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12월 들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좀 있었는데, 계속 여유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고 12월이 거의 다 지나버렸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내가 준비하고 진행한 행사 이야기도 있었다. 강의 이야기도 있었고, 내 실수로 잘 진행이 되지 않았던 업무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그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는 것이 조금 귀찮아졌다. 참 이래저래 일이 많았던 12월이었다.


배우 이선균 씨의 자살 이야기가 어제 오늘 여기저기서 돌고 있다. 늘 그렇듯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안타까운 사건이고 너무나도 아까운 한 생명이 그렇게 사라진 것에 대해 일단 애도의 마음을 보탠다.


언론에서 자꾸 '극단적 선택'이란 단어를 쓰는데, 자꾸 마음에 걸린다. 왜 그 단어를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단어가 과연 바람직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 하나 둘 해결해나가면서 하고 싶은 일들도 조금씩 시도해보고 싶다. 내일과 모레 이틀 연속 또 중요한 행사들이 있다. 토요일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나면, 일요일은 좀 조용히 지낼 수 있겠지.


사주와 MBTI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사주팔자도 믿지 않는다. MBTI 도 사람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측면에서 재미는 있지만, 그 역시도 믿지 않는 편이다. 무척 친한 후배 한 명이 언제부턴가 지인들의 사주를 열심히 보고 있다. 내 사주도 여러 번 봐주었다. 그 말들을 속속들이 믿지 않지만, 그 친구는 사주팔자가 보여주는 방향성과 우리 실제 삶의 양상을 연결해서 설명하곤 하는데, 그런 측면의 이야기는 조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무조건 안 믿는다고 선을 긋고 벽을 세우기 보다는, 그렇게 우리 삶을 바라보는 방법도 있구나.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경향과 방향이 보이기도 하는 구나.


요즘은 누구든 MBTI 를 묻는 일이 많다. 나는 두 번 검사를 받았는데, 두 번 모두 INTP 가 나왔다. 그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듣는 이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내게 N 이 뭘 의미하는 지, T 는 무슨 뜻인지 등을 알려주곤 한다. 반면, 매우 의외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맨 앞의 I 가 아니라 E 가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나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때마다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모습을 주로 본 사람들은 E 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개인적으로 나와 친한 사람들은 I 라는 내 말을 수긍하는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 중에 본인이 좀 더 편하고 마음이 가는 성향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반대 성향으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일들도 분명 생길 것이다. MBTI 유형을 취업 면접에까지 적용한다는 뉴스를 보고 실소가 나오는데,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 그저 알파벳 4개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노래 연습


내가 일하는 조합의 송년회는 매년 마지막 금요일에 하고 있다. 다른 곳들 대부분 12월 초에 하는 편이고, 좀 늦어도 중순에는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아예 연말로 일정을 정했다. 해마다 이런저런 컨셉으로 재미있게 놀아보려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JTBC 손석희 사장의 뉴스룸이 한창 화제가 될 때에는 뉴스룸과 유사한 구성으로 해서, 당시 이사장님이 손석희 역할을 내가 기자 역할을 맡아서 키워드로 조합의 주요 뉴스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었었다. 대본도 작성하긴 했었는데, 나는 전체 행사 준비에 시간을 많이 뺏겨서 해당 코너 준비를 잘 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당일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넘어갔는데, 당시 이사장님은 나름 준비를 많이 하셔서 손석희 사장의 손동작이나 표정 등 디테일을 잘 살렸었다. 게다가 그날 맨 마지막 코너였던 앵커 브리핑을 아주 감동적인 내용으로 잘 준비해서 참석하신 분들이 모두 감명 받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임원들과 활동 조합원들이 나서서 다양한 공연이나 영상 등으로 재치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었다. 뭔가 이슈가 되거나 유행하는 걸 잘 캐치해서 응용하길 잘 하시는 분들이 기획을 잘 해주셨었다.


한편 초기부터 송년회에서 조합원 장기자랑을 종종 했었다. 춤과 악기 연주, 노래, 시낭송, 꽁트, 코메디, 성대모사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조합원들이 참가해 의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거의 프로급의 실력을 가지신 분들이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작년 송년회에는 아예 가요제 형태로 진행했다. 우리 조합원이자 나와도 무척 친한 사이인 분이 여러 투쟁 현장들에서 노래(민중가요)를 부르곤 하시는데, 이 분을 초대했었고,또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가진 또 다른 나와 친한 지인도 초대했었다. 우리 조합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활동가 역시 노래 실력이 무척 출중하여 참가했었고, 임원 중 한 분도 무척 매력적인 목소리와 판소리 창법을 접목한 독특한 창법으로 참가했었다. 그렇게 사전에 주위에서 어지간히 노래 잘 하는 분들을 여러 분 모셨고, 당일 현장에서도 즉석 신청을 받았는데, 다소 멋적어 하며 참가하신 두 분의 조합원도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암튼 이렇게 작년 가요제가 대흥행하면서 참가자들의 반응이 엄청났었다.


올해는 다시 장기자랑으로 돌아가 노래 외에도 다른 것들을 보여주실 분들을 골고루 섭외 중이다. 지난 11월에 나와 동료활동가가 준비하고 진행한 체육대회도 대흥행이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임원 한 분이 내게 물었었다. 노래를 제법 잘 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한번도 조합 행사에서 보여준 적이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저 앞에서 언급한 작년 가요제에 참여한 분들 대다수와 무척 친한 사이라서 그 분들과 노래방을 갈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수라 해도 손색이 없는 그 분들 사이에서 절망감을 느끼곤 했으니까. 암튼 이번 송년회에는 나도 뭔가 해보라는 요청을 두어 번 받았기 때문에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노래를 한번 불러보자. 혼자 해도 좋지만, 나와 친한 다른 후배에게 듀엣으로 노래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친구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인 친구인데, 고음에 조금 약점이 있는 편이다. 나는 최근 두성을 배워서 고음을 익히는 중인데, 서로 약점을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했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바로 내일로 다가온 송년회를 위해 노래 연습을 해야 하는데, 나와 그 후배 모두 어지간히 바쁜 사람들이라 지금까지 시간을 내지 못했고, 오늘 밤에 만나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어떤 노래를 할지 몇 개의 선택지를 두고 이야기는 나눴으나, 아직 정하지는 못했다. 만나서 불러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솔직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이 안 되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뭐 폭망하면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좋은 것이고, 나름 괜찮게 부르면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것이라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망가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참가를 결정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어렸을 때 나는 참 바보같이 내가 노래를 그럭저럭 괜찮게 잘 한다고 착각했었다. 목소리도 작고, 성량도 작고, 음역대도 좁은 내가 어쩌다 그런 착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기준에 내 노래가 괜찮게 들렸던 거였겠지. 그게 착각이 깨진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과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건인데, 그때도 듀엣이었구나. 당시 유행하던 가수 녹색지대의 노래를 과 동기랑 함께 불렀는데, 그 친구는 박치에 음역대가 나보다 더 좁았다. 그때도 노래방에서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뭐 별로 제대로 못했고, 사실 둘 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음정과 박자만 잘 맞춰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정말 완전 폭망이었다. 같이 불렀던 동기 녀석이 자꾸 박자를 반박자씩 늦게 들어가고 뒤로 갈수록 음정도 안 맞았다. 나는 당황했고, 뒤로 갈수록 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둘 다 너무 어이없는 실수들을 저지르고 청중들의 웃음 속에 무대를 내려왔다. 그때 나는 정말 노래를 못하는구나 느꼈다.


두 번째 사건은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달 후에 있었다. 과에서 몇몇 선배들이 노래패를 만들면서 후배들에게 가입을 권했는데, 나도 거기 포함되어 있어서 들어간 것이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뭐든 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동기들과 함께 민중가요 창법을 배우며 노래 연습도 하고, 기타 연습도 했는데, 둘 다 썩 실력이 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 또 어느 행사에 우리 노래패가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나는 그 무대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선배들에게 정말 많이 혼나고 욕도 많이 먹었다. 나는 바로 노래패를 탈퇴했고, 다시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바뀌지는 않더라. 환경단체 활동가 시절 전국에서 모인 선배 및 동기 활동가들과 교류하는 자리에서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또 나름 자신 있었던 민중가요를 불렀었고, 그 노래를 들은 동기이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형이 내게 호감을 갖게 되어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그 형의 제안을 받아 평택의 환경단체 실무자로 옮겨갔었는데, 그때 그 형의 후배를 만났다. 그날 나는 그 분에게 첫 눈에 반했고, 고백해서 사귀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날 내가 불렀던 그 노래 덕분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그날 그 노래를 안 불렀다면, 그 형과 그렇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형의 후배였던 그 사람과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


암튼 어릴 때에도 그렇고 이제 늙어버런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걸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좀 못하면 어떤가? 즐기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임해야겠다. 대신 할 수 있는 만큼 준비는 잘 해야겠지.


책이 왔다.


연말에 책을 좀 구매했다. 올해는 유난히 책을 적게 샀다. 이미 구매해 놓고 제대로 못 읽은 책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일에 치여서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만들지 못한 탓도 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책 욕심에 꾸준히 책을 사모았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좁은 집에 책이 자꾸 쌓이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언제 이사를 나가야 할지 모르는데, 저 수많은 책들을 어떻게 처치할 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참 좋아하는 지인이 최근에 읽고 정말 좋았다는 평을 보고 이 책을 바로 구매했다. 새 책을 사려다가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이 있다고 나오길래 그걸 주문했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가 가기 전에 새로 주문한 책들 중 적어도 2권을 읽어야지 라고 생각해본다. 음, 밤 늦게 집에 들어가면 박스를 열어보고 제일 두께가 얇은 책을 찾아야지. 자, 이제 노래 연습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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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9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2023년 사흘 남았네요 남은 날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노래는 즐기면 되죠 연습하시고 노래 하는 거 배우시기도 했으니 전보다 잘 하시겠지요 노래 잘 하려고 연습도 하신다니... 송년회에서 노래 잘 하셨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님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감은빛 2024-01-03 19:4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이제 해가 바뀌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년회 노래는 남들 기준으로는 그럭저럭.
제 기준으로는 망했어요. ㅎㅎ

루피닷 2024-01-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24-01-03 19:42   좋아요 1 | URL
루피닷님, 인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루피닷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yamoo 2024-01-0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MBTI 검사....저하고 똑같네요!! 저도 첨에 두 번 했고 나중에도 했는데 동일하게 나와서 그려러니 합니다. 헌데 감은빛님이 INTP라니 놀랍네요. 저도 E로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동지애를 느낍니다..ㅎㅎ 하지만 저는 노래 부르기를 아주 싫어해서 거의 부르지 않고 누가 노래 시키면 안합니다..ㅎㅎ 노래방 간 건 1994년 딱 하 번...다시는 안갑니다..ㅎㅎ

감은빛 님 새해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4-01-05 20:19   좋아요 0 | URL
야무님께서 동지애를 느끼신다고 말씀하시니, 영광입니다. ^^

노래방을 딱 한 번 밖에 안 가셨다니, 그건 좀 많이 의외네요.
94년이라. 저는 그보다 훨씬 더 일찍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중학생 시절부터 자주 다녔었네요.

새해 인사는 요 윗 댓글에 남겼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4-01-0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5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12


요즘은 날짜 가는 걸 모르고 살고 있다. 아니 요즘이 아니라 날짜 모르고 살아온 게 제법 오래 된 일이라고 느낀다. 그냥 매일 아침 일정표를 보면서 뭘 해야 하는 날인지 확인하고 그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잘 안되면 속상해 하거나 아쉬워하고, 어쩌다 잘 되면 살짝 자만심에 취해 내가 이렇게 잘난 놈이야 하는 생각을 짧게 해본다. 대게는 시간 안에 해내지 못해 다음 날로 미루고, 그 다음날에도 못 하고 다시 또 미루기도 한다. 그러다 이제 도저히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떻게든 마무리 하기도 한다. 어떤 일은 손을 대자마자 쉽게 끝까지 해내는데, 어떤 일은 시작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만 하다가 다른 일로 옮겨가고 다시 손을 댔다가 또 멈추기를 반복한다. 얼른 끝내버리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머리 속에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자꾸만 그런 일들이 쌓인다. 그렇게 몇 개의 일들이 계속 쌓여 있으면 그 스트레스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다. 


아직 창 밖이 밝아오기 전 새벽에 잠에서 깨어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보고, 일정표를 열어 오늘 일정을 확인하고 머리 속에서 쌓여있는 일들과 새로 시작해야 할 일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어, 1212네. 기억해야 할 날짜들. 4.3, 4,19, 4.16, 5.16, 5,18, 10.26 그리고 12.12. 아, 여기에 10.29도 추가해야 하겠구나.


오늘은 꼭 넘겨야 할 일이 있다. 쌓여 있는 일들은 또 하루 뒤로 미뤄야 하겠구나. 일단은 급한 일부터 먼저 처리해야지. 마감에 쫓기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오늘도 그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 무조건 되어야 한다. 중요한 일이니 안 되어도 되도록 만들어야 하겠지.


이런 날엔


날짜도 날짜인데, 오전에 일 때문에 통화를 한 어느 활동가에게 장시간 신세한탄을 들었다. 서로 바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살면서 가끔 연락하고, 가끔 하소연도 하고, 가끔 따뜻한 밥 한 끼 사주는 관계인데, 최근 힘든 일들이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았다. 결국 몸이 망가져 며칠째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라도 좀 해주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불러내 맛있는 걸 사주며 함께 욕해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싶었으나,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필 이런 날에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슬프고 속상했다. 하필 이런 날에 바쁜 내가 원망스럽다. 


책 담기


이렇게 바쁜 날이라도 책 소식은 반갑다.
















오래 전 출판사에서 일할 당시에 김준 선생님의 책 작업을 맡았었다. 영업을 하다가 편집도 병행하기로 하고 초보 편집자가 된 후 두 권 가량 책을 낸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에 만든 책 한 권의 저자가 무척 까다로운 분이어서 애를 많이 먹었었는데, 김준 선생님은 정말 함께 작업하기 좋은 훌륭한 저자였다. 글도 깔끔해서 교정교열에 필요한 시간도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피드백도 빠르고, 답도 부드럽고 예의를 지키는 말투였다. 책을 다 만들고 나니 전라남도 어느 섬으로 초대해주셔서, 책을 갖고 찾아뵈었었다. 1박2일 동안 맛난 것들을 잔뜩 먹고 왔었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여전히 섬 이야기를 계속 쓰고 계시구나. 이 책은 조만간 사서 읽어야지.
















오늘 채효정 선생님이 이 책 북콘서트를 하시나보다. 페이스북에서 북콘서트는 못 오시더라도 이 책은 꼭 읽어 달라는 글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 한 명이다. 이 책도 꼭 사서 읽어야지.


오늘 이 바쁜 와중에 오랜만에 페이스북에서 출판계 선배들의 글들을 여럿 보고, 아주 오랜만에 댓글을 좀 달았다. 책 값을 얼마로 하면 좋겠냐는 한 선배와 표지 시안 3개 중에 하나를 골라달라는 다른 선배, 그리고 올해 마지막 신간 소식을 올리는 또 다른 선배. 모두 못 보고 산지 아주 오래되었다. 다행히도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 주시는 분이 계셔서 그 소중한 인연을 잠시 떠올려 본다. 새해에는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시는데, 과연 뵐 수 있을까?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 찾아 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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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1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에서 보니 동업을 할 땐 상대편의 능력만 중요하게 보면 된다고 하던데
성격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죠. 책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성격인지도 모르겠어요.

감은빛 2024-01-03 19:40   좋아요 0 | URL
페크님, 해가 바뀌어 답글을 쓰네요.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해 전에 정말 능력이 출중한 젊은 여성이 인턴으로 들어왔는데,
일은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람은 딱 인턴 기간 동안만 이력이 필요해 들어왔다고 했어요.
곧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 사람을 겪은 후로는 능력 보다는 성격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일본 대학원생 인터뷰


한국 대학원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 학생들의 인터뷰는 여러 번 했었다. 다 기억도 못할 정도로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 자료도 많이 챙겨줬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 몰라도 일본 나고야 대학 환경대학원 학생이라고 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이메일로 왔다. 메일을 받자마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그 학생이 중간에 영어 기사 하나를 링크로 보내줬다. 열어보니 내 이름과 활동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 영어 기사를 썼다는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론 인터뷰도 제법 많이 했었는데,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대체로 이름을 보면 아, 그때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이긴 한데, 이 영어 기사를 쓴 한국인 기자 이름은 너무 낯설었다. 게다가 그 내용도 낯설었고, 심지어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어 기사만을 쓰기 위해 나를 인터뷰 했을 리는 없을테고, 같은 내용의 한글 기사를 영어로도 올린 것일텐데, 검색해봐도 그 기자 이름으로 된 한글 인터뷰 기사는 없었다. 나를 인터뷰 한 기자가 기사를 올리기 전에 나에게 최종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런 요청이 있었다면 저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그대로 뒀을 리는 없다.


내 생각에는 다른 인터뷰 기사와 내가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저 기자가 영문 기사를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암튼 그 영문 기사 덕분에 일본 대학원생이 나와 우리 조합의 활동 내용을 알게 되었고,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해온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인터뷰에 응했고,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주길래, 아주 꼼꼼하게 상세하게 답변을 달아서 미리 보내줬다. 질문들이 조금 평이했고,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반적인 내용도 있어서, 그냥 간단히 답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어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달았다. 그래서 답변을 적은 문서가 7쪽이 넘는 분량이 나왔다. 


다만 이 답변을 영어로 작성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그냥 한글로 적었는데, 그 대학원생들이 일본어로 다시 번역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물론 요즘은 번역기가 잘 되어 있긴 한데, 일상 용어가 아닌 전문 용어들의 번역은 또 그리 신통치 않은 것 같아서 세세하게 더 찾아보고 교차 검증을 해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쪽에서 일본어 원문과 함께 영어와 한글로 질문을 적어줬길래, 한글 질문이 좀 애매하거나 이상한 문맥이 있어서 문장 단위로 교차 검증을 하면서 정확한 질문을 파악했었다.


예전에 일본 대학생들하고 국제교류행사를 준비할 때에나, 출판사에 있을 당시에 해외에서 도서 주문이 오면 모두 영어로 소통했었는데, 그건 젊은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이젠 영어로 문장을 쓰려니 도무지 자신이 없다. 답장을 보내면서 한글로만 적어 보내서 미안하다고 언급했다. 관련 참고자료를 좀 챙겨서 보냈느데, 그것들도 모두 한글 자료라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인터뷰 하러 올 때에는 한국인 교수와 함께 올 예정이며 그 분이 통역을 맡아주실 거라고 답이 왔다.


그렇게 서로 이메일로 소통한 것이 지난 달 중순부터 지난 주 까지였다. 내가 미리 답변서를 자세하게 써서 보낼 것을 그쪽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무척 놀라며 매우 고맙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사전에 질문지를 받으면 늘 미리 답변서를 보냈었다. 그래야 인터뷰 당일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이번에는 특히 내가 일본어를 모르고, 그쪽은 한국어를 모르는 입장이라 아무리 통역이 있어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세하게 써서 보낸 것 뿐이다.


그리고 오늘 일본 대학원생 10명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왔다. 대학원생 10명 중에는 인도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과 이스라엘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우리 조합에서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꼼꼼히 둘러본 후에 내가 매장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했고, 지하 교육장으로 이동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맨 처음에는 5명의 학생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오실거라고 해서 매장에 있는 테이블에서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학생이 10명으로 늘어난다고 연락이 왔다. 매장 내 테이블에는 최대 7명 정도까지 앉을 수 있어서 6명이 오는 건 괜찮은데, 11명은 도저히 앉을 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인터뷰 장소를 지하로 옮겼다.


인터뷰 때는 일본어와 영어로 질문이 오면 통역하시는 교수님이 우리말로 옮겨주셨고, 나는 우리말로 답하고 다시 교수님이 영어와 일본어로 옮겨 주셨다. 간단한 답변은 영어로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역시 일상적으로 쓰지 않으면 말이 잘 나오지 않더라. 그대로 일본어와 영어 모두 흥미를 가지고 익히려고 노력했던 말들이라서 들으면서 조금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소 좀 더 열심히 익혔다면, 더 잘 알아듣고, 간단하게 답변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금방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계속 반복적으로 감사합니다! 를 얘기하더라. 대체 얼마나 많은 감사합니다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내게 이메일을 보낸 후에 계속 소통했던 대학원생은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병행하는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고 한국인 교수님이 칭찬을 여러 번 했다. 인터뷰 할 때에도 내 옆에 앉아서 번역 앱으로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글로 변환하여 폰을 보여주곤 했다.


인터뷰까지 공식 일정을 다 마치고 학생들이 매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소통해왔던 학생을 포함해 한 두 학생과 개인적인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다. 가능하면 일본어로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하아! 정말 간단한 몇 가지 표현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말을 건 후에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한국인 교수님은 이렇게 친절하게 잘 해주실 줄 몰랐다면서 다음에는 정식으로 강의를 편성해서 강사비도 책정해서 오겠다고 했다. 계속 교류하면서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예전에 프랑스 르망 대학교 교수님이 한국 협동조합 전공 교수님과 함께 와서 인터뷰를 했던 것이 외국인과 인터뷰 첫 경험이었는데, 이번이 두번째가 되었다. 그때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교수님이라고 들었고, 통역하러 함께 오시는 한국 교수님도 엄청 유명하신 분이어서 (게다가 엄청 깐깐하신 분이셔서) 긴장을 좀 많이 했었다. 이번에는 대학원생들이 오는 거라서 긴장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준비를 미리 다 해뒀기 때문에 아주 여유있게, 편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질문에 답을 했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되면 아예 ppt 로 시각 자료를 띄워놓고 강의나 발표 형식으로 설명하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과 작별하면서 여러번 말한 것처럼 이 교류가 단발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기를 바란다.


안면도


주말에 아이들과 안면도에 다녀왔다. 모처럼 일 없이 쉬는 주말이기도 했고, 아이들과 아무 생각없이 어디 놀러 가고 싶기도 했다. 친한 후배가 매년 연말 회사에서 숙박비로 쓴 경비를 정산해서 돌려받기 때문에 겨울마다 친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끊어 주곤 한다. 몇 해 전에는 그 비용으로 친한 선후배들 모아서 놀러 다녀오기도 했었다. 올해는 수능 시험을 본 우리 큰 아이를 위해 선물하고 싶다고 나에게 숙소를 예매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온양온천 쪽에 숙소를 잡아달라고 했는데, 그쪽은 지금이 성수기인지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아 달라고 했더니 안면도의 해안가 펜션을 잡아주었다.


아이들이 오전엔 늦잠을 자는 편이라 점심때가 지나 데리러 갔고,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조금 기다렸다 출발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제법 막혀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해질 무렵이 다 되어 있었다. 나는 금요일 밤새 일을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에너지 음료와 커피를 들이붓고 운전을 시작했다. 혹시 졸릴지 몰라서 입에 씹을 사탕과 초콜릿을 미리 챙겨두었다. 도로를 달리면 졸립지 않은데, 차가 막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뒷좌석에서 자고 있었다. 누가 말을 붙여 줄 사람도 없고, 음악을 틀어놓아도 졸리긴 마찬가지였다. 사탕을 입에 넣고 간신히 졸음을 쫓으며 운전했다.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자 다시 금방 졸음이 달아났고, 또 막히는 구간이 오면 그땐 사탕의 힘으로 버텨서 졸음 때문에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에는 정말 피곤한 상태로 운전하는 일이 잦았다. 욕심이 많아서 영업과 편집을 같이 했는데, 낮에는 영업하러 다니고, 밤에는 교정교열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다. 그런다고 월급을 더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때 졸음을 쫓기에 좋은 여러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내 결론은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이었다. 평소라면 달아서 입에도 대지 않는 것들이지만, 운전할 때 입에 넣으면 졸음이 싹 달아났다. 그래서 그 후로 그리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도 운전할 때에는 그런 것들을 꼭 챙기는 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쉬니 해가 졌다. 창 밖으로 일몰 모습이 정말 멋졌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식당을 찾았다. 저녁을 먹고 미리 검색해 둔 카트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 전화로 미리 물어보니 해가 져도 라이트를 켜 둬서 운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체험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 모두 따로 운전을 해볼 수 있었다. 카트를 운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핸들이 엄청 무거워서 (즉 파워핸들이 아니라서) 힘을 계속 주고 돌려야 했고, 엑셀과 브레이크가 모두 힘껏 밟아야 해서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큰 아이는 그래도 재미있어 하고 금방 적응해서 운전을 잘 했다. 아주 작은 자동차 경주 트랙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작은 아이는 타기 전부터 무서워하며 걱정을 많이 했고, 타고 나서도 차가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아서 무서워했다.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초반에 일부러 작은 아이 뒤쪽에서 아이를 응원하며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고 칭찬해주며 뒤따라 갔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집중하느라 힘든데 내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방해되는 것 처럼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아이를 믿고 그냥 내 페이스대로 즐겼다.


최고 속력이 약 40킬로미터 까지 나오는 작은 카트를 크게 커브를 돌아야 하는 트랙으로 모는 일은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다만 엔진 소음이 제법 컸고, 해 떨어진 이후라 찬 바람이 제법 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트랙을 몇 바퀴 돌고 나니 손도 시렵고, 몸도 좀 추웠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늦게까지 놀도록 내버려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고 아이들은 과자 먹으며 늦게까지 놀았을 것이다. 다음날 조금 늦잠을 자고 일어나 숙소 정리를 하고 나와서 미로 공원에 갔다. 미로 공원은 제법 넓은 부지에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6개의 코스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이들을 앞세워 알아서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이 이끄는대로 그냥 따라만 다녔다. 아이들은 중간에 좀 길을 헤매였으나 나중에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다. 미로 곳곳에 스탬프를 찍는 거점이 4개 있었는데, 그걸 다 찍고 나가려면 좀 헤맬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스탬프 4개를 다 찍고 미로를 빠져나왔다.


점심으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좀 돌아다녔다. 아이들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제법 오래 식당을 찾아서 차를 몰고 다니다가 지칠 무렵에 전라도 밥상이란 식당이 눈에 보이길래 전라도식 백반을 떠올려 들어갔는데, 간장게장 정식집이었다. 아이들은 간장게장을 안 먹어봤으니 먹어보면 맛있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비싸도 정식을 주문했는데, 대실패였다. 아이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 혼자 3인분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과 대하장을 다 먹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른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뭐 결과적으로 맛있게 먹었으니 됐지 뭐.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저녁 늦게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이었다. 야간 운전 때문에 좀 피곤했다. 정말 딱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이번 주도 일정이 많고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다. 무사히 잘 보내길 바라며,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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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신드롬


오래 전 영화 [쉬리]가 개봉했을 때, 주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다고 얘기하곤 했었고, 언론에서도 다루는 걸 봤었다. 나는 이상하게 삐딱한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다 하는 건 일부러 피하곤 하는데, 남들이 다 보는 영화는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남들이 잘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나에게는 뭔가 끌리는 영화를 찾아보곤 했었다. 문득 [쉬리]의 관객수가 궁금해 찾아보니 580만 가량이다. 언젠가부터 천만 관객 영화가 종종 나오곤 했던 걸 생각하면 [쉬리]는 내 기억과는 달리 그렇게 크게 유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그 정도 관객수도 많았던 것일까? 내 기억에 비슷한 시기에 [쉬리] 보다 더 크게 흥행했던, 정말 내 주위에 안 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성적도 궁금해 찾아보았다.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90만으로 추정한다고 나온다. 재개봉 포함 전국 635만이라고 나온다. 그럼 확실히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총 인원수가 적었던 것이다.


암튼 삐딱한 나는 저 두 영화를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다. 남들이 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두 영화는 아주 나중에 티비로 봤다. [쉬리]는 재미있었지만, 그냥 딱 재미있는 오락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행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과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달랐다. 와! 영화의 스케일 자체가 달랐고, 그때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저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올해 초 나는 우연히 작은 아이와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극장에서 보았다. 원래 영화를 볼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자고 했고, 마침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 중 제일 끌리는 영화가 바로 그거였다. 암튼 그렇게 아바타를 보고 또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나 태블릿으로 봤으면 이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쉬리]와 [타이타닉] 이야기를 한 것은 요즘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지금 이 분위기 어쩐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 떠올려보니 딱 저 두 영화의 개봉 시기의 내 기분이 지금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영화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는 좀 과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고, 뭔가 하나가 회자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그에 편승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퍼트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기억에서는 저 두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의 흥행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은 두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은 12월 12일이 다가오는 시기에 저 군사 쿠테타의 부당함과 죄상을 전 국민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그래서 다함께 전씨와 그 일당들에게 분노하는 국민적인 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다. 아마 저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전씨와 노씨의 죽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 영화 [26년]은 제작과정에서 수차례 외압을 받아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와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전씨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에 저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며칠 동안 언론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는 앞다투어 그날의 실제 이야기, 영화 속 배역의 실제 인물들, 당시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결정적인 순간들 등의 다양한 연관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충분히 널리 알려지는 것은 이 영화의 힘이자,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도둑질 했던 독재자의 죽음 이후 다시 또 다른 군부 독재자가 내란을 통해 정권을 훔친 과정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후 우리나라는 87년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그것은 제도적 민주화에 그쳤을 뿐, 살인마이자 학살자의 친구가 다시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삼당 야합으로 이뤄진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 역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많이 퇴보하게 만든 사건인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다. 물론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 일단 [서울의 봄]이란 제목은 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 학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이 일로 인해 1212 군사 쿠테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그 사건 말이다. 결국 오지 못한 '서울의 봄'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 답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더 고민해봐야겠다.


이 영화는 결국 내란이 성공해 군대 내부 일부 장교들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그 수장인 전씨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대체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담아냈겠지만, 일부 내용은 현실과 다르게 그렸다고 들었다. 이미 성공한 군사 쿠테타를 세부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폭도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비록 전씨와 노씨는 죽었지만, 당시 쿠테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폭도들 중 다수는 아직 막대한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잘 살고 있다. 혹시 이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무용담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특히 저 내란을 주도했던 폭도들의 두목인 전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좀 과한 것일 수 있다. 다만 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는 틀로 담아낼 때 그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불재? 누칼협?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속한 여러 조직들은 서로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초성 퀴즈를 자주 하곤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초성 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예상하며, 문제가 나오면 나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초성 퀴즈를 정말 잘 하지 못했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뇌는 초성만 가지고 그에 맞는 특정 단어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동안 종종 초성 퀴즈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순발력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유난히 잘 맞추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말하자면 저들은 그다지 어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암튼 그랬다.


초성을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구인지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과 가족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는 시각적인 정보를 빠르게 내가 아는 정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초성 퀴즈에 유난히 약한 것처럼 줄임말에도 약한 편이다. 아, 그런데 초성 퀴즈는 눈으로 보고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시각 정보가 중요한 것이 맞지만, 줄임말은 기본적으로 발음으로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또 성격이 다르긴 하다. 둘 다 전체 정보가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보만을 제한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물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널리 퍼지는 줄임말들이 있고, 이미 익숙해진 줄임말은 읽거나 듣는 순간 바로 본 뜻과 연결된다. 다만 요즘은 젊은? 아니 어린? 암튼 육체적 나이로든 문화적 나이로든 나이 차에 따라 유행하는 줄임말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아, 내 지인들이 내가 초성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상식 퀴즈와 같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잘 하기 때문이다. 한때 국문과 전공이었다는 점, 편집자였다는 점 등이 그런 오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친한 다른 국문과 전공자와 편집자들도 초성퀴즈는 썩 그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과 그것은 크게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이 대화할 때 전혀 모르는 단어가 들리곤 한다. 그 뜻을 물으면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외국어 아니 외계어라도 들은 느낌이 든다. 큰 아이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다른 적절한 표현이 분명 있을텐데, 왜 저렇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을 일부러 쓰는 걸까? 저 아이들은 모두 저 표현의 정확한 표현을 알고 쓰는 걸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저 두 단어를 보았다. 스불재와 누칼협. 전혀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였다. 평소 하는 것처럼 검색을 해 보려다가 한번 맞춰보고 싶어서 조금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연관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검색 대신 댓글들을 읽었다. 댓글들 중에도 정확한 뜻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한 절반 정도는 나처럼 그게 뭐냐는 질문을 남기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음, 결국 검색을 해야겠네 하며 새 창을 띄우려다가 갑자기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것저것 떠맡은 일들이 많아 여러가지 일들의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면서 저 두 단어를 썼다. 갑자기 누칼협의 칼이 그 칼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이 떠올랐다. 스불재는 좀 더 고민하다가 갑자기 신해철 형님의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시시각각 다가오는 여러 원고 마감에 쫓기는 이 상황이 남 탓이 아닌 제 탓이란 의미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동지를 만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나 역시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또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이런저런 일들을 자주 떠안는 편이라 동시에 여러 개의 마감에 쫓기는 일이 잦다. 내일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월요일 오전까지 마쳐야 할 일을 아직 절반도 못 했기 때문에 이 새벽까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일하다 말고 약간의 리프레쉬를 위해 서재에 글을 써본다. 자, 이제 다시 일하자. 내일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잠들어야지.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어쩌다 이 책의 북콘서트 진행을 맡았다. 미리 책을 다 읽어야 재미있는 질문도 뽑고, 원활하게 진행을 할 수 있을텐데. 다가올 10일 안에 공부모임도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또 한 권 있다. 두 권을 최대한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을 잘 이해할 방법을 터득하면 좋겠다. 아! 빨리 일하자. 빨리 책 읽고 빨리 대본도 작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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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봄...겁나 재밌게 봤습니다.
스토리를 다 알았지만...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내내 몰입하게 되더군요.
근래 본 한국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감은빛 2023-12-11 18:50   좋아요 0 | URL
네, 야무님.
보신 분들 모두 연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편집을 잘 했다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도 기회를 만들어 꼭 보려고 합니다.
 

완벽주의자


또 누군가에게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들었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회의에서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통찰력으로 파악하는 분을 만났다. 그날 회의에 어느 분이 못 나와서 사전에 합의된 준비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서 몇몇 분들이 평소 그 분이 좀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날 못 나온 사람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는데, 다들 그 말에 동의하고 수긍했다.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으로 소소한 일들을 잘 해내지만, 좀 큰 일이 주어지면 소화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다를 수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계신 다른 선배 한 분을 향해서도 딱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표현에 대해서도 다들 딱 맞는 설명이라고 동의했다. 그 분의 표현이 짧으면서도 딱 적절하다고 느껴 다들 놀라워했다. 경험이 많은 것에 대해 타로 카드나 아로마 카드 등으로 상담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그 분은 나중에 나에게도 한 말씀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 완벽주의자 라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늘 들어왔던 말이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가끔은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득보다는 실이 될 때가 더 많은 성향이다. 평소 생활은 썩 그렇지 못한데, 일을 할 때면 늘 저 완벽주의자 기질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자연히 저 기질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도 좋은 뜻과 그렇지 못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투로 깨닫는다.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이 원한다고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못 고치고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좋지 않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는 일이 내 기준으로 완벽하게 될 때까지 계속 손을 댄 다거나(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적당히 괜찮다고 여겨도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경우), 아니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때도 있다. 대개 짧은 시간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다. 몇 해전 친한 친구와 같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회의를 진행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보좌관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등 한 20여명이 참여한 회의였는데,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자꾸 논점을 흐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내가 바로 잡아주고, 발언들 중간중간에 핵심을 정리해주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회의를 마칠 때 참여한 분들의 발언을 전부 정리하고 요약해서 공유했었다. 회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음에도 각 발언자들의 순서와 발언의 요지를 머리 속에 잘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간이 회의록을 폰으로 만들어서 공유까지 했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할 때 그 정도로 집중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다고 했다.


지겹게 듣고 있는 저 완벽주의자 소릴 또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버릴 수 없는 기질이라면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숫자 착오 /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어려움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파주행 좌석 버스를 탔다. 언젠가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이용해 경기도를 오가는 좌석버스들은 입석을 금지하고 좌석이 꽉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것 때문에 추위에 1시간 넘게 서너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입석으로라도 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벌금을 맞는다며 매몰차게 출발해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여유있게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퇴근시간 보다 조금 일찍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겨울에 버스 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게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기 전에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류장 보다 몇 정류장 앞으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좌석 버스는 정류장 간격도 길고 퇴근 시간에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며칠 전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년 겨울 몇 차례 1시간씩 추위에 떨며 버스들 여러 대를 그냥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조마조마했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 정차 위치를 예측해 움직였다. 남은 좌석 수를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몇 좌석이 안 남았을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앞쪽에서 타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앞에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의 없이 그 사람들을 미쳐내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정말로 다행히 나까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나서 기사님께서 다음 사람을 제지했다. 딱 내 차례에서 좌석이 다 찬 것이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앉을 자리르 찾았는데, 어라!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은 버스를 출발시켰고, 내가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전체 좌석을 훑으며 빈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내게 얼른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가 없어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너번을 둘러봐도 정말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께서 숫자를 착각해 나 한 사람을 더 태운 것이다. 나는 30분 넘게 자동차 전용 도로를 서서 가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 바로 뒷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거부 당했다면 이번에도 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배차 간격이 긴 이 좌석버스들은 자주 오지도 않아서 한 대를 보내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린 버스도 좌석이 없다고 또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것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오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딱 한명의 승객이 내렸다. 그 분은 내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내렸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님도 내가 앉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출발했다.


올 겨울에 몇 번이나 더 그 좌석 버스를 타고 파주를 가야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게 참 경기도민은 어떻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라는 말인지. 차라리 입석 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안전 문제 때문에 내린 그 조치를 쉽게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안에만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기도의 버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 다행히 전철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거나 특정 좌석 버스 노선 밖에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노선에 탑승객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보러 파주에 갈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낮이나 밤에 버스를 타면 거의 대체로 대여섯 명도 안 되는 승객이 탄 것을 본다. 어떤 경우엔 나 혼자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넘게 달리기도 한다.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를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눌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뀔까? 뭐든 대안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공부모임


지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경영을 책임지거나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과 복지 영역이 만나 이 지역에 꼭 필요한데, 아직 잘 구현되지 못한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월 첫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모임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다들 정말 바쁜 분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2월에는 [래디컬 헬프]를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책은 일찍 공지가 되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구매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야 구매했다. 이번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대한 빠르게 1번 읽고, 모임 직전에 중요한 내용들만 다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첫 모임에선 [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모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선 참가자들 모두 지역에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들이라 그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한 분 한 분 말씀하실 때마다 배울 점들이 보였다. 책의 내용을 두고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이 일본의 굉장한 사례를 어떻게 우리 동네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과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향이 각자 달랐는데,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같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약간 틀에 박힌 활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과 위기감을 갖고 있었디 때문에 이런 공부모임이 무척 반가웠다. 그날 마지막 소감으로 나는 이 자리가 나에게 힐링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었다.
















긴 시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보니 꾸준히 나가던 독서모임들도 다 그만두었고, 등산모임도 못 나간지 오래되었다. 늘 나오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는 늘 힘들다. 피곤하다. 죽을 것 같다고 답하며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젠 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찾아볼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내가 더 즐겁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내 관심에 맞는 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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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날에는 완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그보단 계속 수정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게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하더라구요..ㅎㅎ

저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비교적 서울 직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라 출퇴근엔 그리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되는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공부모임은 이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임에 이제는 회의감이 드는지라...이제는 뭐든 혼자하고 혼자 잘 할 수 있는 배움의 루트를 찾고 있죠. 찾아보니 참 많더군요. 모임은 모임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 이제는 피하게 되요~^^

감은빛 2023-12-09 03:4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아요.

경기도는 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전철로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더라구요.
경기도의 일부 지역 버스는 정말 답이 안 나올 정도였어요.

저도 대체로는 야무님처럼 공부 모임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한 모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 구성원들이 죄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것들이 많고,
그 분들의 경험담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