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세대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요즘 애들은 유전자 자체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늘 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폰으로 셀카를 찍거나 영상을 찍는 걸 보면 그렇다. 한번은 애들 밥 챙겨주느라 주방에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내 폰으로 영상을 찍었더라. 자기 장난감이나 인형을 막 소개하고,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걸 막 설명하고, 그러다 내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고 막 소개했더라. 어디서 이런 걸 배워서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늘 보던 유튜브 채널을 따라하는 거였다.


작은 아이가 자기 물건들 하나씩 보여주고, 소개하다가 뭔가 더 없어서 내 물건들을 막 뒤져서 꺼내오는데, 대학 시절부터 갖고 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예전에 아이가 뒤져봤던 거라서 거기에 예전 내 사진들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군대 때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신분증들. 학생증, 도서관증, 태권도 단증 등등 이런 것들에 있는 내 사진들을 막 영상에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 여깄네


나중에 아이가 단체 사진들에서 아빠를 찾겠다고 했다. 찾아보라고 했더니 대학 시절 동기들과 찍은 사진들이나, 동아리 단체 사진에서는 금방 나를 찾아냈다. 그러다 군대에서 완전 군장에 총까지 메고 찍은 사진들에선 쉽게 찾지 못했다. 당연히 방탄모를 써서 얼굴이 잘 안 보이니 찾기 어려울 수 밖에. 결국 아이가 힌트를 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도 자세히 살펴보니 소대 전체가 같이 찍은 사진에선 나도 나를 못 찾겠더라. 근데 가만 떠올려보니 그때 내가 분대장이었단 걸 기억해냈고, 견장과 호르라기를 차고 있는 나를 곧 발견했다.


아이에게 남들한테 없는 걸 어깨에 달고 있다고 했더니, 그래도 사진이 작아서 잘 찾지 못하더라. 그래서 아이가 다시 왼쪽, 중간, 오른쪽 중에 어디냐고 묻더라. 당시 내가 가장 선임 분대장이라 가장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중간이라고 알려줬더니. 두세번 만에 아이가 찾아냈다. 아~ 아빠 여깄네. 


아빠 책 읽어 줄게


주말 아침에 피곤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로만 애들 뭘 좀 먹여야 하는데, 피곤해서, 이불 밖이 너무 추워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깬 걸 느끼고, 작은 아이가 내 품으로 쏙 파고들어서 춥다고 속삭이는 걸 듣고 반사적으로 아이를 꼭 껴안고 토닥여줬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아이들이 배고프단 소리가 나올 때쯤에야 일어나서 먹을 걸 챙겼다.


밥을 먹이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누워있는데, 아이가 책을 읽어주겠다고 그림책을 가져왔다. 동물들과 관련한 몇 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있는 그림책이었는데, 아마도 싸구려 전집에 포함된 책이었던지, 정식 판매하는 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용도 뭐 별 내용이 없었는데, 아이는 그 별거 아닌 게 그렇게 웃기다며 막 웃었다.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과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열심히 읽어주곤 했는데, 이젠 그 쪼그맣던 녀석이 나에게 책을 다 읽어주는 구나 싶었다. 별로 재미없었지만, 아이가 열심히 읽어주는 걸 보고 급 반성하고 열심히 들었다. 다음에 또 읽어달라고 해야겠다.


아빠 게임하자


토요일에 아이들과 동네 서점에 가서 책과 문구류 등을 샀다. 가방 속에 몇 년째 숨어있었던 5만원 상품권으로 모자라 추가로 돈을 써야 했다. 그 와중에 작은 아이랑 문구 코너를 돌다가 보드게임을 하나 샀다. <식객> 이란 게임이었고, 전국을 돌며 음식을 맛보고 포인트를 모으는 방식이었는데, 살짝 아쉬웠다. 뭔가 집중이 잘 안되고 허술한 느낌.


한동안은 아이들과 트럼프 카드 게임을 많이 했다. 나도 어릴때 여러 종류의 카드 게임을 자주 했고, 많이 알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애들하고 하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 그래도 애들하고 어울려 제법 자주 했는데, 요새 큰 아이가 시들해하니 작은 아이랑 둘이서만 하는 건 또 별로 재미가 없더라.


또 한동안은 애들과 윷놀이도 자주 했다. 우리 지역의 어느 사회적기업에서 우리 동네 사회, 경제, 문화적 자원들을 배치한 지도로 윷놀이 판을 만들었는데, 정말 아이디어 좋게 잘 만들었다. 그걸 말판으로 놓고 윷놀이를 하면 자주 다니는 익숙한 공간들 위에서 윷놀이를 하는 것이라 애들도 좋아했다.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계속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폰으로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그것보다 주기적으로 애들이 질리지 않을만한 재미있는 게임들을 찾아보고, 개발해야겠다. 예전엔 그런 궁리를 많이 하고 살았는데, 요샌 여유가 없으니 생각도 못했다.


연말


벌써 꽤 오랫동안 침체기에 푹 빠져 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정말 올해가 며칠 남지도 않았다. 일이 안 풀려도 지독하게 안 풀려서 정말 저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막판에 하나 기분 좋은 성과를 올렸다. 덕분에 칭찬도 좀 받고 격려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아주 조금은 올라온 듯하다.


그래도 연말 안에 끝내야 할 일들과 1월 초까지 마쳐야 할 프로젝트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절로 한 숨이 난다. 벌써 이틀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야근 중인 지금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참고 있다. 오늘은 공식적인 송년회 일정도 하나 있었지만, 일 때문에 포기했고, 친했던 후배로부터 따로 연락이 왔건만 그것도 거절했다.


기억해보면 작년 이맘 때는 완전 술독에 빠진 것처럼 매일 술을 퍼부으며 지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래도 작년 보단 조용히 보내는 구나.


워낙 주변에서 걱정어린 시선과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을 많이 받고 들어서, 이젠 좀 멀쩡한 것처럼 연기라도 해야겠다 싶다. 실제 이 긴 침체기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를 올라올 날이 언제일 지는 몰라도 이대로 계속 가다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를 걱정하고, 소문이 퍼질 것 같아서 안되겠다. 과연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속인다는 각오로 혼신의 연기를 펼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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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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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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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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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2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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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20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초등학생들은 유트브 계정이 있는 아이들이 최고 인기인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18-12-27 20:1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직접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 같아요.

정말 유전자 자체가 다른 아이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들어요.
 

잔뜩 흐린 하늘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냥 만사가 다 싫고 그 중에서 나 자신이 제일 싫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없어졌으면 싶었다. 사실 간단하다. 내가 없어지면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까.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만, 내 기준에선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난 이미 없어졌으므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세나 윤회는 없다. 애초에 종교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일 뿐.


어제 평소보다 목을 더 많이 써서 오늘 하루종일 목이 아팠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로 내 원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목소리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톤이 더 낮아졌고 굵어졌다. 원래 목소리가 작고 목이 약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스트레스를 이유로 담배는 또 줄창 피워댔다.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 뱉었다. 타들어가는 담배소리를 들으며 한숨 또 한숨, 후회 또 후회가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나는 그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을까?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냥 내가 못난 사람임을 인정하면 되었을텐데, 왜 그에게 상처를 주며 허세를 부렸을까? 그는 또 왜 그날 따라 그렇게 신경질 적이었을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조금만 더 화를 덜 냈다면, 조금만 더 톤을 낮췄다면 그렇게 까지 되지 않았을텐데. 사실 계속 두려웠다. 이 관계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깨져버릴까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을 잃게 될까 싶어 늘 두려웠다.


뭐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연락해야 할까? 연락을 받아주긴 할까? 그냥 아무런 예고 없이 훌쩍 찾아가서 사과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고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다 타버린 담배를 던져버리고, 발로 밟았다.




생활비를 다 써버려 라면 하나 사지 못하고 이틀째 굶고 있던 날, 그는 엄마 몰래 반찬과 밥을 잔뜩 싸서 가져왔다. 몰래 가져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하면서 그는 내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오빠를 위해 이렇게 애 썼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했다.


그는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었지만, 주말마다 꼬박꼬박 나를 만났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싶었을테지만, 일찍 일어나 내 자취방에 와서 먹을 걸 챙겨주고, 피곤하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곤 했다. 난 그런 그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함께 누워 있는 것이 좋았다. 문득 잠이 들었다 깨면 그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 좋았다.


그는 화를 냈다. 집안 곳곳을 뒤져 겨우 찾아낸 동전 몇 개로 라면을 두어 개 살 지, 담배를 살지 고민하다가 결국 담배를 사는 나를 보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왜 오빤 자기를 아끼지 않아? 왜 오빤 오빠를 함부로 굴려? 제발 그만해! 지긋지긋해!


글쎄 어떻게 답해야 했을까? 소설을 쓰겠다고 골방에 칩거하며 산 게 벌써 몇 달째였다. 집에서 보내주는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는 한 달을 버티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돈은 밥과 반찬이 아니라 담배와 술 값으로 대부분 나갔다. 수입 없이 더 버티기 어려워 결국 학원 강사를 선택한 날, 난 마음 속으로 소설을 포기했다.


어쩌면 그랬다.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었다. 내 주제에 무슨. 하지만 찌질한 나는 뭔가 구실이 필요했다. 지긋지긋하다는 그의 말이 그 구실이 되어 주었다. 나는 편하게 그를 원망하며 소설을 접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내가 부족해서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고 나는 마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수도 있었는데, 그의 말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기억을 조작했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제일 싫은 건 나 자신이었다. 그는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내가 싫다 했다. 나도 내가 싫다 그래서 나를 잘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싫은 사람을 누가 잘 돌보겠나.


나는 사실 신기했다. 나조차 싫어하는 나를 좋아해주는 그가 신기하고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불처럼 내게 빠져들었다. 허세에 가득 찬 교만하고 삐딱한 인간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나조차 좋아하지 못하는 날 좋아하고 챙겨주는 그를 잃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고 싫다.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젠 느낄 수 있다. 이 관계가 이젠 더 이어지지 어려울 수 있겠다. 돌릴 수만있다면 뭐라도 하겠지만, 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안다.


슬픔을, 아픔을, 구차함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 차라리 그만두면 안 될까? 이렇게 힘든 삶이라면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그만둘 용기조차 없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는 오늘도 온갖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며 살아간다. 그 옛날 그랬듯이.언제나 그랬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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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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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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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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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8-12-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추천합니다.
어쩌면 눈꼽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어요.

감은빛 2018-12-19 19:55   좋아요 0 | URL
뇌과학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물 발견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일이 정말 귀찮다. 몇 달 전에 어느 회의 자리에 가면서 가방을 안 갖고 맨 몸으로 갔는데, 그걸 본 이웃 조합 이사장님께서 혀를 끌끌 차셨다. 가방도 안 갖고 오다니! 그 분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어떻게 회의 참석하러 오면서 가방도 없이 올 수 있단 말인가? 근데 가방이 필요한 이유는 회의 자료를 담아 가는 것과 회의 자료에 기록할 필기구를 가져가는 이유 밖에 없다. 당시 필기구는 내 옷 주머니에 들어있었고, 회의 자료는 둘둘 말아서 가져가면 되었다.


암튼 한동안 서류가방을 사무실에 두고 작은 가방만 메고 출퇴근을 하거나, 아예 가방 없이 출퇴근을 했다. 저녁에 술 자리에 가방 없이 가면 다들 물었다. 가방은? 어, 사무실에. 다시 가서 일할거야? 아니. 안 가. 근데 왜 가방은 두고 왔어? 그냥. 갖고 다니기 귀찮아서. 여러 사람과 이런 내용의 대화를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사무실에 둔 서류가방 맨 뒷면 지퍼를 열었다. 겉으로 만져보니 뭔가 봉투가 같은게 있어서 열어본 거였다. 종이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동네 서점에서 발행한 1만원 상품권이 5장이 나왔다. 이걸 언제 받았나 떠올려보니, 아마 5~6년 전쯤 지역 신문에 연재글을 쓰고 원고료 대신 받았던 거였다. 왜 이게 여기에 들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못 쓰면 어쩌나 싶었다. 상품권을 펼쳐들고 꼼꼼히 살폈다. 혹시 기한이 정해져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한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이걸 갖고 책 사러 갔다가 안 된다고 하면 곤란하니 미리 확인이 필요했다. 마침 그 동네서점 점장과 친분이 있었다. 메세지로 상품권을 받고 잊고 있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 발견했는데, 지금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기쁜 마음이 들었다. 어딘가 숨겨뒀다가 잊어버린 비상금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가 사고 싶은 책도 많지만, 애들을 데려가서 애들 원하는 책도 사줘야겠다. 당시 원고료 대신 이 상품권을 받을 때 쓴 글은 아이들에 대한 글이었다. 글감을 제공해준 당사자들에게도 보상이 필요하겠지.


주말에 아이들과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장면을 떠올리며 나도 몰래 웃음을 지어본다.


인정 욕구 충족1


누구나 남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걸 인정 욕구라고 하더라. 나 역시 인정 욕구가 있다. 아니 난 그 인정 욕구가 좀 강한 편이라 생각한다.


며칠 동안 1번의 발제와 2번의 강의를 했다. 그래서 발제비와 강의비가 통장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 돈은 통장에 며칠 머물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난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강의비 받았으니 술 한 잔 마셔야지. 발제비 받았으니 술 한 잔 마셔야지 이러며 매일 술을 마셨다. (즉, 돈이 안 들어왔어도 뭐라고 핑계를 대며 매일 마셨을 거다.)


어제 강의는 후배 부탁을 받고 급하게 수락했는데, 참여자가 무척 적었다. 강의 시작할 때는 4명이었고, 중간에 두 명이 더 들어와 마지막엔 6명이 들었다. 아마 내 강의 경력에 최소 인원이지 싶다. 그 주제로 강의를 여러번 했기 때문에 이번 강의를 위해 딱히 준비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주제는 같아도 대상이 달라서 강의 자료를 살짝 손 보면서 머리속으로 강의를 한 번 해봤다.


발제나 강의나 사회를 맡으면 항상 시작할 때 살짝 긴장한다. 그 시작을 어떻게 편안하게 잘 풀어내냐에 따라 그날의 결과가 정해진다. 욕심이 많은 편이라 내 강의자료는 늘 시간에 비해 많은 것들을 담고 있고,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빠른 말투로 정보를 쏟아낸다. 속으로는 늘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내 입은 쉴새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강의 후에 말이 정말 빠르시군요 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근데 최근에는 욕심을 줄이고, 딱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생략하는 기술을 점점 익혀갔다. 이번 강의는 인원이 적어서 거의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한 강의 중에 가장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한 강의라고 느꼈다. 이건 완전 자뻑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강의였다. 소수의 참여자들 한 명 한 명과 모두 눈을 맞춰가며, 적당한 시점에 질문을 던지고, 강조하기 직전에 여백을 주고, 강조점에선 확실히 효과음을 넣어줬다. 


예전에 학원 강사 할 때부터 잘 알고 있었고, 노력했던 게 한 편의 영화같은 강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의 자료를 만들 때마다 가장 신경쓰는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강의 태도도 정말 중요하다 단순히 정보만 떠들어대는 것은 지루하다. 실제 경험담과 같이 스토리가 들어가야 한다. 늘 살펴보면 확실히 실제 있었던 사건을 들려줄 때 사람들이 가장 집중한다는 것을 느낀다.


암튼 강의를 마치고 주선자였던 후배와 담배 한 대를 피울 때, 후배가 강의 정말 잘 들었다고 했다. 형님 강의 잘 하신다는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실제 들어보니 더 대단하네요! 했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인정 받았다는 생각에 기뻤다. 이런 걸 인정 욕구라고 하는 구나 깨달았다.


인정 욕구 충족2


지난 주였던가 정책 개선 제안 및 현장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그날 아침엔 학교 설명회가 있었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인데, 나는 학교 햇빛발전소를 설명하기 위해 교장선생님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애들 엄마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가족이었던 사람. 그 사람이 학교측 중요한 의사결정자로 참여하는 자리라니. 그래서 사실 좀 긴장되었고, 좀 많이 신경쓰였다. 아침에 뭘 입고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평소 학교 설명회를 다닐 때는 그냥 평소처럼 다녔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 근데 그날 만은 왠지 정장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설명회에 임하는 나도 더 집중이 잘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정장을 입고 나갔기에 오후에 있었던 정책 개선을 위한 모임에도 당연히 정장을 입고 갔다. 여러 조합에서 각자 여러가지 어려움을 토로하고 개선 방안을 요구했다. 그런데 각자의 입장들을 들으면서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다. 발언을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잘 정리해서 말하면 좋을텐데, 이야기가 자꾸 엉뚱하게 흘러가거나, 배경을 잘 설명하지 못하거나, 흐름이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앞서 여러 사람들이 요구했던 내용들에 대해 쭉 정리를 했다. 시간 순서에 따른 정리, 배경과 이유와 목표에 대한 정리, 과정과 현재와 향후 예상 시나리에오 대한 정리. 나중에 모임을 마치고 함께 참석했던 친구에게 메세지를 받았다. 오늘 진짜 멋지던데, 네 정장 입은 모습도. 회의 흐름을 한 번에 정리한 발언도. 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으며 딱 들었던 생각이. 그래, 나 정장 완전 잘 어울리지. 몸매가 받쳐주잖아. 그리고 나 완전 정리 잘 하는 편이지. 항상 핵심을 잘 깨닫는 편이고, 흐름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니까. 완전 자뻑이지만, 늘 내 일정에 회의가 많은 이유는 그 회의 마다 내가 돋보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경우가 있다. 내가 준비하고 주최하는 회의는 당연하고, 단순 참석하는 회의에서도 나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중요한 제안이나 지적을 하거나, 논의가 지리멸렬할 때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암튼 친한 친구에게 그렇게 인정을 받으니 그것도 무척 기뻤다. 어제 그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그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스트레스가 많은 이유를 알겠다. 왜 네가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알겠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일이지만, 이 분야에서 네가 이렇게 인정받는 사람이니, 너에게 다른 일을 찾으라는 말을 못하겠다. 다들 너만 쳐다보는 것 같더라. 네가 워낙 유능하니까 더 너한테 기대고 있는 것 아니냐. 뭐 이런 내용이었다.


가끔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돈도 못 버는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그 시간에 돈을 벌었으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훨씬 더 폼나게 살 수도 있었을테데. 어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인정 욕구가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싶었다. 인정 받고 싶으니까 부탁을 저버리지 못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떠안고 가다보니 늘 바쁘고 정신없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가 아니라 왜 이렇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나로 질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근데 그 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인가? 아니면 자라는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태도의 문제인가? 모르겠다.


늙어간다는 것















요즘 부쩍 늙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날 학교 설명회에서 만난 애들엄마는 오히려 더 젊어진 듯한 느낌이더라. 염색한 머리는 여전히 숱이 많았고, 피부는 탱탱하고 밝았다. 연애하던 시절에 참 사랑했던 그 눈은 생기가 넘쳤다. 지금 내 꼴을 보면 그가 나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까? 사실 이혼하기 한참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나보다 어리게 보았다. 나도 예전에는 꽤 동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젠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동안.


그리고 왜 이렇게 몸이 여기저기 자꾸 망가지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여기저기가 아픈지 모르겠다. 친구한테 얘기하니 늙어서 그런 거란다. 젊을 때는 절대 겪어보지 못한 증상들이 자꾸 생기는 게 정말 그냥 늙어서일까? 늙어간다는 것 그것 참 슬픈 것 같다.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 늙더라도 이렇게 아프면서 늙고 싶지는 않다. 건강하게 늙고 싶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과 서점에 가서 살 책을 정했다. 친한 (아니 만난지 꽤 오래 되었으니 친했던 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형이 번역한 책이니 벌써부터 책 정보는 알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너를 읽어주마.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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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8-12-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아프냐 하면,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요.
어떤땐 아픈데도 술을 마시면 일종의 마취같은 현상으로 좀 나은것 같거든요.
그런데 사실 본인이 더 잘알잖아요.

감은빛 2018-12-14 05:00   좋아요 0 | URL
그래요. 마지막 말씀처럼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이 재미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술을 많이 줄이고 있어요.
진짜 술 때문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 싶은 마음도 있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야합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에 요새 말로 단 1도 기대해본 적은 없었지만, 자유한국당과의 야합 소식을 듣고 조금 놀라기는 했다. 그럴 줄 몰라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빨리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혹은 이렇게 천박하게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싶어서였다. 그래. 뭐 애초에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정치인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을 뿐이다.


국회


정말 정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일이 많기만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떻게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는지.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은 정도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떻게든 이걸 해결해보려고 여러 관계부처 공무원들을 만나봐도 답이 없다. 정말 시민운동 판에 첫 발을 디뎠던 거의 20년 전쯤부터 생긴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새삼 활활 타오른다.


어제는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공무원들이 도무지 해결해 줄 수 없어 보이니, 이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이 의원이 정말 이 판에서 가장 실력있는 보좌관들을 모았구나였다. 두 분 모두 나와는 몇 차례 일로 만났던 분들이라 그들에 대한 신뢰는 당연했고, 어제 다시 한 번 그 분들의 내공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이 일이 내 판단과 달리 생각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보좌관들은 해당 의원을 통해 최대한 빠르고 원활하게 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느낌이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같이 방문했던 이들과 국회 정문을 나오는데, 녹색당 당원들과 마주쳤다. 아까 낮에 긴급 기자회견 소식을 들었던 터라, 어쩌면 마주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내가 의원회관 안 따뜻한 실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동안, 그들은 추위 속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기자회견에 늦게라도 온 거라고 여겼지만,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거듭 사과했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막 헤어지려던 참이었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몇 년째 투신 중인 하승수 대표는 이 강추위 속에서 천만 밤샘 농성을 하겠다고 선언했단다. 순간 머리 속으로 그의 활짝 웃는 표정과 단호한 표정이 겹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그 추위에 노숙을 하고, 누군가는 그 추위에 오체투지를 하다가 경찰에 길이 막혀 차디찬 바닥에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는데, 나는 이제 아이들을 만나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려 하니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했다. 작은 아이는 공동육아 방과후교실에서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이미 곧 선생님 근무 시간이 끝나기에 내가 돌아갈 때까지 선생님을 기다리시게 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먼저 집으로 가서 언니랑 기다리라고 얘길 했는데, 계속 고집을 부렸다. 결국 언성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선생님께 너무 폐를 끼치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아주 살짝 울음이 맺힌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치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다. 늦은게 미안해서 그러자고 했고, 예전에 한 번 갔던 초밥집을 향했다. 아이들은 최근 연어와 초밥을 좋아했고, 그 집 연어회가 비싸긴 하지만 그나마 조금 저렴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메뉴판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아마 사장이 바뀐 모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전체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계속 뭔가 바뀐 점들을 찾아냈다.


연어회와 초밥 가격을 보고 조금 망설였지만, 일단 주문했다. 추위에 떨다 들어와서 따뜻한 사케가 먹고 싶어서 그것도 주문했다. 그러고 나니 가격이 엄청나다. 어제 받은 강사비를 떠올리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야. 강사비의 절반 이상을 써버렸지만, 그래도 애들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나도 먹고 싶었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비웠다.


추위


오늘 아침은 정말 추웠다.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차가운 바람에 온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느꼈다. 손발이 시린 것도 괴로웠지만, 특히 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작년 겨울 방한용으로 구매한 헤드폰을 다시 꺼낼 때가 왔구나 느꼈다.


올 봄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은 작은 아이 학교 바로 앞이었다. 아이 걸음으로 교문까지 5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사 올 때 제일 고민도 작은 아이 학교가 너무 멀어지는 것이었다. 큰 아이 학교도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녀석은 이제 중학생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사 후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오는 날엔 매번 작은 아이 손을 잡고 학교를 같이 갔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너무 멀다고 투정을 많이 부렸다. 우리 집에 오는 날엔 아이들이 늦게 잠드는 경우가 많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고, 학교 지각을 간신히 피하느라 뛰는 날도 많았다. 또 큰 아이도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다.


결국 애들 엄마와 상의해서 주중 하루, 주말 하루로 정했던 애들 만나는 날을 아예 금,토로 정했다. 애들이 우리 집에서 학교 가는 걸 너무 힘들어해서였다. 그러다 애들 엄마 사정으로 정말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설마


학교 후문 앞에서 아이와 뽀뽀하고 헤어진 후, 아이가 현관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주변에 역시 애들 뒷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들 사이로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는데, 앞에 유모차가 혼자 있는 모습을 봤다. 설마 애가 있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유모차를 지나치며 살펴보니 두꺼운 옷과 목도리 사이로 아이 얼굴이 보였다. 엄마가 어디 있겠지 하고 주위를 살폈는데, 반경 10미터 이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금방 든 생각은 저 후문 앞에서 아이들 뒷 모습을 쳐다보며 추위를 견디는 엄마들 중 하나가 이 유모차 아이의 엄마겠지 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 다음 의문은 왜 저기까지 유모차를 데려가지 않고, 여기 홀로 두었을까? 였다. 아이는 아마 잠든 것 같았다.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 모르니 아이 엄마가 나타날 때까지 잠시 곁에 있어야 하나 고민했다. 아직 출근시간 여유는 있었지만, 오전 중에 마쳐야 할 일이 여러개라 마음이 바빴다. 게다가 돌아온 아이 엄마가 나를 이상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결국 유모차를 두고 돌아섰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만났어















요즘 버스정류장들 옆에는 천막이 생겼다. 바람을 피해 그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라는 배려였다. 여름철 교통섬과 횡단보도 앞에 설치한 큰 양산처럼 생긴 그늘막과 함께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천막에 적힌 문구가 조금 거슬렸다. "따뜻한" 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저 안에서 바람을 피하면 바깥보다는 조금 덜 춥겠지만, 따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따듯한지 아닌지 확인해볼까 싶어 들어가 보려다가 참았다.


그러다 버스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만났다. 아니 그는 나를 보지 못했으므로, 누군가를 보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입김을 내면서 종종 걸음으로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류장 구조물 밖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다가 인사를 할까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는 그새 정류장 앞에 서있던 버스에 올랐다. 그의 일터 위치를 알기에 조금 의아했다. 오늘은 사무실로 가지 않고 어디 다른 곳에 외근을 가는 건가 싶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그와 함께 했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다들 놀라서 어쩌지 못하던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해결했을 때, 그가 나에게 보냈던 감탄의 표정. 그 표정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늦은 밤까지 불을 피워놓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눴던 순간. 그가 내게 건넸던 몇몇 칭찬들. 생각보다 떠오르는 기억이 많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그가 소위 정말 잘나가는 위치에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가 참 세심하고 배려 깊고 매사 꼼꼼하게 잘 챙긴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냥 일 잘하고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근데 그가 몇 가지 일을 두고 내게 칭찬하거나 감탄했을 때부터 그를 대하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이 예뻐보였다.


물론 이 감정은 연애감정은 아니다. 그저 호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리고 난 이 감정을 키워서 남편과 아이가 있는 사람을 짝사랑하는 입장이 되고 싶진 않다. 다만 오늘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한 순간 그와의 몇몇 추억이 떠올랐을 분이다. 그렇다. 그저 누군가를 만났을 뿐이다. 그저 누군가를 스쳐 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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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슬럼프? 침체기? 우울증? 무기력증? 침몰? 쇠약?

 

요즘의 나는 흔히 부진하고, 저조하고, 무기력하고, 바닥을 친다는 뜻으로 말하는 온갖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다 해당되지만, 그 말들을 다 동원해도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그런 상태다. 몸도, 마음도, 일도, 인간관계도, 주변 상황도 모두 그렇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마음의 파멸
















오래전 츠바이크의 [마음의 파멸]을 읽었을 때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 아니 요즘 말로 멘탈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인격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이 책을 읽을 당시 난 어렸지만, 이미 한 번 이상 마음이 완전히 깨져버리는 파멸을 겪은 후였기에 그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부서지는 건 항상 아주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서는 아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얼마든지 마음에 균열이 생길 수 있고, 처음엔 별것 아니라 느꼈던 그 작은 균열이 점점 커져 결국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물론 부서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마음을 키워갈 수도 있다. 마음이란 건 늘 상처 받았다가 다시 회복하길 반복하는 것이니. 우리 몸이 그렇듯, 우리 마음이란 것도 늘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어딘지 모를 아주 깊고 깊은 나락에 가라앉아 있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져버린 상태임을 느낀다. 최근 뭔가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 물론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삶이란 늘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니. 다만 지금 내 마음의 파멸을 설명할 큰 사건이 최근에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사실 균열은 꽤 오래전에 있었다. 사실 이정도면 꽤 오래 버틴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무너져버린 것을 오히려 칭찬해 줄 수 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꽤 긴 시간 나는 무리하며 살아왔다. 몇 해 전부터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마음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기 위해, 부서지기 않기 위해, 나락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생활을 이어왔다. 속으론 다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겉으론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을 살아왔다. 그 차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버틴 건 오로지 술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몇몇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주고, 받아주고, 마음 써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게 왜 하필 최근에 터져버렸을까? 아마 시작은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올해 유난히 일이 잘 안 풀리고, 업무상 상대해야 하는 인간들의 무책임한 행태 때문에 어이없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어지간하면 누군가에게 겪하게 화를 내지 않는 편인데, 그렇게 화를 내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자꾸 업무 시간은 길어졌다.


그리고 몸이 자꾸 아팠다. 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올해 여름 무릎 부상이라는 큰 부상을 두 번 겪었고, 꽤 오랫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제대로 걷거나 앉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그 부상 부위 자체는 제법 아물었지만, 이젠 온 몸의 관절이 다 아프고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늘, 매일 그런 건 아니고 어떤 날은 손목이고, 어떤 날은 손가락 관절이고, 어떤 날은 골반과 고관절이고, 어떤 날은 발목이었다. 가끔 하나가 아니라 둘이 겹치면 좀 심하게 힘들었다. 가령 뜬금없이 왼쪽 발목이 아픈 어느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부상당했던 오른쪽 무릎이 상태가 안 좋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이게 이사간 집 덕분에 아주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가끔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어느 주말, 정말 배가 고팠지만 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나도 무섭고 힘들어 그냥 배고픔을 참고 견딜 정도였다. 택시를 타고 오르면 순간적으로 몸이 뒤로 누으며, 택시 기사님이 깜짝 놀랄 만큼의 길고 높은 급경사. 애들이 오는 날, 아이들 손을 붙들고 그 길을 오르면 애들이 숨을 헐떡 거리며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그런 언덕이었다.


반지하였던 이전 집에는 자주 놀러와서 같이 술도 마시고, 책도 마음껏 보던 친한 친구가 이 집에 한 두번 자고 간 이후로 웬만해선 오지 않길래 물었더니, 그 언덕이 너무 무서워서 오기 싫다는 것이다.


무릎을 다치기 전엔 이렇게 무섭고 힘들지 않았다. 그게 다 운동이고 체력 단련이라 여겼고, 오히려 좋아했고 또 고마워했다. 일부러 산에 가지 않아도 매일 야트막한 뒷동산을 등산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입장이 달라지니 그게 그렇게 힘들고 무서웠다.


그때부터 느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일도, 내 몸도, 내 마음도 자꾸 꼬였고, 추락해갔다. 자신감을 잃었고, 쾌활함을 잃었고, 생기를 잃었다. 집중력을 잃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상은 자꾸만 내게 일을 쏟아부었다. 끊임없이 주어진 무언가를 해야했고, 어떻게든 무리를 해서라도 완수해야만 했다. 그 삶이, 그 일상이, 그 과정이, 그 고단함이 너무 힘들고 싫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평일엔 어떻게든 버텼지만, 주말엔 완전히 무너졌다. 특히 아이들이 다녀간 이후, 대개 일요일 저녁이 그랬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보내던 어느 주말, 어지간해선 절대 전화가 오지 않던 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파서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즈음 유난히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왜 이렇게 목소리 듣기가 어렵냐고 여러번 전화를 받았던 걸 기억했다. 무심한 불효자를 향한 엄마의 짝사랑은 언제나 아들을 죄스럽게 만들고 또 위축시킨다. 동생에게 들으니 다행히 아직은 크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엄마와 아버지는 혹여나 멀리 있는 아들이 걱정이라도 할까봐, 아프다는 사실도, 입원했다는 사실도 모두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마음이 아들이 자주 연락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는 걸 혹시 아실까? 자주 연락하면 힘든 마음을 들킬까봐,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이 마음이 무너져버릴까봐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면 혹시 이해하실까?


혼자 많은 일을 겨우 겨우 꾸려가다가 작년부터 일터에 동료가 생겼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일을 잘 해줘서 아주 든든하게 생각해왔다. 익숙하지 않을 이 일에 점점 적응해가며 서로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좋은 동료가 되리라고 기대했건만, 그는 갑자기 건강진단을 통해 큰 문제를 발견했고, 큰 수술을 받았고, 병가를 냈고, 조금 회복된 것처럼 보여 돌아오려 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계속 회복이 더뎠고, 반상근으로 억지로 맡은 일을 일부라도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도저히 몸이 안 좋아서 안되겠다고,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다른 이유라면 백 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지만, 몸이 아파서 도저히 못 나오겠다고 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 결정을 내리고, 그 말을 내게 꺼내기까지 아마 오래 고민하고,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 결정을 존중할 수 밖에.


할 수 있다! (제발!)


지금 나는 매일, 아니 매 순간 극도의 무기력증과 자기 혐오와 싸우고 있다. 그냥 이대로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당장 해야할 일을 떠올리며, 만나야 할 누군가를 떠올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간신히 이 세상에 발을 걸쳐두고 살고 있다.


그나마 긴 시간 무리하며 살아온 습관이 평소 억지로라도, 기계적으로라도 일상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게 만들어, 가끔은 이렇게만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밤새 불면에 시달리다가 겨우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나, 몇 번이나 자기 혐오를 달래고, 무기력증을 몰아내고 나가 설명회에 다녀왔다. 그렇게 가기 싫었고, 하기 싫었고, 자신 없었던 설명회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술술 잘 나왔다. 막힘없이 설명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기계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 나인가,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아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무기력한 것이 나인가 헷갈렸다.


그리고 억지로 자신을 달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지금껏 이만큼 해왔잖아. 분명 할 수 있을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 하지만 그 감언이설 뒤에 또 다른 나는 그럼에도 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늘 무언가 부족했던 경험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할 수 있어. 딱 고만큼. 할 수는 있을거야. 간신히.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지만 말야. 


음악으로 버티자


가장 힘든 시기였던 최근 몇 년을 버틴 것은 순전히 음악 덕분이었다. 한때 정말 열심히 들었던 (거의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었던) 중국 아이돌 SING女團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중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몇몇 곡들은 발음만이라면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들었다. 워낙 많이 들어서 요즘은 조금 시선을 돌려 다른 중국 노래들을 닥치는 대로 듣고 있다. 영화 음악, 옛날 노래, 요즘 노래, 슬픈 노래, 신나는 노래 등등. 


최근 우연히 발견한 노래는 정말 오랜만에 들었던 곡이다. 92년 이었던가, 당시 길에서 산 해적판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싱가폴 가수 마이쥬라(Maizurah Hamzah)의 [Wrong girl]과 [Doctor's Order]를 유튜브를 통해 마주쳤고, 그 두 곡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그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당시의 어떤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당시의 어떤 하늘과 어떤 바람과 그 바람에 살짝 흩날리던 어떤 이의 머리칼과 그의 높고 밝은 웃음 소리와 수줍어 어쩔줄 몰라하던 내 마음까지 다 떠올랐다.


오늘 아침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Doctor's Order] 노래의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 같았다. 이 끝없는 나락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이 극도의 무기력증을 몰아내 줄, 이 바닥난 자존감을 회복시켜 줄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말이다.


실험


최근 실험을 하고 있다. 일단 담배. 이건 일부러 끊으려고 노력한다기 보다는 지금은 어떤 이유로 별로 땡기지 않아서 당분간 안 피고 있는 상태인데, 이게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서 나로서도 의외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상황이다. 예전엔 친한 이가 담배 한 대 피우자고 부르면 별로 안 땡겨도 그냥 따라가서 한 대 피우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안 내킨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두번째는 술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을 요즘은 많이 (매일 마시던 거에 비하면) 줄였다. 이건 일부러 일정 시간 동안 술을 줄이는 변화를 주자는 생각 때문이다. 꽤 긴 시간 술독에 빠져 살았으니, 잠시라도 그 술독을 벗어나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뭔가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을테니. 근데 신기한 것이 그렇게 일부러 줄이고 나니 확실히 술도 예전보다 덜 땡겼다.


마지막은 게을러지기 혹은 앞 뒤 재지 말고 일단 마음가는 대로 해보기이다. 이건 사실 청소년 시기부터 주위 사람들과 다른,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태도이긴 한데, 어느 시기부터 이런 태도가 좀 부족한, 그러니까 너무 남들처럼 혹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선에서 살아가려고 애쓴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태도가 일반적으로는 좋은 선택일 수 없을텐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 번 해보련다. 아무리 할일이 많이 밀려 있어도 이렇게 길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런 글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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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0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0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8-11-20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이겠지요. 너무 애쓰시지 말고, 무리하시지 말고, 천천히 올라오시길요.

감은빛 2018-12-07 11:01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슬럼프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나 언제든 이런 시기를 겪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 기간이 너무 길고, 그 추락 폭이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래도 북극곰님 말씀 덕분에 힘내보겠습니다.

카스피 2018-11-2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겨울이 다가오니 더 처지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지치과 힘드시러다도 좀더 기운내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8-12-07 11:04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네, 겨울이라 추위 때문에 그런 것도 분명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긴 침체기의 시작은 아직 추워지기 전이었어요.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었네요.

카스피님 말씀 덕분에 기운을 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