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틀 연속 새벽에 깼다. 평소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것과는 반대다. 어제는 새벽 빗소리에 깨서 아침까지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반찬 세 종류와 국 하나를 만들었다. 공부하기 딱 좋은 조용한 새벽이었다가, 꽤나 분주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늦게 깼는데, 조금 쌀쌀한 기운에 눈을 뜬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고 있더라. 몸을 움직이는 게 무지 귀찮았지만, 아이들이 감가에 걸릴까 싶어 억지로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술을 마시다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계획은 아이들을 재우고 난 계속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토요일이었고, 연휴 중 마지막으로 맘껏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일요일은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면, 더군다나 연휴 직후 월요일이라 평소보다 월요병이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니 하루쯤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날인 어제밤은 술을 더 마시고 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은 12시가 다 되되록 잘 생각을 않고, 옷 입히기 스티커로 놀고 있었다. 난 애들을 재우기 위해 불을 끄고 함께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작은 아이가 양쪽 발목을 긁느라 계속 이불을 걷어 찼다. 가엽게도 작은 아이는 유난히 모기에 잘 물린다. 집에서 물린 것인지, 어제 놀러갔던 공원에서 물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몇 번인가 더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주다가 일어났다. 방을 나와 불을 켜니 상 위에 마시던 술과 안주가 그대로 있었다.


배가 고프다거나, 술이 땡기지는 않았지만, 먹던 술과 안주를 버리는 건 아까우니 그냥 먹어버렸다. 빈 그릇을 치우고 설겆이를 했다. 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쌀을 씻어 불려놓고, 아침에 무얼 먹여야 할 지 고민해본다. 어제 아침에 만든 반찬은 세 개 중 하나만 남았다. 뭔가 더 만들어야 할텐데, 냉장고 안에 야채가 없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과 안주거리만 사지 말고, 반찬거리도 사 왔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일요일 아침 근처에서 야채를 살 수 있을까? 동네 슈퍼는 아침에 문을 열겠지만, 늘 야채가 신선하지 않았다.


결국 아침은 계란과 베이컨과 버섯(요건 어제 만든 거)으로 간단히 먹이기로 하고, 컴퓨터를 켰다. 유튜브에서 인도 영화음악 몇 곡을 찾아 듣다가 이 글을 쓴다.


중국어


최근 중국어, 일본어, 힌디어, 스페인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다. 아니 배운다기 보다는 재미로 단어 공부하는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중국어는 거의 20년 전에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에게 배운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생활비를 위해 그렇게 중국어 가르치는 일을 여러 건을 맡아 했는데, 우린 한 6명 규모의 그룹 과외 같은 거였다. 여러 명이 함께 공부를 시작했건만, 금방 다들 그만뒀고, 결국 나 혼자 개인 과외를 받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오빠'라는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나를 '어빠'라고 불렀던 그 아이는 혼자 남은 내가 혹 공부를 그만둘까봐 늘 "발음이 좋다"고 칭찬하곤 했다.


한 몇 달 전쯤 친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곧 다시 교환학생으로 와서 계속 한국에 살았던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취직해서 서울에 있다고 들었다. 술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라. 가물가물한데 결혼할 예정이란 얘기도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같이 얼굴 보자고 친구가 말했건만, 그 친구마저 1년에 한 번 얼굴보기 힘들게 살고 있기에 아마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암튼 20년 만에 다시 중국어를 들여다보니 정말 거의 기억나는 게 없더라. 인사말을 비롯해 몇 개의 자주 쓰는 표현만 남아 있었다. 다만 당시에 그 아이가 성조를 잘 가르쳐줬기에 성조에 대한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났다. 


중국어 공부의 가장 큰 장벽은 역시 한자다. 당시에도 한자 외우기가 너무 힘들어 공부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싶다. 아니 사실 당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당장 배워서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흥미다. 배워서 뭘 할 수 있을만큼 배울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재미있다. 그래서 재미있을 동안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일본어


일본어는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혼자 책 보고 끄적거렸던 게 전부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제일 익숙하다. 아마 영어를 제외하면 단어를 가장 많이 아는 외국어일 것이다. 별 관심이 없었던 일본어를 배우자 마음 먹었던 건, 아마 일본 참가자들과 함께 몽골에 다녀온 이후였다. 일본에선 약 20여명의 참가자 중 대다수가 요코하마 시립대 학생 NGO 소속 학생들이었다. 한국에선 대부분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다수였고, 학생들은 나와 함께 참가했던 우리학교 동아리 후배들이 다였다. 우리 학생들은 한일몽 교류의 밤을 준비했는데, 일본 대표였던 학생과 짧은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전 준비를 했다. 그때 잠시 생각했다. 일본어를 좀 배워뒀다면 영어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라고.


몽골에서의 짧고 강렬한 기억 안에는 일본 학생들과의 다양한 추억들이 있다. 여름 밤 사막에 갔다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추워서 덜덜 떨고 있을 때, 담요로 감싸줬던 여학생을 비롯해 여러 학생들과 교류했는데, 이때도 일본어를 몰라 짧은 영어로만 소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아온 후 일본어를 배워보자 마음 먹었는데,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한자 때문에 중국어가 어렵듯이, 일본어 역시 한자 때문에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공부할 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어느 정도 외웠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이것도 다시 외워야 할 것 같다.


힌디어


인도영화를 처음 접한 건 10년 쯤 전에 문화운동 단체에 있을 때였다. 그때 제법 나이가 많았던 한 선배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각종 연극, 영화, 공연,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인도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다. 인도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얘기했는데, 당시 난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실제로 본 영화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인도영화를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한 건, 우연히 다운받아 본 [가지니]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헐리우드 영화 [메멘토]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가져온 이 영화는 액션과 멜로 두 가지를 반반씩 담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재미있었다. 그 긴 시간동안 그렇게 집중해서 본 영화는 흔치 않았다. 특히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을 완전히 뺐겼고, 그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등장하는 음악과 춤이 매력적이었다.


이후 인도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흔히 '맛살라'라고 부르는 그 춤과 노래 부분은 늘 재미있었다. 언젠가부터 인도영화의 맛살라 장면만을 찾아 보는 재미가 들었을 정도였다. 힌디어을 배우고 싶다 생각한 건 순전히 인도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욕심으로는 자막없이 영화를 볼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독일어 번역을 하는 애들엄마도 자막 없이 독일영화를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는 걸 생각해보면 무리겠지. 언제 흥미를 잃을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고 느끼는 지금은 집중해보고 싶다.


한자도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도 모두 어렵지만, 힌디어를 표기하는 데바나가리 문자를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이 그림이 정말 문자란 말이지? 나 정말 이걸 배울수 있을까? 한 가지 희망은 이 데바나가리 문자가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라서 46자의 글자만 외우면 모든 글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


어제 늦게 잠든 아이들이 슬슬 깨어날 시간이다. 압력밥솥의 추가 팽팽 돌아가며 소리를 낸다. 그래 알았다. 보채지마라. 곧 갈테니.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기 전에 노래 하나 켜놓아야 겠지? 내가 좋아하는 [Doom3]의 한 장면으로 활기차게 일요일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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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6-09-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사시네요!

감은빛 2016-09-19 12:07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하시니 좋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16-09-1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재미로 영어만 공부해도 머리 아플 지경인데 4개 언어를 공부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

감은빛 2016-09-19 12:12   좋아요 0 | URL
글에도 썼듯이 공부라기 보다는 그냥 몇몇 단어와 표현을 익히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고 싶은 언어는 훨씬 더 많아요. 예전에 잠시 배웠던 독일어, 발음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아 시도해 본 적도 없는 프랑스어, 러시아 문자를 익혀야 배울 수 있는 몽골어, 어차피 몽골어 배우려면 러시아 문자를 익힐테니 러시아어도 같이 배우고 싶어요. 욕심이 참 많죠! 이래놓고 뭐 하나도 제대로 못 배울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책 욕심이 많아서 왠만하면 책을 버리거나 팔지 않는다. 지난 번에 이사올 때 밤새 책을 쌌는데도, 반도 못 싼 상황을 보고서야 좀 정신이 들었다. 다시 이사 가기 전에 꼭 책 정리를 해야 겠구나. 함께 이사짐을 날라 주었던 후배도 이 책들 다 쌓아놓고 뭐 할 거냐고, 정리 좀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 책들을 챙겼다. 서른 여섯 권 가량의 책을 담아갔다. 큰 등산가방 하나를 꽉 채우고, 커다란 쇼핑백도 꽉 채웠다.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등산가방을 메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아팠다.


집에서 알라딘 중고서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한 서너정거장 거리인데,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책이 워낙 무거워서 좀 부담스러웠다. 어깨에 맨 가방은 그래도 괜찮은데, 한 손에 든 커다란 쇼핑백 끈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손이 얼얼했다. 한 30여분을 걸어서 도착했더니 땀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책장에 얼룩이 생긴 책 한 권과, 재고가 많아서 받을 수 없는 책 한 권 그리고 아예 받을 수 없는 품목이라는 학술서적 한 권을 다시 돌려받고 나머지 서른 세 권을 팔아서 12만원 가량 현금을 받았다. 두꺼운 책이 많았고, 도감류가 몇 권 있어서 그나마 이 가격이 나왔다. 대부분의 책은 그냥 1천원이었다. 나중에 영수증을 보면서 각 책의 판매가를 보면서 1천원에 팔았던 책들은 차라리 팔지 말걸 하는 후회를 했다.


책을 잔뜩 팔았으니, 좀 사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책을 5권이나 사왔다. 여전히 책장은 넘처난다. 


나를 떠난 책들을 다 정리해보려고 이 글을 시작했으나, 도저히 다 할 자신이 없어진다. 중요한 책들 몇 권만 살펴보자.




 흙의 고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주는 책.

 예전에 잡지에 서평도 썼던 책.

 흥미롭게 열심히 읽었지만,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정리했다.











 이시백 선생의 책은 늘 재밌다.

 작품이 나오면 무조건 보는 작가 중 한 명.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꼬집은 문제작


 재미있게 읽고 신문에 평을 썼던 책이다.

 하지만 이시백 선생 특유의 해학이 조금 덜하다.

 다시 읽을 일이 없을 듯.








 

 청소년 활동가들이 청소년 인권에 대해 쓴 글

 제목이 좀 파격적이다.

 사실 전부 다 읽지는 못했다.

 

 대체로 공감할 내용들이지만,

 간혹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내용도 있다.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책

 특이하게 4개의 출판사가 공동으로 작업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2개 이상의 출판사가 함께 기획해서 낸 책이 또 있으려나?


 다만 취지에 비해 내용은 아쉬움이 많다.

 이것도 역시 예전에 잡지에 서평을 썼던 책.








 

 책에 대한 책은 늘 읽어보려 애쓰는 편이다.

 철학자 이정우의 책 이야기.

 한 10여년 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판매한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팔았다. 이 중 완독을 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아예 안 읽은 책도 거의 없다. 대부분 발췌독을 했고, 몇몇 책들은 2번 이상 읽은 책도 있다. 도감류 몇 권을 팔았는데,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평생 열어볼 일이 없을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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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6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9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1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이 많아 팔고 싶은데... 다음에 또 읽겠지. 글쓰려면 참고해야지 하면서 잔뜩 모으기만 하고 있습니다. 아.. 미련한 저의 모습이 미울때도 있습니다.

감은빛 2016-09-19 12:14   좋아요 0 | URL
제가 늘 그랬어요. 언젠가는 다시 볼거야.
이런저런 글을 쓰려면 이 책이 참고자료가 될 거야 등의 이유로
늘 책을 쌓아놓기만 했거든요.

이번에는 꼭 책정리를 좀 해야지 생각하면서 찾아보니,
10년 넘게 한 번도 안 펼쳐본 책도 많더라구요.

아무개 2016-09-1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지인의 집에서 `도대체 책이란게 무얼까?`라고 자문해보게 됭닜어요. 제 책장엔 100권남짓의 책있고 그중 30여권의 책은 안읽거나 못읽은 책들인데 쉽게 처분을 못하는 저를 보면 좀 한심하기도 하고요. 에휴. . 책이 뭔지. . .

감은빛 2016-09-19 12:16   좋아요 0 | URL
아니 책이 100권 남짓 밖에 없단 말씀인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책을 30여권 팔고 나서 며칠동안 다시 10권 가까이 책을 샀어요. ㅠㅠ

제 책장은 책이 몇 권쯤 있을까요?
언제 한번 세어보고 싶네요.
 

마감 후 3일째 쓴 칼럼


칼럼 형식의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은 것은 아마 마감 5일 전이었다. 하지만 난 신문 편집위원이기 때문에 실제 신문 마감이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 실제 마감일로 따지면 8일 전에 원고청탁을 받았다. 내 활동과 관련 있는 분야이고, 최근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기 때문에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5일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3일은 원고청탁 자체를 잊었다. 그러니까 청탁받은 마감일 바로 전날인, 4일째 되는 날에야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시작했다. 각종 언론 기사를 찾아보고 주요 기사들을 갈무리 해두고, 내가 취할 태도를 명확하게 그리며, 글의 얼개를 대략 짜놓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청탁받았던 마감일에 글을 써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기가 너무 싫었다. 집에선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고, 글을 쓰려고 사무실에 나가기도 너무 귀찮았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써야지 생각했는데, 월요일이라 또 무지 바빴다. 그렇게 마감을 하루 지나도 글을 시작도 못했고, 화요일에 편집장님과 통화하면서 신문 원고를 최종마감하는 수요일에 글을 써서 신문사로 가겠다고 했다. 마감 교정을 함께 보기 위해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그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칼럼은 생각보다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분량 조절하느라 좀 애를 먹었다. 해야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 더 많았는데, 도무지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앞에 도입부를 좀 줄이고 넣어야 할텐데, 난 도입부가 마음에 들어 더 줄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뒷부분을 대부분 축약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편집회의에서 지적을 받았다. 글의 중간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뒷부분의 흐름이 끊겨서 무척 어색했다는 이야기였다.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글을 잘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강의 당일 만든 강의자료


강의 요청을 받았던 건, 아마 1달 반 전이었던 듯하다. 비슷한 강의를 몇 번 해봐서 기존에 있는 강의자료를 조금 수정하면 되리라 여겼다. 이후 그쪽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원하는 강의 내용을 적어서 보냈는데, 큰 틀에서는 같은 내용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강의자료를 좀 더 꼼꼼하게 손을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을 때부터 조금씩 고쳐놓거나, 내용 준비를 해뒀어야 했는데, 그러고 1달 넘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바로 강의 직전에야 강의자료 생각이 났다. 이틀 전에 파일을 열어서 추가할 내용을 간략하게 메모하고, 슬라이드 순서를 수정하는 등 1차 작업은 해뒀다. 하루 전에 작업해서 완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하루 전에는 손 댈 여유가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을 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당일 낮에 작업해서 저녁에 가져가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중요한 업무들을 해놓고, 오후 3시쯤부터 강의자료를 만들었다. 요청했던 내용을 다시 꼼꼼히 보니, 생각보다 손을 많이 봐야할 상황이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굳이 자료에 안 넣어도 말로 풀어서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전체적은 흐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혹시 빠뜨린 이슈는 없는지 하는 부분에 더 신경을 썼다.


도중에 업무 전화를 몇 번 받아야 했고, 옆 사무실 활동가와 일정 조정하느라 잠시 면담도 해야 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자료는 계속 미완성 상태였다. 6시를 넘기면서 포털에서 이동시간을 검색해봤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다소 불편한 동네였다. 최소한 6시 15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급하게 마무리짓고 사무실을 나섰다. 딱 15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도착 시간을 조회해봤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다. 강의할 사람이 지각하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실수다. 택시를 잡아 탔다. 목적지를 설명하기 위해 스마트폰 지도를 기사님께 보여주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어 주머니를 뒤져봤다. 강의자료를 담은 유에스비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아둔 채로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기사님께 차를 돌려달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유턴할 수 있는 교차로가 한참 멀었다. 게다가 퇴근시간이라 양쪽 도로가 모두 꽉 막혀 있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택시를 내려 사무실로 뛰었다. 머리 속으로 계산한 시간은 7분.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는데, 8분 걸렸다. 컴퓨터에 꽂혀 있는 유에스비를 꺼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뛰어나갔다.


운이 썩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기사님께 목적지를 설명하고,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이 약간 돌아가는 길을 말씀하시길래, 더 빠른 길을 알려드렸다. 다행히 강의시간 2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강의는 특별한 실수 없이, 재밌게 잘 마쳤다.


결국 펑크 난 회의자료


월요일 저녁에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대개 금요일부터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다 완성하지 못하면 일요일에 출근해서 마무리하기도 한다. 금요일은 외부 회의가 두 개 있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길지 않았다. 결국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퇴근했다. 저녁에 술약속이 있었고, 자리가 파할 때쯤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고, 지갑을 꺼낸 기억이 없는데, 분명 뒷주머니에 있어야 할 지갑이 없었다.


주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혹시 사무실에 지갑을 두고 나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지갑 생각을 하느라 다른 건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해봤으나, 지갑에 들어있던 보안카드가 없어서 건물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누군가 출근해서 보안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보니 역시 지갑은 없었다. 바로 회의자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지갑 생각에 빠져 지하철 유실물보관센터 몇 군데 전화를 걸고,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lost112 사이트에 가입해서 지갑 분실 신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오전을 다 보내고, 평소보다 점심도 늦게 먹고, 오후에야 회의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속으로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런 와중에 전화도 많이 왔고, 찾아와서 뭘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회의시간아 다 되도록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다. 하나의 항목은 아예 쓰지 못했고, 두 개 정도의 항목을 부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오탈자는 고사하고, 날짜나 숫자가 안 맞는 내용이 많았다.


당연히 회의에서는 부실한 자료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하나 둘 잘못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싶을 정도였다. 평소 별로 말이 없던 이사님조차 지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최근 한 두어달 동안 진행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별 다른 원인도 없이 중요한 일이 안 풀리니, 다른 일은 통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의 특성상 내가 중간에 끼어서 양쪽의 의사소통을 조율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원활하게 진행이 안되니 뭔가 다 내 잘못인 것만 같고, 의욕이 잘 생기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정신을 못 차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정신적인 압박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 이사회 때 완전히 바닥을 찍은 느낌이었다. 실수를 깨달았으니 이젠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다. 앞으로 정신을 좀 차리고 다시 차분하게 하나씩 해나가야겠다.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중요한 일정들이 줄줄이 다가온다. 자, 마음을 다 잡고, 자신감과 여유를 갖고 한번 해보자!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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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월 말쯤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이가 된 건 많지 않지만, 인터뷰어는 많이 해본 입장에서 대개 인터뷰 후에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이나 글이 실린 페이지 주소라도 보내주는 것이 예의인데, 이 분은 그런 피드백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했던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어제 우연히 페이스북을 훑다가 못생긴 얼굴 사진이 뜬 기사를 하나 봤다. 내 얼굴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사진을 어떻게 이렇게 찍었을까? 아니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사 메인 사진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보니 분명 사진을 잘 못 찍는다는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글을 읽어보니 자세히 소개하려는 성의는 보였지만, 글의 전개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글맛도 느낄수 없었다. 게다가 몇몇 내용은 내가 말했던 것과 미묘하게 달랐고, 아예 팩트 자체를 잘못 쓴 것도 있었다. 뭐 그리 심각한 오류는 아니라 넘어갈 수 있을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뜻으로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었는데 굳이 그걸 제목으로 쓰다니.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역시 사진이다. 아무리 내 인물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렇게 올려놓다니! 생글생글 인상좋게 웃던 그 귀여운 얼굴이 갑자기 미워진다.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위원으로써 가끔 인터뷰 기사를 손보곤 하는데, 만약 우리 기자나 시민기자가 이런 글을 가져왔다면 한숨이 나왔을 것 같다. 사실 인터뷰 기사는 생각보다 쓰기 어렵다. 오래전 잡지사에 있을때 내가 쓴 인터뷰 기사를 본 선배 편집자는 내 글이 너무 찰기가 없다고 평했다. 사실 그 글은 나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리 손을 대도 더이상 나아지지 않아, 어쩔수없이 보냈었다. 그 후로도 인터뷰 글을 쓸 일이 생기면 늘 그 선배의 평이 생각난다. ˝니 글은 너무 찰기가 없어. 니 글은 너무 찰기가 없어. 니 글은 너무 찰기가 없어......˝ 무한 반복으로 머릿속을 울린다.

뭐 그 생글생글 웃던 귀여운 얼굴의 시민기자를 탓할 마음은 없다. 그는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 믿는다. 혹 입장을 바꿔 내가 글을 쓴다해도 훨씬 더 잘썼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사진은 진짜 안타깝다. 쓸만한 사진이 없었다면 그냥 사진을 실지 말았르면 좋았을걸.

피서

휴가를 다녀오니 서울은 그야말로 불볕더위다. 잠시 움직여도 등판이 다 젖을만큼 땀이 난다. 밤에도 더워서 잠들기 어렵다. 그런데 사무실에선 또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니 춥다. 비염과 냉방병이 만나 컨디션이 최악이다. 내가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해대니, 사무실 다른 사람들이 조금 내 눈치를 보긴 하지만, 그래도 에어컨을 주구장창 틀어놓는다. 옛날 같았으면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며 주기적으로 껐다 켜기를 반복했을텐데, 지금은 그런 일조차 귀찮다. 이들은 듣는 순간에만 고개를 끄덕일 뿐 자신이 하루종일 에어컨을 켜두는 일에는 전혀 죄책감이 없다. 하필 내자리가 에어컨 바람을 곧바로 맞는 자리라 자리에 앉아 일하기가 힘들다. 온도도 내가 올려놓으면 어느새 누군가가 낮춰놓는다. 차라리 남들이 있는 낮엔 밖에서 다른 일을 하고, 저녁에 야근을 하는게 더 맘 편하다.

오늘은 아이들과 지내는 날이라 좀 일찍 퇴근해서 밥을 해놓고, 반찬 두어가지를 만들어 놓으려 했다. 늘 그렇듯 계획은 틀어지게 마련이다. 오후 늦게 중요한 전화를 받고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 결국 퇴근시간을 한참 넘겨 사무실을 나섰다. 아이들을 만나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 들어갔는데 더웠다. 평고라면 얼른 샤워를 하고 속옷만 입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겠지만, 오늘은 나가고 싶었다. 아이들과 얘기하다가 북카페를 가기로 했다. 동네에도 괜찮은 북카페가 있지만, 갑자기 알라디너 야나문님이 떠올랐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지만 가보고 싶어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야나문에서 쓰는 중이다. 아이들은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눈의여왕 그림책을 읽고 있고 난 보드카토닉을 마시며 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피서다.


고대사에 대한 이해

오늘은 한국일보 서평 기사를 읽고 보관함에 책을 하나 담았다. 가끔 온라인에서 허무맹랑하다 못해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만드는 고대사 관련 글들을 접한다. 그래.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은 미국의 노골적인 압력에 무기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드를 사야할 약자의 입장이지만, 먼 옛날에는 대륙을 주름잡는 강대국이었기를 바라는 마음, 상상속에서만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헛된 상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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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8-0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야나님은 그 귀여운 얼굴을 보셨겠어요 ㅋㅋㅋ

감은빛 2016-08-05 23:50   좋아요 0 | URL
아니 루쉰님 글을 어떻게 읽으신 거예요? 제 얼굴은 못생겼고, 예전에 저를 인터뷰했던 시민기자가 귀여운 얼굴이었다구요.

루쉰P 2016-08-0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해요....자몽이슬 한잔 마시면서...쿨럭 쿨럭...있다보니....

감은빛 2016-08-05 23:54   좋아요 0 | URL
자몽이슬 좋죠! 전 집에 오면서 매화수를 사왔어요. 더울 땐 왠지 소주가 별로 안 땡기네요. ㅎㅎ

수이 2016-08-06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곧_은 힘들 거 같지만 다시 만나요, 감은빛님. 먼 곳까지 와주셔서 좋았어요. :)

다락방 2016-08-07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나문에 가셨군요!!

yamoo 2016-08-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감은빛 님도 야나문에 가셨나 보군요! 그나저나 휴가 잘 갔다 오셨나 봅니다..

요즘 더워더 넘 더운 거 같습니다..ㅜㅜ
 


비와 음악


글을 쓰거나 교정을 볼 때 버릇 하나는 팝음악을 틀어놓는 것이다. 가요를 들으면 자꾸 가사가 머리속으로 들어와서 일에 집중이 안된다. 팝음악은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다. 어려서는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씨디로 음악을 들었다. 한 십여년 전에는 엠피쓰리 파일로 음악을 들었고, 요즘은 그냥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는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찾아서 틀어놓으면 자동으로 비슷한 노래나 같은 가수의 곡을 계속 이어서 들려준다. 이게 어떤 설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기능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한번만 찾으면 그 다음부터는 신경쓰지 않아도 내 취향의 곡을 계속 이어서 재생해주니 말이다.


오늘 아침 아이들의 아침 밥을 준비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이 목소리 참 오랜만이다. 오래전 잠깐동안 차를 몰고 출퇴근 한 적이 있어다. 출근 시간에는 이 '오늘아침'을 들었고, 퇴근 시간에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침 출근길에 차분한 목소리와 밝고 경쾌한 노래 선곡이 참 좋았고, 퇴근길에는 정겨운 목소리와 다양한 올드팝에서 최신유행곡까지 팝음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수잔 베가의 Tom's Diner 가 나왔다. 비와 참 잘 어울리는 노래. 빗소리와 노래 소리가 시너지를 일으켜 나를 20여년 전 어느 밤으로 나를 데려갔다. 잠시 추억에 젖어 있느라 아이들 밥 차리던 것도 잊었나보다. 배고프다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준비했다.


오후 늦게 휴대폰을 보니, 시민신문 편집장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엊그제 마감에 맞춰 교정을 도와주러 다녀왔는데, 오늘 새벽 기사 하나를 보내어, 교정을 보고 분량을 줄여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아이들과 놀고 있던 참이라 교정 볼 기분이 아니었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그 새벽에 연락했을까 싶어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열었다. 교정을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를 켜고 무슨 곡을 검색할까 잠시 고민했다. 아침에 들었던 Tom's Diner 를 또 듣고 싶어 검색했다. 오래전 카세트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곡. 이젠 비가 그쳐, 창문 너머 빗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조금 아쉽다. 암튼 잠시 노래를 감상하다가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기사는 그리 길지 않은데, 원고를 줄여달라니 좀 난감했다. 분량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글을 두 번 읽는 사이 노래는 포 넌 블론즈의 What's up 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노 다웃의 Don't speak 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선 교정교열을 끝내고, 글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잠시 그웬 스테파니의 섹시한 목소리를 감상했다. 이 노래 예전에 가끔 듣긴 했지만, 그리 인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는데, 지금 들으니 제법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끝까지 듣고, 다시 원고로 돌아갔다.




그때 자동으로 넘어간 다음 노래가 크랜베리스의 Linger 였다. 20년 전 티비에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몽환적인 느낌으로 노래늘 부르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모습을 본 후, 빠져들었던 크랜베리스. 수많은 노래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곡은 Zombie 와 Linger 였다. 다시 원고로 돌아와 겨우 한 문장도 읽지 못했는데, 교정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돌로레스의 목소리를 듣던 나는 마음을 바꿔 얼른 교정을 끝내버리고 크랜베리스의 로래를 감상하기로 했다. 노래를 멈추고 원고로 돌아가서 흐름상 불 필요한 문장을 지우고, 앞뒤 맥락에 맞춰 문장을 고쳤다. 얼마 뒤 교정 원고를 전송하고 답을 보냈다.



보물창고


 Linger 에 이어서 나온 노래는 Dreams 였다. Zombie 를 좋아하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어서 Zombie 가 나왔고, 그 다음에는 Ode to my family 가 나왔다. 크랜베리스의 초기 노래들이 자동으로 이어서 재생되는데, 모두 좋아했던 곡이었다.




이건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좋아했던 노래들과 함께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또 신기했던 건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니 씨디로 음악만 듣던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크랜베리스의 모습들, 아니 돌로레스 오리어던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뮤직비디오의 컨셉을 통해 곡에 대한 다른 해석도 해보았다.



이어 자동재생된 노래는 Promises 였고, 그 다음 곡은 Animal Instinct 였다. 하나하나 오래전에 테이프가 닳도록 듣고, 씨디를 사서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곡들이다. 자동재생으로 들려주는 것만 기다리기엔 좀 답답해서 좋아했던 다른 곡들도 찾아봤다. I just shot John Lennon 과 Sattered 도 많이 좋아했던 곡들이다. 아니 나중에는 Sattered 를 가장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크랜베리스는 사회문제나 정치적인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영어를 썩 그리 잘 하지 못해 노래에 숨겨진 어떤 맥락들을 다 이해할 수 없어 아쉽다. 단편적으로 이런 의미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Fee fi fo 나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Bosnia 등의 곡들이 있다. 이젠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외에도 많은 곡들이 비판적인 가사로 채워져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예전에 좋아했던 곡들의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다음에는 누구로 해볼까? 쉐릴 크로우? 알라니스 모리셋? 에반에센스? 뭐 찾아볼 가수는 많다. 그만큼 시간을 낼 수 있을지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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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크랜베리스 네요~~
엔날에 많이 듣다 요즘 가끔 듣고 있습니다..ㅎ

저는 작업할 때 주로 고딕 메탈을 듣습니다요~ㅋ

감은빛 2016-09-19 12:18   좋아요 0 | URL
한 달도 훌쩍 지나서야 답을 남기네요.
그간 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살아서요.

야무님도 크랜베리스 좋아하시나봐요.
요즘도 가끔 들으신다니!

고딕 메탈이라~
저는 10대때 메탈 계열을 좋아했는데,
20대 이후로는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