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도 안하고 김장했던 추억만 더듬는 아침

며칠 전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아주 오랫만에 에스와이오(자판 변환하기 귀찮아 한글로) 님의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에 여러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오늘 아침에 에스(이젠 다 두드리기 귀찮아 첫글자만)님께서 일일이 답을 달아주셨다. 그거 읽으러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메뉴도 열어봤다.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은 다섯개였다. 그중 김장 이야기가 세개나 있었다. 마지막 글이 2022년 글이었는데, 그 글에도 지난 오늘 쓴 글들 중 두개에 김장 이야기가 있었고, 오늘 김장 이야기를 썼으니, 내년 오늘은 세개의 김장 이야기를 읽겠다는 내용을 썼었다. 그 내년, 그러니까 작년 11월 28일에 이 글들을 다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글은 쓰지 않았네.

2022년 오늘 기준 과거에 쓴 두 번의 김장은 모두 잊지 않고 자잘한 부분까지 꽤 잘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두 번이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김장 1위와 2위로 꼽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저 마지막 글인 2022년을 포함해 최근의 김장들은 모두 잘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그냥 운동(사회를 바꾸는 활동이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기도 하고)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고, 해가 갈수록 김장에 익숙해져 고수들이 다 된 동료 활동가들이 생겨서 내 역할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크게 기억에 남을 활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지어 올해는 그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아마 잠깐 얼굴만 비쳤던 것 같다. 작년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었는데, 억지로 시간을 조정해서 잠깐이라도 얼굴 도장을 찍었던 것이고, 올해는 아예 시간이 안 맞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에는 다들 김장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내가 꼭 필요한 상황이어서 미리부터 내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근 몇 년은 다들 김장 도사가 다 되어 내가 꼭 필요하지 않아서 내 일정을 미리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과거에 남겨둔 글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는건 좋은 것 같다. 특히 한밤에 애들을 재워두고(실제로는 억지로 방에 몰아넣고 얼른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애들 엄마랑 둘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김장을 하고 뒷정리를 했다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저 날의 사소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당시 우리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 긴 시간동안 둘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서로 거의 말이 없었다.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시점에 억지로 꺼내듯 말했다. 그나마도 나는 주로 제안하는 애들 엄마에게 알았다고 답하고 말없이 묵묵히 몸을 움직였을 뿐, 먼저 입을 연 것은 꼭 필요한 순서나 재료에 대한 언급 뿐이었다. 써놓은 걸 읽어보면 김장을 대강 마친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고, 고무 다라이들과 각종 통들과 엄청나게 많은 그릇들을 다 씻고 정리를 마친 건 4시였다. 그러고 애들 엄마는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고 썼는데, 나는 오히려 너무 피곤해서 더 잠이 안와서 씻고 누웠다가 한참 후에 나와서 깡소주를 서너잔 들이붓고 다시 들어왔다고 썼다. 그 기억이 오늘 아침 새삼 사무치게 느껴진다. 그래. 그런 날이, 그런 순간이 있었지.

알라딘 이웃들의 댓글들

지난 오늘 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댓글들이다. 나는 그리 글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데, 그럼에도 감사하게 댓글을 남겨주시는 이웃들은 늘 계셨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인사이거나 다소 형식적인 말 한마디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마음을 전하는 표현일수도 있다.

오늘 읽은 다섯개의 과거 글들에 달린 여러 댓글들 중에 잊을 수 없는 댓글이 둘 있었다. 하나는 식당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어쩔수 없이 계속 듣게 된 옆자리 일행들의 대화와 실존주의 철학책 이야기를 쓴 글에 달린 댓글인데, 그 분은 그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 분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어떻게 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남길 수 있는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해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부러운 감정을 느꼈다.

두번째는 긴 시간 꾸준히 내 서재 글들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한 이웃님이 자신의 첫 댓글이라고 적어주신 것이다. 그랬구나. 다소 긴 댓글 마지막에 약간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첫 방문이예요. 라고 쓰셨다가 나중에 그 밑에 다시 아니, 첫 댓글이예요. 라고 달아두셨다. 그거 안 쓰셨다면 그 분께서 언제부터 내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하셨는지 알 수 없었을텐데, 덕분에 그 시작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분께서는 이 글을 읽으실까? 그래서 본인이 그렇게 썼던 사실을 기억하실까? 나는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예상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 또한 재미있다.

두번째 달리기 대회

일요일에 두번째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9월 초 첫 대회 때에도, 대회 며칠 전부터 계속 관절 통증이 심했고, 대회 당일 컨디션도 안 좋았었다. 심지어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 강남에서 기후정의행진을 했었고 그날 관절 통증에도 긴 거리를 뛰고 걷고 한 탓에 다리를 절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암튼 그 첫 대회를 진통제를 먹고 억지로 뛰었는데, 그 경험이 내게는 무척 낯설고 흥미롭고 성취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참고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그 뿌듯함이 엄청 컸다. 그래서 올해 안에 한번 더 다른 경기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알아보고 예약한 것이 이번 두번째 대회였다.

첫 대회와 이번 대회 모두 10킬로미터 코스였다. 첫 대회 때에는 준비과정에서 9킬로까지는 뛰어보았으나 한번에 안 쉬고 뛰었던 것은 아니고, 중간에 제법 오래 쉬고 호흡과 체력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안쉬고 10킬로를 온전히 뛰었던 것은 그 대회가 처음이었다. 첫 대회를 제대로 준비한 건 7월 말부터였다. 시간으로 치면 약 한 달 반인데, 두번째 대회를 신청하고 준비한 기간도 거의 한 달 반이다. 첫 대회 때는 막판에 거의 2주를 관절 통증이 심해 달리기를 못 했었다. 이번 둘째 대회 때에도 마지막 약 10일 가량 달리기를 못했다. 하지만 둘째 대회 준비는 그 전에 꽤 착실하게 했었다. 첫 대회 때 중반 이후 체력이 딸려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기 때문에 이번엔 준비를 잘하자고 마음 먹었었다. 누군가 조언했다. 10킬로를 잘 뛰고 싶으면 그 두 배를 뛰라고. 그러면 자연스레 대회에서 10킬로 정도는 잘 뛸 수 밖에 없다고. 그 말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10킬로를 뛰고 나니 그 정도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나는 꾸준히 거리를 늘려갔다. 마지막으로 뛴 거리는 19킬로였다. 막판에 제법 힘들기는 했지만, 엄청 재밌었고 중간까지는, 그러니까 10킬로를 넘겨 거의 13킬로 정도까지는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이번 두번째 대회는 내가 기대한 목표는 어렵지않게 달성하리라.

둘째 대회날 새벽에 일찍, 그러니까 채 2시도 안 되어 잠이 깼다. 더 자고 한 대여섯시쯤 일어나도 되니까 더 자려고 누워 있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일어나서 몸을 움직였다. 전반적으로 몸이 안 좋았지만 특히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대회 시작 한 시간 전에 진통제를 먹을 계획이었다. 미리 다 챙겨둔 가방을 엎어서 준비물들을 하나 하나 다시 챙겼다. 이건 없어도 되려나. 어, 그거 어딨지? 뭔가 더 필요한데 빠뜨린 것 같은데. 입고 나갈 옷을 미리 깔아두고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그냥 나가지 말고 진통제 먹고 잠이나 잘까. 아니면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나갈까.

결국 나는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로 향했다. 이번 대회는 출발선과 결승선의 위치가 달랐고, 가방과 겉옷 등을 보관할 물품보관소는 결승선에 있었다. 출발선과 결승선은 버스 두 정류장 정도 거리였다. 나는 사람들이 이 추운 아침에 겉옷을 벗어두고 얇은 달리기 복장으로 어떻게 버티는 지 궁금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반팔이나 민소매 위에 얇은 일회용 비닐 우비를 입고 인도에서 뛰고 있었다. 가끔은 두툼한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나도 계속 고민한 것이 바람막이를 입고 출발선으로 갈지, 그냥 안 입고 버틸지였다. 분명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만 지나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벗어서 허리에 감고 뛰어야 할텐데 그게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기능성 셔츠 하나만 입고 버티기에는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람막이 대신 비닐 우비를 입고 뛰다가 땀이 나면 그냥 거리에 버리려고 하는 구나 깨달았다.

그 순간 좀 화가 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비도 안 오는데 바람 잠시 막겠다고 그렇게 많은 비닐 쓰레기를 만들다니! 나는 마지막까지 하던 고민을 손쉽게 해결했다. 나는 그냥 바람막이를 입고 뛰다가 허리에 두르리라. 그래서 남들처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 얇은 바람막이 잠바 하나라도 없었다면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버틸수 없었으리라. 출발 시간 이전에 미리 도착해서 몸을 풀면 몸에서 열이 좀 나서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에는 그날 아침이 너무 쌀쌀했다. 게다가 미리 도착해서 준비운동을 하고, 어느 정도 몸을 푼 후에도 시간은 많이 남았다. 추위에 떨며서 제자리 뜀박질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꽤나 지겹고 또 추웠다.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고, 10킬로 코스 출발선에서 그 앞의 하프코스 참가자들 세개 조 모두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대회 주최측은 사전에 전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기록증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요청했다. 몰랐는데 풀코스와 하프와 10킬로는 모두 기록증의 유효기간이 다르더라. 당연히 거리가 긴 하프와 풀코스가 더 기간이 길고, 10킬로는 거리가 짧은 만큼 유효기간도 짧더라. 암튼 나는 9월 초 첫 대회의 기록증 밖에 없으니 그걸 보냈다. 나중에 조 편성 기준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고 내가 불필요한 일을 했구나 생각했다. 10킬로 코스 기준 조 편성 기준은 A조가 40분 이내, B조가 1시간 이내, 그리고 기록증이 없거나 1시간 이상 기록인 사람들이 C조라고 나와있었다. 내 첫 대회는 1시간을 조금 넘겼기 때문에 나는 기록증을 보내던, 보내지 않던 그냥 C조였다.

자, 이제 다시 대회 당일 아침 출발선에 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조인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의 배번호표에는 참가번호 앞에 알파벳 A가 적혀있었다. 그러면 나는 A조라는 말인가? 나는 기록으로 보면 분명 C조여야 맞는데 왜 내가 A조에 배정된 것일까? 이거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졌다. 꼭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멀리 있는 진행요원을 찾아갔다. 대회 시작 직전이라 정신이 없는 진행요원에게 내가 무슨 조인지 묻자, 그는 내 번호표를 가르키며 당연하다는 듯 A조라고 말하고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아니, 나도 눈이 있으니 글씨는 읽을수 있다고! 문제는 내 기록으로 왜 내가 맨 앞조에 속해 있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그 진행요원이 그것까지 확인해 줄 수는 없기에 다시 얌전히 빈 공간을 찾아 수많은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 내가 B조나 C조였다면 목표 달성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A조 무리 중에서 약간 뒤쪽에 있었는데,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자꾸 길을 막아서곤 해서 많이 신경쓰였다. 만약 뒤쪽 조에서 달렀으면 훨씬 더 심하게 사람들 틈에서 뛰던 흐름을 놓치곤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착오였거나, 아니면 기록증을 제출한 사람이 적었거나, 아니면 전체 참가자 숫자가 너무 많았거나. 어느 경우라도 이번에 내가 맨 앞조에 속한 건 운이 좋은 거였다.

대회 당일 아침은 생각보다 더 쌀쌀했다. 발가락 끝부분과 손은 많이 시렸다. 약간이라도 두께가 있는 장갑은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아주 얇은 흰 장갑을 준비했는데, 얇아서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너무너무 손이 시려웠다. 그런데 달리는 와중에 바닥에 버려진 두툼한 장갑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사람들은 땀이 나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비닐 우비 버리듯이 장갑도 막 버리고 뛰는구나. 그날 내가 챙기길 잘 했다고 생각한 것 하나는 귀도리? 방한 귀마개였다. 흔히 넥워머라고 내 생각에 좀 어색한 영어 이름을 가진, 다른 말로는 뭐라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도 같이 구비해서 가져갈까 말까, 입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그건 안 입기를 잘 했던 것 같다. 달리기 시작한지 약 2킬로도 못가서 바람막이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었고, 귀마개는 잠시 목으로 내렸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4킬로 즈음부터 귀마개를 완전히 벗어서 팔에 끼우고 달렸다. 나는 다른 부위보다 유난히 귀가 시려워 것을 잘 참지 못해서 매년 겨울에는 방한용품으로 헤드폰을 항상 쓰고 다닌다. 만야 저 귀마개가 없었다면 대기시간과 초반 레이스에서 내 기량만큼 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구매할 때 화면으로 보내 안 쓸때에는 팔에 끼우고 다닐 수 있다고 사진도 나와있었는데, 팔에 끼우고 달리다보니, 얘가 자꾸 돌아가고 움직여서 많이 신경쓰였다. 달리기 대회는 어떻게든 1초라도 기록을 더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조금이라도 신경 쓸 거리를 안 만들어야 한다. 중반 이후로는 차라리 손에 들고 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 확실히 마음이 더 편했다.

약 8킬로 지점에서 나는 페이스메이커 둘을 만났다. 첫 대회 때에 10킬로 코스는 60분 기록의 페이스메이커만 운영한다고 공지했었다. 그날 나는 뒤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만나지 못했었다. 이번 대회는 10킬로 코스에도 여러 구간의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했는데, 나는 그중 50분이라고 적힌 풍선을 달고 뛰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남녀 한 쌍으로 둘은 완전히 같은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페이스메이커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왜 50분이지? 나는 계속 520페이스(그러니까 1킬로를 5분 20초에 뛰는 속도)로 뛰고 있었는데, 50분 페이스메이커는 500으로 뛰어야 하잖아. 내가 순간적으로 좀 빨리 달렸다고 해도 이제까지 8킬로를 520 정도로 뛰었는데, 500을 그것도 나보다 앞에서 먼저 출발한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기록 욕심이 나서 순간적으로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50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러나 나는 520도 아주 살짝 오버페이스였다. 아마도 이들 페이스메이커 두 명은 뭔가 이유가 생겨 살짝 뒤쳐졌던 것이리라. 내 예상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페이스를 올렸고 순식간에 내게서 저만치 멀어졌다. 나는 쫓아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지쳐서 오히려 더 페이스가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여기가 내 최대 고비였다. 8킬로에서 9킬로까지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자꾸만 발이 멈추려고 하는 걸 억지로 움직였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걷자는 유혹을 뿌리쳤다. 이 추운 날씨에 비싼 신발 신고 이러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나 자신에게 다그치며 멈추지 못하도록 막아야했다.

9킬로를 지나서는 막판 스퍼팅이란 걸 해보고 싶었으나 이미 그럴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생각에 대회 시작전에 대기하면서 추위에 버티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것 같았다. 추위에 유난히 약한,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올라온 내가 제 기량을 펼치기엔 날이 생각보다 추웠다. 첫 대회는 정말 너무 더웠고, 둘째 대회는 좀 추웠다. 내년에는 좀 달리기 좋은 계절에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결승선을 지났다.

둘째 대회를 신청할 무렵 내 올해 목표는 10킬로 60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이었고, 그걸 이 대회에서 달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10월에 15킬로 이상 뛰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 목표는 달성을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숫자가 되었다. 이제 좀 여유있게 뛰어도 50분 후반대는 나왔다. 그래서 목표를 55분으로 조정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 목표를 달성했고, 그 사실이 정말 기뻤다. 드디어 해냈다! 날도 춥고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해냈다. 이제 내년에는 50분을 목표로 달려야지. 그리고 좀 더 자신이 붙으면 하프에도 도전해봐야지. 기록 신경 안 쓰고 천천히 뛰면 지금도 하프 충분히 뛸 수 있는데, 대회에 나가면서 기록을 신경 안 쓸 수는 없는 법. 지금처럼 6분대가 아닌 5분대 페이스로 하프를 뛸 수 있도록 만든 후에 대회에 나가야지.


사람들은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다.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비밀의 나
- [완벽한 타인] 마지막 자막

눈이 많이 왔다. 뉴스에서 120년? 암튼 11월 폭설로는 기상관측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눈이 많이 온 밤에 영화 [완벽한 타인]을 다시 봤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판권이 팔리고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진 영화라고, 22개국 버전의 내용을 비교하는 영상을 봤다. 그게 아마 2년전 영상이었는데, 그사이 또 다른 나라들에서도 더 찍었을테니, 지금은 그 숫자가 한두개 이상 더 늘어났겠지. 그 영상을 보고나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찾아봤다.

처음 봤을 때 엄청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부분 연출이 이번에는 좋더라. 특히 눈 덮힌 도로에 차가 신호에 걸렸다가 다시 출발하는 장면. 난 눈을 참 싫어하는데, 화면에 담긴 눈은 가끔 좋더라. 화면이니까. 나랑 직접 상관이 없으니까.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도 꼭 찾아봐아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판이 로컬라이징을 꽤나 잘 했다고 하던데, 두번째 보니 디테일을 참 잘 살렸더라. 물론 아까 말한 22개국 버전 비교 영상을 보면 원작 설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꼭 우리나라 판본의 디테일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원작을 보고 싶은 것이고. 두번째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더라. 뭐,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연기를 잘 했는데, 특히 유해진, 염정아, 이서진 이 세명이 조금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이서진. 저렇게 바람둥이 연기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감독이 마지막 자막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넣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엔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반지가 돌아가는 장면 이후 상황이 바뀐 내용들과 자막은 잘 이어진다고 본다.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 보여주고 어렵고, 더 적나라한 표현을 넣을 수 없었겠지만, 당연히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어떤 모습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숨기느냐에 따라서 미세하게 다른 내가 될 것이고, 또 보여주고 숨기는 양상과 형태에 따라서도 내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일터에서 안면만 있거나 철저히 공적 관계로만 얽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행동하는 내 모습과 일터 동료들 중에서도 나이를 떠나 친한 사람들과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친구들과의 나, 아주 친한 절친과 있을 때의 나는 모두 다르다. 거기서 가족들과 나 역시 또 다르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때의 나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벌써 연말이 다 되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가고 새해가 오겠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 그냥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연말은 되도록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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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1-2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플에서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에 쓰여진 글들이 참 사람을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제가 쓴 그때의 글도 그렇지만 그 글에 달려있던 지금은 보이지 않으시는 많은 분들의 댓글이 또 사람을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아득해져요.

감은빛 2024-11-28 15:06   좋아요 0 | URL
제가 북플이란 어플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피씨로 알라딘에 들어왔을 때에는 볼 수 없는 지난 오늘 메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점수를 줍니다.

완전히 형태가 다르지만 페이스북은 웹으로 접속해도 지난 오늘 올린 글들을 보여주는데, 알라딘도 웹에서 그것까지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조금 돈을 쓰면 웹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훨씬 많을텐데, 돈을 쓰기 힘든 구조이겠지요.

yamoo 2024-11-2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풀이 과거 오늘 쓰여진 글들을 날라다 주나 보죠? 저는 북플을 안하다보니 과거 내가 오늘 쓴 글이 뭔지 몰라요.

댓글...맞아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페이퍼나 리뷰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댓글을 달아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시 생각도 새록새록 나구요..^^

여전히 달리기 열심히 하시네요..저는 달리기는 영~~ 취미가 없어서뤼...화이팅 하십쇼!!

희선 2024-11-30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컴퓨터로만 쓰니 예전에 제가 뭘 썼는지 그런 거 모릅니다 어쩌다 우연히 볼 뿐입니다 그게 더 나은 듯도 하고, 알려주는 게 나은 듯도 하고... 둘 다 나름대로 괜찮겠지요

김장 잘 담그시는군요 갈수록 그걸 하는 사람이 줄어들겠습니다 조금 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달리기는 추울 때는 기다릴 때 힘들겠습니다 비닐 비옷을 길에 버리는군요 그건 생각하고 입었으면 좋겠네요 버리지 않고 자기 몸에 묶고 달리면 좀 나을 텐데... 감은빛 님이 바라시는 기록이 나와서 기쁘셨겠네요 달리기만 해도 좋을 것 같지만, 하다 보면 기록이 좋기를 바랄 것 같네요 앞으로도 즐겁게 달리기 하시기 바랍니다

위쪽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사는 곳은 비만 왔습니다 겨울이니 비보다 눈이 오면 좋을 텐데 했어요 눈도 조금 날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못 본 거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4-11-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절 통증이 있을 땐 쉬셔야지요. 우리 몸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 좋은 컨디션으로 돌아옵니다.
몸 자체의 치유 능력 때문이지요. 겨울에 걷기만 해도 열이 나서 땀이 날 때가 있는데 달리기를 하면 얼마나 열이 날까 싶네요. 아무쪼록 운동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사시길...^^
 

오늘도 달리기


11월 24일 대회가 다가오니 한편으로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달려서 좋은 기록을 올려야 할텐데 라고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아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과 관절 통증 등이 겹쳐서 달리기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달리기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토요일에도 또 통증이 심했다. 어떻게든 나가서 조금이라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결국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 포기했다.


일요일 아침에 오늘은 꼭, 반드시 달리기를 하리라 다짐을 했다. 역시나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먹고라도 나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일요일에는 JTBC 마라톤과 평화 마라톤이 있는 날이라, 점심 때가 지나서 기록증 사진들이 단톡방과 SNS 등에 엄청나게 올라왔다. 지인 중 한 명이 제이티비씨를 또 한 명이 평화 마라톤을 나갔고, 두 사람의 기록을 보면서 나도 오늘은 꼭 달려야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적을 때 달리려고 기다리다 보니 오후가 다 갔고, 저녁 무렵에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갔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더웠는데, 일요일 저녁은 조금 쌀쌀했다. 물론 조금 달리다보면 금방 땀이 날테니 상관없다. 잠바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천변 산책로로 내려와 몸을 풀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달리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달려보고 상태를 봐서 오늘의 목표를 정하리라. 일단은 15킬로미터까지는 무조건 가고, 가능하면 17킬로까지는 가보자 생각했다. 첫 1킬로까지는 가볍게 천천히 뛰었고, 2킬로 정도에서 어느정도 워밍업이 되어서 슬슬 속도를 올렸다. 생각보다 훨씬 몸이 가벼웠고, 기분이 좋았다. 3킬로를 지나면서 생각했다. 오늘 무조건 17킬로 이상 갈 수 있겠구나.


양화대교


지난 번 15킬로를 달렸을 때, 양화대교 바로 앞에서 돌아섰었다. 그때 다리를 쳐다보며 다음엔 양화대교를 뛰어서 건너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양화대교를 건너보고 그 다음에 어디로 계속 갈지 즉흥적으로 고르자 생각했다. 다리는 가벼웠고, 숨도 그렇게 가쁘지 않았다.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하며 인터벌 훈련하듯이 뛰었다. 지난 번에 15킬로 때는 거의 일정하게 페이스 540으로 달렸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속도를 냈다가 다시 평균 속도로 돌아오기도 하고, 막판에는 지쳐서 속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나중에 구간별 기록을 자세히 보니 거의 일정하게 달렸었다. 이번엔 일부러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5분대 페이스는 유지하고 싶었는데, 중반 이후로 그러니까 양화대교를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양화대교의 인도는 무척 좁았다. 게다가 보행자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유도 공원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번에 월드컵 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아무도 없는 다리 위를 달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전력질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뛰었었다. 그런데 양화대교에서는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선유도 공원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1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여기 놀러 왔었다는 사실만 기억나고 공원의 모습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두워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달리다가 막다른 길에 접어들어서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바깥으로 크게 도는 길을 찾아서 달렸는데,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좀 더 있다가 아예 밤이 되어서 나올걸 하고 후회했다. 불광천 산책로는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지만, 한강으로 나오면 좀 적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많았고, 여기 양화대교와 선유도 공원 역시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양화대교로 돌아가기 않고 선유도 대교인가? 남쪽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발견하고 거기를 건넜다. 그리고 한강의 남쪽을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양화대교를 만나 이번엔 건너왔던 길의 반대편 인도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양화대교를 건너서 돌아왔을 때 11킬로미터를 찍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든 생각이 오늘 어쩌면 하프를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였다. 그래. 22킬로를 한번 가보자. 아니 적어도 20까지는 가보자 생각하고 불광천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뛰었다. 20킬로를 뛰려면 약 1킬로만 더 동쪽으로 갔다가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산수를 잘 하지는 못 하지만 아마도 맞으리라 확신했다. 달리다보니 저 멀리 서강대교가 보였고, 여의도의 여러 건물들과 국회가 보였다. 국회가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서 12킬로를 찍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양화대교 아래를 지나고 무슨 군함있는 곳을 지나서 슬슬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 아직 돌아가려면 멀었는데, 벌써 지치다니! 어떻게든 갈 수 있을거라고. 오늘 꼭 20킬로를 찍겠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달렸지만, 페이스는 계속 떨어졌다. 달리다보니 자꾸 소변이 마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경이 쓰였다. 벌써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었는데 또?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역시 나오지 않았다. 아까 분명 소변을 보았는데 왜 자꾸 마려운 느낌이 들까? 다시 옷을 입고 세면대에서 얼굴의 땀을 씻었다. 이런 형태의 간이 화장실들은 좁고 세면대가 출입문 바로 앞에 있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데, 출입문이 일부 열리더니 밖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달렸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물을 떠서 목 뒤쪽에 붓고 허리를 펴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남자 청소년 두 명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아! 얘네들이 화장실에 들어오려다가 내 긴 머리를 보고 여성이라 생각하고 멈칫 했구나. 그리고 다시 확인했겠지. 분명 남자 화장실인데 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둘이서 수군거리고 있었구나. 내가 그들을 스쳐 지나는데, 한 명이 말했다. 거봐! 남자였잖아 라고. 


화장실에서 시간을 제법 뺏겼고, 양화대교를 오르내리는 네 번의 계단에서도 제법 시간을 지체했다. 게다가 아직 돌아갈 길의 반도 못 왔는데 지쳐버렸다. 이때 오늘 5분대 페이스는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14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페이스는 640 정도였다. 속도를 다시 높여서 620까지는 만들자고 생각했으나 이미 지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쯤부터 갑자기 발등에서 조금씩 통증을 느꼈다. 발의 피로도가 한도를 넘어서 발에 있는 작은 인대와 근육들이 놀란 모양이었다. 15를 넘어 16, 17 킬로를 지나면서는 약간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조금 회복된 느낌이 들면 다시 뛰고, 또 쥐가 날 듯한 느낌이 들면 걸었다. 이렇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해서 18킬로를 지났고, 마지막 2킬로는 속도를 좀 내보자 하고 뛰었는데, 역시 원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다. 


역시 무리였구나. 오늘은 그냥 17이나 18에 만족하고 20까지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고 생각했지만, 11킬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해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에는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무시하고 그냥 뛰었다. 이게 정말 쥐가 나면 큰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그냥 밀어붙였다. 숨이 너무 찼고 다리는 무거웠다. 너무 힘들었다.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흰머리 휘날리며


19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이제 1킬로 남았다.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며 또 속도를 높였다. 정말 이제는 남은 힘을 쥐어 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속도를 잠깐 높였다가 금방 지쳐서 느려졌다. 너무나도 걷고 싶었지만, 참고 계속 뛰었다. 그렇게 한참 죽을 것 같은 몸과 마음으로, 억지로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왼팔을 붙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멈춰섰고, 돌아보니 최근 몇 년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발을 멈추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순간 갈등했다. 남은 1킬로를 마저 뛰어갈테니, 저 끝에서 만나자 라고 얘기하고 다시 몸을 돌려서 뛸 것인가? 아니면 이미 너무 지쳤으니 그냥 여기서 멈추고 이 녀석과 함께 걸어갈 것인가? 머리는 1번을 원했으나, 몸은 2번을 원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2번을 택하고 달리기 기록 앱을 멈췄다. 19.45킬로미터였다. 출발점까지 남은 거리는 아마도 1.3 에서 1.5정도 될 것 같았다. 20을 찍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처음 목표였던 17은 훨씬 넘었으니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녀석과 함께 걸으며 여기 왠일이냐고 물었더니 서울시가 만든 9988이란 앱에 8천보를 찍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걷고 있는데, 갑자기 흰머리를 그것도 긴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한 눈에 나라고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는데, 내가 못 듣고 뛰어서 지나가버려서 뒤따라 뛰어와서 잡은 거라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라는 표현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까 간이 화장실 앞에서 당황했던 아이들도 생각났다. 약 1킬로를 걸으며 호흡을 회복하고 다리 근육을 풀어주려 애썼다.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나는 얼른 뭐든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이제 대회까지 채 3주도 남지 않았다. 아니 아직 3주가 남았으니 조금 더 훈련할 수 있다. 지금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1주일 남은 시점까지 열심히 달려보고 그때 기록을 보고 대회 목표를 정해야겠다. 19킬로미터를 뛰었다고 지인들에게 열심히 자랑을 했다. 나를 장거리 달리기로 이끌었던 형이 이제 너는 하프를 뛰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형, 저 아직 20까지는 못 갔어요. 라고 답했다. 물론 이렇게 꾸준히 달리면 내년 초에는 하프 정도는 뛸 수 있겠지 싶다. 그럼 풀코스는? 나중에 풀코스를 달릴 정도의 실력이 되면 그때 고민해봐야겠지. 불과 3달 전만 해도 내가 풀코스를 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젠 상상 정도는 해볼 상황이 되었다니! 어쨋든 이렇게 점점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몸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정말 좋다. 앞으로도 즐겁게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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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

아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열명 가량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짜장면, 탕수육, 고추잡채, 짬뽕, 마파두부덮밥, 깐풍기 등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여 음식을 먹었고, 잔을 들어 술이나 음료를 마셨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내게 토요일은 대개 늦잠을 자는 날이다. 물론 토요일 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늦잠을 자고, 종종 평일에도 늦잠을 자기도 하지만, 내가 토요일에는 늦잠을 잔다고 일부러 쓴 것은 그날만은 늦잠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족두리봉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식상한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은 공공의 공간인 혁신파크를 우리 시민들에게서 빼앗아 기업에 팔아먹으려는 오세훈 시장의 도둑질을 막기 위한 달리기 행사를 여는 날이었다. 맨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를 기획한 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쎄 이게 처음 나한테서 싹튼 기획이었다면 분명 그 초기 발아 시점과 과정이 기억에 남아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최근의 나는 누가봐도 달리기에 푹 빠져 사는 것은 맞고, 그래서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운영위원, 아마도 나는 그의 머리에서 최초 발아한 싹이었으리라고 짐작하는데, 그가 아이디어를 내고 다들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아주 빠르게 살을 붙여 완성된 기획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혁신파크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달리기 행사. 나를 비롯한 남성 운영위원 전원이 달리기에 진심이고, 나를 제외하면 제법 달리기 경력을 쌓으신 분들이라는 것도 이 기획을 추진하게 된 이유였다. 한편으로 농성장 지킴이와 금요 집회 두 가지만 형식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재미와 신선함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지역정당 당원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고 싶은 희망도 있었다.

홍보를 열심히 했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우리 소수의 참여자들만이라도 재미있게 신나게 놀아야지 하고 평소와 달리 조금 일찍 일어나며 생각했다. 대충 씻으며 달리리 복장을 머리 속으로 그렸다. 최근에 산 긴팔 런닝복은 몸에 완전히 딱 붙어서 조금 나온 배가 너무 보기 싫게 되지만, 땀을 많이 흘릴 예정이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버스를 탈지 걸어갈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버스가 막 지나간 것 같아서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걸음이 느려져,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남은 거리는 뛰기로 했다. 마라톤 대회 시작을 앞두고 워밍업으로 달리기를 하듯이 나는 혁신파크까지 남은 거리를 준비운동삼아 달렸다.

농성장 앞에는 예상과 달리 이미 여러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를 꼬드겨 9월 초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게 만든, 그래서 내가 장거리 달리기에 푹 빠지게 만든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 운영위원들과 그 형과 내가 있으면 오늘 행사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기획은 한 사람씩 바톤 역할을 할 손피켓을 들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한번에 달렸고, 그 방식이 서로 힘이 되기도 하고 또 사람들 눈에도 잘 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혼자 보다는 두세명 이상 모여서 뛰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좀 더 자주 이어달리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흐름이 끊기는 상황이 생겼다. 그럴 때 아무렇지 않게 손피켓을 들고 뛰어나가면 정말 멋있었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앞에 몇 바퀴를 연속으로 뛰고 나서 지쳐 있었다. 조금만 더 쉬면 다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못 하겠어.

확실히 나는 아직은 경험과 능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건 이제 겨우 3달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에 3년 넘게 달리기를 해오긴 했지만, 그건 1~2킬로미터 위주의 짧은 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번도 쉬지않고 5킬로미터 이상 달린 경험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 한 번의 경험을 근거로 10킬로미터 코스를 덜컥 신청해놓고 6킬로미터, 7킬로미터, 8킬로미터, 9킬로미터 이렇게 거리를 늘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체력도 경험도 부족한 상태로 9월 초 첫 대회를 치렀다. 정말 힘들었는데, 또 그것이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고, 그 힘든 조건을 무릅쓰고 썩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완주를 했다는 것에 스스로 조금은 감동했다.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올해 안에 한번 더 대회를 나가서 내가 만족할만한 기록을 세우고 싶었다. 대회에서 딱 한번 10킬로미터를 뛰어봤을 뿐이지만, 이제 10킬로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꾸준히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즐겁고 재미있었으니 이렇게 열심히 달린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 피우던 담배도 아주 손을 떼고, 3달 동안 열심히 달려서 올해 안에 달성하고 싶었던 목표, 페이스 600으로 10킬로를 완주하는 일을 최근에 달성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15킬로를 완주했다. 15킬로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페이스 541. 600페이스, 즉, 1시간 30분 안에만 들어오면 괜찮을텐데라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꽤나 성공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제일 뿌듯한 것은 15킬로를 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쉬거나 걷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간에 화장실을 한번 다녀왔지만, 이건 생리현상이니까 예외로 두자. 그래서 그날 지난 3달 간의 내 노력이 성과를 맺었다고 생각해서 보람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 혁신파크 공공성 지키기 위한 달리기 행사에선 다시 좀 한계를 느꼈다. 일단 함께 뛰는 사람들이 달리기 내공이 장난 아닌 분들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풀코스를 여러차례 완주한 분들이시고, 이미 달려온 세월이 몇 년씩 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로 조금 더 빠른 페이스로 잘 달리는 모습이었다. 같이 달리며 따라가는 것이 조금 벅찬 달리기를 계속 해온 셈이니 내게는 벽이고, 한계였던 것이다.

이날 행사는 정말 힘들었지만, 온화하고 멋진 날씨 만큼이나 신나고 재미있었다. 9시부터 13시까지 4시간 동안 총 24개의 생명이 참여했고, 한바퀴에 700미터인 코스를 총 120회 돌아서 84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렸다. 24개의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람이 21명, 강아지가 3마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달렸지만, 몇몇 사람들은 걸었고, 강아지들도 걸었다. 더 소수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혁신파크를 돌았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이 공적 공간을 민간에 팔아먹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외치고 알렸다.

행사를 마치자마자 다들 다음 행사는 또 언제 할거냐고 물었다. 이건 정기적으로 기획한 건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금방 다시 추진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다들 정말 이 달리리를 즐겼기 때문에 또 하자는 마음이 들었으리라. 지치고 힘들지만 마음은 벅찬 상태로 우리는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배를 채우러 움직였다. 그리고 맨처음 말한 것 처럼 그 자리에서 큰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 그리고 독서

아마 수요일 저녁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뭔가 상한 음식을 먹은 것 같다고 하고 병원에 갔고, 장염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했다. 그러고 하루이틀 지나면 낫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낫지 않고 계속 더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토요일에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아마 토요일 밤에 아이랑 같이 있어준 애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 작은 아이를 챙기고, 좀 쉬고, 일도 하기 위해 내가 교대해주길 원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야할 일이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 몸이 무겁고 이래저래 조금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이가 기다릴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 씻고 준비를 했지만, 음, 쉽지 않았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파주로 가는 빨간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쳤다. 이런 순간들이 가장 힘빠진다. 겨우 1~2분, 어쩔 때에는 3~40초 차이로 버스가 출발하는 걸 신호에 걸려 쳐다만 봐야만 할 때. 버스 도착 알림 전광판을 보니 다음 버스는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목이 말라 뭔가를 마시고 싶었다. 일단 탄산음료는 좋아하지 않으니 배제. 주스류도 너무 달아서 통과. 마땅히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평소라면 아에 쳐다보지 않았을 커피 쪽으로 갔다.

나는 우유를 못 마시는 사람이다. 그 분해효소가 없는 거겠지. 우유를 강제로 먹였던 국민학교 시절과 군대에서 엄청 괴로웠지만, 제대한 이후로는 한번도 먹지 않았다. 내게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마치 외계인처럼 신기한 존재다. 그리고 커피 역시 내게는 우유만큼은 아니라도 몸에서 잘 받지 않는 음료다. 커피만 마시면 소화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마치 물처럼 아메리카노를 마셔대던 친구들 덕분에 나도 종종 같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했다. 몇 번 같은 문제를 겪으며 원인이 커피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마시지 않으려 했다. 사실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 없었다. 그런데 살다보면 커피가 꼭 필요하거나 땡기는 순간들이 있다. 우유와는 달리 커피는 가끔 먹게 된다. 가령 밤새 야근을 하고 아침 일찍 취재나 출장을 가기위해 운전을 해야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졸음 운전을 피하기위해서는 커피를 마셔야했다.

그 순간이 그랬다. 약간의 두통과 몸 전반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내 두뇌는 본능적으로 커피로 눈을 돌렸다.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메리카노는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콜드브류 커피는 또 취향에 맞았는데, 냉장고 한 구석에 콜드브류 커피가 있었다. 게다가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평소에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콜드브류 커피 두 개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나는 커피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콜드브류 커피 특유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셨다. 버스를 기다리는 20분 남짓한 시간에 벌써 각성효과가 나타나 두통이 사라지고, 컨디션도 조금은 좋아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조금 넘게 달려 파주에 도착했다.

아이는 병실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몇가지 잔 심부름을 시켰다. 부모로서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아이가 아픈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이 나왔다. 아이는 장염이라서 죽 한 그릇과 간장 그리고 동치미가 나왔다. 아이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죽을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깔짝대다가 다시 뚜껑을 덮었다. 10분의 1은 커녕 맨 위의 건더기 몇 알만 건져 먹었을까. 약 먹어야 하니 조금만 더 먹자고 해도 속이 안 좋다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간 설사와 복통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했다.

차라리 잠을 자면 괜찮지만, 깨어있는 시간동안 아이는 심심해했다. 요즘 아이답게 휴대폰으로 각종 짧은 영상 보기를 즐기는 아이는 토요일 반나절만에 데이터를 다 써버렸다고 내게 데이터 쿠폰을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쿠폰을 구해준 후에 심심하면 책을 읽으라고 했다. 아이는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나도 앗차 싶었다. 왜 책을 챙겨올 생각을 못 했을까? 아침에 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는 증거라 여겼다. 나는 조금 고민끝에 병원에서 가까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 있는 아이의 자치방에 가서 책과 필요한 물품들을 갖다주기로 했다. 아이의 자치방은 버스를 타기에는 노선과 배차시간이 애매하고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곳에 있었다. 이럴 때 내 선택은 언제나 걷는 것이다.

아이의 방에 도착해보니 아파서 괴로워하다가 급하게 병원으로 간 흔적이 역력했다. 방을 좀 치워줄까 하다가 아이가 싫어할까봐 그냥 필요하다는 물건들을 먼저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을 좀 챙기려는데, 책상 위에는 시집들이 여럿 보였는데, 소설은 한 권 밖에 없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 책을 집어보니 아이는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 여기저기 책갈피 테이프를 붙여놓았고, 해당 페이지들을 열어보니 밑줄도 많이 그어져있었다. 아이가 읽을 책을 갖다주려 했는데, 이미 읽은 책 밖에 없었다. 아이와 통화해서 시집을 세권 챙기고 내가 읽으려고 하나밖에 없는 소설을 챙겼다. 나중에 아이에겐 엄마랑 연락해서 집에서 책을 갖다달라고 하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내가 처음 도착했던 오전과 달리 오후에 낮잠을 잘 잔 후로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복통도 많이 가라앉은 듯하고 설사도 멈췄다. 저녁으로 나온 죽은 거의 절반을 먹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좀 챙겨준 뒤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속이 답답한 것이 뭘 먹은 것도 없는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책에 집중하다가도 가끔 속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그때 그 커피가 든 병이 보였다. 아, 아까 커피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장염을 앓고 있는 아이도 그리고 나도 둘 다 소화가 잘 되지않아 고통받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에휴!


이 뒤는 책 이야기인데, 이것도 엄청 내용이 길어질 예정이다. 할말이 너무 많은데, 얼마나 어느 정도로 할지 모르겠다.

첫 단편인 [재희]는 이미 영화로 본 내용이었다. 물론 영화는 약간의 각색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 책의 재희와 영화의 재희는 약간 느낌이 달랐다. 책의 재희는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그 재희는 아닌 것 같았다. 같거나 비슷한 행동과 대사였지만, 그렇게 느꼈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나름의 매력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반면 주인공인 영은 소설 쪽이 훨씬 더 살아있는 느낌이고, 영화에서는 억지스럽거나 무리한 측면이 좀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뒷 편에 나올 카일리 이야기를 위해 군대에서 6개월만에 의병 제대를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영화에선 없다.

아, 영화가 이 소설집에서 첫 단편 [재희]만 갖다 썼다면, 전체 이야기를 다 써서 드라마도 나왔다고 들었다. 이제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드라마와도 비교해봐도 재미있겠구나 싶다.

두번째 단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내용인데, 하아, 이걸 다 어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이 책에 실린 4편 중에 가장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무게 중심이 여기에 확 쏠리는 느낌이다. 작가가 혹은 출판사가 표제작으로 삼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남자가 나오고, 그와의 사랑 이야기가 잘 구성된 흐름 속에 녹아있어 좋은 글이지만, 그리고 카일리라고 이름 붙인 그 문제의 병을 지금껏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특유의 태도로 대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번째 단편보다는 비중이 약하다고 느낀다.

어쨌거나 두번째 단편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가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도 문제라고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영이 신랄하게 까고 있는 그 중년의 운동권 출신 찌질한 남성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사회적인 위치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거의 정신병 취급하는 그 남자 특유의 말들. 철학과 사상과 신념들. 그것 것들을 이렇게까지 나쁜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에 결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클리셰처럼 띠동갑 커플을 설정해 세대 갈등으로 인한 블래코메디와 풍자를 깔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 NL, 학생회장 출신 운동권, 종북좌파 라는 설정 역시 깔 것이 많은 적절한 씹을 거리가 되어줄테니 안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총련 사태를 경험한 마지막 운동권, 미행과 감청, 압구정 부유한 집안 출신, 출판사 외주 편집자라는 설정까지 얼핏보면 엄청나게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인물을 마치 유령과도 같은 과거의 유물이자, 이제는 쓸모없는 혹은 얼른 자리를 내주고 비켜야하는 똥차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조롱하고 모욕한다. 특히 해당 인물이 네번 합쳐서 약 72시간 구치소에 머물렀고,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고 장판이 깔린 옥사에 누워있다 나왔는데 허리와 목이 안 좋다는 후유증 얘기를 한다고 표현한 장면에서 할말을 잃었다. 만약 네차례 연행을 당했다면, 그 네번 모두 적지않을 수준의 구타를 당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필요 이상의 폭행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부상을 입는다. 그 과정에서 허리나 목이 아플 수 있다는 설정을 과연 작가가 안 했을까? 그런데 그저 누워만 있다 나왔으면서 무슨 후유증이라고 썼을까?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이 이 띠동갑 운동권 출신 꼰대를 이렇게 어이없고 사소한 것으로 비꼬는 것이 이 소설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95학번이고, 짧은 기간 PD계열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NL들과는 생각하는 방식과 기본으로 깔고가는 대전제가 달라서 함께하기가 피곤하다 여겼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같이 가야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나중에 NL과 PD 양쪽 모두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결국 학생운동 판에서 퇴장하고 시민운동으로 경로를 바꿨다. 새만금, 경부고속철도 이 두가지 거대한 국책사업이라는 환경 파괴에 맞섰고, 평택미군기지 조성 초기에 강하게 반발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나도 잘 믿기지 않는데, 이때 실제로 미행도 당했다. 한미FTA반대 범국본 시절에는 내가 도청을 당하진 않았지만, 범국본 내에서 나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선배 활동가가 도청을 당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도청당하는 것을 역이용하기도 했었다. 그게 2006년 일이었으니 이 작가가 도청과 미행을 마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잔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보고 싶다.

이 학생회장 출신 출판 외주편집자라는 인물과 나는 같은 학번에 학생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출판계에 몸 담았다는 것도 같다. 미제국주의라는 단어를 썼고, 성조기를 싫어했으며, 철학 책을 좋아했고, 뭔가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꼰대라는 것도 같다. 차이점은 나는 종북좌파는 아니었다는 점, 이 인물은 출판계에 종사하며 더는 사회운동을 안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운동판에 속해있고 앞으로도 계속 운동을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나는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겠다. 물론 디테일하게 따지면 수없이 더 많겠지만, 그렇다.

한때 우리 세대가 386부터 586까지 그들 나이 앞자리 수에 빗대어 꼰대로 불렀던 그 세대를 비꼬고 비판한 것처럼, 우리 아래 세대도 X세대를 꼰대 취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것 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사회를 바꿔보려는 수많은 노력들이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운동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단순하게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이 인물이 과연 필요한가 모르겠다. 이 두번째 단편의 핵심 주제는 어머니와의 관계다. 그런데 작가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정말 사랑했다는 이 남자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떡밥으로 자신이 준 일기의 교정본과 메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인물이 주인공에게 교정지를 왜 굳이 5년이나 지나서 주었는지, 만나서 주고 싶다고 한 것은 무었이었는지, 왜 5년이나 지나서 자신이 못 지켰던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어머니와의 이야기와 이 남자와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 인물이 이 이야기에 꼭 필요하고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앞에 저 의문들은 왜 해소하지 않고 그냥 글을 닫았을까? 애초에 띠동갑에 꼰대인 아저씨를 왜 그렇게까지 사랑했을까? 아니 사랑에는 이유가 없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인물을 알아나가면서 결국은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주인공이 그만큼, 그러니까 음독자살을 시도할만큼 그렇게 계속 좋아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음은 주인공이 이 인물을 보며 생각한 표현들이다. 개떡같은(105쪽), 약간 맛이 간 것 같기도(105쪽), 정체불명ㅇ이 종교단체에 속한 사람인가?(105쪽),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안 중요해 보이는 얘기를 줄줄 이어나갔고(110쪽), 아는 형님에 요즘 애들이라니 단어 선택이 퍽이나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118쪽),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장판이 깔린 옥사에서 누워 있다 나온 거였다.(139쪽), 감옥에서 나올 때마다 몸에 새로운 문신을 새겼다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면 그 문신을 다시 새로운 문신으로 덮었다는 얘기를 들을 땐 우주를 표류하는 것처럼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139쪽), 반지하방에서 섹스를 한 뒤 전직 운동권 학생회장의 후일담을 듣는 내 모습이 지독히도 80년대 후일담 소설 같아(139쪽),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러가자 나는 정말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고(140쪽), 지금은 그냥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저자 욕이나 하며 맞춤법을 고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잖아요.(141쪽), 나한테 이런 헛소리를 할수 있는 거겠죠.(141쪽), 당신의 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141쪽)

물론 주인공이 이 인물을 왜 좋아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표현한 내용이 훨씬 더 많고, 좋은 표현이라 생각할만큼 괜찮은 것들도 많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감정이 혼란스럽고,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라고 해도 왜 주인공이 이러는지 모르겠다. 물론 알 수없다. 당연히!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처음 읽을 때에는 이런 것이 운명적인 사랑인가 싶었던 것이 다시 보니 이건 주인공도 저 인물도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미쳤거나, 아니면 각자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감정만 바라본 거였네. 까지는 납득이 간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기를 이런 관점에서 보려면 어떻게든 이 연인의 현재 시점 이야기를 잘 마무리 했어야 했다.

음, 역시 나도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내 생각과 내가 주로 쓰는 단어는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어쩌다 비판적인 내용을 더 많이 쓴 것 같은데, 책은 엄청 좋았다. 네 작품 모두 일정하게 현실과 이상과 괴리와 편견이 섞여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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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운전


주말에 제천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운전이었다. 빌린 차를 운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차라면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이 익숙할 것이고, 핸들링과 차의 크기에 대한 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을 거라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겠지만, 낯선 차는 그 모든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후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졸리면 내 차에 탄 일행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어서 미리 에너지 음료를 챙겨 먹고 차량을 받으러 갔다. 요즘 차들은 정말 새로운 기능들이 많았다. 그만큼 편하게 운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또 뭔가 많은 기능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행히 함께 가는 일행들이 성격도 좋고 친절하신 분들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조수석에 타신 남성 가끔 마주친 분으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한 분이라 그리고 남성이라 마음이 편했다. 옆자리에서 에어컨 조작과 음악 선곡 등 여러 일들을 도맡아 잘 해주셨다. 뒷자리 여성 한 분은 그날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아주 조용하신 분이셨다. 평생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맨 마지막에 합류한 다른 여성 한 분은 종종 만났던 사람인데,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어서 미리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도 친한 사람(평소 그 사람 기준이 나를 친하다고 여기는 듯한 느낌은 자주 받았었음)은 나 밖에 없어서 그렇겠지만, 운전하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걸거나 뭔가 요구하곤 했다. 다행히 나머지 두 분이 적절하게 말을 받아주고, 요구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꽤 오랜 시간 차가 없었으니 평소에 운전할 일이 거의 없고 아주 가끔 차를 빌려서 운전을 해도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은 드물다. 혼자 운전을 하면 살짝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을 태우면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운전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처럼 낯선 사람들을 모셔가야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래야겠지. 그 분들께 미리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고, 다른 사람의 차라서 익숙하지 않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수도권을 벗어나는 길은 그래도 아는 길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제천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움직이는 길들은 낯선 길이기도 하고, 도로 사정이 열악했고, 그리고 최악인 것은 정말 꼬부랑 꼬부랑 돌고 돌고 도는 길이 이어졌다.


내가 운전한 차에 낯선 분들이 주로 타셨다면, 다른 차량에는 나와 친한 지인들이 탔다. 그 차를 운전하는 친구는 나와 가장 많이 또 자주 여행을 다닌 사람으로 그 친구가 어떤 스타일로 운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 녀석은 다소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 녀석이라면 꼬부랑 꼬부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을 빠르게 갈텐데 라고 생각이 들었다. 안전이 가장 우선이긴 하지만, 그 차에 비해 우리 차가 너무 늦으면 그건 또 민폐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몇 군데 이동하면서 늘 우리 차가 먼저 출발했음에도 도착해보면 그 녀석이 먼저 와 있었다. 다만 운이 좋다고 느꼈던 것은 늘 그 녀석은 주차할 자리가 마땅히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나는 손쉽게 주차할 자리를 찾았다는 것. 그 녀석이 도착한 이후 그 몇 분 사이에 바로 앞에 주차할 자리가 생기는 일이 연속으로 계속 일어났다. 


주말 이틀동안 제천과 충주에서 꼬부랑 꼬부랑 길들을 워낙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운전 실력이 확 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함께 탄 일행들을 고려해 최대한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코너링을 하면서도, 함께 이동하는 다른 차량에 비해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속력도 신경써야 하는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일이다. 다른 일행이 없었다면 나도 그 녀석처럼 속력을 중시해 급가속과 급감속을 계속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링을 할 수 있다. 내가 혼자 탔다면 말이다. 아니면 그냥 천천히 느긋하게 간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나타나는 회전 구간들마다 속력을 충분히 줄여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탄 일행들이 불안해하거나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갈 수 있도록.


제일 힘든 일은 일요일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운전이었다. 나는 눈이 많이 나쁜 편이고 안경을 낀 교정 시력도 그렇게 좋지 않다. 일상 생활엔 지장이 없고, 낮 운전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야간 운전과 악천후 운전 등의 상황에는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오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금방 해가 저물어 버렸고, 어두워지자 급격하게 눈에 피로감이 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일정이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몸의 피로감도 너무 컸다. 내가 너무 지친 상태라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 외에는 운전할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든 서울까지 돌아와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전날 함께 갔던 일행 중 일부가 일요일 오전에 먼저 떠났기 때문에 우리 차에 여유가 있었고, 일행 중 나와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을 저쪽 차에서 우리 차로 데려와서 조수석에 앉도록 했다. 그 친구가 옆에서 계속 나를 신경 써주고 도와주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많이 하고, 꾸준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법. 운전은 좋아하지만, 많이 하거나 꾸준히 할 상황은 아니라 할 때마다 매번 뭔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그러니까 2019년에 오키나와에서 운전할 때에도 일본의 도로와 차량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라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그때는 9인승 차량을 운전해야 해서 평소 승용차만 몰아봤던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물론 여러 실수들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무사히 일행들을 모시고 다니긴 했다.


다리와 달리기


이번 워크숍 장소는 작년 봄에 한번 갔던 곳이었다. 근처에 청평호 유람선 승강장과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다. 이참에 청평호를 따라 달려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도를 살펴봤다. 아쉽게도 달리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수가를 따라 갈 수 있는 적절한 길은 없었다. 다만 작년 기억을 보면 그 마을이 조용한 편이어서 마을 길을 따라 뛰다가 공설운동장으로 표시되어 있는 공터를 지나 청풍대교 방향으로 뛰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청풍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5~6 킬로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중간에 그 공설운동장으로 표기된 공터를 좀 돌면 7킬로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컨디션이 좋아서 더 달리고 싶다면 대교를 건넜다가 바로 돌아오지 않고 한참을 더 가서 10킬로미터 정도까지 뛰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당일 달리면서 판단하기로 했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 언제 달리러 가는 것이 제일 좋을까 고민했다. 워크숍은 아마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할 것이고, 끝나면 뒤풀이를 바로 이어서 하겠지. 그럼 또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것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 오후 늦게 혹은 저녁 시간에 달리고 와야 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계획은 언제나 변경되기 마련이다. 주최측의 계획과 시간이 안 맞아서 일행들과 이후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4시쯤이었다. 1시간이면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달릴 준비를 하고 나섰다. 다른 일행들은 케이블카를 타거나 커피숍을 찾아 간다고 했다.


미리 지도를 보고 생각했던 경로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골목길들을 먼저 요리조리 달리다가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은 잡초들이 무성한 상태였다. 아스팔트를 뛰는 것보다는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좋았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다. 운동장을 두 바퀴 돌고 청풍대교를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르막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올랐는데, 뒤로 갈수고 각도가 높아졌고, 오르막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뒤쪽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오르막 뒤엔 내리막이 기다리는 법. 내리막 길을 달리기엔 또 무릎이 문제였다. 처음에 속도를 줄여 천천히 뛰어보다가 다시 걸었다. 언덕에 대비한 훈련은 나중에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오르막은 힘들어서 못 뛰고, 내리막은 무릎 걱정에 못 뛰고 하다보니 계속 걷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두 세번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마침내 청풍대교를 만났다. 아까 차로 건너왔었는데, 이번엔 뛰어서 건너니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차로 지날 때엔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세워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것, 더구나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으니 경치를 즐기기 보다는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 이번에는 뛰다가 언제든 멈춰서 사진도 찍고 풍경을 즐기다 다시 뛰면 된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전력질주에 가깝게 달리니 맞바람이 엄청나게 저항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강한 바람에 맞서 다리를 건너는 일, 눈을 돌리면 호수와 산과 나무와 하늘이 만들어 낸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곳을 달리는 일, 통행로를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자 올해 이렇게 큰 다리를 건넜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은 고흥이었다. 6월 초에 고흥에 갔을때 묵었던 숙소가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잇는 나로2대교 바로 근처였다. 밤에 한창 놀다가 먹거리가 부족해졌다. 나는 산책도 할 겸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사오겠다고 했다. 마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기도 했다. 내나로도에서 편의점을 찾아가는 것 보다는 외나로도로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나왔다. 물론 지도앱에서 알려주는 그 위치에 실제로 편의점이 있을지, 그 편의점이 한밤에도 영업을 하는지는 가보기 전에 알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간다고 하니 이미 잠든 사람을 제외하고 다들 따라 나섰다. 일행들과 함께 대교에 딱 들어서는 순간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먼저 뛰어서 건너편에 가 있을게 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밤바다 그리고 그 다리 위를 달리는 나. 대교라고 하기엔 다리 길이가 짧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건너편을 찍고 다시 뛰어서 돌아왔다. 그때까지 일행들은 채 1/3도 건너오지 않았다. 중간 조금 건너까지 뛰었다가 일행을 만나 함께 걸었다. 일행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편의점까지 뛰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가서 편의점이 위치한 마을까지 도로는 좀 위험했다. 인도가 없었다. 차도도 갓길이 제대로 없어서 밤에 쌩쌩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행인을 못 보고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우리는 맨 뒷 사람이 휴대폰 손전등을 키고 걸었다. 처음 가장 가까운 위치로 추정한 곳에는 편의점이 없었으나 거기서 다시 조금 더 가서 두번째 편의점은 그 자리에 있었고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몇 가지 음식을 사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때에도 나는 다리를 또 뒤어서 건넜다.


두번째는 지난 글에 썼던 월드컵대교였다. 9월 30일 밤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왔을 때쯤에 자정을 넘겨 10월 1일이 되어 있었다. 지난 글에 자세히 썼지만, 원래 가려던 것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가다 보니 한강을 건너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사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당황하거나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밤 중에 아무도 없는(물론 차들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다리를 건너는 일이 정말 좋았다. 한강을 건너는 거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속도를 높여 거의 전력질주에 가깝게 뛰면서 그렇게 긴 거리를 뛴 것도 처음이었다. 한강 한가운데를 지나며 볼 수 있는 야경을 즐기며, 내 몸을 떠밀어 낼 것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렇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실수로 잘못 들어간 이 길을 다음에도 야간 달리기를 하면 종종 즐기게 될 것 같다.


이번에 건넌 청풍대교까지 다리의 길이로 치면 월드컵대교가 가장 길고, 그 다음이 청풍대교, 마지막이 나로2대교가 되겠다. 앞으로 다리를 찾아 다니며 다리 길이를 찾아보고 기록해두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한강 다리도 도전해보고, 어딘가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그 동네의 다리를 찾아봐도 재미있겠다.


암튼 청풍대교를 건너와서 언덕 몇 군데를 다시 지났다. 아까 올 때 길었던 오르막이 이번에는 긴 내리막이 되었다. 페이스가 신경쓰여서 조금 뛰다가 꾸준히 달리기를 하려면 관절을 아껴야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고 동네 골목들을 돌았는데, 6킬로미터를 지나서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7킬로를 찍고 싶었으나 마을 가운데에 있는 화장실을 보자마자 갑자기 강한 요의를 느껴 달리기를 중단했다. 약 6.7킬로. 화장실을 안 만났으면 7을 찍었을텐데, 아쉬웠지만 뭐 청풍대교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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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10-15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눈이 잘 안보이면 운전하기 힘든데 특히 밤운전은 더더욱 힘들지요.저역시도 눈이 안좋아 운전은 엄두도 못내는데 항상 눈건강에 유념하세요.
그리고 달리기 운동을 하시나 본데 트랙이나 아스팔트가 아닌 얕은 산이나 언덕들을 다니실래면 일반 런닝화보단 트레일러화가 더 접지역이 있어서 부상을 방지하실 수 있을실 겁니다^^

감은빛 2024-10-21 2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예전에 서재에 눈이 안 좋아졌다는 글 쓰신 것 읽었습니다.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다시 좋아지셔야 할텐데요. 네, 글에 쓴 것처럼 언젠가부터 낮에는 괜찮은데, 밤이 되면 운전이 쉽지 않더라구요. 트레일 러닝을 위한 신발이 따로 있군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4-10-15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전을 돌아가면서 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라 젊은 시절에는 하루 종일도 운전하곤 했는데, 이제는 엉덩이 쑤시고 허리 아프고 집중력도 떨어져 오래 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중국 근무 이후 장거리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더니 이제는 꽤나 부담되더군요.

감은빛 2024-10-21 22:36   좋아요 0 | URL
일행들 중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처음부터 운전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고 참여한 경우였습니다. 저도 운전하는 건 좋아해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었지요. 돌아오는 날 예정에 없던 등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무릎이 아파서 좀 많이 고생했고, 그래서 너무 힘든 상황에 다시 운전을 하려니 그게 좀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저도 잉크냄새님처럼 한동안 운전을 안 하다보니 장거리는 익숙치 않기도 했구요.

희선 2024-10-16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달리기 아주 좋아하시는군요 남는 시간이 있으면 쉬는 게 좋을 듯한데, 운전하셨으니... 쉬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려서 다리도 달리셨군요 바람뿐 아니라 그곳 풍경을 보면서 달려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4-10-21 22:39   좋아요 1 | URL
희선님. 고맙습니다!
요즘 새삼 깨닫고 있는데, 달리기가 참 좋은 운동이더라구요.
예전에는 장거리 달리기를 하지 않고, 단거리 중심으로만 해서 몰랐는데,
장거리를 하다 보니 여러모로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점점 더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blanca 2024-10-16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라식 수술을 하고 밤운전을 접었어요. 헤드라이터 불빛이 너무 번지니 차간 거리가 감이 잘 안오더라고요. 운전도 젊을 때와 달리 가끔 하니 날로 퇴행하는 느낌이이에요. 게다가 초행길에 낯선 분들도 태우셨으니 얼마나 부담이 크셨을지...

감은빛 2024-10-21 22:41   좋아요 1 | URL
아, 라식수술을 하면 불빛이 번지는군요. 정말 위험할 것 같네요.
그렇죠. 아무리 네비가 길을 잘 알려줘도 낯선 길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또 친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차를 타고,
제가 운전하는 차에는 친분이 적은 분과 처음보는 분을 태웠으니.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배우는 즐거움

지난 주에는 일부러 한강 공원까지 가서 자전거를 익혔다. 두 번이나. 자전거를 겨우 탈 수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탈 수는 없어서 넓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자전거를 간신히 탈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작년 10월 초에 겨우 타는 법만 깨닫고 몇 번 더 잠깐씩만 연습했다가 그냥 1년을 보내버렸다. 그때 좀 더 열심히 연습했다면 지금쯤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지만, 아마 자전거에 익숙해질만큼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못 느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평생 자전거 안 타고도 잘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이 나이에 굳이 자전거를 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겨우 양쪽 패달에 발을 올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다 못 배웠고, 이게 생각보다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주에 1년 가량 신경도 안 썼던 자전거를 다시 익히기로 마음 먹은 것은 주위 사람들의 끈질긴 권유와 그래도 자전거 정도는 배워두는 것이 안 배우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고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예 안 배웠으면 몰라도, 그래도 양발 올리고 앞으로 갈 수 있고, 조금 어색하지만 방향도 바꾸고 해봤는데 이만큼 익힌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쇠소녀단 방송에서 본 유이라는 연예인의 자전거 익히는 과정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거의 1년만에 다시 따릉이를 타려니 일단 왼발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잘 되지 않았다. 넓은 곳에서는 그래도 겁내지 않고 탔는데, 조금만 길이 좁아지거나, 다른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다가오면 긴장해서 곧 균형을 잃곤 했다. 그래도 자꾸 타야 익숙해질 것 같아서 열심히 탔다. 그렇게 첫째 날은 다시 퇴보한 감각을 되찾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둘째날은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일단 자전거를 타본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타보니 그때의 그 감각들이 금방 살아났다. 두번째 날은 작년 첫 자전거 시도 당시 내 스승이었던 친구 두 사람이 모두 함께였다. 그중 한 명은 누구보다 내 자전거 배움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늘 내게 자전거를 이미 잘 탈 수 있는데, 조금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날 그 친구가 내 지금 수준에 맞는 몇가지 조언과 함께 몇 가지 기술과 요령들을 알려줬다.

바로 며칠 전의 연습때까지만 해도, 아니 당일 연습을 시작해 조금 익숙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는 무섭고 두렵고 힘든 것이지만 억지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약 1시간 가량 자전거를 타다보니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 스승이 제일 신경써서 바로잡아 준 것이 주로 땅을 보는 내 자세였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달리라는 조언에 익숙해지려 노력해보니 비로소 주위 풍경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달리는 중에 기어를 바꿀 수 있게 되었고, 한 손을 잠시 놓고 땀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기어를 높여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게 되니, 속도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전거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좁은 길은 두려웠다. 그렇게 신나게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거기가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공원이었으니 가능했다. 마주오는 사람들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멀리서부터 어떻게든 피할 방법부터 고민했다. 아, 그리고 속도를 줄이고 안전하게 착지하는 법도 익혔다. 더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이젠 돌발상황이 생겨도 어지간하면 넘어지지 않고 내려설 수 있을 것 같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확실한 성과를 올린 그날의 연습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내 스승이 말했다. ˝형은 참 인복이 좋은 것 같아. 이렇게 훌륭한 스승을 다 만나고 말야.˝ 나는 평소에도 늘 내가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편이라 크게 강조하며 인정했다. 그날 나의 이 훌륭한 스승께서는 내가 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잘 찍어서 남겨주었고, 그날 연습을 통해 내가 익힌 것들을 조목조목 정리해서 글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음 연습을 통해 익혀야 할 과제들도 글로 남겼다. 이 스승의 성의를 봐서라도 하루 빨리 자전거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의 한강 다리 질주

지난 주에는 한강 다리를 건너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4년 전에 단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나이키 앱을 깔았었다. 달리기를 꽤 하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고, 거의 1년 가량 운동을 못 하고 쉬었다. 달리기를 안 한 기간은 아마 1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를 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작년에 어쩌다 달리기 모임을 이끌게 되면서 다시 열심히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때까지도 아직 단거리 중심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몇 가지 불편함 때문에 나이키 앱을 지우고 런데이 앱을 깔았다. 그리고 장거리 훈련을 시작했다. 9월 초 처음으로 10킬로미터 대회에 참여한 직후까지 런데이로 달렸다.

런데이와 나이키는 둘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이키를 더 오래 쓴 입장에서 나이키에 더 많이 익숙했다. 그래서 다시 런데이를 지우고 나이키를 깔았다. 그런데 지난 몇 달간 내가 열심히 달렸던 기록들이 나이키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특히 그 더웠던 한 여름에 7, 8, 9킬로로 점점 거리를 늘려가며 매일 달렸던 기록이 사라진 것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다. 첫 10킬로를 뛰었던 대회의 기록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이키 앱에서의 내 기록은 아직 5킬로 미만을 달렸던 것 뿐이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좀 괜찮은 날에 15킬로미터를 도전하면서 나이키 앱에서 내 기록들을 싹 갈아버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시작은 천천히 630정도 페이스로 갔다. 한 2킬로 달려서 몸이 좀 풀렸을 때 속력을 올려 530 페이스를 유지했다. 5킬로 정도 갔을 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을 찾기 위해 지도를 검색하고 어쩌고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아갔다고 다시 산책로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때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다. 10킬로미터 600페이스를 딱 찍어서 1시간 안쪽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 화장실 때문에 실패했다. 암튼 다시 잘 달리다가 최근에 들었던 한강 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이 근처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화장실을 지나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통로가 나온다고 했는데. 찾았다. 저기구나. 계단과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오르니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게 되어있었다. 음, 평화의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아니네. 일단 이 길따라 가다보면 나오려나 하고 좁은 인도를 달렸다. 아주 작은 횡단보도에서 버튼을 눌러 건너고 나니 저 멀리까지 길이 이어져있었다. 확실히 평화의 공원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 올라왔으니 한번 가보자 하고 달렸다. 달리다보니 방향이 좀 이상했다. 어! 이거 지금 뭐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지도 앱을 열어보니 나는 한강 위에 있었다. 월드컵대교를 건너, 한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10년도 더 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 우리 출판사는 서강대교 북단 광흥창역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 그래24는 서강대고 남단 국회 근처에 있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 가서 내려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버스가 배차 간격이 좀 길었던가 암튼 아주 가끔 버스를 코 앞에서 놓친 날 뛰어서 서강대교를 건너가곤 했다. 좀 시간 여유가 있는 날엔 걸어서 서강대교를 건너오기도 했었다. 암튼 이렇게 한강을 뛰어서 건넜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는 한강을 위주로 달리기를 하면 잠수교도 건너갔다고 올 생각이었지만, 이날 한강을 건너갔다가 올 생각은 아니었다. 순전히 길을 잘못 든 우연 덕분에 한강을 건너 달렸다. 기분은 꽤 좋았다. 한밤에 아무도 없는(물론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지만, 인도에는 혼자였으므로) 한강 다리를 건너보는 것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때가 거의 8킬로 정도 달렸을 때였다. 나는 아까 한참 시간을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10킬로 기록을 포기하지는 않았고, 딱 1시간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 하더라도 지난 대회의 기록은 깨고 싶어서 거의 최고 속력에 가깝게 피치를 올렸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아까 지그재그로 올랐던 경사로를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달렸다. 한참 지나서 10킬로를 넘겼는데 기록은 1시간 2분이었다. 중간에 화장실 때문에 시간낭비를 안 했다면 충분히 1시간 안에 왔을텐데, 조금 아쉬웠지만 기록 달성은 다음으로 조금 미뤄두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15킬로를 목표로 했는데, 11을 지나서부터 급격하게 지쳐갔다. 12에 가까웠을 즈음에는 걷고 있었다. 호흡과 체력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어아지 했는데, 한번 걸으니 쉽게 다시 뛰어지지 않았다. 제법 오래 걷고 나서야 다시 뛰었는데, 이젠 자세가 다 무너졌음을 느꼈다. 억지로 13을 지나 14를 찍고 멈췄다. 자세가 무너져서 무릎과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직 15는 무리구나. 조금 더 연습해서 좀더 컨디션이 괜찮을 때 다시 도전해야겠다.

그리고 나머지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땀이 식으면서 급격하게 추워졌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걷는 속도를 높였다. 밤이 늦어지니 이제 이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달리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지나갔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등이 자전거 도로로 조금 더 자주 지나갔다. 이 순간 내가 자전거를 조금만 더 일찍 배웠으면 따릉이를 빌려 지나갈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긴 했다. 아마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다시 자전거를 익혀야지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폰으로 두드리고 있는 곳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농성장이다. 나는 어제 밤 11시부터 오늘 아침 7시까지 야간 지킴이를 맡아 혼자 길바닥에 세워놓은 작은 천막 안, 침낭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도 내 주위로 모기가 날아다닌다. 침낭과 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은 얼굴과 손 밖에 없는데, 아까부터 자꾸 얼굴이 가렵다. 어쩌면 모기에게 물렸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이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를. 다음 지킴이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아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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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0-08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요즘 밤에는 바람이 꽤 차던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되도록 따듯하게 하시고요. 달리기도 자전거도 화이팅입니다.

감은빛 2024-10-15 06:40   좋아요 0 | URL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땀이 나서 따뜻하게 입을 수는 없더라구요.
달릴 때에는 최대한 가볍게 입고,
달리기를 마치고 겉옷을 걸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의 응원 생각하며 조금 더 힘내서 달릴게요.

희선 2024-10-08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는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잘 타실 듯하네요 자전거는 한번 타게 되면 잊어버리지 않는 거기도 해요 한참 안 타다 타도 잘 타요 수영도 그렇다고 한 듯하네요 달리기도 잘 하시는군요 저는 걷기만... 다음엔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시기 바랍니다 조금씩 올려가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달리기는 하다 보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감은빛 님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4-10-15 06:43   좋아요 0 | URL
희선님, 응원 고맙습니다!
자전거는 아직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제도 일정들 사이 비는 시간에 잠깐 탔는데,
여전히 균형 잡기가 너무 힘드네요.

달리기는 이제 그냥 꾸준히 달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자신감은 생겼고, 꾸준히 달리고 또 달리면
점점 더 잘 달리게 되리라 생각해요.
다행히 달리기를 좋아하니 꾸준히 달릴 수 있어요.

잉크냄새 2024-10-09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이의 경쟁자이군요.

감은빛 2024-10-15 06:3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그 분과 저를 비교하시면 아니 됩니다. ㅎㅎ
무쇠소녀단 방송 보니 그 분은 이미 자전거 잘 타시더라구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배우겠다고 생각한 이상 꾸준히 배워나갈 거예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