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2012년에 워낙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아서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아홉수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2012년 빨리 꺼져버려, 라고 생각했었는데, 올해 있었던 일들을 플러스, 마이너스로 나눠서 생각해보니 딱히 비뚤어질만큼 나쁘지 않은 한 해였음을 알게 됐다. 

 

플러스(+)

이탈리아(로마-피렌체-베네치아)+ 파리로 간 첫 해외여행.

평창 1박 2일.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에서 오래 알고 지냈으나 오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일본어 학원 등록 및 초급 4개월 코스 패스.  

지하책방.

혼자 영화 보기.

카메라 구입.

수요먹부림 모임.

 

마이너스(-)

좋아하는 사람들의 잇단 퇴사.

남친과 긴 연애(8년 10개월)에 종지부.

무개념 소개팅남.

아빠의 결핵 판정.

 

따지고보니 남친과 헤어지고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를 못 해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시작했는데 그게 다 플러스가 된 셈이이니 어쩌면 남친과 헤어진 것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만큼 새로운 일을 시작해본 적도, 새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어서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스스로의 틀에 나를 가두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좀 들었다. 이십대를 통틀어 올해만큼 책을 안 읽은 해도 없었고, 리뷰를 안 쓴 해도 없었는데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슬몃, 든다. (절대 2012년 서재의 달인에 안 뽑혀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읭?!) 

 

이제 몇 시간 뒤면 30대의 첫 해를 보러 부산에 갈 예정이다.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에서 20대를 함께해준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어 

겸사겸사 백만년 만에 생존신고 겸 페이퍼 하나 슬쩍. ^^  

2013년에도 모두 행복한 한 해 되시길! :)

 

곁다리로 붙이는 올해의 책.

 

 

 

 

 

 

 

 

 

올해의 시리즈: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올해의 영화

- 말하는 건축가

- 미드나잇 인 파리

- 엔젤스 셰어

- 서칭 포 슈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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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2-12-3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나도 알라딘에서 이십대를 보냈어요. (삼십대도 알라딘에서 주구장창 보낼 기세;지만)
스물 아홉에서 서른은 뭔가 간질거려서, 나는 해 넘어갈때 말고, 생일 끼어서 그리스 갔던거 생각나네요.

이매지 2012-12-31 18:24   좋아요 0 | URL
저도 삼십대도 보낼 기세. ㅎㅎ 원래는 해넘어갈 때 해외로 떠버리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손 놓고 있다가 엉겁결에 부산에 내려가요. 생일 끼어서 가는 것도 좋겠네요! 히히.

가넷 2012-12-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 후반에 알라딘을 시작해서 20대 후반을 지나가고 있으니, 저도 곧 2년뒤면 20대를 온전히 알라딘에서 보내게 되겠네요.

생각해보면 저도 올 한해 크고 작은 일들이 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서 2012년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네요... ㅎㅎ

이매지 2013-01-02 09:38   좋아요 0 | URL
그 '어찌저찌 버티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구요.
올 한 해도 자 부탁드리겠습니다 (--)(__)

kimji 2012-12-3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20대 끝자락과 30대를 옴팡 보낸 저도 있;;
플러스마이너스,를 읽고 있자니... 아, 정말 올 한 해가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의 한해 정리를 한 건 읽은 것도 아닌데... 사실, 전, 마이너스가 너무 많아서;;; 아무튼, 그래도,
새해복많이받아요! 부산여행도 즐거웁게! ^^

이매지 2013-01-02 09:38   좋아요 0 | URL
부산여행 잘 다녀왔어요. 저 해돋이 처음봤는데 해가 뿅! 하고 나타나서 감탄. ㅎㅎ
30대에도 잘 부탁드려요, 김지님. ㅎㅎ

순오기 2013-01-0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러스 마이너스~ 그래도 남는 장사(?^^) 하셨네요.
30대 진입을 축하해야겠죠~ ^^

이매지 2013-01-03 02:39   좋아요 0 | URL
네. 결과적으로는 남는 장사였어요. ㅎㅎㅎ
삼십대는 또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
 
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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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책에 밑줄을 긋는 자는 하나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왜 하필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가?" 참으로 심플하고도 당연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왜 살아가느냐/사랑하느냐'에 맞먹을 정도로 한없이 존재론적인 질문이니까. 마음에 들어서? 멋진 문장이라서? 그건 마치 밥을 먹으니까 살고, 예쁘니까 사랑한다는 대답과 비슷하다. 물론 딱 떨어지는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밑줄을 긋는다.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읽어 넘기면 그만인 문장들에 줄을 그어 되새기고, 언젠가 다시 펼쳐 읽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낯모르는 이의 밑줄을 만났을 때,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차라리 사랑이 아닐까? 예쁘게 긋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그은 선을 누군가 비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따위는 벗어버린 사랑, 말이다. -20~1쪽

전 지구가 하나가 된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책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란 그런 법이다. 외롭고 쓸쓸하다. 외롭고 쓸쓸해서 읽고 싶고, 읽을수록 외롭고 쓸쓸하다…. 외로워서 읽는가 읽어서 외로운가 하는 그런 질문은 나에게 하지도 말라. 뭐, 어쨌거나 결국 한 권의 책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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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12-2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해보았던 마음이 나와있네요
그래서 전 요즘 밑줄을 잘 안그어요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이매지 2012-12-27 13:0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잘 지내시죠? ^^
저는 한편으로는 기억의 매개물로 밑줄을 긋는 것도 같아요. ㅎㅎ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소설을 갓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 소개된 일본현대작가가 별로 없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나름 많이 읽었지만, 어느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외에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이 소개된데다 무슨 공장도 아니고 쉴 새 없이 작품을 쏟아내는 속도에 기함해 어느샌가 손을 놓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무슨 작품이었는지 가물할 지경이라(아마 가가 형사 때문에 읽은 <신참자>가 아니었나 싶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알라딘 머그컵이나 받아야지 하는 불순한 동기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구입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고, 그저 히가시노 게이고니까 잘 읽히긴 하겠지, 하는 마음에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쳐 들었다.

 

  강도짓을 한 세 청년이 경찰의 눈을 피해 밤을 지샐 곳을 찾던 중 우연찮게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낡은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간다. 조용히 숨어 있다가 새벽이 되면 첫차를 타고 도주할 예정이었던 그들에게 느닷없이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얼결에 편지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어떤 이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장난인가 하고 무시하려다가 어느샌가 답장을 쓰게 된 이들. 하지만 답장을 보내기가 무섭게 다시 편지가 날아든다. 시간이 이상하게 뒤틀린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세 청년은 어느새 진지하게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하기 시작한다. 첫 이야기인 <답장은 우유 상자에>가 이렇게 다소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되지만, 이 점을 내려놓고 본다면 다섯 편의 연작은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평범한 이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다 보면 세상엔 이렇게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소하게는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을 아는 누군가에게는 선뜻 말하지 못할 고민이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그냥 누구라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독백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이렇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할 때, 누군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경청해준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다. 결혼을 예정한 애인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이 얼마 남지 않아 고민인 이도, 가업인 생선가게를 물려받는 것과 꿈인 가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도, 부모와 함께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이도, 어떻게든 성공을 하고 싶어 사무보조일을 그만두고 호스티스의 길을 걸을까 고민하는 이도 모두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상담 편지를 보낸다.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고, 누가 내 등을 떠밀어줬으면 하는 마음일 때도 있었지만 고민을 글로 옮기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들은 스스로의 마음과 마주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그렇다 쳐도 이를 들어주는 이들의 입장도 사뭇 진지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장난에서부터 시작한 고민 상담이었지만, 나미야 잡화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고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구멍이 휑하니 뚫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대면해 보듬어준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뿐이 아니다. 엉겁결에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온 좀도둑 패거리도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하면서 누군가에 고민에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다. 연륜이 있는 할아버지가 하는 조언이든, 가방끈 짧고 누군가의 고민이라고는 진지하게 들어본 적 없는 좀도둑들의 조언이든 이들의 조언은 그 조언을 받는 이들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해준다.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분명 갸웃할 만한 책이다. 이 책에는 탐정도, 시체도, 살인범도 존재하지 않는다. 끽해야(라기는 그렇지만) 좀도둑 정도가 등장할 뿐이다. 주요 사건도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과 삶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담겨 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몰입력은 분명 히가시노 게이고인데 그 소재가 예전 작품과 사뭇 달라 '이거 의외네' 하면서 쉴 새 없이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나미야 잡화점'이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을까, 무슨 고민을 써서 보낼까, 무슨 답장을 받게 될까 괜한 몽상에 빠져들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면 스토리로는 이미 산전수전 다 써본 작가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런 작품도 쓸 줄 안다니 솔직히 좀 의외였다. 미스터리 요소가 거의 배제됐지만, 각각의 이야기에 던져놓은 조각을 다른 이야기에서 맞추는 식으로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정도의 떡밥은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기대했던 미스터리는 아니었지만, 추운 겨울밤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읽다보면 어느샌가 이불의 온기만큼이나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였다. 역자의 말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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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품절


"처음 상담을 시작한 것은 이 근처 아이들과의 말장난 때문이었어요. 나미야라는 우리 잡화점 이름을 짖궂게 '나야미, 나야미' 하면서 놀리더라고요. 간판에 '상품 주문 가능. 상담해드립니다'라고 써 있는데, 아이들이 그럼 나야미(고민) 상담도 해주느냐고 자꾸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야 물론이다, 어떤 것이든 다 받아주겠다, 라고 했더니 정말로 아이들이 고민을 상담하겠다고 찾아오더군요.
우스갯소리처럼 시작된 일이라서 그런지 처음에는 장난기 가득한 상담만 들어왔어요. 공부는 하기 싫은데 성적표에는 모두 '수'를 받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는 식이에요. 하지만 나도 고집이 있는지라 그런 상담에도 진지하게 답을 써서 벽에 붙여줬죠. 그랬더니 차츰 진지한 내용이 많아지더군요. 아버지 어머니가 자꾸 싸워서 힘들다든가, 하는 것이었어요. 나중에는 상담 내용을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도록 했습니다. 답장은 가게 뒤쪽 출입문에 달린 목제 우유 상자에 넣어줍니다. 그러면 익명으로 상담하려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편지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언제부터인지 어른들도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넣어주더라고요."-24쪽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31~2쪽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158~9쪽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167쪽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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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어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심야식당>.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손님들이 밤이면 심야식당을 찾는다. 그렇게 그곳을 찾은 이들에게 마스터는 '음식'으로 그곳을 찾는 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위로한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속의 '가나리야'도 일견 심야식당과 비슷하다. 가나리야의 주인장인 구도 데쓰야는 손님들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혹은 비밀을 조용히 듣고는 나름대로 조용히 해결해내기 때문이다. 심야식당에서 마스터는 "메뉴는 이것뿐"이라고 하지만 가나리야에서는 "맥주는 이것뿐"이다. 손님들의 상태를 캐치해 구도는 네 가지 도수의 맥주 중 하나를 알맞게 골라주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 가게에는 특유의 게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참가 조건은 명쾌하다.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 양쪽을 겸하는 사람, 셋 중 하나면 된다"라는 책 속의 설명처럼 가나리야는 단순한 바가 아닌 일상 수수께끼의 공동체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도수의 맥주와 구도가 내놓는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일상미스터리의 만찬이 <꽃 아래 봄에 죽기를>에는 담겨 있다.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및 연작단편집 부문 수상작인 이 책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맨 처음 단편이자 표제작인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마지막에 실린 <물고기의 교제>를 제외하면 각각의 이야기는 가나리야를 접점으로 하고 있지만 별개의 이야기다. 신원 불명의 하이쿠 시인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다룬 <꽃 아래 봄에 죽기를> <물고기의 교제>, 역내 대여서가에 꽂혀 있는 책 여기저기에 꽂혀 있는 가족사진에 얽힌 <가족사진>,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노부부를 찍은 사진으로 보도사진상을 수상해 개인전을 여는 사진가가 거리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잃어버리는 기묘한 사건을 다룬 <마지막 거처>,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인근 초등학생들 사이에 빨간 손의 악마에 대한 소문이 도는 것을 다룬 <살인자의 빨간 손>, 회전초밥집에서 참치초밥을 일곱 접시씩 먹는 남자에 대해 다룬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까지 전체적으로 소소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손님과 시간을 포함하여 가게의 움직임이 모두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지만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결코 과시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구도를 만나러 "삼나무 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격리된" 가나리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굳이 따지자면 안락의자형 탐정이지만 구도라는 인물은 그 범위와도 조금은 거리가 있는, 자기만의 주관이 강하다거나 개성이 강한 인물이 아니라 어쩐지 코끝을 간질이는 은근한 향 같은 캐릭터라 재미있었다. '미스터리'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굉장히 시시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갑남을녀가 비밀스레 품어온 이야기들은 분명 어떤 울림을 전달한다. 가나리야에 들어선 순간, 특별한 삶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남 모를 상처가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다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구나 싶어 위안이 됐다.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된 잔잔한 힐링소설 정도로 읽으면 의외의 만남이 될 작품. 가나리야에서 파는 필스너는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드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읽으니 어느샌가 나도 가나리야 테이블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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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이 책 반가워요. 저도 흥미롭게 읽고 은근한 위로가 되었던 책이거든요. ^^

이매지 2012-12-22 12:16   좋아요 0 | URL
아직 정리를 덜해서 비밀글로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댓글 달렸다고 해서 놀랐네요. ㅎㅎ 사실 봄에 읽었었는데 이제사 리뷰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었는데 그래도 좋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