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정치 혐오
돌이켜보면 나는 정치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아니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가 노동운동을 하셨고, 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면서 정치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 살림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몸을 바쳐 정치를 하셨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모셨던(이건 아버지의 표현이다.) 분은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다.(그때 함께 버려진 사람이 노무현이다.) 3당 합당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아버지는 당을 나오셨다. 그리고 다시는 정치판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돈을 버는 재주는 정말 없었지만, 운동과 정치판에서는 무척 유능한 분이셨다. 학생때는 학생회장. 노조에서는 노동조합장. 정당에서는 사무국장.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당을 떠난 후에도 선거철이 되면 유능했던 아버지를 찾는 전화가 종종 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셨다.
내가 정치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된건 아마 아버지의 영향일까? 아니면 고등학교 때 사회에 대한 눈이 띄인 이후로 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면을 봐왔던 덕분에 더러운 정치의(그리고 정치인의) 이면을 자주 봐왔기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진보정당 조차도 지지는 할 수 있지만, 그 판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그닥 정의롭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노무현 정권에서 정치를 시작했을 때에도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실망했다.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무렵 한미FTA를 두고 정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이던 그 교수님은 나의 안부전화를 받지 않으셨다.(아마 단순히 바빠서 못받으셨을 수도 있다.) 범국본에 관여하고 있었던 제자와 청와대에 있었던 스승은 그 이후로 다시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물론 그 뒤로 연락을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운동의 한계, 정치의 필요성
정치에 대한 혐오는 갖고 있었지만, 진보정당처럼 우리의 뜻을 대변해줄 정당과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새만금과 고속철도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예전에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새만금 개발과 경부고속철도 건설은 모두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국책사업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치인의 말 한마디 때문에 벌어진 끔찍한 환경파괴 사업이었고, 온갖 비리로 얼룩진 더러운 사업이었으며, 국민의 혈세를 국토를 파괴하기 위해 낭비한 사업이었다.
공교롭게도 국토의 파괴와 경제성장 따위는 전혀 관계없이 말 한마디 뱉은 노씨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 많은 국민들이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추앙하는 노씨 대통령 재임시절에 나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장과 경부고속철도 공사 예정지역에서 땀과 눈물을 쏟으며 깨달았다. 환경운동만으로는 안된다! 이 땅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할 진보정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그릇된 정치 논리에 맞서 올바른 정치를 펼쳐나갈 녹색 정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시절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생태운동가인 프란츠 알트씨를 만났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적으로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분께 독일 녹색당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에도 꼭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여러번 해주셨다.
실패와 성공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초록정치연대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그들은 내가 원했던 바로 그 녹색 정치를 이 땅에서 시도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때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는 몇가지 이유 때문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무엇보다 이명박의 오랜 삽질과 후쿠시마의 핵폭발사고 등으로 인해 이 땅에 녹색 정치가 좀 더 간절해졌다. 처음에는 나도 조금 고민을 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괜히 실패의 횟수를 한번 더 늘리고 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어느 순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대기 어렵지만, 녹색당 창당에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녹색당이 창당하고, 지금 첫번째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지독한 정치 혐오자였다. 정치가 처음이고 낯선만큼, 선거운동이란 것도 처음이고 낯설다. 하지만 하루종일 수시 때때로 나는 선거에 대해 고민하고,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선거운동이 뭐 그리 대단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생활속에서 사소한 것부터 고민하다보면 뭐든 다 선거운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요즘 즐겁게 깨닫는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모임
녹색당 동료들과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서, 한편으로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곰곰히 그 이유를 따져봤다. 합리적인 이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저 사람들이 좋았다.
우리지역 녹색당원들의 첫 모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늘 혼자이거나 소수였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해도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았는데, 오늘 우리 동네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하고 깨닫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실제 그 분의 말씀이 조금 각색되었을 수도 있음!) 그말을 듣고 나서 나도 새삼 깨닫는다. 녹색당이 꼭 필요한 이유! 녹색당이 좋은 이유! 녹색당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사람때문이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난 늘 소수였는데, 여기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다니! 반갑고 또 행복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모임이 이 나라의 요상하고 해괴한 선거법 때문에 창당하자마자 다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다. 이제 막 돋아난 새싹인 녹색당이 무럭무럭 자라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과실을 맺게 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4월 11일에는 꼭 투표장으로 가셔서, 녹색인 정당투표용지에 11번 녹색당을 찍어주시기를!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선택!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