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구판절판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며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한 악명 높은 정치가가 편안하고 우아하게 죽기도 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죽기도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고 살아봤댔자 자식들한테 똥을 떡 주무르듯하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중략) 이렇게 사람은 각각 제나름으로 죽는다. 이 세상에 안 죽을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때는 자기만 죽는 것처럼 억울해하는 건 이런 불공평 때문일까. 무(無)도 없는 무, 호기심조차 거부하는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밟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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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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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 <그 남자네 집>을 단숨에 재미나게 읽어냈으니, 이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도 그래질 것 같았다. 멀리 사는 친척, 애어른 할 것 없이 왁짜하게 모여 득시글한 시댁에서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해대는 짬짬이, 부엌데기가 잠시 일손 놓을 때의 소일거리로 하는 십자수 놓듯, 그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골랐다. 이 판국에 다비드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나 베르나르의 <나는 걷는다2>를 읽는 것은 망쪼고 분명 산만한 읽기의 대마왕 사례를 보여 줄 것이기에.

이 책 꼬박 이틀 동안 명절의 전야와 이후 초절정의 시기에 읽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느슨하고도 지릿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루해지지 않을 책을 고르기 위해였다지만, 정말이지 어른들이 모인 명절 즈음에 이 책을 읽은 건 좀 아이러니 같다. 왜냐 하면,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오는 (주로 50~60대 아주머니 친척들이 나누는) ‘뉘집 이야기’ 그것 말이다. 뉘집 자식 돈 있는 집으로 시집 장가 갔으나, 있는 집에 간 탓에 시댁 눈치에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매여 사는 이야기. 있는 집에 장가 든 탓에 처가 손에 쥐락펴락하는 청맹과니가 된 뉘집 아들이야기. 뉘집 땅 사둔 걸로 갑자가 돈벌었는데 하는 모양새가 무식한 졸부 못 벗어난다고 비꼬는 이야기, 어느메 집은 어떻게 땅을 사두었는데 요즘 한참 망해 먹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 누구네 집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고 그 집 어머니 떵떵거린다는, 어머니의 지위가 아들을 통해 나타난다는 의식의 반영된 듯한 튀틀린 이야기들 말이다. 돈에 관한 헤프닝들이다. 비뚤어진 가부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딸만 둘 나은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은연중에 아들을 바라, 그 며느리는 남편 몰래 뱃속 아이를 낙태시키고 나이 마흔에 세 번째아이(사내 아이)를 임신한다.) 이 소설 속의 내용과 어른들의 이야기가 몽롱하게 섞여드니 당최 이야기가 책이야기같고, 그게 그것 같고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경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돈에 의해 굴절되고 변형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애정이라 했나,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난 의사가 주인공이기도 하니, 세상사 이야기는 다 하는 셈.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도 조강지처 집나가고 딴 여자와 바람난 누구 이야기가 곧잘 등장하듯이. 


어른들의 이야기, 그 요점은 ‘돈이 제일이고, 세상을 호령한다’ 에만 있는 것이 아닐거다. 돈의 물신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이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를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하게 만드는가 하는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와 물신주의의 폐해 같은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부러 자본주의의 썩어빠질 노름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물들을 선별했다고 보여 진다.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는 평생을 치킨 만드는 일로 직업을 삼아 어렵게 자신의 치킨 가게를 연 치킨 박의 죽음에 관한 것.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돈으로 위세를 떠는 직업군과 자칭 재벌 집안의 인물들이다.

   

작가는 ‘뭘 자본주의 씩이나,’ 라고 말했다지. 후기를 보니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희망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하는 데도 돈과 권력의 과시가 앞서는 속물성, 돈에는 돈으로 갚음을 하는 영빈의 형의 처세 등등. 작가의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는 필력으로 그려낸 우리 생의 허위 의식은 글쎄,,,, 이것이 세태라면 어쩐지 너무너무 씁쓸해지는 것이다.


누구는 이러한 박완서의 글쓰기가 굳은 살 베어나가고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새살 차오르는 느낌을 잘 챙기는 것은 독자가 알아서 잘 할 나름인지, 나에겐 담배잎을 타놓은 물을 마신 듯, 입안 그득 쓴 느낌이 먼저이다. 구두를 신은 채, 가려운 발등을 긁는 것 같은 답답함도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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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박완서 선생의 책은 단숨에 읽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엄청난 파워거든요.
리뷰를 어쩜 이리 잘 쓰세요?^^

마냐 2005-02-1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정말 절묘하게 고르셨네요. 명절에 뉘집 며느리가 읽을 책으로는 딱 아닌가..싶은 생각이...저두 담 명절에 함 도전해볼까요? ^^;;;

줄리 2005-02-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얼렁 등재해 놔야 겠습니다. 박완서님의 이야기들 너무 좋아하는데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은 글 더 많이 남기셨으면 좋겠어요.

icaru 2005-02-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맞숨다... 진짜 잘 읽히는거 하나만으로 그랑프리깜 입니다!!! 박완서 님의 소설요.. 그나저나..로드무비 님...또또...과찬이십니다...! ^^;;

마냐 님...담 명절까지 반년 남았네요 ^^ 준비 기간 한번 넉넉하죠?
님 덕분으로 그 남자네 집 스타트~!! 아주 오래된 농담의 골짜기를 턴하여 지금사... <도시의 흉년>을 읽기 시작했는데요.....<도시의 흉년>은 무슨 주말 드라마 보는 기분이네요^^ 설마...이 작품을 갖고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로 방영했었든가...몰라요...


dsx 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님... 정말 아무리 소소하고 하찮은 이야기도 박완서님을 통해서 이야기로 나갈 때는... 이야기가 그렇게 맛깔스러워질 수가 없는거 같아요.... 박완서 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히 찾아 읽을 이유가 생기지요~ 저도 그분이 오래오래 사시고 오래오래 글 쓰실 수 있었음 한답니다~

2005-02-11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2-12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아! 그렇구나.... <도시의 흉년>드라마로 했었군요...
저....정말 놀랐어요...<도시의 흉년>에서 딸 수연이가 뒤로 아버지의 여자를 찾아가 그 집갓난아이와 여자를 챙기는 장면에서... 박순애가 아버지의 여자에게 잘 하는 드라마 한 장면이 스치는 거예요... 다른 것은 암것도 생각 안 나고....그 장면이 매치되면서... 이거 드라마로 만든 작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처음 갖었네요....
옛날 그 드라마의 그 장면을 보았을 때 그런 생각 들었었거든요... 아버지의 여자라면 얼굴을 쥐어뜯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까. 엄마를 비참하게 만드는 나쁜 존재인데... 너무 이해가 안 간다 함서요...

하지만 그 드라마가 이것을 원작으로 했으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박순애의 순박한 이미지와 이 소설 속의 위악하고 영리한 수연이와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kleinsusun 2005-02-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댁에서 책을 읽는 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정말 생생한 리뷰네요.
아줌마들이 모이면 다 그런 얘기를 하죠?
" 그집 딸 정말 시집 잘갔어. 인물이 있나, 학벌이 있나 , 그렇다고 집에 돈이 있나 어찌 그리 남자를 잘 잡았을까..."
" 그집 아들 사시 또 떨어졌어. 이제 공무원 시험 준비한데."
" 그집 며느리가 해온 밍크봤어?"
아...이런 대화 넘 싫어요. 이런 대화에 저도 소재로 끼어서
" 그집 딸은 왜 시집을 안간데?" 이런 말 들을까 두려워요.ㅋㅋ

icaru 2005-02-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요마자요...
저희 어머님은 친척분들 앞에서 아들 자식은 키울 때만 내아들이고, 결혼하면 며느리 아들 된다는 말을 참 많이 하시지요~ 전 그런 말 들으면 억울해서 혼자 꽁해져요... 내 말 잘 따라 주고 내 아들처럼 남편이 굴어 준 적이 있어야 말이죠...허참.....
그런데...저도 참...유난하지요... 그 속에 진탕 어울려 화기애애하게 있지 못하고... 책이나 짬짬이 보고 말이죠...ㅠ.ㅠ

2005-02-12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5-02-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어서 조금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금이라는 여자 애가 혀를 낼름거리는 모습을 능소화에 비유했던 글이지요. 그 때 처음으로 능소화를 알았다는... 그런데, 정말 재미있게, 손을 책에서 놓지 못할만큼 흥미롭게 읽긴 했어도 뒷맛이 씁쓸했었지요.

잉크냄새 2005-02-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 남자네 집 >과 더불어 설 연휴에 박완서님의 글을 읽으셨네요.^^ 연휴 첫날부터 연휴가 끝난후 휘몰아칠 리뷰 후폭풍을 예상했었죠. <- 이거 < 아주 썰렁한 농담 >이죠.^^

icaru 2005-02-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 님도 그랬군요... 잘 읽힌 것 치곤...오래남는 감동같은게...미진했다는...그 자리를 씁쓸함이 대신했죠~

아하하...잉크냄새님도...참...아주 객쩍은 농담이셔...
리뷰후폭풍은 몰라도..오늘 연휴월요병 후폭풍은 이거 아주 셉니다~!
 
중간지점의 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5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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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지점의 집’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이 쪽에도 속하고 저 쪽에도 속하는 자의 죽음.

사건 해결의 열쇠는 단연 그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으로써 죽음을 맞이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그는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인생을 동시에 살았음이 밝혀진다. 상류 사회의 아내와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사는 삶. 소박한 아내와 검소하게 사는 평범한 세일즈맨으로서의 삶.


나는 이 작품이 두 가지 점에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스콧의 아버지가 톰을 변호하는 공판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듯이, 이 작품도 소박한 아내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그의 오빠가 변호하는 공판이 나오는 중간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하였으니, 첫째 이 책이 법정 스릴러 풍이라는 것.

마지막 부분에서 범인을 지적해 내기 위해 사건의 현장에서 다시한번 상황을 재현하고 도둑이 제발 저려 스스로 ‘나 범인이요’ 하고 드러나게 만든다는 점.


퀀의 작품은 기발한 상황, 치밀한 구성, 동기의 의외성 스토리의 반전이 구비된 전형적인 본격 추리소설이 많다. 그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에 대해 페어플레이를 한다. 그는 독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에 대한 도전이기도 할 것이다. 독자가 범인을 알아맞힐 수 있다면 독자의 승리이며, 작가의 패배이다. 이것은 작가와 독자와의 두뇌 경쟁이며, 작가 엘러리 퀸이 추리 소설을 지적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작가는 이러한 추리 소설의 흥미를 끝까지 추구한 셈이다. 엘러리 퀸은 페어플레이를 강조한 나머지 작품 끝부분에 ‘막간의 도전’이라는 챕터를 만들어 독자에게 도전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큰소리로 독자들에게 짐작으로 맞추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과학적으로 게임을 해 주기 바란다고 외쳐 왔다. 그 편이 분명히 힘은 들지만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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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2-1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제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네요. 추리소설이면서 법정장면이 많이 나오는 그런 이야기를 제가 딱 좋아하거든요. 읽을 책이 많아지네요.

icaru 2005-02-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하!! 님도 추리소설이면서 법정 장면이 많이 나오는 그런 이야기 좋아하시는군요!!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논리를 펴거나, 생각 못한 것을 지적해 낼 때는 솜털이 전률하는 감동이 밀려 온다지요~!

kleinsusun 2005-02-1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참 이쁘네요.
독자를 속이려 하지 않는 태도.음...읽어 보고 싶어요.
독자나 시청자를 막판에 바보 만드는 작가들이 넘 많아용.

icaru 2005-02-1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라인 수선 님.....그죠~ 주홍빛은 정말 뭔가를 캐내고 싶게 만드는 열을 발산시키는 거 같아요.. 저 시리즈 색깔들이 다 그렇더라구요...
전 정통추리물을 좋더라구요...아가사 크리스티나 앨러리퀸처럼요..

미네르바 2005-02-1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 소설은 별로 안 읽어서 어떤 작가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님의 이 글을 읽으니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님의 독서분야는 참으로 방대하군요^^) 독자들에게 페어플레이를 한다는 점도 맘에 들고요. <앵무새 죽이기>의 법정 공판은 정말 가슴을 훈훈하게 해줬지요. 일단은 보관함에 넣어 봅니다. 땡스투도 누르고요^^

icaru 2005-02-1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 소설의 힘은 잡념이 많을 때도 읽힌다는 데 있는거 같아요...
무거운 주제의 책만 읽으란법만 없은까요..~ 내 시름은 제쳐두고 이렇게 속절없이 저 멀리 남의 살인사건에 빠져드는 몰입의 즐거움...히힛...그런 맛이죠..

sayonara 2005-02-2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등불', '10일간의 불가사의' 등 최근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몰아읽어서 이 작품을 구입하고도 잠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앞의 두 작품은 재미있기는 했지만 비극 시리즈에 비하면 그 재미가 좀 덜하더라구요.
부디 '중간지점의 집'이 앞의 두 작품보다는 더 재미있었으면... ^_^
하지만 이미 엘러리 퀸의 최고작들을 경험한 뒤라 충격은 덜하겠지요. ㅋㅋ

icaru 2005-02-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 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신의 등불', '10일간의 불가사의' 는 가급적 피해가야겠습니다... 님에게 이 책이 앞의 두 작품보단 재밌어얄텐데...저으기 걱정도 된다는...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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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도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다. 그 남자. 그 남자가 나에게 해 준 최고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구슬 같다고 했더랬다. 애인보다는 막내 여동생에게나 어울린 찬사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 “구슬 같은 여자”.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주 먼 외가 친척 벌 되는 그 남자. 누나이고, 먼 친척이다보니, 양쪽 집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어울림을 사랑이라 생각지 않았던. 그래서 그들의 로맨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설 듯 아릿함을 불러일으키는 연애담. 한 때 그들의 사랑은 ‘구슬’과 ‘솜털’이라 명명해얄까보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자전적 3부작의 3부 같은 느낌이다.

'그 많던 싱아는....'이 박완서의 자전소설 1부라면, 그 산이 거기 있었을까...“는 또 2부라면, 이 책은 2부에 이어 3부, 그러니까 미군 부대에 다니던 미스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의 시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굽이굽이의 내력을 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 앞의 두 작품과 이 작품 셋을 시리즈라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1, 2부에 비하면 한 개인의 가족사가 동시대의 가족사이던 실낱 같던 서사의 힘은 덜하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무섭다지만, 어찌 그 험난하게 살아왔던 그 시간들을 쉬이 잊을 수 있겠는가 싶게 1, 2부는 대서사시였다. 하지만 3부(내 맘대로 3부랜다.) 그 남자네 집은 전작에 비해 시대를 읽는 힘은 딸리는 것이다. 하지만 또 앞선 작품보다는 애틋하고 서정적이어서 읽는 맛이 애간장 녹이게 좋았던 것도 인정해야지 싶다.


앗, 이 작품에 시대를 말하는 키워드가 전작들에 비해 덜하다고 했지만,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실토해야겠다. 그녀가 말하는 개인사 속에 슬몃슬몃 끼어드는 시대의 아픈 부산물. 앳되고 수줍고 소박한 티가 물씬하던 여고생 춘희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보게 된다. 홀어머니에 동생이 줄줄이 딸린 남편의 이웃집 춘희를 자기의 후임으로 미군부대에 취업시켜 주었지만 그녀는 어느덧 양공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살러 가고 동생들을 모두 미국으로 이민시켜 버리는 춘희. 그리고 베트남 전쟁 후에 그곳 도로 건설 인부로 파견을 나갔다가 고엽제 피해를 본 사촌 조카 광수.


이 작품의 끝부분에 춘희가 자기네 형제 자매의 이민사를 쫘악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슬퍼졌다. 미국 땅에서도 떵떵거리며 일류 학교 들어가 잘 산다는 요점이었지만, 내막에는 전쟁과 가난이 인류 최대의 악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어설프게... 그리고 아이들 조기 유학으로 따라온 엄마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명품 사족 못쓰고 부동산 투기 과외 공부 이야기 등등.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천박함을 치떨리게 묘사하는 부분이 여기에도 있다. 저것이 실상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세상이 속물의 키워드로 읽히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뒷맛이 이리도 씁쓸한 것은 우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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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11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설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님은 참 부지런하시군요.
시댁 가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다니......
박완서 선생의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icaru 2005-02-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속삭이신 님... 말씀대로 바로잡았습니다!!
바른 말 정확한 말!!! 경롓!!

로드무비 님.. 박완서 님은 선생이라는 칭호가 무람없네요~ 진짜...
님도... 설 잘 쇠셨어요?
저야모...여전히 때마다 시댁에선 어설프게..동분서주 한다지요...^^

플레져 2005-02-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에 글 한 줄 읽지 못했어요, 저는요...ㅠㅠ
혼자 있을 때만 책 읽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할텐데요. 부럽슴다!!!
저두 이 책 읽어보고파요. 어찌어찌 생길 것 같아서..추천만 살포시 눌러요 ^^;;

마냐 2005-02-1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추천 살포시.....참으로.....다른 리뷰들. 제 눈에 보이는 것과 님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들이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 다르게 읽기...참으로 흥미롭슴다..
암튼, 명절 포함해 일주일째...무쟈게 재미난 책 한권을 끙끙대며 보고 있으니...독서않고 사는 계절임다...ㅋㅋ

2005-02-11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LLING & RAMPAL -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
클로드 볼링 (Claude Bolling) 외 연주 / 굿인터내셔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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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귀가 있다면 누구나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바이런


이 세상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음악의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클로드 볼링의 피아노와 장 피에르 랑팔의 플룻 선율이 만난 이 재즈 트리오 또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들만의 색깔과 스타일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마치 잔잔한 물이 흘러가는 질서를 파악하고 그것의 시각적인 모양새를 청각적인 음악으로 들려 주는 듯한.


'센티멘탈'은 귀에 감겨드는 느낌이 이루말할 수 없이 감미롭다. 밝고도 사뭇 관조적인 이 곡이 왜 '센티멘탈'이라 붙여졌는지~ 진짜, 알쏭달쏭하다.

앨범 자켓을 읽어보니, 주로 끌로드 볼링 위주의 헌사를 남겼다. 그의 출생, 재즈피아노의 신동으로 알려짐, 각종 콩클의 수상 이력. 등

나 같은 경우 장 피에르 랑팔의 플룻도 위상이 크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앨범 제목마저도 '클로드 볼링의...' 로 되어 있어, 앨범을 검색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오륙년전 센티멘탈이라는 제목 하나만 가지고, 이 음반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장 피에르 랑팔’과 ‘센티멘탈’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였다. 혹, 센티멘탈이라는 제목을 잘못 알고 있는건가 싶어, 랑팔의 플룻앨범을 여러 샀었는데 센티멘탈은 없고, 죄다 바하의 곡을 플룻으로 연주한 것들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생각지도 않은데서 바하의 플룻곡을 만날 수 있어 나름으론 좋았다. 그리고 곧 센티멘탈은 잊었다.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날 음악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자 하니, 이 앨범엔 센티멘탈만 좋은 게 아니다. 귀에 익은 음악들이 제법이다.


지금은 전혀 그게 아니라 그립기만한, 음...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귀에 꽂힌 음악이 있으면 동네의 음반 가게를 샅샅이 뒤지고 아니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안되면 기차도 타고 멀리 원하던 것을 찾아 음반 순례를 다니던 호시절이.

책을 일삼아 읽는 취미가 생긴 건 사실 최근 일이년 사이의 일이고, 오랜 시절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음반 찾아 삼만리였던 거다. 변변한 로션 하나 사바르는 것도 벌벌 떨던(샘플로 주는 게 이렇게 숱한데 멀쩡한 큰 통에 들은 걸 왜 사냐구...,) 나였지만, 음반을 살 때는 살짝 맛이 갔었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데 돈에 개념이 있었을라고. 음. 그 당시에는 강남과 종각 쪽에 타워레코드가 2~3층 이상으로 매장을 꾸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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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개월만에 음반리뷰를 올리시는군요. 플룻은 단독으로 연주하는 곡이 많지 않은가봐요. 대부분 협주곡 형식이더만요. 게다 바흐의 소나타가 보편적으로 쓰이더라구요. 매우 서정적이고 부드럽고 감미롭고..흘..아릅답죠. 그 분야에선 상관 없지만 센티멘탈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센티멘탈 워크', 라고 또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도 생각나요. 근데 찾다찾다 음반이 없으면 꽤 허탈하지 않았어요? 복순 아짐두 발품 많이 팔으셨구나..전 좀 편집증 같은 증세가 있긴 한데 흥분만 잘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또 구하고 싶은 음반을 잊어버리게 돼서..으흐흐..저도 마니아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잘 안 돼요!복순 아짐, 우리 마니아 해요! 아쒸..공공근로로 얼마나 번다고 마니아라니..정신 차리자..

icaru 2005-02-0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개월만이라...그러네요...
님은 마니아 맞아요...꾸준히 신보를 접하시잖나요~ 전...예전 것만 듣네요...귀에 익은 것만요..

2005-02-0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5-02-0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님은 음반 찾아 삼만리 했군요. 저도 대학교 때 잠깐 그랬어요. 그 때 음반들이 지금은 창고 속에 그냥 방치되어 있네요. 요즘은 음악을 듣기보다는(아니, 귀에 익은 음악들은 여전히 좋아하지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귀가 있다면 누구나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바이런의 이 글을 읽으니 내가 참 메마르게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드네요. 모든 사물에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전 소음처럼 들리고 있으니... 그런데 자연의 소리는 예외인 듯 싶네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새소리 등은 여전히 음악처럼 들리니까요^^

잉크냄새 2005-02-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런의 글에 눈이 확 꽂히네요. 음...전 음반에 대한 그런 애정을 가져보지 못하고 산것 같네요. 음악, 있으면 듣고 없으면 안듣는 스타일이라서....근데, 막걸리집의 가야금 소리에는 혹~ 하는 필을 받곤 합니다.^^

icaru 2005-02-0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 플룻까지...별거별거 다 배우셨었네요~ 5개월 정도 배우면 무슨 곡을 연주할 수 있는가요? 히야~

미네르바 님 ^^ 님이 그 말씀하시니...파도소리 듣고 파요~ 해변에서 갯돌을 마지막으로 주워본 게 언제였든가...아흐.. 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음악은 스피커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한창 나이에 너무 이어폰으로 크게 음악을 들어서... 지금 가는귀가 먹은듯해요... ㅠ.ㅜ

잉크냄새님.... 막걸리집의 가야금 소리라!! 이 국면에서 님이 자주 찾으시는 주가가...두둥....

내가없는 이 안 2005-02-0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끌로드 볼링의 자켓은 몇 개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네요. 내 돈 내고 사다가 들은 건 기억해도 동생 것을 빌려다 들은 건 죽어도 기억을 못하는. ^^ 그런데 사람 귀가 참 이상해요. 클래식만 귀에 꽂다 보면 가끔 차 안에서 대중가요나 뽕짝 메들리를 틀어놓을 때 귀에 거칠거칠하게 들리데요. 그것도 사실 이것저것 듣지 못하는 귀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겠지만...

2005-02-02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02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02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2-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 음...제말이요~
요즘...뭔바람이 불었는가...예전에 듣던 음반들을 듣고 있는데...이것저것 듣다가...새삼스레 트레비스라는 그룹이 들려 주는 음악에...절절히 빠져 지낸답니다... 보컬의 '꺾는 음'이 이리도 애잔하게 들리다니... 제가 나이를 먹는건가요...귀만 말랑말랑해진건가요, ,,,

2005-02-05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