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금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다.


책 만지는 일을 하루이틀 해본 것도 아니면서 가끔 이렇게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곤 한다. 조심성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약 1년쯤 전에도 서두르다가 손가락을 깊게 베인 적이 있었다. 1년만에 다시 깊은 창상(베인 상처)을 입었다. 고작 종이에 베인 정도를 창상이라 표현한 것은 살갖이 좀 깊게 벌어져서 잘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상처가 아물려면 아무리 트롤(아내는 상처가 빨리 낫는 편인 나를 보고 트롤이라고 부른다.)이라 불리는 나라고 해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베인 상처를 입고 보니, 상처가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들면서 갑자기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잠시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까 종이에 베일때에도 그랬다. 아무생각없이 종이를 꺼내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날카로운 종이 날에 베이는 순간, 문득 감각이 예리해지면서 찰나의 고통과 함께, 머리 속으로 생각이 빨라졌다. 일단 상처를 확인. 살갗은 벌어져있지만, 아직 피는 올라오지 않았다. 곧 피가 솟아 올라오리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피가 솟아올라서 작업하고 있던 책을 못쓰게 만들기 전에 빨리 휴지를 찾아야 한다. 일단 피가 올라오면 먼저 지혈부터 해야겠지. 아니 그전에 물로 한번 씻고 소독을 하는게 더 좋을까. 소독약이 있었던가. 아니 없는 것 같아. 지금은 약국에 갈 여유가 없으니, 빨리 휴지를 찾아 지혈부터 하는게 더 좋을거야. 아주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빠르게 스쳐간다. 잠시후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휴지를 찾아 손가락을 감싸쥔다. 따뜻한 핏물의 온도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두어 차례 크게 베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늘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무언가 만들기 위해 문구용 칼을 긋다가, 동생이 갑자기 발로 차고 지나가는 바람에 왼손 엄지를 그어버렸다. 뭔가 따끔한 감각이 잠시 들었다가 말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방 바닥에 흘러 주변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칼에 베이고, 아픔을 느끼고, 피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던게 기억이 난다. 이게 정말 베인건가. 피가 안나니까 그냥 살짝 아프고 만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암튼 그 상처는 아주 컸다. 지금도 손가락의 절반가량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다.

 

대학시절 농활가서 왼손 검지를(또 왼손이다. 이 수난의 왼손!) 낫에 베였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한 순간의 따끔한 아픔이 지난 후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갑 때문에 상처가 직접 보이지 않아서 혹시 큰 상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가져봤다. 하지만 잠시 후 피가 솟기 시작하자 순신간에 장갑이 붉게 물들어버릴 정도로 상처는 컸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나이였다면 당연히 병원을 갔어야 했다. 나는 솔직히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저절로 아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깊이 벌어진 상처가 저절로 아물거라는 철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농활 인원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선배들도 후배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며칠 더 일을 했다. 한 선배는 설겆이 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친게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농활을 끝내고 돌아올때까지도 손가락은 낫지 않았다. 상처를 본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며 당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파상풍 때문에 자칫하면 큰일 날뻔 했다고 의사도 야단을 쳤다. 내가 시간을 끌었던 탓에 상처부위를 매끄럽게 꿰매지못하고 살갖의 일부를 잘라냈다. 덕분에 나는 손가락을 매끄럽게 굽히지 못하게 되었다. 약 1년 정도 왼손 검지를 늘 펴고 살았다. 검지 손가락의 윗부분을 주욱 가로지르는 이 흉터는 엄지에 난 매끄러운 곡선의 흉터와 달리 지그재그, 삐뚤빼둘이다. 꿰멘 흔적도 양 옆으로 남아있어 아주 보기 싫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 손에 자잘한 흉터들이 여러개있다. 이런 상처들은 언제 어디서 다쳤던 것인지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늘 다친 상처는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작년에 다친 상처도 이 보다는 더 컸는데,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어라 그러고보니 그때 다친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다쳤다고 인식하는 순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 처럼 느껴지는 것.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인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누군가가 차에 치이거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런 장면을 종종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건 내가 그런 장면을 많이 봐서 그렇게 착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겪기 때문에 작가들도 보편적인 경험의 결과로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건지 모르겠다.

 

 

※ 작년 가을(10월 25일) 다른 블로그에 쓴 글. 해당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여기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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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다.

뭔가를 하다보면 늘 또다른 무언가를 잊어버린다.

예전에는 꼼꼼하게 해야할 일들을 체크해두고,

잊지 않고 챙기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해치웠다.

나름 유능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게다가 이 정도쯤 되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대충 눈치를 채는 듯 하다.

저 인간이 요즘 좀 이상하구나! 싶을 것이다.

 

힘들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견디기 어렵다.

최근 몇 달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어이없는 실수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살짝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분명히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하나도 즐겁지 않을걸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왜 늘 한숨을 쉬고 있을까?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왜 읽을 시간이 없을까?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왜 쓸 시간이 없을까?

왜 하고 싶은 일들을 맘껏 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제 한 친구에게 걱정과 우려가 섞인 충고를 한참동안 들었다.

나에게 뭔가 기대를 갖고 있던 친구.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나를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왜 내게 그런 기대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그의 기대에 맞춰주어야 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이라도 맞춰줘야 하는 걸까?

 

최근 한 후배에게 상담요청이 들어왔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고 지난 겨울에 처음 만나서,

그동안 몇 번 만나지도 못했지만,

하지만 그 후배는 내게 큰 신뢰를 보내는 눈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 10년 전에 내가 겪었던 일과 거의 비슷했다.

다행히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여,

내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나름의 충고를 들려줄 수 있었다.

비록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보내주는 신뢰 때문이었는지, 나는 진심으로 그가 이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기를 바랐다.

제발 나처럼 일을 잘못 풀어서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내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기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런 기대들이 나의 '꼰대 의식'을 자극하여

마치 내가 뭐라도 되는 양 한껏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못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다시 우울해지곤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게 기대를 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런 고민들을 풀어보고 싶어도 선뜻 말을 걸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는 냉정하고 차갑게 그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라고,

내게는 바보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이 마치 나를 비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뭐 하나 잘난 것도 없으면서 마냥 잘난척 하는 애송이는 아닐까?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게 되면,

늘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답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남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지금의 내 선택은 내가 원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원했던 것일까?

 

친구의 책상에서 우연히 [은퇴의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동갑이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이가 벌써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가?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른 대화를 하느라고 기회를 잃었다.

입으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내뱉으면서

손으로는 주르륵 책장을 넘겼다.

눈은 하릴없이 페이지들 사이로 옮겨다녔다.

 

그러다 문득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흥미에 재능을 연결하라!"

번역어 특유의 뭔가 어색한 느낌 때문에 오히려 더 이 말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며칠 전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신과는 대화하기가 어렵다.

당신은 너무 '정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할 지 모르겠다."

그랬던가?

나는 '정치'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었던가?

그가 종종 '녹색당' 이야기를 물어서 말해준 것 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그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래서 내가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나는 정치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었구나!

 

과연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내 흥미와 내 재능이 만날 수 있는 일은 과연 뭘까?

 

이 책에서는 사람을 6개의 분류로 나누고 있다.

좌뇌와 우뇌의 발달 여부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사색적, 관계지향적, 활동적 성향을 또 하나의 기준으로 두었다.

 

1. 분석적이고 사색적인 사람

2. 조정하고 조직하는 사람

3. 기교와 기술이 있는 사람

4. 영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

5. 격려하며 영감을 주는 사람

6. 쾌활하게 행동하는 사람

 

나는 과연 어디에 해당될까?

경우에 따라서 1번, 2번, 4번, 5번이 될 수 있는 듯 하다.

6개의 유형 중에 4개의 유형에 겹치는 사람.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인가보다.

 

이 책은 이어서 각 유형별로 어떤 일에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내용은 너무 방대하여 여기에 다 소개하기 어렵겠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만 유용한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적절한 생각할 꺼리들을 던져준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게 천천히 고민해보련다.

 

과연 나의 흥미와 재능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긴 호흡으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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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굿 2012-06-29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마흔도 안 됐지만 은퇴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직/직장생활보다는 개인/독립적인 일을 하고 싶다.

감은빛 2012-06-29 11:3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부분은 '은퇴'가 아니라 '독립'의 개념인 것 같네요.
찾아보시면 개인/독립적인 일들도 종류가 많더라구요.
원하는 방식의 일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blanca 2012-06-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제 자신을 잘 모르겠어요.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내가 원하는 내가 정말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일인 것 같아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2-06-29 11:35   좋아요 0 | URL
어려운 일이죠.
저는 지금까지는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보니 그게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정말 잘 모르겠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권경희 지음, 임동순 그림 / 미디어일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책상위에서 노란 표지의 책을 만났다. 아마 아내의 책이겠지 생각하며 잠깐 살펴봤다. 제목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이고, 말풍선 안에 ‘알콩 달콩 깨알 같은’이란 글씨가 들어가 있다. 덩치가 큰 고양이 아래에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란 문구가 또 들어있다. 아, 만화였구나. 그러고 보니 표지가 만화 그림체였다. 주인공이 분명해 보이는 두 여성은 무려 원더우먼의 복장을 하고 곡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밭을 누비고 있다. 날씬한 고양이 한 마리도 역시 원더우먼 복장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원더우먼은 어렸을 때 AFKN을 통해 가끔 보았던 만화다. 슈퍼맨과 배트맨과 그 외에 민망한 스판 바지를 입은 이름 모를 몇몇 영웅들이 등장하곤 했던 만화. 영어로 된 만화라서 내용은 전혀 몰랐다. 여름 방학 때 몇 주간 외갓집에 머물 때에는 영어를 잘했던 외삼촌이 가끔 내용을 알려주곤 했지만, 동시통역을 한 것도 아니고 대충 돌아가는 내용만 알려준 것으로는 만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만화를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고 재미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원더우먼을 만난 것은 ‘원더걸스’라는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저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었던 거였구나. 새삼 옛 만화 생각을 해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여성이라는 의미로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일까? ‘귀촌일기’라는 제목만 봤다면 곧바로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만, 만화라는 점과 ‘귀촌일기’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랄하고 유쾌한 그림과 문구들 덕분에 호기심이 동했다. 다른 할 일을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아, 이 만화 정말 재밌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몰입을 시작하여 한참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다. 문득 휴대폰 문자 알림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읽었다. 이쯤에서 그만 읽고 원래 하려던 일을 해야 하는데, 두 원더우먼과 두 고양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모니터는 3차원 파이프가 무한 반복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책은 이제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지금 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고, 머릿속도 이미 이 책 내용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를 그냥 꺼버리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마흔 살 권씨는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왔다. 농사에 대해서는 책으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 서른여섯 임씨는 만화를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다가 권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귀촌을 작당한 지 한 달 만에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내 주변에 몇 해째 귀농이나 귀촌을 머리나 입으로만 열심히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물론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한 달 만에 결행한 이들 두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혹은 그만큼 대책 없고 생각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여자 두 사람이 고양이 두 마리와 시골에서 농사짓고 그림(임씨는 만화) 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답답하고 힘든 여정이 그려질 거라는 약간의 편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는 유쾌하고 재밌었다. 물론 어렵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담아내는 태도는 단순히 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태도와 방법들은 유쾌하고 따뜻했다. 일관되게 보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은 돈이 없어도 상관없고,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에도 개의치 않았다. 제일 마지막 장의 제목인 ‘정말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꼭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잘 살고 있었다.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임씨의 잡초 요리 레시피는 재밌었지만, 당장 도시에서는 재료를 구하지 못해 시도해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진들과 인터뷰를 통해 만화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본 것도 좋았다.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있었다. 무심코 집어든 책 한 권이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꼭 추천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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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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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고 이윤정씨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지 아직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이윤정씨는 1997년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에 입사하여 고온테스트 (MBT burn-in) 공정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고온에 타버린 반도체 칩의 검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벤젠 등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퇴사후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 갑자기 악성 뇌 종양 진단을 받았다. 결국 여덟 살, 여섯 살 아직 어린 아이 둘과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먼지 없는 방』의 주인공 정애정씨처럼 고 이윤정씨도 무척 건강했다고 한다. 본문에도 언급되듯이 신체검사를 거쳐 매우 건강한 사람들만 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몸의 변화, 위험 징조를 미리 느끼지만,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밖으로 알리지 못한다. 몇몇 친한 사람들끼리만 쉬쉬하거나, 소문처럼 떠도는 말들에 귀를 닫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삼성이기 때문이고, 지금 이 직장을 그만두면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정애정씨와 황민웅씨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커플이다. 둘 다 무척 건강한 체질이었지만, 남편 황민웅씨가 신설라인의 셋업멤버로 차출되어 평소보다 극도로 나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 정애정씨는 다른 직업을 얻어 공장을 나오지만, 남편은 결국 어린 두 아이와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책을 덮고 무거운 마음으로 반올림 온라인 까페에 접속했다. 한동안 고 이윤정씨의 사연이 메인에 떠있었는데, 그새 또 새로운 사망소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 윤슬기씨의 사망소식은 삼성 직업병 제보 중 56번째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삼성 LCD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다가 근무 중 쓰러져서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13년간 수혈에 의존하여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바로 어제인 6월 2일에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역시 그동안의 희생자들처럼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다.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삼성에게 버림받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Challenging the Chip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세계적으로도 반도체 및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인체에 유해한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몸을 보호할 적절한 보호장구는 갖추지 못한 채 작업환경으로 투입되었고, 그로 인해 각종 심각한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공장들을 철수하고 대부분 제 3세계 국가들로 옮겼던 것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기업들은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낮은 급여를 받고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심각한 질병에 걸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랍고 화가나는 일은 많은 나라의 사례들이 대부분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사례에서도 기업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책은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이란 책이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의 부제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인데, 나중에 그 이름으로 다시 책이 한권 더 나온다. 삼성의 티비 광고 문구인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을 비꼬아 서 만든 이 카피는 정말 이 사태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은 르포작가 희정씨가 쓴 책이다. 희정씨는 이 책을 통해 <노동자 시인 조영관 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지 없는 방』의 뒷부분에 정애정씨가 스스로 말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반도체 공장의 먼지 없는 방은 공사현장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화학약품을 쓰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뒤는게 깨닫는다. 그렇다 클린룸(먼지 없는 방)은 웨이퍼(반도체의 재료)를 위한 클린룸이었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클린룸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발암물질인 벤젠을 비롯한 온갖 독성 화학물질이 떠도는 죽음의 방인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아니었다면, 노동자들은 스스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찾고, 동료들 사이에서 알리고, 교육하여, 회사에 올바른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하고, 백혈병과 뇌종양을 비롯한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작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외면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차라리 덜 우습다.

 

지난 1월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는 부디 세상이 모두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망자들과 현재 투병중인 환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보상과 산재인정을 해주고,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보다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고, 그들이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들이 무엇이며, 인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교육해야 할 것이다. 제발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개선되어 더 이상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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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2-06-04 11:19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제 글이 비록 졸고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대신 널리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쉽싸리 2012-06-0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은 문제가 많지만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밝지 못할 겁니다. 힘든 싸움을 하시는 분들에게 건투를...

감은빛 2012-06-07 17:29   좋아요 0 | URL
반올림과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벌써 여러해째 외롭게 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요.
부디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공감하여,
삼성이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랍니다!
 

비우기, 버리기, 내려놓기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 3 Job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첫번째는 돈버는 직장 일이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돈 못버는 일이다.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과 녹색당 일이 그것들이다. 한 친구가 그랬다. "넌 어떻게 그렇게 돈도 안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 모르겠다. 살면서 돈 되는 일을 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것이 나름 재밌고, 보람도 있었지만 어느순간부터 한계가 느껴졌다. 일단 체력의 한계가 왔다. 새벽까지 밤 잠 못자고(혹은 안자고) 뭔가를 하는 일이 거의 특기에 가까운 나에게도 지금처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두번째로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늘 뭔가에 치여서 급하게 처리하고 또 다른 급한 일을 맞이하다보니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점점 더 나 자신에게 투영해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내 잣대로만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구나! 내가 나를 자꾸만 고집할 수록 모든 일이 자꾸만 더 어렵게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나 자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서서히 나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노찌따

 

주말이었던가? 아내는 어딘가 약속(혹은 모임)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어느 오후,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근처에 놀러가는 중이었다. 작은아이에게 어디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웃으면서 "노찌다(녹색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이가 끼어들어 녹색당 가는 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작은아이는 "노찌따 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었다. 한참 집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왔냐고 물었다. 역시 아이는 이번에도 "노찌따"라고 답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역시 어디 공원에 바람이나 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작은아이에게 어디 놀러가냐고 물었다. 역시 돌아온 대답은 "노찌따"였다. 어쩌다 작은아이에게 놀러가는 곳은 모두 녹색당이 되어버렸을까? 아마 작년 가을부터 창당준비과정에 참여하면서 회의나 모임에 나가야 할 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아이에게 녹색당이 놀이터와 거의 비슷한 의미이듯이, 큰아이도 녹색당에 함께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거기 가면 많은 이모들과 삼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뭔가 먹을 것도 잔뜩 주고, 함께 놀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5월 초에는 실제로 아이 둘을 데리고 녹색당 지역 모임에 참여했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려와서 대충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바쁘게 움직이면서 아이들에게 녹색당에 놀러갈 거라고 했더니 두 녀석이 손을 맞잡고 껑충껑충 뛰면서 좋아했다. 물론 모든 녹색당 모임이 녀석들에게 재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큰아이의 경우 조금 더 크면 이제 더이상 아빠를 따라다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늘 따라와서 투정부리지 않고 잘 지내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나에게도 녀석들처럼 녹색당이 놀이터와 비슷한 의미가 되어, 모임이나 행사에 나가는 것이 재밌고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맡고 있는 역할이 너무 무거워서 벅차고 힘겹다고 느껴지는 요즘 그런 바램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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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5-30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부러운데용 ㅎ

감은빛 2012-06-04 11:2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뭐가 부럽다는 걸까요?
아이들이랑 놀러다니는 모습이?
그거라면 라주미힌님도 그리 멀지 않았어요! ^^

꼬마요정 2012-05-3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럽습니다.^^

감은빛 2012-06-04 11:21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님. 안녕하세요.
어떤 점이 부러운건지 모르겠지만,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2-05-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찌타^^ 아이들이 크면 이 가치와 아버지가 주셨던 무언의 가르침이 남아있겠지요. 부럽습니다.3

감은빛 2012-06-04 11:2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던 참입니다.
그래도 녹색당이 이 절망적인 세상에 작은 희망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블랑카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