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평점 :
나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책이었다.
다분히 이분법적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본판 김봉곤 훈장을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사일을 돕거나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일에 대한 보상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어서 결코 니트가 되지 않는 말도 그렇고 말이다.
파랑새 증후군이라 하여, "나는 정말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와 같은 자기 찾기 여행 같은 것의 폐해를 말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질문이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라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 예컨대 부모라던가 친구들을 상대로 긴 인터뷰를 하는 것이 낫다고. (글쎄다,,, 갈 길 가다가 가끔 해보는 나를 찾는 딴짓이, 인생을 건설적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안 될지는 몰라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된다.)
정말로 이상하게 들리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도 생각했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것.
리스크 사회에서 생존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가 노력에 반드시 보상이 따르지 않는 리스크 사회라는 기본 사실을 거스르고 의연하게 노력하는 사람들. 이라고 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나이브한 생각이 아니던가. 되려 불평등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뼈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던가?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내용인 것이다.
그는 역으로 미래의 전망이 어둡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 사회의 실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선택적으로 사회의 빈곤층으로 내려가게 된다는 뜻의 말을 한다. 참으로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해법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 조직 안에서 눈에 띄게 이익을 얻는사람이 없는 해법이 오히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으로 살아야겠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깨고 분노를 되찾았을 때, 희망 그래, 좋다 희망과 더불어 분노의 힘으로 내 생각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174쪽~175쪽
산다는 것은 이른바 하나의 곡을 일생 동안 연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갖가지 행동과 말의 진짜 의미는 그 곡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확정할 수 없습니다.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예의 하나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시간 의식을 갖기',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임을 아는 것'이 지성의 기초라는 것을 그 먼 옛날 성현은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육아 얘기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자식을 기르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경험과 어떤 의미에서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내지르는 소음도 어떤 '문맥' 안에 있으면 비로소 '음악'으로 들리게 되니까. 앞에서 말한 '소음이 신호가 되는' 과정은 이런 맥락입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않으면 멜로디 구조를 알기까지 개개의 음이 무어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지르는 해독 불가능한 기호도 어떤 문맥 속에 놓이면 단번에 알아듣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과 교향악을 주의 깊게 듣는 청취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같습니다. 어느 음절의 아름다움을 그 소절을 다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듯이, 아이가 내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한 마디라도 소홀히 넘기지 않도록 끝까지 경의감과 인내심을 갖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222쪽
진정한 '다문화 공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복수의 가치관, 복수의 언어, 복수의 미의식이 혼재해 있어, 그것이 느슨하게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공생이 실현된 사회는 아직 어디에도 없지만요.
이 책은 니트[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이다. 보통 15∼34세 사이의 취업인구 가운데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킴. -족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내용이 흥미롭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전형적인 계급 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 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사회 계층화에 있어 병폐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직업을 통해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원천적으로 좌절되는 경우가 빈번한 것. 그러나 일본의 경우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니트 양산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