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가치란.

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아멜리 노통브의 희곡인 이 책에는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문학을 전공한 50대의 교수, 그리고 30대의 그의 조교, 그리고 조교의 애인인 20대의 마리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마리나의 집이 폭격을 받으면서 마리나는 교수의 집에서 그 전부터 살고 있던 조교와 함께 살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 추위가 엄습해오자,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온기를 찾으려 한다. 조교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배열판에 몸을 데우고, 교수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집에 있는 책들을 한권씩 태워간다. 책은 그 내용보다는 두께에 의해서 가치가 판단되어지기까지 하고, 결국 몇 권 안남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 그렇게 하루하루 책을 없애가면서 그들은 추위를 견뎌내고, 전쟁 속에서 목숨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잃어가는 그들. 그리고 오직 따스함을 얻기 위해서 교수와 포옹하는 마리나. 마리나는 점점 추위에 얽매여 변해간다.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놀라운 거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아멜리 노통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어떤 쪽인지는 확실이 들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문학이란 그저 삶이 어느정도 유지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 문학이라는 것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저 불쏘시개로써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 세사람에게 태울 책이 없다면 그들은 벌써 죽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면서 책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상상력이 이번에는 문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불쏘시개인 책을 다 태운 다음에 총알이 빗발치는 공원으로 산책을 가버린 마리나의 모습. 결국 책이 없으면 살 지 못하다는 의미였을까? 책을 단순히 종이조각으로 느낄 것인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흥미로운 법의학 스릴러

법의관 1 - 법의관 ㅣ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4년 11월

　퍼트리샤 콘웰이라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이름. 우연히 리브로에서 2004년 놓치기 아까운 신간 리스트에서 이 책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며칠 뒤 학교 도서관에서 신착도서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성격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책의 표지에 작게나마 써있는 '법의학 스릴러'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법의관이 주인공인 법의학 스릴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인 법의관장은 스카페타 박사란 이름은 가진 여자이라는 점이다. 문득 x파일의 스컬리의 모습이 간간히 떠오를 정도로 어느정도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컬리는 스컬리대로, 스카페타 박사는 스카페타 박사대로 각자의 매력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스카페타 박사라고 하더라도 책 속에서 그녀는 혼자 잘났다고 뽐내지 않는다. 그녀의 곁에는 마초 스타일의 형사 피트 마리노와 프로파일러 밴턴 웨슬리가 그녀를 도와주면서 사건의 진상에 점차 다가간다. 　

  아무런 공통점 없는 여자들의 잇달은 죽음. 범인은 너무도 잔혹하게 피해자들을 살해한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부러뜨리지를 않나, 성기를 칼로 찢지를 않나, 그의 잔혹성은 사건의 진행될 수록 점차 점차 그 강도가 세진다. 치밀한 범인은 증거를 남기지 않고, 게다가 비분비계라서 증거확보 또한 쉽지 않다. 점차 점차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가고, 스카페타박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쉴새없이 그녀를 옥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그녀의 동생과 조카인 루시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책이 지어진지도 10년이 훌쩍 지난 시점이라서 그런지 약간은 시대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DNA의 감정 문제와 같은 점에서는 마치 살인의 추억에서의 DNA검사를 보는 것처럼 시작단계의 놓여있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시대로 떠나서 이야기 속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메이플 시럽 요증'이라는 새로운 대사장애에 대해서 알게 되서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다.(만들어낸건가 했는데, 실제로 그런 병명이 있다.)

  작가 자신이 여성이고, 경찰서 담당 기자로, 버지니아주 법의국의 컴퓨터 분석관으로 5년간 6백여회에 달하는 부검에 참관하고 법의학 관련 강의를 들었으며, FBI 아카데미 트레이닝 코스를 직접 밟기도 해서 그런지 그녀의 경험이 이 책 속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전혀 몰랐던 책이지만, 처녀작인 이 책 한 권으로 5개의 주요 추리문학상을 휩쓸었다고 하니, 앞으로 그녀의 책들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스카페타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는 역자의 후기를 읽으니 벌써부터 다음 시리즈가 기다려진다.

니베아 립케어

니베아 립케어 - 4.8g
니베아

비단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입술이 늘 터서 립케어제품은 거의 달고 사는데, 그동안 써오던 미샤의 립케어를 다 쓰면서 뭘로 써볼까 하다가 이 녀석으로 낙찰! 미샤에서 립케어를 2천원에서 샀었는데,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우선 한 번 놀라고, 그보다 많은 양에 또 한 번 놀라고, 그보다 좋은 발림에 또 한번 놀랐던!

올 겨울뿐만 아니라 이제는 니베아 립케어와 함께 하는 사계절이 될 듯.

매우 만족해요^-^

재미있는 고고학 이야기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조유전 이기환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국문학이 한국의 역사 속에 큰 문화 속의 세부적인 문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전공의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해서 역사에 관한 내용들을 교양과목으로 들었는데, 역사라는 과목이 알수록 매력이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읽기 쉬운 역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은 역사학자가 아닌 고고학자다. 현장에서 발굴을 하면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설이 등장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수많은 학자들의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노(老) 고고학자인 조유전은 이러한 학자들의 풍토를 비판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의견에 대한 지지를 하기도, 반박을 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읽기 쉽게 풀어가고 있다.
　두께는 만만하게 볼 만큼 얇은 편은 아니고, 또 올 칼라로 되어 있어서 책의 무게도 만만치는 않지만, 어쨋든간에 이 책은 읽기 쉽게 써있기도 하거니와 곳곳에 삽입된 사진이 어우러져서 이해하기 쉬운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그저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없앨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를 마무리한 멋진 책 !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인도에서 살던 소년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배가 난파된다. 다행히 그는 구명보트에 오르게 되지만, 그 곳에는 하이애나 한 마리, 오랑우탕 한 마리,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마리, 그리고 뱅골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인도에서 그의 부모는 동물원을 했었고, 인도의 상황이 안 좋아지자 여기저기 팔았던 동물들과 함께 떠난 여행길이어서 난파된 배에는 그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얼룩말과 오랑우탕은 하이애나가 죽이고, 그리고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하이애나를 잡아먹고, 결국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 남는다. 파커를 길들이는 이야기와 생존에 대한 욕구들이 섞여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싶었더니 구명보트에는 무슨 노아의 방주인 것처럼 갖가지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결국 남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겪는 식인섬의 이야기, 다른 표류자와의 만남, 그리고 우여곡절끝에 육지에 도착하고 리처드 파커가 데리고 온 사람들 덕분에 파이는 살아나고, 리처드 파커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얼마 전에 일어났던 쓰나미 생각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해일에 휩쓸려 갔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쯤 누군가는 파이처럼 바다에서 삶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도에서 살 때는 채식주의자였던 그가 끝내는 물고기를 비롯하여 파커의 똥까지 먹는 모습에서는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구해진 파커에게 화물선의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찾아간 조사관들과의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씁쓸함을 남겨준다. 파이의 이야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세상에 너무 물들어버린 모습에 실망하는 파이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위에 표류하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왠지모르게 안쓰러웠다.

　단지 태평양을 호랑이와 함께 227일간 표류하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이의 종교관을 통해서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물론, 나는 무교이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수용하고 있으니... 여하튼 올해를 마무리 하는 적절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무엇인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종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 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