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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요요마
마리나 마 외 지음, 전원경 옮김 / 동아일보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사기 전에 몇 가지 우려를 했습니다.(기우였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기우는 이런 것이었죠. 이 책은 요요마의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말한 것을, 요요마 열 살 때부터 마 가족을 지켜봐온 랄로 박사가 기록 정리한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하다는데...부모가 자식에 대한 객관적인 잣대를 잃어, 생기는 칭찬 일색이면 그것도 좀 거시기라서요... 게다가 이 책은 성인이 된 요요마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마리나의 말 마따나, 그것은 사생활이고 존중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니까. 없을 수 있다 합니다. 여러 가지 우려에도 결정적으로 책을 산 이유는 번역자에 대한 믿음이었어요.... 전원경씨가 음악 전문지 객석의 기자였다는 것은 차치하고, 그의 다른 책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정말 행복하게 읽은 기억 때문에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공동 집필자인 랄로박사는 요요마 가족과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 끊임없이 요요마의 어머니에게 요요마의 성장 시절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제의해 왔으나 요요마의 어머니 마리나는 선뜻 행동하지 못했고, 그러던 중 요요마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자, 어떤 절박함으로 이 책을 쓸 결심을 합니다.
어머니 마리나의 이야기 고무 젖꼭지 사건, 잔디밭 화재 사건 등을 통해서, 어린 소년 요요마가 얼마나 천진한 개구쟁이었으며, 또 고집은 얼마나 세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누나 요우쳉보다 바이올린을 잘할 자신이 없어 더 큰 악기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군요. 바이올린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한 누나 요우쳉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어린 꼬마는 참 보통내기가 아녔구나 하는 것에 앞서, 어린 요요마 녀석(?) 자기다운 악기를 찾기 위해 고집을 부렸던 걸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요요마의 부모는 모두 중국인이었으며, 두 분 모두 음악 공부를 위해 파리 유학을 하는 상태에서 두 남매를 낳았지요. 유학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 궁핍했지만...아내와 남매를 거느린 음악학 박사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음악 공부를 시키지요. 부모의 못다이룬 꿈을 자식들에게 지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요요마는 한마디로 광속의 스피드로 첼로를 배우는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이들 남매는 남다른 귀와 기억력, 뛰어난 반사 능력, 탁월한 조직력, 지성, 통찰력 등을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였지요. 이런 아이들이 자라나서 위대한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요요마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고, 각기 첼로와 바이올린 파트에서 두 남매를 수석으로 둡니다. 그는 다만 연주법을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함께 음악을 창조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고 늘 주장하는데 이 대목에서 요요마가 오늘날 어떤 교향악이나 다른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과 함께 3대 악기로 꼽히면서도 첼로는 독주회 레퍼토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협주곡, 소나타 독주곡 등을 다 꼽아 보아도 30여곡 내외일 것이라네요. 실제로 유명한 첼로 레퍼토리는 ‘첼로의 성서’라고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들, 슈페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보케리니, 하이든, 드보르자크와 엘가의 첼로 협주곡,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가 100년간 연주를 계속해도 피아노 레퍼토리를 다 연주할 수 없는데 반해서 말입니다.
미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도 아닌, 요요마.
완전무결한 테크닉과 거칠 것 없는 연주력, 한계를 모르는 레파토리 등 그를 비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말들은 너무 쉽게 연주해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라든가.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해 감정 과잉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정도였답니다.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경우에도 그런 평이 있었는데, 아무리 천재적인 연주자라고 해도 20대(그는 어렵다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20대의 나이에 녹음해버림...)의 의식 구조에서 도달할 수 있는 음악적 깊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의 음반들은 ‘이 음악의 결정판'이라고 격찬을 보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하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면에서는 흠집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치 요요 마 본인의 온화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 음악에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음악가들은 최근 설문 조사를 통해 가장 협연하고 싶은 연주자로 요요마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내한 공연차 한국에 왔을 때, 협연하였던 서울 시향 단원들도 그의 공손하면서도 쾌활한 태도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요요 마는 자신의 음악 작업을 ‘웨이터’에 비유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훌륭한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훌륭한 웨이터가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연주자는 요리사가 아닙니다. 요리사의 역할은 작곡가가 하니까요. 그러나 웨이터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음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연주자와 웨이터는 비슷하죠.”
요요마 만한 연주력을 가진 첼리스트는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성실하고도 겸손한 인간성,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지성, 청중과 음악의 기쁨을 같이 나누려는 그의 태도는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