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미안하지만, 신경 말단을 노출시키지 않는 책은 전혀 읽지 못한다. "

라고 미국의 어떤 작가가 고백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신경 말단을 노출시킨 책이나 글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은 책을 전혀 못 읽는 것은 아니니.

 

그래서 시간이 있음에도 책을 읽을 수 없는 정신 상태가 되어버리면 - 챙길 게 많은 신학기, 사람을 신경과민하고도 산만하게 만드는 특정 업무를 하는 기간-  책을 읽지 않으면 그만이련만, 그럼에도 뭔가를 읽고자 한다면, 이렇게 신경 말단을 노출한 책이나 글을 읽으면 좀 읽히는 것 같다.

'것 같다'라며 단정을 유보하는 것은, 사람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는 것일 뿐,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우니.

 

 

 

 

 

 

요즘 이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금욕적이지는 않지만, 높은 형태의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건조해보이는 작가의 신경 말단을 보고 있는데, 이이의 특징은 세련되었다는 것? 센티멘탈하지는 않지만, 계속계속 읽게 하는 재능. 역시나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모양이다.

 

 

 

 

 

 

 

 

책도 그다지 읽지 않고, 기록도 하지 않는 요몇주 동안 몸무게가 줄었다.

동분서주 들락달락 위로아래로 움직임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본래 관성의 법칙에 심히 매료된 사람마냥, 하던 행동(정지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부류인데...

건강검진을 받으면 항상 듣는 내용이 지금에서 몇 킬로그램을 더 빼면 신체나이 몇살이 더 젊어진다, 같은 거였는데, 책과 멀어지면, 건강을 되찾습니다 같은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기에 딱 좋은 케이스 같다. 내가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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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3-1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신간이군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알게 된 이 작가는 어떻게 보면 제가 한국 현대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주었거든요. 궁금합니다.ㅎ

icaru 2015-03-18 08:4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나이 들면서 김영하 소설은 그닥 안 읽게 되는데, 이렇게 엮은 에세이들은 놀랍게 잘 읽히더라고요.. 그동안 강연했던 것을 수정한 것이라, 입말체가 편집을 거쳐 더 다듬어져 가독이 있는 것도 같고요. 국내작가 중 김영하가 최초가 아닌가 싶은게, 팟캐스트 진행도 그렇고,, 테트 강의에도 조회수도....
한마디로 말을 잘 하는 작가인거죠 ㅎ;;
보다, 말하다, 읽다 시리즈를 낼 계획이라던데,, 아직 나오지 않은 읽다 까지 예약 대기할 듯 합니다. ^^
 

 

참깨를 털며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한 게 있는 것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 불어가면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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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0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5-03-1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 좋습니다.^^
편안한 주말 오후되세요~

icaru 2015-03-16 11:46   좋아요 0 | URL
아~~ 찾아주셨네요.. 제 서재를 ^---^
할머님들 말씀은 참 허투루 들을 게 하나도 없는 듯 해요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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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에서, 카버가 말했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냥 술을 들이켰을 뿐이에요. 아마도 제가 저 자신과 제 글, 제 아내와 아이들과 관련해서 삶에서 가장 원했던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나서 술을 엄청나게 마시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상한 일이지요. 파산하거나 알코올 의존자가 되거나 바람피우거나 도둑이 되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될 의도를 갖고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카버의 단편 소설들이 나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주인공들 대부분이 비전문직 종사자 혹 서민 계층이다.


주인공들 대부분이 다양한 직업군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들이다. <코끼리>에서는 돈만 빌려달라고 하는 파산 지경의 동생, 이혼한 전부인, 빌어먹을 놈팽이와 결혼한 딸, 혼자 사시는 노모를 둔 중년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비타민>에서는 ‘나’의 아내가 비타민 방문 판매를 힘들여 하고 있고, ‘나’는 병원 잡일을 하면서 술만 마시는 남편이다. <체프의 집>에서 주인공은 알콜 중독인 남편과 별거 상태에 있는 아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남편의 애원을 뿌리칠 수가 없어 새로운 애인을 버리고 그에게 향했지만, 결국 집주인의 체프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희망을 꿈꾸었던 그 집에서 둘은 나오게 된다. 그걸로 끝이다. 

 

둘째, 실패자의 이야기가 있다.


실패자는 카버가 좋아하는 소재인 듯 보이고, 사실 독자인 내가 좋아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실패자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들을 목도하노라며 우리들의 ‘생’ 자체에 대해 전율을 하게 된다.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에서도 본다면 그렇다.(사실 이 단편은 실패자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을거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에서의 행복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성실하게 살았던 한 가족에게 어느 날, 닥친 사소한 사고. 그리고 불행. 아이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막연하고도 간절한 염원. 하지만 아이는 죽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 해도, 어쨌든 그들은 할 수 있는데 다 했고 갈 수 있는데까지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제과점 주인을 찾아간 일)은 언젠가는, 정말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사사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해볼 정도의 가치는 있는 것이다.  

 

단편 <비타민>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야말로 완벽한 실패자의 모습이다. <비타민>이 그렇다. 특별히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다. 인생의 패잔병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전부터 그리고 있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 속에 갇혀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실패자이다. 모두가 마을을 나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한다. 딱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꼽은 카버의 문장

“누군가가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결국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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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3-12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풋내기들] 읽고 있는데 작품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해요.
싫은 작품도 있더라구요.
같은 책이면서, 다른 책이네요. 저는, 이 책은 읽어야되나 어쩌나 하고 있어요.
저는 카버의 느낌이 그대로인 [풋내기들]이 웬지 더 끌려서 말이지요^^

icaru 2015-03-16 1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것은 편집자의 손질이 더해져서,,,이 책 안 읽으셔두 되지 않을까요? ㅎㅎ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다보니 든 생각이지만, 카버는 20세기 생존했던 다른 작가와는 좀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계층에서 연유한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을 우위의 가치로 두지 않는 점,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점...
제가 서재에 두문불출한 사이에 남겨주신 댓글인지라,,, 답글이 쪼매 늦어버렸어요 이궁...
 

한달에 두어번 만나 점심을 먹는 다른 부서 지인이 있다. 3년전까지는 같은 줄기에 있다가, 부서가 갈라진 케이스.

예닐곱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맘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가끔 만나도 나눌 이야기들이 없잖았고.

그런데, 지난주 점심을 함께 하다가 알게 된 사실.

이 사람도 책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무슨 이야기 끝에 우석훈이야기가 나왔고, 불황10년을 아직 안 읽었다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권했다. 이 친구는 홍성국의 책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경제적 현상을 초월하는 사회의 거대한 변환이며. 디플레이션, 구조화된 경제위기, 그리고 사회 전체의 전환이 모두 결합된 개념이라는데, 사회 모든 분야가 과거 성장 시대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일본이 10여년 빠른 우리의 경제 모델을 갖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지금 닥친 불황이 장기적인 것일 거라는 게 주요 요지란다.

 

 

홍성국이라면 내가 듣보잡인데,,, 좋은 저자 한 사람을 소개받았고, 내가 우석훈을 권했고...

 

 

 

 

 

 

 

 

 

 

 

오늘 빌려줬던 불황 10년을 돌려 받으면서 책 선물도 같이 받았다. 룰루~~~

 

 

 

 

 

 

 

 

 

 

 

 

 

 

자신도 한 권 갖고 있고, 나 주려고 한 권 더 샀단다.

요즘 읽는 책이 없는 나로서는 오늘 저녁부터 바로 독서스타트해야겠다.

지인에게, 그것도 오프에서 만나는 지인에게 책 선물 받는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 되겠다. 해서... 기록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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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0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저도 홍성국은 초문이에요.

icaru 2015-03-04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좋더라고요.. 더 이상 새로운 타인들과 더 내밀한 사귐이 어렵다고, 에너지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그런 열정이 생기는 것 같구...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으면 이 친구를 더 잘 알게 될 수 있을까 싶고.. ㅎㅎ 적어도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공유할게 생기겠져~~
 

책 한 줄 읽지 않는 나날이므로,

서재도 들어와보지 않게 된다.

이것도 사는 방법이겠지.

둘째가 2,3학년 될까지는 내 인생 아이들에게 저당잡힌 셈 치기로 하자고,

생각해본다.

아 이렇게 비장하게 살아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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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3-02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가 2,3학년 될때까지만요? ^^

icaru 2015-03-02 20:12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때되면 또 초등졸업까지만 하면서 유예시키겠죠??

라로 2015-03-0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달고 싶은 댓글을 hnine님이 다셨네요!~~~~.ㅋㅎㅎㅎㅎㅎㅎㅎㅎ

icaru 2015-03-04 14: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 제가 선배 번데기 님들 앞에서 주름을 지대로 잡은 것만 같숩니다!! 으하하하하하!!!!

조선인 2015-03-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마세요. 초등학교만 보내도 큰애, 작은애 둘 다 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 버려두고 나는 내 서가에 갈 날이 옵니다. 힘내세요!

icaru 2015-03-04 14:18   좋아요 0 | URL
ㅎㅎ 넵 조금 있으면,,, 둘째도 지 혼자 책을 읽을 날이...
조금만 더 힘내자 합니다...
근데,, 날마다 하는 안팎으로의 이 일들이 너무 힙겹고 지겹게 느껴지다뉘...
큰일입니다! 뭔가 계기가 있어야겠다고...부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