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사과일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3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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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말 대단한 책이네요 !!! 한 페이지 장면을 가지고 40분 이상 아이와 수다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책속의 유머 코드라는 게 나라의 문화마다 다를 수 있는데, 보편성을 갖추고 있어, 번역도 센스있게 잘 된 책인듯하고, 보기 드물게 엄마를 감동시킨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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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1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뉴스에는 둔감하게 살고 있다보니, 인터넷 매체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가 듣게 된 이야기이다. 듣다보니, 학원가기 싫은 날(?) 이라는 문제의 작품만 콕 꼬집어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던데, 시집의 다른 수록 작품도 살펴보고 판단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삽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꼈다.

피흘리고 쓰러져 있는 엄마 옆에서 인체도감속에나 나오는 심장모형 비스무리한 것을 뜯어먹으며 치켜뜬 눈을 하고 뒤돌아보는 여자아이모습이라니....

 

어릴적에 읽었던 귀짤린 토끼나 푸른수염이야기에서 아내들을 살해하고 한방에 몰아넣는 잔혹동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귀기와 혐오를  이 동시에서 느끼는 것은 작품을 보조하고 호흡해야 하는 외적인 것들 그러니까, 삽화가 지나치게 선정적인게 한몫 하고 있는 듯하다.

 

어릴적 장화홍련전이 지금 생각해도 무서웠던 것은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녹음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음산한 효과음 때문이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서 ...

 

같이 첨부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칼테콧 수상작 최고의 1위에 빛나는 동화책인데, 저 책에도 나온다.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하고 고함을 지르는 엄마에게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거야!"

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데....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는 순간 헉, 단말마를 질렀는데, 아이들은 키득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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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5-05-10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런 삽화를 넣은 건 출판사의 잘못같아요. 삽화의 중요성을 간과한듯요.

icaru 2015-05-13 09:55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되게되게 오랜만여! 반가워라잉~
우리 아들둥이들 이제 3학년되었네요 ^^
그죠? 시 삽화가 픽션 삽화와 달리 함축해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거라는 건 알지만, 중요한 지점을 완전 망각했던듯 싶어요... 다른 시화는 모르겠고, 그 작품에서만 보건대요~

북극곰 2015-05-1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오랜만이에요. ^^ 아들들 3학년되니 교과내용도 훅 점프하고 왠지 안스럽네요. 2월에 이사했는데 이학굔 중간 기말시험도 보고 뭔가 살벌하네요. -,.-

icaru 2015-05-13 16:35   좋아요 0 | URL
옷! 중간기말시험을 본다구요? 와우,, 빡센느낌!! 확 오네요~
하기는 아이학교도 중간기말시험만 없다뿐, 단원 끝날 때마다 단원평가를 보는데, 너무 자주 돌아오니까, 아이나 저나 긴장감이 전혀 없어요.
내일은 과학시험을 모레는 사회시험을 본다던데,, 보는둥만둥인듯 대처하는 자세가 영 ㅋ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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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5 01:52



 

 

조르바 왈,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에 온전히 빠져 보려 하는데... ‘ 모든 여자는 화냥것들이다 ! 여자는 그저 보호해 주어야 할 약한 존재 지나지 않는다! ’는 조르바의 언사를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면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여성주의적인 잣대의 렌즈를 저만치 던져 두고 읽어야 속에서 덜 걸리적 거렸던 것.

여자에게 뿐일까, 조르바는 말한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사람이다. 조르바가 애초부터 이렇게 조국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터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위해 비정규 전투 요원 활동을 하다가, 불가리아 비정규군 신부를 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일 후, 조르바는 거리에서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 아이들이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신부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작중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 했던 것을, 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고스란히 살아왔던 것.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웃기지 말란다. 펜대 운전수(작중 ‘나’) 뜨끔할 소리다. 그래서 작중 ‘나’는 조르바를 더 존경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람이다. ‘나’가 문자와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 갖혀 있는 백면서생 의 위치에 점하고 착찹해하는 존재였다면, 조르바가 있는 지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각하는 상태였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물리적 변화,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를 넘어서, 포도주가 인체에 들어가서 사랑을 하게 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가 더 중요한,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 넘으려는 존재로 그려진 조르바였기에, 펜대 운전수 ‘나’도 독자인 이 아줌씨도 조르바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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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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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이 책을 읽기 전, <그 남자네 집>을 단숨에 재미나게 읽어냈으니, 이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도 그래질 것 같았다. 멀리 사는 친척, 애어른 할 것 없이 왁짜하게 모여 득시글한 시댁에서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해대는 짬짬이, 부엌데기가 잠시 일손 놓을 때의 소일거리로 하는 십자수 놓듯, 그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골랐다. 이 판국에 다비드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나 베르나르의 <나는 걷는다2>를 읽는 것은 망쪼고 분명 산만한 읽기의 대마왕 사례를 보여 줄 것이기에.

이 책 꼬박 이틀 동안 명절의 전야와 이후 초절정의 시기에 읽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느슨하고도 지릿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루해지지 않을 책을 고르기 위해였다지만, 정말이지 어른들이 모인 명절 즈음에 이 책을 읽은 건 좀 아이러니 같다. 왜냐 하면,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오는 (주로 50~60대 아주머니 친척들이 나누는) ‘뉘집 이야기’ 그것 말이다. 뉘집 자식 돈 있는 집으로 시집 장가 갔으나, 있는 집에 간 탓에 시댁 눈치에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매여 사는 이야기. 있는 집에 장가 든 탓에 처가 손에 쥐락펴락하는 청맹과니가 된 뉘집 아들이야기. 뉘집 땅 사둔 걸로 갑자가 돈벌었는데 하는 모양새가 무식한 졸부 못 벗어난다고 비꼬는 이야기, 어느메 집은 어떻게 땅을 사두었는데 요즘 한참 망해 먹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 누구네 집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고 그 집 어머니 떵떵거린다는, 어머니의 지위가 아들을 통해 나타난다는 의식의 반영된 듯한 튀틀린 이야기들 말이다. 돈에 관한 헤프닝들이다. 비뚤어진 가부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딸만 둘 나은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은연중에 아들을 바라, 그 며느리는 남편 몰래 뱃속 아이를 낙태시키고 나이 마흔에 세 번째아이(사내 아이)를 임신한다.) 이 소설 속의 내용과 어른들의 이야기가 몽롱하게 섞여드니 당최 이야기가 책이야기같고, 그게 그것 같고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경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돈에 의해 굴절되고 변형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을 이야기한다. 사랑과 애정이라 했나,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난 의사가 주인공이기도 하니, 세상사 이야기는 다 하는 셈.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도 조강지처 집나가고 딴 여자와 바람난 누구 이야기가 곧잘 등장하듯이. 


어른들의 이야기, 그 요점은 ‘돈이 제일이고, 세상을 호령한다’ 에만 있는 것이 아닐거다. 돈의 물신성이나 가부장적 이념이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를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하게 만드는가 하는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와 물신주의의 폐해 같은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부러 자본주의의 썩어빠질 노름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물들을 선별했다고 보여 진다.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는 평생을 치킨 만드는 일로 직업을 삼아 어렵게 자신의 치킨 가게를 연 치킨 박의 죽음에 관한 것.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돈으로 위세를 떠는 직업군과 자칭 재벌 집안의 인물들이다.

   

작가는 ‘뭘 자본주의 씩이나,’ 라고 말했다지. 후기를 보니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희망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하는 데도 돈과 권력의 과시가 앞서는 속물성, 돈에는 돈으로 갚음을 하는 영빈의 형의 처세 등등. 작가의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는 필력으로 그려낸 우리 생의 허위 의식은 글쎄,,,, 이것이 세태라면 어쩐지 너무너무 씁쓸해지는 것이다.


누구는 이러한 박완서의 글쓰기가 굳은 살 베어나가고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새살 차오르는 느낌을 잘 챙기는 것은 독자가 알아서 잘 할 나름인지, 나에겐 담배잎을 타놓은 물을 마신 듯, 입안 그득 쓴 느낌이 먼저이다. 구두를 신은 채, 가려운 발등을 긁는 것 같은 답답함도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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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5-05-2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판으로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나중에 개정판으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편안한 오후되세요.^^
 
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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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20:23



 

 


스푸트니크 여인에서 넘실대는 농밀한 언어의 바다에 빠져서 술 취한 사람처럼, 뼈가 노골노골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취하게 만들더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뭐라 딱이 말로 답하긴 어렵다. 음.....굳이 이 소설 속의 맛깔나는 문장을 맛보기로 들자면,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이상한 거야.-(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너 보기와 달리 특이한 데가 있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하루키의 이 문장으로 점잖게 대구해 줄 것이다’)라거나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지적(知的) 난민처럼 바닥에 쌓여 있다.’ 같은 것.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아도 도수높은 알콜이 혈관으로 스미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아 나는 확실히 표현이 딸린다.

스미레는 소설 쓰는 일에 골몰해 있는 22살의 여자였다. 작중 ‘나’는 스미레를 좋아, 아니 사랑했지만, 스미레는 ‘나’를 좋아했는지 몰라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성욕을 몰랐다. 그러던 그녀가 자기보다 17세 연상의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마음의 교감을 이루었다. 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미레의 동성애 성향이 아니다.
스미레의 꿈, 그러니까 스미레가 결국 만족할 만한 소설을 완성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스미레는 글을 쓰고 또 썼지만...아직 미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경험과 시간이었다. 그녀가 쓴 문장에는 독특한 신선미가 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뭔가 중요한 사실을 정직하게 표현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적어도 그녀는 누군가의 모조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끝만으로 잔재주를 부려 완성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소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주술적인 세계가 필요하다. 그녀는 17세 연상의 여인과 나누는 즐거운 시간들과 상처가 된 경험들 이 모두는 사실 주술적인 힘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소설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에도 이모든 아픈 경험과 시련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소설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이 쪽 세상과 저 쪽 세상을 사이에 둔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는 이쪽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래는 저 쪽 세상의 출신인 것 같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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