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생일에 기뻐해야 해?

북플에 들어와서 지난 오늘 메뉴를 열어보기도 전에 홈에서 친절히 과거 오늘 쓴 글입니다. 라며 보여줬다. 클릭해보니 두 개가 있었다. 2013년에 쓴 글은 오해와 상처 등을 거론하며 당시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다가 매년 똑같은 연말 술자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날이라고 다들 들떠있는 것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서양인의 진짜 생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날 왜 다들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댓글들을 읽었다. 가끔 내 서재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어느 이웃님의 첫댓글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3년 연속 서재의 달인을 축하한다고 쓰셨다. 그랬구나. 그 시절엔 그런 것에 선정되어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선물 상자를 받기도 했었다. 그 상자 안에는 머그컵과 달력, 다이어리 등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라는 날에 대한 내 반감은 사실 뿌리가 깊다. 일단 전세계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기 행각이 너무 싫다. 산타 할아버지라는 코카콜라가 만든 상술에 휘둘리는 것이 한심해보인다. 최근에 제이티비씨 뉴스 여성 앵커와 궤도라는 이름을 쓰는 과학커뮤니케이터 라는 사람이 나눈 대화의 요약본 같은 짧은 영상을 보았다. 산타가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루 밤 안에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렇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였다. 산타가 타는 썰매의 무게와 이걸 루돌프 사슴인지 뭔지가 끌려면 몇 백마리? 몇 천마리? 스쳐 지나가서 단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산타가 전세게 어린이들의 집을 방문하려면 초속? 아니 광속이었던가 그 몇 배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붕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우주에서? 암튼 선물을 쏘는 거라고. 그 선물을 잘못 맞으면 죽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가 하고 그저 그렇게 흘려듣고 말았는데, 그 여성 앵커는 정말 웃음이 터져서 진행을 제대로 못 할 지경으로 보였다. 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아버지께서 종합과자세트를 우리 머리 위에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걸 보기 전에도 산타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어렸던 나는 선물이 어디서 났을지가 궁금했다. 가난했던 우리집에서 아버지처럼 엄격한 분이 쓸데없이 비싸기만한 종합과자세트 따위를 돈 주고 샀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 둘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타는 어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고 선물은 엄마랑 아빠가 주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산타가 입고 있는 저 빨간색 옷은 코카콜라가 만든 것이고, 왜 하필 크리스마스 라는 날, 그러니까 예수인지 뭔지 어떤 사람이 진짜로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를 그런 날에 왜 선물을 주고 받아야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아이들도 다들 선물을 받는 날이니 일단 선물은 줄게. 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라서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막 그런 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날이 휴일이라 좋기는 했다. 하루라도 더 쉴 수 있어서. 그래서 예수의 생일과 석가모니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기념할 마음은 없지만, 휴일이라 고마운 마음이기는 하다. 왜 마호메트의 생일은 휴일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종교의 다른 성자는 더 없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만약 다민족 다종교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류의 기념일이 훨씬 더 많았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공자의 생일을 기념했을까?

연말에 다들 바쁘다고 일정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할때, 50대 중반의 어느 선배 활동가가 이럴 때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잡으면 다들 시간 비어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이미 중년이 된 나는 크리스마스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아이들은 친구들이랑 놀기 바쁘고, 달리 만날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휴일에 그런 류에 일에 동원되는 것도 싫다. 왜 내가 휴일까지 당신들과 만나야하나 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리 다들 그날이 비어있어도 결국 그날로 일정을 잡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기억 오류

이어 2021년에 쓴 두번째 글에는 삼성 불매가 깨진 이야기가 써있었다. 우연히도 바로 얼마 전에 시공사 책 불매 이야기에 붙여서 아쉽게도 최근에 삼성 불매가 깨진 이야기를 썼었는데, 딱 그 이야기였다. 이 글을 다시 읽고 확실히 사람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고 깨달았다. 나는 2021년 이맘때쯤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두고 삼성 태블릿과 휴대폰을 사면서 긴 시간 이어온 삼성 불매를 깨트렸는데, 그 이유를 휴대폰 교체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태블릿을 구매한 것이 먼저였다. 당시에도 지금도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늘 회의가 많았던 나는 매번 출력된 종이 안건지에 기록을 남기고 그걸 잘 정리해서 보관하는 것이 어려웠고, 자주 그 기록을 찾지 못해 곤란해하곤 했다. 일단 출력하는 종이도 너무 아깝다. 간혹 회의자료 양이 많을 때에는 백쪽, 이백쪽을 넘기기도 하는데 고작 두세시간 회의를 위해 이정도 양의 종이 안건지를 출력하는 건 너무 큰 낭비였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태블릿을 구매해서 앞으로 모든 회의자료는 전자파일로 받아서 기록하고, 다양한 회의 성격에 따라 카테고리를 지정해 회의자료를 저장해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찾으려고 했다. 그러려면 펜이 포함된 태블릿이 필요했고, 여기저기 회의장소를 옮겨다니려면 크기도 작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가격도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지. 이에 딱 맞는 태블릿이 하나 있었는데, 삼성 제품이었다.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구매했다. 이 태블릿은 지금까지도 여러 회의를 다닐 때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겼다. 이 역시도 내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은 중국산 폰을 쓰고 있었는데, 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일 때문에 경기도를 다닐 일도 많은 편인데,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가면 내 전화기로 통화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서너 명의 일행과 일종의 출장을 가는 길에 전철로 이동하는 동료와 소통할 일이 있었는데, 이 동료가 내 전화기로 통화 연결이 안 된다고 나와 같이 있던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다. 당시 내 전화기는 멀쩡히 잘 켜져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내가 내 전화기로 같이 있던 다른 일행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내 전화기에서는 신호가 갔지만, 그 사람의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행이 내게 전화를 걸면 그의 전화기에 신호는 가고 있었지만, 내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느 전화기가 서울을 벗어나면 통화가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럼 나는 평생 서울에서 한발도 안 나가고 살아야 하나?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아이티 전문가와 함께 알아보니 그 기종이 그런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봤다. 하루종일 몇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도 해보았는데 모두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전화가 잘 되었다. 그후로 경기도로 나갈 일이 생길 때마다 연락이 되지 않는 불편을 겪었고, 매주 적어도 두 번 이상 경기도로 다녀올 일이 생긴 내가 어쩔수 없이 전화기를 바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어보니 아니었다.

사실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 전에 실수로 전화기를 변기에 빠뜨렸고, 곧바로 꺼내서 끄고 잘 말리고 나중에 다시 켰는데, 전화통화 기능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아, 그때 저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 중국산 가성비 괜찮은 폰은 서울에서는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경기도만 나가도 통화가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한동안 사용했었고, 어느날 폰을 빠뜨렸다가 다시 살렸더니 이번엔 아예 전화통화 기능 자체가 안 되는 상태였다고. 전화통화를 할 수 없는 전화기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급하게 새로운 전화기를 알아봤다. 그 전까지 계속 써왔던 엘지는 휴대폰 시장에서 철수했고, 아이폰은 가격도 비쌌고, 내가 잘 활용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삼성 밖에 답이 없었다. 이게 내가 바로 직전에 태블릿을 사면서 견고한 담장이 한번 허물어진 후라서 좀 더 쉽게 삼성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아이폰을 고려해봤을 것이다. 단 한번도 아이폰을 써본적은 없지만, 주위에 아이폰을 쓰면서 이게 불편하다 혹은 저게 잘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물론 제대로 잘 쓰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고, 아이폰을 제대로 잘 쓰기 위해 뭔가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그냥 좀 쉽게 타협했다. 처음으로 삼성 휴대폰을 구매했다. 예전에 엘지 저가형 전화기들이 대체로 오래가지 못하고 딱 약정기간 지나면 어딘가 망가지곤 하길래, 이번에는 저가형 모델 말고 좀 제대로 된 제품을 사서 오래 쓰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금 쓰는 이 폰을 사서 쓰던 유심을 끼워 썼다.

아마 오늘 우연히 북플에 들어와 21년 오늘 내가 썼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긴 시간 이 건에 대한 내 기억은 오염된 상태로 머물렀을 것이다. 이것도 내 기준에서는 신기한 일이긴 하다.

설마가 맞아떨어질 확률은?

엊그제 밤에 모 유통회사의 물류창고로 야간 알바를 하러 갔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일단은 넘어가자. 4시간 반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식사시간 겸 휴식 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 끝나면 다시 4시간 반 쉼없이 일해하 한다. 총 10시간. 휴식은 딱 한 번 한 시간. 이걸 식사시간 30분과 두세시간마다 10분 정도씩 해서 여러 번 쉴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4시간 반 동안 어떻게 화장실도 한 번 안가고 일을 할 수 있나? 한 두 시간 정도 일을 열심히 하면 잠시라도 한 5분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심지어 그날은 전체 작업장에 일괄 1시간 연장 근무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그럼 휴식 이후 5시간 반 동안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만약 연장 근무가 싫으면 먼저 퇴근해도 되지만, 그때는 셔틀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 주로 도시 외곽에 있는 물류센터로 셔틀버스 없이 출퇴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운이 좋게 물류센터 근처에 살아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아니면 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거리도 멀고 차도 없는 나로서는 그 새벽에 집에 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강제는 아닐지만 어쩔수 없이 한시간 연장에 따라야 했던 나는 그 마지막 한 시간이 너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날 하루만 일했다면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그 전날도 같은 조건으로 일했고, 그때는 전체 일괄 30분 연장 근무였고 그때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즉, 나는 이틀 연속으로 총 21시간 30분 일을 했다. 이건 딱 센터에서 업무에 들어간 시간만 그렇고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온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27시간 30분이다. 첫날 오후 4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 4시 5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탔고, 5시 20분이 채 되지 않아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저녁 6시부터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을 마치는데, 30분 연장근무를 했으니 4시 반에 끝났고,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시간인 5시까지 기다렸다가 5시 반쯤 셔틀버스를 내렸고 집에 도착한 것은 거의 6시였다. 자, 일단 여기까지 첫날 출근에서 퇴근까지 13시간 30분 걸렸다.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간단히 씻고 잠든 것이 대략 7시, 잠에서 깬 것이 오후 2시였다. 7시간 잤는데도 너무 피로가 가시지 않아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자는 동안 일어난 일들과 연락온 것들을 확인하고 간단히 할 일들을 좀 하고 나니 한시간 반쯤 휙 지나 있었고, 이제 씻고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다시 오후 4시 반에 집에서 나서기까지 집에 머문 시간은 10시간 30분이었다. 둘째날도 4시 50분에 셔틀버스를 타고 5시 20분쯤 센터에 도착해, 6시에 일을 시작했다. 아까 말했듯이 이날은 1시간 연장근무를 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을 마쳤고 5시 반에 셔틀버스가 출발해 6시쯤 내렸고, 집에 도착한 것은 6시 반이었다. 14시간 걸린 것이다.

센터에서 유일하게 주어지는 1시간의 휴식이 또 마냥 쉴수만은 없는 시간이다. 이것도 어찌보면 약간 전쟁같다. 쉬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엄청 서둘러서 움직인다. 출입구 보안대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이 엄청 길게 줄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5분 안에 나가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여기서 10분을 지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식당에 가면 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다른 층에도 식당이 있다는데, 사람이 좀 덜 몰리는 식당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 나오면 이제 빈 자리를 찾아 헤매어야 한다. 멀리서 보고 빈자리인가 싶어사 가보면 가방이나 옷이 의자에 놓인 경우도 있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밥을 먹기가 부담스러워 적어도 한 칸씩은 띄우고 앉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사치다. 첫날은 몰랐는데 둘째날 좀 더 늦게 움직였더니 식당 입구에서 대각선 반대편으로 창가에 창을 바라보고 한명씩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몇 개 있었다. 많지는 않았다. 이 자리가 딱 좋겠다고 생각했고, 음식을 담아서 돌아왔다. 다행히 그때 마침 빈 자리가 몇 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빈자리들은 다 찼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내 바로 뒤에 누군가 서있는 모습이 비쳐보였다. 밤이라 창 밖은 깜깜하고 실내는 밝으니 이렇게 거울처럼 비쳐보인다. 그런데 저 여성은 왜 밥을 안 먹고 저렇게 내 뒤에 서 있는 건가? 혹시 자리가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창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자리는 다 차있었지만, 다른 테이블들에는 그래도 빈자리가 꽤 있었다. 왜 저기로 가서 먹지 않는 거지? 꼭 굳이 여기 창가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내 뒤에 서서 나보고 빨리 먹고 비키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인가? 이때부터 갑자기 입맛이 확 사라지고, 남은 음식들을 얼른 입에 쑤셔박고 일어서서 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 뒤에 저러고 서있다고 해서 내가 꼭 비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단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사라진 입맛과 나빠진 기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자가 배식을 하는 식당에서 나는 절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안그래도 아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어떤 젊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남은 밥이 담긴 식판을 들고 일어나서 퇴식구 쪽으로 걸어가길래 속으로 엄청 욕을 퍼부었다. 아니, 나는 정말 먹지도 못할 음식을 산더미처럼 담아와서는 결국 저렇게 버리는 짓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육체노동은 고되고 배가 고플테니 많이 먹고 싶었겠지. 그럼 실제로 많이 먹어야 할게 아닌가. 왜 ˝저걸 다 먹어?˝ 싶을 양을 퍼담아 와서는 다 못 먹고 버리는 건지? 진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다들 엄청 많이 퍼가는데, 나중에 보면 대체로 음식들을 남기더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어쩌다 보면 많이 펄수도 있다. 그럼 어쨌거나 본인이 퍼왔으니 다 먹어야지. 안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담지말고, 적당양만 담아온 후에 먹다가 부족하면 더 담으면 될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나는 대개 밥풀 하나, 국물 한 숟갈, 반찬 한 조각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라 뒤에 그렇게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도 어쨌든 식판을 비워나갔다. 아무 맛도 못 느끼고 그저 꾸역꾸역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도 생각했다. 설마 나보고 비키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거야? 아니겠지? 설마 아니지? 그랬는데, 그 설마는 결국 맞았다. 그 여성은 내가 일어서자 잽싸게 테이블 빈 자리에 놓여있던 자신의 식판을 들고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일어서기 전에는 몰랐는데, 분명 그 사람은 테이블 빈 자리에 자신의 식판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럼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 될 일 아닌가? 빈 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제법 많았는데 밥 먹고 있는 사람 뒤에 서서 눈치를 주면서 기다린다? 왜?

일이 고되고 힘든데다가 휴식 시간도 한 번 뿐인데 그 귀한 휴식시간이 이렇게 힘들게 다 지나가버린다. 밥을 다 먹고 내 작업장으로 돌아오면 정말 한 시간 중 거의 50분 가까이 지나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줄을 덜 서고 좀 일찍 밥을 먹은 날에는 40분 가까이 지나있더라.

머리카락 길이와 성별 사이의 편견

사람들이 남자 화장실에서 자꾸 내 긴 머리를 보고 놀라서 요즘 출근할 때는 아예 작업복처럼 입고 다니는 후드집업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데도 화장실은 몇 개 있지도 않고 또 좁다. 짧은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도 줄을 서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짜증나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 놀라서 시간을 지체하면 그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저번에 한번 내가 임원으로 활동하는 조합에서 워크숍을 갔는데 일행인 남성들 중 머리를 길러서 묶고 다니는 사람이 나 포함 세명이었다. 나머지 머리가 짧은 남성이 더 소수였다. 그리고 여성 일행들은 모두 머리가 짧았다. 휴게소나 식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우리 일행들을 보고 저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머리 긴 남성이 셋이나 포함된 일행은 뭐하는 그룹인가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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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요. 안아주세요.

꿈을 꾸었다. 차가워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 무척 추웠다. 나는 눈이 가득 쌓인 어느 넓은 공간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한히 반복되는 어느 지옥인듯, 저주 혹은 마법에 걸린 듯, 나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갇혀 있었다. 왜 그렇게 거길 걷고 있었던 것인지,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등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고, 오래 걸은 탓에 너무 지쳐 나는 결국 눈 위에 쓰러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공간이 드넓은 눈 쌓인 평야에서 바닷가 언덕으로 바뀌어 있었다. 탁 트인 넓은 바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어느 큰 나무 아래 누워있었고, 누군가 내 곁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 부분은 그렇게 바꾸는 것이 좋겠어. 아니. 거기는 고치지 말라고 저번에 말했잖아. 어. 그래. 그래. 그렇게 해줘. 여성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약간 짜증이 묻어 있었다. 누구와 무슨 통화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내 시야에 그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그가 누군지 더 궁금해야 했다고 꿈을 깬 후에 생각했지만, 꿈 속의 나는 마치 그를 아는 듯,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나는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고, 그제서야 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전화를 끊었고 곧 내게 다가왔다. 넓고 푸른 바다와 그만큼 넓고 파란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강한 바다 바람이 그의 머리칼과 내 머리칼을 날렸다. 내게 다가오는 그의 머리 뒤쪽에 해가 있어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마구 날려서 그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내게 다가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추워요. 안아주세요. 그리고 잠에서 깼다.

깨고 보니 나는 이불을 차고 맨 몸으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추웠구나.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일러 온도를 올렸다.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꿈의 여운에 잠시 빠져있었다. 익숙한 목소리라고 꿈 속의 나는 생각했지만, 깨고 나니 그 목소리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했다. 얼굴은 보지 못 했다. 꿈 속의 나는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눈 쌓인 평원을 헤매어 찾아가던 이가 그였던 것일까?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고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찾아 오늘 일정을 보았다. 일터의 일정은 두어개 있었고, 개인 일정은 없었다. 더 자야지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시 잠들면 그 장면에 이어서 계속 꿈을 꿀 수 있을까? 간혹 그런 날들이 있었다. 꿈에서 깼다가 비몽사몽 간에 잠시 알람을 끄거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잠들었을 때 그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거나 같은 장면을 조금 다르게 다시 반복하거나.

다시 꿈 속에서 그를 만나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들지는 못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창 밖을 보며, 꿈에서 보았던 바다 풍경을 떠올렸다. 최근에 꿈에서 바다를 자주 보았던 것 같다. 실제로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았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부산이었다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산 허리에 있었던 우리 집에서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집은 좁고 낡았지만, 그 풍경 하나만은 참 좋았다.

생각이 부산으로 이어졌을 때, 문득 기억났다. 꿈에서 깨기 직전 들었던 귓속말. 추워요. 안아주세요. 라는 말.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때 나는 선수촌을 방문하는 귀빈들에게 영어 통역을 하는 자원봉사를 했었다. 영어를 그 정도로 잘 하지는 못했지만, 큰 역할은 선수촌을 소개하는 것이어서 그 정도는 외워서 할 수 있었고, 간단한 질문에는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우리 팀에는 미국에 살다와서 영어를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대부분 중요한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에는 그 친구가 메인으로 나갔고, 나를 비롯해 나머지 사람들은 보조로 귀빈을 모시고 온 일행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곤 했다. 실제로 내가 메인을 맡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 팀은 영어를 주로 하는 이들이 서너명, 중국어가 한 명, 일본어가 아마 두 명이었고, 아랍어를 맡은 여대생이 여러 명 있었다. 부산 외국어대학교 아랍어 전공 학생들이었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 아이들은 대부분 신입생이어서 아랍어를 썩 잘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귀빈들이 와도 메인은 아까 말한 영어를 네이티브 처럼 하는 친구가 맡았고, 이 여학생들은 보조만 맡았었다.

기억나는 상황 중 하나는 이 친구들이 젊고 예뻐서 아랍쪽 수행원들 중 귀족(혹은 왕족) 남성들이 자주 꼬드기곤 했다는 것. 일부다처제 국가에서 온 어느 왕족이 자신의 일곱번째(혹은 여덟번째) 아내가 되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꼬드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이 사람은 꽃다발을 들고 몇 번이나 찾아와서 나도 그 털이 많은 외모를 기억한다. 이 여학생 무리(아마 서너명이었던 것 같다.)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입생이 아닌, 즉 2학년 혹은 3학년이었던 여성이 있었다. 이 친구는 활달해서 우리 팀의 다른 남성들(대부분 나처럼 복학생이라 나이가 많았던)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그는 귀빈이 방문하지 않아 쉬는 시간일 때, 주로 다른 팀원들에게 다른 언어를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가장 먼저 배우고 싶은 말이 저거였다. 추워요. 안아주세요. 그는 이 말을 거의 모든 언어로 다 익혀서 어느 나라 남성을 만나더라도 이 말 한 마디로 꼬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는 더운 여름이었다. 우리가 대기하던 사무실에는 에어컨도 없이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두 대가 전부였다. 차라리 선수촌 외곽 나무 그늘에 나가 있는 것이 더 시원했다. 그런 때에 그는 우리 앞에서 마치 추위에 떨듯 몸을 떠는 연기를 펼치며,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으로 추워요. 안아주세요. 라는 말을 과장스럽게 말했다.

지금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이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외대 학생들 무리 중 그나마 나와 대화를 가장 많이 했던 아이였을텐데. 어렴풋이 얼굴이 기억나는 건, 신입생 중 가장 예뻤던, 그래서 아까 어느 일부다처제 국가 왕족이 여러 번 찾아왔었던 아이 밖에 없다. 콧등이 오똑하고 눈이 깊고 컸던 얼굴이 떠오른다.

꿈 속에서 저 귓속말을 했던 그는 과거 선수촌 귀빈팀의 그 학생들 중 누구도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은 보지 못 했지만 느낌이 그랬다. 아마도 어쩌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기억나지 않는 꿈 속의 인물을 떠올리려 노력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꿈 속의 그 바다 풍경이 더 잊히지 않는다. 이번 주말에는 차를 빌려 겨울 바다를 보러 가보고 싶어졌다. 이제 여의도에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 헌재 앞에는 좀 더 있다가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안주가 친절하고, 사장님이 맛있어요.

어제 어느 유흥가 술집 앞을 지나며 본 문구다. 이거 말고도 말이 되지 않는 다른 문구들도 더 붙어 있었는데, 이 말이 제일 어이가 없어서 기억해두었다. 안주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으며, 사장님이 왜 맛있을까? 먹어봤나? 이런 말이 안되는 문구를 붙여놓으면 젊은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막 찾아오려나? 나라면 오히려 더 안 갈 것 같은데.

가끔 온라인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 중,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만나기도 한다.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검색을 해봐도 딱 명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때에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아이들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 하더라. 그런데 최근에 보면 유행하는 어떤 표현들, 밈이라 부르는 것들을 온라인이 아닌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옛날식으로 생각해보면 유행어 같은 것이려나. 옛날에도 주로 티비에 나오는 유명한 배우나 코미디언들의 유행어가 있었다. 그것들과 요즘 주로 사용하는 밈들은 어떻게 다를까? 또 얼마나 비슷할까?

티비가 없고 남들이 자주 본다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사람들의 수다에 잘 끼어들지 못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사람들이 이븐하게 라는 아니 이분하게 라고 써야하나? 암튼 이 말을 자주 쓰던데, 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어떤 상황에서 쓰는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들은 다 웃고 있는데, 나 혼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웃고 떠들던 사람들도 나 때문에 흥이 깨져 버리곤 한다. 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약간 질린 표정으로 그냥 그런 게 있어요. 하고 만다.

지금 읽고 있는 책들

북플에서 글을 쓸 때는 피씨에서 쓸 때와 달리 여러 책들을 본문에 넣기가 불편하네. 책을 가져올 때마다 별점을 체크해야만 할 것 처럼 만들어놓았다. 지난 달 SF읽기 모임은 다들 일정이 생겨 한 달 뒤로 미뤘는데, 이번 달에는 윤석열 때문에 또 모임이 미뤄지고 있다. 이 책 [어둠의 속도]를 아직 다 읽지 못해 다행일 수도 있는데, 얼른 이 책을 마치고 다른 작가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 한 권만 추천한다면, [가면 산장 살인 사건]을 권한다고 하길래, 곧바로 구매했다. 확실히 몰입감이 대단한 이야기다. 다만, 급한 일 때문에 잠시 미뤄뒀다가 나중에 한 번에 읽을 여유가 생길 때 읽어야지 하고 미룬지 조금 시간이 지났다. 과연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리 기대가 크다.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작가들 중, 가장 읽고 싶은 작가는 어슐러 K 르 귄이다. [어둠의 왼손]이라는 유명한 책을 읽고 싶으나, 평생 전두환 아들 출판사 책은 사지도 읽지도 않겠다고 마음 먹고 20년 훨씬 넘게 그 다짐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만, 혹시 시공사가 망하거나(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시공사가 르 귄의 판권을 모두 포기하거나 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과연 내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냥 빌려 읽으면 되지 않냐고 말했는데, 그 이름이 박힌 책을 손에 쥐고 싶지 않은 내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 물론 전재국이 시공사를 팔아치웠다는 기사를 읽기는 했지만, 그 이면에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시공사 외의 다른 출판사와 유통사는 그대로 갖고 있는 사실을 보면 대외적으로만 매각한 것으로 하고, 뒤로는 어떤 다른 형태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설사 완전히 팔았다고 해도 긴 시간 전두환 부정 축재 재산을 기반으로 설립하고 성장한 출판사라는 사실은 변함 없으므로 시공사 책을 사거나 읽을 수는 없다.

거의 20년 가까이 지켰던 삼성 불매는 엘지가 휴대폰을 만들지 않아서 무너질 위기에 처했었고, 값싸고 성능이 괜찮다는 중국산 폰으로 몇 해를 더 버텼는데, 이게 가성비는 좋지만 본질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들이 있어서 결국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삼성 휴대폰과 태블릿을 구매하며 깨졌다. 그럼 시공사 불매도 그냥 깨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싶긴 한데,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이다. 긴 시간 지켜온 삼성 불매를 깰 때의 그 마음이 참 쉽지 않았다. 정말 전화도 많이 하고, 이동 중에 휴대폰으로 업무도 많이 보는 상황이라, 본질적인 기능에서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폰은 일단 가격에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고, 안 써봤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고 내 주위 아이폰 이용자들을 보면서 느꼈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암튼 르 귄의 책들을 계속 포기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검색해 볼 생각도 못하고 지냈는데, 이번에 검색해보니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그리고 어스시 전집을 보았다. 음, 이건 지난 1년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고 나를 설득하며, 빠른 속도로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했다. 이번 연말에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조용히 책이랑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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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19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스시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신뢰하는 친구로부터 강한 추천을 받아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ㅎㅎ

감은빛 2024-12-19 22:12   좋아요 0 | URL
오늘 책 받았어요. 제가 먼저 읽을게요. 물론 시간이 걸릴테니 그 중간에 다락방님께서 먼저 마치실 수도 있겠지만. ㅎㅎ

잉크냄새 2024-12-19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아직 삼성 불매 쭉 이어가고 있어요. 그다지 고민할 만한 제품도 없지만요.

감은빛 2024-12-19 22:14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잉크냄새님. 그렇다면 혹시 휴대폰은 아이폰을 쓰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이 글에도 썼지만, 당시에 정말 열심히 알아봤는데, 아이폰을 제외하면 삼성 밖에 답을 찾지 못했거든요.
 


더 단련하고 더 단단해져야 해

비상 계엄의 후폭풍이 이 나라를 더 깊은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지경에 와서도 윤석열을 지켜야 한다고, 탄핵은 안 된다고, 당장 본회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아도,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잊어버린다고 말하는 빨간당 의원이라는 작자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본다는 뉴스 클립을 보면서 이 표현 왠지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대사였다. 물론 그 전에 누군가 썼을 법만한 대사라서 다른 출처가 더 있을수도 있겠지. 문제는 개와 돼지를 폄하한다는 것도 있지만, 1년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그냥 표를 주더라는 저 말이 실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빨간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는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연령대 시민들, 또 파란당으로 나오면 공약도 안 보고 덮어놓고 찍어주는 또 다른 지역과 연령대 사람들. 나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회 앞에서 이 추운 겨울에 밤새 거리를 지킨 아름다운, 훌륭한 시민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다가도, 그들 중 대다수가 저 보수 꼴통 민주당 지지자일거라는 생각이 들면 씁쓸하고 허탈하다. 결국 이재명과 박주민과 그외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본질적으로 빨간당 의원들과 다르지 않다. 이준석 같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 조국 같은 위선자가 야당이랍시고 윤석열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우습기 그지 없다.

그래사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넓게 봐야 하고, 단순히 전해지는 이야기를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더 단련하고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이불 VS 찬바람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달렸다.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발가락 끝부분은 살짝 얼은 느낌이라 한동안 달려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온 몸이 굳어서 스트레칭을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이런 날일수록 워밍업을 더 긴시간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쉽지 않다. 그래도 일단 달리다보면 몸에 열이 나고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달려진다.

그런데 또 달리다보면 확실히 굳어 있는 몸으로는 제대로 된 자세가 안 만들어지고, 자꾸 관절에 부담이 간다는 걸 깨닫는다. 달리기가 쉽지 않은 시기다. 단 하나 좋은 점은 땀이 덜 난다는 것. 역시 무엇이든 장단점은 있다. 무조건 나쁘거나, 무조건 좋은 것 세상에 없다.

윤석열이 멍청하게 계엄을 선포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됐다. 하루하루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이 답답하고 괴롭다. 이 주제에서 벗어나 그냥 뭔가 다른 일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 일단 그 꼴보기 싫은 얼굴과 듣기 싫은 목소리를 좀 그만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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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Tlla 2024-12-09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불을 박차고 운동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너무 추우니까 이불 안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네요. 그리고 너무 화가 났는데 이제는 포기하는 마음이 되어서 그런가 뉴스도 안 보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 안 듣고 안 보니까 좀 낫긴 하지만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겁니까?

감은빛 2024-12-19 22:18   좋아요 0 | URL
답이 제법 늦었네요. 겨울이라 확실히 운동하러 나가기까지 많이 망설이게 되어요. 얼른 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겨울이니 추운 것이 당연하겠지. 겨울을 겨울 답게 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올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탄핵 결정을 내렸으나 매일 또 수많은 뉴스가 우리를 괴롭게 만드네요. 당분간 뉴스를 끊어야겠어요.
 

요즘은 일찍 잠드는 날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춥고 지쳐서 10시 이전에 잠들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아마 거의 10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조금 일찍 잠든 그런 날엔 꼭 서너시쯤 잠에서 깨곤 한다. 아마 3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깨지 않았을까 싶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었고, 한참 후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휴대폰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자정 즈음에 부재중 전화가 두세개 찍혀있었고, 카톡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에 안 읽은 대화가 수백개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태블릿을 열어 뉴스를 찾았다. 속보나 특보 등의 머릿말을 단 뉴스 동영상들이 많았다. 하나씩 찾다가 그 문제의 영상을 보았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포동통한 얼굴이 비상계엄을 선언한다고 말하는 말도 안되는 영상. 나중에 어디선가 누군가 이 영상을 딥페이크 영상이라 생각했다고 써놓은 걸 보았다. 그래.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거의 똑같이 복제해 가짜 영상을 만들수 있다고 하니.

어쨋든 국회의원들이 발빠르게 모여서 계엄해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했고,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뉴스도 뒤늦게 보았다. 결국 상황은 이미 다 끝나있었다. 평소 이번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상식도 없고 멍청한가 라고 생각하며 참 답답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멍청함 덕분에 이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미리 군대를 움직여 국회를 철통같이 막아놓고,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 등을 총으로 막아섰다면, 서울 시내 주요 건물들과 교차로에 장갑차와 탱크가 즐비한 아침 출근길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각종 언론사들이 군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뉴스는 다시 80년대 땡전 뉴스처럼 땡윤 뉴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엄령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戒嚴令 경계할 계, 엄격할 엄. 엄격하게 경계하겠다는 포고령이다. 윤석열이 어제 내리기 이전에 이 나라에 12번 내려졌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장 많이 계엄령을 내린 인간은 독재자 이승만으로 7번이라고 했던가? 그 다음이 독재자 박정희이고 이승만이 7번이면, 아마 박정희는 4번이겠지.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전두환이 한번 더 내렸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79년 박정희가 죽은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평화로운 이 나라에서, 아니 물론 누군가는 평화롭지 못했을 것이고, 그건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든 이 나라에서 대체로 대부분의 국민들도 평화롭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계엄령을 선포할 그 평화와는 또 다른 측면이니까. 암튼 정말 아까 누군가 딥페이크라고 의심했다고 할 정도로 이 선포는 뜬금없고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야당 지도부나 대통령실 참모들도 몰랐다는 추측들이 나올 정도로 급하게, 이렇게 그냥 선포할 성질의 포고령이 아닌데. 한 마디로 그냥 촌극이다. 영어로는 해프닝. 문학으로는 꽁트, 방송으로는 코메디극이다.

이번 대통령 이전에 겪어본 대통령들 중에서, 아니 이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다시 미군정의 지배를 받은 후에 새 정부를 구성한 날 이후로, 즉 건국 이후로 단 한 명도 멀쩡한, 제대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내 대답은 아니, 없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노태우까지는 언급할 가치가 없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나름의 공과 과가 있겠지만 둘 다 과가 크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다. 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혹은 사회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노무현은 내 기준으로 최악의 대통령이다. 새만금 파괴, 경부고속철도 건설로 금정산, 천성산 파괴, 이라큰 파병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 부안 핵폐기장 갈등 등 큰 싸움들에 직접 참여했었고 그외 작은 싸움들도 끝없이 많았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도 당연히 좋은 대통령은 아니었고, 그들 시대에도 크고 작은 갈등과 싸움은 많았지만, 내 기준으로 최악은 단연 노무현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에도 어쩌면 저 인간은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말로 진지하게. 이명박은 이름 명박을 알파벳으로 mb라고 부르며 메모리 용량이 2메가 밖에 안된다고 2메가로 많이 불렸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나도 종종 그렇게 부르며 그 갑갑한 시절을 견뎠던 것 같다. 이명박은 한편으로 외모 때문에 쥐에 비유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건 사실 좀 심각한 외모 비하라서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었다. 아마 당시에 나는 약간의 거부감은 느끼면서도, 한두번쯤은 그 비유를 썼던 것 같다. 박근혜도 참 답이 없다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상식이 부족하고 멍청했는데, 박정희의 공주라는 의미로 공주님이라 불린 것 외에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통용되는 다른 멸칭들이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용한 적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암튼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문재인까지 참 답답하고 갑갑한 인간들이었는데, 이번에 윤석열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고 있자니, 그들은 오히려 양반이었구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 타짜 2편이 나왔을때 1편과 비교해 완전 망작이라고, 어떻게 타짜라는 이름을 달고 이 따위 영화를 만들 수 있냐고 엄청 안타까워 했었는데,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3편이 나오자, 2편은 오히려 아니 차라리 훌륭한 명작이라고 칭찬할 수준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3편이 총체적으로 엉망인 것이고 이건 뭐 망작의 작 글자를 붙이는 것이 어색한 그냥 쓰레기였다. 타짜2는 3편에 비해 엄청나게 잘 만들기도 했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추억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뇌에서 한번 더 아름답게 포장하는 작업을 거치며,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타짜2와 타짜3 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로 엉망인 인간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다보니 차라리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 나았다는 착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비교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이 그만큼 나쁜 인간이라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또한 딱 그만큼 나쁜 인간들이었으니까.

계엄령 선포 이후 벌어진 한바탕 촌극이 국회 계엄해제 결의안 가결 기준으로 약 3시간, 공식적으로 다시 해제 선포 기준으로 약 6시간만에 마무리 되었다. 또 온라인 어디선가 누군가 이걸 기네스북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과연 이보다 짧게 끝난 계엄령이 있었을까?

자, 이제 윤석열은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그에게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체포를 당할수도 있고, 탄핵을 당할수도 있고. 그 외에 다른 어떤 길로 가더라도 그 자리를 더 길게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이라는 그리 썩 좋지않은 전례를 겪었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이 그렇게 무능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윤석열도 없었다.

지금부터 다가올 혼란의 시기가 두렵다. 특히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고 이 자리에 새롭게 앉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빨간당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파란당이 마치 자신들이 선인양, 진보인양, 국민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떨어대는 모습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과연 이 나라는 언제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인류가 멸종하기 전에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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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2-0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누가 카톡에 올려준 영상으로 봤는데...첨엔 이게 뭐지..하다가 혈압오르다가..
조소를 금할 수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네요..ㅎㅎ
탄핵이 압당겨질 사건을 쳐버렸으니...내란죄로 처벌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네요..

감은빛 2024-12-04 17:0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자멸이라고 썼어요.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하기 싫어서 그랬다는 얘기와 술먹고 그랬다는 설이 도는데, 당연히 둘 다 아니겠지만, 정상적인 판단을 절대 아니죠.

법적 해석으로 처벌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처벌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희선 2024-12-05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서 이 일을 아셨군요 그동안 계엄령 많았군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제 밤에 보고 무슨 저런 일을 했네요 시간이 흐르고는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제돼서 다행이기는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4-12-19 22:21   좋아요 0 | URL
에휴, 희선님. 그날 그렇게 국회에서 해제 결의를 내리지 못했다면, 우리는 정말 끔찍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자고 저런 인간이 대통령으로 뽑힌 건지.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지만, 탄핵결정을 내렸던 날은 추위에도 그 국회 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잉크냄새 2024-1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의 상황이 기가 막혔다면 오늘은 기가 차네요. 전 쿠데타보다도 그 이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더 두렵고 치가 떨리네요. ‘쿠데다, 까짓것 그냥 한번 해봤어‘ 라고 말하는 반란수괴와 ‘쿠데타, 까짓것 오죽하면 했겠냐‘는 부역자들, 그리고 그 뒤에서 ‘쿠데타, 까짓것 한번 해봐, 오빠‘ 라고 반란수괴를 가스라이팅 했을 대통년까지. 절망적이네요.

감은빛 2024-12-19 22: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잉크냄새님. 정말 뉴스 보다가 화가 나서 저런 인간들은 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야가미 라이토처럼 데스노트라고 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이젠 뉴스를 당분간 끊어야겠어요. 탄핵 결정은 내렸는데,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요.
 

지난 오늘 공간에 글이 없는 날

자주 쓴 내용이지만, 어쩌다 북플을 열면 꼭 지난 오늘 메뉴를 열어본다. 과거 오늘 내가 뭘 썼을까 궁금하기 때문에. 많을 때에는 대여섯개 있고, 적을 때는 오늘처럼 없다. 과거 11월 마지막날은 언제나 바빴나보다. 알라딘 서재를 거의 20년 했을텐데, 글을 한번도 안 썼다. 물론 1년 중에 그런 날이 좀 있을 것이다. 내가 북플에 매일 들어와보는 것도 아니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들어온 날 중에도 몇번 봤었다. 지난 오늘 공간이 오늘처럼 비어있는 날들.

그래서 내년 오늘 북플을 열어볼 나를 위해 자판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요즘 내 상태가 좀 아니 많이 바닥을 찍고 있어서 사실 뭔가 쓸 거리가 별로 없는데, 그냥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보자.

미래의 나에게

우리는 3차원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1차원과 2차원 그리고 3차원까지는 인지 아니 인식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냥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은 알 수 없다. 많이 궁금했다. 4차원을 산다는 건 어떤 방식일까? 누군가 고차원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가고, 과거에서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차원에서는 시간의 축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떻게 시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 글을 열어볼 나를 생각해본다. 내년 오늘이거나, 아니면 내후년 오늘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해 오늘이거나. 혹시 오늘 쓴 글의 어떤 내용이나 키워드 때문에 검색으로 찾아서 열어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시간이 많은 어느 날 작정하고 특정 기간의 글들을 쭉 일어보다가 열어볼 수도 있겠지. 그게 언제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 오늘처럼 끝 모를 바닥에 쳐박혀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비록 나는 몸도 마음도 어떤 측면으로 봐도 밑바닥에 추락해 위가 보이지 않지만 괜찮다. 또 다시 괜찮아지고 또 잘 살아지고 또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차원의 어떤 세계를 살아가는 어떤 존재가 아닌 수많은 과거를 안고 미래를 향해가는 우리 인간은 끝없이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희망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 희망을 조금씩 조금씩 줄였다. 계속 줄였더니 이제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것이 그렇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그냥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의 나는 그럴수 있을까?

배려하는 사람

최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인 사람들. 일부러 배려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 행동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냥 주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는 것이 좋고, 만약 그 사람이 내게 뭔가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면, 정말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반성한다. 나 자신은 왜 늘 저러지 못할까? 나는 왜 모나게 생겨먹어서 남에게 상처주는 일만 잘 할뿐, 왜 남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지 못할까? 나도 존재만으로 좋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해야 하겠지. 뭐든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일은 없으니.

11월은 좀 끔찍한 달이었다.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꼬이고 망하고 무너질 수 있을까? 12월이 되면 뭔가 좀 바뀔까? 그냥 하루가 더 지날 뿐인데 우리는 숫자를 달리 붙여서 새로운 달이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라도 이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른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겠다.

달이 바뀌는 것이 내게 어떤 주술이나 마법처럼 다른 계기를 만들어 주길.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이 더 활기차게,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나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언젠가 이 글을 열어볼 미래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함이 전해지기를. 그런 마음으로 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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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1-3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해가 저에게 운이 없는 해로 느끼고 있어요. 초반부터 지금까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새해가 되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운수가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요.ㅋㅋ
작년까지 몇 년 동안은 운이 좋다고 느꼈어요. 새해는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희선 2024-12-05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해 11월 마지막 날은 이번보다 좋기를 바랍니다 다음해를 살다 보면 괜찮아지기도 하겠지요 더 안 좋으면 안 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