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책입니다- 도리스 레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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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도리스 레싱 하면, 뭐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심사가 떠올려진다. 역사적인 배경 지식이 없으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류의 작품도 아닌데.
그녀는 메시지가 명쾌한 감동의 화제작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편에 손을 들어주는 건지, 저 편을 옹호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문제작을 쓰는 것이다.
사실, 한 해 마다 한 권씩 이상한 계기로(나는 어디서 선정해서 읽으라고 간접 권유를 하는 것 일테면, *** 수상작 하는 것 -은 읽을 마음이 용케 생기지 않으니,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상하든 정상이든 어찌어찌하다가 사로잡히게 된 것을 읽는 쪽이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2004년에 벽호(지학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선집 중 하나인 <풀잎은 노래한다>를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었다. 2005년에는 책 표지 그림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런던 스케치>를, 그리고 임신중이었기에, 저어하는 마음이 들었던 <다섯째아이>를 미루고 미루다가 최근에 읽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여기서는 아이들의 엄마인 해리엇) 남들도 범상하게 누리고는 하는 일상적인 행복을 꿈꾸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또한 이상한 것이 다른 소설들처럼, 저건 바로 우리들의 삶이구나! 하면서 애착과 함께 동변상련의 그 무엇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해리엇의 문제가 뭔데, 작가가 자꾸 화살을 쏘아대는 거지? 저 화살은 사랑의 화살이겠지만, 당신이 그 화살을 맞아야 할 이유는 좀체 알 수 없다! 하면서 의아해진다. 그게 왜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작가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사랑받는 주인공은 티가 나게 마련인데, 도리스 레싱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은 그저 인물군상이며, 불완전함을 갖고 있으며,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는데, 조금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게 된 달까. 마치 다른 사람이 나을 볼 때 하듯이 자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전통적인 가치에 순응하는 젊은이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나 결혼에 이르렀고, 한 명, 두 명 아이들을 낳아가며 그야말로 그럼처럼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넷째 아이까지 낳고 시간적 간격을 두려던 해리엇에게는 어느새 다섯째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부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나오게 생겼다.
다섯째 아이는 백일도 되지 않아서 제 힘으로 침대를 잡고 일어서는가 하면, 귀여운 동생을 만져보기 위해 아기침대 창살 사이로 손을 넣은 넷째, 폴의 손목을 창살에 대고 꺾어버린다. 애완 동물들이 소리 없이 죽어 나가고, 다섯째 아이 벤은 자기 방에서 밤새도록 어두운 창문을 차가운 증오에 가득찬 눈빛으로 응시한다. 다섯째 아이라는 존재가 드리워진 이 가정은 점점 어둡고 음울해져 간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좀 엉뚱하긴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전통적인 역할 차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이 파괴적이고 무시무시한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아버지는 요양소 혹은 감호소(그 곳에 가면 아이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되어 있다.)로 보낸다. 어머니는 남은 네 아이보다는 비정상적인 한 아이에게 온 마음을 쓰지만, 아버지는 비정상적인 한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남은 정상적인 아이를 지키고 싶어한다. 남편은 감호소에서 아이를 다시 데려온 아내에게 마음속으로 맹렬히 비난한다. ( “우린 애가 없어, 해리엇, 아니, 나는 애가 없어. 당신은 애가 하나 있지.” ) 사실, 그가 아녀도, 이 모든 악의 씨앗의 탄생 자체에 대한 비난이 다섯째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다섯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들이 조금 자랐을 때, 벤과 폴을 제외한 그들은 자의에 의해 외가, 친가, 기숙학교 등지로 뿔뿔히 집을 떠나게 되고, 덜렁 남은 두 부부의 관계는 예전의 그것이 아니고, 특히 남편은 화도 낼 의사를 상실할 만큼 지쳐 있었다. 해리엇도 자신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한결 폭삭 늙어빠진 느낌이었고,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한없이 가정적이던 남편은 회사 일에만 전념하였고, 계속 성공을 거두었다. 남편에게는 이제 회사가 일의 중심이 되었고, 가족에게는 점점 소원했다. 남편에게는 돌아갈 회사가 있었지만, 해리엇에게는 뭐가 있나?
“우리는 벌받은 거야. 그 뿐이야.” 그녀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방어적으로 남편이 말한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그녀가 말했다.
"헛소리! 이건 우연이야.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야, 그것뿐이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린 행복해지려고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나는 행복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결코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했지. 그래서 바로 번개가 떨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