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곤조 혹은 고집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곤조 있는 나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또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의 고집이 마음에 듭니다. 같이 일해보고 싶습니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고집이 쎈 사람이군요.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예전에 친했던 어느 녀석은 누가 네 고집을 꺾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어찌보면 같은 면을 보았을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맘에 들기 위해 변해야 할까. 변하지 말아야 할까. 아니 과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변할수는 있을까?
답을 찾고 싶어서 밤 늦게까지 술을 잔뜩 마셨는데, 돌아오는 건 피로와 숙취뿐이다.
둘. 취향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그닥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맘을 바꿔 기억을 더듬었다. 뭔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기억이 안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속에서 해마다 보았던 영화제목과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넘겨보았다.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동사서독>과 <타락천사>였다. 특히 <타락천사>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번 보았을 뿐 아니라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뭔가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를 기억해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지만,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질문 자체를 깨끗이 잊고 바쁜 일상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서였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등 앞에 서있는데 문득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타인의 취향> 아니 그 감독의 다른 영화 <룩 엣 미> 였던가. 아녜스 자우이 감독은 아내가 무척 좋아하는데, 같이 살면 취향까지 비슷해지는 건가.
셋. 변화
자료를 찾기 위해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했는데, 내가 예전에 써놓았던 글이 검색되어 나왔다. 이거 좀 신기한데! 어느새 나는 자료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처음 보는 글인양, 내가 썼던 글을 읽고 있다. 낯설다. 그땐 이런 글을 썼었구나.
영화 <봄날은 간다> 였던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때는 사람도, 사랑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그런 말을 계속 머리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사람도, 사랑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한다.
넷. 다시 고집
오래전 내 고집을 싫어한다고 했던 이가 겪었던 나와 며칠 전 내 고집 때문에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했던 이가 보았던 나는 과연 같은 나였을까, 다른 나였을까? 나의 곤조가 좋다던 이와 나의 고집이 마음에 든다던 이는 같은 면을 보았던 것일까, 다른 면을 보았던 것일까?
내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머리가 아프다. 그냥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작고, 여리고, 보잘것 없고, 곤조를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상처주고, 적을 많이 만들어 왔던 나였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이해하고 좋아해주었던 이는 분명히 있었다.
갑자기 이승환의 '나는 나일뿐' 이 듣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