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 온다 리쿠가 ‘나, 머리 겁나 좋아! 이야기 구도를 이렇게 겹겹이 이중 창문으로 된 액자(이런 게 실제로 있나? 모르겠으나) 소설도 만들 수도 있어. 메롱~’ 하는 것만 같은 소설이다.

제대로 구도를 이해하며 읽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도 않으면서 되돌아가 그림을 맞춰 보며 따져볼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은, 죽죽 흘려 읽으면서 나름 온다 리쿠의 문체로 충족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극의 이라는 장르에 수반되는 그러니까, 극작가와 같은 항상 더 나은 작품으로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줘야 하는 창작 직종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비애랄지, 배우가 오디션을 앞두고 갖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랄지, 연극이라는 예술 장르 자체에 대한 삽화들을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온다 리쿠만의 어투로 들려 주는데에서 그만, 재미를 다 보았다고 생각했고, 이것으로도 난 족하다 라고 여겼다.


이건 개인 취향일 것이다만, 이렇게 작가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모티브로 보여 지는 것이 구체화해서 이야기 내부 속에 유사 연극의 형태로 있고, 사실 그 결말 또한 기승전결을 갖춘 단순하게 똑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결말을 낼 수도 있었을 법했지라고 독자들에게 손안의 카드를 다 내보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에 사실은 좀 질색하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만이 치열하게 고뇌해야 하는 수고로움 같은 것을 소재로 과대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선사해 주고 있는 게 있는 거 아냐! 싶은... 그렇다. 이건 복잡한 걸 즐기지 못하는 개인 취향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가 싶은 순간,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뒤집으며 독자를 다시 미궁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 모호한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온다 리쿠가 의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옮긴이의 말에 내심 아리송하고 미진했던 느낌에 대한 혐의를 완전히 풀어주지도 못하겠다.

116

‘남는’ 연극 말이야. 실제로 왜 이런 시시한 연극이 남아 있는 걸까 하고 젊을 때는 나도 생각했어. ‘우리 마을’이나 ‘인형의 집’ 같은 것. (중략) 하지만 역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지. 대체로 단순한 구도가 남는 거야. 다른 말로 하자면 여백이  있는 것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 말이지.

119

오디션이라는 게 항상 그렇지. 받기 전에는 정말로 싫은 게 오디션이야.

긴장해서 불안에 떨며 구역질을 할 정도로 계속 열에 들뜬 사람처럼 비일상적인 상태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지. 너무 싫어서 도망치고 싶어 내 경우는 그래.

하지만 끝나면 아쉬운 걸, 사랑스러운 거야.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저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헤어진 연인처럼 끊임없이 끝난 오디션을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오디션을 받고 싶어지는 거야.

120

다들 화장술이 뛰어나고 옷 입는 센스도 좋아져서 얼굴 생김새가 미인인가 아닌가보다는 총체적인 인상이나 패션 감각이 더 중요해지고 있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빼어난 미인이라는 이미지가 없어졌지.

121

오늘날 아름다움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아. 아름다움과 야심도 비례하지 않아. 오히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의 야심이 더 굉장하지.

383

당신, 자신의 일이 끝났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본 적 있어? 아직 없겠지. 아직 젊고, 한참 물이 올라 있는 이 때가 자신의 일에 대한 반응을 느끼는 시기지. 언젠가는 체력이 다해 사고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직업에서 은퇴할 때가 오겠지. 그런 때의 일을 아직 상상해본 적 없겠지?

하지만 늘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 만드는 것 하나하나가 남들의 평가 대상이 되고 그것이 다음 일을 얻는 기준이 되는 사람. 항상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 항상 만들어내는 일을 괴로워하는 사람. 세상에 그런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어.

정말, 생각할 때마다 무서운 직업이에요. 주문을 하면서 몇 번, 보면서 몇 번. 내용의 질이나 평가가 노골적으로 관객수에 필적하죠.

분명 오랫동안 글을 쓰다보면 나름대로 기술은 늘 것이고 약간의 요령은 얻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새로운 것을 쓰기 시작할 때의 공포는 커지게 마련이죠. 전작을 능가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은 점점 크게 다가오지요. 무엇보다도 스스로 기대하는 작품의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힘들어진다고 해요. 

390

건물 내부의 정원은 도시의 모형.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도. 사람들은 늘 둘러싸이고 싶어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고 관리당하고 안전하고 기분 좋은 장소로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러는 한편 사람들은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폐쇄감과 고독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나가 많은 사람들 속의 한 사람임을 화인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내부 정원은 항상 ‘보여지는’ 운명에 있다. 애당초 사람의 시선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보여진다’는 의식은 늘 허구를 갖고 있다. 내부 정원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쌍방에게 연기를 강요한다. 그러므로 허구는 내부 정원 밖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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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8-11-0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머리 겁나 나뻐~ 이러면서 못 읽겠습니다 ㅎㅎ

icaru 2008-11-1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미설 님은 좀 다르게 느껴지실 지도 모르죠~ 저 작가가 쓴 것 중에서는 별로였음다^^
 
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 - 자신감 없고 의욕도 없는 우리 아들 '기 살리기' 프로젝트
레너드 삭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똑소리 나는 알파걸들을 물리치고 남자아이들이 승리하게 하자! 내지는 단순히 남과 여는 다르니까 분리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책으로 받아들이면 정말 곤란하겠다.

성장기 아이들에 국한한 이야기이다. 아들이 딸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여자아이들에 비해 학습면에서 뒤쳐지며 성인이 되어서는 목표를 상실하고, 기운 빠진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아들들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똑똑하게 키울 수 있을까 대안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남자 아이들이 학습 면에서 여자 아이들보다 뒤쳐지는 이유를 몇 가지 들고 있다.

첫째는 신체적인 특징- 뇌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 여자 아이들보다 2년 정도 늦게 트인다는 얘기다. 이것과 연관되는 것이 남자아이에게 조기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학습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할 우려 있다. 이것은 남녀 공학을 지양하자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 책에도 유사한 설명이 나와 있지만, 저자의 또 다른 책 <남자 아이 여자 아이>라는 책을 보면, 남녀의 뇌 구조가 다를뿐더러 청각과 시각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가령 퀴즈를 푸는 뇌의 부위는 남학생의 경우 대뇌의 원초적인 부위인 해마를, 여학생은 가장 진화된 대뇌 피질을 사용한다고 한다.

청력에 있어서는 여자 아이들이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 남자 아이와 무려 1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그래서 남자 교사의 보통 목소리가 여학생에게는 꾸짖음으로 들릴 수 있고, 여자 교사의 목소리는 남학생에게 중얼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시각 역시 남학생은 움직이는 것을 잘 관찰하지만, 여학생은 색조의 미묘한 차이까지도 구별해 낸다고. 

게다가 여자아이들은 이를테면, 교사나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기쁘게 해 주고자하는 욕구를 갖지만,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또한 책으로 얻는 지식은 경험으로 지식을 얻고 호기심을 충족하려 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환경을 영향을 들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 위해성은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 치명적인 점. 또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ADHD)의 경우 남자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 때 아이 뇌를 망치지 않기 위한 대비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아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요?  

1. 조기 교육을 시키지 마라. ( 물론, 소수의 머리가 일찍 트인 남자아이들은 스스로 자극을 원할 것이고, 아이가 수준이 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읽기 쓰기 산수 등의 인지 교육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저자는 유치원도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보내지 말라고 한다.

2. 밖에서 맘껏 뛰놀고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하라. ( 자연을 많이 접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상이겠지만, 안 되면 다른 대안이라도,,, 수영이나 태권도 같은 체육 수업도 좋고.)

3. 공학이 아닌 남학교에 보내라. (이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공학이더라도 분리 수업을 한다는지 하는 대안도 있을 것이다.)

4. 좋은 남자 모델을 제시해 줘라. ( 아버지가 좋은 모델이 되어 줄 수 있겠지만, 굳이 아버지가 아니어도....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게 아니라, 온 마을이 키운다지 않는가!)

등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이제 두 돌 지난 아들을 키우고 있고, 내년 봄에 태어날 아이도 아들이라고 한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되는 일. 실은 당사자인 나보다 주변에서 ‘앞으로 힘들어서 어떡하느냐’며 더 걱정을 해 준다. ‘왜요, 뭐 어떼요. 잘 키울 자신 있어요!’라는 당찬 소리는 차마 안 나오지만, 부모 노릇이라는 것도 일종의 수련 혹은 배움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열성엄마로 아주 훌륭하진 않아도, 어제보단 오늘이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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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 2008-11-0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만 둘인데 귀담아 듣고 갑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요.

icaru 2008-11-04 20:07   좋아요 0 | URL
아.... 저의 미래의 삶을 사시는 분이시군요~
이 책 읽으면서,,, 아 정말 아들들이 그렇게 전반적으로 딸들보다 덜떨어진게 현실인거야? 글쓴이가 좀 과장하는 거 아냐? 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더랬어요 ㅋㅋ

파란 2008-11-0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을 읽지 않았지만 공학에 대한 건 맞아요. 남자아이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들이 워낙 많아서 공학에서 조금 더 공부를 덜 하죠. 여자들은 그것때문에 더 하구요. 챙피하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아이들 보면..근데 이런 건 있어요. 사춘기 지나서 남자아이들이 뇌의 구조가 완성이 된다고 해요. 그래서 중학교 2.3학년부터나 늦어 고1부터 성적이 확~ 오르는 아이들의 성은 거의 남자!라고 봐요. 왜 풍문에 반에서 30등 하던 아이가 전교에서 30등으로 올랐다.는 풍문에 주인공은 다 남자에요. 그게 뼈가 있는 말이에요. 말이 제가 좀 많네요. ^^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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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반부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생일대의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그 날 밤 이후부터는 정말 숨가빴다.

제목 그대로 속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속죄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은 죄에 마땅한 벌을 치러야 하는 것인데, 죄가 부른 운명의 질곡(전도 유망한 청년의 삶과 그의 애인의 삶마저 송두리째 아작내 버렸다.)에 비한다면, 그 벌이라는 게 약하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훗날에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댓가를 달게 받으려 했던 브리오니.

그런데 이 죄가 브리오니 단독의 작품은 아니다. 그녀는 권력 의지를 발휘하고자 하는 욕망이 유난히 강한, 그런 아직 아이였던 것이다. 과오를 저지른  주범이기는 했지만, 본인이 저지른 잘못(강간)임에도 입 다물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고, 판단력 없지 않을 법한 어른들 여럿이었건만. 이 죄는 이들의 합작품이다.

모두 3부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1부는 사건이 있던 하루의 일을. 2부는 전쟁터에 나간 로비의 시점에서 3부는 속죄를 구하는 브리오니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이 작가의 장점은 전문 직종 혹은 상황 묘사에 아주 뛰어난 점이다.

2부에서는 작가가 정말 2차 대전에 참전해서 낙오병으로 몸소 겪었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고, 3부에서는 전쟁중에 부상병을 간호하는 간호병으로 호된 직업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쓴 것만 같다.
작품에서 다룰 직업군의 현장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연구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실감나는 문체의 소유자랄까.


죄를 저지를 당시 브리오니는 제법 글재주가 있는 그러나 자신이 전지전능할 수 있는 작품 속 창작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하는 무지한 열두살 영국 명문가의 막내였다.
철이 들고, 자신이 언니와 그 애인에게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는 자각을 할 무렵엔 이미 되돌리기엔 늦어버렸던 것.  

속죄를 할 양으로 언니처럼 종군 간호사가 되지만. 속죄의 방식도 다분히 창작의 세계에서 오만했던 어린 브리오니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 존재이다.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존재. 몸이 부서져라 부상병들의 간호 일을 하면서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절절히 깨달음과 동시에, 작가가 되려는 열망을 접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간호사의 일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으로 깨닫게 되었고, 소설가로서도 대성하게 되지 않았나! 물론 브리오니는 죽기 직전까지도 뼛속 깊에 남겨 있었던 죄책감을 안은 채 살아야했겠지만.

죽은 사람들만 억울한 노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어쨌든 브리오니 당신이 이겼어! 싶은 것이다.
브리오니만이 아니라, 미국인 마셜과 브리오니의 사촌 로라 커플은 입에 담을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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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8-10-0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미운 건 브리오니 부모였어요.

icaru 2008-10-13 10:3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마치 건수를 찾고 있었던 사람들처럼요...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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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왜 제목이 이런지 잘 모르겠다. 나이 들면 고교 시절에 느꼈던 감수성과 판이하게 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과 영 다른 인간이 되어서 살지는 않을거고, 아니 무엇보다 그 시절과 지금의 나는 별개가 아닌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한, 한참 지난 후일지라도 살면서 그 불안정을 구가하던 고교 시절의 기억들을 호명하는 날이 적지 않다.

비교적 잘자란 집 딸래미들의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부모와 그런대로 잘 지내고, 쇼핑을 즐기고, (카나를 예외로 둔다면, 맞벌이 부모님(바쁜 부모님 때문에 카나 남매는 주로 분식집 같은 데서 끼니를 해결한다. 카나의 뚱뚱한 체형도 그 탓이라는 뉘앙스?)을 둔 그녀. - 뚱뚱한 체형 때문에 등장 인물 중 가장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처럼 보였지.- 사탕일기를 쓴다는 건 달리 말하면, 상처 아닌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외모 때문에 듣는 상처가 그중 다수인 걸 보면, 가장 강력한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아버지가 농담처럼 무심코 했던 말-‘책을 반납한 고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뚱뚱한 네 몸무게 때문에 집이 내려 앉겠다는 뉘앙스였던듯’ 다행히 속으로 곪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탕일기를 통해서 아픈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극약 처방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 하지만 모두 다 크고 작은 결함과 불균형을 갖고 있다.

원래 이 시기엔 정상 모델 같은 게 없다. 이 시기 뿐만이 아니라 전생애가 그런 것인지도......

<도쿄 타워>에서 보니까, 작가는 취재대상들을 꼼꼼하게 인터뷰해서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여고생들 이야기도 그런 과정을 거쳤겠지. 그래서 트랜드라든지 하는 게 반영되었을 터. 그러다 보니 든 생각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 일본 여고생들의 일상이란 이렇구나.

둘째, 나의 여고 시절은 어떠했더라.

셋째, 앞으로 내가 부모가 고등학생을 둔 부모가 되었을 때의 그 느낌을 여기서 살짝 맛보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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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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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죽어서 또 다른 생을 살게 된다는 게 확실하다면, 지금 이 생에서 뭐하러 안달복달하고 사나....
다음 생에 태어나서는 이전 생애와 좀 다르게 살아보면 될 것을....
만약 그렇다면, 이생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의 그 태도도 조금은 다를 것이다.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을 거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그렇게 애닳아하지도 않을 거고, 우리 죽어서 다시 만나자, 라는 약속이 가능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로라, 시티>에서는 말한다. 이승에 남아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시티’가 있다고.
시티에서의 삶이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이승에 살 때처럼 단골 식당에 가서 좋아하던 메뉴로 식사를 즐기고, 따뜻한 햇살을 쪼이며, 커피도 마시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신문을 보기도 하고, 늘 어울렸던 옛 술친구들과 늘 가던 바에 가서 술판도 벌인다. 전생에 살았던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 같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부부의 연을 이어가기도 하고. 
 

그러나 인간이 이승에서 영원의 삶을 누릴 수 없듯 시티에서의 삶도 그를 기억하던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람이 죽으면 시티에서 사라진다.

이 책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서도 심금을 울렸던 것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했던 어느 가장의 이야기였다. 죽을 때 가족들이 침대맡을 지켜 주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이 소설은 죽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타인의 존재를 찾아 남극을 헤매는 로라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가며 보여 준다. 서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이 두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언젠가는 곧 끝이 난다는 즉, '예정된 삶'이라는 것이다.

남극에서 어디가 다른 인간이 살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방황하는 로라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슴을 조리며 읽었지만, 사실 면면히 주시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빙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벌이는 의식의 흐름이다. - 난, 이부분에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끝부분이 자꾸 떠오르던데 -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의식은 과거로 과거로만 달려간다. 어릴 적 단짝 친구 미니링스와의 대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끝에 했던 한마디 '영원히는 아니지만, 오래 걸리기는 했지.'를 묘비명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작가임에도 삶을 관조하는 힘이 남달랐던 것 같은 작품이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보는...

이 책을 빌어서 말하자면, 진정한 삶이란 이렇게 바뀐다.
처음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기를 기다리는 고독이었다. 만약 남편이 함께 있으면 그녀에게 필요한 고독은 흩어지고 말았고, 혼자 있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멋진 일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젠 남편도 그녀의 고독의 일부였다. 마치 아주 오래전 그들이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갈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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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4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