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삶 그리고 사회

추운 날

 

"아 뚜"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쌩! 아가는 금방 얼굴을 찡그리며 '아 뚜'를 연발한다. "우리 예쁜이가 추워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답한다. 비탈길을 내려간다. 아가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시 한번 "아 뚜"하고 소리를 낸다. 아가의 소리에 대답하듯 나도 "아이 추워!"하고 과장이 섞인 말투로 따라한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어린이 집에 도착할 때쯤되면 아가의 뺨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다. 희고 차가운 뺨에 살짝 입술을 대고 "호~" 하고 입김을 불어준다. 아가는 장난치는 줄 알고 까르르 웃는다.

 

"뚜" 아가가 좋아하는 노래는 '곰 세마리' 앞 부분은 발음이 불분명하게 따라하다가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 이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부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 '우쭈 우쭈 자란다(으쓱 으쓱 잘한다)' 여기도 잘 따라 부른다. 따뜻한 어린이집에 있다가 밖으로 데려나오면 아가는 금방 짜증부터 낸다. 녀석.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아빠를 좀 웃으면서 반겨주면 안되겠니? 짜증이 난 아가를 달래기 위해 아가가 좋아하는 '곰 세마리'를 부르면서 큰 녀석을 데리러 간다. 왼팔에 아기를 안고, 오른손에는 아가의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날씨가 추우니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노래를 겨우 부르고 나면 녀석은 "뚜!" 하고 외친다. 또 한번 더 부르라는 얘기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여학생이 웃는다. 큰 녀석이 있는 피아노학원까지 가려면 노래를 한 서너번은 더 불러야 한다.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는데 팔에 안긴 쪼그만 녀석은 계속 '뚜!'를 외친다. 금방 다시 안불러주면 "뚜우우우우!"하고 짜증을 낸다. 다시 노래를 부르면 금새 표정이 밝아지며 뭐라고 중얼중얼 따라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아빠공(곰), 엄마공(곰), 애기공(곰)'에 이르면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발음이 분명해진다. 노래가 끝나면 역시 "뚜!"를 외친다. 나는 딴청을 부리듯 "추워요? 우리 얘쁜이가 춥지요?"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뚜!"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아기의 "뚜"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춥다는 뜻이고, 하나는 또 하라는 뜻이다. 신기하다. '추워'와 '또'가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몸 이야기

 

아이를 둘 키우면서 새삼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얼마이고 열이 어느정도까지 올라가면 위험한 것인지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기가 누워있다가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고, 앉고, 걸음마를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빨은 어떤 것부터 나기 시작해서 몇 개월까지 나는지. 분유를 먹고 나면 왜 트림을 시켜야 하는지. 등등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궁금해본 적도 없는 사람의 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 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다. 술에 쩔은 내 몸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아내는 가끔 나는 죽어서도 부패하지 않을꺼라고 놀리곤 한다. 알코올에 푹 담긴 내장들이 어떻게 썩을 수가 있겠냐고! 지금은 내 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지만, 한때는 나도 관심이 많았다. 역시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몸매보고 결혼했다'고 장담할만큼 예전에는 몸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지금 말하는 건 단순히 보기 좋은 외모를 가꾸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왜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걸까? 답은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개라고 본다. 도시 생활과 임금 노동.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땅을 일구어 생명을 심고,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몸과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삶이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나서서 저녁까지(혹은 야근을 하게된다면 밤까지) 하루종일 일에 매달려 살아가게 만드는 현재의 임금 노동(자본주의)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한 먹거리보다는 그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정크푸드에 손이 먼저 가고, 허리와 목에 부담이 가는 자세로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으며, 눈이 뻑뻑해지도록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달달한 믹스커피에,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점심 식사에 익숙해지고, 저녁이되면 어김없이 고기와 소주를 뱃속에 채운다. 짧은 거리도 자동차로 움직이고,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길담서원에서 진행되는 인문학교실의 강좌 중에서 '몸'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필진 중에 이유명호, 전희식, 변혜정 같은 평소에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더 관심이 간다. 서문을 읽어보다가 아래 문단에 완전 꽂혔다.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은 그동안 길, 일, 돈, 몸, 밥, 집에 대해 진행했고, 지금은 품에 대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땅, 불, 물, 똥, 힘, 꿈, 숨, 말, 눈, 앎, 삶 등등 수많은 주제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글자 인문학교실이 끝나면 사랑, 평화, 철학, 역사, 인간, 종교, 공부, 등 두 글자 주제. 세글자 주제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갑자기 청소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 이 재밌는 주제들로 나누게 될 온갖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부럽다! 이십년만 늦게 태어날걸! 

 

나는 사람들이 좀 여유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하다 말고 딴 생각도 좀 하고 일찍 퇴근해서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정치나 티비 얘기 말고)다양한 삶의 영역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자신의 몸과 건강 그리고 자연에 대해 알아가면서 살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면 서로 함께 공부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당장 오늘부터 아이의 얘기를 좀 더 잘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수다쟁이 큰 녀석이 무슨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몸과 삶 그리고 사회
    from 가보지 못한 길 2013-03-06 15:33 
    며칠 전 친한 선배네 돌잔치에 다녀왔다. 막내아들의 돌이었다. 위로 딸이 둘 있고 아들이 셋째다. 덩치 큰 선배가 한복을 입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돌잔치를 치르는 아빠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제로 나이가 많긴 하다. 40대 초반이니까 아마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면 벌써 큰 애가 대학을 갔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실제로 예전에 나를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셨던 형님은 40대 초반에 큰딸이 대학생이었다. 그
 
 
 

주말 큰애를 데리고 녹예공(녹색당 예술 공동체) 모임에 다녀왔다.

이번 주의 과제는 녹색당 깃발을 보고 느낀 것을 종이박스에 표현하기였다.

큰애는 깃발에 있는 해바라기를 태양인줄 알고 불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을 그리고 소방서와 소방차를 그렸단다.

아이의 상상력은 참 대단하다!

 

 

 

 

 

그에 비해 나는 정말 뻔한 것들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분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서 붙이는 동안 나는 계속 이면지에 낙서만 해댔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나무가 생각났다.

 

 

 

 

 

녹색에서 나무를 연상하는 것도 사실 너무 뻔하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께 칭찬을 받았다.

 

어제 정동에서 열린 녹색당 후원을 위한 그린파티에서

우리 부녀가 그린 작품(?)들이 공간을 꾸미는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그린 그림들이 여기저기서 녹색당을 알리는 데 사용되어서 기분이 좋다!

 

아래는 어제 그린파티에 참여한 4 저자(김종철, 한재각, 이유진, 하승수)들의 책들

 

 

 

 

 

 

 

 

 

 

 

 

 

 

 

 

 

 

 

 

 

 

 

 

 

 

 

한재각 선배의 <네가 가는 곳이 어디라고?>를 읽기 시작했다.

목차를 보다가 선배와 나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몽골을 다녀왔다는 것. 

'초원에 말을 타고 게르에서 잠을 자다' 문구를 읽으며,

말을 타고 달리면서 느꼈던 짜릿한 기분과

4인용 게르에 혼자 누워 오돌오돌 추위와 외로움을 삼켰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12-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빠와 아이의 그림 실력이 출중하네요.
아이 그림 보면서 감탄했는데, 특히, 햇님, 너무 이뻐요...
그런데 아버지의 그림을 보면서, 놀랬습니다. 독창적이세요.. ^^

오늘 날 너무 춥네요, 따스하게 입고 다니셔염~

감은빛 2011-12-23 11:41   좋아요 1 | URL
마녀고양이님, 어제 오늘 날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예요.
우리 큰 녀석은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저도 어릴때는 그림도 많이 그리고, 만화도 많이 그렸는데,
이 몹쓸놈의 교육정책 때문에
중고등학교때부터는 그림과는 관계없이 살았네요.

오랫만에 `녹예공`을 통해서 그림도 그리고,
예술감수성을 채우니까 너무 좋네요.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 4대강,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
최병성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의 반대말은 ‘댐’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그 분은 ‘강을 파헤치는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홍수 피해를 막고,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란 말씀을 하셨다. 충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꼼수를 다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여지없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았을까? 당시 조금 당황했던 나는 ‘강은 잘 살아있는데, 오히려 지금 삽질을 통해 강을 죽이고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3권의 책을 추천했다. 김정욱 선생님의 <나는 반대한다>(느린 걸음), 최병성 목사님의 <강은 살아있다>(황소걸음),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오월의 봄) 이렇게 3권이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이 책은 지난 11월 29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한 출판기념회 덕분에 유명해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박원순 시장은 최병성 목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스스로를 ‘청소부 시장’이라고 하면서 “치워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병성 목사는 물러설 줄 모르는 ‘불독 목사’이자, 국가권력에 맞선 ‘1인 군대’라고 불린다.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집요하게 파헤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의 첫 부분은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아름답다. 만약 실제로 가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다시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없다. 바로 ‘4대강 살리기’라는 무서운 삽질로 인해 모두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앞부분만 보더라도 이 책의 제목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뒷부분은 그저 사족일 뿐이다. 다만 자연의 가치보다는 인간의 편리와 문명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기에, 뒷부분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겠다. 2번째 장과 3번째 장에서는 4대강사업을 주장했던 정부와 찬성측 세력들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특히 ‘홍수’ 피해를 줄이고, ‘가뭄’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왜 모순인지를 설명하고, 진짜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특히 공사가 진행된 4대강 본류는 실제로 홍수 피해나 가뭄피해가 거의 없었던 지역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중간 부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는 생명들을 다룬 내용 때문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보(최병성 목사는 댐이라고 부른다.)를 건설하고 모래바닥을 파헤치면서 여울에 살던 피라미를 비롯한 묵납자루, 줄납자루, 각시붕어 등 많은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낙동강변의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풍경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만큼 안타까웠다.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와 제203호 재두루미, 제201호 큰고니, 제199호 황새(멸종위기 야생 조류 1급) 그리고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등 온갖 희귀한 철새들이 가득했던 해평습지가 공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과연 이 장면을 보고서도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의 사업을 글자 그대로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이 더 널리 읽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사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늦었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그랬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방조제가 완공된 것은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2년이나 지나서였고, 하나의 개발사업으로서 새만금 간척사업은 아직도 그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아직도 새만금 개발사업을 되돌리기에는 늦지 않았다고 본다. 시화호의 교훈을 따라 지금이라도 해수를 유통시키면서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만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최병성 목사의 책 제목처럼 ‘강은 살아있다.’ 지금이라도 16개의 보(댐)을 없애면, 강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갈 것이다. 살아서 흐르는 ‘강’의 반대말은 ‘댐’이다. 댐에 가둔 물은 죽은 물이다. 짧은 구간에 무차별적으로 지어진 16개의 댐들 덕분에 앞으로 또 얼마나 큰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6월 25일에 호국의 다리 ‘왜관 철교’가 무너진 것은 어쩌면 강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준공을 앞두고 상주보와 함안보를 포함한 9개의 보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들의 삽질을 믿고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결론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삽질을 멈춰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12-30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독서회 토론도서로 정해서 다같이 볼게요.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외면하고 표피만 보고 사는 부끄러움~
2008년 6월에 '경부운하,축복일까 재앙일까'도 토론했었는데...

감은빛 2011-12-30 11: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강정마을. 두물머리는 당장이라도 큰 일이 벌어질 태세이구요.
발레오공조, 재능지부, 콜트 콜텍 등등의 장기투쟁 사업장은 또 해를 넘기네요.
쌍차 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 어려운 겨울을 보내고 있구요.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그저 기억하고 마음만이라도 보태려고 노력중입니다.
 

영유아 보육의 녹색전환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목은 길게 빼고, 먼지가 묻은 안경 렌즈 너머로 흐릿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눈이 침침해서 고개를 든다. 안경을 벗고 침침한 눈을 두 손으로 문지른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전화기는 아내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오늘 일 좀 더하다가 갈게요. 아이들을 부탁해요.’ 오늘은 내가 아이들을 맡기로 약속된 날이다. 난 ‘걱정 말고 일하다 오세요!’라고 답장을 보낸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면 대략 6시 반이 되기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퇴근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본다. 대략 6시 20분쯤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가방을 챙기고, 지갑과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손목시계를 본다. 어느새 6시 40분. 6시가 넘자마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처리하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더 늦어졌다.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선다. 지하철역까지 바삐 발을 놀린다.

 

집 근처 지하철 역.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서기 직전 시계를 본다. 7시 20분. 어린이집은 보통 7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봐준다. 부모가 그 보다 늦으면 선생님의 퇴근시간이 그만큼 더 늦어진다. 지하철역에서 어린이집까지 걸어서 가면 15분 이상 걸린다. 10분 안에 가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열차가 완전히 멈춰서고, 출입문이 열리면 문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간다. 마치 경보 경기를 하듯 경쟁적으로 복도를 걷는 많은 이들이 좁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입구가 붐빈다. 기다릴 여유는 없다. 에스컬레이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단을 향한다. 2계단씩 규칙적으로 오른다. 이미 익숙하다. 퇴근시간 조금이라도 일찍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반복하고 있는 계단 오르기다. 에스컬레이터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오르는 사람보다 더 빨리 길고 긴 계단의 끝을 오른다.

 

7시 31분. 걷다가 뛰기를 반복해서 겨우 작은 아이의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걷는 중간에 미리 전화를 해두었기 때문에 아이는 신발까지 신고 현관근처에서 선생님과 놀고 있다. 인사를 하고 아이를 받아 안고 나선다. 이제 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이마의 땀을 쓰윽 닦는다. 뛰는 동안 등줄기에도 땀이 흘렀다.

 

7살과 2살. 우리 아이들은 불행히도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지 못한다. 작은 아이가 너무 어려서 큰 애가 다니는 곳처럼, 영아전담반이 없는 어린이집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거기는 가장 어린 반이 3세반이다. 해가 바뀌어 큰 애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비로소 작은 아이는 그 어린이집에 갈수 있는 연령이 된다. 가끔 두 아이가 각각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이 얘기를 간결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또 간혹 아직 2돌이 안된 아이가 벌써 어린이집에 가느냐고 놀라서 묻는 분들도 있다. 이 녀석은 채 백일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게 어린 아이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냈느냐?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게 제일 좋다는 말들이 돌아오기도 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혼자 버는 것 보다는 둘이 버는 게 낫다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아내가 일을 계속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벌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을 정해놓고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 외의 시간에는 주로 일을(혹은 일의 연장선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에게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간(혹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 다행히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가까이에 계시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면 그때부터 고민과 선택은 무척 어려워진다. 2008년 1월 한겨울에 아이를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았던 충격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심심하면 어린이집의 체벌과 가혹행위가 뉴스나 신문에 오르내린다. 과연 우리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큰 애를 키우면서 몇 차례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작은 아이를 맡기면서도 짧은 기간에 벌써 몇 번이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기면서 모두가 자기 아이 대하듯 무조건 다 잘해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나듯, 이런 일도 겪고, 저린 일도 겪는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벌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처음 겪은 황당한 일은 2008년 새해를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큰 애는 발도르프식 교육을 지향하는 영유아전담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1살부터 4살까지 아이들을 받고 있으며, 5살이 되면 졸업을 하고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한다. 아이는 2008년이 되면서 4살이 되었고, 이제 1년 후에는 그곳을 졸업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원장이 바뀌었다. 새로운 원장은 예전 원장의 딸이었다. 문제는 원장이 바뀌면서 그때까지 시행되던 ‘시간 연장 보육’이라던가 ‘평가인증 어린이집’으로서의 이점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또 기존에 있던 좋은 선생님들이 예전 원장을 따라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가면서, 여기에는 새로운 선생님들이 들어왔는데, 부모와 아이들과 새 원장과 새 선생님들은 서로 적응을 못해 힘들어했다. 결국 여름이 채 가기 전에 아이랑 같은 반에 다니고 있던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옮겨버렸다. 아이는 가장 큰 언니반인 4세반에 혼자 남았다.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1살 아래 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아이 혼자 남았다는 말에 우리는 정말 깜짝 놀랐고 또 황당했다. 그 상황이 되기 전에 미리 어린이집에서 한마디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졸지에 혼자 남은 아이의 기분은 도대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우린 부랴부랴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해서 급하게 근처의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역시 급하다보면 뭔가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새로 옮긴 곳은 예전에 있던 곳만큼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었다. 원장도, 선생님들도 모두 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새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지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데려왔다가 얼굴에 작게 손톱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또 화장실에 데려갔다가 바지와 팬티가 젖었다가 마르고 있는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원장과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 어린이집에서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겪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생기고 있었다. 작은 물건들, 예를 들어 머리끈이나 머리핀, 양말, 모자 등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또 아이의 하루 생활을 기록해둔 알림장이 며칠씩 연속으로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얼굴에 상처가 나고, 바지가 젖어서 돌아온 날도 이틀째 알림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 충분히 예의를 갖췄고, 사건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상황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기분나빠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다음날 아이의 성격을 탓하는 것으로 얼굴 상처를 설명하고, 선생님들이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젖은 바지를 설명했다. 그걸로 끝! 더 이상 아무런 사과도 없었고, 재발방지의 약속도 없었다. 아내는 인터넷을 통해 해당지역 엄마들 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래는 아내가 쓴 글의 일부이다.

 

 

아이 아빠는 원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남자들 흔히 그러듯 다소 딱딱한 말투긴 하지만 예의를 충분히 차리면서도 그냥 간결하게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누구랑 싸운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지가 젖었다가 다시 마르는 상태인데 오후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미처 말을 못해서 바지를 못 갈아입었다고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느냐" 이렇게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알림장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종이에 긴 메모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쓰고 상황에 대해 여쭈기로 했습니다. 메모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는데 원장님이 나와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어제 아버님이 전화를 했는데 설명하겠다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ㅇㅇ가 남한테 절대 안 지는 성격인건 아시죠? 동생 장난감 뺏어서 그 동생이 화나서 얼굴을 할퀴었다고 하네요. (중간생략)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면서 이것저것 다 따지시면 너무 힘들어요. 완벽하길 바라시면 안 되죠. 아이들을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서 옷 벗겨주고 쉬 뉘어줄 수 없습니다. 그 연령은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고요. 지금도 지난번 텔레비전 문제로 담임선생님이 예민해져 있는데 이렇게 또 자꾸 문제제기를 하시면, 결국 답은 하나에요. ㅇㅇ한테 (이때 제 팔을 세게 확 잡고 벽으로 밀면서) 이렇게 한곳에 붙잡아두고 '넌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여기 있어'라는 말 밖에 못하죠. 그렇게 키우는 게 좋으세요? 그럼 계속 그렇게 하시고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원장은 이후 이 글을 문제 삼으며 삭제를 요구했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사과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는 과정에도 시간은 계속 지났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볼 여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계속 보내지만, 불안했다. 그 과정에서 원장은 또 한 번 아내를 협박하듯이 그 글의 삭제를 요구했고, 더 이상 우리는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만 보내겠다는 통보를 했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일터에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선 옆에 앉혀두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놀도록 했다. 외근을 나갈 때는 데리고 나가서, 아이와 함께 거래처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원장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고, 그 글을 삭제 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연락을 몇 차례 해왔지만, 결국 고발하지는 못했다.

 

이후 큰 애는 두 군데의 어린이집을 더 옮겨 다녔다. 그 과정에서 황당한 일들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가 넘어져서 이빨과 입술을 다치는 사고가 났음에도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심지어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던 어이없는 일(큰애는 이때 잇몸속의 신경이 다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이빨의 색깔이 누렇게 변해버렸다!)이 벌어지기도 했고, 부모와 아이를 돈으로 보고 행해지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들의 문제점들 때문에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작은 애의 경우에는 최근 원장이 바뀐 후 어린이집 건물을 싹 뜯어고치는 공사가 벌어졌다. 아이들은 흙먼지가 날리는 공사 중인 건물에서 하루 종일 생활했다. 원장 말로는 부모들의 동의서를 70%이상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곧 공사가 끝나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얘길 해놓고, 2달 동안 공사를 했다. 이번에도 우린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사태를 맞이해서 금방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받아줄 수 있는 어린이집이 근처에 별로 없었다. 작은 아이는 공사기간 내내 콧물을 달고 살았고, 목이 붓고 열이 나서 병원을 오갔다. 단 하루도 안 아프고 지나간 날이 없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2달이었다. 이제 공사가 끝나고 연말이 되니 그 원장은 규정상 정해진 진급비의 2배되는 금액을 부모들에게 걷어갔다. 우리는 이렇게 양심이 없는 곳에 더 보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은 대안이 없지만, 내년 3월이 되면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 그때 옮기기로 작정하고 우리는 이 어린이집의 몇몇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뭐가 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 부딪쳐볼 생각이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아이를 낳으면 대학 보낼 때까지 교육비가 얼마가 든다고.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두렵다고. 능력이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둘째까지 낳았냐는 말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돈이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돈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문제에서 다시 사람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가치관과 정책이 바뀌기를 바란다. 녹색당은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보육제도와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우리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돈이 갖고 있는 주도권을 사람이 되찾아오기만 하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면 출산장려금을 얼마를 주고, 셋째부터는 또 얼마의 혜택을 주는 방식의 정부 지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말만 그럴듯한 정부나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실제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엉터리 대책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은 이렇게 가장 기본이 되는 육아와 보육 그리고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당장 여성들에게만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부터 바꿔야한다. 제도 개선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녹색당원으로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11-12-1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람이 태어나서 3살때까지, 우리 가족이 제일 힘들었던 그 시간을 지금 겪고 계시네요. 다행히 딸도, 아들도 꽤 괜찮은 어린이집을 구했기에 선생님과의 갈등은 없었지만,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6정거장이나 차이났고, 아들 다니는 어린이집은 7시까지 애를 찾아야 해서 정말 종종거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늘 얘기해요.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 구하고, 그 근처에 집을 구하고, 그 뒤에 직장을 구하라구요. 그만큼 조건맞는 어린이집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에 살고 있는 거죠. ㅠ.ㅠ

감은빛 2011-12-16 17:36   좋아요 0 | URL
괜찮은 어린이집을 구하셨다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어린이집을 구하는 것이 정말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말씀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짜...눈물이 나고 화가 나네요.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밖에요.
맞벌이는 정말 힘들어요. 저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 두 아이들 키우면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결국 풀타임 직장은 가지기 힘들더라구요....

힘내세요. 조금씩 바꿔 나가야겠죠.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두요.

감은빛 2011-12-16 17:38   좋아요 0 | URL
현맘님께선 파트 타임 일을하고 계시나봐요.
저도 사실은 그런 일을 갖고 싶습니다.
아이 엄마가 저보다 돈을 더 잘버니까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는 아이들 키우면서 살림하면서 쉬엄쉬엄 일하면 좋을 것 같아요.

<헌법의 풍경>을 쓴 김두식 선생과 저의 꿈은 같습니다! ^^

blanca 2011-12-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요. 아니, 여섯 일곱 살 짜리 얘들도 한번씩 실수하는데 어떻게 네 살 짜리 쉬한 것도 모를 수가 있지요? 그리고 보육기관장이 아이 맡기고 일터로 향하는 부모한테 대응하는 태도도 그렇고. 사회적 성숙도는 보육기관의 질로 평가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할지 참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감은빛 2011-12-16 17:43   좋아요 0 | URL
명색이 어린이집의 원장이라는 인간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면,
참 뭐라 할말이 없더라구요.
제가 지금까지 겪은 원장들 중에서 제대로 된 인간 별로 못봤습니다.

무조건 돈으로만 출산을 장려하려는 인간들이 정책을 쥐고 있기 때문에
보육기관도 아이들을 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돈이 아닌 사람을 보는 보육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12-1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는데 울컥하네요..
한없이 아이를 맡기는 부모는 약자인걸까요?
저희 동네는 아무리 뒤져도 6시이후까지 아이를 봐주는 곳이 없어서 풀타임잡을 얻는게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저도 심란해요.

감은빛 2011-12-16 17:47   좋아요 0 | URL
아이를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말도 함부로 잘 못하지요.
여러해전부터 이런저런 일들로 어린이집과 부딪칠때마다
주위의 선배들은 다들 저희를 이상한 부모라고 생각하더라구요.
어떻게 감히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에게 그럴 수 있냐 이거죠!
저는 차라리 어린이집을 안보내면 안보냈지.
그렇게 비굴하게 말한마디 함부로 못하고 살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6시까지 밖에 안하다니!
이상하네요. 보통은 7시까지 혹은 7시반까지이구요.
`시간연장`보육을 하는 곳은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면,
10시반까지 봐주구요.
야간에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거의 24시간을 봐주는 곳도 있습니다.

모리님은 아무쪼록 좋은 곳을 만나시길 바래요!
 

어린이집 원장이 바뀌더니 하는 짓거리를 도저히 참기 어렵네요.
큰애 키울때도 정신나간 원장 하나때문에 애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그래도 그 원장이 인간은 덜되었지만, 멍청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 원장은 완전히 약아빠진데다가 부모들과 구청 공무원을 갖고 노네요.

...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분 계신가요?

1. 원장이 바뀌자마자 약 2달동안 어린이집 공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을 어디 다른 공간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고서요.
그러니까 두달동안 공사를 하고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켰습니다.
아내 말로는 공사하기 얼마전에 동의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보냈더래요.
아내는 당연히 동의서를 무시하고 사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사를 시작했고, 하루종일 흙먼지가 날리고,
공사 인부들이 온갖 자재들을 갖고 왔다갔다 하는 어린이집으로
아직 2돌이 채 안된 아기가 등원을 해야했습니다.
당장 그만보내고 싶었지만, 하루아침에 어린이집을 옮길수가 없어서,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해당 월령의 아기를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이 동네는 유난히 어린이집이 많지만,

죄다 정원이 꽉 차있어서 짧은 기간에 다른 곳으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원장에게 물었답니다.
어떻게 애들을 있는데 공사를 할 수 있냐고?
원장이 태연하게 답했답니다.
전체 부모들의 70%이상이 동의서를 보내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이들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둘째 녀석은 그 공사 기간 내내 코를 훌쩍거렸고,
계속 감기기운을 달고 있었습니다.
2달이 지나서 큰공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아이의 코가 낫더라구요.
어린이집은 외양을 완전히 뜯어 고쳤고,
속도 완전히 다 바꾼 모양입니다.

2달동안 매일같이 코를 흘리고 기침을 하는 아기를 등원시키는 일이

죽을만큼 싫었습니다.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병원에도 데려가야했지요.

밤에는 코가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자꾸만 깨서 보채고, 잠을 푹 자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최근에 다른 일로 구청 보육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다가,
이 사실을 알리면서 동의서를 정말 70%이상 받았는지 확인해달라고,
또 70%이상 받으면 그렇게 맘대로 공사를 해도 되는지 물었으나,
담당 공무원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2. 공사를 시작한 시점부터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아직 어린 아이를 당장 옮길 곳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계속 보냈습니다.
내년 3월부터는 지금 큰애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있는 월령이 되기 때문에 옮기려고 신청을 해뒀습니다.
큰 애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둘이 한번도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네요.
암튼 얼마전부터 자꾸 진급신청서를 써달라고 했는데,
우린 계속 보낼 생각이 없어서 안써줬습니다.
그런데 진급비를 2만원을 내라고 가정통신문에 적혀있었답니다.
규정상 진급비는 1만원까지 받게 되어있습니다.

구청 담당 공무원은 원장과 통화한 후에
원장이 들려준 변명을 그대로 아내에게 들려줬습니다.
뭐 아이들마다 가방이 다 달라서,
안전에 크게 위협이 되기때문에 일괄적으로 바꾸기 위해
가방 값을 더 청구한 거라고 변명을 했답니다.
그리고 방금 그 이유를 12월 9일이었다가 16일로 연기된 행사인
동요부르기 대회에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오시면
그때 해명하려는 생각이었다고 변명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1년넘게 아이를 보내면서 가방이 다른 아이들을 한번도 못봤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가정통신문에
진급비가 2만원인 이유를 적어줘야 하겠지요.
얼렁뚱땅 그냥 한 아이당 1만원씩 더 챙기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미 대부분의 부모들은 2만원을 다 낸 상태입니다.
돈을 내기 전에 정확한 사유를 알려줘야지.
돈은 이미 다 걷어놓고,
한참 후에 그 이유를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3. 최근 몇해전부터 보육료 지원을 받는 가정은
'아이사랑카드'로만 보육료를 결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올해까지 '신한카드'가 독점으로 되어 있었고,
내년부터는 국민카드, 우리카드, 하나SK카드 셋중 하나로 바꿀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부모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원장이 벌써 여러차례 가정통신문을 통해
'우리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니 꼭 우리카드로 변경하라고 안내중입니다.
이건 명백한 위법행위입니다.

아내가 역시 담당 공무원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했지만,
공무원은 원장과 통화 후에 원장은 모르는 일이었다는 답만 받았답니다.

그 원장이 어지간히 약아빠진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담당 공무원도 참 일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명백한 위법행위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충대충 일을 하는 걸 보니,
그를 통해 이 상황을 바로잡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구청 담당 공무원이 이를 바로잡아 줄 수 없다면,
어디 상급기관에 다시 신고를 해야할까요?
아니면 전화나 팩스가 아닌 정식 절차를 밟아서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를 볼모로 잡고 있는 원장과 싸우는 일은
백퍼센트 부모에게 불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큰애를 키우면서 한차례 겪은 일입니다.
아직 내년 2월까지 2달 반을 더 보내야하는 상황이지만,
도저히 더이상은 이 상황을 그냥 참기가 어렵네요.

방법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주미힌 2011-12-10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건복지부 아이사랑 홈페이지(www.childcare.go.kr)
메인페이지 -> 열린공간 -> 어린이집 불편신고센터
어린이집 이용불편신고센터 1566-2566

이런데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데 가닐까 싶은데용...
다른 학부모들하고 같이 논의해서 신고하는게 어떨까요.. -_-;; 썩을놈들.

감은빛 2011-12-12 16:57   좋아요 0 | URL
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구청이나 시청쪽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쪽이 더 빠를수도 있겠네요.

다른 부모들과의 연계는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단 부모들끼리의 모임 같은게 형성되기 어렵구요.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은 대부분 여유가 없죠!)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있는 어린이집에 불만을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2011-12-1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2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12-1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복잡하게 하실일 있나요.여기 쓰신 그대로를 구청 홈페이지에 올리고 만원한번 내보세요.요즘은 민선 구청장 시대라 민원 한방이면 저런 복지부동 공무원은 아마 한동안 물좀 먹게 될겁니다.

감은빛 2011-12-12 17: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아직 전화로만 얘기하고 정식으로 민원을 넣은 건 아니니까요.
일단 말씀하신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1-12-1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을 상대로 그것도 보육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돈을 내세울 때 심한 역겨움이 들더라고요. 화가 나네요. 라주미한님 말씀대로 학부모들끼리 일단 좀 뭉쳐서 움직여야 일의 진척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은빛 2011-12-12 17:05   좋아요 0 | URL
보육기관들이 잘 파헤쳐보면 더러운 일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파헤쳐보기가 쉽지 않겠지만요.

부모들끼리 뭉치는 건, 위에 라주미힌님 글에도 답했듯이
쉽지 않습니다. 일부 부모들은 무조건 선생님께 굽히고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하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1-12-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쩜 좋을까요. 아유, 답답해.

감은빛 2011-12-12 17:05   좋아요 0 | URL
네, 답답한 현실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쉰P 2011-12-1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이런 썽것들!! 죄송해요 갑자기 욕이 나오네여. 뭐라도 도와 드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 아이들 때문에 안절부절하시는 감은빛님을 생각하니 속상하네요. 왜 들 그렇게 사는건지..아주 지랄들을 합니다..

감은빛 2011-12-12 21:51   좋아요 0 | URL
루쉰님. 함께 화를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직업도 아닌 어린이집 원장이란 작자가 저런 인간이라는 점이
정말 안타깝고 또 화가납니다!

아이를 돈으로 보는 인간이 정말 무섭고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