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나와도 일면식이 있는 남편의 절친한 회사 동료 중에 아직 싱글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최근 같은 회사 여사원과 사내 커플이 되었다고 했고, 여자 분과 인사 겸해서 넷이서 약속을 잡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 있으니 나만 여자 분을 초면으로 뵈었고, 셋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함께 했을터다.

그 쪽 여자 분과도 어지간히 말을 트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여자 분이 내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유머러스한 남편 분과 함께 사니 참 좋으시겠어요.”


이 말은 분명 남편에 대한 칭찬이고, 더불어 내게도 퍽 기분 좋게 들려야 할 발언일텐데, 난 일순 기분이 묘했다. 내가 그동안 딴 사람이랑 함께 살았나.

1차적으로 든 생각은 ‘회사 여사원들 앞에선 꽤나 재밌는 사람으로 통하는 모양이네만, 내 앞에서는 왜 입에 지퍼를 단 거지?’

욱하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2차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을 정리하였다.

‘고된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일 거고, 나처럼 편한 식구가 아닌, 남 앞에서는 대외적 이미지도 있고 하니, 자기 관리를 잘한 거라고 할 수 있을거야. 좋은 거야. 딴지걸지 말자!’


남편은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시시때때로, 입에 자크를 달 때가 있다. 집에 들어와서는 쓰다달다 아무 말도 없고, 되도록이면 일찌감치 꿈나라에 빠지려 침대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이다.

걱정이 되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으려 하면, 대답은 ‘아무 일도 없다’가 메아리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가 질문을 하는 방식이 원하는 대답을 도출해 내기엔 꽤나 서투른 무엇이었나 싶게 말이다..... 얼굴에다가는 ‘아무 일 분명 있다.’ 이렇게 써 놓고서는.


그럴 때마다 무지 답답했었다. 이 책에서 보니, 그것은 남자들이 자기의 동굴로 기어들어간 거였다.   

남자들이 동굴을 찾고 싶을 때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할 때, 기분이 언짢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라고, 또는 이제 막 사랑에 빠져서 자기 자신마저 잃어간다고 느낄 때 상대와 거리를 두기 위해 이러는 수도 있다고는 한다.


남자들이 이럴 때는 스스로 동굴에서 나올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남자가 동굴 속에 있는 동안에 상할대로 상한 여자의 마음에 있다. 동굴에서 나온 남자는 그 동안의 냉냉함을 만회해 주기 위해 평소보다 엄청 여자에게 잘 해 준다고는 하는데....


이 책을 1990년대 사랑학의 지침서라고들 소개했다. 그건 맞다. 실제 상황의 모든 인생 국면에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 의사 소통을 하며, 그에 대한 반응은 또한 얼마나 다른지를 정말 너무도 자세히 조목조목 보여 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어 반복이지 않나 하는 느낌도 없잖다. 매 다른 상황이라 하지만, 전달하는 요지도 내 눈에는 다 같아만 보이니 말이다.

 

이 책은 특별히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혹은 이제 막 함께 살기 시작한 신혼 부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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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6-0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생각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다른 것일까, 아니면 살면서 달라지는 것일까 생각해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키워진다고도 하잖아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 없는 숲속에서 사람들과 떨어져 사는 남녀가 있다면 그들은 이 책의 남녀와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 저도 이 책을 오래전에 읽었는데 언젠가는 누군가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네요.

갈대 2004-06-0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내용의 반복이 너무 많아서 확 줄이면 분량을 반으로 만들 수 있는 책이죠. 그래도 한 번쯤 읽기엔 괜찮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icaru 2004-06-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 님....맞습니다.... 전... 여자지만... 제 스트레스 푸는 방식도...동굴로 기어들어가기 랍니다...^^ 고정 관념의 숲 속에서.. 살지 않았다면...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으리라...

icaru 2004-06-04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 님... 맞아요....내말이 그말이유... 반복이 거듭거듭이랄까요.....
 


 

 

 

 

 

 

 

 

 

 

 

제 소유의 떡이 이거 밖에 없어서 이거라두 대접하믄..맛나게 자셔 주실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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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6-0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화전이라니! 너무 황홀해요. 이거 정말 제가 먹고 싶었던 건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아시고...고마워요. 얼른 꿀 가져와 먹어야지!^^

비로그인 2004-06-0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꿀 가지런 간사이 제가 먼저 "우걱우걱~~~얌얌 쩝쩝 ~" 맛있다. 스텔라님한테 맞을라 도망가야지~~

stella.K 2004-06-0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 게 서요! 복순 언니가 절 위해서 만들어 주신 거라구요. 잉~ 몰라, 몰라! 복순 언니, 저 어떡해요???

panda78 2004-06-0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늘 스텔라님이 떡 드실 일이 있으신가요? 저도 좀 나눠 주세요.. ^^*

stella.K 2004-06-0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그러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폭스님한테 도둑 맞았답니다. 복순 언니께서 이주의 마이 리뷰에 당선되서 떡돌이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당연히 받을려고 했거든요. 흑흑.

icaru 2004-06-03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사태를 맞고 나서 느낀 것....스텔라 님과 폭스바겐 님은 상당한 떡보들이었더랬다....그와중에 판다 님..못 드셨나요?? 화전에는 떡고물이랄게 없으니...우짜요?

물만두 2004-06-0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으로는 안됩니다. 이벤트 하셔야죠... 냄새도 못 맡는 구만...

stella.K 2004-06-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icaru 2004-06-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억...이벤트라굽쇼~~!! 일단...다른 님들께선...어떻게 이벤트를 하시는지.. 답사 좀 밟아야갰어용,,

hanicare 2004-06-0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라색과 초록.서늘한 색채 배합이군요.
내 눈엔 왜 슬퍼보이는 색인지 모르겠네요.먹기엔 아까워라~~

icaru 2004-06-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 케어 님은 슬픔을 포착해 내는 데에 기민하십니당..그 대상이 설령 먹을 것인지언정...

비로그인 2004-06-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너무 늦었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결국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무슨 일인지 이 글 속의 '나'인 롤랑 기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흥신소에서 위트라는 사내를 도와 일을 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신상의 전부다. 하지만 위트도 흥신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고향인 니스로 떠난다. 이제 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그가 ‘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은 것과 남겼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면서 -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건넨 과자통이나 낡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물었다.

“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기’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한 감동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 망각의 무(無 )로 변해갈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작품은 마치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언뜻 지나쳐본 장면, 창에서 내려다본 낯익은 거리의 풍경,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서 포착하는 과거 한 때의 체험,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들이 무채색의 그림처럼 사람을 매료시킨다. 신문지상에 나왔던 모 작가의 말처럼, 참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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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5-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파트릭 모디아노를 좋아했다가 도라 부르더를 읽고 실망해서 지금 다른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icaru 2004-05-3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책 날개를 보니, 이 작가의 그 뭐랄까......어렴풋한 기억의 실루엣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이 책과 유사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도라 브루더>를 꼽았던데...말이죠..
<외곽도로>는 좀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 약력을 보니, 상복은 많은 작가로구나 싶네요...

호밀밭 2004-05-3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런 분위기의 책, 너무 좋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참 큰 공포라는 걸 느끼게 해 줘요. <도라 브루더>나 <외곽 도로>는 읽지 못했네요.

icaru 2004-05-3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저두 이런 분위기의 책을 좋아하죠...뉴욕 삼부작처럼요..ㅋㅋ
<도라 브루더>나 <외곽 도로>는 저도 읽지를 못했네요... 이 작가의 작품은 이게 처음이죠~!

물만두 2004-05-3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라 부르더를 싫어하는 이유는 요즘의 이팔관계와 상관있습니다. 제가 감정적이라서요...

icaru 2004-05-3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낭.. 그런 역사적인 맥락의 것이 나오는군요..음... 저도 감정적인 편이라...<도라 부르더>를 잘못 읽었다간 자칫...혈압이 오르거나 빈정이 상할 수도 있겠구뇽...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2001년 6월에 초판 발행된 책이다. 인문학 자연과학을 망라, 지난 20세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니까, 지금 읽기엔 뒤늦은 감은 없는 것인지 약간의 우려를 하였다. 그러나 그런 거 없었다.

퍽 재미나게 읽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딱이 구성이 안 잡힌다. 대담자를 쌍쌍이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러면서 쌍쌍이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는 나.

이윤기와 그의 딸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맨 앞에 나온다. 딸이 그에게 왜 신화를 연구하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대답한다. 사람의 현상에 관심이 있는 내가 여기 안 빠지겠니? 그리고 또 말한다. 예술은, 가늘디 가늘면서도 한없이 절실한 떨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최창조와 탁석산이 만나서 풍수 이야기로 물고를 튼다. 그런데 풍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둘을 한 쌍의 대담자로 정한 편집자의 의도가 하 수상타. 최창조와 탁석산은 사람의 기질상 서로 많이 다른 거 같다. 최창조는 자신의 실력과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에 비해 무척 조용한 기질의 사람이고, 탁석산은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인 듯하다. (그 만큼 확고한 지식 기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는 잘 모르겠공.) 그래서 대화가 주로 탁석산이 최창조에게 “최 선생님 좀 강하게 나가십시오” 하는 식으로 발언하고, 그럼 최창조는 웃으면서 “ 제가 싸움을 견디질 못해서.... 탁 선생님이 풍수하셨으면 제가 좋은 동지를 얻는건데” 하는 식이다. 재밌다.

상도 저자 최인호와 연봉 24억원 받는 CEO 윤윤수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라나 뭐라나.... 그래서일까. 박진감 있는 갑논을박의 논의는 없고, 서로의 이야기에 살을 보태고 부족한 걸 매꿔 주는 등 사이좋으면서도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김화영과 이문열의 대담이 아닌가 한다. 이 대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김미현의 공로도 조금 있고 말이다. 김화영은 이문열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교훈주의를 제대로 꼬집어 들고 있다. ‘제 돈 주고 책 사서 읽으면서 꾸중 듣고 싶어하는 독자가 어딨겠어요?’ 라는 요지가 김화영이 날린 비수다.   

함인희와 이숙경의 대화도 귀기울여 들어볼 만했다. 재미도 있었고. 이 세상의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어머니와 자식,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조명하고 있는 글이다.

다음 꼭지인 알라딘 서점의 주인 조유식과 헌책방 서점의 주인 노동환의 대화는 헌책을 좋아하고, 새책은 주로 알라딘 서점에서 산다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더더욱 흥미로운 장이었다.  

이 대화를 읽으면 대략의 알라딘 서점의 역사를 알 수 있고, 헌책방의 시스템도 주어 들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 서점과 헌책 서점이 서로 등진 적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운명이 함께 굴러간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번 더 되풀이하여 꼼꼼히 읽을 가치가  있는 꼭지는 김우창과 김상환의 대담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우창은 6.25 전후에 대학을 다녔고, 자연 여건이 열악하여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게 김우창 세대가 번역해 들여온 서양 학문을 바탕으로 후학들이 비교적 쉽게 학업을 이뤘을 거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고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둘 것인가 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김우창은 이 시점에서 등소평이 얘기를 인용한다.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나 쥐 잡는 것이 고양이지 그게 어디서 온 고양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서양의 것 그만두고 우리 것으로 자생해야 한다는 자생 담론에 대한 개인적 소견일거다. 우리 현실을 움직이고 있는 세력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동양의 것만을 강조하기란 적절치 않기에.  

마지막으로 강유원과 최장집의 대담이 나온다. 씨네21에서 회사원이라는 직함으로 글을 쓰고 있는 강유원이라,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질문들과 멘트들을 할지가 궁금해서 또 귀기울여 들었다. 이 대화는 주로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고,  정치가 문학과 어떻게 공유될 수 있을까 하는 여지를 엿보게 하는 꼭지이기도 했다. 


이렇게 26인의 대화를 수박 겉핡기 식으로 훑었다. 이 책의 뒷부분을 보니 이 책이 부박한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희망한다고 되어 있다. 글쎄...., 이념 과잉의 욕망 과잉의 이 시대를 지혜롭게 건너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이들의 입을 통해 즐겁고 따뜻하면서도 깊이를 끌어올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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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벌써 몇년 전부터 읽는다 읽는다 해 놓고 못 읽고 있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것 같군요.^^

icaru 2004-05-3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에...다방면으로 시야를 넓혀 주는 책인 것 같아요....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친한 벗이 말하기를, 자신이 살아온 나날 중에서 들었던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고등 학교 다닐 적 어느 선생님의 우연한 다음과 같은 한마디였다고 한다.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되거나 그런 인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시는 인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직한 농사꾼이셨지만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시골에서 농사를 접고 서울로 상경하시었었다. 배움이 없고, 가진 기술이 없어 공사장 막일로 아내와 자식들을 건사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사회에서 패배한 낙오자 정도로 일갈하는 선생님에게 친구는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기분이 퍽 가라앉음을 느꼈다. 이 글은 전태일 자신인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에 대해 고(告)함이다. 전태일은 독자인 나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태일에게, 그리고 이 평전을 기술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 조영래의 사랑과 투쟁과 지혜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또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쉽게 사로잡혀 있는 약한 자인 나에게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눌린자는 계속 눌리어 살아가는가?

 

여기 고통 받는 한 사람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고통에 찬 현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 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 정신의 싹은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전태일이 위대한 것은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든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한 과거를 원망한다면 그 과거는 너의 영역에서 영원한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해주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장기표 씨의 후기에서 “인간이 명석하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부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태일을 보면서 민주화를 생각한다. 민주화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 조영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못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 영화 같은 데서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에 시달리며 묵묵히 중노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어째서 저 많은 노예들이 불과 몇몇의 감독자들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 본다. 인간 사회가 형성된 이래 이러한 실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사회적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노예 의식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노예 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 문제일 것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민중 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것일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재단사 일자리에서 쫓겨난 전태일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인부를 보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페되어 껍질을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 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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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2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의 숭고한 의미를 내포한 책들은 함부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죠.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사회의 모든 가치관에 스스로를 기계 부속인양 맞추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의미를 주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4-05-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에...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전..이런 책의 리뷰는 밑줄긋기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네요....내내 그러네요~!

설박사 2004-05-2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이 20대 초반에 자살을 했지요? 저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구조적 부조리함에 대해서 많이 느끼지만... 글쎄요... 제 생각에는 전태일이 살아있었으면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hanicare 2004-05-2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 평전과 노자의 도덕경.두 권 모두 읽고 난 뒤의 세상이
읽기 전의 세상과 달라져 버렸던 책이었고, 뭐라 아직도 정리할 수 없는 책이군요.아마도 용기를 내어 쓰신 리뷰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icaru 2004-05-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설박사님...음....님은 기독교인이셔서(맞죠?), 죽음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법합니다...아..음..전태일의 죽음은 일단 개인적인 울분의 자살이 아니었구요....해도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박정희 정권을 존속시키려는 선거철을 당하여.....전태일이 제시하는 근로기준법에 맞게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고 기업주들이 거짓 약속을 했지요....그래서...전태일은 궐기를 보류하기도 했었어요...하지만..선거가 끝나고 박정희가 당선되자 언제 그런 약속이나 했냐는듯...기업주들은 돌변했죠....그래서...전태일은 목숨을 내건 시위를 했던 거지요...목숨을 내걸었기에...그나마 오늘날처럼 처우가 약간 개선되었을듯해요..

icaru 2004-05-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압니다....예...저도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이 평전이 제 마음을 어지간히도 들쑤시더군요....님도 아직 뭐라 정리를 못하고 계시다고요....아..님의 말씀처럼...저 또한 책에서 받은 감동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도 못하네요....이 내용 정리...곧 '리뷰'라는게요...^*

2004-05-30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5-3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언니님, 이 책 참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전히 전 그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조정래님, 전태일님, 읽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더군요. 님의 리뷰, 그리고 고등학교 적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

icaru 2004-05-3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배혜경 님께서 친히(?) 코멘트 남겨 주셔서..더없이 기쁘네요 ^^
아...저도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여 본답니다....

책읽는나무 2004-06-0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책들은 가슴이 아프고 숙연해지는 그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것이 참 어려운데...님의 리뷰 멋지군요!!.....님의 그가슴아픈 느낌이 바로 전해지는듯합니다......ㅡ.ㅡ;;
물론 전태일의 죽음을 다시 한번더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기도 하구요!!...요즘은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되지 못하는것이 아주 그냥 체기가 생긴것같이 답답할따름입니다....ㅠ.ㅠ
리뷰 잘읽고 갑니다.........^^

icaru 2004-06-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책읽는 나무 님...좋게 읽어 주시니...정말 기뻐요^^
너무 인용만 해댄 것 같아, 조금 부족한 글이지 않나 싶었지요..

설박사 2004-06-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에 당선되셨네요. ^^ 축하드립니다.

icaru 2004-06-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고마워유~! 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