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좋은 육체 노동


오늘 한반도에 '카눈'이라는 커피 제품 이름과 유사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기상관측 상 한반도를 종으로 지나가는 태풍은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이 태풍은 오키나와를 지나쳐 북서쪽 중국 본토 방향으로 오르다가, 갑자기 멈춰 한동안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갑자기 거의 180도 가까이 방향을 꺾어 일본 방향 동쪽으로 나아갔다. 이런 경로를 보인 태풍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일본으로 계속 나아가지 않고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거의 90 가량 꺾어서 한반도를 향해 올라왔다.


태풍이 따뜻한 남쪽 바다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세력이 큰 '강'에 해당한다고 언론에서 엄청 강조하고, 재난 문자도 수십번 왔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소를 9개나 운영하고 있는 우리 조합에는 갑자기 빨리 태풍 대비 점검을 하라는 요청들이 빗발쳤다.


짧은 휴가 동안 아이들과 놀다 오고 난 후, 주말에 또 친한 선후배들과 깊은 산 속 계곡에 피서를 잠시 다녀왔다. 원래는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기획된 행사였고, 나는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 안 갈 생각이었는데, 후배 활동가가 함께 가달라고 요청을 했고, 선배들도 내가 함께 가는 걸 당연히 여기고 있길래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끌려가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 이야기는 좀 있다가 자세히 쓰기로 하고. 암튼 그렇게 푹 쉬고 와서 일상 복귀하자마자 아침부터 급한 전화가 계속 왔다.


해마다 태풍 대비 점검을 했었다. 그때도 역시 대부분 급하게 태풍이 오기 직전에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창일 시기에 땡볕에 옥상에서 긴 시간 힘든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이번에는 그런데 급해도 너무 급하게 연락을 받았다. 태풍이 우리나라로 올 거라는 예상을 미국이랑 유럽은 했다는데, 우리나라 기상청은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거라고 예상했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문제는 이게 중부 지방까지 치고 올라오는 태풍으로는 아주 오랜만이라는 것. 우리 조합이 태양광발전 사업을 시작한 지 거의 10년인데, 그 10년 동안 중부지방에 직접 영향을 미친 태풍은 아직 없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여러 보험회사 담당자들과 보험료 관련 협상을 할 때 그런 얘길 들었었다. 중부지방에 직접 태풍이 올라오지 않은 지 시간이 좀 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큰 피해가 없지만, 만약 중부지방에 태풍이 지나가면 분명 몇몇 태양광 발전소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로 인해 보험료도 인상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태풍 대비 점검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자마자 태풍의 최대 풍속을 찾아봤다. 태풍은 초속 34미터를 넘으면 '강'으로 분류된다. 카눈은 당시에 초속 40미터의 '강'으로 분류되는 태풍이었다. 우리 태양광 발전소들은 대부분 초속 30미터 이상을 견디도록 설계된다.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한반도 동쪽은 초속 40미터가 될 지 모르지만, 수도권은 초속 25미터 가량이 최대일 것으로 예상치가 나왔다. 일단 설계도 상으로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건 최근에 지은 서너개 정도가 해당될 것이고, 지은 지 오래된 초기 발전소들은 확실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런데 장비도 인력도 부족했다. 발전소 하나에 200여 개의 모듈이 들어가 있고, 각 모듈 당 구조물과 체결한 볼트와 너트는 4개씩 된다. 그러니 800개의 볼트, 너트를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발전소는 9개다. 어떤 발전소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만 점검이 가능하고, 어떤 발전소들은 손만 뻗어서 점검이 가능한 곳들도 있다. 일단 나를 포함한 실무자 두 명이서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조합원들이나 임원들이 도와주었는데, 올해는 도움을 쳥해도 시간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조합 감사님이 시간이 된다고 연락이 왔다. 고향인 부산 사람으로 내게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 분이고, 이런 류의 노동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 형이 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장비와 차량을 더 구해야 하는데, 사다리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여러 발전소에 사다리를 실어 다닐 차량이 구해지지 않았다. 해마다 발전소 청소를 다니거나 이번처럼 긴급 점검을 다녀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차량을 빌리는 일이었다. 승용차라면 렌터카나 공유카 업체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트럭은 반드시 기사님 인건비를 포함해야 빌릴 수 있다. 고맙게도 동네에 트럭을 흔쾌히 빌려주시는 법인들이 두세 곳 가량 있어서 해마다 어떻게든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곳들 모두 사정상 빌려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고, 우린 답변을 기다리느라 지쳤다. 마음은 급한데 답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빌리는 입장에서 재촉하기도 애매했다.


암튼 결국은 감사님이 해결책을 주셨다. SUB를 빌려서 뒷좌석을 접으면 사다리를 싣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 사다리가 좀 길어서(이중 사다리라 늘리고, 펼치면 4배 길이가 되는데, 평소에 1/4 길이일 때에도 충분히 길다.) 안 실리는 거 아닐까 하는 나의 의심과 달리 감사님 말씀처럼 사다리를 간신히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와 감사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점검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너무 더운 날이었다. 무더위 혹은 폭염, 뭐라고 부르던 땡볕인 옥상에서 그렇게 힘들게 일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었다. 처음 간 발전소가 우리가 운영하는 발전소 중에 가장 높은 곳이었다. 구조물 높이만 3미터가 넘었고, 모듈의 길이를 감안하면 4미터 가량의 높이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매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도 힘들었고, 불안정한 사다리 위에서 힘을 쓰기 위해 허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빨리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게다가 볼트와 너트를 꽉 조이기 위해 손아귀에도 힘이 많이 들어갔다. 또한 사다리 무게도 무거웠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폭염에 이 정도의 중노동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겨우 모듈 서너장 점검하고 이미 지쳐버린 나와 후배 활동가는 남아 있는 모듈의 갯수를 어림짐작해 보고 나서 의욕을 잃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첫 발전소였다.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 폭염 속에서 어떻게든 일을 했다. 땀이 자꾸 안경에 맺히거나, 눈에 들어가 방해했고, 입고 있던 셔츠와 속옷과 바지는 진작에 땀에 완전히 젖었다. 그 첫 발전소를 마무리하고 다음 발전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팔뚝에 하얀 가루 같은 것들이 맺혀 있어서 떨어보니 소금이었다. 땀이 말라서 소금만 남아 붙어 있었던 거였다. 갑자기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가 생각났다.


그렇게 점검 첫 날은 두 곳의 발전소만 간신히 돌아보았다. 이번 태풍이 발전소 운영 시작 이후 처음으로 중부지방에 올라오는 태풍이라 최근에 지은 발전소들도 형식적으로라도 점검을 하긴 해야 했다. 총 9개의 발전소 중에 경기도에 있는 발전소 하나는 약 1달 전 탐방을 갔을 때 점검을 이미 마쳤다. 서울에 있는 발전소는 8개. 그 중 하나는 평소 접근이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번에도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외하면 남은 건 7개. 그 중 겨우 2개를 첫날 마쳤던 것이다. 남은 것은 5개. 감사님은 둘째날 오전까지만 도와주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는 첫날의 그 가혹한 노동으로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고,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사무실에서 다른 급한 일들을 처리하게 했다. 그래서 둘째날 오전에 감사님과 내가 제일 할 일이 많은 2개의 발전소를 다녀오고, 남은 3개를 내가 혼자 점검하기로 했다.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중노동을 했더니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전날의 그 폭염 속 노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 피로 누적이 지구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어쨌거나 가장 힘들거라고 예상했던 발전소들을 감사님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 대학 선배인 그 형은 정말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하는 타입이었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잘 할 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가끔 멈추고 멍하니 쉴 때마다 쳐다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더라. 혼자만 쉬는 것이 미안해서 내가 잠시 쉬다하자고 말을 걸면 무뚜뚝하게 "쉬어." 하고 한 마디 대꾸하고는 계속 손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세 명의 일하는 스타일을 한 번 분석해봤다. 일단 나는 사무실에 앉아 하는 일 보다는 무조건 힘쓰는 노동을 좋아한다. 사실 그 이틀 간의 고된 노동도 육체적으로는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무실에서 머리 아픈 고민을 하는 것 보다는 좋았다. 그리고 힘이 세지는 않지만, 체격에 비해서는 힘을 잘 쓰는 편이기도 하다. 집중력과 지구력이 조금 약한 편이긴 한데, 어쨌거나 해내야 할 일이라면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힘을 쓰는 편이다. 후배 활동가는 일을 잘 하고 힘도 쎄서 정말 믿음직한 친구이다. 나보다 경험이 좀 부족할 뿐, 일을 하는 걸 보면 대체로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친구는 종종 지구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 폭염 속 첫 날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일을 열심히 잘 했지만, 중반 이후로는 약간 더위 먹은 것 같다고 말하며 일손을 놓고 있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예전에도 그런 모습을 몇 번 보았었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탓할 생각은 없다. 체력이 가능한 만큼 일을 해야 하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젊은 나이와 체격을 생각하면 나보다 체력이 낮은 모습이 아쉬울 뿐. 마지막으로 우리 감사님은 그냥 뭐 말이 필요 없다.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고, 힘도 쎄고, 지구력도 짱이고, 집중력도 짱이다. 발전소 점검 때문에라도 체력을 좀 늘려야겠다고 혼잣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젊은 시절에는 이보다 더 잘 했을 거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젠 배가 뽈록 나온 전형적인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형이 젊었던 시절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뭐 이미지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조금 더 늙었고, 조금 아니 좀 많이 배가 나왔을 뿐.


둘째날 오후에 방문할 3개의 발전소 중 2개는 아직 지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점검할 내용이 없었다. 나머지 1개는 작년에 좀 힘들게 점검을 했기 때문에 올해는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꼭 중요한 부분에서 예상은 깨지더라. 쉽게 마칠거라 예상하고 사다리도 가져가지 않은(작년에 사다리 2개로 긴 시간 꼼꼼하게 점검했었기 때문에) 그 발전소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혼자 한 30분 정도 가볍게 점검을 하려고 갔는데, 구조물과 모듈의 체결 상태가 나쁜 곳들을 대거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떠올렸다. 작년에 이곳에 와서 엄청 큰 벌들의 벌집을 두 개 발견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말벌이라고 생각했던(나중에 생태 전문가인 선배가 사진을 보더니 말벌은 아니라고 함) 그 벌들이 계속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어서 좀 겁이 나기도 했다. 벌집은 두 개의 열에 하나씩 있었는데, 그 두 열에 나와 후배 활동가가 각각 붙어서 작업했었다. 이번에 와서 점검해보니 내가 작년에 점검했던 구간들(벌집이 있던 열 하나를 포함해서)은 대부분 크게 점검할 내용이 없어서 금방 끝냈는데, 후배 활동가가 작업했던 곳들 중 벌집이 있었던 그 구간에 체결 상태가 나쁜 지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뭐 결코 후배 활동가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예상했다면 절대 혼자 사다리도 없이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오판한 것에 대해 좀 아쉬움이 남았다.


암튼 둘째날 오전의 힘든 노동 이후 오후는 혼자 좀 널널하게 다니리라는 예상은 깨졌다. 그 짧은 구간에 체결 상태가 불량한 곳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대충 하고 그냥 모른 척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부 지방에 처음 올라오는 태풍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긴 시간 노동을 마치고 땀에 완전히 젖은 몸으로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게 엊그제와 어제 상황이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할 힘도 의욕도 없어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저녁을 못 먹었어도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깨보니 입술 두 군데가 부르터 있었다. 이런 걸 입술 포진이라 부르던가? 나는 조금 피곤하면 입 주변에 뾰루지 같은 것들이 올라오는 편인데, 이렇게 포진이 생기는 건 정말 피곤하고 힘든 경우인 것 같다.


선물


최근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일이 세 번 있었다. 두 번은 지역아동센터 강의였고, 마지막 한 번은 지역의 한 도서관이었다. 지역아동센터 건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가 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짰기 때문에 내가 준비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도서관 건은 처음에 후배 활동가에게 맡아서 하라고 했는데, 이 친구가 초등학생들과의 강의를 어려워해서 내게 맡아 달라고 했다. 


환경, 에너지 분야 강의를 하러 다닌지 10년 정도 되었다. 초기에는 초등학생이나 어른신들 강의가 많았다. 그땐 우리 아이들도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생각으로 초등학생 강의를 다녔다. 우리 아이들도 둘 다 내 강의를 두어 번 이상 들었었다. 방과후 협동조합 강의와 작은도서관 강의 등을 통해서였다. 그러다 점점 중,고등학교 강의가 많아졌다. 지역에서 청소년 사회적경제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후로는 중,고등학교 강의 비중이 훨씬 더 많아졌다. 코로나 이전까지 주로 그렇게 청소년 강의를 다녔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는 학교 강의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 강의 영상 촬영을 한 번 했었는데, 두 곳인가 세 곳인가 하는 학교에서 사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달 받았었다.


오늘 낮에 도서관 강의를 다녀왔다. 초등학생 20명 가량이라고 준비 단계에서 전달받았는데, 오늘 사서 선생님과 통화해보니 10명이 채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많이 나눌 생각으로 좀 여유있게 강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사선 선생님이 좀 일찍 마쳐달라고 당부하시길래 강의 내용도 원래보다 좀 줄였다.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 비바람이 몰아쳤다. 버스를 타기 애매한 거리와 위치라서 걸어서 갔다. 걸어가는 동안 바지는 거의 다 젖었고, 셔츠와 가방도 제법 젖었다. 이런 날씨에 아이들이 얼마나 오려나 어쩌면 한 두 명 밖에 못 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이 궂은 날씨에도 아이들은 7명이나 왔다. 나는 진심으로 와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초등학생들과 어르신들 강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어렵고 복잡한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를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 그래서 실수도 많았고,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준비도 많이 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내용과 질문에 당황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저런 돌발상황에도 여유있게 대처할 수 노련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강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약 두 달 전에 있었던 지역아동센터 첫 강의 때 나는 일정을 착각해서 다른 요일로 체크해두었었다. 강의 시간 직전에야 연락을 받고 뛰어나갔다. 다행히 강의 장소인 지역아동센터가 그리 멀지 않아서 많이 늦지 않고 도착했다. 나는 일정을 착각해 늦은 것에 대해 너무나도 죄송했고, 강의 내용으로 보답하고 만회하리라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은 15명 내외였던 것 같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 두어 분이 내 강의를 같이 들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봉사활동 하시는 어르신들도 몇 분 함께 들었다. 나는 침착하고 편안하게 아이들과 대화하듯 강의를 진행했고, 친절한 태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의 경계를 낮추고, 적절한 질문과 칭찬과 사소한 관심 표현으로 아이들의 호감을 얻었다. 1시간 반 가량의 강의를 마치고 나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의 표정이 바뀌었다. 늦게 도착했을 때 불쾌감을 숨기려는 그 약간 어색한 표정이 사라지고, 재미있는 강의를 잘 들었다는 것 같은(순전히 내 관점에서) 표정 혹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잘 유지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준 것에 대한 호감이 엿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선생님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중간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어렵지는 않은지? 지루하지는 않은지? 아이들은 조금은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답했다. 물론 낯선 어른에게 정직하게 답하기 보다는 그냥 예의상 재미있다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렇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문들에 답해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좀 많이 써버렸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많이 줄여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 보려고 했는데, 사서 선생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좀 더 시간 관리에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고 자책하게 되었다. 강의를 마쳐갈 때 즈음, 도서관 관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제서야 조금 일찍 마치고 아이들 수료식과 시상식이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사서 선생님이 그 사실을 미리 언급해주셨다면 내가 좀 더 시간 관리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을텐데.


어쨌거나 시간 관리름 못 했다는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사서 선생님에게, 도서관 관장님께 미안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었다.


강의를 다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 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다 돌아간 줄 알았던 아이 하나가 나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강의 중에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시원시원하게 대답도 잘 했던 아이라서 나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집이 이 근처냐고 물었다. 바로 앞이라고 답했다. 내가 걸어 나가는데 녀석도 함께 나오길래, 집에 가는 길에 나랑 같이 나가려고 기다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 현관을 나설 때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저기 조금 가서 제가 선생님께 뭐 사드리려고 기다렸어요." 나는 그 조그만 초등학생이 나한테 뭔가를 사 준다고 표현한 것이 놀랍고 조금 당황스러워서 "뭐?" 하고 크게 되물었다. 느낌에 뭔가 음료수 같은 걸 대접하고 싶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나는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마음 만으로 너무 고맙고 잘 마신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또 만나자고 했다. 녀석이 내게 어디서 일하는 지 묻길래, 우리 제로웨이스트 매장 위치를 알려줬다. 녀석은 어딘지 알고 있다고 꼭 놀러갈게요. 라고 답했다.


세상에! 10년 가량 강의를 다니면서 이렇게 뭔가 사드리고 싶다는 표현을 듣기는 처음이다. 아주 오래전 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젊기도 했고,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 강사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이 썩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원 남자 강사들 중에서 나는 좀 인기가 좋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 당시엔 여학생들이 작은 쵸콜렛이나 사탕 등을 자주 내 책상 위에 갖다 두곤 했다.


음, 그 시절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지네. 오늘 그 아이가 내게 뭔가를 사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일이, 아니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고 함께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일이 내게는 선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만나면 이 오글거리는 표현을 전할 수 있을까? ㅎㅎㅎㅎ


독서와 휴식


음, 마지막으로 깊은 산 속 계곡 가에서 책 읽으며 보낸 기억을 좀 두드려 놓고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나버렸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마음 내키면 다시 두드려보는 걸로 해야겠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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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8-11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군요. 지금 태풍 피해는 없으신지?
저흰 어제 태풍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좀 무섭더라구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 떠올랐네요. 다시 더워질 것 같기도 하구요.
강의를 마치고 아이가 기다려 주면서 선물을 사드리겠다는 그 마음이 정말 정성스럽네요. 곰살맞기도 하겠지만, 아이가 강의 시간에 감동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감동스러우셨겠습니다.^^

감은빛 2023-08-11 17:50   좋아요 1 | URL
태풍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도 없었고, 발전소들도 없었어요.
태풍 때문에 겨우 하루 기온이 조금 낮아졌다가,
폭염이 다시 돌아오네요.

알고 보니 그 아이가 그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더라구요.
저랑도 그렇게 친한 사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기회가 된다면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면 좋겠네요.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면 더 좋겠다 싶구요.

바람돌이 2023-08-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진짜 고생하셧네요. 태풍같은 자연재해가 있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재해대비를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 제가 집에서 편히 쉬는거라는 생각을 또 절감하게 되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
언젠가는 저도 감은빛님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왠지 진짜 멋진 강의일거같은 느낌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뭔가를 사주고싶다는 생각 진짜 잘 안하거든요. 뭔가를 받는데만 익숙한 아이들인지라..... ^^

감은빛 2023-08-11 17:56   좋아요 1 | URL
네,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여러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애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편하게 지내는 것 맞죠.
제가 이 더위에 그 고생을 해보니 정말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좋네요.

아, 강의를 잘 한다고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쑥쓰럽네요.
다만, 진심은 통한다고 믿고, 제 진심을 전해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신청하는 학교에 강의 영상을 보내려고,
영상을 찍어 본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제 강의 영상을 보니 정말 너무 못 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손은 왜 이렇게 산만한지, 고개는 왜 자꾸 흔드는 건지,
그날 따라 발음 실수도 여러 번 하고,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버릇도 거슬리고 정말 최악이라 여겼습니다.

다만, 영상 촬영이 아닌 현장에서 강의를 하면
걷거나 움직이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서
그렇게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3-08-1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한반도를 빗겨 간 일이 많았는데 일기예보에서 이번엔 관통한다고 해서 걱정 되더라고요.
자연재해의 피해 규모가 -농작물 등 -심상치 않고 물가는 오르고... 지구 곳곳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고...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은빛 같은 분들이 계셔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덜 걱정하고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뭘 사 드리겠다던 아이, 귀엽네요. 작은 거지만 그런 정성이 힘을 줄 때가 있지요...^^

감은빛 2023-08-18 20:04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에 중부지방까지 올라온 태풍이었죠.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재난 문자가 잔뜩 오고,
언론에서도 주의를 많이 준 것에 비해서는
큰 피해가 없이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제가 2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데,
허무하게도 환경운동을 한 보람이 전혀 없이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망가지고 있어요. 에휴!

그래도 저 아이처럼 저에게 힘이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주는 존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페크님의 이 다정한 댓글들도 늘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놓친 버스 다시 타기


나는 자주 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류장에서 아쉽게 놓친 버스를 다음 정류장까지 따라 잡아서 타는 일이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내가 타려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가 출발한 버스가 신호에 걸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버스 앞 쪽에 신호에 걸린 차량들이 두세대 이상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가 짧으면 짧을 수록 좋다. 마지막으로 버스 탑승에 실패한 정류장에서부터 다음 정류장까지 인도가 비교적 한산해야 한다. 인파가 붐비는 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가적으로 이 길이 직선일수록 유리하다.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하자마자 신호에 걸리면, 나 역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직진 차량의 청신호와 횡단보도의 청신호는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전력질주를 위해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땅을 박차고 출발해야 한다. 도로를 빠른 속도로 건너고 인도로 뛰어올라 보행자들을 피해가며 다음 정류장까지 달려야 한다. 달리다보면 차량들이 출발해서 나를 지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버스 앞에 대량 몇 대 정도의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출발 전에 대충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지나가는 차량의 수를 곁 눈으로 세면서 버스가 대략 어디쯤 따라오고 있을지를 예측하면서 달려야 한다. 일단 버스가 내 뒤로 바짝 쫓을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나를 스쳐 지나갈 것이고, 다음 정류장까지 아직 충분히 가까이 달려가지 못 했다면 그때는 전력질주를 했음에도 버스를 놓치게 될 테니.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놓친 버스를 다음 정류장에서 다시 탔기 때문이다. 일터 사무실이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로 이사온 것은 작년 초였다. 그 전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종종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좀 여유있게 걸어다니는 날들이 많기는 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저 위에 언급한 놓친 버스 다시 타기를 시도하는 날들이 종종 생겼다. 물론 확률적으로 정류장에 도착할 때 쯤에 간발의 차로 버스가 출발해버려서 아쉽게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그렇게 자주 생기지는 않으니 이 종종 이라는 표현은 저렇게 놓친 경우에 달려가서 따라잡아 탈 것인가 그냥 다음 차를 기다릴 것인가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나는 대체로 기다리는 선택이 아닌 따라잡아서 다시 타는 선택을 한다는 뜻으로 쓴 단어이다.


암튼 이 버스 다시 타기를 시도한 것 자체가 제법 오랜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엄청난 폭염으로 인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상황이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나는 뜨거운 옥상에서 1시간 넘게 일을 하느라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이었다. 약간 더위를 먹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놓친 버스를 다시 타려고 뛰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예정한 시간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14분 후에 온다고 안내판에 나왔다. 그 장소에서 목적지였던 우리 사무실까지는 그냥 걸어가도 2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중간에 조금 뛰면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14분을 버스 정류장에서 멍하니 기다리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냥 걸어가는 것도 너무 싫었다. 이 더위에 뜨거운 옥상에서 1시간 넘게 일을 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저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갈 버스 안에 타고 싶었다.


다행히 버스 앞에 승용차가 대여섯 대 이상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횡단보도 앞으로 가서 전력질주를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예상보다 일찍 신호가 바뀌었고, 빠른 속도로 출발하면서 양쪽 방향을 살피며 혹시 튀어나오는 차량이 없는지도 체크했다. 달리는 중에 뒤늦게 출발한 차량들이 나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더 냈다. 아직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는 한참 남았다. 더위와 피로는 순간적으로 잊었다. 나는 무조건 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만 남기고 다른 생각은 모두 지워버렸다. 몸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전력으로 달리며 한 편으로는 뒤쪽에서 버스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체크했다. 저 앞에 다음 정류장이 보일 때쯤 뒤에서 버스 엔진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 버스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미 거의 최대한의 힘을 짜내어 달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나는 더 속도를 높였다. 버스가 저 앞의 정류장에 멈췄다. 잠시 틈을 두고 앞문과 뒷문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기 위해 움직였다. 버스에 오르는 승객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내게 유리하다. 그런데 움직이는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곧 버스는 승객을 다 태우고 문을 닫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속도를 더 높였다. 다음 순간 내 몸은 버스에 오르려고 기다리단 마지막 승객의 바로 뒤에서 급정거했다. 숨이 차서 제대로 숨 쉬기가 어려웠고, 온 몸이 땀에 다 젖은 상태였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아마 버스 기사님은 보셨을 것이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오르는데 기사님께서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걸 느꼈다. 버스엔 빈 좌석이 없었고, 이미 서 있는 승객도 제법 많았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자리를 찾아 손잡이를 잡고 섰다.


다른 단상들


지역의 한 노인 복지관에서 기후위기 강의를 했다. 생각보다 어르신들이 이 부분에 대한 상식을 많이 갖고 계셔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다. 나만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여하신 어르신들 중 세 분이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국제 잼버리 대회를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어서 매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이 무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매립지에서 캠핑을 한다는 발상을 과연 누가 했을까? 왜 누구나 예측 가능한 결과를 아무도 말리지 못 했을까?


신림역에서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이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무차별 폭력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또 이어서 학교에서도 흉기 소지자가 체포 되기도 했고, 묻지마 살인 예고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이게 정말 말세로 가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적 장애 아들의 특수반 교사를 향한 한 웹툰 작가 부부의 고소와 관련해 계속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모든 정보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비난 하는 일은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 모든 부모는 다른 어떤 일보다 아이의 안전과 행복을 우선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에 대한 말도 안되는 진상행동들이 다 용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초등학교 교사의 건과 이 웹툰작가 부부의 건은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폭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열대야 너무 지긋지긋하다. 오키나와를 지나온 태풍 카눈이 올라오면 더위가 한 풀 꺾일 것이라고 하는데, 다음주 목요일 정도가 되어야 이 태풍이 우리나라로 치고 들어올지, 동해를 타고 올라갈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중국 본토로 갈 것으로 예상했던 태풍이 제 자리에 한참 멈춰 있다가 방향을 정 반대로 꺾어서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더 방향을 틀어서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측된다고. 저렇게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태풍도 신기하고 그걸 또 계속 예측해내는 기상학자들도 신기하다.


주말에 워크숍에 참가해야 할 상황이다. 뭐 딱히 중요한 워크숍은 아니라 나는 안 가도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분위기가 내가 빠질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일요일 아침 출발인데,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해 6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일요일 아침 6시라. 아! 난 정말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 왜 주말에 워크숍에 끌려가기 위해 아침 6시에 출발해야 하는걸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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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8-05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친 버스는 그냥 가게 둬야지 위험해요 감은빛 님이 찻길을 달리지는 않으시겠지요 조심해서 버스 따라 잡으세요 태풍이 또 꺾는군요 태풍이 지나가면 좀 나아지겠지요 다음 주 8일이 입추더군요 입추 더 빨랐던 것 같은데... 입추가 가면 지금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감은빛 2023-08-11 17: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차도를 달리면 위험하죠.
인도로 달립니다만, 가끔 인도가 너무 복잡하면
아주 짧은 구간을 차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인도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태풍이 와서 딱 하루 조금 기온이 내려가더니 다시 또 더워지네요.
희선님,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얄라알라 2023-08-05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06시라^^;; 감은빛님의 소중한 일요일을 돌려다오 돌려주시오!

감은빛 2023-08-11 17:42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 워크숍 잘 다녀왔습니다.
일요일 오전 6시에 출발해서 월요일 저녁 7시쯤 도착했어요.
가서는 막 일을 많이하거나 회의를 길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쉬고 싶은 주말에 어딜 그렇게 따라가야 하는 상황 자체가
좀 싫기는 했어요.
가서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습니다.

잘잘라 2023-08-0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감은빛님 놓친 버스 다시 타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처음엔 그저 감은빛님 체력이 대단하시다는 생각만 했지요. 그러다 자세를 고쳐 잡았어요. 무릎을 탁 쳤어요. ‘체력! 그래 체력 기르기부터 시작하자. 놓친 버스 다시 보자. 다시 탈 수 있다. 다만 체력이 필요해.‘ ㅎㅎ

오늘은 제가 감은빛님 지인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이 이야기를 글로 읽지 않고 직접 들었다면 이런 생각은 못했을테니까요. ‘전력질주로 놓친 버스 잡아 타는 일을 종종 하는 사람‘은 감은빛님 말고도 더러 있을테지만, 그걸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감은빛님 뿐이기에, 그것이 저에게 ˝너도 니 이야기로 글을 써봐!˝ 라고 말하는 느낌입니다.

감은빛님 재미있는 글 써주셔서 늘 감사하지만 오늘 특히 더 감사합니다. 그건그렇고 감은빛님! 이런 폭염에 전력질주라뇨! 그라믄 아니되오~~!!!

감은빛 2023-08-11 17:4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잘잘잘라님.
예전에 쓰시던 덧이름이 이젠 기억이 안 나네요.
가까이 계시다면 저랑 같이 달리기 모임을 하시자고 제안드리고 싶지만,
울산이었던가? 멀리 계시지요?
제 고향이랑 가까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 그런데 제가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것이면 너무 민망할 것 같은데요.
혹시 착각한 거라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끔 지인들에게 버스 다시 탄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자주 들어서 심드렁 합니다.
그냥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 타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대꾸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먼저 출발해버린 버스보다 제가 한 발 먼저 도착해서
버스를 다시 타는 그 짜릿한 기분을 포기할 수가 없네요. ㅎㅎㅎㅎ
 


덥다 더워


요 며칠은 정말 숨막힐 정도로 덥다는 표현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덥지? 이 여름을 과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절망감이 든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닌데도 이렇게 느끼는데, 나보다 더위를 더 못 견디는 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 걸까?


물론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이자 이 기후위기 시대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물건의 존재가 변수가 될 것이다. 내가 이토록 더위를 못 견디고 힘들어 하는 것은 아직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고, 나보다 더 더위를 못 견디는 편이지만 에어컨이 있는 분들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 2018년을 기점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았던 많은 지인들 대부분이 에어컨을 새로 장만했다. 현재 가장 친한 사람들 대부분은 최근에 에어컨을 구매했다. 30년 환경운동을 한 선배 활동가도 아마 3~4년 전에 못 견디고 에어컨을 장만했었다. 나 역시도 2018년 이후로 고민을 많이 했다. 매년 여름마다 이번 여름만 버티고 나면 내년 봄에는 꼭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에어컨이 없는 건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일단 2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해온 입장에서 특히 에너지 문제를 주로 다루는 활동가로서 에어컨을 구매한다는 것이 스스로 설득이 안 되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아무리 덥다고 활동가가 에어컨을 통해 전기를 더 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된다는 지극히 답답하고 어리석은 고집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혼하고 혼자 살기 전에, 그러니까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는 에어컨이 있었다. 나는 거의 가동하지 않았지만, 다른 식구들은 자주 사용했다. 그러다 혼자 살게되면서 에어컨 없이 살게 되었고, 이것도 환경운동가로서 일종의 숙명 같은 거라고 고지식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두번째 이유는 이렇게 가장 심한 폭염이 이어지는 날엔 괴로워하지만, 이 고비 이전과 이후는 또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년, 20년, 21년 여름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18년과 작년 22년 여름이었다. 그 여름 날들도 대체로는 견딜만 했다. 아주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던 며칠 동안이 힘들었을 뿐이다. 지금도 그런 시기라고 생각하고 요 며칠만 참자고 생각하면 또 견뎌질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지인들의 집을 돌아가면서 지내는 선택도 있다. 작년과 올해 친한 후배 한 명은 내게 힘들면 언제든지 와서 자고 가라고 말했다. 


세번째 이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구조가 실외기를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고, 벽을 뚫을 위치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 집 주인 본인이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설치 기사를 불렀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설치를 못 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설치를 문의한 적은 없으니까. 어쩌면 방법은 찾으면 찾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몇 년 사이에 집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제는 이 폭염을 견딜 필수품이라고 불릴만한 에어컨 설치를 막는 집 주인은 없겠지.


이 세 가지 이유로 여름마다 더위에 괴로워하면서도 에어컨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정말로 절실하게 괴롭고 힘들었다면 다른 어떤 이유에도 관계없이 그냥 에어컨을 설치했을 것이다. 1번의 명분과 2번의 인내가 그래도 버티게 만들어 준 원인일 것이고, 3번은 그냥 덧붙이는 이유 밖에 안 될 것이다.


암튼 지난 며칠 내내 이어지는 열대야 때문에 새벽에 깰 때마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지 않은 채로 선풍기 바람으로 말려 몸을 식혔다. 이대로 얼마나 더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질 지 모르지만, 더 못견디겠다 싶을 때에는 지인 찬스를 쓰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도저히 혼자서 그냥 버티고 참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


과감한 옷차림


얼마 전에 매장에 여성 한 분이 들어왔는데, 옷차림이 무척 독특했다. 등이 아주 깊게 파였고, 가슴 쪽도 좀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이었다. 양쪽 팔에 이런저런 문신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나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이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반응하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곧 평정심을 되찾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했다. 아니 대하려 했다. 그럼에도 그 분이 여러 제품들에 대해 질문을 해서, 내가 설명을 드리려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일부러 태운 듯 살짝 까무잡잡한 맨 살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와서 다시 평정심을 잃을 뻔 했다.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설명을 해야 했다.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로 과감한 옷차림을 선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한때 몸매에 자신이 있을 무렵에는 몸에 딱 달라붙는 꽤나 과감한 옷을 입고 여름을 지내는 걸 즐겼다. 속이 다 비치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몸을 쳐다보는 시선을 오히려 즐겼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요즘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SNS에서 레깅스와 크롭톱 같은 과감한 패션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면서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좀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본인이 가장 잘 느낄텐데 말이다. 그런 시선들이 결코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편견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휴가지 그러니까 관광지였다면 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일탈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혼자 해외여행을 가서 브라를 착용하지 않고 과감하게 돌아다녔다는 글들을 읽은 기억이 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여러 해 전에 아이들과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자 마자 어떤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그때 입고 있던 옷이 몸에 꽉 붙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였다.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는 옷이라 아마 보고 있던 여성들은 민망함을 느꼈나보다. 그때 한 여성 분이 내게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오시느라 옷도 못 갈아입고 오셨겠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못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안 갈아입은 거였다. 그날 아침에 입은 옷이라 굳이 갈아입을 필요를 못 느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일상의 공간에서 이런 옷을 입는 건 다들 어색하게 느끼는 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뭐 어떤 옷을 입던 그건 옷 입는 사람의 자유다. 남이 뭐라 할 영역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 정도에 조금 당황했던 내가 반성해야 할 일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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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0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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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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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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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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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모임 1기 종료


지역 의료협동조합의 건강실천단 활동으로 시작했던 달리기 모임 일정을 일단 완료했다. 해당 활동이 100일간의 활동이고 내일 해단식이 있어서 오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100일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갔고, 매주 1회 이상 달리기 모임을 가지는 것이 목표였는데, 도중에 비가 많이 오는 날도 있었고 중요한 일정이 겹쳐 모임을 못 가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어제도 사실 이런저런 일정들 때문에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모이지 못할 상황이었다. 해단식 전 마지막 모임이이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 시간을 밤 9시로 늦췄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차라리 밤에 조금 선선할 때 모여서 달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설득했다. 결국 9시로 모임을 정했고, 허리가 아파서 못 오시는 분과 다른 약속이 늦게 끝나서 못 오시는 분을 제외하고 다들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달리기 모임에 가기 직전에 유혹에 빠졌다. 친한 선배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 꼭 오라는 요청을 받아서 8시에 매장 문을 닫고 갔다. 곧 달리기를 해야 하니 아주 조금만 먹고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배들이 주문해 준 피자가 제법 맛있었고(아마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겠지만) 앉아서 수다를 떨다보니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9시에 모이기로 한 것은 다른 분들의 일정이 적어도 8시 40분쯤에는 끝날 거라고 가정했기 때문인데, 만약 그 분들이 더 늦게 마치면 나는 그 분들 핑계를 대면서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분들이 다 늦게 오시더라도 나는 시간 맞춰 가서 달리기를 해야지. 피자를 좀 더 먹고 싶은 유혹과 앉아서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일어섰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그 분들이 오셨다. 그런데 한 분이 더 계셨다. 평소 지역의 이런저런 회의 장소에서 자주 마주쳤던 선배 활동가였다. 본인 말씀으론 납치되어 왔다고. 앞의 회의에 같이 참여햇던 분들이 달리기 같이 하자고 꼬셔서 끌려왔다는 뜻이다. 새로 온 분도 계시고 해서 달리기 기본 자세와 주의할 점들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달리기를 같이 했다.


달리기 마지막에 나는 새로 온 분의 흥미를 끌기 위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스킬을 일부러 하나 선보였다. 단거리 주법을 보여준 것이다. 달리기 주법은 장거리 달리기와 단거리 달리기가 완전히 다르다. 장거리는 길게 먼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반면, 단거리는 시작하면서 빠르게 가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에 무릎을 높게 들고 땅을 강하게 박차는 동작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야 한다. 나는 일부러 그 분의 옆에서 천천히 달리다가 갑자기 무릎을 높게 들고 강하게 땅을 박차는 동작을 빠르게 반복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경험이 평범한 그러니까 달리기를 안 해본 사람에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역시 내 계산이 통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그 분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느냐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그렇게 빨리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달리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내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런저런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내 강의 때문에 다시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기존 참여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계속 이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거들었다. 첫 달리기 모임 때 그러니까 100일 전에 평생 한번도 제대로 달리기를 해보지 못했던 중년 여성 선배들을 위해 나름 준비를 많이 해서 알려드렸던 것을 그 분들이 알아채고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그날 첫 모임을 마치고 나를 '코치님'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잘 따라주신 것에 나 역시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로 건강실천단 활동은 마무리가 되지만, 우리 달리기 모임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일단은 올해 연말까지. 그리고 내년에도 또 계속 이어가야지. 우선 8월은 너무 더우니 1달의 휴식기를 가지고 9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100일 동안 꾸준히 함께 달린 분들의 성장에 대해서도 칭찬을 많이 했다. 다들 처음엔 달리는 자세와 호흡 등이 불안정했고, 한번에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가 짧았다. 속도도 잘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차례 모임을 이어가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일부러 더 많이 칭찬하면서 나는 속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모임을 하기로 마음 먹은 후에 모임을 이끄는 나 자신이 잘 달리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미리 달리기를 많이 해두었다. 나도 한 3년 만에 다시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 폐활량도 많이 딸렸고, 하체 근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 보름 정도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나니 3년 전에 교통사고로 달리기를 멈췄던 시점 정도의 체력을 회복했다. 모임 지기로서 남들 보다 한 번이라도 더 달리고, 한 번 달릴 때에도 남들 보다는 조금 더 먼 거리를 더 빨리 달렸다. 가능하면 자신 없어하는 다른 분들을 잘 챙기려고 많이 노력했고, 사소한 것들을 잘 캐치해서 칭찬을 많이 하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달리기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활동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약간은 억지로 떠 맡은 것이었지만, 막상 시작한 후에는 나 자신이 가장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 재미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리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친한 후배들 몇 명은 달리기 모임에 정식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내 권유로 몇 차례씩 객원 멤버로 참여했었고, 그 중 한 명은 제대로 달려보고픈 생각이 들었는지 런닝화도 새로 구매했다. 9월에 다시 모임을 이어갈 때는 이 친구들도 모두 포함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릴 생각이다. 이런 흐름이 잘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동네 사람들과 덤벨과 케틀벨을 활용한 운동 모임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일을 벌리다보면 나 자신이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을테니,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운동을 쉬지 못하게 되겠지.


자, 이제 일 마무리하고 매장 정리하고 달리기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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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모임을 가지신 건 참 잘한 일이십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감은빛 님이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어 열심히 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하게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가령 저의 경우 마트에서 장 보다가 하나 정도 빠뜨리고 올 때가 있어요. 무거워서인 것도 있지만 빠뜨려야 그다음날 또 나오게 되고 그래야 걷기 운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뭔가 열심히 하려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생활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달리기 모임을 잘 만드신 거죠.

그런데 이 더운 날에 달리기를 하면 땀이 주르륵 잘 나오겠어요. 저는 걷기 운동만으로도 땀이 나는데... 땀 빼고 샤워하는 맛이 있긴 하지요.ㅋㅋ

감은빛 2023-08-11 17:3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답이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뭔가 하기 싫은 일을 만나야 할 수 밖에 없다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 일을 억지로 떠맡거나,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마을을 고쳐 먹거나 해야죠.
운동하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모임을 이끄는 역할은
평소 일 때문에 늘 해야 하는 역할이라서
일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는 가급적 떠맡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즐겁게 달리기 모임을 이끌었던 건,
정말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덕분에 이미 친했던 사람들 외에 새롭게
50대, 60대 언니들하고 친해지게 되어 좋았고,
저도 몇 년만에 다시 달리기에 빠지게 되어서 더 좋았어요.

달리고 나서 땀 범벅인 상태에서 바람이 불어주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당연히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최고죠! ㅎㅎ
 

3년


오늘은 제헌절이다. 7월 17일. 내 인생은 3년 전 오늘부터 크게 바뀌었다. 2020년 7월 17일 자정을 조금 지난 시점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몸에 남은 변화 몇 가지를 살펴보자. 가장 뚜렷한 흔적은 흉터들이다. 가장 상처가 크게 났던 얼굴에는 코 주위로 큰 흉터가 몇 개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 이젠 코 주위 옆에 남은 흉터는 많이 옅어져서 그냥 쓱 스쳐지나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그 흉터들이 너무나도 잘 보이긴 한다. 코 아래와 안쪽에도 흉터들이 있다. 안쪽 흉터들은 당연히 밖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 바로 아래 흉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이가 아니면 그렇게 들여다 볼 일은 없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볼 일은 거의 없긴 하다. 얼굴에 남은 흉터는 이 정도다. 몸에 남은 흉터들도 제법 많다. 옆구리에 남은 수술 자국이 제일 큰 흉터다. 올해 초 까지도 볼록 튀어나온 길다란 흉터가 만져질 때마다 무척 거슬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많이 작아졌다고 할까 높이가 조금 낮아졌다고 할까 그렇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만져지는 느낌이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다. 물론 평생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몸 속 갈비뼈에는 뼈들을 고정하는 클립이 여전히 박혀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만약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언젠가 백골 사체로 발견되면 내 갈비뼈에 박혀 있는 클립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함께 목욕탕에 갔던 후배가 그 흉터를 보더니 조폭이 칼 맞은 흉터처럼 보인다고 했다. 수술용 매스도 칼이니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몸에 남은 또 다른 흉터들은 주로 몸의 뒷면에 있다. 어깨 뒤쪽과 허리 뒤쪽 그리고 허벅지 안쪽 등이다.


다음은 아직도 가끔 나를 괴롭히는 후유증이다. 코 밑에서부터 크게 찢어진 상처를 꿰맸기 때문에 코 일부와 뺨 일부는 신경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눈 밑에 뼈가 산산조각나서 인공 뼈를 집어넣은 곳까지 손가락으로 만지면 느낌이 없다. 남의 살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피부 표면은 그렇게 신경이 죽었는데, 안쪽에서는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들이 나타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부위는 반대쪽에 비해 여전히 좀 부어있고, 그 안쪽 어딘가는 여전히 완전히 다 나은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암튼 통증은 한 번 나타나면 몇 시간 이상 지속되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할 때도 있고, 그냥 참을 수 있을 정도일 때도 있다.


그 다음은 트라우마 라고 할까 약간 정신적은 면에 가까울 것 같다. 일단 사고 이후로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택시나 남의 차를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찾아서 맨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등도 마찬가지.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운전을 못 할 정도는 아닌데, 한동안은 운전을 하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다. 어딘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자주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딴 생각을 하다보면 괜찮아지기도 하는데, 가끔은 그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사고 이후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일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일과 가족과 친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사고 이후로 오래 쉬다가 일터에 복귀한 후로는 일 말고 다른 것들을 더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 일부러 직소 퍼즐 맞추기에 시간을 투자하거나,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운동기구를 사 모은다거나 하는 등. 아, 물론 사고 이전에도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기구를 사기도 했지만, 규모와 비중이 달랐다고 할까. 이젠 좀 비싸더라도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 생각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라면서 내 스스로 제동을 걸었던 것을 이젠 이 정도는 필요하지 하고 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도 다음날 일정이라던가, 큰 틀에서 일의 흐름이라거나, 어떤 잘 안 풀리는 상황의 해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퇴근하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그 전에는 좀 무리한 일정이거나 너무 많은 양의 일이 내게 배정되어도 그냥 어떻게든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젠 그렇지 않다. 일이 좀 많다 싶으면 못 하겠다고 말하고, 일정이 무리라고 느끼면 가감 없이 그대로 말한다. 


전반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혼자 뭔가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연락이 오면 거의 무조건 만나러 나갔고,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들도 많았다. 요즘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누군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아, 가장 큰 변화를 잊어버릴 뻔했네. 근육량이 확 줄어서 더는 예전처럼 고강도의 운동을 감당하거나 고중량의 무게를 들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3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서 운동량을 늘리고 있음에도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 중간에 지쳐서 운동을 쉬는 날들도 제법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서 흥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기분이 안 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서 얼른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낄 때도 있고,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은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번은 약간의 객기로 옛날에 주로 들던 정도로 원판을 끼워 놓고 바벨을 들다가 부상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예전이었으면 지금 이 여름에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몸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헐렁한 옷을 주로 입는다. 더이상 나는 근육을 자랑할 수 있는 몸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거울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이외에도 더 변화들이 있을텐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다. 사람은 늘 변한다.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아마 그 사고가 없었더라도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고라는 하나의 변곡점이 많은 것을 확 바꿔버렸다. 서서히 바뀐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 어떤 힘에 의해 내 삶이 꺾여버린 느낌이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당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죽었을 지도 모를 이 삶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났으니 계속 살아야지. 이왕이면 좀 더 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잘~'이란 기준이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는 않겠다. 


내일은 강의가 한 건 있고, 중요한 회의도 있다. 이래저래 준비할 것이 많아서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날짜가 바뀌기 전에 집에 가야겠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에 찾아봐야 할 문건과 영상이 너무 많다. 과학적인 태도와 가짜 과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계속되는 집중호우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덜 보고 있다고 강의 때마다 말하곤 했는데, 이젠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이번 비 피해 규모를 숫자로 따지면 2020년 중국 홍수 때보다 훨씬 적겠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 개인의 삶의 문제로 접근하면 그런 숫자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그냥 피해는 피해일 뿐이다. 막을 수 있는 피해인가, 없는 피해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막기 어렵다. 이 쏟아붓는 비를 어찌 막을 것인가? 조금 더 미리 대피하고, 조금 더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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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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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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