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을 만든 미국사 - 역사 속 미국의 정체성 읽기
김봉중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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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채널의 비정상회담을 가끔 보는데, 각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회담자가 등장한다. 미국 대표 타일러는  놀라운 한국어 실력에 사자성어도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더 적재적소 활용해 사용하는 듯. 차분하고 논리적인 것이 대담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겸비했다. 확실히 이들이 자국의 대표성을 띤다고도 할 수는 없겠지, 미국인들 모두가 이렇게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범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딴소리, 타일러는 몰몬교도들이 제일 많은 버몬트 주 출신이라고 한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미국사, 제목 그대로 미국이 왜 별다른가를 보여 주는 책이다. 이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역사적 이슈를 중심으로 설명을 끌어간다. 18세기 유럽 각국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메리카 땅에 이주를 하기 시작하고, 점차 경제적인 이유에 의해 미국의 북동부에 정착한다. 정착할 땅을 찾아 점차 서쪽으로 이동을 한다. 유럽은 기존의 영토에서 자국의 땅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에 골몰하였지만 미국은 그런 영역 지키기 싸움 대신 광활한 개방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주하고 또 정착한다. 이 점에서 변경 혹은, 국경 지대라는 의미에 프런티어 정신을 지은이는 설명한다.

미국을 이해하는 두 번째 코드 민주주의이다. 이들의 민주주의는 연방주의이다. 즉, 주권 중심이 아니라 귀족이나 봉건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 단체가 권리를 독점하지 않는 형태인 지방 분권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성립 이유는 아메리카의 지형적 특수성이 크다. 유럽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기에 간섭을 덜 받았으며, 유럽 국가들 사이의 분쟁 또한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초연할 수 있었다. 그리고 13개의 주마다 각기 개별적인 생활을 했고, 자기네 영역 안에서 하나의 정부를 유지해 왔지만, 각 주는 서로 비슷한 이해 관계를 갖고 공통적인 언어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수준의 문명 단계를 밟고 있었다.

세 번째 코드는 지역 정서다.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토대로 둔 잘나가는 미국이었지만, 지역 정서상으로 남과 북이 크게 달랐다. 북쪽은 상공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남쪽은 대단위 면화 농장 같은 농업 위주의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목화 산업은 독특한 남부의 귀족 문화를 가속시키면서 노예 제도가 자리잡도록 하였다. 그러나 북부는 산업화에 따른 경제적 성장과 함께 계몽주의가 한 단계 더 진전하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남과 북에 있어서 진보의 개념이 달랐다. 북부에서의 진보란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위해 자연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동적인 의미였고, 남부는 안정적인 자연 친화적인 정적인 진보를 원했다. 따라서, 북부의 계몽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남부의 노예 제도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도 위배되는것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은 서로 대치하며 결국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네 번째 코드 미국의 다문화주의는 다분히 미국의 현재 모습을 말해 준다. 우리는 일찍이 인종, 민족, 종교가 달라서 국가간에 뼈아픈 아픔과 회한을 경험하는 경우를 무수히 보아 왔다. 인간의 진보가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졌다는 현대만 보아도 히틀러의 인종 말살 정책, 구유고의 연방 현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인종 청소 등이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철저한 다인종, 민족, 종교로 시작했던 미국은 역사적 시험대였던 것이다. 그 역사적 시험이 성공이었나, 실패였나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사란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디언이나 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본명 부정적일테고 백인들간의 갈등에 염두에 둔다면 분명히 긍정적일 것이다.

유럽에서 숱한 박해를 받았던 민족 유태인은 미국에서 가장 득세를 하고 있는 민족이다. 법률, 의학, 과학을 비롯 영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인은? 아직 미국의 주류 정치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인 특유의 근면성, 성실성, 보수적 가치관이 미국의 청교도적 전통관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므로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점차로 인정을 받고 있는 추세이다. 히스페닉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결혼 문화만을 보아도 그러한데, 이들의 50%가 백인과 결혼을 한다. 히스페닉계와 백인의 인종 구별은 점차 모호해질 것이다. 결국 문제는 흑인이다. 미국 역사에서 소수 민족들은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에 미국 사회에 적응했다.

더불어 흑인들의 정치력 또한 급신장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 사회가 아무리 진보를 했다하더라도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은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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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성생활 - 개정판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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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으로 카트린 M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책에는 사진이 나와 있지 않아서 말이다. 자신의 성생활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고 세밀하게 이야기하며, 짐짓 담담하기까지한 이 여자의 엄청난 내공을 느끼며, 그 외모가 자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재 오십대의 이 필자는 전위적인 미술 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그의 저서가 두 권씩이나 번역되어 나오기도 한,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란 그런 것이다. 성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도 야하지 않은 점 말이다. 이 여자는 수많은 남자들(씻지 않아 지저분한 사람들이나 몸의 어딘가 불편한 사람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상대방이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 여자의 성생활에 있어서 원칙 같은 것이었다. 모든 남자들을 아주 공정한 방식으로 대상화 한 것이다.)과 다양한 공간에서 성적 체험을 하였으며 젊은 시절엔 파피루즈(세 사람 이상이 함께하는 성행위)에도 수차례 가담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읽는 독자로 불안함이나 자극 같은 걸 일으키지 않는다. 이 책은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 묘사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성 경험을 이런 형이상학적 카테고리와 묶어 철학적으로 피력하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이 엄청난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단순한 외설서로의 전락을 막는 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처음 출판된 필자의 자국인 프랑스에서도 이 책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주의 정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이 허용되는 프랑스에서도조차
도 말이다. 그래도 우리 나라처럼 비디오 사건에 휘말린 연예인들이나, 자신의 성경험을 토로한 모 탤런트처럼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책의 출판에도 불구하고 카트린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미술계의 중책을 맡고 있는 실력 있는 인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멋있는 나라임에는 확실한 것 같다. 자신의 사생활에 그것도 성생활에 철학과 ~주의 부여할 수 있으며, 남의 사생활에 히히덕덕 왈구왈구 하지 않는 관용 정신. 조금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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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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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위의 잠

                                                                              - 나희덕 -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은 대학 시절 혹은 사회 초년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시인이 나이를 먹는건가, 내가 나이를 먹는 건가, 요즘엔 위의 <못 위의 잠>과 같은 후기에 나온 시들이 좋다. 모성 혹은 부성애 적인 시선... 그렇지만, <그곳이 멀지 않다>는 초기 시집으로, 독자 또한 스무살 즈음의 청춘이라면, 울림이 크다.

 

안치환의 노래 중에 <귀뚜라미>라는 노래가 있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아직 내 울음소리는 노래가 아니요,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라는.

대학 2학년 때 이 노래를 첨 듣고, 이 노래는 나를 위한 송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노래를 달리 옮기면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으니.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라고 옮겨야 할까나. 밟히고 짖눌려 버리기 쉬운 사소한 존재에게 견고하고 단단한 의지를 불어넣는 마력을 나희덕은 갖고 있다.

4년 남짓한 사회 생활은 나에게 여운을 두지 말고, 복종하지도 말며, 곁을 터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 단단한 틈을 밀고 들어오는 시심(詩心)이 있다. 그건 바로 나희덕의 시이다. 그의 이 시집 중, <속리산에서>라는 시는 이 시집 전체의 경향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비탈만이 /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이 남아 있는 나에게 /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 산을 오르고 있지만 / 네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 산 속에 갇힌 시간일거라고,'

삶은 그런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천장호에서-
던지는 돌멩이에도 제 속을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열정을 갖고 대들기를 반복해 보지만, 얼음장처럼 닫힌 마음이 그러하듯 돌을 아무리 던져도 호수는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시인이 아니, 내(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방식은 그렇게 열정과 냉정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희덕은 시에서 노래한다. 냉정을 열정으로 무화시키는 힘을, 과거의 썩은 물웅덩이처럼 남아 있는 상처는 정리되어 이제 현재의 삶을 파헤쳐 놓지는 않는 것이다. 과거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기억, 이것은 바로 열정 속에서도 냉정을 찾는 것이며, 냉정 속에서 열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또 말한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실을 짜깁는다.-고통에게1-' 이렇게 조용히 시인은 나에게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처럼, 복종함으로 반항에 이르는 길을 풀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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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구달 -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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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천성이 악할 리 없다.

 

2001년 작성

 

 

나는 본래 동물을 무서워한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일까.. 한달 전 동생이 오래도록 집을 비우게 될 사정이 생긴 자기 친구 집의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왔다. 등어리는 까만털을 갖고 있고... 얼굴과 다리는 황금색 털을 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만난지 24시간 만에, 이 강아지의 등어리를 쓰다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의 유심히 내려다보는 눈길을 느끼면 얼른 배를 하늘로 향하게 발다랑 드러누워서, 자기 배를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이 녀석.

이 강아지 때문에 애완견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 싸이트도 뒤져보게 되고, 개샴푸를 사러 길건너 멀리까지 나가 보질 않나, 나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강아지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물들까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강아지는 나이가 몇 살일까?'에서부터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성격을 굳이 구분하여 딱 잘라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연유로 침팬지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릴 적에 어떤 소망을 간절히 갖고 있었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해 왔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쉽고 간결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제인 구달이라는 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결혼, 출산, 이혼, 재혼에 대한 인생 역정이 정말 담담한 필치의 술술 읽히는 문체로 그려져 있다.

어릴 적에 그녀가 이웃집의 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돌보았던 것, 그리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두리틀 박사의 이야기책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 등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 침팬지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며 동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갖는 데에 발로를 마련한 것 같다.

제인 구달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포나 불안, 통증, 그리고 행복과 만족을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불안에 떨고 통증을 느끼며 죽어가게 되는 걸 원하는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인 구달은 동물과 인간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제인 구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루츠와 슈츠라는 단체를 만들어 환경 운동의 실천을 몸소 보여 주기에 이른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방식은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방식대로 라면, 동물들을 일단 실험실의 철창에 가두고, 단번에 결과를 보기 위해, 급기야 동물에게 약물 투여 혹은 절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야생의 상태로 들어가 동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인내심과 사랑을 갖고 그저 관찰하고 동물들에게 도움을 준다. 이런 방식은 연구 업적에 있어서 단번에 어떤 결과물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생태계의 흐름을 파괴하지도 않고, 동물들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가혹하게 죽이지 않으며,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부탁의 말을 남긴다. 환경의 오염을 막고,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고, 작은 것 하나부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동물들과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백과 사전에서.. 6주 된 인간의 태포에 갇힌 태아와 4주 된 태포 안의 여우원숭이 그리고 3주 조금 지난 태포 안의 닭의 모습이 아주 영락없이 구분을 못할 만큼이나 흡사하단 걸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발생 단계에선 비슷하게 생겼던 것들이 별개의 차원에서 자기의 생을 꾸려간다. 그런 인간은 단지 자신이 발생 단계에서 사람의 배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구상의 생물체들에게 너무나 오만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자비하게 대량으로 산림을 채벌하여 야생 동물들이 오갈 곳 없이 만들어버리거나, 생체 실험으로 동물을 대용하고, 인간들의 호사스런 취미에 부흥하도록,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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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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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던 게 1998년이었으니까, 17년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의 북칼럼란을 꽤 꼼꼼히 보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알라딘이 없었으니까. 이 책은 고 박완서 님의 추천 북칼럼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서 박완서 작가는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첨가하였다.  17년이라,,,하하  어떤 책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인생의 기조 같은 게 되어 준다. 어떤 기조? 인생 뭐, 있어 짧게 살더라도 유쾌하게 살자~ 라고.

이제 열살 된 우리집 큰애도 말놀이를 하는 유희를 아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사소하다 싶은 것에도 리엑션 빵빵 터뜨려 주는 통에 실력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듯도 하다.

얼마 전에는 애아빠가 편의점에서 건빵 몇 봉지를 사다주면서, 저 빡빡해 빠진 과자가 뭐라고, 건빵 예찬론을 애들 앞에서 펼쳤다. 군대에서는 이것을 그냥 먹지 않고, 끓여도 먹을 수 있어, 그것도 맛있어. 별사탕하고, 이렇게 먹을 수도 있고..!"

큰애가 건빵은, " 총(건) 쏘는(빵) 연습하면서 먹는 과자라, 이름이 건빵인 모양이라고 한다. 동생(이름이 건)이 군대가서 총 쏘는 연습하면서 먹으면  제대로 일 것이라 한다. 군대라는 데가 훈련을 하면서 무언가를 먹을 턱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 말재간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빵~ 터뜨려 웃어줬고.

 

편집일을 처음 시작했던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 언니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한다. 지나칠 정도의 특유의 꼼꼼함과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두손두발 다 들게 하고 머리까지 수그리게 만드는 놀라운 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언니를 완전주의자라고 부르겠다.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석제의 이 소설집에 <완전주의자를 위하여>라는 단편이, 마치 '나를 읽어보라'는 듯 내 눈앞에 버젓이 있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완전주의자'는 이런 식이다.
'류 박사' 로 불리는 이 분은 무슨 학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되, 텔레비전의 심야 토론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도 더 박사처럼 생겼다. 그는 그가 사는 동네의 문관의 제왕이자, 배지없는 보안관에 정치평론가, 경제사가, 거기다가 유일무이한 언어학자이다.
특히, 언어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 그 동네의 약수터 옆에 만남에 광장이라는 푯말을 동사무소에 호통을 쳐서 '만남의 광장'으로 바꾸게 하였다. '뇌쇄(惱殺)'를 '뇌살'로 읽은 어떤 사람을 된통 망신을 주기도 하고, 그 동네 음식점의 차림표에서, '떡복기'를 '떡볶이'로, '김치찌게'를 '김치찌개'로 '육계장'을 '육개장'으로 일일히 지적하여 바꾸게 해 놓는다. 심지어 동네 미용실의 '스트레스 파마'가 '스트레이트 파마'로 까지 바르게 고쳐지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런 완전주의자의 완전치 못한 일화를 하나 챙기는 데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저녁 연기>로 잘못 알고 있는 일화와, 빨대를 영어로 '스트롱'으로 발음했던 일이다.

소설의 효능은 이런 순간에 발현된다. 회사의 완전주의자 언니에게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완전한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 회사의 완벽주의자 언니도 내가 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가끔 이런 가당치 않은 실수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편의 소설이 묶어져 있는 소설집이지만 총 페이지가 200페이지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글들이 뒤틀리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우리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꺼리로서의 재미가 아니라, 요절복통할 인생의 아이러니로서의 재미를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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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아드님의 말재간(?)에 우선 저도 환호를 보냅니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재간 좋아해요!!!!!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저는 한국 소설은 정말 읽은 것이 별로 없어요. 그나마 토지 전집을 다 읽은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지요~~~^^;;;;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없고 상황도 없고 곳도 없고,,,, 그래서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근데 맞춤법 같은 거 못하는 저는 솔직히 조금 뜨끔했어요~~~~~^^;;;;;

icaru 2015-02-03 12:30   좋아요 0 | URL
말재간 조금 있기로소니,ㅎㅎㅎ 불새출판사 만 하겠어요, 비비아롬나비모리 님!!! ㅋㅋ 토지 전집을 다 읽으셨다고요!!! >.< @.@
저는 전집에는 정말 약한데,,,
맞춤법 못하는 거,음,,, 저는 그래요, 가까운 예로, 저희집아이도 그렇고요 심지어 애아빠도 안,과 않을 혼동해서 쓴다던지 아무튼 많이 어려워 하는 것을 볼 때,,,
맞춤법이 그 사람 소양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 ) ( ˝.˝)

라로 2015-02-04 12:52   좋아요 0 | URL
불새출판사 ~~~^^;;;;

단발머리 2015-02-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1998년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 때 뭘, 읽고 있었나,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

저도 어제밤에 성석제 단편을 읽었거든요. 문학동네 겨울호 속에 있는 거였는데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큰아드님 대단한데요~~ icaru님 좋으시겠어요~~


icaru 2015-02-03 12:25   좋아요 0 | URL
어므나 하나두 안 대단합니다~ 단발머리 님은 그 즘에 풋풋한 대학생이지 않으셨어요! 인생에서 더할나위 없이 윤택한 무언가를 하고 계셨을듯~ 저는 모..
옛날에 읽은 것들을 들쑤시고 있는 지금 제 모습이 대단할 만큼 가관입져 ㅎㅎ

성석제 재미있는 인생을 읽던 2,3년 동안 애정에 마지 않는 작가였어요,,,
궁전의 새 라는 책도 재미있는데, 저는 그 작가가 쓴 어린시절 시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첫째도 둘째도 유머~~ 유머가 있어서,, 문학동네를 읽어보면, 그의 지금 작품세계를 알 수 있으려나요...
아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네요 ㅎ


단발머리 2015-02-03 13:21   좋아요 0 | URL
네, 그 때 저 풋풋하다 못해 프르릇!! 맞는 말인가요??

전 사실 문학동네 김훈의 단편 때문에 샀는데요 (다른 작가님들 죄송요.)
김훈님 거랑, 김영하님 거랑, 성석제님 거랑 모두 완전 만족하고 있어요.
특히 성석제님은 이주의 발견으로 뽑히셨어요.
유머가 제일 주요한 무기시라니, 더 좋아지는데요.. 호홍~~

라로 2015-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SOS입니다요!!!!! 체스 자주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앱으로 하시나요? 아님 컴??? 제 꼬마가 저희 가족 모두를 괴롭혀요~~~ㅠㅠ 체스 같이 하자고!! 그래서 아무래도 체스 앱을 깔든지 컴으로 하게 해야 할듯~~ 물론 가끔 같이 게임도 해주겠지만 이거 매일 몇 게임은 힘드네요. 저야 몇 게임 안 해줬지만~~~~^^;;;;
도와주세요~~~~~!

2015-02-04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