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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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하얀 표지에 ‘유혹하는’ 분홍색 글씨가 눈에 띈다. 글씨들 사이로 칸막이처럼 좁은 사진이 들어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겨레21이 잔뜩 꽂혀 있다. 앞날개에는 저자의 사진과 소개가 들어있는데, 생각보다 긴 소개글의 맨 첫 부분이 ‘심심한 인간. 잘 뜯어보면 심심하지 않은 인간.’ 이라고 되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자의 이런 사고방식이 이 책 곳곳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경태 기자가 <한국농어민신문> 기자로 시작하여, <한겨레21> 기자 및 편집장, <한겨레> esc 팀장, <씨네21> 편집장이 되기까지 그동안 자신의 잡지 편집경력을 통해 깨달은 자신만의 원칙(혹은 비법)을 알려주고 있다. 편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편집, 예를 들어 교정교열 같은 실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편집이란 전체를 조율하고 디자인하는 영역이다. 하긴 저자는 잡지 편집기자다. 일반 단행본 편집자와는 다르고 잡지 취재기자와도 또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약간 오해가 생길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저자가 강조하는 ‘편집 노하우’가 전적으로 어느 편집 영역에나 다 맞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경태 기자는 자신이 뽑았던 제목이나 표지 그리고 광고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동안 나왔던 한겨레21의 제목, 표지, 광고를 저자 나름의 몇 가지 기준으로 베스트10, 워스트 10 뭐 이런 것들을 뽑아놓았는데, 읽다보면 그 시기의 정치, 사회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개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잠시 몸담았던 나는 당연히 <한겨레>만 읽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른 신문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이란 게 매일 읽다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이 다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한겨레21>은 달랐다. 주간지라서 그런 것인지 표지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데다, 기사 하나 하나가 다 재밌었다. 그 시절 <한겨레21> 표지들을 보면서, ‘참 선정적이다!’ 라는 평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리곤 했었는데, 그 표지들을 만든 사람이 고경태 기자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뽑은 인상 깊은 표지들 중에 몇 개는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들이었다. 저자는 그런 표지들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실은 선정적이지 않다 라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겁다 라던가 등의 지금의 느낌을 털어놓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저자의 변명(?)들이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뒤쪽으로 가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활자만 보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교정하는 직업병(?)을 갖고 있는데, 막상 스스로 글을 쓰면 그런 실수들이 여전히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편집기자 다운 내용들이다. 사소한 실수들을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에 에세이들이 하나씩 끼어있다. 저자가 어떻게 편집기자로서 잡지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이것만 찾아 읽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이 책은 편집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앞쪽에서 저자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편집자’라고 말한 것처럼 일상에서도 이 책에서 말하는 ‘편집’의 영역에 속하는 일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출판과 관계된 일을 한다면 편집 분야가 아니더라도 읽어야할 책이다. 특히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마케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출판계 상황을 고려한다면 필독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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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0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었던 책인데 반갑네요~

요즘에 부쩍 목요일날 한겨레 신문 에 esc지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주인장님은 그 지면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ㅎ

감은빛 2011-01-04 18:25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은 한겨레를 잘 안 읽습니다.
경향으로 바꾼지 몇 해 됩니다.
한겨레는 가끔 일터 동료들이 갖고오면 들춰보긴 하는데,
자세히 읽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요.

저는 의견을 드릴 입장이 안되니, 매버릭꾸랑님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

다이조부 2011-01-0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겨레 경향 을 두루두루 보는 입장입니다.

집에서는 조선일보를 보는데 작년 11월 15일부터 집에 방치되 있어도 안 보는데

스멀스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듯 하네요 ㅋ
 
촛불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 지음, 일러스트레이터연합 그림, 정이나 옮김 / 삼천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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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바탕에 유명한 인물들의 멋진 그림들이 확 눈에 띄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맑스와 체 게바라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와! 이 그림 진짜 멋지다!’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촛불 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원제:Anticapitalismo)은 그렇게 나의 뇌리에 강한 자극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반자본주의 운동가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가 지었고, ‘일러스트레이터 연합’ 이라는 아르헨티나의 예술가 단체가 그림을 그렸다. 일단 삽화가 죽인다! 어렵고 지루한 내용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어쩜 그렇게 명쾌하게 나타내고 있는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은 무조건 소장해서 두고두고 볼 책이다!  


그림 때문에 쉽게 손이 가긴 했지만, 원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척 어렵고 무거운 것이다. 제목에 무려 ‘반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반자본주의’라는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는 건, 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무척 잘 지은 제목이다. 이 제목을 짓느라 고심했을 출판사 관계자의 노고가 짐작된다. 너무 어렵고 고리타분한 제목은 책 분위기에 맞지 않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 작년에 한창 타올랐던 ‘촛불’을 겨냥해서 가장 무난하면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제목을 고른 듯하다.  


‘반자본주의’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이 책은 정말 쉽고 재밌다! 제목 그대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말 쉽게 가르쳐주는 교실이다. 책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자본주의를 벗어난 삶의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함께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특히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의 흐름을 알기 쉽게 잘 짚어주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강화 이후에 속속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다양한 흐름과 경향들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잘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쉽다는 것이다. 이미 반자본주의 활동가로서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입장에서 좀 더 깊은 내용과 상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 책의 존재가치를 따져본다면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안 맞는 것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실체가 어떠한지 그리고 ‘반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고 재밌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니 더 깊고 자세한 내용은 애초에 기대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밌다는 것이다. 운동권 책들 중에서 이렇게 재밌는 책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어떤 흥미진진한 삽화가 나올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 무척 좋다. 이런 책 참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이 책을 계기로 남미의 민중예술운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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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2009-09-1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09-09-29 13:27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
 
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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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가치를 존중하는 새로운 여행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꽤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공정무역이 꽤나 익숙하게 사용될 즈음에 ‘공정여행’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또 듣게 되었다. 역시 어색하다. 뭔가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이 없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고민을 해봤다. 글쎄, 새로운 존재(혹은 개념)에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늘 어렵기만 하다. 고민 끝에 ‘윤리여행’은 어떨까 싶었는데, 글자로 써보니 이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윤리와 여행 사이에 ‘적’을 붙여봤다가,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지우고....... 그냥 이름 짓기는 포기해야 할까보다.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공정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을 일이 많았다. 처음 들을 때부터 따로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그게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실 여행(특히 해외여행)은 나와는 정말 인연이 별로 없는 뭔가 사치스러운 느낌의 단어였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무인푼으로 두꺼운 얼굴과 배짱하나만 갖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몇 차례의 ‘무전여행’을 제외한다면 나는 제대로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학생이었던 때와는 달리 사회에 나오니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알지 못했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해외여행이란 걸 할 수 있었다. 바로 패키지 상품이란 놈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이고, 삶과 자연과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에게 여행은 걷고, 사색하고, 쉬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야간에 비행기나 차로 움직이고,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들을 돌아다니는데, 제대로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따위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여유가 허락되는 시간은 쇼핑시간이라고 했다.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오히려 가지 않은 것보다 못할 것 같았다.


 공정여행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소비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단순히 눈도장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유명한 관광지만을 도는 여행이 아닌, 내가 생각했던 참된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현재의 돈만 쫓는 여행의 행태로 인해 나타난 폐해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제안들도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티벳, 네팔, 태국, 인도,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곳들을 소개하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여행책이 아니라 그 곳에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계시는 훌륭한 분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또한 좋았다. 만약 내가 해외여행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면 훨씬 더 재밌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읽고 나서 아쉬운 점들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 소소한 부분들이고 크게 실망할만한 점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다양한 주제와 사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좀 산만하고 흐름이 끊기는 면이 있다. 사례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들은 많지만, 큰 틀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간단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아마 이 책의 컨셉을 ‘공정여행 가이드북’으로 잡았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작은 이야기들이 좀 더 자세하고 깊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단순한 소개에 머물러 버려서 흐름을 끊고, 더 깊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글쎄, 좀 더 단순하고 소박한 컨셉이었다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더 잘맞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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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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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국민윤리를 가르쳤던 한 선생님 덕분에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딱히 그 선생님을 존경하거나 좋아한 건 아니었고, 그냥 과목과 어울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라던가 입만 열면 뭔가 있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점들이 특이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가끔 철학과에 얼마나 괴짜들이 많이 모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철학이란 학문에 대해서도 수박 겉핥기로 설명해주기도 했다. 


 대학을 철학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주변의 만류로 다른 학문을 선택하게 되었다. 뭐 철학을 향한 불타는 열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나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대학에선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큰 강의실에 백여명이 넘는 학생들. 그리고 교양이기 때문에 정말 수박 겉핥기 밖에 안되는 성의없는 강의. 고등학교의 입시위주 교육을 벗어나서 드디어 학문의 전당 대학에서 진짜 학문을 맘껏 즐길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 옛날 이야기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취급을 받았다.

 암기 위주의 교양철학으로 실망했던 나는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내가 관심 갖고 있던 대부분의 과목들의 시작점은 모두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철학을 공부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처음 만난 건, 아내의 책들과 내 책들이 한 방에 모이게 된 날이었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자취생활을 해온 덕에 내 책들은 많지 않았다. 잊어버린 책들도 많았고, 관리가 잘 안되니까 책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그에 비해 아내의 책은 종류도 다양했고 많았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부제가 흥미를 자극했다. 문득 저 먼지쌓인 교실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리에서 생활한 대학생활까지 흑백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꼭 읽어야겠다. 이제라도 다시 철학에 관심을 가져봐야지 라고 했던 그 날의 다짐은 다시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바쁜 일상은 나에게 학문으로의 도피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드림위버]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다.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에는 계속 못 읽었던 [소피의 세계]까지 함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설책을 읽는 방법과 철학책을 읽는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두 책을 놓고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냥 읽으면 될 것을 뭘 그리 쓸데없는 고민까지 하나 싶었지만, 학문을 대하는 내 태도가 좀 유별나서, 철학책을 읽는 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이 책들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드림위버]를 먼저 읽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책을 대하듯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않아 그냥 읽고 지나가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쌓여갔다. 꽤나 두꺼운 분량이라서 중간 정도 읽었을 때는 그렇게 남아있는 의문들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가며 의문들을 풀어가며 읽어야 했다. <독자들을 위한 토론주제>는 그냥 건너뛰고 이안의 이야기만 따라가는데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역시 그냥 소설책 읽듯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드림위버]는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읽는 내내 청소년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나도 자라면서 이런저런 의문들이 많았을텐데, 그냥 어른들이 시키는 것 외에는 감히 시도해보거나 따져보지 못하고 자랐다. 만약 내가 이안 정도의 나이였을 때, 이안과 같은 모험을 해보았다면 지금 좀 더 생각의 폭이 넓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다 읽은 늦은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자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느낀 점이나 생각들을 나누어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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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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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구속된 용산범대위 상황실장 김태연동지가 용산범대위로 보낸 편지였다. 이례적인 강도높은 탄압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얼굴이 순간 스쳐지났다. 편지를 읽으면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삶창>의 신간 『여기 사람이 있다』에 대한 부분이었다.
 

   
  제가 있는 방에는 모두 7명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은 철거용역업체 직원입니다. 서른이 안 된 젊은 친구인데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열심히 읽더군요. 읽고나서 “여기 나오는 사람들 아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지요. 무얼 느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내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나갈 모양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딴 일 해라”는 한마디는 했습니다. 그 친구 오늘 낮에 운동시간에 같이 걸으면서 그러더군요. “이제 농사나 지어야 겠다” 고.  
   


 이 용역업체 직원이 무슨 마음으로 "이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했는지는 모르지만,(아주 여러가지 복잡한 고민이 있었을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친구가 구속된 상태가 아닌 자유의 몸이었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이 책을 알았어도 읽을 생각조차 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구속되어 있는 상황이었고,(더구나 대책위 상황실장과 한 방에 있었으니) 여러가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의 과정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기에, 더 확고하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놀라웠던 사실은 이 사람들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 철거민이란 단어를 흔히 떠올리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혹은 나보다 더 못사는(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사람들의 얘기라고 생각해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읽고 나니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들이 특별한 처지에 있어서 철거민이란 이름을 갖게 된게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보통사람들이었다. 다만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참 말도 안된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나게 된다. 한번 철거민이 되어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면, 다음에 또 철거예정지로 옮겨 가게 된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계속 외곽으로 돌게 되고 그러다보면 또다시 철거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 보상받고 떠났던 이웃들을 다음에 다른 철거예정지에 또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땅의 가치보다 더 못한 시대.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는 시대. '여기 사람이 있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소용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저 용역직원 같은 친구들에게 자꾸만 이 책을 권하고 읽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원래 이 책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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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09-06-30 13:04   좋아요 0 | URL
자주 안들어오는 편이라 댓글을 이제서야 확인했네요.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