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그러니 릴케에 의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자격이 필요해서, 먼저 나 스스로의 성숙한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안일주의에 빠져 어려운 것을 피하고 나의 '고유함'을 잃은 지 오래고, 남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기는커녕 여전히 옹졸한 마음으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사랑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는지 모른다.
-21쪽

간혹 이제 내 삶이 다하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 생애 마지막 말, 즉 나의 유언이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해 본다..... 말을 통한 자기 표현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의 유언은 무얼까.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본 적이 있다. 의식적으로 준비해 두었다 한 말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마지막 말이 되었는지, 게다가 정말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는지, 여러 가지 의구심이 생기지만 그래도 통설로 알려진 바로 몇 개의 유명한 유언이 있다. 예컨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헤리엇 스토 부인은 자신을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사랑합니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빨간 무공훈장을 쓴 스티븐 크레인은 자기 죽음의 순간을 마치 중계방송하듯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넘게 마련인 경계선에 도달했을 때,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다. 좀 졸리고, 그리고 모든 게 무관심해진다. 그냥 내가 지금 삶과 죽음 중 어느 세계에 있는가에 대한 몽롱한 의구심과 걱정, 그것뿐이다."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지금 들어가야 게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 말했고, 마찬가지로 19세기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임종시 이모가 "죽기 전에 하느님과 화해해라"라고 말하자 "내가 하느님과 언제 싸웠는데?" 하고 반문했다. 작가들의 유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은 괴테의 "좀더 빛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82~83쪽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85쪽

사전을 찾아 보면 '유머 감각'이란 '우습거나 재미있는 것을 감지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유머 감각은 그보다 좀더 넓은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의 정곡을 찔러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대처한다는 것은 그의 날카로운 상황 판단력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근시안적 판단을 유보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좀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에 관한 확신,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22쪽

펄 벅은 한국의 고아를 포함,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의 고아들을 입양했지만, 그녀의 친자는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이 겹친 딸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어렵게 쓴 책’이라고 고백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장애 자녀를 낳아 길러 본 어머니로서의 체험을 마음으로 토로한 책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행복감, 그러나 정신지체아로 일생 동안 자라지 않는 아이로 남게 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정말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할지 모릅니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내 딸아이가 지금 죽어 준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의 기대와 실망, 끝없는 고통, 그러나 결국 그 딸에게서 배운 점을 담담하게 그러나 그녀의 고백대로 "마음속으로 피를 흘리며" 서술하고 있다.
"나는 그 누구에게든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딸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능만으로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음도 배웠습니다."


-129쪽

그러면서 얼룩빼기 말 홀스또메르의 대사를 생각했다.
"늙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늙고 병들고 불구자가 된 것이 내 허물은 아니잖나?"

-165쪽

따지고 보면 동화 속에서 '착한 일'이 보상 받는 길도 매우 '육체적'이다. 미운 오리새끼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징그러운 두꺼비는 잘생긴 왕자님이 되고, 괴물같이 생긴 짐승은 멋진 왕이 되고, (...)
신체장애는 단지 의학적 케이스일 뿐, 악이든 선이든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다. 또한 인간 치유의 역할을 가진 문학이 한 집단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남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 장애이든, 인간 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만은 장애이든- 아무리 권력 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 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4~227쪽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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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빨리 사야지

icaru 2005-07-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전 후배 꺼 빌려 읽었는데.. 저것 보세요...베껴놓느라구 손노동을 적잖이 했잖겠어요 ^^

잉크냄새 2005-07-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교수님의 체험이 녹아들어있는 부분을 발췌하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은 벌써 문학의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셨군요. 저도 이책 가지고 있는데 제가 보는 오솔길의 풍경은 어떨까 사뭇 기대됩니다. ^^

icaru 2005-07-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리뷰로는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그래서... 밑줄 그었던 부분만 부랴부랴 옮겨 놨어요~
님 이 책 갖고 계시다고요~ 아하...좋은 책 갖고 계시네요 ^^

2005-07-18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1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잔잔해요. 어려운 책, 요즘 손에 잘 안 잡히는데 휴가철에 읽어야겠어요. 멋져요!

2005-07-1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7-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잔잔해서 심심한 책이었는데 님은 좋으셨나봐요.
역쉬 우린 안맞는게여...그런거였으..흐흑..
아니, 저도 좋았지요 뭐. 심심한 거 빼고는..
그나저나 잉크님은 이 책 왜 읽지 않고 계십니까!!!!!

2005-07-19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벌써 주문했어요~ 죄송해요 ^^v

icaru 2005-07-1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님... 소금이 필요하신 게지라~ 흐흐

2005-07-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벙어리 목격자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임경자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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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의 추리 소설은 비오는 밤, 방 안에서 혼자 읽는 맛이 최고 아닐까.

포와로가 맡은 이번 살인 사건이 그의 다른 사건들과 조금 다른 점을 찾자면, (굳이 찾으려 들자면, ^^)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긴 하지만,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트릭으로 포와로와 대결 구도를 펼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와로가 범인의 기발한 트릭을 쫓으려 했다면 범인을 찾아내기 힘들었을 거고... 정황상 용의자들의 심리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야만 풀리는 사건인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커튼>이 그랬지만, 독자는 취향에 따라 기발한 트릭의 발견을 높이 사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살인자의 심리학’을 정교히 다룬 작품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같은 경우는 전자이다. 그래서... 음...


하지만... 이 책 덕분으로 비오는 밤을 꽤 짜릿하게 보낸 덕은 또한 인정해야겠지...

 

p.s.   ...제목이 영... 상투적인 게 내용과 핀트가 안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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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7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7-1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머리가 멍하도록 충격적인 반전을 좋아해요! 모두 범인처럼 생각되는데 결국 주변인물이었다, 라는!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추리소설이죠. 글쵸, 이카루님! 이카루님 리뷰를 읽으니까 넘 좋아요!

2005-07-1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이 읽어주시니까 넘 좋아요!

님들... 고맙습니다... 우웁...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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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잠을 잘 못 잔다. 잠을 자도 깊이 청하지 못한다.

졸립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더라... 잊었다. 자야 하니까... 잠을 자두지 않으면 머리가 많이 무거워질테니까. 토닥토닥 힘들게 잠을 청하곤 한다.


10대 시절 나는 각종 귀신님들이 출몰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리고 20대엔 무서운 영화들도 곧잘 찾아 보고는 했는데, 30대의 나는 이젠 일부러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를 행하지 않는다. 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아도 세상사는 겁나는 게 많고, 더 이상 무서운 건 신선하지가 않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영화도 요즘엔 보기가 힘들다. 솜에다가 물을 붓는 격이어서 나는 그만 축 늘어지고 말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즈음 난 볼 영화가, 나를 당기는 영화가 없는거다. 그래서 오늘 퇴근길에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앞에 두고 나는 조금은 겁을 집어먹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다.



“뭐가 갖고 싶지? 하고 누가 물으면 저는 그 순간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져버리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줄 것 따위는 없어. 그런 생각이 꿈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이 준 것은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즉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틀림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봐도 흠칫할 정도로 음산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슴 속에 꼭꼭 눌러서 감추고 감추었던 내 정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웃으며 남들을 웃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음산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고 혼자 인정했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외에는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제 익살 밑바닥에 있는 음산함을 간파당하여 하루아침에 경계당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내 정체인 줄 모르고 또 다른 취향의 익살로 간주된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자전적이라고 보여지는 주인공인지라, 소설의 마지막을 부분을 덮으면서 뒤적뒤적 디자이 오사무 라는 사람의 생애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본다.

“자살...”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자살이라, 어떤 인생이었길래.... 하고...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죽음을 기도하지는 않는다. 죽고 싶을 때마다 실천하려 들었다면, 목숨이 아홉 개라는 고양이보다 더 묘묘한 생물이 되었을거다.


죽음과 그렇게 번번히 조우하려 했던 디자이였다면, 그는 퍽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거부의 집안에 태어나 온갖 영화를 다 누렸을 법하다. 비관적인 세계관이란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과 굴욕 같은 것에서 원인이 되는 경우보다는 반대 급부의 경우가 더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도련님 온집안의 귀염둥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예민한 자아로 인하여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


자신을 인간 세상에 적응할 줄 모르는 생활 무능력자라고 인식했던 그였던 만큼, 가족에게 의지를 했고, 가족의 기대와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했으나.... 주위 사람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회피책으로서의 자살로 번역자 김춘미는 해석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좀 더 가시화된 가진 자로서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그의 자살 시도들에 원인 제공을 했을 터이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패망 뒤 일본 사회에 만연했던 허무주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천성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공포를 느끼곤 하는 우리들의 휑한 가슴에도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후비는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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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7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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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7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7 0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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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7 07: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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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7-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살을 무려 일곱 번이나 시도했던 사람인데 아직 살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자살하고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마지막 일곱 번째 시도 이후 제게서 완전히 지워 버렸습니다. 스스로 죽고 싶은 만큼 내 속엔 삶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여러 이유로 자살을 하겠지만-어느 철학자는 생존의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공감합니다.
정도는 달라도 삶에 무기력해지는 것도 일종의 자살이 아닐까요. 이카루님은 현명하신 겁니다. 몸과 영혼이 스스로 감당 못할 만큼 처질 땐, 슬픈 영화나 음악은 듣지 마세요. 물론 가끔은 저는 한번 정도는 일부러 아주 아주 슬픈 영화나 음악, 또는 책에 저를 내버려 두곤 하지요. 실컷 울기 위서 말예요. 단, 실컷 운 다음엔 씻은 듯이 잊을 것을 단서로 하고요.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그냥 님처럼 슬프거나, 아프거나, 무섭거나, 괴로운 것은 살살 피해 다녀요.
이카루님이 숙면을 못 취하신다니 밤마다 편히 잠드시길 기도할 게요...

2005-07-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들...말씀 고맙고요오...
진주 님... 언제나 님의 경험을 통해 해 주시는 말들은 깊이 새기게 되네요...예...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고 할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숙면을 취하는 나날이 오겠지 하구 있어요 ^^

잉크냄새 2005-07-1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말에 이 소설 리뷰를 쓴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요조에 대하여 엄청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님의 글을 찬찬히 읽으니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일년의 시간이 또 사고를 좀 변화시키는 모양입니다. 순진한 무구심이 결코 죄의 원천이 되는 일은 없어야할것 같네요.

icaru 2005-07-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님의 비판적인 입장에 전 더...공감을 합니다... 요조의 약한 부분...음산한 마음...이 독자인 저도 감정이입 되는 부분이 적잖이 있긴 했지만... 앗...그리고 인간실격 뒤에 나오는 단편도 있었잖아요...
님은 그거 읽으셨어요~ 뭐였더라 제목이 두 글자였는데... 아무튼 저는 그것도 건너뛰었네요 ....

잉크냄새 2005-07-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양>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유다의 심리에 관한 소설...좀 특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네요.

2005-07-30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도르를 벗겨라
베흐야트 모알리 지음, 이승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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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곡과 과장이 되도록 절제되어, 이슬람 문화권 두 여인의 삶을 보여 주는 실화로, 모처럼 만난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쓴 베흐야트 모알리는 적절한 안배로, 자신과 한 여인 타라( 살인죄로 기소된 상태에서 모알 리가 끝까지 변호를 맡았던 여인)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진술하는 방식으로 어린 시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그렸다.
두 여인의 인연은 이란 여성 변호사인 저자 베흐야트가 같은 이란 여성 타라의 국선 변호사를 맡으면서이다. 그녀의 갸름한 얼굴은 흙빛에 이상한 창백함을 띠고 있었다. 굵은 눈썹은 서로 이어질 듯하고 그 아래 길고 검은 속눈썹만이 얼굴에 생기와 어둠을 동시에 드리워 주었다. 베흐야트는 놀랐다. 타라를 만나기 전 타라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키가 크고 강한 체구의 여성을 생각했는데, 타라는 여리고 아이 같은 순진한 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타라가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다니.......

여기서 타라의 일생을 잠깐 이야기하면, 타라는 가난한 이란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늙은 신랑의 아내가 된다. 타라는 어릴적부터 상상력이 좋았고, 공부를 하고 싶어했으며, 넓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의 인생은 남편의 그늘 아래에 묶이게 된다. 다행히도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아이들을 낳고 행복해질 즈음, 남편이 죽게 되면서 타라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는 여자로써 겪어내기 힘든 온갖 역경들이 시작된다. 
이슬람 농촌 사회에서 모두가 함부로 하는 위태로움에 처한 사회적 지위란 다름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딸들, 남편이 죽은 과부였다.

남편이 죽자, 타라는 자립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자 하나, 이웃의 남자들은 호시탐탐 그녀에게 추근댔고, 이웃의 여자들은 그녀를 따돌리고 경계했다. 사회 제도상 생계 유지상 시게(가정이 있는 부유한 남자의 첩으로 들어가는 일)를 택해야만 했던 타라.  

한편 베흐야트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특히 이란 사회가 잘못된 여성관을 가졌다는 것을 베흐야트가 일찍부터 깨닫게 하는 데 일조를 해 주신 분은 그녀의 할머니였다. 그 후 사회 활동에 대해 많은 이해심을 가진 남편을 만나고, 자신이 원했던 교사 자격증으로 따고 교사 활동을 병행하면서 법학 공부를 하는 베흐야트.

그런 베흐야트에게도 이란 사회는 장벽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교사 생활에 소신을 가지고 열심을 발휘했지만, 당국으로부터 이런저런 제지를 받고, 심지어는 전담 감시자까지 따라 붙게 된다. 이후 법률 공부를 통해 변호사가 되지만, 이러한 제재는 여전하다.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애를 썼던 그녀는 결국 남편으로부터도, 이란 당국으로부터도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여러 절차 끝에 독일로 망명을 하게 된다.

매순간 한 인간의 개인적인 운명을 눈앞에서 상상하며 여권 변호 일을 하는 베흐야트의 어떠한 장벽 앞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을 높이 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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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6-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이슬람 율법을 깨뜨린 (자유연애던가...) 여동생을 살해한 오빠와 아버지의 일을 그린 내용을 보았어요. 인간 위에 군림하는 사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어요. 언젠가 이슬람에도 여성 인권이 서는 날이 오리라 생각해요. 베흐야트는 그런 인권의 한줄기 빛이 아닐까 생각해요.

2005-06-13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6-1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잉크냄새 님 좋은 표현 찾아 주셨네요..... 베흐야트는 열악한 여권 상황에선나마 한줄기 빛이라는 것이요~

2005-06-13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14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6-1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은 6인데, 잉크냄새님만 흔적을 남기셨군요. (흐음..속닥거린 사람, 누구실까?)
베흐야트는 여성운동가이면서 인권 변호사였던 셈이군요. 근데 타라와 베흐야트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요, 궁금해요.

2005-06-15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23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6-09-3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신 답을 달께요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었음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에 처해졌으나, 호메이니 혁명 이후 피해자의 재심청구에 의해 사형당합니다 베흐야트는 당국의 감시 때문에 두 아들들과 함께 독일로 망명한 후 거기서 재혼했고요 지금은 망명자들을 위해 일한다고 합니다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즈음에 읽는 정장본 프랑스 작가의 소설은 절반치만 신뢰하고 대한다. ‘차에 치인 개’가 그랬고 암퇘지가 그랬다. 책 뒷면, 날개에는 각종 유력 일간지들의 쏟아지는 찬사로 도배되어 있다. 이 책에도 여지없이 있다. 똑같다. 서른이 못되는 나이에 발표한(꼭 서른을 기점으로 나이를 운운한다. ) ‘콧수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200페이지 분량의 줄타기를 하는 천재라는 것이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아 그래도 이 책은 좀 다르다.’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 취향 같은 걸 알아버렸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지점(인물의 관계망이 뒤섞인 지점)으로부터 주인공이 공간적으로 멀리 빠져 나와 저만치 멀리둔 최초의 사건에 대해 재해석을 하고 관조하는 패턴을 좋아한다.
일테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도망치듯 파리를 벗어나, 공항에 가고 좌석이 남아 있는 비행기라면 아무 행선지나 잡아타고 (홍콩), 그렇게 찾아간 홍콩의 어느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보내는 부분. 하는 일이라고는 구룡 반도와 홍콩섬을 왕복 운행하는 페리를 수십 번씩 갈아타며,
 
“페리선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왔다갔다 하는 그의 마음에 틀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동전만 넉넉히 있으면, 망설이다가 욱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어도 행동으로까지 옮기지 못하고 지금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하는 부분이 좋다.

내 맘대로 분류에 의하면, 이 책은 적의 화장법 류의 작품인데,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는 줄거리를 말하자면 대충 이렇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아내를 깜짝 놀래주려고 10년 넘게 기른 콧수염을 깎는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그녀 앞에서 그는 초조해진다. 아내의 무관심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아내는 정색을 하고 콧수염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친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콧수염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사실 나는 이 부분까지는, 정말 간신히 간신히 읽었다. 콧수염이 있었고, 없었고 하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아내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가 ,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라는 정체성의 혼돈과 입증의 문제라고 들었는데, 정말 말이 거창하기도 하다고 생각되었다. (요로코롬한 사고 방식으로 소설책을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이런 방식은 극구 피해야 한다. ^^)
그런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어제까지도 전화 통화를 했던 아버지가 오늘 아내 말에 의하면 돌아가신지 1년이 되었다 하고.... 자바섬에 놀러 갔었다는 과거의 추억마저 엇갈려 버린 마당에서부터였다...... 아내 아니면, 내가 미친거다.
급기야 나는 아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짜고 ‘나’를 정신병원 영원히 넣어버리려고 이런 음모를 펼쳤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가정은 사실 여하를 차치해 두고, 인간 불신 극도의 상황이랄 수 있다. 가장 사랑하고 존엄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이... 나를...

콧수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생각이 아니라 그게 사실인건지 어쩐건지는 나도 모른다...여튼...) 이 주인공 사내는 사실 정신병원이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누군들....당연하지...)
그래서 그는 페리를 타면서 시계추를 떠올리는 것이다. 마치 페리선처럼 무감각해진 미치광이들의 뇌 속에서 절대 지치지 않고 평화롭게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받아주지 않는 상황.은 정말 끔찍할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뭐 대입해 놓고 보기에 그닥 적절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튼 이 작품은 정체성을 말하는 서스펜스류의 소설이 되려고 그랬는지, 주인공 ‘나’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의 친구와 아내와 소통하여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회피하고 이들에게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홍콩으로 날아가버린다. 우리에게 일어난 실제 상황이었으면, 아마도 더 집요하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콧수염을 깎았다는 것을 알아 줄 때까지 새초롬하게 기다릴 게 아니라, 콧수염이 있던 시절의 증거를 들이대고 좀더 집요하게 진실을 추궁했을 터인데.......!

주인공 ‘나’는 주변인들을 떠보고, 지레 짐작한다. 좀더 추궁하지 않고, 겉으로는 덮어두었다고 말하며, 마음 속으로는 큰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기 때문에, 의혹은 눈덩어리처럼 불어간다. 이 소설이 결말이 어떻게 나려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그런데 그 결말이란 게 참... 

마지막 장면의 좀 억지스러운 것만 빼면 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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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패턴을 좋아하신단 말이죠?ㅎㅎ

미네르바 2005-06-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참 재미있겠는걸요? 아무도 '나'를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마 미치겠죠? 그런데 콧수염 자른 사내는 그냥 회피하고 마는군요.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네요.

2005-06-10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6-1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수정했어요...!! 헥헥헥... !
로드무비 님... 옙...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그랬고.... 마구스도 그랬고... 중간에 장소가 바뀌는 걸...좋아하는... 이거도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는 몰라도요...
미네르바 님.. .하하... 그렇다면 아마 미치고 펄쩍 뛰겠죠...ㅋㅋㅋ
속삭이신 님... 맴매예요!!!

비로그인 2005-06-1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가스등>을 보는 거 같아요. 아내를 미치광이로 몰아가는! 결국, 콧수염이 있었던 건가요, 없었던 건가요? 실제로 음모가 있었던 건가요, 백모증이었던 건가요? 이거 스포일러인가요, 아닌가요? 지금 비가 오나요, 그쳤나요? @,.@ 딸꾹~

2005-06-10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6-1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 하나 쓰면~ 낚시줄에 대어 낚듯,,,, 엮어서 건지게 되는 것들이 많다니깐요~ 오늘은 복돌언니 추천... 가스등야요!!

속삭이신 님... 흐흐... 작가 뺨 치는 댓글이세요...
사실 저도 콧수염에 달린 님들의 댓글에... 대한 댓글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쏭달쏭해 하다가 .... 이제사 씁니다...

sayonara 2005-06-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염얘기는 뭐니뭐니해도 유럽의 잔혹동화 '푸른 수염'이 최고죠. 어린 시절 그 작품을 그림책으로 읽고 일주일동안 악몽에 떨었던 기억이...(지하실에 매달려있는 XX들...)
이카루스님의 리뷰가 (아마도) 원작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