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고,
이렇게 앉아 있는데도
내 손끝에서는 아직도 행주냄새, 설겆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니 난다 나.
생선 씻다가 고무장갑 엄지부분을 찢어먹고, 그 이후로 맨 손으로 설거지하고, 생선가시 고기 뼈 따위로 낭자한 상도 훅훅-- 치우고 해서 그런가 보다.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가 앉네.
이것이 가시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일인듯..
명절이면, 일하면서 살짝 자괴감에 빠지고는 하는데, 올 설 명절도 여지가 없다.
구구절절해질 것 없이 딱 하나만 이야기하면
더덕 껍질 까는 것.
시댁에서 재료를 손질하는 것은 서열 맨밑동네인 내가 전담마커하는 분야이다.
도라지나 더덕 같은 것을 재작년부터 어머니는 뿌리째 사오시고, 집에서 까고 다듬는데,
처음 더덕 껍질 까는 것을 배울 때, 돌려서 깎는 걸로 익혔기 때문에, 그렇게 까는데,
다듬다 보면 태반이 깎아버려진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그게 그거라서, 돌려서 까는 데에는 스스로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는다.
올해도 그렇게 더덕 껍질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례지내기 위해 대전에서 올라오신) 작은 아버지가 더덕을 그렇게 깎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너 지금 잘못 하고 있다고 머리 좀 쓰고 살라고 하신다. ^^;;;---이 작은 아버지는 산과 약초와 관련된 무용담이 한트럭이나 되시는 기인(?)이시다. 말씀도 참 재밌고, 신랄하고 왁자하게 잘 하시는데, 그 재미라는 것은 내가 그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라는 것을 이제와 느꼈다. ㅎ 그 자리에서는 모두 (형님, 아주버님, 남편) 작은 아버님의 예의 조크라며, 크게 웃었는데, 내 얼굴은 덩달아 웃고 있었지만, 뭐 속으로도 그랬을 리 없다. 나이 사십인데, 이것도 못해 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초등학생이 시험 못 보고, 우둔하다며 혼나는 것과 매양가지일처럼, 화끈거린다. 그렇다 상처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이 나이에 소심하고 노여움도 많아 그런 게 아니고 말이지... ---
그러면서 작은 아버지가 알려주시는 방법은 일단 물에 더덕을 씻어 흙을 제거한다. 그리고 나서 절반을 가른다. 그럼 훌렁 잘 벗겨진다고 한다.
바로 실행해 봤는데, 뭐야,,, 안 되잖아....
나중에 검색해봤더니, 살짝 데쳤다가 까면, 쉽게 손질할 수 있다고도 한다.
에라~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지...
우짜튼 흙은 제거된 상태에서 깎고 있으니까 손의 상태는 양호하구나.
끈끈한 진액과 흙이 뒤엉켜 맨손으로 땅굴 파다가온 사람의 손 모양새였는데...
연휴 때 설거지만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던 미미여사님의 솔로몬의 위증,을 쫑낸 것도 이 와중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던 팟캐스트 정은임의 영화음악도 많이 골라 듣다.

ㅈㅓㅇ말 좋은 세상이다.
ㄷㅐ학 1학년 때, 새벽에 듣던 정영음...
그리고 다시 결혼하던 첫해 겨울 잠깐 회사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 하던 때 듣던 정영음...
그것을 십년 후 다시 듣고 있다. 그때는 얼마나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나...
93년도 방송은 테이프로 녹음되었던 것을 정은임 언니(?) 아버지님이 추모사업회에 내놓으시고, 몇년에 걸쳐 그것을 이렇게 작업해 놨다. 그이를 기억하는 그 방송을 기억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복받으실 것이다. 들으면서 정은임을 추억하고 영화를 되새기고, 이런 작업을 해 주신 그 분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정말로...
정은임의 영화음악에는 여러 코너가 있는데, 특히
위의 화면처럼 내 인생의 영화는 애청자의 투고로 진행이 된다.
다섯편 정도의 영화를 통해서 영화와 얽힌 자기 인생의 일기장 한켠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형식이다.
대표 영화 몇편과 얽혀서 자기가 살아온 지점까지의 인생을 정리하여 풀어낼 수 있다는 것...
들으면서 항상 생각하지만, 사람들 모두에게는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꾼으로서 자신만의 소설 한편은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더욱 기이한 것은 저마다 다른 이의 사연을 듣고 있는데도, 맞아맞아 나도나도...
하게 된다는 것.
또 한편으로 저렇게 자기 인생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도 한없이 들고 말이다..
정영음,,, 아직도 듣지 않아 다운로드 해야 할 많은 방송이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
십년 이십년이 지났는데, 세월을 흔적을 타지 않으면서도 방송을 듣던 당시의 소회를 끌어낼 수 있다니,,, 영등포구 여의도동 우편번호 백오십에 몇번으로 사연 보내주시면 된다는 내용만이,,, 세월을 말해 줄 뿐...
전기현의 씨네뮤직도 이렇게 전방송을 모두 보고, 다시보고, 놓친 것 보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골라 듣는 재미가 있는 정은임의 영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행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모르겠는데, 듣고 있다보면, 보고 싶은 영화의 목록이 엄청나게 불어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에 장바구니로 퐁당하는 영화 두편.
라스트 모히칸의 웅장한 오에스티.
허공의 질주... 리버피닉스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