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내 친척이나, 친구나 지인이 아니라 애들 엄마의 친척, 친구, 지인이다. 어느때인가, 어디에선가 잠깐씩만 만났던 인연이라 이름은 물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난 원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난치병, 아니 불치병에 걸린 터라, 내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몇몇 이들은 얼굴이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까지 기억해내진 못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구나 기억해냈다. 이건 내 입장에선 기적에 가깝다.

어떤이들은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럼 나도 머리를 굴리며 일단 아는 체를 한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역시 확실하게 언제, 어디서 만난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맞이하는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한다면 제대로 해내길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나는 직업 정치인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지역구 어느 의원은 단 한 번 만난 이도 잘 기억해내더라.

나 같은 이는 장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잘 기억해서 자주 주문한 메뉴라던가, 취향을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텐데, 얼굴도 기억 못 할테니까.

최근 마을 활동가, 도시재생 활동가들을 자주 마주친다. 상대방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분명 낯익은 얼굴인데, 누군지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시 알게 될 계기가 생길테고, 일부는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잊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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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모르는데, 얼굴만 봐도 누군지 기억할 때가 있어요. 정말 신기해요.

순오기 2017-06-04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난 사람을 잘 기억하는 것도 재능이라 생각해요~^^
 

하나


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불광천을 걸었다. 햇빛도 쬐고, 꽃도 보고, 애들과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고, 철봉에 매달려 운동도 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아이들과 신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한참 걷다가 완전 기분을 망치는 일이 생겼다. 안철수 후보 선거운동 차량이 다리 중간에 주차하고 불광천을 즐기는 시민들을 향해 마이크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뭔가 떠들어대는데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서 무척 시끄러웠다. 듣기 싫은 목소리, 듣기 싫은 말투,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저 안철수 이름만 반복하는 상투적인 유세였다. 무척 거슬렸지만 그저 꾹 참고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바로 불평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어떡하냐?", "왜 하필 불광천에서 난리냐?", "소중한 불광천을 돌려달라!", "행복한 휴일 보내라면서 자기가 우리 행복한 휴일을 망치고 있는 것도 모르다니 바보인가보다"


큰 아이가 불평하는건 당연하다 싶었는데, 작은 아이도 또박또박 불만을 제기하는 걸 보니 신기하고도 대견했다. 특히 불광천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오히려 피해를 주는 거라는 내용의 불만이 작은 아이의 입에서 나와서 어느새 아이가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다리 중간에 저렇게 차를 대놓고 선거유세를 하는 건 불법이 아닌가? 선거운동 차량이라 괜찮은 건가? 지나는 행인들이 소음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듯 했다. 마이크를 쥔 이가 연설을 하다가 간혹 작게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안철수 후보를 찬양하던 아저씨가 녹색이 자연의 색이니, 녹색을 찍어달라고 했다. 확 열이 올랐다. 남의 당 색깔을 맘대로 쓰면서 자연의 색 운운하다니! 그들이 단 하나라도 자연을 위하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았다면 이렇게 우습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안철수 후보 선거 벽보를 보는 순간, 이건 혹시 우리 벽보를 보고 베낀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3년 전 갑자기 다니던 출판사에서 해고당하고, 곧바로 결합해서 활동했던 선본에서 많은 고심 끝에 만들었던 벽보와 무척 유사한 컨셉이었다. 천편일률적인 선거벽보 디자인을 벗어나 확 눈에 띄는 벽보를 만들어 지역에서 꽤 인정받았던 벽보였다.



당시 벽보 이미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자료를 백업 받아두었던 외장하드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만 그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역 당원 중에 한 명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안철수 선본이 우리 벽보를 베낀 거 같다고 당시 공보물 표지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위 사진은 그 당원이 올려준 선거공보물 표지) 그 글을 많은 동네 주민들이 공감하고, 댓글도 달아주었는데, 같은 생각을 했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또 베꼈다고 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보기에 기본이 되지 못한 후보가 비슷한 컨셉을 써서 기분이 나쁠 뿐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당 색깔까지 비슷해서 더 기분이 나쁠 뿐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선본은 명심하시길. 초록색은 녹색당이 2011년 가을 발기인대회를 할 당시부터 사용한 당 색깔이며, 양손을 치켜든 벽보 컨셉은 2014년 선거에서 녹색당 선본에서 먼저 사용했음을.



엊그제는 새벽에 미군과 경찰이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반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대선을 치루기 전인 대행체제에서 기습적 사드 배치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게다가 연로한 어르신들과 원불교 성직자들이 대부분인 소수의 항의를 8천여명의 병력으로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많은 주민들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주민들의 차량을 파손했다. 이것만으로도 하루종일 화가 났는데,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 때문에 거의 미칠 뻔 했다. 항의하며 울부짓는 어르신들을 비웃으며 영상을 찍고 있는 미군 얼굴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미개한 식민지 원주민들이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이는 걸까? 뭐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건 법적 사실을 아닐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도 없는 이 시국에 기습적으로 작전을 펼치고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


녹색당에서 낸 규탄 성명을 보니 지난 20일 해당 부지를 주한미군에 공여했다는데, 그걸 결정한 주체는 또 누군가? 게다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장비를 반입하다니! 아직 설계도 다 끝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데, 주민 동의도 없이 불법적으로 장비를 들이다니! 이게 나라인가? 이 꼴을 보려고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가?


새벽 기습 작전 소식을 듣고 바로 떠오른 것은 2006년 5월 4일 새벽 5시에 있었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다. 이날 동원된 인원은 경찰 110개 중대 1만1500명, 수도군단·700특공연대 2개 연대 2800여 명, 용역업체 직원 600명이었다. 당시 군인들의 진압 장면은 80년 광주항쟁을 다시 보는 것처럼 무지비하고 잔인했다. 역시 페이스북에는 그날 대추리 진압 장면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역시 그날을 떠올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집에 티비가 없고, 보면 왠지 열만 받을 것 같아서 단 한번도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본 적이 없다. 엊그제 저녁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가 잘못된 발언을 했나보다. 소성리 사드 배치 문제로 가득했던 내 타임라인이 갑자기 성소수자 이슈로 싹 바뀌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바쁜 일정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열었던 페이스북에서 활동가들의 연행 소식을 보았다.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었고, 그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대선후보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연행이라니! 


더 황당한 일은 문재인 후보를 감싸고 도는 사람들의 태도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그 사람을 옹호하는 것은 올바른 지지자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소위 '빠'라고 부른다. 박근혜를 옹호하기 위해 태극기 집회를 열었던 분별없는 사람들과 지금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의 행동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어제 녹색당사는 하루종일 문재인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나 문재인 지지자들이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을 써가며 성소수자 활동가들과 녹색당을 비난했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의사 표현이 아닌 자신이 믿고 있는 후보에 대한 감정에 휘둘린 비난이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평소 좋아했던 혹은 공감하는 의견을 많이 냈던 몇몇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문재인 후보가 잘못된 표현을 한 것은 맞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니다." 혹은 "홍준표에게 말려서 그렇게 되었을 뿐,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등의 의견을 냈다. 


어쩌다 읽은 댓글을 보고 또 충격을 받았다. "왜 홍준표에게는 항의하지 않고, 문재인만 문제삼냐?"는 얘기였다. '돼지발정제'로 강간을 모의했다는 홍준표와 문재인을 같은 급으로 취급하라는 건가? 홍준표 후보에게(후보라고 붙이고 싶지도 않지만) 항의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녹색당은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이에게는 아예 후보 사퇴를 하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 사진에 나온 이들은 모두 인권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후보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매우 중요한 이력으로 내세우고 있고, 그를 향해 무지개 깃발을 들고 가는 장서연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는 인권변호사다. 그는 다음 순간 경호인력들에게 저지당했고, 이후 연행되었다. 두 사람은 인권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 명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발언했고, 또 한 사람은 그 발언에 항의하고 사과를 받기 위해 행동했다가 연행당했다.


인권 활동가들이 문재인 후보의 멱살을 잡았다는 가짜 뉴스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데, 우리가 이명박과 박근혜와 싸우며 그들이 끊임없이 유포했던 가짜 뉴스들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누구도 존재를 반대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니! 또 성소수자 차별에는 반대한다면서 동성혼 합법화에는 반대한다니! 설마 이게 모순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변호사 출신 유력 대선후보가 저 단순한 모순도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이번 대선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했건만,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은 이런 선거는 재미가 없다. 여전히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정당은 전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선거이고, 원내에 진입했지만, 의석이 많지 않은 소수 정당도 차별받는 선거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만큼 이번 선거에서는 소위 말하는 '사표 심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뿐이다.


많은 이들이 후보들을 평하고, 정책을 논했지만, 내 기준에는 그닥 와닿는 이야기가 없었다. 뭔가 말을 더 보내는 것은 내 입만 아플 뿐, 현재의 이 답답한 시국을 바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저 위에 쓴 것처럼 안철수 후보의 벽보에 대해서만 개인적인 푸념을 늘어놓았을 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도 하지 않고, 반대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습적인 불법 사드 배치와 돼지발정제 강간모의와 동성애 반대 발언과 활동가 연행 사건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진심을 다해 이 국면에 대해 고민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음을 지적해야겠다. 


마치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소한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대와는 다를 거라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나는 본다. 아마 다르긴 하겠지.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노무현 정권이 친 삼성 정권이었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고(그 과정에서 김선일씨의 죽음을 방조했고), 새만금 갯벌과 금정산, 천성산을 파괴했고, 핵폐기장을 짓겠다고 부안을 무법천지로 만들었고, 한미FTA를 추진해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했고(그 과정에서 국민적 반대운동을 무력 진압했고, 허세욱 열사가 분신하게 만들었고), 농민대회에서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을 살해했고, 평택에 미군기지를 짓겠다고 저 위에 언급한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펼쳤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섯


내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용민이라는 사람이다.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가 오래전 막말 방송을 했음이 밝혀졌을 때, 이미 인권의식과 성평등 의식이 없으며, 그저 말로만 진보를 내세울 뿐인 정치인이라고 여겼는데, 아래 글을 보니 그 스스로가 본인이 말하는 입진보임을 깨닫지 못하는 구나. 그것 밖에 안되는 인간이구나 싶다.





혹시 나를 입진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내가 지난 십수년간 여러 투쟁현장에서 함께 싸웠음을, 입만 열면 수구 꼴통 세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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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인수위 준비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해야돼서 누가 되든 간에 임기 시작부터 혼선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대통령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세력도 있을 겁니다.

2017-04-28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길에서 김밥 먹기


오전에 편도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곳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점심시간 직후 4월 초에 있을 탈핵 행사 준비를 위한 현장답사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급하게 나오는데,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선배 한 분이 나를 붙잡는다. 나는 시계를 보며 마음이 급했지만, 차마 그 분의 말씀을 끊을 수 없어서 1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빠른 편이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편이라 그 분이 말씀하실 때에는 맥락을 잘 살피며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와르르 쏟아내듯 말씀하신 내용들을 들으며 적절한 반응일거라 여기며 대꾸했다. 마음은 계속 늦었다는 사실에 머물러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손목시계로 향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그 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10여분이 참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 분과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을 탔다. 돌아가는 시간도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약속시간과 이동시간을 고려하니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벌써부터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약속 장소 근처에서 김밥이나 라면이나 잔치국수나 뭔가 금방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럴만한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는 시간도 돌아오는 시간도 무척 지겨웠다. 하필 이어폰을 놓고 나와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최근 바쁜 일정에 쫓겨 페이스북을 거의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왕복 3시간 이동하면서 계속 페북만 들여다봤다.


마침내 약속장소 근처에서 시계를 보니 5분 가량 여유가 있었다. 어디라도 식당에 앉을 시간이 안 될 듯 했다. 김밥 한 줄을 사서 걸어가면서 먹었다. 하필 걸어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세 명이나 만났다. 다들 김밥을 손에 들고 먹으며 걷는 나에게 "왜 길에서 먹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김밥을 씹으며,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을 세 번 듣고, 같은 답을 세 번 해야 했다. 아마 곧 동네에 소문이 날 지도 모르겠다. 저 양반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길에서 김밥을 먹으며 다닐 정도로 바쁘다고.


공원에서 김밥 먹기


이주일쯤 전에는 소공원 벤치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오전에 한 서너군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분이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기다리다가 밥 시간을 놓쳤다. 그 분은 점심시간 직후에 연락이 닿아 만났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무척 배가 고팠다. 근처에서 뭔가를 먹고 가고 싶은데,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배는 고팠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김밥 파는 가게를 하나 찾았는데, 앉을 자리가 아예 없는 포장 판매만을 하는 가게였다. 즉 테이크아웃 전문점인 셈이다. 그 가게 외에는 달리 식당을 찾기 어려워 일단 김밥 한 줄을 샀는데, 길에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소공원이 있어서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아무리 먹을 곳이 없어도 찻길 근처에서 자동차 매연과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뭔가를 먹고 싶지 않았건만, 그 소공원은 크기가 작아서 도로의 매연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적당히 안쪽에 사람이 없는 벤치를 골라 앉아 김밥을 먹었다. 아, 그런데 내가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공원을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유독 내 주위를 자주 스쳐가는 느낌, 그 어르신들이 유독 나를 쳐다보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여기가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공원도 아니고, 점심시간이 좀 지난 오후에 여기서 홀로 불쌍하게 물도 없이 김밥을 씹고 있는 젊은이(어르신들 기준에서)를 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모르게 씹는 속도가 빨라지고, 순식간에 김밥 한 줄을 뱃속으로 몰아넣고, 자리를 일어섰다. 시간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김밥 한 줄을 먹는 시간으로는 신기록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 옛날 새만금 방조제에 기습 침투했던 날, 꼬박 스무 시간 가까이 굶었다가 나오자마자 김밥 열 줄 이상을 흡입했던 날의 기록은 깨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사실 어렸을 때 소풍가는 날을 제외하면 김밥은 그리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다. 어렸을 때 소풍 때에도 소풍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김밥도 좋았던 것이거나,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일년에 한 두 번 소풍가는 날에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지, 김밥 자체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비교적 싼 가격에,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 찾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비교적 싱겁게 먹는 입맛 탓에 모든 김밥은 내게 너무 짜다. 김밥을 바로 말아서 싸는 집에서 주문할 경우에는 단무지를 빼달라고 주문하지만, 미리 싸서 은박지에 포장까지 되어 있는 김밥을 받아나오는 경우에는 어쩔수 없이 단무지만 빼고 먹는다. 그래도 내겐 짠 음식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밥은 잘 먹고 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작년 여름 혼자 살게 된 이후 주변에서 지인들이 걱정어린 시선으로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가끔 밥을 사주거나, 술을 사주거나 한다. 뭐 나라고 잘 먹고 싶지 않겠나? 바빠서 잘 못 챙겨 먹거나, 입맛이 없거나, 배는 고프지만 딱히 먹고 싶은게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라 대충 때울 수 밖에 없는 날이 많다.


그놈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대충 때우는 날이 많을 것이다. 가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한 몸 사는 데는 그리 큰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가끔 이런저런 비정기적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고, 가끔 강연을 나가서 강사료를 받고, 가끔 외주 교정일을 해서 교정비를 받고, 가끔은 몸을 써서 일을 하기도 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 양육비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매일 출근해야 양육비를 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은 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들 먹이려고 하는 일인 것 같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먹고 사는 일은 참 어렵고 구차하다. 그러나 오늘도 또 내일도 그 어렵고 구차한 일을 이어가야 한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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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7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31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 입대하기 전에 새벽에 알바를 한 적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 식사를 일찍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김밥을 많이 먹었어요. 일하기 전에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을 김밥 서너 줄 사옵니다. 계속 먹게 되니까 김밥이 짜게 느껴졌어요.

감은빛 2017-04-27 17:26   좋아요 0 | URL
사먹는 김밥은 대체로 밥의 양에 비해,
안에 들어간 재료가 많아 짠 편이죠.
저는 오래전부터 남들보다 싱겁게 먹는 편이라,
김밥을 사면 백 프로 짜다고 느낍니다.
예전엔 짠 것을 참으며 그냥 먹었는데,
요즘은 단무지를 빼고 먹어요.
그자리에서 바로 김밥을 싸주는 집은 단무지를 빼달라고 하는데,
그런 요청을 받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아서 귀찮기도 하더라구요.

한 달 늦은 답글이네요.
시루스님, 잘 지내시죠?
 


악력을 길러라


조합원들에게 소책자와 출자증서 등을 담은 우편물을 발송했다. 주소 확인이 되지않은 분들을 제외하고 대략 230여명에게 보낼 우편물을 준비했다. 새 도로명주소와 바뀐 우편번호 때문에 일이 훨씬 많아졌다. 주소를 싹 정리해서 라벨용지를 출력하고, 일일이 봉투에 붙이고, 사람 이름을 찾아서 출자증서를 비롯한 서류들과 소책자를 담았다. 그리고 풀칠 시작. 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이런 대량 발송에 익숙하다. 십여개의 봉투를 잘 배열해 한번에 풀칠하는 기술은 신입활동가였던 15년 전에 익혔다. 그간 몇몇 분들이 내가 풀칠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예전에 우체국에서 내가 속한 자치구와 그 외 지역으로 우편물을 분류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을 기억해서 각각 나눠 담고 갯수를 세었다. 근처에서 자주 만나기에 굳이 우편으로 보낼 필요가 없는 분들 우편물은 따로 빼놓고, 총 200여개의 우편물을 박스에 담고 출발했다. 서둘렀는데도 우체국 마감 시간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박스 하나와 큰 종이봉투 하나를 한번에 들어올리는데,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작년까지 여러차례 혼자 끙끙대며 우편물을 들고 가느라 힘들고, 시간도 오래걸렸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택시를 타리라 마음 먹었다. 무게도 무겁고, 급하기도 했다.


건물을 나서서 몇 걸음만 걸으면 지하철 역 앞에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뒤뚱뒤뚱 뛰듯이 걸어갔는데, 한 대 남아있던 택시를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눈 앞에서 타버렸다. 허탈한 마음에 박스를 잠시 내려놓았는데, 박스가 찢어지면서 우편물이 쏟아지려 했다. 황급히 한쪽 발로 찢어진 부위를 받치고, 빈 택시를 찾았는데 없다. 평소 몇 대씩이나 기다리던 택시가 왜 하필 이 급한 시간에는 없는 거냐! 시계를 보고 도로를 살피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있는데, 마침 저쪽에서 빈 택시 한 대가 좌회전해서 다가왔다. 우편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서 박스를 싣고 택시를 탔다. 


우체국은 큰 사거리 하나만 지나면 있다. 평소 걸음으로는 7~8분이면 가고, 작년에 이번보다 더 무거운 우편물을 들고 갔을 때는 중간에 몇 차례 쉬어가느라 거의 30분이 걸렸다. 택시를 탄 시간이 대략 47분. 중간에 신호 대기했다가 택시에서 내린 시간이 52분이었다. 이제 우체국이 그리 멀지 않은데, 찢어진 박스와 역시 찢어지려는 큰 종이가방을 겹쳐 들고 걷는데, 자꾸만 짐이 쏟아지려 한다. 급한 마음에 뛰려는데, 짐이 있으니 마음처럼 뛰어지지 않는다. 간신히 56분에 우체국 도착.


예전에는 스티커를 받아서 일일이 붙였는데, 요즘은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라. 직원분께 말씀드려 도장을 받아서 찍기 시작했다. 이것도 몇 년째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빠른 속도로 도장을 찍어나갔다. 6시 1분에 우편물을 접수하고 결제를 했다. 진짜 짧은 시간 안에 급하게 일을 마쳤다. 풀칠의 달인이자 도장찍기의 달인이 안 되었다면 시간 안에 보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정문 셔터를 내려서 뒷문으로 나오는데, 목덜미와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아까 택시에서 내려 우체국까지 올 때 짐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왜 자꾸 흘러내리려 했을까를 생각했다. 무겁긴 했지만, 그 정도 거리를 옮기지 못할 무게는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데, 가만 되짚어 보니 악력이 모자라서 짐을 붙들고 있는 손가락이 자꾸 풀어지려 했던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봄과 가을에 두 번 우편물 보낼 때마다, 팔은 괜찮은데,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에 힘이 풀려 자꾸만 박스를 놓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박스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몇 차례 쉬어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아마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팔힘이 좋아봐야 짐을 들고 멀리 이동하는데는 별로 소용이 없구나. 악력을 길러야 짐을 들고 이동할 때 쓸모가 있구나. 무거운 짐을 순간적으로 들어올리거나, 들고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젊은 시절이긴 하지만 쌀 배달도 해봤고, 공사장에서 막노동 할 때 등짐을 지거나, 시멘트 포대 등 무거운 걸 옮기는 일도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손 힘이 부족해서 짐을 놓칠뻔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악력이 많이 약해졌거나, 그때보다 훨씬 장거리 이동이라 그 시간을 버티기에 악력이 부족하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 암튼 이제부터 악력을 좀 길러야겠다.


몸매 자랑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먹는 양과 횟수를 줄였다. 식사는 거의 하루 1끼, 저녁만 먹거나, 저녁에도 밥이 아닌 술과 안주만 먹어서 아예 밥을 안 먹는 날도 많았다. 이상하게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배가 안 고프거나, 밥 먹을 여유도 없이 바쁘거나 했고, 의식적으로 식사 시간을 늦춰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이 되도록 먹기도 했다. 즉 일부러 굶은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덜 먹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연말에 특정 기간을 제외하면 평소 술 약속을 별로 잡지 않아서,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는 횟수도 확 줄였다. 물론 밖에서 먹는 술자리는 확 줄였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혹은 혼자 마시기는 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마셨던 예전에 비해서는 술 마시는 횟수가 줄었다.


최근 전신거울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몸매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사라지지 않던, 아랫배와 옆구리에 살짝 잡히던 군살이 이젠 거의 사라졌다. 전에는 배에 힘을 줘야 간신히 윤곽이 드러나던 복근이 이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윤곽이 보인다. 그런데 그 겨울동안 사실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한창 운동했던 때에 비하면 거의 안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날이 춥고 몸 움직이기 귀찮고, 거의 바깥 온도와 비슷한 (그래서 새벽에 타일위에 얼음이 얼어있기도 한) 화장실에서 샤워까지 하기가 싫어서 일부러 땀을 많이 안 흘리기도 했다. 물론 화장실이 그렇게 춥기 때문에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을 좀 움직여서 체온을 올려놓아야한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잠깐씩 딱 몸이 더워지기 시작할 정도로만 운동을 했다. 본격적인 온동까지는 가지 않고, 준비운동 정도만 했다는 의미다.


암튼 이로써 식사량을 줄이고, 술을 줄여야 복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분명 20대의 나는 식사량을 줄이지 않고, 술도 줄이지 않고 복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5년쯤 전에 다시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식이요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예전에 많이 먹으면서도 복근을 유지했던 기억 때문에 식사량 조절 같은 건, 필요없다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술도 매일 같이 마셔도 복근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간 꾸준히 운동을 해서 뱃살의 상당부분을 줄이고 허리 사이즈를 줄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아랫배와 옆구리에 살짝씩 잡히는 군살은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았었는데, 며칠 전에야 비로소 군살 없이 가벼운 몸이 되었다. 운동은 별로 하지 않고, 순전히 술과 밥을 덜 먹어서 만든 몸매이니, 내 생각과는 완전 반대로 만들어진 결과다.


이제 봄부터 초여름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면 좀 더 선명한 복근을 만들 수 있겠지. 비로소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어느정도는 실현한 것 같다. 날이 좀 풀리면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


인터뷰


며칠 전 방송대학티비 촬영팀과 인터뷰를 했다. 어느 선배에게 소개 받았다며, 내 본명이 아닌 감은빛 국장님을 찾는 전화를 받은 건 지난 주였다. 그 선배가 당시 내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고, 평소 페이스북으로 자주 접하던 내 덧이름을 알려줬구나 싶었다. 암튼 인터뷰를 요청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날짜를 정했다.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보니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간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공중파를 비롯해서 몇몇 채널에서 촬영을 해갔기 때문에 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굉장히 가볍게 생각하고 피디님과 촬영팀을 만났는데, 이 팀은 그간 만나왔던 다른 촬영팀과 달리 준비를 많이 하더라. 나는 발전소 주변을 비롯해서 그냥 실내 공간에서 촬영할 거라 여기고 따로 미팅 장소를 예약해놓지도 않았는데, 담당 피디는 계속 닫힌 공간을 찾더라. 짧게 쓰면 되겠지란 생각에 예약도 하지 않은 빈 회의실 하나를 찾아 들어갔는데, 헉! 조명 세팅에만 무려 30분 이상을 쓰더라. 


난 속으로 혹시 누군가 이 회의실을 쓰려고 들어오면 당장 비켜줘야 하는데, 빨리 촬영하고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분들은 계속 그림자의 위치와 농도 등을 따지며, 보조 조명을 하나 더 설치할까 말까, 각도를 조금 옮겨라 말아라, 조명 색을 노란 계통으로 갈지, 분홍이나 파랑 계통으로 갈지 등을 논의하더라. 헐! 방송 인터뷰라는게 이렇게 조명을 공들여 설치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조명 기사님은 혼자 무거운 조명을 몇 개나 가져오셨는지 보조조명까지 해서 여러개의 조명이 나와 주변을 눈부시게 비췄다. 


예전에 짧은 인터뷰 때에는 야외나 복도에서 했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서서 몇 마디 말을 하고 끝냈는데, 이번에는 담당 피디 맞은 편에 앉아서 조명을 받으며 했다. 내가 어떤 설명을 하면서 손동작을 하고 몸을 움직이자, 카메라 기사님이 자세를 바로 잡고, 가능한 한 몸을 틀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그 말을 의식하고 나니 말을 하다가 자꾸 흐름이 끊어지고,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내가 얼마나 손과 몸을 많이 움직이는지 깨달았다. 손과 몸의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나니 말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담당 피디님과 함께 리허설도 짧게 했는데, 오히려 본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말을 더 못한 것 같다.


요즘 부쩍 흰머리 지적도 많이 받고, 피곤해보인다거나 늙어보인단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데, 과연 방송에 내 몰골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아무리 조명을 많이 비추면 뭐하나. 얼굴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게다가 내 목소리도 불만이다. 자주 회의록을 만들기 위해 녹취 파일을 들으며 작업하는데, 내 목소리는 정말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정말 남들이 듣는 내 목소리는 저렇단 말인가? 예전에 내가 사회를 봤던 행사 동영상 파일을 누군가 페이스북에 올렸길래,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이상해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아빠 목소리가 평소 저렇게 들리는 거 맞냐고 했더니 큰 아이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라. 아, 저 싫은 목소리가 내 목소리란 말이지? 난 트리거포인트가 목소리라고 몇 번 글에도 쓰고,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는데, 정작 내 목소리는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슬프다.


사고 픈 책은 많고, 읽은 시간은 적고














작년 연말부터 장바구니에 10여권의 책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계속 주문을 미루고 있다. 당장 사도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다가도 잠시 고민하다가 창을 닫기를 반복한다. 초겨울에 산 책들도 대부분 아직 손도 못 댔다. 연말에 잠시 짬이나서 관심있는 소설책 서너권을 몰아서 읽기는 했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책 읽을 여유는 거의 없다. 집에서는 씻고 뻗거나, 뭔가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고 뻗거나 둘 중 하나다. 사무실과 집의 이동 거리는 책을 읽기는 너무 짧다. 사무실에서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지내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집회를 나가거나 해야 한다.


어쨌거나 읽은 여유는 없는데, 사고 싶은 책은 왜이리 많은지.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보는 순간 바로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미 담겨있는 책들을 다시 살피며 한 두 권을 빼고 어쩌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결제를 하지 않고 또 한번 미룬다. 일단 오늘 구매해도 열흘 가까이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 열흘 후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사서 읽어야지.


3월 초까지는 바빠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3월 초가 지나면 좀 나아지느냐?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또 다른 이유로 계속 바쁘겠지. 혼자라면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좀 여유를 찾고 싶은데, 아이들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언제쯤 좀 여유를 가지려나?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그런 생각이 들면 우울하다! 오늘은 야근 마치고 술 한 잔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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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세상의 모든 지도를 보여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려면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야 하겠지. 아니 말 그대로 모든 지도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겠지. 저자가 모든 지도를 다 알 수도 없을테니.

실제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서양의 지도에 비해 동양의 지도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그래도 몇점을 다루는데, 우리나라는 단 한점 그것도 일본 지도를 베낀 것만 다루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중동 지역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재미있는 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 저 바다 너머의 세상을 상상만으로 그렸던 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런것도 지도인가 싶은 것도 많았다. 단순한 그림인 것 같은데 지도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매머드의 상아에 그렸다는 구석기 인이 만든 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라고 한다. (만약 이걸 지도라고 인정한다면) 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기록한 이탈리아의 벽화 지도도 흥미로웠다. 문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옛날에도 지도를 만들어 남겨두었구나 싶었다.

중세 이탈리아인이 그린 지도에는 일부러 사람을 그려 이슬람 전사들이 군사용으로 정보를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저자가 소개했다. 이슬람 교리에는 인간의 형상물을 보지 못하게 규정했다고 한다. 정말로 당시 이슬람 군인이 이 지도에 그려진 사람 형상 때문에 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런 역사적 사실들은 재미있다.

중반 정도까지는 그야말로 다양한 지도를 볼 수 있어서 진짜 푹 빠져서 봤는데,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기도 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어느 곳을 소개한 지도가 계속 반복 되는 것은 지겨웠다. 세부지도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다양한 세계지도는 한창 지겨울만한 때에 딱 등장해서 다시 흥미를 되살려주었다. 중국은 역시 자기 땅을 딱 중심에 두고 전 세계가 다 작고 길게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걸로 그렸고, 유럽인들은 항상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도를 그렸고, 아프리카 북부와 서아시아 일부까지만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소위 말하는 대항해시대에 해안선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서 침략을 돕기 위해 지도가 사용되고 지도를 그리는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

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닌 좀 다양한 지도를 담은 다른 책도 보고 싶다. 특히 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도 라던가, 유목민들의 지도라던가 이런거 소개한 책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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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도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한번은 동· 서양 지도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

samadhi(眞我) 2017-01-2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지도를 보려면 저자가 아시아 출신이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