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가치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일의 생산성과 속도 면에서 보면 답답함이고, 사람으로 보면 안타까움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고 일이 성사되도록 논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의 말은 거의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반복하면서 논의를 방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외로 후자의 사람들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전제 하나만 깨달아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 안타깝다.


더불어 세상의 이치는 우리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건을 두고 누구나 비슷한 감정과 생각만 떠올린다면 우리는 늘 그 범주에서 머물뿐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누군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감정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에 호응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성이 생기고, 그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런 다름의 가치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연인이나 부부라해도, 부모 자식간에도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거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한 사이라면 보다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과 감정이 있다. 그런데 각자의 감정과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쩌면 사고방식 혹은 수용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기준


나는 확실히라고 말해도 좋을만큼 남들과 좀 다른 기준들이 있다. 물론 삶에서 모든 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남들과 좀 다른 면들이 두드러지는 측면들이 있다.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늘 남들이 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나는 의문이 많았다. 그래서 별난 놈이라거나, 괴짜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남들과 가장 다를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으로서의 일을 선택할 때 돈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터를 찾을 때부터 이후 일터를 옮길 때마다 급여조건은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떨 때에는 식비는 고사하고 교통비도 안 될 돈을 받고 환경단체에서 일할 때, 누군가 막노동 이삼일 뛰고 한 달 내내 놀아도 그 보다는 많이 받겠다고 했다. 결국 그 단체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돈 때문은 아니었다. 단체 내부에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했고, 이를 문제제기했지만, 윗선에서 덮어버리면서 내부 고발자인 내가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그 단체를 그만둔 후에 급여 조건이 훨씬 좋은 다른 시민단체에 들어간 뒤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앞의 단체에 오래 일하지 않고 그만둔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긴 했다.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무래도 생활비를 걱정할 수 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좀 더 급여가 많은 일을 찾거나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면 반드시 매달 양육비를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돈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돈이 조금 부족해도, 아니 많이 부족해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생각까지 하면서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기준이라는 얘기다.


앞서 교통비도 안 될만큼의 급여를 받았던 단체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돈을 조금 모아두었었다. 그 단체 활동가로 있을 때에도 외부 강의나 원고 등을 끊임없이 알아보곤 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 단체에서 내가 지속가능할만큼의 급여 수준을 만들어 가고 싶었고, 만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지금의 일터도 마찬가지다. 처음 여기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었던 선배들이 물었던 제일 핵심 질문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이 급여를 받고 생활이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과 병행해 부수입이 생길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을거라고 답했다. 실제로 가끔 교정교열 일거리를 병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급여만으로는 생계비를 다 감당하기 어려워서 은행 대출을 이용하고, 지인들에게 단기간 돈을 빌리기도 했다. 나중에 이혼하고 따로 월세방을 얻으면서는 양육비와 내 생황비를 감당하기 위해 이런저런 부수입거리를 많이 찾기도 했다. 다행히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도 많이 오르고, 내 급여도 많이 올라서 최근에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과거에 빌렸던 돈은 대부분 짧은 기간 안에 다 갚았다.


수포자


누군가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수포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수포자였다. 국민학교 2학년때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매일 남들 다 하교한 후에도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지만, 결국 다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구구단을 모른다. 술자리에서 구구단 게임을 하면 나는 무조건 빠져야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구구단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정말이냐고 막 질문을 해대길래 실제로 대답을 못했다. 그때 일행들의 표정과 반응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보충수업시간에 국영수 성적에 따라 우열반을 나눠서 운영했다. 나는 국어는 전교 등수가 거의 1등이어서 최상위 등급반(소위 서울대 반이라고 불렀다.)에 들었고, 영어는 전교 등수 상위권에 속하는 두번째 등급반(소위 연고대 반이라고 불렀다.)에 들었는데, 수학은 아예 대학 공부 자체를 하지 않는 최하위 등급(여기는 소위 말하는 별칭조차 없었다.) 반에 속했다. 왜냐하면 수학은 전교 등수가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한번은 중간고사에서 수학 0점을 받았다. 충격이었던 건 모든 문제를 실제로 다 풀어서 답을 썼는데 0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나는 수학 점수가 낮은 것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다고 포기하고 살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평생 수학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내 머리에서 수학이라는 카테고리를 깨끗하게 지웠다.


내 기준에서는 수학이란 일상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어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를 것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수학과 관련한 지식이 꼭 필요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큰 아이가 초등 4학년 즈음부터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역시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된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마 작년부터였던 것 같은데, 수학 숙제를 물어봐서 살펴봐도 알수가 없었다. 큰 아이는 지금도 가끔 수학 숙제를 하다가 내게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아빠는 모른다를 반복한다. 만약 살펴보고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백만번이라도 살펴보겠지만, 나는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다.


최근에는 친한 거래처 담당자와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코싸인' 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부피와 면적과 각도 이야기였는데, 그 분이 이래저래 설명을 하시다가 "코싸인을 적용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계산하면 000가 나오는데"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전 부분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코싸인이란 단어가 나온 후로는 아예 막혀버렸다. 음, 평생 수학은 쳐다보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일하다가 코싸인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사실 내가 그 부분에서 세부적인 계산을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부분은 그 분이 알아서 잘 계산해주시고, 나는 그 자료를 받아서 이후 업무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그 분이 내게 그 부분을 계산식까지 나열하며 설명하실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몸에 잘 맞는 옷 


토요일인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온 몸으로 기분 좋은 근육통을 느꼈다. 이 감각 참 오랜만이다. 오늘 근육통을 느꼈다는 얘기는 이틀 전인 목요일에 강도 높은 운동을 했다는 뜻이다. 나는 정말 정확하게 이틀 후에 운동 부위에 근육통을 느낀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한여름이 아닌가 싶다. 더워서 이불을 안 덮고 잤다가 약간의 감기 기운을 느끼긴 했는데, 또 잠들 무렵에는 더워서 자꾸 이불을 안 덮게 된다. 얇은 여름 이불이라도 마찬가지다. 올해 여름은 엄청 더울거라는데,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재작년 여름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유튜브에서 운동 동영상을 주로 보는 편이라 유튜브를 딱 켜는 순간 '운동 동기', '모티베이션' 등의 단어들이 붙은 영상들이 눈에 띈다. 주로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들이 멋지게 운동하는 모습, 몸매를 뽐내는 모습 등을 담은 것들이다. 보면서 '멋지다!', '예쁘다!' 감탄은 하지만, 그걸 보면서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운동을 할 때도 확고한 기준이 있다.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운동인 고립운동과 펌핑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온 몸의 협응력을 기르고 특정한 기능을 살리는 동작들을 선호한다. 주로 몸체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코어 단련을 우선 순위로 둔다.


내게 제일 큰 운동 동기부여는 사실 여름 옷이다. 몸에 잘 맞는 옷. 여름 옷은 몸매가 잘 드러난다. 예전부터 반팔 옷은 몸에 붙는 옷을 좋아해서, 대부분 그런 옷이다. 내 기준에서 제일 보기 싫은 것이 배 나온 사람이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아마 남들도 대부분 싫어하지 않을까. 그래서 항상 여름을 대비해 봄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몸매 관리를 하곤 했다. 올해도 4월부터 운동을 했다. 나름 꾸준히 하긴 했는데, 운도을 본격적으로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운동 강도를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준비운동을 통해 예열을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운동 강도를 높여 본운동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만 몸 컨디션이 그만큼 올라오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제대로 본운동을 해보지 못하고 운동을 끝내는 날들이 많았다. 여기에는 이제 고질병이 되어버린 관절통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 몇 년전부터 관절을 크게 다친 이후로, 관절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겁이 나서 원하는 동작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무리했다가 또 관절을 다치면 몇 달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공포가 생겼다.


운동 수행 능력 저하


그렇게 봄을 다 보내고 이른 더위와 함께 여름이 왔는데, 여름 옷을 딱 입으려고 보니 영 핏이 살지 않는 거다. 상대적을 몸에 덜 붙는 옷을 입으며, 날렵한 몸매를 잘 뽐낼 수 있는 멋진 옷을 입기 위해 운동 강도를 좀 높여야지 생각한 것이 지난 주였다.


그 전부터 달리기와 맨몸 운동 중심으로 몸을 좀 만들어 놓았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에 들어가도 큰 무리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너무 오래 쉬어서 그랬는지 내 몸의 운동 수행 능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늙어서 운동도 마음대로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서러웠다.


어쩌면 다시 조금씩 꾸준히 하다보면, 다시 조금씩 운동 능력이 올라가긴 할 것이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서둘러서 오버 트레이닝을 해버리면 꼭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올해 여름은 망했다는 것. 몸에 잘 맞는 예쁜 옷을 올해 여름에는 못 입을 확률이 클 것 같다. 지금 예상은 그렇다. 어쩌면 만에 하나 당장 다음주에 또 몸 컨디션이 확 올라가서 운동에 불이 붙고, 술을 좀 줄이면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레길


몇 주 전에 친하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예전에 지역 녹색당에서 만든 등산모임이었는데, 이젠 그 모임에 속한 이들이 모두 탈당했다. 탈당은 했고, 이젠 더이상 녹색당 등산모임은 아니지만 그 멤버들은 꾸준히 산에 가고 있다. 그 모임의 초기 운영자로서 최근 몇 년간 거의 산에 가지 못한 입장에서 기회가 되면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주말 마다 아이들과 지내느라 산행은 꿈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애들 엄마가 장인어른 산소에 아이들과 함께 가야한다고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을 데려갔고, 일요일은 하루종일 비어 있는 날이 생겼다.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북한산에 자주 다녔다. 아랫쪽 평탄한 길에서는 양쪽에 아이들 손을 잡고 걷고, 비탈길에서는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올랐다.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운 곳에서는 하나씩 안아서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셋이 산에 다니는 일이 내게는 일상의 즐거움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무서워했다. 결국 나 좋자고 계속 싫어하는 아이들을 산에 끌고 가는 일은 안된다고 결론 내리고 산을 포기한 지 제법 오래되었다.


암튼 아이들 없이 친한 사람들과 둘레길을 걷는 것도 참 좋았다. 일행 중 친한 형이 그냥 둘레길만 걸으면 재미가 없으니 중간에 바위 하나만 올라서 등산다운 등산을 맛만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안그래도 평탄한 둘레길을 걷는 건 너무 심심하다 느끼던 참이었으니. 비탈길과 바위길을 30분 가량 올라가서 중턱쯤의 바위에 올랐다. 거기서 그 형이 준비해 온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를 즐기다가 내려와서 둘레길을 마저 걸었다.


올라갈 때는 빠르게 잘 올라갔다. 어려서부터 산동네에 살았기에 산을 잘 타는 편이라고 늘 자부해왔었다. 꽤 오래 산을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내려올 때가 문제였다. 이놈의 무릎과 발목이 자꾸 신경쓰여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뛰어서 내려왔을 길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 만으로도 힘들었다.


둘레길의 막바지에 단계적으로 높이가 높아지는 철봉 3칸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꼭 철봉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철봉에 매달렸다. 키가 제일 작은 형이 제일 아랫칸 철봉에서 뒤돌아오르기 기술을 시전했다. 나도 중간 높이 철봉에서 같은 동작을 했다. 이어 후배가 제일 높은 칸에서 더 어려운 동작인 머슬업을 했다. 그쯤하고 그냥 내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턱걸이를 누가 많이 하느냐 얘기가 나왔다. 형은 시도해보다가 하나도 못하고 말았다. 후배는 머슬업 하느라 힘을 다 써버렸는지 역시 턱걸이를 하나도 못햇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집에 실내 철봉이 있어도 옷걸이, 빨랫대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면 매달리고, 집에 들어와 씻기 전에 매달리고 하루 두 번씩은 매달렸건만, 어깨 통증을 핑계로 참 오래 외면해왔다. 과연 몇 개나 할 수 있을지 나로서도 궁금했다. 결과는 3개. 힘을 더 쓰면 한 두개는 더 할 수 있었을텐데, 모양 빠지게 막 끝까지 힘을 쥐어짜내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혼자였다면 당연히 도저히 더 안 당겨질 때까지 당겨서 운동했겠지만. 옆에 있던 형이 역기 드는 사람이 그 정도는 해야지 라고 한 마디 하길래 좀 부끄러웠다. 어깨 관절 통증 핑계와 예전이었다면 어쩌고 하면서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날 이후로 다시 실내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가끔 크고 무거운 빨랫대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서 더 열심히 매달렸다. 어깨와 손가락 마디 통증 때문에 원하는 만큼 운동이 잘 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다시 예전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겠지.


화상 회의


토요일 아침인데, 화상 회의가 하나 있었다. 어쩌다 올해 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단체 운영위 회의를 오늘로 잡았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화상 회의를 하는 것으로 바꿨다. 화상 회의라는 게 참 익숙해지기도 어렵고, 잘 운영하기는 더 어렵고 좀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더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잠든 아이들 이마에 입맞추고 책을 읽었다. 머리 맡에 쌓아둔 책 여러 권 중에서 딱 손에 잡히는 책이 이 책이었다.
















단편 SF 소설집인데, 첫 작품부터 흥미진진하고 짜임새도 좋다고 느꼈다. 이 작가 이름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 이름이 알려질만한 필력이더라.


나중에 큰 아이가 깨서 학원 갈 준비를 했고, 작은 아이는 깨자마자 팬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재료와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나는 책을 더 읽다가 아이들 밥을 챙기려 했는데, 큰 아이는 늘 그랬듯이 안 먹고 그냥 나가버렸고, 작은 아이는 팬 케이크를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곧 화상 회의를 해야 하니,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화상 회의라 집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니 참석률이 높았다. 다들 편안한 옷차림에 머리도 조금씩은 헝클어진 모습. 평소 회의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작은 아이가 팬 케이크 재료를 사러 가겠다고 해서 이것저것 당부하느라 접속이 조금 늦었는데, 딱 들어가자마자 "드디어 위원장님께서 접속하셨네요."라고 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회의 진행을 위원장인 내가 해야하는데, 사전에 실무책임자에게서 회의 안건을 전달 받지 못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화상 회의는 왠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영 자신이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대표님께 진행을 부탁드렸고, 대표님께서 회의 진행을 맡아주셨다.


다행히 특별히 중요한 논의 안건이 있는 건 아니어서 문서로 회람한 보고 안건들을 짧게 브리핑하고 공유해야 할 정보들을 나누고, 한 두 건의 짚어야 할 상황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운영위원들이 대체로 화상 회의가 익숙하지가 않아 원활한 회의 진행이 어려웠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이후 또 인류를 덮칠 다른 전염병들 때문에 화상 회의에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나는 아무래도 좀 자신이 없다. 회의주의자라고 불릴 만큼 회의를 많이 하는 편이고, 회의 진행에도 익숙한 편인데, 화상 회의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것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 지긴 하겠지.


회의 중간에 작은 아이 팬 케이크 만들기를 도와주느라 자주 자리를 비웠다. 반죽이 적당한지를 봐주고, 타는 냄새가 나서 가스레인지 화력 조절을 해주고, 처음 구운 케이크를 살작 맛보고 맛있다고 폭풍 칭찬도 해주었다. 자꾸 작은 아이가 와서 회의 장면이 신기한지 막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을 토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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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6-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거운 여름에 여전히 뜨겁게 살고 계시는 감은빛님 ㅎㅎㅎㅎ
맨날천날 일 많다 돈 저다 징징거리는 syo놈을 부끄럽게 만드시네요ㅠㅠ
어른이란 그런 것인가요...ㅎㅎㅎ

감은빛 2020-06-15 16: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syo님이나 저나 마찬가지로 그저 먹고 사는 사람이죠.
저도 맨날천날 이런저런 일들로 징징거린답니다. ㅎㅎ

오늘도 한여름처럼 덥긴 한데,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좀 낫네요.

페크pek0501 2020-06-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꼼꼼히 다 읽었어요. 필력이 좋으십니다. 글쟁이의 끼를 봤다고나 할까요.
저는 어떤 땐 글이 쓰고 싶어도 글 쓸 게 참 없구나, 하는데
감은빛 님은 글 쓰기로 작정하시면 마구마구 글이 흘러 나올 것 같습니다.
어깨에 힘을 풀고 쓰신 것 같으면서 글이 바른 자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마치 제가 평가자라도 된 것 같네요. 양해하시길...ㅋ
술술 읽혀서 잘 읽고 갑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이렇게 술술 읽혀야 하는 거죠.

감은빛 2020-07-07 19:35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어요. 페크님.
괜히 이 긴 글 때문에 페크님의 소중한 시간을 뺐었다고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입니다.
양해라뇨? 무슨 말씀을!
언제든지 얼마든지 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저로서는 오히려 영광이지요. ^^

늘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6-30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일상에서 겪는 일과 함께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저는 점점 머리가 굳어가는지 글도 책도 겨우 쓰고 읽습니다. 그나마 독서와 운동 이 두 가지는 잘 챙겨서 늙어서 가는 날까지 잘 가져가고 싶네요.ㅎ

감은빛 2020-07-07 19:37   좋아요 0 | URL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댓글 남기신 것 보고 답글 남겨야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훌쩍 일주일이 지나가버렸네요.

운동과 독서는 살아가는 한 계속 가져가야 할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알라딘에 열심히 운동하시는 동지가 있어 든든한 마음입니다. ^^
 

후원 확대

요즘 재난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SNS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간혹 독립을 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대주가 아닌 사람들은 아버지 혹은 남편이 돈을 안 내놓는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세대주 남편이라 하더라도 혼자 맘대로 그 돈을 다 쓰지 못해 아내의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는 카드 포인트를 받은 바로 다음날 아내가 딱 지원금 금액에 맞춰 가전제품을 결제해버린걸 카드 결제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되었다는 얘기도 하더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에서 포인트를 사용하고 있다. 어제는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재난지원금 받은 걸 나 자신에게 쓰라는 내용이었다. 옷도 사고, 신발도 사라고. 안그래도 최근 옷은 두어벌 사긴 했다고 답을 드렸다.

그런 와중에 알고 지내는 선배 한 분이 페이스북에 자신이 후원하는 비영리단체들 명단을 올리면서 다같이 후원을 확대해가자는 취지의 글을 쓴 걸 보았다. (아마 이번 정대협 이슈에 대한 행동이었을 듯) 제법 많았다. 비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강연하는 것이 수입의 대부분인 그 분의 재정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코 많이 버는 편이 아니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나도 후원하는 곳들이 좀 있는데, 일터에서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내가 그 분보다 후원하는 곳이 적다는 사실에 좀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 선배의 후원처 중에서 3곳을 골라 후원을 늘리기로 했다.

사실 운동단체 상근자로 일하던 시절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활동비를 받았어도 후원하는 곳은 제법 많았다. 단체 활동가의 특성상 친하게 지내는 타 단체를 자연스럽게 후원하는 경우도 많았고, 또 우리 단체 후원회원 가입과 친구 단체 후원회원 가입을 서로 물물교환하듯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까 언급한 선배 역시 한 때 내가 일했던 단체 선배 활동가였으므로 나처럼 적은 수입임에도 늘 일부를 후원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제법 많았던 후원 단체를 어느정도 정리한 것은 내가 출판사에서 해고 당해 수입이 아예 없을 때었다. 그런 때에도 차마 후원을 끊지 못한 인연이 깊은 단체도 있긴 했다. 그렇게 확 줄인 후원 단체가 서서히 다시 늘어난 건 지금 일하는 일터에서 해마다 조금씩 급여가 오르고 최저임금도 오른 덕분이다. 거기에 가끔 강의를 나가거나, 원고를 쓰거나, 교정교열 알바를 하는 등의 부수입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고민없이 3곳의 후원단체를 늘렸다. 아, 생각해보니 최근 지인 한 분이 자신이 일하는 단체를 후원해달라고 연락해와서 그곳도 가입했으니 최근에 4곳을 늘렸네.

그래서 내가 후원하는 곳이 총 몇개가 되었는지 세어봤는데, 그동안은 10개가 살짝 안되다가 이번에 늘린 덕분에 10개를 조금 넘겼다. 이 일터에 얼마나 더 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정기적으로 급여 받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조금씩 후원을 더 늘려가야지. 그래야 우리가 사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을테니.


완독을 미루는 버릇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점점 더 이상한 버릇이 심해짐을 느낀다. 책을 다 읽지 않고 어느 정도 읽다 말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버린다. 지식을 위한 책들은 그렇게 발췌독을 하거나 읽다 말고 다음에 또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어도 상관없겠지만, 소설들까지 그렇게 읽으니 이상한 버릇이라 느낀다.

이 책을 언제 구매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기 시작한 것 작년 가을이었다. 거의 중간까지 재미있게 읽다가 다른 책을 집어든 이후 손도 대지 않고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가 어느 글에서 2008년 촛불집회를 언급하는 걸 보고 잊고 있던 이 책 생각이 났다. 마침 5월 말이면 당시 청소년들이 시작했던 촛불집회가 대다수 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바뀌어 한창 물이 오르던 시기였다. 5월의 마지막 날에서 6월의 첫 날로 이어지는 밤, 이명박 정부가 첫 물대포를 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폭력 진압에 나서기 전, 그러니까 그 전까지 전경들이 시민들을 연행하더라도 잠시 닭장차 투어 다녀오겠다며, 국가의 폭력을 웃음코드로 받아치는 당시 촛불의 정신을 잘 드러내던 시기였다. 6월 1일 이후에는 또 국면이 많이 달라졌다. 그 전까지 집회에 나왔어도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기존 운동권의 거대 조직들이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려고 애쓰기 시작했고(물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더욱 진화했다. 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랜만에 리뷰를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이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시 자세히 쓰도록 하자.

암튼 5월 말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당연히 작년 가을에 읽었던 앞 부분이 좀 가물가물해서 빠르게 앞을 다시 훑은 후에 중단했던 곳에서 시작했고 끝까지 다 읽었다. 여러모로 할 말이 많은데, 역시 그 이야기도 책을 이야기할 때 다시 쓰기로 하고, 오늘은 완독을 미루는 버릇에 집중하자.

어쩌면 자꾸 완독을 미루는 버릇은 다 읽기가 아까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건 책이 마음에 들고 좋은 경우. 왠지 아껴 읽고 싶은 그런 책이 가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럼 책을 읽다 마는 것은 오히려 그닥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님 너무 뻔해서일까?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 아니 근본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정답일 것 같다. 자꾸 읽다 말고 다른 책에 손이 가는 건, 저 책을 다 읽기 위해 걸리는 시간에 다른 책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가 아닐까.

주말에 책장을 뒤져서 읽다가 말고 방치해 둔 책들 중에 가장 끌리는 책 10권을 꺼내 책상 위에 포개놓았다. 당분간은 새 책을 시도하지 말고, 이 책들을 먼저 다 읽어야지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날 새 책들이 도착해버렸다. ㅠㅠ

미뤄둔 책들을 다 읽겠다는 의지는 한 순간 꺾여버리고, 어느새 나는 새 책들 중 한 권을 먼저 집어들었다. 그래 이번에는 우선 새 책들을 먼저 다 읽고 읽다 만 책들에 손을 대야지. 당장 이번 달 책모임에서 같이 읽을 책부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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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6-0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가족이 받은 재난지원금도 어머니가 관리하고 있어요. 제가 받은 건 온누리 상품권 5만 원이 전부에요... ㅎㅎㅎ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지 않나요? 저는 이런 습관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

감은빛 2020-06-04 18:23   좋아요 0 | URL
아, 책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이렇게 여러 권을 동시에 읽나요?
제가 아는 분들은 대체로 한꺼번에 여러 권을 읽지는 않더라구요.
저 처럼 이 책 조금 읽다가, 저 책 조금 읽다가
다시 이 책 조금 읽지는 않는 것 같아서요.
물론 제가 다른 사람들의 책 읽는 스타일을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사실 그 부분의 핵심은 이 요상한 버릇이 제겐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이미 버릇이 되어버려서 바꾸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뭐 요런 이야기입니다. ^^

페넬로페 2020-06-0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후원하다가 끊은 단체가 있는데 매달 1일에 저에게 감사문자가 계속 오고 있어요~~
그 문자 받을때마다 너무 미안해요^^

감은빛 2020-06-04 18:26   좋아요 1 | URL
후원하다가 끊으면 사실 너무 미안하죠!
저도 예전에 다니던 출판사에서 해고 당하고 고정 수입이 없어져서
꼭 후원을 유지해야 할 곳들 서너 곳을 제외하고 다 끊었었는데,
그때 너무 미안했어요.

다행히 그 중 몇 곳은 다시 고정 수입이 생긴 후에 후원을 재개할 수 있어서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었어요.
 

대화 주제들


누군가와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에는 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주로 무엇을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까? 그것은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 때문에 만난 거래처 직원과 짧게 날씨 이야기나 뉴스에 나온 이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나누는 핵심은 당연히 업무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나 아이들과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제로 이뤄진다. 그들과 티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꺼리 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역시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수박 껍질을 간신히 핥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의 대화 주제는 일의 영역과 가족의 영역을 제외하고, 내 여가 시간에 순전히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소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좁혀보자. 여기에서 내용 상으로 몇 개를 건져 보면 다음과 같다.


- 책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지인들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많다. 지인 중에 출판계 종사자가 많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낸 이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부 주제로 들어가보면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주로 다루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술 자리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책은 위에 있는 [지혜의 심리학]이다. 김경일 교수는 어쩌다가 영상으로 먼저 만났는데, 영상을 조금 보자마자 그가 설명하는 '인지심리학'이란 학문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의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책도 구매해서 여러번 읽었다.


요즘은 제법 유명해져서 방송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는 모양이더라. 확실히 그의 주장은 참신하고, 그는 청중들의 이목을 잘 끌어오는 스킬을 가졌다. 자기계발서 형식의 편집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글솜씨도 썩 괜찮았다.


술 자리에서(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주로 술자리니까) 그가 주로 얘기하는 몇몇 내용들을 들려주면 대부분 신기하다는 듯 내 이야기에 주목한다. 김경일 교수 덕분에 한동안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음악



몇몇 친구들과는 음악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권해주는 음악은 두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게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취향이 전혀 다른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은 내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며,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고, 특정 가수나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경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아마 배철수 아저씨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애청자는 되지 못했다. 평소에는 라디오를 들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주말이나 특정한 행위(운전, 요리 등)를 할 때만 듣는다.


최근에 내가 자주 이야기 한 노래는 위에 소개한 Fifth Harmony 의 [Brave Honest Beautiful] 이다. 아직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하기 전에 발표했던 곡이니 한참 예전 곡이다. 이 노래를 나는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한 이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 들었던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곡 중 하나이고, 항상 벨소리로 저장해두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초기 카밀라 카베요 특유의 발성을 듣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이 곡의 독특한 도입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늘 벨소리로 사용) 또 아래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You can dance like Beyoncé You can shake like Shakir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fearless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So whine like Rihanna Go and pose like Madonn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honest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girl


비욘세, 샤키라, 리한나, 마돈나라는 슈퍼스타들을 언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노래의 주제인 "당신도 잘 할 수 있다. 당신은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름답다." 내용이 좋다. 특히 이 노래를 부르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여성들이(핍스 하모니 멤버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멤버 모두가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모두 자기 자신이 이 노래 가사처럼 당당하고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릅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미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노래 가사들을 설명하면서 아빠가 왜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 영화 혹은 드라마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누는 대화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출판사에 일할 때 만난 사람들 대다수는 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나 TV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집에 TV가 없어서 늘 대화에 소외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어떤 유행어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 나는 거의 구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비록 TV가 없어서 소외당하긴 했지만,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영화는 예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더구나 요즘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앱들을 통해 영화, 해외 드라마, 국내 드라마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용이 길어질텐데, 요건 언젠가 각 영화 별로 따로 이야기를 쓸 계획을 갖고 있으니, 오늘은 그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10개를 한 번 적어보련다. 순서는 매기지 못하겠다. 그저 지금 기준으로 좋았던 영화 중에 10를 선택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욕망의 대지(the burning plain)

페어런트 트랩

어바웃 타임

인셉션

이터널 썬샤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날

가지니

꾸츠 꾸츠 호타해

그 남자의 사랑법(신이 맺어준 인연)


헐리우드 영화가 6개, 인도 영화가 3개, 우리나라 영화가 1개다. 맨 위 2개는 국내 개봉 제목이 엉망이라 일부러 원제를 괄호 안에 넣었다. 맨 마지막 인도 영화 역시 국내 개봉 제목이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 원어의 제목을 그대로 괄호 안에 옮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제나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10개는 지금 선택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갔다면 [라빠르망], [레드], [블루], [화이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캣피플] 등의 유럽 영화들이 대거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크쥐쉬토프 키에스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거기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온갖 공포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홍콩 영화를 비롯한 온갖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드라마도 잠시 언급하자면, 국내 드라마 중에는 거의 본 것이 없어서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긴 하다.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에 간간히 보았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정도를 좋았던 드라마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수준이 낮긴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여성이 홀딱 빠져 있었던 [마지막 승부]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있겠다. 그 뒤로는 거의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건너뛰고, 비교적 최근작들 중에서는 [비밀의 숲]이 괜찮은 작품이라 할 것 같다. [시그널] [미스터 션샤인]도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몇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미생]은 웹툰으로는 제법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로는 일부 밖에 보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쭉 보고 싶은 드라마 이긴 하다.(요새는 이런 걸 정주행이라고 하더라. 그럼 혹시 역주행도 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나마 같이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나의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1994가 그나마 좋았고, 1988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시기인 1997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더라.


아, 요새 유행하는 [킹덤] [인간수업]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도 재미있었지만, 역시나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냥 재미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해외 드라마 역시 많이 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 해외는 일단 국내 드라마와 달리 엄청나게 자극적인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완전 야하고 완전 잔인한 작품들. [워킹 데드], [왕좌의 게임], [로마], [스파르타쿠스] 등등


또 언젠가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생각하는 것들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들인데, 워낙 여러 편의 드라마가 있어서 뭘 봐야할지 정보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유역비가 나오는 [신조협려]는 언젠가 꼭 다 보고싶다.


아참,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센스8]을 참 좋아했는데,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시즌2에서 접어버린 것이 너무 아쉽다.


음, 이상이 주로 친구들(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또 어떤 주제들이 있을지는 이 글을 쓴 후에 차차 생각해보겠다. 예전부터 계속 영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글을 쓸 여유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한 번 시작하고 나면 간간히 이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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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5-3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경일 교수님의 짧은 영상 강의를 본 적 있었는데, 재미있었고 좋았던 것 같아요.
감은빛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편안한 하루 되세요.^^

감은빛 2020-06-03 11:22   좋아요 1 | URL
강의 주제가 무척 독특하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인 것 같아요.
벌써 수요일이네요.
서니데이님, 늘 즐거운 날 되시길,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공쟝쟝 2020-05-3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음악, 그리고 책이라니..(누구나 좋아하는 주제이지만, 그래서 취향도 확고하게 되는!! ㅎㅎ)
이제 쓰시기만 하시면 되겠네요 ㅎㅎㅎ 여유로운 시간 꼭 만들어내시길.

감은빛 2020-06-03 11:24   좋아요 0 | URL
네, 취향이란 게 각자 다르니 다른 사람들과 이런 얘길 나누는 것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만약 모두 취향이 똑같다면 정말 재미없을 거예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욕구 없음


날씨의 변덕 때문인지 요즘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봄인데도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운이 내려가는 일교차가 큰 날씨가 계속되더니, 갑자기 여름인 것처럼 더운 날이 이어졌다. 나만 겨울을 사는 것 같아 깜짝 놀라서 얇은 옷을 입고 다녔더니 다시 또 날이 쌀쌀해졌다. 이게 무슨 봄 날씨란 말인가? 


해마다 봄이면 여름을 대비해 몸 만들기에 들어가는데, 올해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2월부터 4월까지는 아주 낮은 강도로 운동을 이어가며 서서히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를 밟고 있었다. 4월 말부터 워밍업을 끝내고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간 운동을 제대로 못했기에 운동에 대한 욕구가 컸다.


그런데 4월 말부터 갑자기 몸 컨디션이 나쁘다 느껴지더니 한동안 괜찮았던 관절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니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어지간하면 다음으로 미뤘다. 예전 같았으면 밤에 자다가도 나갔을 술자리를 초저녁에 거절하고, 집에 들아가 일찍 잠드는 나를 보면서 참 낯설었다. 이건 어쩌면 정신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운동에 대한 욕구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심지어 성욕 마저도.


지금도 머리로는 매일 5km씩 달리고, 풀업과 에어스쿼트와 케틀벨 스윙을 하고, 이틀에 한 번씩 데드리프트와 스냇치와 클린앤저크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버피를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다. 일도 하기 싫지만, 안 할 수는 없으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도 쓰이지 않는다.


뭐, 살다보면 이런 시기도 있는 거겠지. 바쁘게 살아온 만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거겠지. 잠시 이러다가 또 다시 이런저런 욕구들이 솟구칠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


노안


처음엔 스마트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려는데 촛점이 맞지 않고 흐리게 보였다. 안경을 낀 상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벗었더니 잘 보였다. 밤에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 불을 켜고 폰으로 SNS를 들여다 보려는데, 이때도 안경을 낀 상태로는 촛점이 맞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니 비로소 잘 보였다.


처음엔 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노안이었다. 언젠가 술 자리에서 나보다 서너살 많은 선배가 아직 노안이 오지 않았냐고 자신은 40대 들어서자마자 노안이 왔었다고 신기해하며 캐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노안이 왔구나.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손님이 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만약 거절할 수 있다면 결고 맞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화를 거역할 수 없는 법. 이제 나는 노안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 서글퍼진다.



어버이 날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온다. 가끔 이런 날을 왜 굳이 만들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년에 딱 하루만 그 의의를 생각하며 나머지 364일은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건 올해도 어버이 날이 지나갔다. 부산 부모님께는 계좌로 약간의 용돈을 보내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멀리 있어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 자식 입장에서 늘 불효자일 수 밖에 없다.


마침 어버이날이 금요일이라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만나자 마자 손수 이쁘게 꾸민 작은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맛있는 걸 먹으려고 근처 식당들을 돌아다녔는데, 식당들이 모두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었고, 그 중 몇몇 식당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도 했다. 어버이 날이라 유독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 것 같았다.


아이들과 어떻게 할 지 조금 고민하다가 마침 빈 자리가 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이려는데, 큰 아이는 요즘 고기가 먹고 싶지 않다며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길래 냉면도 시켜줬다. 작은 아이와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후에야 찬찬히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들을 열어봤다. 각자의 편지는 그 나름대로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마다 받아보는 편지는 어쩔수 없이 형식적이지만, 또 어쩔수 없이 그 진심을 담는다.


이번 큰 아이의 편지는 유독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아이가 갑자기 쑥 커서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곧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여러가지 일들을 같이 할 거라는 글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혼났다.


그 와중에 동네 선배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반가운 척을 했다. 여러모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분이신데,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동네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었다. 이번엔 형수님과 두 분이서 들어오셨다. 우리 자리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는 걸 보고 나는 아이들과 떠들며 남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한참 후에 그 선배가 우리 자리로 와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막 고기쌈을 입 안 가득 넣은 직후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선배는 아이들에게 만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셨고,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입안의 음식을 급하게 씹은 후 안 주셔도 되는데 라고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선배는 술 한 잔 따라주겠다며 내 술잔을 채워주고 돌아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선배와 약간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술 자리에서 조금 다툼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나 대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이 명확했고, 그 선배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그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봉합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가 왜 굳이 내 자리로 건너와 술잔을 채워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입장을 바꿔 내가 그였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꽃, 사진, 우중충한 날씨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몇 해전에 다녀왔던 수목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날씨가 좋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열심히 놀았다. 놀 수 있을때 놀아야지. 또 언제 이렇게 놀겠나.


생각해보면 이제 정말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금방 자랄테고, 다 자라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곧 자라서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테니. 나는 또 그만큼 늙어 예전처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이가 말했다. 다음에 날씨가 쨍한 날에 다시 오자고. 그러자. 그땐 오늘보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놀자꾸나.



언어 천재의 두 번째 책

_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15개가 넘는 외국어에 통달했고, 25개가 넘는 언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냥 소개 글만 읽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해졌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난 후에는 그의 유머 감각이라던가,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빨리 주문해서 읽어보고 싶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또 평소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느끼는 건 유쾌한 태도가 삶에 미치는 여향이 무척 클 것이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나는 썩 유쾌하지 못한 인간이다. 늘 무표정이고, 늘 진지한 태도로 무언가를 고찰한다. 내 일상에서 웃음이라고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 뿐이다. 나도 평소 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



어제 책장을 조금 정리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예전에는 책을 사면 발췌독이라도 조금씩 해놓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놓고 한 번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 늘아나고 있다. 꼭 읽고 싶어서 산 책이라면 분명 기억이라도 할텐데,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은 책이라면 그닥 큰 고민없이 샀던 모양이다.


집에 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다 읽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겠다. 비록 기획안만 써놓고 말지라도 그 기획안을 쓰는 동안이라도 묵은 책들을 다 읽으리라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테니. 그 의지가 얼마나 갈 지 모르지만,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흐린 날의 오후: 우울함


언젠가 직장인이 가장 우울한 날이 수요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날이 흐려 기분이 더 우울한 것 같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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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자주 가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일 것이다. 오래전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3일장을 치루는 내내 친구 곁을 지키며 허드렛일을 했었다. 오래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리고 또 몇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혼한 이후였지만) 장례식장을 지켰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긴다. 아마 한 달에 한 두번은 가는 것 같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자주 부고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자주 가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부고 연락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또래 지인들 중에서,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그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성실하고 아름다웠던 그의 삶이 떠올랐다. 하필 부고가 날아든 날이 만우절이었다. 설마!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아니. 그런데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짓을 내가 아는 누군가가 할 리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이게 현실이구나. 장난이 아니구나.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영정을 향해 두 번 큰 절을 올리는 나 자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소에서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 갔더니 마침 빈소에서 그의 지인들이 추도식을 열고 있었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진과 영상들을 모아 추모영상을 만들어 상영하고 있었다. 저 화면 안에서 환하게 웃는 이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친한 선배 한 명이 지인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진심을 담은 그의 말들을 들으며 다들 눈물을 흘렸다. 영상을 보면서 울던 이들이 영상이 끝나고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 추도사를 들으며 다시 울었다. 나도 그랬다. 영상을 보면서는 눈물이 맺혔다가 멈췄는데, 추도사를 들으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원인 불명의 쇼크사라고 했다. 자다가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문득 어느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문을 마치고 아까 추도사를 낭독했던 선배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햇다. "너도 조심해라. 너도 혼자 사니까 자다가 갑자기 저렇게 가도 아무도 모르잖아. 게다가 너도 스트레스 엄청 심하잖아." 추측하건데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들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소리없이 조용히 세상에 꼭 필요할 일을 해왔던 사람. 언제나 성실하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사람. 언제나 낮은 곳을, 그늘진 곳을 향했던 사람. 누구보다 냉철하지만 또 누구보다 따뜻했던 활동가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냐고 따지고 싶다.


그날 밤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차마 그의 영정 앞에서는 소리내어 울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도 슬픈 마음에 떠들고 놀지는 못했어도 울지는 않았는데, 집에서 혼자가 되니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내세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의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올 수 없겠지만, 다시 그와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헛된 바람을 가져본다.



선거운동


아마 녹색당에 탈당계를 낸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국가혁명배당금당'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 선거 기간이 되기 전이라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할텐데, 선거법 상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가 과연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이 먼저 들었다. 두 번째는 '저런 당'도 선거운동을 하는데, '우리당(이미 탈당계를 내 놓고도 이런 표현이라니)'은 대체 뭐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어서 우습게만 생각했던 허경영 씨의 그 당이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무심결에 떠오른 위 두 가지 생각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거운동원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게다가 '저런당'이라는 혐오 표현을 쓰다니! 이것 역시 큰 잘못이었다.


탈당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는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한 이후로 선거기간에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나는 지역에서 후보를 내고 선본을 꾸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많이 노력했었다. 비록 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결국 후보를 내는 것에 실패하고 탈당을 했지만, 만약 내 노력이 성공했다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인데도 선거운동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코로나19로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상황들이 겹쳐 우울하고 또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감정은 선거가 끝나야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과연 선거가 끝난다고 회복이 되긴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선거 당일 두 번의 술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완전히 취해 돌아와 잠들었다가 깨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마음 깊숙히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 하나를 치운 듯한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날 술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우울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 지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 같다. 그걸 들어주었던 지인들은 고생이 많았겠지만, 덕분에 나는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 공간에 남기지는 않으련다. 이 사회도 나도 여러모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나날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난무해 더 심각하게 양당제로 고착화 되어 버린 선거 결과(물론 한 쪽이 참패하면서 양당제 고착화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전과 비교해 소수 정당의 의석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가 참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러려고 선거 개혁을 위해 애썼던가 싶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한 편 유래없이 많은 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그 위성정당이라는 결과도 너무나도 참담하면서도 웃기다. 역시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그 어느 희극작품보다 더 웃기다. 에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주저리 주저리 써놓았네. 이제 그만.


운영위원장


작년 이맘때 내가 쓴 글을 보면 한동안 녹색당 지역 운영위원 직을 맡지 않고 잠시 활동당원으로만 남아 있었다가 다시 지역 운영위원장이라는 당의 공식 직책을 맡았다는 글을 썼었다. 이제는 탈당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활동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또 다른 단체의 운영위원장이라는 부담스러운 직책을 맡았다. 정말 안 맡고 싶었고, 여러 번 고사했음에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고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리라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큰 역할을 잘 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억지로 떠맡은 자리를 과연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왼손 사용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양손잡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왼손을 쓸 때마다 할머니께서 내 손을 탁 하고 쎄게 때렸다고 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내가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 쓰게 되었다고 했다. 왼손을 주로 썼던 시절의 습관은 커서도 남았다. 


학창시절 야구를 할 때, 우타석에 들어가면 어깨와 팔을 휘두르는 느낌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분명 난 오른손잡이인데도 그랬다. 내 자세를 유심히 살펴본 친구가 좌타석에 들어가보라고 해서 좌타자로 배트를 휘둘렀더니 한결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몇 몇 특정한 동작들은 오른손으로 하면 오히려 힘을 주기 어렵고 왼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힘도 잘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이건 어쩌면 오랫동안 굳어온 습관 때문일 것인데,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등의 중요한 것들은 다 오른손으로 바꿨고 그 습관이 굳어졌지만, 자잘한 몇몇 행동들은 여전히 왼손을 사용해왔고 그 습관이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랫동안 오른손만 주로 쓰는 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왼손 사용이 무척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친한 형이랑 오랜만에 만났다. 그 형은 일하다가 오른손 중지를 다쳐서 부분 깁스로 고정한 상태였다. 손이 그러니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을 먹거나 씻는 일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는 왼손으로 젓가락지를 잘도 하면서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왼손으로도 젓가락질을 그렇게 잘 하냐고 물었더니, 군대에 있던 시절 고참이 밥을 너무 빨리 먹는다고 갈구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명령해서 그때부터 그 고참이 제대할 때까지 왼손을 젓가락질을 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그 형은 오른손을 다쳐서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왼손으로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만화방에서 읽었던 이현세 화백의 어느 권투 만화가 떠올랐다. 그 만화의 주인공인 오혜성(일명 까치)은 한때 잘나가다가 무슨 일로 한동안 링을 떠나있다가 다시 복귀한 복서였다. 그가 체육관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 몸을 만들면서 동시에 중요하게 했던 일이 왼손 젓가락질로 콩을 집는 일이었다. 왼손을 오른손만큼 능숙하게 사용해야 권투를 잘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인공이 한동안 왼손 젓가락질에 매달렸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왜 또렸이 기억하냐면 당시 내가 권투와 태권도를 섞어 놓은 족보 없는 이상한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고, 그때 나는 그 격투기를 잘 하기 위해 권투 자세를 익혀야 했는데, 만약 그 왼손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권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며칠 시도해보다가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형이 왼손으로 능숙하게 밥을 먹는 장면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에게 늦은 나이지만, 복서로 나가 보라는 말을 해볼까 하다가 참았다. ㅎㅎ) 이후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터치 패드를 조작하는 등 일상에서 왼손을 조금 더 사용하려고 의식하곤 한다. 늦은 나이의 복서는 내가 시도해 볼까나? 대학 시절 학과 교수님 중에 연장자에 속했던 교수님 한 분은 아주 늦은 나이에 아마추어 복서로 데뷔해 조그만 지역 대회에서 상도 받았었다. 당시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샌드백이 걸려있었고, 글러브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당시 교수님 연세가 몇 이었을지 궁금해서 글을 두드리다가 검색해봤다. 헐! 결과는 무척 충격적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다니! 당시에 그렇게 늙어 보였는데, 아니 실제로 아주 늙은 교수님이라고 여겼었는데. 내가 벌써 이렇게나 늙어버렸구나.


다시 운동 시작


약 2주 전부터 슬금슬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각종 관절 통증이 가끔 괴롭히고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시작은 아니고, 서서히 몸을 만들어가며 워밍업을 하는 단계다. 요즘은 특히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릎 부상 이후 약 1년 8개월. 그동안 뜀박질을 제대로 못해서 좀이 쑤셨다. 다시 달리다가 또 부상을 당할까봐 무섭기도 했고, 가끔 뛰어야 할 상황에서 유연성과 심폐지구력 때문에 예전처럼 제대로 뛰지 못하기도 해서 이젠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다시 뛰어보니 되더라. 신나서 며칠 연속 뜀박질을 이어하고 있다.


나이키 런닝 앱을 깔았더니 총 거리와 평균 속도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알려줘서 내가 이렇게 달렸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운동장이나 트랙을 도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달리는 것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다.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호에 걸려 멈춰서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단조로운 운동장이나 트랙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다만 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멈춰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내 뜀박질 경로와 각 단계의 속도를 알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용량이 큰 뇌를 가진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다.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에 비례해 짧은 시간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빠르게 판단하고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잠시 머뭇거린다면 다음 순간 큰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면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다음 행보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용량이 큰 뇌가 필요한 거라고 이해했다.


달리기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운동이다. 내 몸(지방)을 태워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특히 차량의 흐름과 교통 신호라는 변수에 힘입어 버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모른다.


물론 달리기보다 더 재미있는 운동도 많다! 케틀벨과 바벨과 덤벨과 철봉 등 한동안 장식품이나 빨래 걸이로 사용했던 녀석들을 다시 원래 용도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 아마 여름 중반쯤에는 뽐낼만한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술과 관절통증과 야근과 과로라는 장애를 잘 넘어간다면, 아마도)


책, 사고 팔기 그리고 찾기


좁디 좁은 작은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 근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아무래도 좌식 탁자에 오래 앉아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책상을 들여놓기 위해 바닥에 탑 무더기처럼 쌓여있던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책정리를 시작하면서 이제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팔거나 버리려고 내놓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불과 2년쯤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왔던 책들이었다. 그 2년 사이에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길래 나는 꽤 많은 책들을 정리해서 내놓았을지 궁금하다.


팔 수 있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 매장에 팔아보려고 앱에서 바코드를 찍어보니, 대다수의 책들이 판매불가 상태이거나 팔더라도 1천원 남짓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왔다. 새삼 이 책들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겨우 그 가격에 내놓아야 하는가 싶어서 도로 책장에 꽂은 책들도 제법 된다. 그래도 책상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책들을 큰 가방 두 개에 우겨넣었다. 몇 년 전에 비해 매입가격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알라딘 중고매장을 향했다. 무사히 책을 팔고 또 중고책 2권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런데 직원이 그 중 한 권을 찍어보더니 이전에 구매했던 책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속으로 '구매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내가 사놓고도 기억 못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니지 싶은 생각에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럼 그 책은 빼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책이 읽고 싶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찾아보았다. 팔거나 버릴 책들을 골라내면서 대체로 책들을 훑어봤기 때문에 그 책이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여기며, 내가 놓친 구역이 어디인지 파고들었다.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몇 시간을 책장을 훑으며 집중했건만 그 책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에도 퇴근 후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전날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놓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다시 꼼꼼하게 찾았다. 그래도 없었다. 그쯤되니 '그래. 분명 내가 그 책을 산 기억이 없는데.' 싶었다. 알라딘에 들어와 구매 목록을 살폈다. 온라인 구매와 중고 매장 구매 내역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으니, 만약 내가 이 책을 샀다면 여기 어딘가에 나와있을 것이다.


또 없었다. 구매 목록에 없다는 말은 내가 이 책을 알라딘에서 산 적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2000년 내가 알라딘에서 처음 책을 샀던 목록까지 두번이나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없었다. 이쯤되면 바코드가 잘 못 붙어있었거나, 기계 오류이거나, 직원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어느 경우든 나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놓쳤고, 며칠에 걸쳐 집안 책장을 여러번 뒤지고 알라딘 구매 목록을 두 번이나 뒤지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서너권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다시 그 중고 매장에 가면 그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직원을 찾아서 따지고 싶은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 못 하는데 어떻게 따질수 있을까? 그 책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이젠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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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4-2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 좀 보태면 오늘은 정말 날씨조차 겨울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배운 일에 정신나가 있는 동안, 감은빛님께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네요.
당연히 아시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지요.
늘 건강 챙기세요^-^

감은빛 2020-04-24 10:28   좋아요 0 | URL
요새 바람이 정말 겨울 바람처럼 차가워요. 일교차도 너무 크구요. 이게 정말 봄날씨가 맞나 싶네요.

처음 배우는 일로 많이 바쁘고 정신없으실텐데, 그 와중에도 책 읽고 글쓰는 모습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2020-04-2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4-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입했다고 나오는 건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산 적이 있는 게 아닐까요? 회원 명을 함께 공유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어느 작가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구입하긴 했는데 집에서 책을 찾아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또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도 책 한 번 찾으려면 힘들어서 다시 안 볼 책은 버려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아까운 내 자식들 같아서...ㅋ
재택 근무 하시니 좋은 점도 있겠습니다. 장례식장은 저도 적응이 안 되더군요. 참 어려운 장소입니다.
운동하신다니 좋아 보이십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도 좋지요.

감은빛 2020-04-24 10:33   좋아요 1 | URL
패크님, 가족이 제 계정으로 샀더라도 구매목록에는 나와야 하는데, 없어서 뭔가 오류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한동안 자율 출근제로 일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 며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끝났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