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때는?

맨 처음 해외 여행을 했던 2001년 여름 8박 9일

일상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마다 일시적인 청량감을 갖기 위해 이 시절을 자주 회상하는 걸 보면,




가장 두려운 것은?

노후에 주변 사람들 힘들게 만들며 나이값도 못한다거나, 하는 일종의 늙어서 기체후만강하게 살지 못하게 되는 일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집...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철봉처럼 생긴 대들보(기둥) 한팔로 잡고 무게중심은 다른 한팔에 두고 몸을 기울여 뺑뺑이 돌던 일 . 돌고 나면 손바닥에 생기던 까만 때...







가장 존경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김구 선생님 유관순 언니 정도의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을 대라는 말일까? 그런데 생존인물을 대라 하니, 없네. 만약 있다 해도 아마 그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부분에서조차 움츠려들 때




타인들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개탄까지야? 그러나 무던한 나도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때가 있는데.... 시간 약속을 상습적으로 지키지 않는 부류들을 대할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어머니로부터 날아오는 꾸지람&무언의 비난. 혼날 만하면 꾸중 듣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은 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날리던 된서리 같은 꾸중.. 일종의 그런 것들에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그게 면역이 아니라 트라우마 같은 게 된 걸터다. 고연히 민감해져가지고는. 다 큰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꾸중 비슷한소리를 들을 때는 몹시 거시기하다.




자산을 별도로 하고, 당신이 구입했던 가장 값비싼 것은?

내동생은 ‘오다리 교정 기계’, 나는 시집갈 때 혼수로 마련한 가전 제품들? 내보기엔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그런 종류들이 본래 가격대가 그러하거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간직하고 있는 것들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게 있겠냐만, 또 없어도 그만인 게 사실이라,,,,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써온 일기장 정말 소중하다. (근데 그게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집구석 어딘가 있긴 있을텐데,,,,)




당신을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미 작업한 책에서 나오는 오타와 오류




당신의 외모에서 가장 싫은 것은?

코끼리다리처럼 굵은 다리가 사춘기 이후부터 콤플렉스였는데, 덕분에 다리 하나 튼튼해서 이거 뭐,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건가?

다리 뿐만 아니고, 딱 맞는다 싶은 면소재의 옷을 입으면 여지없이 드러나는 허리와 뱃살들의 실루엣 ....  나이탓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위로도 해보지만, 뱃살 안 나온 어르신들도 많다 이 말이지! 그 분들이 비단 체질을 잘 타고난 것만도 아닐거고.

 

가장 매력 없는 습관은?

답하기 어렵네, 자꾸 못난 거만 찾으라 하고 말야.







가장무도회의 의상을 고른다면?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백색마녀처럼 성에가 잔뜩 낀 것 같은 백색 펄 느낌의 허연 얼굴에 새하얀 번쩍번쩍 드레스 같은 거 꼭 한번 입고 싶다. 그 날이 언제나 오려나?




가장 죄책감이 드는 쾌락은?

덮어야 할 순간 덮지 못해 회사에서 교정지 사이로 교묘히 소설책 펼치고 읽을 때 




부모에게 빚진 것은?

때로는 원망도 했었다. 남들처럼 뒷바라지 안 해 준다고, 뒷바라지만 잘 해주셨어도 난 더 클 수 있었는데 함서... 정말 철이 되게 없었지.

옛말이 맞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드는 생각이다. 글쎄나 -- 갚을 수나 있을까? 받은 모든 것을.... 




미안하다고 가장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고 이유는?

내가 누구한테 가장 많은 잘못을 저질렀더라? 잘 기억이 안 난다. 원래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기억하는 게 적다. 그러나 나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받은 사람들 적지 않을 듯도 하다. 그 경중을 헤아려 한 명만 고르긴 무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축에 속하는 사람일텐데 , 유독 그 말이 잘 안 나오게 되는 한 사람. 같이 사는 남자다.    




사랑의 느낌은?

자꾸 생각나는 얼굴. 어디에서도 떠오르는 얼굴.




일생의 사랑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나도 엄마라,,,, 제일 금쪽 같은 건 자식이다.




좋아하는 냄새는?

빵은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베이커리 지나갈 때 나는 빵 냄새는 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럽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 공복의 아침 출근길 항상 지나치는 빵집이 있다. 그 집에서 나는 빵 냄새가 너무 곱하기 3 일만큼 사랑스러움에도,, 빵을 좋아하지 않아,, 들어가 빵을 사 본 적 한번도 없다.)

딸랑 하나야? 싫어하는 냄새는 많은데.....




그런 뜻이 아니면서 "널 사랑해"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농담으로는 지나가는 멍멍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수도 없이 했을 텐데, 그런데 진지한 자리에서 남발할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아니지 않나?




가장 경멸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태생이 악한 자들이 있다. 환경이 경멸스러운 인종으로 길러내서 그리 된 사람도 있을거다. 그리하여 경멸스러운 짓거리를 서슴치 않는 자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 경멸해 마땅하지. 그런 사람들이 진짜 내 주변이 있다고 한다면, 대놓고 비난하는 것도 의미 없다. 미친개 피하듯 피하는 게 상책. 




당신의 최악의 직업은?

글쎄? 가사일에 젬병인데, 그럼 주부라고 해야 하나?




가장 큰 실망은?

나에 대한, 타인에 대한, 사건에 대한, 사물에 대한, 조물주에 대한???  




당신의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1998년 여름 마포구 염리동에 전셋집을 구하기 바로 직전으로 가서  그 집으로 계약을 하지 않는 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거슬러 가고 싶을 만큼 행복했던 시절을 말하라는 건가?

아니면, 끔찍해서 지우고 다시 출발하고 싶은 곳을 대라는 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돌아가는 것에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영광스러웠던 기억도 시든 꽃다발 같은 거고..... 싫든 좋든 아름답든 추하든~ 지금은 어슴푸레한 추억일 뿐이다. 죄다.... 




어떻게 쉬는가?

누워서 천장보며.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이런 것까지 궁금하셔요? 하긴 나도 타인들의 성생활에 전혀 궁금증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해하기로, 그렇지만 통계로 낼 수 있을까?  하고 살긴 한다! ㅋ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없다. 죽음이 아주 가까이 온 적이 있었는데 자각을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삶의 질을 향상해 줄 단 하나가 있다면?

여행? 여의치 않으면 책으로라도.




당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다른 업적 없다. 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식을 낳은 것? 




삶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일단 한번 살아보라니까요. 하는 것 같다. 정답은 아직 일러주지 않터라는.......

 




우리에게 비밀을 하나 말해 달라.

비밀이 많다. 내가 좀 음흉한 사람인가보다. 그 중에서 약한 거 하나.

화장도 지우지 않고, 꿈나라로 갈 때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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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2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해요, 약해. 너무 약해. ^^

느티나무 2008-08-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지막으로 '비밀'부분에서 약해요^^;;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나 봐요ㅋ

마냐 2008-08-2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래도 솔직하신것. 전 약한걸로 해노코...그게 약하단 소리를 살짝 빼먹었는데..ㅋ

icaru 2008-08-2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그럼, 조금 더 센 것 하나.. 아직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는 사실이에요.
둘째를 가졌어요~ ^^;;;
마냐 님 - - 이제 날이 선선해요. 시아버님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게 되겠죠?


느티나무 2008-08-23 00:23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마냐 2008-08-24 02:01   좋아요 0 | URL
으왓~ 축하해요. 제가 젤 잘한 짓이 둘째를 낳은 것이라고 늘 생각함다...하나와 둘은 아주 다르고..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달라요. 넘 좋아요. 아마 쑥쑥 잘 자랄거여요. 미리미리 축복 가득~~ (울 시아버님의 더 큰 문제는...심야 바둑TV 시청이람다. --;;)

조선인 2008-08-25 10:04   좋아요 0 | URL
와하하하하 축하해요 축하해. 둘째 키우는 재미는 또 다를 겁니다.
그나저나 마냐님, 흐음, 마루 취침 못지 않은 문제네요.

icaru 2008-08-25 11: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둘째라는 존재가 음, 그렇군요. ^^ 계획한 임신이긴 하지만, 뭐랄까요. 제 나이 때문에 진작에 아이 가져 낳을 걸 싶은 게... 몸이 아주 고단해 죽겠네요. 입덧도 그렇고요. ㅠ.ㅠ 아,,, 시아버님 어쩌,, 답이 안 나오네요 흐흐..
조선인 님!! 박장대소 그 웃음의 의미는 ㅋㅋㅋ

조선인 2008-08-26 08:32   좋아요 0 | URL
박장대소는 동지의식이죠. 히히.

hanicare 2008-08-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쪽 아이 무럭무럭 잘크죠? 이젠 금덩이가 되었겠지요...

icaru 2008-08-25 11:16   좋아요 0 | URL
하하... 늘 그리운 하니케어 님
아이는 몸의 성장은 둔화 추세인데,,, 말도 늘고,, 이젠 제법 데리고 놀만해요~

2008-08-22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5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6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9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일리 2009-08-0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언제 이런 글을 쓰셨더랬지? 하며 반갑게 읽고 갑니다. (그만큼 격조했네요..^^;)
지금쯤 둘째도 한창 잘 크고 있겠죠?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꼬마별 2010-03-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읽게 됐어요
글 쓰신지가 한참 되었는데
지금쯤 둘째 아이는 돌지나서 2살이나 세살쯤이겠네요
한창 말배우고 돌아다닐 나이일텐데 귀엽겠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icaru 2010-03-12 09:19   좋아요 0 | URL
ㅇㅎㅎ 언제 쓴 글이랍니까 ㅋ
둘째는 어그제 돌잔치 했어요.
정신없고 어수선하고... 그런데 참 예뻐요.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구판절판


"유리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 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건가?"
"그는 이런 말을 했어.내가 너무 젊어 보인다고. 자신과는 달리 머리숱도 많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빠진 머리를 마음에 두는 것 같은 몸짓을 보였지. 그게 나를 놀라게 한 거야. 왜냐하면 이시가미라는 인물은 결코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인간의 가치는 그런 걸로는 측정할 수 없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옛날부터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물론 그의 머리는 꽤 벗겨졌지만 나이가 들면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한탄했지.그게 마음에 걸렸어. 그는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즉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안 거야. 그런데 왜 이런 장소에서 갑자기 그런 말을 했을까?"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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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조금 진부했다. 용두사미가 된 거 같다고 해야 하나.
사모했던 여자의 흡사 분신과도 같은 딸을 두고 느끼는 아빠의 고뇌라던지 하는 진지하게 천착할 수 있는 감정선들은 뭉텅뭉텅 잘라냈다. 두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한 여정이 주요 스토리인데, 마치 영화를 위한 스토리보드처럼 조력자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도움으로 추격자들을 피하고 자신의 실체(클론이라는 것)를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뻔해 보여 별반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레몬이라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하는데, 동의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레몬의 속뜻으로 가짜, 시시한 것, 불량품 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은 또 처음 알았다.

89쪽

앤은 자기 출생에 의문을 품은 적이 없을까? 레몬을 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엄마를, 그리고 그 나흘 뒤에 아빠를 열병으로 잃은 그녀지만,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를 더할나위 없이 사랑했다. 부모의 이름을 멋지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에 사람들이 이야기해 준 추억들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고아가 되고 나서는 토머스 부인이나 해몬드 부인이 보살피게 되고, 나중에는 초록색 지붕집의 늙은 남매와 살게 되지만 자기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약간의 지식이 공상을좋아하는 앤을 계속 격려해 주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도 앤처럼 아예고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엄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죽음에 대해 고미할 일도 없고, 내가 부모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31쪽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순한 분신 제조 장치에 불과했다. 적어도 아빠는 그녀를 그렇게 취급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빠는 아마 나를 전에 사랑했던 여자의 복제품으로밖에 보지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아빠에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서 아빠에 대한 미움이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엄마의 몸을 이용하고, 함부로 인간의 삶을 조작한 것은 무거운 죄일 것이다. 그러나 아빠가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혼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랬다는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아도 좋았겠느냐고 물으면 울고 싶을 정도로 난처한 심정이 된다.


424쪽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죽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면, 내가 죽어 털어버리면 되는 걸까? 마치 비디오 게임의 리셋 버튼을 잘못 눌렀을 때처럼.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정리될까?
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잣니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오히려 누구나 자기 분신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고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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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10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적인 삶 - 제100회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현재도 재밌게 읽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50대에나 그 쯤에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인생 교본이구나! 하면서 크게 감응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엔 보통 사람이 겪는 일상의 문제들이 다 불거져 나오니까.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 말이다. 이를테면,  남녀의 사랑, 자기 정체성의 위기, 노동을 제대로 한다는 것,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 잃어버린 환상 등등

주인공의 인생이 꼭 프랑스의 국가적인 풍토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삶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 겪게 되는 50여년과 그 50년간의 다섯 번 정권 교체 - 정치인의 집권 흥망과 부침을 교묘하게 섞어 짠 재주가 돋보이기는 하나, 언급한 정치인 중에 드골과 미테랑, 시라크만 누군지 들어는 봤고 나머지 인물들은 당최 모르겠다 하더라도 감동이 줄어들 이유는 없을 것이다.


-드골 장군의 집권기

아주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해도, 부적과도 같은 신기한 장난감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명성이 자자했을 아름답고 늠름하고 인내심 있던 10살짜리 형은 갑작스러운 급성 맹장염의 합병증으로 죽게 된다. 형의 빈 자리가 너무나도 컸던 가족. 소년의 어린 시절은 우울했다.  

형이 없어서 어떤 성경험이나 지식을 들을 수 없었던 데다가 형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움에 짓눌려 말하기를 거부하는 부모와 함께 살던 주인공은 제법 논다는 동급생 날라리를 통해 최소의 지식을 얻는다. 그 친구는 다비드. 비뚤어진 성격에 상상력도 풍부했고,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나 억제하려는 심리도 전혀 없고, 대단히 건강하기까지 한 대부분의 사람보다는 조숙한 삶을 사는 아이였다.

동급생 친구의 명언들

“제기랄 엄마라도 예뻤으면 어떻게 했을 텐데.”

“먼저 냉장고에서 한두 시간 전에 그걸 꺼내. 정상 온도에 맞추기 위해서 말이야. 그 다음에, 아주 넓은 칼을 들고 구멍을 만들어 고기 한 가운데에. 중앙에 딱 맞게. 너무 커서도 안돼. 아주 정확하게 말야. 그 다음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바지를 내리고 파티를 시작할 수 있어. 빌어먹을 엄마가 가끔 고기를 마늘에 재워놓거든. 어쩌다 마늘 조각이 있는데, 집어넣고 그 위에서 한참 비비고 나면 성기에서 이틀 동안 냄새가 나는 거야.”

                                                               

-퐁피두 대통령 집권기

치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연상녀와의 연애. 커다란 다리와 풍만한 가슴 아래에서 마치 순진한 어린아이가 유모의 가슴에서 노는 서투른 소년 같은 기분이 되고 마는, 성욕 분출의 시기이다. 이 때, 3개월 동안 임시직으로 건축 현장의 유급 휴가 창구에서 일한다. 첫 달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 눈의 피로, 꼼짝 않고 일해서 생긴 어깨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말한다.

“자, 오늘 오후에 철학자 알랭이 쓴 글을 읽었단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네 생각이 났다. ‘식욕은 가고 세탁은 다 되었다. 인생은 좋은 냄새가 난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기

그의 아내 안나는 재력가 출신의 자제이다. 욕조회사와 스포츠 신문사의 사장인 아버지, 몸치장이 화려한 의사 어머니. 

그의 아내는 아버지의 욕조 회사를 물려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미션도 받는다. 이를테면 이미 번창하는 회사를 해마다 10퍼센트씩 성장시키는 것, 그녀가 첫발을 잘못 내딛기를 숨어 기다리는 사원과 50여명의 간부들과 맞서는 것,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지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스파와 저쿠지 식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카탈로그를 샐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그는 곧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해 내 시간을 바치기로 하였다. 조용히 아이들을 키우는 데 몰두하기로 했다. 예전에 그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내도 즉각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남을 느꼈다. 


“넌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게 네 판단과 상식을 망쳤어.”

그의 어머니의 말이다.

그의 인생이 순탄한 것. 그게 뭐가 문제냐고?  그가 나무 사진들을 찍어 편집한 책 두 권이 미친듯이 팔려 나가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될까?


-책 두 권이 기적적으로 팔린 덕분에 나는 세상살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내 가족과, 때로는 나 자신과도 나는 그 무엇에도 연루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과 어떤 계획도 함께 하지 않았다. 이따금 내 자신이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고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는 특별한 계급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떤 인간도 내 작업의 범주 안에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하면서 말없이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찍는 것이 내 인생이었던가? 내 사진들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그제야 나는 뱅상과 마리(자식들)의 사진을 찍은 적이 한번도 없으며, 더구나 안나와 어머니 사진도 찍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무껍질을 찾아 지구를 누비고 다녔지만 정작 내 주변과, 나와 같은 문지방을 넘는 각종의 삶에는 소홀했다.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나의 감정은 여전히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와 다름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거의 못 봤는데 아들은 벌써 치수가 39나 되는 신을 신었다. 나는 한 번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의도한 바도 아니었지만, 나는 가차 없이 기회주의적인 한 시대의 순수한 산물이었다. 노동이 용기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치가 있을 뿐인 그런 시대의 산물이었다.

나도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은 공평하다고나 할까?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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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방범 3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른바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살기도 어렵지 않으면서 자아를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이 넘쳐나는데, 그런 인간들 가운데서 어떤 확률로 연속 살인자가 등장하는 것.

그리고 옮긴이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그런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런 범죄소설의 인기를 끈다고 한다.

소위 말하듯 똥을 싸듯 쑴풍쑴풍 쏟아져 나오는 미미 여사의 작품들 가운데 역작에 속할 듯한 이 작품도 베개 두께만한 책이 장장 세 권이다. 그런데 오 년 동안에 걸쳐 잡지에 연재한 것이라니, 분량이 그 정도가 된다는 것에는 수긍을 하지만, 5년 동안 완결편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인내심에도 감탄을 하게 된다.


“구리하시와 다카이의 사고사를 천벌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 의견에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놈들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걸맞은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뻔뻔스럽게도 벌도 받지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말 겁니다. 그건 정말 옳지 않아요. 정말로 천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겁니다. 천벌이란 그렇게 부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 같은 인간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구리하시가 말한다.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다고 ...   설명이다. 분류다. 해석이다.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을 현대의 사건사나 풍속사 속에서 정리할 때 파일의 등에 붙이는 레테르다. 그리고 분류하는 것도 파일을 만드는 것도 레테르를 붙이는 것도 범죄자가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왜곡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범죄자가 저지른 것과 같은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 인간이 담당하는 작업이고 그래서 범죄자는 늘 분석되고 해석되는 쪽에 설 뿐, 절대로 그 쪽에서 이 쪽으로 건너오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충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적확한 표현이나 적절한 레테르를 가지고 있는 연속 살인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내면에 대해 설명할 말이나 사고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 그것은 늘 만족스럽지 못해서 반드시 보충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하며, 애당초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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