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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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편인데, 의도하지 않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 2권이 같은 저자가 지은 것이라는 점을 책을 다 읽고서야 깨닫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자기 앞의 생'은 작가인 로맹 가리가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것이기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로맹 가리이던, 에밀 아자르이던 어찌되었건 간에 아무런 편견없이(작가에 대한 편견은 같은 작가의 책을 몇 권 접해야 되는데, 첫번째로 접한 책이니 편견은 있을리가 없기도 하다.)책 자체만을 보았을 때 이 책은 나름대로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주인공인 모모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영화에 소리를 넣는 나딘 아줌마와 그의 남편 라몽 아저씨, 그리고 카츠 선생님 정도. 우선 주인공 모모는 아랍인으로 창녀인 엄마로 부터 태어난 아이로, 유태인인 과거 창부였지만 이제는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지내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낸다. 이들이 지내는 곳에는 모모를 비롯하여 여러명의 창녀의 아이들이 있고, 같은 건물에는 한 때 권투 챔피언이었던 여장 남자도 함께 살고 있다.

 결코 평범하지만 않은 이런 환경 속에서 모모는 위조된 서류때문에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한채 하밀 할아버지로 부터 어느정도 글을 배우고, 평범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은 모모 나름대로의 일상적인 삶을 지낸다. 그러던 중, 로자 아줌마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병이 걸리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간호하게 된다. 과거 창녀였던 아줌마가 때때로 과거를 그리면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이상한 옷을 입을 때에는 아줌마를 역겨워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모모는 아줌마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줌마를 계속하여 돌보게 된다. 카츠 선생님이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모두에게 아줌마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로자 아줌마가 이전에 지하에 마련해놓은 공간에서 아줌마와 끝까지 헤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세상의 그늘진 모습을 일상으로 바라보고 자란 모모,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삶이 괴로워도 사랑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깨달아버린 모모. 그의 모습이 왠지 안타까워보이면서도 그의 말에 수긍이 가는 것은 어째서였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비극이라면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렇지만 우리의 삶 자체도 하나의 비극이라면 비극일테니. 이 책은 삶을 예쁘게만 포장하지 않은 책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모모라는 아이가 성장해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인종문제나 안락사에 관한 생각, 그리고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처럼 이 책도 어린 아이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점이 얼추 비슷한 것 같기도... 연달아 이런 책을 접하니 진지하게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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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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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뉘어서 각 장마다 짤막하게 나오고 있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귀차니스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호어스트의 재담을 듣고 있자니, 나 정도의 귀차니즘은 새발의 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은 피곤한 일상에서 마시는 피로회복제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더, 웃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기운나게 해주었다.

 이전에 스노우캣의 카툰에서 만난 적이 있는 피자를 시키고 피자배달부에게 어차피 집으로 배달을 가니 태워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기차표값을 아끼겠다고 친구가 써먹은 방법을 이용하여 깜빡 졸다가 늦게 내렸다고 변명을 한다던지, 몇 년동안에 계속 해야할 일들을 포스트잇에 잔뜩 붙여놓고 그걸 보는 것이 싫어서 집을 나오는 이야기, 엄마가 온다고 친구가 하루만 엄마대하기 연습을 하자고 해서 친구의 엄마 노릇을 하는 이야기 등등 그야말로 엉뚱하고, 황당하고, 그렇지만 차마 미워할 수는 없는 그런류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책의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마지막에 나오는 찾아보기 또한 재미를 더해주는데, 예를 들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그 자의 인생도 언제나 금요일만은 아니었음, 미국-설명할 방법이 없음, 응급실-여기까지 갔다면 이미 큰 일을 해낸 것, 천국의 문-전설의 명소, 아직 발견되지 않음, 아틀란티스 비슷하나 보물을 없음' 이런 식의 내용인 것이다. 세상에 무슨 찾아보기가 이렇게 황당하단 말인가.

 여튼, 일상에 지쳐있을 때 가볍게 볼 수 있는 한 편의 시트콤처럼(책 자체에 나오는 건 한 편이 아니라 수십편은 되지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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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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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익히 들어온 제목이었고,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왠지 모르게 두께의 압박(544쪽)으로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읽게 되었고 책을 놓고나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책이다. 1961년에 퓰리처 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는 떼어내고서라도 독자 스스로가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의 조그마한 마을인 메이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겪는 스카웃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단순하게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관계 속에서 부조리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물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스카웃의 성장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스. 그를 변호하게 된 사람이 바로 스카웃의 아버지 핀치 변호사이다.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은 단순히 자식이 아버지를 보는 관점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재판을 바라본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무죄임이 분명한 톰 로빈스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받아내고, 그는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한편, 그를 강간범으로 고소한 술 주정뱅이에 쓰레기 같은 인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봅 이웰은 법정에서 핀치 변호사에게 당한 모욕을 갚아주겠노라고 핀치 변호사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고, 스카웃과 젬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자업자득이라고 결국 자신이 들고 있던 칼에 찔려 죽게 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취급을 받은 것은 비단 이 소설 속에 등장한 문제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앵무새. 즉.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남과 다르다는 편견때문에 소외받고 고통받는 존재는 오늘 날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차별과 어떤 문제에 대한 편견들. 아직 세상은 근 50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것일까?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책에는 단순히 흑인문제, 인종문제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 그리고 딜이 성장해나가는 과정. 특히 스카웃의 눈에 비춰지는 오빠의 성장은 놀랄만하다. 옆 집에 살고 있지만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를 괴롭히던 초반의 모습에서 어느새 철이 드는 모습은 마치 과일이 익듯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보여지고 있었다. 물론, 매일 멜빵바지 차림이었던 스카웃도 점점 숙녀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젬의 성장이 좀 더 눈에 띄였다고 할까...

 어린 아이의 눈에서 보는 부당한 사회의 모습. 책 속에서 아버지가 하는 말처럼 부당한 판결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이들뿐. 점점 세상의 때에 물 들어가는 나의 모습은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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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품절


공주의 초는 나라에서 유명한 것이다. 그 정결하고 투명함이 보배론 구슬과 다름없다. 근래 누가 보내준 것이 있길래 밝혀서 책을 비추었더니 어두워 글씨를 분간할 수 없었다. 돋울수록 더 어두워지고, 파낼수록 점점 흐려졌다. 가만히 살펴보니, 기름도 깨끗했고, 만듦새도 아주 정밀했고, 타서 줄어듦도 더뎠다. 다만 문제는 심지가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마음이 거친자는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관찰할 수 없음을 말이다. -홍길주,<수여연필>-68쪽

사람은 벗을 가려 사귀지 않을 수 없다. 벗이란 나의 어짊을 돕고 나의 덕을 도와주는 존재다. 유익한 벗과 지내면 배움이 날로 밝아지고, 학업이 나날이 진보한다. 부족한 자와 지내면 이름이 절로 낮아지고, 몸이 절로 천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개와 개가 사귀면 측간으로 이끌고, 돼지와 돼지가 어울리면 돼지우리로 이끄는 것과 같다. -성현. <부휴자담론> -94쪽

자네, 음식 중에 강정이란 것을 못 보았는가? 쌀가루를 술에 재어 누에만하게 잘라 따뜻한 구들에 말려 기름이 튀겨내면 모습이 누에고치처럼 되네.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텅 비어. 먹어봤자 배를 부르게 하기 어렵지. 게다가 잘 부서져서 불면 눈처럼 날린다네. 그래서 겉은 번드르하면서 속은 텅 빈 것을 강정이라 한다네. -박지원 <순패서>-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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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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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 즉. 간서치라고 일컫는 이덕무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인 이덕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암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과 흔히 북학파라고 묶여지는 이들이 등장하는 '방각본 살인사건', 그리고 정민 선생님이 지은 '미쳐야 미친다' 등의 책에서 잇달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덕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그의 글을 찾던 도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속에는 이덕무의 글들을 자화상,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 벗 그리고 벗들과의 대화, 군자와 선비의 도리, 자연과 벗을 삼아 등의 일정한 주제로 묶어 보여주고 있다. 쉽게 풀어썼다기보단 단순하게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한글로 옮겨놓은 것이고, 각주의 경우에는 책의 하단에 실은 것이 아니라 한가지의 이야기의 마지막에 한꺼번에 실어놓아서 읽으면서 불편함이 있었다. 게으른지라 책을 넘겨가면서 각주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터라...이야기의 끝에 역자가 참고라 하여 간단하게 역자의 생각을 적어놓은 부분은 책의 이해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어찌되었건간에 책의 편집 자체에 불만이...하지만 부록에 실린 이덕무의 연보나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은 마음에 들었다.

 책 속에서 이덕무의 문장을 하나씩 접해가면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면서도 이것이 부족함을 죄스러워 하는 모습, 벗에 대한 마음가짐 등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대나무처럼 꼿꼿한 그의 모습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서 책을 파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준 단 음식을 뺏어먹은 박제가를 꾸짖어달라고 쓰는 편지글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조금씩 문장의 행간을 파악하면서 이해를 해야되서 그런지 읽기에 버거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인간 이덕무와 그가 살았던 시대상(정조시대의 서얼기용이라던지, 문체반정과 같은 여타의 사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은 미숙한 한문학 실력에 뒤에 실린 한문의 원본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랄까...아, 어서 한문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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