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구판절판


무슨 일에 대한 견해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단 하루만에 싹 바뀌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있었다가는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잊을 만하면 불쑥 생긴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고,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야 물론 긍정적으로 변하는 편이 바람직하기는 한데...-29쪽

사랑을 함으로써 주변의 세계가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성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반짝거리는 태양과 바람의 감촉이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일도 있다.-29쪽

무언가를 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결국 치고받고 싸우는 세계이다. 모두한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뜻하지 않은 피를 흘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책임은 내 두 어깨로 짊어지고 사는 수밖에.-60쪽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행길에 어떤 책을 들고 갈 것인가하는 명제는 누구나가 고민하는 고전적인 딜레마일 것이다. 물론 사람은 각기 독서 경향이 다르고, 여행의 목적이나 기간, 행선지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 기분도 달라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결론을 유추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언제 어떤 곳을 가든 오케이'라고 여길 수 있는 올 마이티적인 책이 한 권쯤 있다면, 인생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65쪽

'세상에는 정말 여러 가지 종류의 함정이 있어.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몸을 웅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다니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하루하루 별 탈 없이 마음 편히 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120쪽

아주 드물게, 무슨 바람인지 한밤중에 눈을 뜨는 일이 있다. 그런 때면 그때 꾸고 있던 꿈의 내용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눈을 떴다가 금방 또 잠들어 버리므로, 아침이 되면 꿈에 관해서는 역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순간적이기는 하나 꿈의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허망하고 애달픈 사실뿐이다. 이는 잘 알고 있는 노래의 멜로디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의 무력감과 비슷하다.-154쪽

내 머리 구석에 낚시바늘처럼 걸려서 떼어내고 싶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묘한 일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왠지 잊혀지지 않는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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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영수증 - Receipt Please 스물다섯살
정신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4년 1월
구판절판


핸드폰이 요금미납으로 정지된 동안에는 쓰레기통 바닥에 붙어버린 사탕 그 사탕에 붙어버린 머리카락처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29쪽

소유욕은 중력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지구가 우리를 붙잡아 두려하는 마음처럼 -39쪽

이젠 어깨를 넘은 나의 머리카락이 풍력계가 되어 자동차가 간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싫은데도 자꾸 그 방향으로만 가길래 울어버렸다. -43쪽

이 생각은 다치지 않게 얼려둔다. 생각은 춥고 조용한 데에서 잠을 자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절대 깨어나지 않겠지-45쪽

혼자 살 때보다 지아랑 살면서 좋은 점은 밥을 먹을 때 젓가락으로 두 장 짚게 된 깻잎의 아랫잎을 붙잡아 준다는 것이다. 나를 붙잡아 주는 지아와 함께.-81쪽

리트머스 용지가 된 내 얼굴은 분홍색 반응을 한다.-95쪽

새벽에 집에 들어와 코드가 빠진 밥솥을 열어보니 하얀 밥이 차갑게 잠을 자고 있었다. 깨지 않게 주걱으로 살짝 들어 접시에 담고 뜨거운 담요같은 3분 카레를 덮어주었다. -101쪽

충무로 던킨도너츠 창가에 瞞티 나에게 묻는다. "정신, 나 잘 할 수 있을까? " "그럼 잘 할 수 있지 걱정마" 그렇게 이렇게 스물 넷이 될 때까지 계속할 수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가게 안의 도너츠 들은 다들 동그라미. 글쎄라고 하는 세모난 것들은 팔려나가고 없었지.-105쪽

이미 나의 눈 속엔 촘촘히 별사탕 다섯개가 들어와 있었다-141쪽

시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게 되면 오늘이 얼마나 그리워질까하는 생각에 반짝반짝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스물 다섯 살 크리스마스 이브.-145쪽

나의 친구, 나의 일, 사랑 그리고 어려운 문제들 다시 잘 보고 풀어내야지. 새로 살 것 없어. 스물 여섯 살 쪽으로 출렁출렁 걸어나간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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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품절


그런 일들이 진정,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웃고 있는 본인의 내면에서 마음만이 가난해진다. 점점 벌레 먹은 자리만 커져 간다.-17쪽

그 밤은, 불가사의하도록 긴 밤이었다. 길고, 수많은 단층으로 나뉜, 그러나 내내 한 가지 톤을 유지한 인상적인 밤이었다.-21쪽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에, 훨씬 더 강렬한 금빛으로 반짝이는 이미지가 있어,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인듯한 기분이 든다. 희망이나 빛, 그런 것들을 전부 끌어 모은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것.-22쪽

깊은 밤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왠지 애틋한 기분이 든다. 어째서일까?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렸을 적에는 안 마셨을텐데, 밤새 첫눈 내린 아침이나 태풍이 몰아치는 밤처럼, 마실 때마다 사랑스럽다.-51쪽

"사쿠미. 변했군, 굉장히."라고 말했다. 옛날, 친구 집에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빨갛고 둥글고 커다란 것이 들어 있었어. 잘 알고 있는 것인데도 순간 무엇인지 생각이 안 나더군. 그것은 수박이었지. 프루트 펀치를 만들려고 껍질을 벗겨두었다는 거야. 꽤 애를 먹었을텐데 왠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게 수박인 줄 금방 알지 못했다는 점이 우스웠어. 그때 느낌하고 비슷해. 그렇게 변했어. 라고 그는 작가다운 예를 들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기준은 무엇일까-118쪽

한 번 만났더니 또 만나고 싶고, 한 번 섹스를 했더니 또 하고 싶어져서 두 번, 세 번, 네 번으로 늘어가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씩밖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122쪽

앞으로 인생에, 가령 오늘과 같은 날이 있다 해도, 이 하늘, 구름의 모양, 공기의 색, 바람의 온도는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175~6쪽

우리들이 백만 권의 책을 읽고, 백만 편의 영화를 보고, 애인과 백만번의 키스를 하고서야 겨우, <오늘은 한 번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단 한 번에 깨닫게 하고 압도하다니, 자연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놔두면서 알게 한다. 누구에게든 구별 없이 보여준다. 구하여 아는 것보다 훨씬 명료하게. -176쪽

무엇이든 스스로 겪어서 획득하는 것이 가장 생생한 포획물이니까.-178쪽

테트라포트(tetrapod)에 반사되는 저녁 해의 희미한 빛을 보면서 불쑥 굉장히,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돌아간다고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평소와는 달리,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몹시 허전하게 느껴졌다. -182쪽

감상적인 기분에 젖는 것은, 한가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느슨해져 있으면, 추억이 망령으로 둔갑하여 차오른다. 잠겨 있으면 기분은 좋지만 금방 싫증이 난다. 얼른 끝내고 싶어 강렬한 재현의 빛 속으로 의식을 날려보내 곧바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요즈음 베리즈에서의 일들이 늘 나의 주위를 뿌옇게 둘러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334쪽

아아, 인간이란 참 바보스럽지. 살아간다는 것과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토록 괴로운 일인데, 애달프고 살은 에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일까, 도대체 뭐란 말인가.-355쪽

이렇게 성격이 강렬한 두 사람이 함께 저 <연애>라는 끔찍스런 태풍에 좌지우지되면서도 익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의 본질에 거리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있고, 서로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연인이고, 둘 사이에 생겨나는 공간도 하나밖에 없다. 그러함을 알면, 더구나 거기에 어떤 특별히 재미있을 만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알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좁혀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거기서 멈춰 설 수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는 양지와도 같은 것, 따스하고 밝고, 혼자서는 창조할 수 없는 공간, 거기에 수많은 것들이 생성될 수 있는 미묘한 공기만을 소중하게 키워간다. -360~1쪽

오랜만에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모르는 아이들과 한 교실에 갇혀, 그 안에서 억지로 사이가 좋아질만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운명이고, 그것이 친구가 되는 일이라면 그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어른이 되었으니 자유롭게, 친구는 거리에서 자기 눈과 귀로 구하면 될 텐데, 상자 속에 처박혀 있던 때의 버릇이 떨어지지 않는다. -408쪽

내년의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도 미리 알 수 없다. 그렇다는 걸 잘 알면서, 모두들 잘도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두들 요령 좋게 연막을 치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고, 직면하여 대항하기도 하고, 울기도 웃기도 원망하기도 얼버무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를 너무 민감하게 느껴 부서지지 않도록.-470~1쪽

인간은, 마음속에서 떨고 있는 조그맣고 연약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서, 가끔은 눈물로 보살펴주는 것이 좋으리라.-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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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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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산문집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간지에 연재한 것을 모아서 낸 것이다. 제목을 보고 '대체 무슨 제목이 이렇담.' 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집어들었는데, 역시 산문집답게 일상적인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구석들도 있어서 마치 호프집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기본 안주처럼 야금야금 먹어버리다가 결국은 다 먹어버린 셈이 되었다랄까.

 소설에서는 인간의 자아나 본질에 대해 제법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하는 하루키의 일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리버리하고 소심하다니.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과 하루키의 실재 모습이 비교되면서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간 책.

 책 속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일본의 러브호텔명'에 대한 이야기랄까. 한 번에 끝난 것도 아니고 3번에 걸쳐서 나오는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러브호텔의 이름들은 어찌나 재미있었는데, 읽으면서 킥킥거릴 정도였다. 몇 가지를 들어보면, '인간관계'라던지, '그리하여' 라던지, '시간죽이기'라던지, '초밥집 옆'이라던지 심지어는 '농협'이라는 호텔도 있다고 하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더불어 그의 오래된 애인같은 고양이 '뮤즈'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꿈에서 공중 부양을 하는 이야기들도 역시나 재미있었다. 그 외에 실린 이야기도 예전에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 아. 제목인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obladi, oblada, life goes on. blah!'에서 blah를 bra로 들은데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어찌되었건 오랜만에 만난 하루키의 작품이 반가웠다. 대체 새로운 장편 소설은 언제쯤 나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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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영수증 - Receipt Please 스물다섯살
정신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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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개인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영수증은 조금은 특별하고 기발하다. 영수증을 통해 자신의 추억을 새겨서 기록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리라. 2001년의 영수증들. 그 속에서 스물 다섯살의 정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

 PAPER에서 만나던 정신과영수증을 이렇게 선물세트마냥 한 번에 만나게 되니 과자 선물 세트를 받은 어린아이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내 다이어리에 붙어있는 몇 개의 영수증들도 필히 그녀의 영향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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