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중략>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신화의 힘> 조셉 켐벨

 

마음을 잡아 끄는 경구이다. 근데,

작가가 쓴 것을 모조리 읽는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작가가 읽은 것까지 모조리 읽는다는 것.... 그럴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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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0-1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서경식의 글이 그렇네요.
<소년의 눈물><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다가
책에서 언급된 쁘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찾아 읽으려고 준비중.

icaru 2007-10-12 14:48   좋아요 0 | URL
그니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또한 님께 좋은 책이었던 거네요~ 쁘리모 레비도 서경식처럼 두 나라의 혼을 담은 사람인가보네요~ 대충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참... 그럼, 서준식 님 책도 읽으시겠남요?
 
아메리칸 버티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김병욱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앙리 레비. 프랑스 철학자,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이이의 이름.

그러고 보니, 민음사에서 나온 <만남>이라는 쥐스틴 레비라는 작가의 나름 자전적 소설(모성애 없는 잘 나가는 배우 엄마와 방관자 철학자 아빠 사이에서의 애환을 담았달까) 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아버지란다.

책을 읽기 전, 내게 입수된 사전 정보들만 보아도, 내가 읽기엔 퍽이나 만만찮을 거라고, 정치 인명과 미국 지명에 얽힌 역사(역사는 짧아도, 영토가 워낙 방대하니..)에 깔려서 쉽고 즐거운 독서가 되지 못할 거라는 것은 예상했었다만, 한술 더 떠, 프랑스 지식인, 그것도 철학자의 애매모흐으- 한 설명 방식이랄지, 문제랄지 때문에 읽느라 더 피곤죽을 쑨 거 같다.

그래도, 약간의 수확은 있다. 책을 이해하느라 관련 배경 지식을 찾느라 알카트라즈에서 관타나모에 이르는 감옥 검색, 러다이트 등속으로 이해되는 정통 루터파 교회의 박해를 받은 `진정한 영감론자들`이라는 독일의 이색 종교 집단이 19세기 중엽 디모인 동부에 건설한 마을이 뭔지, 아미시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검색해 보는 등의 글자를 읽는 외에 여러 엑션들을 취하게 한 점.

미국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입장 -반미주의자의 입장과 반-반미주의자의 입장. -아메리칸이 현기증이 난다는 뉘앙스로 들리는 제목과 달리 저자는 후자의 입장이다. 반-반미주의자가 미국 사회에서 혼란과 어지러움증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내용이 기존에 널리 읽혀지는 반세계화나, 반미주의 등과 좀더 다른 시각에서 미국에 대한 견해를 제공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또한 부수적으로, 캐리 선거 캠프의 인상기나 바락 오바마, 웨렌 비티, 크피스토퍼 히젠스 등 인물 비평 감상, 새무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견해를 반박하는 저자의 견해 접할 수 있고(사실 나는 당최 뭔소린지 모르겠는...) , 토크빌(140여년 전 미국을 7개월 가량 여행하면서 - 주로 감옥을 중심으로-  장래 미국이 셰게의 강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는데...)과는 또다른 미국의 감옥 기행문을 감상할 수 있으며, 프롤로그에서 미국에 대한 총체적인 인상기를 정리한 것을 읽으면, 전체를 파악할 수도 있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앙리 래비는 미국을 다음 네 가지 징후로 파악했다.

첫째, 미국은 기념 메카니즘이 범람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축적`하고자 하는 `맹목적인 수집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니체의 표현을 빌어, 현재를 추동하는 원천이 아니라 현재의 무덤지기로 전락하고 있는 기억이다. 나라의 역사가 짧다는 것에 대한 `한`이 서려 있다고 보여 진다.

둘째, 비만이다. 신체 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비만, 교회의 비만, 주차장, 특히 쇼핑몰이나 교회 주차장, 완전히 소비되지 않을 정도로 비대해진 선거 캠패인 예산, 공공 제정 적자의 비만까지.

홉스는 “욕망의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자리를 옮기며 계속 앞으로 s아가는 데 행복이 있다고 보고.. 권력에 권력을 추구하는 부단하고 쉼 없는 욕망을 인류가 가진 일반적 성향으로 꼽으면서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귀착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징후는 미국의 사회적 정치적 공간의 분열, 점증하는 차별화, 발칸화, 부족화이다.

네 번째 징후는 회색 지대의 팽창이다. 극단적 빈곤의 영역인 사회적 시민적 무인지대의 팽창. 특히 래비는 라이커스 아일랜드 감옥에서부터 사우스네바다 여성 감호 센터에 이르기까지 무시무시한 감옥들을 보며 느낀 게 많은가 보다. 절대 빈곤에 견디다 못해, 도시에서 추방되어 지하 생활자로 전락하는 사람들을 생산하고 은폐하는 시스템을 가진 미국이라는 것.


이런 네 가지 불길한 징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파탄에 이르리라는 사람들의 예상은 납득이 안 된다는 레비. 그에 대한 근거의 하나로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의 틀로 분석할 수 없는 다층적인 국가임을 재확인하였다. 자유의 자발적인 포기 라든가, 평등에 대한 열망, 다수의 횡포 등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도 할 것이고.


-- 사족, 미국을 대할 때, 나름 의아했던 것을 앙리 래비도 꼬집고 있어서...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자연 재해들 앞에서, 정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나 시민들이 보이는 수동적인 태도이다. 래비가 느낀 바, 이 나라에는 자기 보호 성향이나 안전 지향의 문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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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0-0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의 사진 아이와 님인가요? 넘 멋져요

icaru 2007-10-1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라고 하시니 고맙슴다^^ 태은이와 님의 다정한 사진도 마이 궁금함돠~^^
 

 

아이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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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0-0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맞네요. ㅋㄷㅋㄷ

icaru 2007-10-05 09:21   좋아요 0 | URL
표정 변화가 과하답니다. ^^
주로... "노"와 "애" 쪽에 치중되지만요 =.=

미설 2007-10-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니 엄청 큰 애 같아요. 아, 귀여워요.

icaru 2007-10-05 09:03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만 본 사람들은 대개 실제로 아이를 만나서,, 아유~ 작다.. 라는 멘트를 날려준답니다. ㅎㅎ 쬐그만해요.

홍수맘 2007-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제목이 정말 딱이네요.

icaru 2007-10-05 09: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구져?

비로그인 2007-10-0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귀엽다~ ^^

icaru 2007-10-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체셔냥도 얼른 ~~

프레이야 2007-10-0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할머님이랑 닮았어요. 희로애락~~ ㅎㅎ
'희'와 '락'이 좀더 많기를요. 그리고 '애'도 당연히 ^^

icaru 2007-10-05 16:30   좋아요 0 | URL
네~ "애"가 뭔지도 알아야죠-- 흐

울보 2007-10-05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귀여운 아이네요,
꼭 깨물어주고 싶어요,,

icaru 2007-10-05 16:30   좋아요 0 | URL
아 울보 님.. 호호.. 사실.. 류야말로~ 야물딱진 귀여운 아이예요.

실비 2007-10-06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많이 컸구나.^^
너무 귀여워요^^

icaru 2007-10-08 15:24   좋아요 0 | URL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라네요...^---^

히피드림~ 2007-10-0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찬이, 얼굴 표정이 참 다양하네요 ㅋㅋ 근데 잘 걷나요?^^

icaru 2007-10-08 15:23   좋아요 0 | URL
^^ 신발 신게 하면 잘 못 걷고, 집에서는 잘 돌아댕겨요~
펑크 님! 영화 아직 몬 봤쏘요... ㅠ.ㅜ

히피드림~ 2007-10-0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윽 삐질래요 ㅜㅜ ㅜㅜ
ㅋㅋ 천천히 보셔요. 대신 코멘트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해주셔요,,,^^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글쓴이가 교통 사고를 당한 직후 . 평소 그를 지탱해주던 평범한 생활을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절망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휠체어에 종일 앉아 지내는 사람에게 흔히 생기는 욕창 때문에 침대에서 한 달 동안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는다. 한달이 걸린다고 말한 것은, 피부에 난 상처는 잘 치료하면 보통 하루에 일 밀리미터씩 아물기 때문.

그러니까 그의 엉덩이에 난 상처는 삼센티미터 짜리였던 것이다. 의사는 그에게 상처에 붙이라며 갈색 반창고를 준다. 상처에는 반창고를 붙이면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상처가 아물려면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처 부위를 공기에 노출시켜야 맞으니까.

의사는 동의하면서도 덧붙여 설명한다.

상처가 아무는 데 산소가 필요한 건 맞지만, 혈액 속의 산소가 필요하지 공기 중의 산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는 것이다. 필요한 영양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스스로 알아서 상처를 치료하는.

몸의 상처가 그러하다면 마음의 상처는?

아기들이 태어날 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옛말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주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고, 또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숙한다는...자명한 결론이 ...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 애쓰다 보면, 비관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곧잘 하는 행동이 뭔지 생각해 보니, 비교질이다. 쟤는 똘똘하게 잘만 하는데, 그러서 더욱 발전하는데 나는 어리버리하고, 늘 그 자리다 못해 입지마저 좁아지고 있는 것만 같고...

그런데, ' 내가 누구인가, 어떤 깜냥의 인간인가' 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무엇을 돌보느냐.. 다.

하느님이 내게 돌보라고 맡긴 것.

그걸 더 크게, 더 좋게 만들려 하지도 않고, 바꾸려 하지도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면서..그렇게 관리해 주는 거다.

언젠가는 누군가..아니, 아주 가까운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나를 평가할 날이 오겠지. 우리 엄마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 위인이었던가. 뭘 해줬나. 그 때 평가를 박하게 받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닐거다. 같이 동화책을 읽고, 인생의 평화로운 순간 밤하늘의 달을 보거나, 해가 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 순간들을 함께 했던 그런 엄마로만 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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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0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많이들 읽으시네요. ^^

icaru 2007-10-04 09:3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서평 신청 도서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전, 아는 분의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지만요.

잉크냄새 2007-10-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랑 서재 이미지 사진이랑 느낌이 비슷하네요.

icaru 2007-10-04 09:37   좋아요 0 | URL
음, 진짜 ^^ 그러네요.

이 책은,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할아버지가 정신 지체의 장애를 가진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이에요.

홍수맘 2007-10-0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홍/수에게 전 어떤 엄마일까요? 아직까지 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맘대로 엄마"인데......
저도 님의 바램같은 엄마이고픈데 잘 안되네요. ㅠ.ㅠ

icaru 2007-10-05 09:1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 전 제가 홍수맘님 정도만 해도, 성공한 거라고.. 여기고 있는데.
 

추석날 오후 1시 기차로 친정에 갔다가, 금요일 오후 3시 20분 도착 기차로 집으로 올라왔다.

원래는 토요일까지 띵가당거릴 계획이었으나, 마침 가지고 내려간 책도 다 읽어서 똑 떨어지고, 비오고 흐린 날이 하루이틀 이어지니, 외출도 어려워서, 이제는 제법 뻗대고 드센 아들녀석과 씨름을 하거나,  해주시는 밥먹고, 침대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게임이나 하는 것에 멀미가 난 거다. 예약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환불받고, 다시 예약하고...

서울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열었는데, 사나흘 비워 두었던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은거다.  매캐하면서도 좀 이상 야릇한....(3박 4일 동안 이 빈 집에서 뭔일이 있었던 걸까???) 

신발을 벗고, 들어선 거실 바닥에  갈색 젤리 같기도 하고, 묽은 피????처럼도 보이는 뭔가가 고여 있었다. 뭐야..!끔찍하군.

아이가 그 위로 철푸덕 앉아서 첨벙첨벙 하기 전에 냉큼 걸레를 집어들고 , 정체불명의 액체를 닦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이미 굳어서 지워지지 않는거다. 걸레를 집어던지고, 갈색 물줄기의 진원지를 쭈욱 따라가 보았다. 냉동실 문짝이 약간 열려 있었고, 사각의 생크림 케익 포장박스가 비죽이 튀어 나왔다.

아.씨.

3박 4일 동안 냉동실 문짝이 열려진 상태로 있었던 거고...

거실 바닥까지 주욱 흐른 것은 얼려둔 마늘과 생크림 케잌에서 녹은 초콜렛과 냉동칸에 들어 있던  고기들이 삼박사일을 천천히 녹고 녹아 만들어낸 혼합즙이었던 것...!

나는 누가(누구긴 나 아니면, 남편이지.) 냉장고 문짝이 열려진 걸 확인도 안 하고 나왔는가를 추궁했다. (나는 아니니까.) 

사건 당일,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찬이 아빠는 아들과 점심 대신으로 생크림케잌(23일이 내 생일이었다.) 조각을 먹고, 냉동실에 상자째 넣었다고 한다. 물론 한번에 꽉 닫히지가 않아서 다시 한번 밀어넣고 밀패된 걸 확인했다고 한다. (근데 다시 열릴 수 있는건가???) 평소 침착하고 살림에도 소질이 약간 있는 남편이라 믿었는데...

우리집 냉동실에 잔뜩 쟁여져 있던 고기는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그렇다. 나는 집에서 하는 고기 요리를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다. 고기 상태가 아주 좋지 않고서야, 내가 요리를 하면 맛과 향취를 살리기가 어렵다 보니, 우리 가족은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밖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부터는 쇠고기를 정기적으로 사둔다. 이유식할 만한 약간의 분량만!

 이유식 관련 육아 책마다 어찌나 쇠고기 안심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들 하시는지, 안 멕이면, 아이 발육에 큰 지장이 생길 것 같은 경각심이 불끈 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밖에 데리고 나가면, 개월 수에 비해 아이가 작네, 팔다기가 짧네.. 뭘 먹이네?? 어쩌네저쩌네... 말 많은 입들도 신경 쓰이고.

추석 바로 전주(금요일) 저녁에 모처럼 큰맘먹고 동네의 재래시장에 가서 아이 이유식으로 먹일 쇠고기 안심을 샀다. 매번 두 세번 먹을 정도로 손바닥의 반 만큼만 샀었는데, 그날은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명절 전날 기분 내려고 그랬는지,(명절 때면 선물 챙기고, 선물 받고 하는 문화를 보면서...유독 명절에만 먹고 죽자 하는 근성들이 있는거 같다고 쯧쯧대던 난데....) 두 손바닥 펼친 두께만큼 사서 다져달라고 했다.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한번 해 먹일 분량만큼 등분을 해서 따로따로 얼려두었다. 

그런데 그 날 늦은 저녁 남동생이 회사에서 고기 선물 세트를 받았는데, 집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야 겠지, 무겁겠지...하는 전화를 받노라니, 아차다 싶었다. 거기엔 양질의 안심과 갈비가 있다는 거다. 그 안심으로 찬이 먹거리를 해결하면 충분할텐데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차례 지낼 떄 쓸 고기는 부모님 집에도 많다고 하고(그 와중에 전화로 고기 있냐고 여쭈는 나의 집요함) 있는데 또 가져 가는 거 보다는 무거울테니, 우리 집에 두고 내려 가라고 해서, 그 날 늦은 밤에 동생은 그 고기 세트를 들고 우리집으로 왔었다.  

속으로 좀 그런 생각도 했었다. (갈비는 몰라도 안심은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아니 안심은 찬이 먹이고, 갈비는 요리도 자신없으니, 그거야 말로 보내드려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고기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뭔 욕심을 이리부리나 몰라......)

동생이 가져온 고기는 이 막눈이 보기에도 훈늉했다. 나는 어쩐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갈비는 비닐로 진공포장이 되어 있었고, 안심은 그렇지 않은 비닐포장이었다. 냉동실에 두지 않고, 바로 구워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갈비는 냉동실로 직행하였고, 안심은 냉장실에 두었다. 그런데 어찌저찌하다보니, 못해먹고, 명절 전날과 당일날은 시댁에 있었고, 하여 안심은 다시 냉동실로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냉동실에 둘껄 했지만, ,,,,  음냐...이래서 길에서 주운 돈과 쇠고기 안심은 그날 바로 처치하라는 옛말이 있나보다. (??)

내것은 아니었지만 내것이 된 추석 선물 고기를 두고, 그렇게 갖은 실랑이를 벌인 끝이었는데...

이미, 이유식으로 쓰려고 다진 고기를 넣어둔 팩은 검붉게 고기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절반이었다.... 저 지경이면 익혀서 지나가는 똥개에게 주어도 안 먹을 듯..

안심의 상태는 육안으로는 잘 모르겠다. 나는 냉동실 문단속 안 한 .. 남편에게 말없는 시위를 하면서...댓발나온 입을 해가지고, 그 고기를 몽땅 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로 양념을 만들어서, 재 가지고  팬 위에 올려 놓고, 구웠다.

갈비는 진공포장이니까. 일단 괜찮을거라 생각해두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니, 일단 먹음직스러운 향이 났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과일칸을 뒤져  배도 깎아 넣었다.

고기는 거의 익었는데 한 점 맛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편이 와서 한 점 집어먹는다.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한마디를 더 하는데, "찬이에겐 주지 말자!" 

뭐시야- 애도 못 먹을 정도면 나도 못먹지...

냉큼 나도 한점을 입에 넣었다. 처음 씹을 땐 육질도 쫀쫀하고, 게다가 들치근한 양념 때문에 고기맛을 잘 모르겠다가...뒤에 느껴지는 맛이 참 이상했다. 또 한 점을 집어 먹는다. 그런데 이건 확실히 맛이 구렸다. 웩...

어떤 조각은 먹어줄만했고, 어떤 조각은 심각한 상태였고,

겉보기로는 모른다. 뭐가 멀쩡한 고기 조각인지...

남편은 먹어도 괜찮은 고기라고 한다. 물간 생선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지만, 고기는 다르다나... 썩은 걸 먹지 않는 한 인체에 해가 없다나...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먹어치우겠다고 한다.

자기가 어릴 적에 이런 경우가 많아서 잘 안다나.

냉장고가 작아서 고기 선물 들어오면 냉장고에 못 들어가는 고기는 베란다에 두었는데,,,

어떨땐 이런 맛을 내는 상태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고.

흠... 실눈을 뜨고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니, 어딘지 남편은 신나 하는 거 같다.

잡동사니를 버리고 물건들을 정리(정리가 아니라 처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향이 있는 남편은 어느새 노란 음식물 종량 봉투를 들고와 냉동실에 있던, 남은 생크림 생일 케잌, 둔 떡들(받은 떡* 돌잔치할때 돌상위에 있던 거 챙겨온 것),얼렸다가 해동되면서 이제는 물렁물렁해져 썩을 일만 남은 인삼뿌리들과 얼려둔 콩비지,각종 먹거리들을 싹 주워 담아 넣어버린다. 마치 이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뭐냐...

복잡한 심사를 눅일만큼 도수 높고 달치근한 술생각이 간절했다.

수유다 뭐다 해서 맥주도 500cc 두어잔 정도까지만, 소주도 2잔 이하 뭐 그랬는데,,, 이렇게 땡겨 보긴 정말 간만이었다.

마침 부모님댁에 선물로 들어온 6년근 홍삼주 한 병과 전봇대도 뚫어버린다는 복분자주 한병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더랬다. (아버지는 술을 한 방울도 못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선물한 사람 센스도 없네. 술 못하는 아빠한테.. 이게 가당키나 하면서.." 포장 종이백채로 싸들고 왔다.

아이를 재우고, 고기와 그밖에 것들로 주안상을 폈다. 그리고 소주잔에 색깔도 고운 복분자주를 똘똘똘 소리나게 따랐다. 고기를 먹기 전에 한잔 원샷!

어머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술이 쎄진거냐. 달착치근하고, 알코올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거다.

병을 다시한번 살펴보다. 복분자....주가 아니라, 복분자 진액... (뒷병에는 마시기 전에 흔들어주시고, 1일 2~3회 1회 1~2잔을 드십시오. ) 약이었던 것이다.

다 먹겠다던 남편의 젓가락이 고기 접시에 가닿지 않는다. 나또한 어느것이 멀쩡한 고기일지 불확실함을 달게 감수하면서 고기를 먹을 용기가 쉽게 나질 않고...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거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속으로 직행하도록....개네들의 운명의 화살을 바꿔보고저,,,간장참기름마늘설탕양파 그리고 배.... 가스불...설거지만 만들어놓은 팬..

 

고향으로 내려갈 고기를 중간에서 삥 뜯었다가 이런 화를 당하고...

아버지 앞으로 온 약 선물을 술 선물로 착각하고 중간에서 착복했는데...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 복분자 진액에 보드카(몽골 울란바토르에 다녀온 지인이 준)를 섞어 마시다, 안되겠어서...남편에게 편의점에서 매취순 두 병과 포 안주를 사오라고 시켜 병을 비웠다.

기분이 그래선지... 술도 금방 확 깼다. 지금은 너무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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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7-10-02 09:04   좋아요 0 | URL
소설가 선생님께 소설 한 단락 운운은 굉장한 칭찬인거예요~ 그죠??
축하 고마심다~ 가족에게마저도...은근 챙김받기 애매한 날짜에 태어났지 뭐랍니까.
제가 주부가 맞나봐요. 이런 살림 손해 막심에 마음이 한없이 쓰이니까는 ^^

마냐 2007-09-29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란만장한 추석후일담. 왜 이렇게 남일 같지 않고 생생한지. 그리고 일이 터질라믄 꼭 평소 안하던 짓까지 더해 대박으로 터지는 건지..모쪼록 보드카에 매취순이 님의 마음을 달래주고,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깨달음이나 더해줬길 바람다. 뭐, 냉동고 청소 오랜만에 제대로 한 것에 위안 삼으시길.

icaru 2007-10-02 09:08   좋아요 0 | URL
마냐 님의 따끈따끈한 근황 글도 읽고 왔어요^^ 에고 독한 것-보드카,넘 쓰더라고요. 마냐 님의 이 길이 내 길인가, 라는 주제 의식의 글을 읽으면서 저또한 생각한답니다. 집어치우자! 하는 마음 다독다독 --

2007-09-30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umpty 2007-10-0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캬, 파란만장 연휴였구만요.
근데 난 저 상황이 눈에 그려지니 왜이리 웃기냐? ㅋㅋ

icaru 2007-10-02 13:40   좋아요 0 | URL
그지? 우리 신랑이 은근 신나 하는 모습이 보이지??
정말 탈많은 추석이었어. -- 찬이가 감기 때문에 열이 펄펄 끓어서-- 한바탕 정신 없었고-- 에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