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왜 내 옆엔 아무도 없는 건지 

최근에 큰애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바로 '아이유'였다. 꽤 오랫동안 '소녀시대'를 좋아했는데, 이젠 아이유로 완전히 넘어갔나보다. 나는 아이유의 노래가 꽤 유행할때까지도 그게 가수 이름인지조차 몰랐는데, 어느날 한 친구녀석에게 그 얘길 했다가 거의 싸울뻔했다. 녀석은 어떻게 '우리' 아이유를 모를 수 있냐고, '삼단고음'이란 검색어가 아주 오랫동안 포털사이트에 상위권에 있었는데, 한번도 못봤냐고 막 따지고 들었다. 아이유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촌뻘 되는 녀석이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라니! 

암튼 큰애는 아이유의 '좋은날'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한 이삼일쯤 전이었다. 아침에 작은애가 응가를 하는 통에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어쩌구 하느라고 아내와 내가 정신이 없을 때였다. 혼자 부엌(겸 거실)에 앉아서 놀고 있던 큰 애가 그 노래의 가사를 바꿔서 부르기 시작했다.  

'왜 내 옆엔 아무도오 없는건지 ~ ♪ 빰빰빠바밤빰~빰~ ♪ 엄마 아빠는 모두 동생곁에 있는건지 ~ ♪~ 빰빰빠바밤~빰~♩~' 

동생이 태어난 지 이제 곧 1년. 약 5년간 독점하고 있던 엄마, 아빠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에게 빼앗긴 채 지나간 세월이었다. 그동안 숱한 설움과 고통과 화를 참아왔을 것이다. 가끔 백창우 동요집에 나오는 '애기때문에 못살겠어~ ♪ 애기때문에 못살겠어~ ♪ 할퀴고~ 차고~ 할퀴고~ 차고~ ♪' 이 노래를 종종 부르기도 했는데, 이번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노래가사를 바꿔가며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도 동생만 안아주고, 동생만 예뻐한다고 섭섭해할까봐 나름 신경을 쓰긴 했지만, 녀석이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제일 언니가 되어서, 선생님이나 우리가 요구하는 점도 많아졌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평소의 어리광과 짜증내는 습관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런 부분도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불쌍한 녀석. 나도 맏이라서 맏이의 설움을 잘 안다. 아이를 불러서 꼭 안아주고, 앞으로는 아빠가 네 옆에 있어줄꺼라고 말해줬다. 정말이야! 아빠가 늘 네 옆에 있어줄게. 

둘. 빠르고 강한 녀석 

우리집 막둥이, 작은 녀석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놈이다. 아마 '에너자이저' 광고를 찍어도 될 것이다. 큰애는 워낙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누워서 입을 재잘재잘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말이 무척 빨랐고, 대신 기거나, 걷는게 무척 느렸다. 큰애가 지금 둘째만했을 때, 기거나 뭔가를 잡고 서서 눈에 띄는 물건들을 낚아채고, 입에 넣고 그랬지만, 그리 재빠르지 않았고,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큰애만 보다가 작은애를 보니, 이 녀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특히 뭔가를 노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손을 뻗어 낚아 채는 실력은 정말 타고난 사냥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빠르다. 그리고 손 힘은 또 어찌나 쎈지. 순간적으로 녀석이 힘을 쓸때는 벌써 아내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다. 왠만한 물건들은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린다. 설마 이건 못들겠지 싶어서 방삼하고 있으면, 어느새 들어올려서 입으로 가져간 다음이다. 

큰녀석은 작은녀석에 비해서는 순하고, 얌전한 편이다. 만약 어떤 물건을(예를들어 인형이라던가, 움직이는 장남감이라던가) 놓고 둘이 대립하면 결국 이겨서 물건을 차지하는 건 작은 녀석이다. 큰 녀석은 오히려 울면서 엄마나 아빠를 찾는다. 오늘 저녁에도 큰 애가 손에 쥐고 있던 풍선 손잡이를 작은 애가 순식간에 낚아채어 뺏아버렸다. 큰애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아내는 큰애를 달래면서, 작은애가 쥐고 있는 풍선을 도로 뺏아서, 큰애에게 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뺏기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결국 아내도 쉽게 뺏지 못해서, 나까지 합세하여 겨우 풍선을 큰애에게 되찾아주었다. 벌써부터 이러니, 나중에 작은애가 점점 자라면, 손쉽게 언니를 이길 것 같다. 그럴 때 부모가 잘 중재를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들은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 큰애는 작은애를 아주 귀여워하고, 작은애는 또 큰애를 엄청 좋아한다. 작은애가 큰애 얼굴을 할퀴거나 머리칼을 잡아뜯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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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9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살짜리가 부르는 아이유라~넘 귀여울 것 같아요.
개작도 가능하다니 천재 아닌가요?@@

남동생이 9살 터울로 동생을 봤어요.
애 아빠는 첫정이 뭔지 큰조카에게 아직 절절하고,
애 엄마는 막내가 이쁘고 귀엽다고 하고요.

전 아들이 징그럽게 커서 그런지, 아기들이 다 예뻐요~^^


감은빛 2011-04-19 01:27   좋아요 0 | URL
헉! 아홉살 터울이라니! 대단하네요.
아기들은 다 예쁘죠!
조금씩 둘째가 크는 것을 보면서,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꼬물꼬물 쪼끄만 녀석을 계속 보고 싶은데 말이죠! ^^

무해한모리군 2011-04-1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친구분 은근 귀여우시네요 ㅎㅎㅎ

저는 언니오빠랑 여덟살 일곱살 차이인데,
저희 언니도 저희 둘과 비교했을때 좀 순한거 같아요.
언니 옷도 제가 맨날 뺏어입고 그랬는데...
아.. 오늘 언니한테 전화한통 넣어야겠어요..

그래도 형제가 있는건 세월이 가면갈수록 참 좋은거 같아요.
딸아이 둘이라니 얼마나 예쁠까요? 아응 부러워라 ㅎㅎㅎ

감은빛 2011-04-19 13:11   좋아요 0 | URL
귀엽다기 보다는 징그럽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요.

휘모리님도 형제간에 나이차가 많군요!
흠 우리 애들 다섯살 차이는 큰 터울도 아니었군요.

휘모리님은 계획 없으신가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는게 더 좋은 것 같더라구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4-1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네요. 너무 귀여워요^^
특히 첫째 아이는 작사에 소질이 있는게 아닐까요?ㅎㅎㅎ
보통 동생들이 더 강해요. 어느 집이나...
큰 아이는 순해서 져주고,동생이라 져 주고, 고지식해서 져주죠..ㅎㅎ

감은빛 2011-04-20 13:30   좋아요 0 | URL
아, 보통 동생들이 더 강한거였군요.
하긴 보통 큰애들이 동생을 위해서 양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울 첫째는 노래를 엄청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사를 바꿔부른 걸 즐기나봐요.
이번 아이유 노래를 바꾼 건, 정말 기발해요!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니까요!

루쉰P 2011-04-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며 아이들이 눈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너무나 귀엽네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대단한 노고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저도 마음 강하게 먹고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들 나면 정말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려구요. ^^ 각오를 하게 되네요.

감은빛 2011-04-20 13:32   좋아요 0 | URL
좀 전에 루쉬님의 댓글에 '저랑 비슷한 면이 가끔 보인다'는 글을 남겼는데,
아이를 좋아하는 면도 저랑 비슷하네요. ^^
루쉰님은 따로 각오하거나 맘먹지 않아도, 그냥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그런 사람인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4-2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돌 가수들은 90년대 가수들에 비해서 노래를 잘 부르더군요.립싱크가 없어지면서 생긴 결과지요.옛날 가수들이 노래를 잘했다는 건 과장입니다.요즘 아이돌 가수보다 미모도 떨어지고 노래도 못한 사람들이 꽤 있었지요.

감은빛 2011-04-25 13:12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것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들이 많더라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노래들을 공감해주기가 쉽지 않던데요.
노래도 다들 비슷하게만 들리고....
 

아직은 저항의 나이


눈꽃
너는 피어라 나는 네 안에 지마
그래도 울지 않으리
이마 위에 아이 눈썹 만한 눈이파리
예수가 죽어 간 나이
시인이 요절한 나이
초월하지도 못했네 순응하지도 않았네
아 아직은 저항의 나이
내가 쓴 길도 내가 지운 길도
덮고야 마는 단호한 눈발이여
앞선 발자국 하나 없이 내 흔적을 남겨서
당신에게 가야하네
눈꽃 피는데, 당신에게 닿기도 전에
눈꽃만 피는데,
우두둑 솔가지 부러지고
나는 먹먹한 눈물 한 방울로
길을 녹이네


문동만 / 아직은 저항의 나이 / 삶이 보이는 창




한때 운동권이었거나 진보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대체 몇 살이 되면 더이상 진보적이지 않게(보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많은 선배들이 나도 한때는 운동권이었느니 하고 썰을 풀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한숨만 나온다. 그런 모습으로 내게 큰소리치는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을까? 저 나이가 되면 그런 부끄러움마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사람이 무뎌지는 것일까? 진보는 날카로움이라고 했건만 나이를 먹어가면 무뎌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궁금증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똑같은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인가? 글쎄 어떨까? 나이가 많이 들어도 멋지게 살고 계신 선배님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멋지게 살지 못하는 선배들이 사실은 훨씬 더 많다! 나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한참 이른 것 같지만, 나는 혹 어느 후배에게 한심한 선배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다. 아직 한창 어릴때(그저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젊은 열정만으로 똘똘 뭉쳐진 말썽덩어리였을 때)의 나는 선배들 욕을 참 많이 했다. 그땐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선배들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서 싫어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자연스레 운동을 접는 선배를 보면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을 접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혹은 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길이 아주 어긋난 길이 아니라면 박수를 보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욕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아주 어긋난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간혹 자신이 새로 선택한 길이 옳다고 여기고, 진보나 운동을 그저 어린 치기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내게 하루라도 빨리 자기처럼 되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아, 스스로를 386세대라고 자부하면서, 나에게 어서 빨리 철이 들라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 정말 싫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가고 있을까? 나는 아직 처음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젊은 날의 내가 보기에, 난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는걸까? 글쎄 나이를 먹을 수록 이런 것들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

가끔 누군가가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 이라고 답한다.(신기하게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스물아홉이란 내게 어떤 상징을 지닌 숫자이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 강사는 나이가 사십대 중반쯤 되었는데, 절대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늘 스물아홉 이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 해에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은 영원히 스물아홉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이에게 스물아홉과 나에게 스물아홉은 아마 다른 상징을 가진 숫자이겠지만, 나도 그이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 가끔 그런 장난을 해본 것이다.  

나는 이십대의 치기어린 열정과 에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좋다! 세상에 대해 한껏 날을 세운 당찬 기백이 좋다! 좌충우돌 여기저기 부딪히고 찢기어 상처입은 순수함이 좋다! 뭐하나 거리낄 것 없이 마음가는 대로 살아가는 자유가 좋다!

서른을 넘어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마흔을 훌쩍 넘긴 어느 날에도 나는 당당하게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문동만 선배처럼 살아간다면, 충분히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 예전 블로그 글을 살짝 다듬어서 옮깁니다. 
여기서 돌발퀴즈 하나 나갑니다. 
이 시집의 표지에 실린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요?
댓글로 정답을 맞춰주신 한 분께 제 맘대로 선물을 하나 보내드겠습니다.
참고로 2007년엔 평택 대추리, 2008년엔 기륭전자 투쟁현장,  
2009년엔 용산참사현장에 가면 늘 이 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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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4-1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모르겠어요.ㅠ
하지만 감은빛님 돌발퀴즈는 좋아요.
종종해 주세요.ㅎㅎ

감은빛 2011-04-18 16:07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그냥은 어려울것 같아서, 힌트를 최대한 드렸는데....
돌발퀴즈를 자주 하고 싶어도, 뭐 내세울 상품이 별로 없어서요. ^^

2011-04-18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4-18 15:58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힌트를 너무 많이 줘서, 쉽게 맞추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곧바로 맞춰버리셨군요. ^^

2011-04-18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8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4-1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은요...?

감은빛 2011-04-18 17:42   좋아요 0 | URL
앗! 저 위에 댓글이 비밀댓글이었군요. 죄송!
정답은 송경동 시인입니다.
항상 투쟁현장에서 볼 수 있는 분이지요.
기륭 대책위에서는 대표였던가 그렇고,
용산참사 대책위에서는 집행위원장이가 뭐 그런걸 맡고 계셨었죠.

노이에자이트 2011-04-1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운동권 출신들은 사상은 진보적인 것 같지만 실제 하는 행동은 권위주의적이죠.학번 따지고 나이 따지고...게다가 성격도 독선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구요.그리고 별로 머리에 든 것도 없는 것 같고...

감은빛 2011-04-18 17:56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많죠.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그렇게 권위적이고, 학번이나 따져대고,
독선적이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이유는 학생운동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의 틀을 벗어나 좀 더 넓게 보고,
운동을 해보면 좀 달라질 수도 있을텐데요.

대다수의 운동권 출신이라는 분들이 80년대 말에 최루탄에 눈물 좀 쏟아보고,
각목 좀 휘둘러 봤다거나, 보도블럭 깨뜨려서 던저봤다거나.
그런 경험들이 한계인것 같더라구요.
어디가서 운동권 출신이라고 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분들이 또 얼마나 열심히 얘길하고 다니는지 원!

노이에자이트 2011-04-19 15:03   좋아요 0 | URL
너희들이 육이오를 알아? 하는 소리 들어서 지겨웠던 세대들이 이젠 자기들이 똑같이 인생후배들에게 잔소리 하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9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이 시집 저도 가지고 있는데~~~
돌발퀴즈 넘 늦게 봤네요.

전 마흔을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고 보지 않고요, 경계를 지우는 나이라고 봐요.

감은빛 2011-04-19 01:24   좋아요 0 | URL
네, 양철님이라면 쉽게 맞추셨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경계를 지우는 나이라,
어떤 깊은 뜻이 있는 말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요.

루쉰P 2011-04-1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항의 나이라 전 꿈을 잃은 자가 저항을 잃어버린 것이라 여겨요. 그 꿈이 당장에는 실현시킬 수는 없다고 해도 1%라도 그 쪽 방향을 향해 가는 것, 물론 살면서 전체적으로 그 방향을 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쪽으로 그 쪽으로 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할 때 저항의 나이라 여겨요.
전 아직도 저항 중이죠. 푸훗.

감은빛 2011-04-20 13:25   좋아요 0 | URL
루쉰님의 진지하고 성실한 댓글은 늘 저를 흐뭇하게 합니다!
루쉰님 저랑 비슷한 면이 가끔 보여요.
고맙습니다!

저녁바람 2011-04-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다소곳한 글이네요.

감은빛 2011-04-20 13:27   좋아요 0 | URL
다소곳하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음 어떤 뜻으로 남긴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5-1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 달의 마이 페이퍼에 당선되신 것 축하드려요. ^^ 이름 발견하고 바로 들어와서 축하드립니다.

저도 너무 부끄럽게도 당첨이 됐는데 상품으로 받은 알사탕 4000개를 바꾸니 2만원 너치 책을 살 수 있더라구요. ^^ 완전 신나서 기절할 뻔 했어요. 그걸로 일요일 무료한 근무를 어떤 책을 살까하며 살 떨리게 고민하면서 주문했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1-05-15 23:2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저도 루쉰님께서 당선된 것 봤어요!
예전에는 마일리지로 주더니, 요즘은 알사탕으로 바뀌었네요.
뭔가 적응이 잘 안되지만, 그래도 뭐 당선된 건 감사한 일이지요.

그 덕분에 무료한 시간을 흥미롭게 보냈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안읽은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당분간은 책을 사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자꾸만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게 됩니다.
조만간 또 주문할 것 같네요. ^^
 

하나. 올빼미 

아무래도 나는 야행성동물인가봐. 아무리 피곤해도 12시만 넘어가면 왜 잠이 오지 않는 걸까? 내 불면의 역사를 돌아보려면 시간을 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아마도 열살이 채 되기도 전이었던 같아. 요 앞에 빌 브라이슨의 책에 대한 서평에도 썼지만, 이때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다른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래서 밤마다 맘껏 책을 읽을 수 있었어. 같은 방을 쓰던 여동생은 쉽게 잠드는 편이었고, 한번 자면 탱크가 지나가도 깨지 않는 아이였지. 나는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밤마다 책을 읽곤 했어. 

'올빼미' 이건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어. 부모님이 보시기에 나는 참 징그럽게도 잠을 안자는 아이였을거야. 그리고 이제는 징그럽게 잠을 안자는 어른이 되어버렸지. 아버지는 단순히 대표적인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에 나를 '올빼미'라고 불렀을거야. 아마도, 그런데 올빼미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것도 아셨을까? 

둘. 술 한잔 

혼자 살 때, 잠이 안오면 소주를 한병 사들고 들어와, 담배 연기를 안주삼아 홀짝거리곤 했어. 술과 담배와 음악과 책이 긴 불면의 밤을 함께 해준 동무들이었지. 혼자 마신 술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안주가 없어서 그랬을까. 한병만 마셔도 취해서 잠들곤 했는데, 이상하게 밖에서 누군가와 마실때는 두 병 이상을 마셔도 취하질 않아. 게다가 적당히 마시고 들어온 날엔 오히려 더 잠을 못자게 돼. 밤새 이런저런 감정에 취해 뭔가를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날이 밝아버려. 젠장. 이제서야 피곤해지는 건 또 뭐야. 출근은 어떻게 하라구! 

함께 일해보자는 사람과 술을 한잔 했어. 한 달전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정중히 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나봐. 한번 더 나를 불러내더니, 세 병째의 소주를 거의 비워갈때쯤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보더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 난 이런거 참 싫어하고,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분이 오해하지 않도록,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애써 설명한 보람도 없이, 그분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지금까지 마신 술이 아깝게도 정신이 확 들어버렸어. 젠장 그리고 이 시간까지 잠을 못자고 이러고 있어. 아침이면 먼 길을 운전 해서 가야하는데 말야.  

셋. 목소리 

결혼 후 아내의 책들과 내 책들이 합쳐졌을 때, 겹치는 책은 별로 없었다. 우린 독서 취향이 좀 많이 달랐다. 몇 안되는 겹치는 책들 중에 눈에 띄는 책은 배수아의 <내안에 남자가 숨어있다>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 트리거 포인트라는 말이 나온다. 끌리는 점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으려나. 배수아는 누구나 사람을 볼때 가장 먼저 보는 부위가 이 트리거 포인트라고 말하는데, 내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보다는(물론 시각적 요소도 아주 중요할 때가 있지만!) 목소리에 종종 끌리곤 한다.  

 

 

 

 

 

 

 

 

차분한 목소리, 맑은 목소리, 밝고 명랑한 목소리, 가녀린 목소리. 나는 유독 목소리에 잘 빠져들었다. <허니와 클로버>라는 애니를 보면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옆 사람이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단번에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 있는데, 아마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월드 뮤직 어워드'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뚜뚜루뚜~ 뚜뚜루뚜~'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크랜베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어던이었다. 

며칠 전 놀랄만한 일이 하나 있었다. 살면서 워낙 적을 많이 만들어왔던 터라, 페이스북 가입을 많이 망설였는데, 업무 특성상 페이스북을 꼭 알아야 했기에 가입을 했다. 본명이 아닌 '감은빛'이란 필명으로. 최근의 인간관계 위주로 친구를 만들면서 눈팅을 하곤 했는데, 페이스북이 추천하는 사람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었다. 아주 흔한 이름이기에 설마했다.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손은 어느새 그 이름을 클릭해버렸다. 프로필에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사진도 없었다. 그 녀석이 맞는지 아닌지 알수 없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러고는 그냥 잊어버렸다. 며칠이 지나서 다시 그 이름을 마주쳤다. 프로필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지난번에 마주친 그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설마 그 녀석은 아닐꺼야. 녀석과 나는 매칭되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 학교도 하나도 안 겹치고, 관심사도 안겹친다. 인간관계도 하나도 연결되어있지 않다. 심지어 나는 본명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페이스북이 어떻게 알고 녀석을 나에게 추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다시 한번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클릭했다. 여전히 정보는 등록되어있지 않았지만, 그새 친구가 늘어 있었고, 그 사람의 친구 목록에서 또 하나의 익숙한 이름을 찾아냈다. 녀석의 친구였다. 절대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성조차도 아주 희귀한 성씨였다. 게다가 프로필 사진은 바로 녀석의 친구가 맞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바로 그 녀석의 페이스북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담벼락을 클릭해보니, 등록된 사진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이었다.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녀석을 알게된 건 채팅을 통해서였다. 맡고 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무척 우울한 날이었다. 기분전환을 하려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문학동호회에 들어갔다. 그 동호회는 채팅을 위주로 운영되는 모 사이트에 속해있었다. 동호회에 들어가서 게시판을 살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쪽지를 건넸다.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안나지만, 나는 그냥 호기심에 낯선이의 대화를 받아주었다. 몇 마디 주고받던 말들이 점점 더 호기심을 키워서 결국 그 사람과 채팅을 이어갔다.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낯선 이와 무려 다섯시간 동안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오래 채팅을 했기 때문에 눈도 아프고, 손목도 아팠다. 어깨도, 허리도 모두 뻐근했다. 이제 그만 대화를 중단하려했는데, 그쪽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는 별 감정이 없었다. 그냥 온라인에서 낯선 여성이 대화를 걸어오니, 응했을 뿐이고, 적당한 과장과 가식을 담은 대화를 이어갔을 뿐이다. 물론 좀 재밌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건 다만 낯선 여성에 대한 호기심 이상은 아니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나는 그 여성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전화통화는 밤새 이어져서 다시 다섯시간동안 우린 대화를 나눴다. 손가락으로 다섯시간, 그리고 목소리로 다섯시간. 우연히 받은 쪽지 하나가 무려 열시간동안 우리를 붙잡아놓았고, 결국 우린 사귀기로 결정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다.(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날 바로 얼굴을 확인했고, 아마도 그 이후에 사귀기로 결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독특한 인연이었기에, 녀석의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만났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녀석과의 시간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아, 난 이런 기분으론 도저히 일을 못하겠어! 컴퓨터를 꺼버리고 무작정 사무실을 나섰다. 골목길을 따라 근처를 걸었다. 어떻게 페이스북이 그 녀석을 나에게 추천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한참동안 무작정 골목을 거닐다가 돌아왔다. 페이스북 정말 무섭다. 본명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옛 애인을 찾아주다니! 이러다가 수많은 옛 애인들을 하나하나 찾게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난다. 제발, 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제발!

한가지 묘한 건, 당시에는 참 좋아했던 녀석의 목소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지금 나를 사로잡은 강력한 마력의 목소리는 세 개다. 각각 독특한 개성이 담긴 우리집 세 여우의 목소리들. 이 밤,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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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1-04-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목소리에 무척 약한 편이에요. 저를 사로 잡은 목소리가 하나 있었는데 저도 그 목소리가 기억이 나진 않네요.. 그 목소리가 좋아서 계속 기억하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좋다고 생각했던 순간만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감은빛 2011-04-18 12:07   좋아요 0 | URL
'그냥 좋다고 생각했던 순간만 계속 기억한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군요. 따라쟁이님도 목소리에.....
왠지 동지를 만난 기분인데요. ^^

루쉰P 2011-04-1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기억이 즐겁게 채색되고 보존되면 좋을텐데 너무 발달한 기계문명 때문에 추억도 기억도 모두 사라지고 나를 다시 덮치는 현상이 종종 있어요. 저도 그런 경우가 많거든요. 변태는 아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삶에서 자신과 차이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인터넷 공간이란 그 누군가의 시선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삶의 저와 분리를 하고 있습니다. ^^ 페이스북에 저도 가입을 했었다가 탈퇴를 했어요. 그런 점들이 싫어서죠.

지금의 목소리에 충실한 감은빛님의 글을 읽고 다행이란 생각을 했네요. 글에 심취한 나머지 그 여성분과 다시 연락이 되시는건가 그럼 안 되는데 말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읽었네요. 푸훗.

스펙터클하게 읽었네요. 오우! 긴장감 짱!

감은빛 2011-04-18 12:11   좋아요 0 | URL
하하, 저를 말릴 생각까지 하셨다니~ 감격스러운데요.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다니! ^^

책가방 2011-04-1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글씨를 예쁘게, 혹은 멋지게 쓰는 사람이 좋더라구요..ㅋ
고등학교때 펜팔을 많이 했었는데.. 대부분 글씨가 멋진 사람은 외모도 괜찮더라는..^^

저도 올빼미였었고, 지금도 반쯤 올빼미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야하기에 어쩔수 없이 억지잠을 청하곤 하죠..^^

감은빛 2011-04-18 12:14   좋아요 0 | URL
저는 굉장한 악필입니다.(그렇다면 외모가....... ㅠ.ㅠ)
펜팔은 군대 있을 때, 여중생과 해봤는데 '군인아저씨'와 여중생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

저랑 동족이셨군요. 새삼 반갑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1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거 포인트가 끌리는 점이라면, 님과 저의 끌리는 점은 참 비슷한데 말이죠~
전 트리거 포인트를 통증유발점, 압통점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얘가 만병의 근원이거든요.
마냥, 대책없이, 마구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 '만병의 근원'쯤으로 생각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요,전~^^

감은빛 2011-04-18 12:16   좋아요 0 | URL
비슷한 점을 또 하나 발견했군요! ^^
'압통점'이라. 그렇군요.
처음엔 머리를 갸웃했는데, 다시 읽으니 이해가 가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4-1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혜를 상징하는 새는 부엉이라고 하던데...올빼미와 다른 종류래요.

감은빛 2011-04-18 12:17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부엉이였군요.
저는 지금까지 올빼미로 알고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1-04-1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일이.. 페이스 북 초대한다는 메일 같은 것이 올때가 있는데 거기에 예전 사귀던 여자 친구의 주소가 있더라고요. 순간 헉 했습니다.
저도 페이스북 가입하면 그 옛 애인에게 그런 안내메일 같은 것이 갈까 무섭네요 ㅎ

감은빛 2011-04-18 12:20   좋아요 0 | URL
그건 그 친구분의 메일 주소록에 바람결님 이메일이 등록되어 있어서 그래요.
그리고 바람결님께서 페이스북 가입할 때,
주소록에 등록된 이메일로 친구요청 같은 거 보낸다고 선택한다면,
그 친구분께 친구요청 메일이 자동으로 발송됩니다.

이런 거 참 무서운 거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4-18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제가 왜 이렇게 흥미진진한 페이퍼를 지나쳤을까요? ^^

통신이 얼마나 무섭냐면 말이죠, 제가 97년도에 하이텔(그 아련한~)의
'실연 클럽'이라는 모임에 가입했는데, 글쎄 고등학교 때 데이트 한번 했던 동네 오빠랑
회사에서 한달 사귀다 헤어진 남자를 만난거예요. 첫 모임에서 두명이나. ㅠㅠ
요즘 뉴스 보면, 전 절대 트위터 페이스북 P2P는 이용하지 않겠다 하고 있습니다만. ^^

그리고...... 전 1시 넘어 안 자면 밤새 잠을 못 이루므로,
가능하면 1시 이전에 잠을 잔답니다. 홍홍.

감은빛 2011-04-18 16:30   좋아요 0 | URL
흠, '실연클럽'이라니. 거기서 마주친 옛 남친이라니!
정말 무섭네요!

마녀고양이님은 1시로군요.
저는 12시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12시를 넘기면 잠이 안오더라구요.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그가 매우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정반대로 평소에는 무척 과묵한 편이데, 글을 쓸 때만 끝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쩜 이렇게 많은 지식을 끝없이 쏟아낼 수 있을까? 그의 이런 경이적인 ‘수다’능력 덕분에 그의 책은 늘 재밌다.

 

빌 브라이슨이 이번에 관심을 가진 건 집이다. 그가 살고 있는 영국 어느 작은 마을의 오래된 목사관을 조목조목 살펴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생활사를 다룬 역사서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것들은 영국 혹은 미국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밝혀주는 역사적인 지식이다. 대개는 그 집이 세워진 1800년대 중반의 이야기들이지만, 가끔 고대문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정보들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무척 재밌어서, 한번 책장을 펼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슬쩍 맛만 보고 자려고 앞부분을 읽기 시작했는데, 대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수정궁 이야기에서부터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걸 깨달으며, 기분 좋은 낭패감을 느꼈다.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풋볼매니저’라는 제목의 축구게임이 유행하는데, 한번 빠지면 속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게임만 하게 된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있다. 게다가 남편이 이 게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혼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다분히 과장이 섞인 이 게임에 대한 소문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게임을 한번 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히딩크’라고도 된 것처럼, 자신만의 선수들을 키우고, 유명한 선수들을 데려오고, 상대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짜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되면 자꾸만 게임 속으로만 빠져들게 된다. 난데없이 축구 게임 얘길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저 유명한 게임만큼이나 나를 정신못차리게 만들었다는 얘길 하기 위해서다.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아내는 몇 번이나 뭔가 말을 걸었다가 별 반응이 없자, 그냥 대화를 체념해버렸고, 큰 아이는 훨씬 더 자주 놀아달라고(혹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지쳐 혼자 놀아야했고, 둘째 아기는 울음으로도 평소처럼 강력하게 내 주의를 뺏어가지 못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우리 집’은 단칸방에 좁은 재래식 부엌이 딸린 공간이었다. 그 집에는 그렇게 작은 단칸방이 아주 많았다. 집의 중앙공간에 주인집 가족이 살았고, 그 주인집을 빙 둘러서 디귿자로 단칸방들이 포위하는 모양이었다. 일층에만 대략 예닐곱의 단칸방이 있었고, 그보다 조금 적은 숫자의 단칸방이 이층에도 있었다. 그 집에는 적어도 열다섯 가족이 살았던 셈인데, 한 가족을 네 명(당시 가장 보편적인 핵가족의 숫자인)으로 잡으면 약 육십 여명이 그 좁은 공간에 함께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은 마당 한쪽 구석에 겨우 두 칸이 있었을 뿐이다. 아침마다 그 두칸의 화장실 뒤에는 신문지와 질이 좋지 않은 (회색빛에 가까운)휴지를 손에 쥐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바쁜 아침시간에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오래 시간을 끌면 뒤에 선 어른들이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나와 동생은 주로 재래식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큰일을 보았고, 작은 일은 마당 구석 담벼락에 해결하곤 했다. 세면공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여성들은 한 사람이 겨우 서있을 정도의 폭인 재래식 부엌에 쭈그리고 몸을 씻었고, 남자들은 마당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씻었다. 지금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지만,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 집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주인집은 절대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금지구역이었는데, 나중에 어떻게 한번 가본 후로, 처음으로 ‘빈부격차’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가족이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두 번째 ‘우리 집’은 소형임대 아파트였다. 초등 2학년 때였다. 멀리 해운대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장산 기슭에 지어진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 가족은 이 집에 꽤나 오랫동안 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동생과 나만 따로 방을 쓴다는 것이 몹시 낯설었다. 아직 어렸던 동생은 밤마다 울면서 큰방으로 가서 엄마 품에서 자곤 했다. 그러면 나 혼자 방 하나를 온전히 다 차지하고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분 좋았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나가지 않아도 집안에 화장실과 부엌이 있다는 것도 무척 이상했다. 부엌은 뭐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화장실이 집안에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뒷베란다에는 연탄창고도 있었다. 단칸방에 살 때는 가끔 이웃에서 연탄가스 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몰살했다거나,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았다는 소릴 듣곤 했는데, 이 아파트는 그런 걱정이 없다고 했다. 연탄창고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탄 이삼 백장쯤은 거뜬히 들어갔다. 우리 집은 4층이었는데, 겨울이 되면 연탄 집에서 아저씨들이 4층까지 부지런히 연탄을 날랐다. 연탄 배달이 오는 날이면 현관에서 부엌을 가로질러 뒷베란다까지 더러운 깔판을 깔아놓고 신발을 신은 그대로 아저씨들이 들락거렸다. 게다가 시커먼 연탄 가루가 여기 저기 바닥과 벽을 더럽혀놓았다. 배달을 마친 아저씨들이 깔판을 둘둘 말아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나면, 더러워진 부엌 바닥을 닦은 것은 내 일이었다. 연탄보일러는 나중에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연탄창고로 쓰이던 공간은 잡동사니를 쌓아놓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연탄창고 바로 옆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작은 문이 있었다. 시커먼 철제문을 잡아당겨서, 쓰레기를 버리면, 짧은 경사로를 따라 미끄러지던 쓰레기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잠시 후 1층 쓰레기장에 무사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문을 열면, 다른 층에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쓰레기의 낙하 시간은 층마다 달랐다. 저녁마다 쓰레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기다리며 ‘중력’의 존재를 느끼곤 했다. 그 문으로는 쥐나 바퀴벌레 따위가 드나들기도 했다. 여름이면 악취가 심하게 올라왔다.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통로마다 마련되어 있던 쓰레기장이 폐쇄되고, 더 이상 그 문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했다. 더 이상 쓰레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째 ‘우리 집’은 어느 빌라 지하주차장 옆이었다. 서민들의 보편적인 거주지인 반지하였다. 방은 두 칸이었는데, 방 한 칸이 특이하게도 무척 길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여동생과 계속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 긴 방의 중앙에 바퀴달린 플라스틱 병풍처럼 생긴 칸막이를 달았다. 밤에 잘 때면 칸막이를 치고, 아침에 일어나면 걷었다. 남자인 내가 입구 쪽 공간을 쓰게 되었는데, 밤에 여동생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드르륵’하고 칸막이 여닫는 소리에 깨곤 했다. 하루는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동생의 친구가 놀러와 있었다. 살짝 잠이 깼는데, 여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들렸다. 여름이었고, 나는 팬티만 입고 자고 있었다. 낮이어서 칸막이는 열려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화장실을 갈지, 계속 자는 척하면서 녀석들의 수다를 듣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좀 아팠다.

 

네 번째부터 ‘우리 집’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 선배들과 술 마시느라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는, 안 들어오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군대를 갔고,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이사를 했는데,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휴가를 나왔다가 옛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제대하고 나서는 아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과 고시원을 떠돌던 시절 얘기는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겠다. 결혼 후 서울에 정착해서 전세방을 떠돌고 있는 지금의 얘기도 할 말이 무척 많지만, 역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가끔 딸아이에게 아빠의 어린 시절 얘기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난감할 때가 있다. 한 끼에도 계란 프라이를 두 개씩 먹곤 하는 아이에게, 계란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화만하면 이삼십 분 안에 프라이드치킨을 배달해주는 시대에, 전기구이 통닭이란 걸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을 어떻게 얘기해줘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준비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빌 브라이슨처럼 재밌게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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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1-04-1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아들이 책가방이 무겁다고 불평을 하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제가 고등학생이던 때에는 사물함이 없어서 날마다 그 날 수업이 있는 책들이 가방 안에 꽉 차 있었고, 거기에 체육이 있는 날이면 체육복 가방도 들어야 했고, 도시락 두 개에 신발주머니까지 챙겨들고 학교를 다녔더라구요.
아이들 소꿉장난감을 봐도 격세지감을 느껴요. 제가 어렸을 때엔 아궁이에 가마솥,, 뭐 그런 것들이 소꿉장난감 세트에 들어 있었거든요. 요즘은 가스레인지도 모자라 전자레인지에 오븐까지 갖춰있더라구요.
감은빛님 글을 읽으며 저도 추억에 잠겼다가 갑니다. ^^

감은빛 2011-04-16 03:24   좋아요 0 | URL
그랬죠. 가방엔 무거운 책들과 점심과 저녁 도시락이 들어있었죠.
그뿐아니라 가방 자체도 요즘 가방보다는 훨씬 더 무거웠을걸요.
아궁이에 가마솥. 요즘 아이들은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함께 추억에 잠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4-15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 바나나는 또 얼마나 귀했어요!
요즘은 썩어 버려지는게 바나나인데, 아유, 그때는 아주 횡재한 기분이었죠.
토막씩 나누어 먹으면서. ^^

저두 4층에 살았는데, 연탄 나르던 아저씨 기억나네요.
연탄 들어오는 날은 정말 집안이 난리였죠, 죄송스럽기두 하구.

저두 요즘 집 관련된 책을 줄줄이 세권이나 샀어요. 주로 짓는 쪽으로요.. ㅎㅎ

감은빛 2011-04-16 03:26   좋아요 0 | URL
바나나! 엄청 귀하고 비싼 과일이었죠.
저는 아마 거의 먹어보지 못한 과일이었습니다.

집짓는 책이라니!
어디 시골에 집 지으시려나요? ^^
 

우체국을 가며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황규관 / 패배는 나의 힘 / 창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살때 나는 자유로웠다. 일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놀았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그만이었다. 정 돈이 떨어져 밥을 굶을 지경이 되면, 노가다라도 한탕 뛰면 그만이었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 밥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돈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알바를 뛰든 어쩌든 일을 구해서 돈을 벌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갖게 되면 또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했다.

시민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 정말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다.(지금은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사정이 생겨 일을 쉬게되면 학원강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서 활동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바닥은 늘 사람이 아쉬운 곳이고,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더 하기 때문에 마음만 맞는다면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한때 다니던 단체를 그만두고 좀 더 안정적인 다른 단체를 찾아보다가 결국 시민단체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으로 내려가면 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내의 직장과 집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섣불리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있는 단체에 들어갔다가, 운동의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길고 지루한 시간 동안 나는 큰 보람도 없고 활동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그냥 당위성 하나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선택은 넓은 대한민국 땅 전국 곳곳에 펼쳐져 있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좁디좁은 서울바닥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 가슴 속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그 답답함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비뚤어진 허수아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 마저도 내게는 욕심'이었던 것이다!


황규관 시인의 선한 눈매와 웃고 있는 얼굴이 기억난다. 촛불 집회를 통해 여러 차례 스쳐 지나게 되었다. 작가회의 깃발을 보게되면 근처에는 반드시 황규관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를 찾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보았다. 

대한민국, 시인이 살기에는 참 잔인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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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4-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황규관시인을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그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의 시와 시인이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무모한 생각들이었지만 뭔가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무책임하지만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날들입니다.
저도 집에 있는 시집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1-04-15 04:59   좋아요 0 | URL
시와 시인이 닮았다는 생각, 저도 가끔 하게 됩니다.
확실히 황규관 시인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의 시집 제목을 보고 한동안 낱말 바꿔부르기 놀이를 했었어요.
패배의 자리에 이런 저런 낱말들을 넣어서 말이죠.
질투는 나의 힘, 사랑은 나의 힘, 밥은 나의 힘 등등이요.
근데 그 어떤 것도 패배는 나의 힘 만큼 둔중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건 없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나봐요, 4월은 잔인한 달~(에고고, 이건 아니잖어?)

감은빛 2011-04-15 05:01   좋아요 0 | URL
4월은 잔인한 달! 인가요?
어느 해는 그랬던 것도 같아요.
올해는? 글쎄요. ^^

마녀고양이 2011-04-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여자는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는거 같아요.
저는 회사를 때려치워도 신랑은 회사를 때려치우지 못 하는 모습에 미안함을 느껴요.
하지만 시부모님과의 갈등이나 아이들, 남편에게 꼼짝도 못 하는
주부를 보면 감은빛님의 부자유를 떠올리죠.

결혼이란게,,, 참 다채로와요. 비단 결혼 뿐 아니라 사람 산다는게 다 그런거죠?

감은빛 2011-04-15 05: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부분들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위상이 많이 다르죠.

네, 다채롭죠. 삶의 모습은 정말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