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은 8월 말에 전세 계약이 끝나는데, 6월 초에 집주인의 대리인(집 주인은 대리인 영감의 딸이다.) 영감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있으니, 계약 만기일에 나가달란다. 우린 서류상 집주인인 딸이 들어오려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들어와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 여자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오기 시작했다. 영감은 그에 대해 별 말없이 그냥 우편물을 모아놓아 주면 나중에 찾아가겠다는 말만 했다.
이사를 나가려면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하니, 계약금으로 전세 보증금의 10%롤 달라고 했다. 영감은 알겠다고 대답했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합의했다. 그런데 그 후로 돈을 안주고 계속 버티면서 한 달 이상을 보냈다. 6월 말경에 한창 집을 보러 다니다가 계약금을 왜 아직 안주시냐 물었더니, 자기는 계약금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단다. 계약금을 주셔야 우리도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소릴 여러번 하고서 계약금 언제 주실거냐고 물어보니, 7월 초에 준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한창 집을 보러 다닐 즈음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손님을 데려가니 집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다. 집 주인에게 연락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 집 주인이 들어올 사람 있다고 얘기하더라고 부동산에 전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다시 한번 집주인에게 확인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7월 초가 지났다고 다시 계약금 얘길 꺼냈더니, 이번에는 낮 시간에 공인중계사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한다. 직장인이라 낮에는 안되고, 저녁에는 볼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건 자기가 안된단다. 그러면 계좌로 보내주시고 공인중계사에서 영수증 만들어놓으면 곧바로 들러서 싸인해놓겠다. 나중에 시간되실때 찾아가시면 된다고 했더니, 자기는 안된단다. 왜 안되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냥 무조건 안된단다.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하고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확인 받았다고 말해도 또 안된단다. 그렇게 같은 억지만 반복하더니 이제는 계약금을 못 주겠다고 발을 뺀다. 약속을 왜 안지키냐고 했더니, 약속 한 적 없다고 한다. 만기일에 보증금 전액을 주겠단다. 그래서 우리가 계약할 당시에 계약금 10% 냈던거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 말에는 자기랑 계약한 게 아니란다. (서류상으로는 자기 딸이랑 계약한 거고, 자기가 대리인으로 나와서 서류에 도장 찍었다.) 그럼 누구랑 한 거냐고 물었더니, 앞서 살던 사람이랑 계약한 거라고 말한다. 집 주인이 아닌 세입자와 계약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물었더니, 또 거기엔 답이 없다. 자기는 계약금 받은 적이 없으니 못 주겠단다. 분명히 따지자면 우리는 그에게 계약금을 지불했고, 그는 세입자에게 그 계약금을 다시 전달했을 것이다.
이쯤되면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
좀 언성을 높이면서, 여러차례 약속을 어긴 사실에 대해 지적하면서 어른이 되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러시면 어떡하냐?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갑자기 젊은 여자가 전화를 뺏는다.
다짜고짜로 넌 애미애비도 없어? 묻는다. 아마 서류상 집 주인인 딸이겠지.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나보다. 모르는 척 하고, 누구신데 갑자기 끼어드냐? 누군지 밝히고 말씀하시라고 했다. 그 여자는 언성을 높이면서 듣자듣자 하니 젊은 놈이 싸가지가 없다고 지껄인다. 그래서 반말은 그쪽에서 지금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당장 말 똑바로 하지 않으면 나도 같이 반말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여자 씩씩거리면서 말도 똑바로 못하면서 뭐라고 언성을 높인다. 누군지 왜 말 안하냐? 말 안할거면 다시 전화 바꾸라. 왜 갑자기 끼어들어 난리냐고 물어도 절대 자기가 집주인이라는 말은 안한다.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처음에 계약할 때, 저 여자가 시세도 잘 모르면서,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놓았다고 뭐라고 영감한테 했던 모양이다. 계약 도중에 전화로 뭐라 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이 여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으로 주소를 옮겨놓았다. 아마 재개발이나 뭐 다른 이권 때문에 그런 모양인데, 위장전입으로 엄연히 불법이다. 계약 만료를 3달 앞두고 갑자기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말을 한거나, 계약금을 주기로 해놓고 자꾸 시간을 끌고 말을 바꾸는 모양새를 보니, 멍청한 영감이 혼자 한 짓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저 딸년이 옆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 것일테지. 암튼 이 여자는 계속 언성을 높여 뭐라 떠들어대고, 나도 지지않고 언성을 높였는데, 전화를 바꾸라고 계속 다그치니, 약속도 안지키고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무슨 약속을 안 지켰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약속을 몇 번이나 어긴 건 그 영감인데, 무슨 소릴 하나 들어보니, 계약 만기일에 집을 빼고 어쩌고 말한다.
아직 만기일은 한달 반이 남았는데, 미래 날짜에 약속을 어겼다는 억지를 부리나.
막판에는 이 여자가 쌍욕을 내뱉았다. 그래, 니가 이제 욕까지 하는구나. 내가 어릴때부터 한 욕하는 사람이거든. 어차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 실컷 욕을 퍼부어주었다. 욕으로 못 이길 것 같으니 그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에이 진짜 서울 살면서 제대로 상식이 박힌 집 주인을 만난 적이 없다! (딱 한번 부천에 살때 제대로 된 집 주인을 만났다.)
어떤 주인은 한 겨울에 가장 추운 날(언론에서 몇 십년 만의 추위라고 떠들던 날) 밤에 보일러가 고장났는데, 그걸 못 고쳐주겠다고 세입자가 잘못해서 고장 냈으니, 알아서 고치란다. 그때 큰 아이가 갓난쟁이여서 우리 부부가 밤새 잠도 못자고 번갈아가며 아기를 안고 있었다. 얼음으로 변해버린 방 바닥에 도저히 아기를 눕힐 수가 없었다. 보일러 기사님을 불렀다. 보일러가 수명이 벌써 지나서 고쳐도 임시 방편 밖에 안된다고 했다. 이렇게 날씨가 추우면 금방 또 고장날 지 모른다고 한다. 주인에게 갓난 아기가 있으니 보일러를 갈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인 아줌마가 계단에서 아기를 안고있는 나를 밀어버리고는 욕을 하고 문을 닫았다. 그 겨울을 그 집에서 보낼 수가 없어서 급하게 집을 내놓고 이사를 나왔다.
또 어느 주인은 녹물이 나오는 문제를 고쳐주지 않고 몇 달을 보냈다. 처음에 집을 볼때 이 집은 장기간 비어있었다. 집은 좁았지만 깔끔하게 수리가 되어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집을 볼 당시에는 녹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부동산 사람이 집보기 전에 한동안 물을 틀어 놓았던 모양이다. 이사를 들어오고 나서 녹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정 시간 이상을 물을 쓰면 괜찮아졌는데, 몇 시간 동안 물을 안쓰다가 처음 틀면 어김없이 녹물이 나왔다. 그렇다고 물을 쓸때마다 몇 십분씩 녹물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버려지는 물과 수도요금이 아깝기도 하고, 그렇게 기다릴 여유도 없다.
아이들이 어려서 자주 목욕을 시켜야 했는데, 그때마다 녹물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동산과 집 주인에게 녹물을 고쳐 줄것을 요청했는데, 계속 알았다는 답만 돌아왔다. 1주일, 2주일, 한 달, 두 달. 전화를 할때마다 곧 하겠다는 답만 돌아오고, 실제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거래했던 부동산과 대판 싸우고, 집주인과도 전화로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변호사 친구에게 자문을 받아 내용증명을 보냈다. 녹물이 나오지 않도록 집을 수리할 것과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주인이 찾아왔다. 미안하다고 자기는 몰랐다고 했다. 일주일 안에 공사를 해주지 않으면 곧바로 소송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공사가 급하게 이루어지느라 수도 관이 눈에 보이게 벽을 타고 연결되었다. 깨끗하게 고쳐진 집이 좋아서 들어왔건만, 수도관이 흉물스럽게 집안 전체를 가로지르는 집이 되어버렸다.
이번 주인(딸이 아닌 영감)은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베란다에 물이 새는 문제를 고쳐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먼저 살던 세입자를 통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뚝뚝 떨어진다는 얘길 들었고, 계약할 때 그 하자를 고쳐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한번 공사 업자가 방문했는데, 단순히 어느 지점에서 물이 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낡아서 비가 들이치면 낡은 벽돌이 빗물을 머금으면서 아래로 내려보내고, 그렇게 벽돌이 머금은 빗물이 베란다에 뚝뚝 떨어지는 거라고 했다. 윗층을 방문해보니,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주인에게 벽돌에 방수처리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얘길 하고는 더이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는 늦여름에 들어와서 가을과 겨울, 봄을 나는 동안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다시 여름이 되자 미친 듯이 비가 내렸는데, 말 그대로 집중호우였다. 비가 많이 오니 베란다에서 뚝뚝 수준이 아니라 비가 내리듯이 물이 샜다. 여름엔 베란다에 물건을 놓아둘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시 몇 차례 고쳐달라고 요청을 했건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하는 짓이 이게 뭔가? 계약금도 준다고 약속했다가 태도를 바꿔 못 주겠다고 하고, 거짓으로 들어올 사람이 있다고 했다가 부동산 때문에 들통이 나고, 딸이란 년은 앞뒤없이 욕이나 퍼붓고 부녀지간에 잘 하는 짓이다! 정말!
문제는 법으로는 계약 만기일에 보증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되어 있고, 만기일 이전에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부동산 거래는 전세던, 월세던, 매매던 상관없이 무조건 전체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먼저 건네줘야 성립된다. 그래서 관행상 대부분의 집주인과 세입자가 미리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닌가! 이제 어쩌라는 거냐? 나가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계약금을 안주면 나도 나갈 수 없다.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