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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 관계와 사랑의 심리학
세르주 에페즈 지음, 배영란 옮김 / 황소걸음 / 2011년 9월
평점 :
실수
'당신은 늘 남을 가르치려고 들어요. 나는 당신의 애인이지, 학생이 아니예요.' 기억 속 어느 여성이 말했다. '오빠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누군가가 무슨 말만하면 곧바로 그게 아냐! 라고 말해. 일단 먼저 그렇게 말해놓고, 이유를 붙이는데, 솔직히 그 이유를 들어도 왜 그게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기억 속의 또 다른 여성이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는 '아유! 이 운동권 말투! 정말 재수없어!' 이렇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다보면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태도와 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나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나는 종종 섬세하고, 남을 배려하는 편이라는 평을 듣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나와 약간의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본심을 내보이며 상처를 줄 이유는 없다. 누구에게든 약간의 가식적인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끼고,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왜 상처를 주는 걸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의 진심을 다 말해서 말하게되고, 있는 그대로의 태도로 대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성격 혹은 성향 중에 공격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이거나, 혹은 마초적인 면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도 말했듯이 구체적인 상황들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정치적 성향이나, 내가 갖고 있는 나름의 신념에 관계된 일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했다면 저런 실수를 안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실수였다고 뒤늦은 변명을 던져보아도, 말그대로 버스 떠난 후에 손 흔드는 격이다.
사랑 혹은 관계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일까? 내게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내렸던 결론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떤 감정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똑같을까? 잘 모르겠다. 사랑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이 내가 갖고 있는 관계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또 실제로든 단지 표면적으로든 나와 사랑이란 감정으로 얽혀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평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그닥 평이 좋지는 않다. 뭐 내 태도로 보아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내가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닥 신경을 안쓰고 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들과의 관계와 소통에 좀 더 신경을 쓴다면 뭔가 달라질수도 있을까?
한때 사랑과 결혼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개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사회적 관계때문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때 읽은 책이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란 책이었다. 당시 이 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에게 희생을 강조하는 제도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 등 흔히 여성들의 일로만 생각되는 소위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나눠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가족간의 소소한 일들이 때로는 갈등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그들의 심리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심리학
'관계와 사랑의 심리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과연 이 책을 읽으면 나는 실제로 '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일단 흥미로운 건 사진이나 그림, 만화 등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둘째로 각 장마다 시작하기 전에 한페이지짜리 만화가 나오는데, 프랑시라는 이름의 설치류가 주인공이다.(쥐처럼 보이는데, 정확하게 어떤 류의 동물인지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다.) 한 페이지, 6컷짜리 만화로 늘 시작하는 장면은 주인공 프랑시가 들판을 산책하는 장면이다. 이게 프랑스식 유머인지 가끔 이해안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만화이기 때문에 일단 재밌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있다. '너'를 (이해하길) 원하는 '나' 라는 제목의 1장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2장은 인간에게 어떻게 사랑이 올까? 라는 제목으로 나와 나외의 존재와의 관계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3장 사랑은 어떻게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드는가? 과 4장 사랑, 가족, 민족 은 사랑, 결혼, 가족 등의 주제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 책의 구성 순서가 마음에 든다. 먼저 나를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알게되고, 그 다음에 그런 사랑과 관계들로 인해 벌어지게 될 다양한 일들에 대해 살펴보는 순서가 체계적이다. 각 장에는 저자의 의견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다양한 텍스트들이 인용되어 있다. 이 인용문들이 이 책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솔직히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고, 흐름이 자꾸 끊겨서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게다가 가장 아쉬운 건 번역인데, 이 글이 심리한 전공자들만 읽는 전문서가 아니라면 좀 더 어휘 선택에 신경을 쓰고, 문체에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심리학적으로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연인의 관계,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할지에 대한 재미있는 지식을 얻은 것 같다. 특히 아직 어린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유아기의 행동양태에 따른 심리학적 분석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인간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접근하는 새로운 일상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지금까지 나 자신으로만 향해있던 촛점을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한번 옮겨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