하는 멋쟁이다. 가끔 치즈가 부리는 심술이나 어리광*히스테리에도 시미치 뚝떼고, 노인 대학에서 어떤 할아버지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귀여운 부분이 있는 캐릭터다. 이들의 나이 차이는 저만치 나지만, 이들만큼 잘 어울리는 콤비도 없을 듯하다.

61쪽

나는 아직까지 뭔가를 가슴 깊이 슬퍼하거나 증오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슬픔이나 증오가 어떤 추억으로 남는지도 잘 모른다. 막연히, 그런 것들에 직면할 날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일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이대로 젊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어느 정도의 고생은 각오하고 있다. 나는 어엿한 인간으로 어엿한 인생을 살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피부를 두껍게 해서 무슨 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매달 주민세도 연금도 의료보험료도 꼬박꼬박 내는 제대로 된 사회인을 향해 조금씩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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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하나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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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친구가 올해로 삽십대가 되었다. 동료이고, 후배인 이 친구와 어떤 갭이 느껴질 때마다 ‘역시 20대와는 친구가 될 수 없어!’했던 게 바로 엊그제인데.

삼십대를 맞는 이 친구의 신산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나보다. 미래를 약속한 남자 친구가 없어서 더욱 초조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며, 내 서른 시작의 감회는 어떠했냐고 묻는데, 30세가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었었다는 기억은 없다. 당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네마네 혹은, 감정적으로 틀어지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연애 감정이란 참 소모적이구나 했던 기억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쓰다보니 드는 생각은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이라고 놓고 보았을 때, 그 중 어느 부분이 소모적이었다, 낭비했다. 그런 표현이 과연 성립할까 싶기도 하다.

일찍 결혼을 했고 아이도 어느 정도 키웠다면, 이제 막 결혼을 해서 2세를 가지려는 사람의 막막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안정감을 구가하고 부모로서 노련미를 발휘하겠지만, 자기만의 일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아 허전할 수 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점점 초조해 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상쇄시킬 꺼리가 있을 수 있고, 아니 그보다 인생이란 것 자체가 대차대조표를 짜서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살아지지도 않고 살 수도 없는 것일테니까.

책을 보면, 정말 다양한 나이 서른하나를 맞는 여자들의 혀를 내두를 만큼 저마다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하고 살아간다. 몇몇 이들에게는 얼핏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래 짠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또 몇몇 이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구석도 있어서 충고가 하고 싶기도 한 그런 다양한 서른하나의 여자들.

작중 인물이 스스로에게 묻듯 나 또한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143쪽 

조금 전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제는 방해꾼이 있었으니까 오늘 다시 만나자고. 다정하고 따뜻하며, 내가 늦게까지 일하거나 술을 먹어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는 남편. 이 사람을 선택한 것도 그(내연남)를 위해서였다. 그가 독신인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아서 서둘러 결혼한 것이다. 내가 결혼한다고 하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남편을 좋아하지 않지만 죄책감은 전혀 없다. 남편은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206~207쪽

결혼은 지긋지긋하다는 마음과 전업주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는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각오가 생기면, 재혼은 그 다음에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저처럼 자립하지 못한 사람은 몇 번을 결혼해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뿐일까요? (중략)

결혼한 예전의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아이나 가정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말로는 다들 나를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정한 말투의 이면에서 그녀들의 우월감을 발견하는 것은 제 성격이 일그러졌기 때문일까요?




218~219쪽

어릴 때부터 아무런 대책없이 오기로 똘똘 뭉쳐 있던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전부를 계급올리는 것에 투자했다. 불안해하거나 주저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서른한 살의 내가 있다. 아니, 있어야 했다. (중략)

나는 몇 년 전부터 여관과 호텔, 음식점을 경영하는 기업의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던 내가 본사의 기획부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중졸이란 학력으로 음식점 심부름부터 시작해 열일곱 살부터는 고급 클럽의 바니걸로 일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토끼옷을 벗고 카운터에서 계산대를 맡았다. (중략) 매출을 관리하는 입장에 서자 바니걸로 일할 대는 몰랐던 클럽의 소홀한 부분이 보여서, 웨이터에게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주장은 놀랄 만큼 순수하게 받아들여져서, 불과 2년 만에 다른 지점과 한 자릿수 차이가 날 만큼 매출이 올랐다. 이를 본사에서 주목했고, 나는 결국 정장을 입고 회사에 다니는 지위에 오른 것이다.

아무리 정장을 입고 회사에 다녀도 출신이 출신인만큼 역시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온 사람과 천 미터짜리 산을 자기 발로 몇 번씩 올라온 사람은 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심술과 비아냥거림은 내게 스트레스조차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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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