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어린 시절 -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
아네트 라루 지음, 박상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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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여기서 '우리'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사회이다. 우리 한국 사회 또한 어느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딱히 미국 사회와 들어맞는다고도 할 수 없다-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하는 계층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이 두 계층이 각각 서로 다른 자녀 양육 방식―집중 양식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여러 미국의 사회적 조건들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선정한 9세와 10세 아이를 둔 열두 가정을 중산층(상위 중산층 포함)?노동자 계층?빈곤층으로 나누어(구체적인 방법론은 이 책 2장을 참조하라) 심층 탐구하고 인터뷰한 결과, 문화적 구조에 불평등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정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모여 자녀 교육에 대한 문화적인 논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각 가정의 차이는 의미 있는 유형으로 범주화(앞에서 이미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산층 부모들을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 양육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중산층 부모와 달리 이들은 아이의 집중적인 발전, 특히 조직적인 여가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이 훌륭한 양육에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 이런 부모들은 대체로 지시를 내리는 편이다. 합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 그냥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해준다. 부모가 계획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중산층 아이들과 달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여가 활동에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이들은 보통 이웃에 사는 친구 및 친척들과 밖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미국은 기회의 땅일지 모르지만 또한 불평등의 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한층 나은 언어적 민첩함과 풍부한 어휘력뿐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부여하고 추상적 개념에 더 익숙하게끔 만든다.

면접에 대한 연구에서, 조사원들은 고용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눈을 마주치고 힘차게 악수하며 면접하는 동안 면접관 들에게 편안한 감정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해럴드 맥앨리스터처럼 빈곤층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화할 때 보통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오랫동안 쳐다보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빈곤층 가정의 우선순위에서 아이들의 여가 활동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에 덜 관여하거나 아이들이 음악 미술 연극 또는 운동 등에 갖는 흥미를 무시하고 관련 활동에 등록해주지 않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생활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산층 부모 사이에서 당연시하는 자녀 교육에 대한 ‘의무감’도 빈곤층 및 노동자 계층 부모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윌리엄스 부부(흑인 중산층 가정)는 알렉산더가 참여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 아들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득은 다양하다. 알렉산더의 피아노 레슨에 대해 이야기하며 윌리엄스 씨는 스즈키 교습법 덕분에 알렉산더가 벌써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자녀의 시아를 넓혀주는 걸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윌리엄스 부인은 아동기의 경험이 삶의 중요한 기술을 학습하기 위한 토대라고 생각했다



노동자 계층 자녀는 질문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해본 적도 없었다. 헤럴드는 제약에 길들여져 있었다. 친구들과의 사교성이나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내는 능력,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 어른에 대한 공경, 가족과의 친밀한 유대관계 등 헤럴드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특성은 장차 그 아이가 살아가게 될 현실 사회에서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교사나 의사, 고용주 같은 사회에서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교사나 의사 고용주 같은 사회적 인물들은 논리적인 대화 능력이나 협상 기술, 풍부한 어휘력, 유창한 대화 능력, 낯선 사람과의 조화 능력, 시간 관리 기술 등을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장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은 중산층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역량이다. 헤럴드의 삶 일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 기관들이 택하는 아동기 개발 방식에 대한선호의 차이가 향후 조직 사회에서 서로 다른 환경 아래 성장한 아이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정 환경의 아이들이 개발하지 못한 역량이 향후 그 아이들에게 결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훗날 구직을 위해 면접을 볼 경우, 면접관 들은 끈끈한 가족유대보다는 가정 안에서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 아이들을 높게 평가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녀를 예의 바르고 어른을 잘 따르며 투정부리거나 떼를 쓰지 않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야말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양육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척과 깊고 지속적인 유대를 나누는 것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 생활에서 중산층 아이들이 어느 정도 상대적인 이점을 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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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가정은 자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줄 방볍을 모색한다. 학교뿐 아니라 각종 공공 및 사설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활동에 세부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부모는 아이에게 좀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자원이 제공하는 가치는 아이들을 ‘최고’의 학급에 등록시키고 ‘최고’의 체조 프로그램을 찾아주는 등 단기적 효용에 그치지 않는다.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훗날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귀중한 자산이 될 기술을 습득한다. 이는 계층에 기초한 가치이다.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이 외부 기관과 형성하는 관계는 중산층 가정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중산층 가정의 부모들에게 인종이라는 요인은 자녀의 외부 생활에 대한 개입 여부나 방법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매순간 눈을 떼어서는 안 되는 잠재적 문제로 여겼다. 흑인 중산층 부모는 자신들이 겪는 인종 차별적 문제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백인이 과반수가 넘는 환경에서 보내는 자녀에게도 인종 차별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 반드시 인종 문제로만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도록 교육했다. 이런 역할은 같은 백인 부모에 비해 흑인 부모를 한층 더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미국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사회 계층이라는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열려’ 있다고 믿는다. 사회를 개인들의 집합으로 여기며, 어떤 개인이건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노력한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사회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아메리칸드림’을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은 모두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인생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차이는 개인의 열정ㅇ과 재능 그리고 노력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자녀들의 삶의 경험과 결과물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미국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인의 삶과 관련한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이러한 일반적 시각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상당 부분 견해를 달리한다. 그들은 우선 부모의 교육 수준이나 직업, 소득 그리고 자녀 양육 방식 등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단순히 ‘정도’의 문제로만 바라본다. 그들은 아이들의 삶을 형성하는 기반을 엄마의 교육 수준이나 거주 지역의 소득 수준 등 개별적인 요소들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런 서로 다른 요인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얽혀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사회 생활의 복합적인 성격은 여러 가지 미묘한 기술을 통해 사회 계층적 특권이 전파됨에 따라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려는 부모의 노력도 효용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녀의 생활에 얼마나 긴밀하게 개입하는지, 기관의 권위 있는 인물에게 응답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불평 및 압력을 행사하는지 그리고 아이의 성격이나 자질 등 여러 요소가 각기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흑인은 종종 자신의 계층적 위치나 사회적 기술을 드러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 인종이 계층을 넘어서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느 중산층가정 흑인 가장이 쇼핑센터에서 현금 인출기를 향해 기본 좋게 걷고 있는 자신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가슴팍에 숨기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종종걸음을 치며 달아나던 한 백인 여성이 이야기를 들려 준다. 농구 캠프의 수백명 학생 중 유일한 흑인이었던 펀 마셜은 친구들과 즐겁게 농구를 하다가도 점심 시간에는 함께 어울릴 친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중산층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백인 세계에 편입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특정 집단에서 유일한 흑인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형제 자매와 옥식각신 부모와 말다툼을 하는 것 역시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징

이었다.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에서는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역시 인종에 관계없이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집중 양육 방식을 적용하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자존감 개발이라는 가치를 제공했다. 요컨대 이 아이들에게는 체조나 축구, 여름 캠프 등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는다.

가정에서의 논리적 대활르 통한 자녀 양육과 교육 기관에 대한 개입 역시 일종의 합리화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연구 대상으로 떠오른 ‘과학적 양육’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집중 양육 방식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현상을 분석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위상 변화와 그에 동반해 발생한 고소득 제조업 종사자의 감소 및 기피 서비스 관련 직종의 증가라는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와 맞물려 절정에 달할 것이며, 그들이 누리게 될 삶의 표준은 현재 부모 세대에 비해 열악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직업’은 줄어들고 ‘안 좋은 직업’이 늘어나며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아이들에게 학업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중산층 부모의 염려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사정관이나 기업 면접관 같은 이른바 ‘기관의 문지기’들은 학교 밖 활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 때문에 부모는 아이드르이 활동에서 단순한 흥미나 즐거움 이상을 이끌어내 자녀들이 더 좋은 기관에 ‘선택될’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요인은 중산층이 새로운 자녀 양육 방식을 도입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으로 개발된 아동의 창의력이나 재능, 인지 능력 그리고 학업 성취도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 반대로 기존의 아동 양육 논리인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은 상대적으로 소수만이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그리고 아동 양육의 문화적 레퍼토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또 그것이 정립되어가고 있다면, 계층에 따른 아동 양육 전략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모든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같은 방식으로 기르지 않는 것일까?


계층에 따라 아동 양육 방식에 차이가 나는 요인으로는 첫째,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들 수 있다.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개인의 삶이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고 해서 그리고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즐거움을 가족에게 선사한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속하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불평등이 초래된다는 사실마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사회 계층에 속한다는 것은 그에 수반하는 기회를 얻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다. 탄생의 순간에는 모두 다 똑같이 축복을 받지만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거나,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서나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는 일 등 모든 사람이 바라마지 않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아이들마다 제각각이다. 슬프만 이런 중요한 목표 중 상당수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아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결정되곤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특정한 문화적 관습을 다른 것보다 선호하는 교육 기관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계층간 유동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일부 이민자 집단이 그렇다. 사회적 계층만이 불평등의 절대적인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 때문에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 ‘사회적 계층’은 곧 존재한다. 또한 성별의 차이가 다소 존재하기는 하지만,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역시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계급으로 철저히 나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이유다. 사회 분화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사회 계층’이라는 단어는 대다수 미국인의 사전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요즘은 빈곤을 퇴치해야 하다는 생각이나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사회 구조 및 계층이라는시각이야말로 빈곤에 대해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도덕적 태도보다 더 나으며 “복지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없는 빈곤층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막을 수 있다. 한 개인의 출신 가족이 처해 있는 사회적 위치는 그 개인이 인생에서 겪게 될 일이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회 계층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재조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에 득이 되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내 교육 전쟁의 문제를 최초로 깊이 들여다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자는 집중 양육은 바쁜 부모에게 극심한 노동을 요구하고,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며, 가족 집단이라는 발상이 성장할 기회마저 희생시키면서 개인주의가 자라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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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11-07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산층 아이들은 3루에서 시작해 놓고, 자기가 잘해서 이긴 줄 알고 있기 쉽다~
 

 

 

 

 

 

 

 

 

 

 

마일리지가 마이너스인 것은 또  처음 본다... 알라딘서점에 빚졌네..

사은품 먼저 끌어다 받아서 이러함.. ;;

누구에게가 되었든 빚도 조금씩 지고 살아야, 나도 주고 사는 삶이 된다. 나쁘지 않아..

 

요즘 자꾸 남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고는 한다.

10월안에 교재 두 권을 마감해야 하는 것은,,, 뭐,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남은 10월에 아이 학교에서 학예발표회가 있고, 아예 담주는 상담주간이라고 하고,  그 주에 현장체험학습(소풍)도 간다 하고,

14년도 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고,,, 응또...아무튼,,14년도만 살다가 갈 사람처럼 조급해지네.. (시한부 인생은 아님, 웃자고 해본 소리인데, 이런 조크는 하는 사람도 괜히 석연치가 않고 ㅋ)

 

내 마음이 부산한 이유 애써 부인하지 말자. 그러니까 올초에 정말 대단한 책들을 읽었었다.

 

 

 

 

 

 

 

 

 

 

 

 

 

 

 

  이 책들을 읽어낸 흔적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권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물론 읽어낸 모든 책을 리뷰로 쓰고 있지 않은 지가 오래되어서, 내 속에 리뷰 강박같은 것은 이제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럼에도 이 책들은 좀 남겨야 한다.

 

위의 책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것이다. 참 어려운 주제다. 사회적 계층. 교육. 노동.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고된 노동을 참으며 언젠가 그 댓가로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돈이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삶을 수단화한다. 지금의 행복을 아쉬움없이 유보한다. 그리고 같은 논리로 육아에 적용한다. 지금 조금만 고생하면 나중에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러나 지금 행복하지 않은 자,, 훗날 행복할 리 요원하다. 는거.

 

개인이 이루어낸 성과는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 같은 개인 자질 덕분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한 것이다. 되려 불평등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뼈대 같은 것.

 

그러니까,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이 사회적 지위나 특권을 누리게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사회 특권층에 속한 개인이 획득하는 이득은 그들의 문화적 경험을 기초로 형성된 내적 요소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들을 위의 책들은 강조한다. 특히 불평등한 어린시절이라는 책을 보면 내내 강조되는 점은  이것이다. (미국에서)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문화적 훈련이 사회의 주요 기관들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받는 이유를 특권층 가정에서의 표준적인 아동 양육 전략이 사회 기관들이 강조하는 가치와 많은 부분에서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서로 다른 환경 아래 성장한 아이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하며, 특정 환경의 아이들이 개발하지 못한 역량이 향후 그 아이들에게 결점을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하지 못한 역량을 늘 갖게 되는 쪽은 노동자 빈민계층이다. 그 사회를 장악한 중점 계층에서 효용성을 발휘할 기술은, 친구들과의 사교성,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내는 능력,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 어른에 대한 공경, 가족과의 친밀한 유대관계(이런 점들은 노동자 게층의 자녀들이 갖는 장점이다.) 등이 아니라, 논리적 대화 능력, 협상 기술, 풍부한 어휘력, 유창한 대화 능력, 낯선 사람과의 조화 능력, 시간 관리 기술(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역량이란다.) 쪽이라고.


책 불평등한 어린시절은 부모가 어떻게 서로 다른 습관을 자녀들에게 전달하고 이러한 습관이 특정 기관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 어떤 문화적 자본으로 작용하는지, 또한 어떤 양육 전략과 행동 양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부모들이 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이해하려는 접근법을 쓰고 있다. 물론 우리 실상하고 딱 들어맞는다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아이들 학업에 대한 관심과 주도권 혹은 교육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미국사회의 계층 양극화 현상이 더 심각한 듯하다.

 

네 권의 책 중에 가장 마지막에 읽었던 책이 <불평등한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할애하는 내용이 큰 페이퍼가 되어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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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4-10-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지런한 2014년도가 아니셨는가? 싶어요.^^
저의 2014년의 시간이 갑자기 반성이 되어지는~~ㅜ
이건 분명 얼마남지 않은 달력때문이라고 자위합니다.ㅋ

간간히 들어와 눈으로 페이퍼를 읽고 가다 오늘은 과감히 글을 남깁니다.
이곳과 그곳은 느낌이 엄청 다르지만,그래도 반가워요.^^
저도 이번달엔 일정이 꽉 잡혀 있어 지금 정신을 못차리고 있네요.
조급한 마음도 어찌하질 못하고~~ㅜ
무튼 좋은,행복한 주말 되시어요.


icaru 2014-10-12 09:08   좋아요 0 | URL
여기서 또 뵈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가슴이 마구 우렁우렁,, 해지네요.. 우잉...

가끔씩 들어와서 페이퍼 읽으셨다니,, 이거 참 면구하네요... 똑같이 올린 게 더러 있어서뤼 ㅎ


2014-10-1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2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4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굉장히 오랜만이다. 이 시간까지 알라딘에 접속하고 있다니... 이것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나 흔히 있었던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시간에 알라딘에 페이퍼를 쓰는 일은 주제를 막론하고 자칫 감상적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사실 그렇게 써놓은 내 글은 낮에 다시 읽었을 때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하여도, 볼썽사납기는 매일반..

그런데, 또한 그닥 재주가 없는 그러니까, 우아하지 못한(?) 뻘짓을 하려던 참인데, 음반 리뷰가 그렇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그다지 우아하지 못한 글이 되기 쉽다. 음악에 관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글에 대한 재능을 넘어서 천성이 고매한 사람이 아닐까, 막연한 찬사까지 덧붙이고 싶을 만큼 음악에 대한 글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의 언어(그러니까 음악이라는 언어)에 대한 미학적인 글이 될테니..

 

스티브잡스의 아이팟에는 조니 미첼, 그레고리안 성가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행도 철도 모르는 나는, 주로 90년대 중후반에 듣던 팝이나 모던락에 고정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유독 트레비스 ...

 

 

 

 

 

 

 

 

 

 

 

게다가 한국사람 아니랄까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closer 를 계속 반복해 듣는다.

트레비스와 나는 경력이 비슷하다. 트레비스가 처음 데뷔를 하던 즈음에 나도 사회에 데뷔(? 밥벌이 시작, 정도로 수정 ㅋ)를 했고, 그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아마 나보다 몇 살 윗 연배들이시겠지..) 나도 그렇고,

그런데 음악은 나이먹지 않고 20대 중반에 그렇게 멈춰져 있어서, 두아이의 엄마로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그들의 음악은 내 속에 여전히 이십대, 삼십대 초반의 풋풋한(? 뭐, '지치지 않은 '정도로 수정 ㅋ) 내가 숨쉬며 깃들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내 속엔 내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주로 심야에 출몰들을 해 주신다는

 

 

 

 

겉만 봐서는 모른다. ㅎ 사진은 노랗게 익은 귤만 애들이 골라먹고, 남긴 초록귤..

노랗거나 초록이거나 맛은 똑같이 달콤상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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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단순히 고색창연한 옛표어가 아니다.

내일그리고이틀의 주말,, 책을 읽어야겠다고,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읽어야 할 당위를 느끼는 분야의 책(사회, 과학) 말고, 읽는 데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겠다고 부려놨다.

벌써...

 

 

 

 

 

김영하의 책은 가독성이 있다. 작가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가물가물... 그건 그의 작품도 아니고, 작가의 서재를 탐방하는 작가의 방, 이라는 책에서였을듯,,, 그래도 소설집 혹은 장편소설 다섯권 이상은 읽었으니까. 내 기준으로 제법 읽은 작가에 속한다. 가독성이 있다고 까지만 말한 이유 그러니까, 좋아하는 작가지요 라고 선뜻 말할 수 없는 것은 몇번인가는 작가에 대해 아니, 작품을 읽어도 감흥이 없을 때가 있었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그이는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좋아 라고 제멋대로 생각해 놓고서, 좋았던 이유랄 수 있는 요소가 내 속에서 먼저 변질되어 버렸을 때,' 혹은 더 이상 흥미가 들지 않을 때가 왔던 것에 비유를 할 수 있을거다.

그랬던 것이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보고 감명 받게 되는 지점들이 많았다. 특히 그가 했던 말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들의 말 작가들이 쓰는 소설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들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서 그것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읽었으나 100% 동의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응답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라는 부분... 달리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내가 더 이상 읽기 힘들 수 있어도, 산문집은 퍽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장서의 괴로움... 으로 넘어가서 ,,,  우리집에도 책이 많다. 책 많지 않은 집이 어디있냐고? 그러게...

내 생각엔 책이 많아 문제가 아니라, 집이 좁아 문제인거 같은데, 우리 가족들은 나에게

"너는 좋은 집 넓은 집 다, 소용없다. 아마 좁으나 넓으나 단숨에 똑같이 어수선하게 만들어버릴걸? 아주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다, 장담하지" 등 요지의 말들을 한다. 이 말은 협박도 뭣도 되지 않고, 짜증만 날뿐이다. 집이 넓으면, 해결된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나도 한때는 알라딘 중고 서점을 이용해서, 1년에 서너차례 정도 매번 스무권 남짓한 책들을 골라내 처분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책을 골라내는 데 시간이 많이 들뿐더러, 박스를 서너번은 열어 확인하고 떠나보낼 마음의 다짐을 하며, 혹은 훗날 필요한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도로 꺼내놓기도 하면서 마음의 출혈을 겪는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고, 요즘엔 그마저도 하지 않으니, 그런데 이책을 읽고나면, 정신이 번쩍 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권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큰아이에게 선물하려고, 벼르다벼르다 (가격이 후덜덜해서 별렀어요~~ 얼마길래냐구요~ 정가는 60000원에 10프로 할인에 쿠폰도 있기는 해요,,사전이 다 그렇지 않냐고요? 그러게- - ;;) 장만한다.

4만 개가 넘는 낱말과 2700점이 넘는 세밀화로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차근차근 배운단다.

 

 

 

 

 

 

 

 

 

 

보리 출판사에서 나왔으니까, 보리를 찾아봤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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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4-10-0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주고 픈데 못 샀네요

icaru 2014-10-03 23:00   좋아요 0 | URL
태은이 아직 1학년이니까, 좀 더 있다가 사주셔도 되지 싶어요~우리아이는 2학년인데도, 지금부터 즐겨찾지는 않을듯하구요,, 요즘에 제가 책구매하는데 열을 올리다보니,
읽는 데 열을 올려야 마땅하지만 말이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