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려고 했지만 페이퍼로 변질된 이야기. 이유는 에피쿠로스와 인문주의자들,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그리고 몽테뉴 덕분이다. 그런데 이 이름들은 정말이지 이 책을 대하는 아주 쉬운 일부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원전 1세기, 사물의 본성에 대해 쓴 로마 시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루크레티우스였다. 에피쿠로스의 계승자였던 그의 원자론은 중세의 세계관으로 볼 때 위험천만한 내용이었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고결하고 끈기 넘치는 한 책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어 그간 지켜져온 총체적 우주질서와 종교적 신념을 뒤엎는다. 제목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학자들은 이 책이 발견된 순간을 근대의 탄생이라 표현한다.
이렇게 서로를 소유하는 동안에도 연인들의 열정은 불확실성 속에서 솟구치며 방황한다. 자신의 눈과 손으로 먼저 무엇을 즐길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의 욕망의 대상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육신에 고통을 가져오고, 대부분의 경우에 상대의 입술에 이를 들이밀면서 서로의 입을 거칠게 부딪친다. -루크레티우스
-<1417, 근대의 탄생>, p.247
이 순간도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다. 30세기에도 지구가 굳건하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지. 그치만 개인적으로 30세기에 지구와 인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책이 발견되든 괴생명체가 나타나든 세계는 변화한다. 고대의 희귀본 하나를 발굴한 중세의 책사냥꾼이 르네상스(근대)를 연 것처럼 말이다. 철학과 사상을 쭉 공부해왔다면 다르겠지만 생소한 고대 철학자와 정치가는 물론이고, 고대 문헌의 철학적 내용까지 사유해야 한다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크게 보면 라틴어(중세 로마어)를 잘 배운 한 남자의 책사냥기, 사실상 고대중세와 근대의 핵심을 이해해야 하며, 포조와 루크레티우스를 비롯한 철학사상가들을 알아야 한다.
1390년대 말 청년 포조 브라촐리니가 발들인 어두침침하고 좁은 도시, 페스트의 그림자가 주기적으로 덮쳐오던 중세의 피렌체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어떻게 기회의 도시 로마로 진출했는지, 중세에 '책'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필사가의 지위란 얼마나 경이로운지, 교황청 공증인이자 필사가로서 권력 제일 가까이 다가갔던 포조가 혼란한 정치상황 중 어떻게 일자리를 잃었는지 알아야 한다. 발굴한 후 정작 필사본을 소유하지도 못하고 그 소유의 첫 필사본이 후대에 전해지지도 못하지만 그로인해 개인적, 문화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포조의 중년과 말년이 어땠는지, 그가 원한 사회는 어떤 것이었으며 인문주의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어떻게 고수할 수 있었고 또 희망은 어떻게 깨어졌는지.
교회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극단적이었으며 맹목적 믿음을 요구했다. 포조보다 몇십 년 앞섰던 시인 페트라르카와 살루타티의 인문주의는 단순히 괜찮은 고대 양식의 모방이 아니라 그를 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더 큰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폐허와 치부를 드러낸 채 부패하고 있었는데, 페트라르카를 이은 포조와 교황청 사무국의 인문주의자들은 살아있는 장(場)에서 비로소 냉소, 혐오, 염세주의, 비관주의와 대치하기 시작한다. 수도원은 면죄부를 남발하며 각종 음모와 속임수, 위협과 고문을 서슴지 않았고 신의 이름으로 살인마저 묵인한다. 포조는 어리석음과 사악함으로 가득 찬 이 시대를 로마 옛 영광의 애처로운 그림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교황청의 계속되던 권력 다툼 아래 발다사레 코사가 수십 가지의 혐의로 고발 당하고 공식적으로 퇴위된 1415년, 주인 잃은 포조는 실직자가 된다. 근근이 같은 일을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과감히 거절하는데 이는 다른 꿈이 있었고, 더 이상 방관자로 비굴하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독서와 사라진 고전 문헌에 대한 열정이 다시 한 번 책사냥꾼의 기질을 발휘하게 하면서 1416년 갈렌 수도원에서 퀸틸리아누스의 <연설 교육론> 전권을, 1417년 풀다 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찾아낸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 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그리고 질병의 본질 등에 관한 복잡한 이론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시의 언어는 대체로 까다롭고 어려우며, 구문은 복잡하고, 전체적으로 놀랄 정도로 수준 높은 지적 야망으로 가득하다.
-<1417, 근대의 탄생>, p.229
그렇다면 이 시인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기에 '발견한 일'만으로 암흑기를 닫고 재생의 시대를 여는 일이라고 했을까. 설명과 함께 잘 정리된 챕터가 있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주장 - 펼치기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초 입자인 '사물의 씨앗들'은 영원하다.
기본이 되는 입자들은 그 수는 무한하나 형태와 크기에는 제한이 있다.
모든 입자는 무한한 진공(void)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다.
사물은 일탈(swerve)의 결과로 태어난다.
일탈은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자연은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는 인간을 위해서 혹은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인간 사회는 평화롭고 풍부하던 황금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원시의 전쟁 속에서 시작되었다.
영혼은 죽는다.
사후세계는 없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종교는 일관되게 잔인하다.
천사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쾌락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깊은 경이로움을 낳는다.
펼친 부분 접기 ▲
영국의 왕정복고기 대표문인 존 드라이든(1631-1700)은 만족할 줄 모르는 성욕의 성질, 동일한 사랑행위의 반복, 반복된 행위에서 오는 쾌락, 사랑의 감정적인 고통을 공격적인 충동과 황홀경 사이의 갈망으로 이해한다. 첫문단에서 인용한 루크레티우스의 성과 즐거움(사랑이든 아니든)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면 더 아름다운 표현으로 변한다.
...젊은 한 쌍의 연인이 더욱 가깝게 결합할 때,
손과 손을 마주 잡고, 허벅지와 허벅지를 휘감을 때,
가득 찬 욕망은 부글대는 거품처럼 끓어오르고,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누르고, 함께 속삭이고, 함께 숨을 내쉴 때,
그들은 움켜안고, 꼭 짜내듯 쥐고, 촉촉한 혀로 서로를 찌르니
서로 상대의 심장을 향해 나아가지만 헛되도다.
그들은 단지 주변만 유람할 뿐이니,
육신은 꿰뚫을 수 없고 서로의 육신 안에서 어쩔 줄을 모르나니
아무리 그러려고 애써도, 둘이 엮인
격동적인 순간의 분노 속에서 더 확연해질 뿐이라.
그들이 누운 사랑의 둥지 속에 그렇게 뒤엉켜
넘치는 즐거움 속에 녹아내릴 때까지 그러하리. -1685, 존 드라이든
-<1417, 근대의 탄생>, p.248
중세인들은 비로소 전지전능한 신, 우주의 중심이자 만물의 기원인 인간, 정통 기독교인의 눈에 비친 과학, 잘못된 환상, 쾌락과 관능의 마법에서 풀려난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낸 일이었다. 물론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혼의 존재와 사후세계를 부정하고, 우주가 원자와 진공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지전능한 존재는 없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은 충격적이면서 지금까지의 우주질서와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를 모조리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아주 오랫동안 금서 혹은 숨어서 몰래 보는 책으로 정의되었다. 포조가 발견했을 때 당연하게도 수도원에서는 이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 필사가를 구하라는 닦달이 있을 뿐이었다. 힘겹게 필사한 결과물을 포조가 피렌체의 니콜로 니콜리에게 보냈고, 니콜리 역시 필사한다. 니콜리의 필체가 예술적이었는지 그의 사본은 이후 수십 여 개의 필사본의 기초가 되었다. 포조가 니콜리에게 전하기 전 독일인 필사가를 고용해 만든 최초 사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니콜리의 것은 9세기의 필사본을 베낀 포조의 것을 필사한 것으로 로렌치아나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책은 그 이후로도 10년 이상 니콜리의 책장에 잠자다가 필사본 제작, 인용,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글귀, 미묘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표시로 나타나기 시작해 곧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다가 금서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 채 인쇄술이 발달할 때까지는 필사본으로, 인쇄술 후에는 기독교 눈을 피해 읽히던 책을,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서점으로 주문 한 통만 넣으면 받아볼 수 있다.
'죽음이 운명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출한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는 루크레티우스에게로 계승된다. 여기서 쾌락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무한대의 욕구충족과 거리가 있는, 더이상은 갈증이 없는 상태/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의 그것이다. 물을 마시거나 배터지게 먹음으로서의 향락이 아닌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고통의 부재, 정신적 쾌락을 의미한다. '절제'의 측면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도 연결되며, 아타락시아(ataraxia)로 통한다. 충분한 것을 적다고 여기거나, 오늘 배터지게 먹고 내일 다이어트하는 현대인들을 이 이론으로 비판할 수 있다. 신과 교회(교황)가 곧 모든 것인 중세에 죽음과 사후세계를 부정하고, 종교와 지배계급에 비난의 여지를 남기는 회의주의가 환영받았을 리 없다. 추종자들의 수가 적지 않았지만 늘 수면 아래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는 낙원,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죄 없는 사회를 주장하던 중세의 세계관으로 볼 때 이단이었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처럼 처형될 가능성도 있었다. 포조는 그런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찾아냄으로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미니쿠스회 소속 수도사 조르다노 브루노는 바로 이 책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로 인해 세계관과 믿음을 바꾸었고, 얼굴에 십자가형을 당한 채 화형되었다. 믿음과 신념은 목숨보다 강했고, 그럴수록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더욱 강력한 힘으로 세상에 울려퍼졌다.
브루노의 표현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는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눈멀고 악의적이며 거만하고 시기심 많은 무지의 동굴 아래 파묻혀 있던 고대의 진정한 철학이라는 태양이 떠오르기에 앞서, 새벽을 알리는 자가 되도록 신들이 임명한 사람이다.
-<1417, 근대의 탄생>, p.298
포조와 루크레티우스 사이에는 무려 1500년 이상의 강이 흐른다. 중세의 필사가들, 현대의 독서가들과 닮았다. 책을 수집하고 모으고 진열하고 먹는다. 책벌레, 습기, 곰팡이, 양피지와 라틴어, 희랍어와 싸우던 고대 중세에 비하면 더 많은 책, 더 난해한 책을 우걱우걱 씹어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책은 때로 나이와도 비례하지 않는다. 당연한 게 조금 두렵다. 쉽게 따라잡기도, 따라잡히지 않기도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인가.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걷고 달려 발견, 필사, 전도했을 때의 즐거움을 현대인들은 잊은 지 오래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큼은 행운이다. 나는 책구입증이나 책보관증에 걸린 욕심쟁이는 아니다. 뿌듯한 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의 희열이지 책을 사는 순간 자체는 아니다. 다행이다. 책 둘 공간이 없어 가족을 죽이거나 무게에 못 이긴 바닥이 폭삭 내려앉을 염려는 없으니. 그러나 이와 비슷하거나 행여 다른 이유로 오늘도 쌓인 책 사이 어디쯤에서 괴로워한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린 이후로 책이 없는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살았을 뿐.
책은 그렇게 인간 역사 너머로부터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세상을 오갔다. 그것이 책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