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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의 마을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터미널에서 아빠의 오토바이(스쿠터는 아니다. 자동차에 대해 도통 몰라서 스쿠터와 오토바이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차도 있는데 굳이 오토바이에 셋이 구겨져 타는 이유도 모르겠다. 무서운데ㅠㅠ) 뒤에 올라타고 산고개 하나를 넘으면(좀 길고 구불구불하다) 아주 작은 마을에 들어서는데, 우물가 옆 샛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이 나온다. 오토바이로 산길을 넘는 일이 그렇게 신나는 일인지 몰랐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타지 말라는 오토바이를 타다 죽어가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양동이 포함(가보기도 전에 양동이는 사라졌지만) 여섯 마리의 애기들이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중 나오고, 앞집은 옛집인데 오래도록 비어있어 들풀이 허리까지 자랐다. 덕분에 풀벌레들도 많다.  

뒷집에는 아주아주 마음씨 좋고 인자하신 할아버지,할머니와 소가 산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뒷집도 비었지만 거긴 주인이 종종 와서 정리하는 것 같다. 아빠는 마을의 외딴 집을 선호했지만 당시 주어진 돈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부동산에 나와있는 농가주택은 가격이 낮다 싶으면 리모델링을 해야 했고, 가격이 높은 매물은 차라리 그 돈으로 원하는 장소에 새 집을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갈 수 있는 동네의 부동산을 모조리 훑었지만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시골집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허물어져 금방 스러져갈 듯한 집이라도 집은 집이었다. 어쨌든 아빠는 잠시 쉬어갈 집으로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을 택했고, 전원주택을 향한 꿈은 시작되었다.  

 

읽는 내내 캐나다 퀘백 주의 작은 외딴 마을 스리 파인스가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골에 친가와 외가를 모두 두고있어, 시골마을과 동떨어지지 않은 인생을 산 도시사람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평생 몇백 번 왔다갔다 했을 친가와 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친가와 외가는 도시사람인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한 아빠의 마을 할머니 몇몇은 친절하고 따스했으며, 옆집에는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었지만 정신이상 증세로 부모와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부인은 제 나라로 도망치고 할아버지가 아들의 아이를 키우며 다른 곳에 산다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산다. 대화 나누면 멀쩡해 보이는데 멀쩡하지가 않단다. 자식을 안되게 여긴 아버지가 집, 밭, 논을 어느 정도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데 남자는 온전치 못해 밭과 논을 하염없이 놀리다보니 잡초와 풀이 키만큼 자라있다. 이 동네 땅값이 다른 곳에 비해 비쌌으면 비쌌지 농가치고 싼 게 아니라서 아빠가 안타까워 하실 정도다. 집에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헛소리와 욕을 해댄다. 궁시렁궁시렁. 아빠가 이사온 첫날, 뒷집 할머니는 동네 토박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 하셨다. 어느새 아빠뿐 아니라 엄마와 동생과 나까지 그렇게 되었다. 그럼,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니까.  

지금은 아빠가 계시고, 훗날 양동이가 빨간 지붕과 파란 대문집을 나섰다 실종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만 빼면 인생에서 별 의미없는 집일지도 모르겠다. [스틸 라이프] 속에 등장하는 스리 파인스를 만나면서 아빠의 마을이 자꾸만 생각났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쓸쓸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답고 왁자지껄하기도 한 마을이. 이 소설은 들여다보기의 지존이다. 조각퍼즐을 맞춰가는 생생한 방식은 마을을 두렵게 느끼기 보다는 마을 사람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충동에 다가가게 한다.

 

아빠가 들은 바에 의하면 마을에는 언제부턴가 토박이보다 외지인이 많아졌다고 한다. 양동이를 찾을 때 작은 마을을 모두 훑다시피 했는데 비어있는 집이 훨씬 많았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전원주택은 어김없이 사람이 없거나 진돗개 한 마리가 지켰다. 외지인 중에서도 더 외지인이랄 수 있는 내 눈엔 그 광경이 스리 파인스와 겹쳐 보인다. 알고 싶고, 캐묻고 싶고, 녹아들고 싶고, 상관하고 싶다.  

이처럼 짙은 낙엽향과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평온한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가장 다정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닌 제인 할머니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가마슈 경감은 사건해결을 위해 후배형사 보부아르와 니콜을 데리고 마을로 온다. 사인을 가늠할 수 없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을 사람들을 신문하지만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선량했던 제인이 살해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빛이 들지 않아 마약류 열매가 재배되고, 야생동물 사냥꾼들이 소리소문 없이 드나들기도 하는 스리 파인스에서 누군가 죽었다면, 그건 실수로 쏜 사냥용 활이나 총에 맞는 것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깊은 갈색 눈에 그녀의 적갈색 점이 있는 갈색 손에 머물렀다. 정원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거칠고 햇볕에 탄 손. 손가락에는 반지도 없었고, 반지를 낀 흔적도 없었다. 그는 갓 죽은 사람의 손을 볼 때면 언제나 아픔을 느꼈다. 그 손이 잡았을 온갖 사물과 사람들이 상상이 되는 것이다. 음식, 얼굴들, 문손잡이들, 기쁨이나 슬픔을 표하기 위해 취했을 온갖 손짓. 그리고 마지막 손짓은 틀림없이 자신을 죽인 그 타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자기 눈을 가리는 흰머리를 무심결에 쓸어내 본 적이 없을 젊은이들의 손이었다. (p.54)   
   

  

마을을 둘러싼 신비롭고 쓸쓸한 공기는 의도되었다. 죽음을 두고 분노 대신 애처로움을 쓰는 것 또한 작가의 필력이다. 화가 부부 클라라와 피터, 피터의 친한 친구 벤,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는 크로프트 가족 등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면서도 범인이 마을 안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노련미와 세련미를 두루 갖춘 가마슈 경감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조심스럽게 마을로 녹아드는 방법을 선택한다. 수사의 기본적 핵심인 신문과 마을회의를 통해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과 행동을 살핀다. 오랜 관찰은 마침내 숨겨져 있던 사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마침 제인은 미술 전시회에 그림 한 점을 출품할 예정이었고, 그림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제인의 의중과, 집안에 사람을 초대하더라도 일정공간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어 집문제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조카의 태도와 벤의 어머니이자 오랫동안 병상에 있다 세상을 떠난 티머 해들리의 죽음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삶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온갖 변명거리를 제공해주잖아요?" (p.205)  
   

 

   
  "제가 알기로는 스리 파인스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 사슴길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곪고 있음을 뜻해요. 제인을 쏜 사람은 자기가 사람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걸 사냥 사고로 보이게 하고 싶어했어요. 사슴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제인을 실수로 쏜 것인 양. 그런데 문제는 활을 쏘려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겨누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요." (pp.224-225)   
   

 

마을 사람들은 각자 최대한 자신의 비밀과 싸운다. 들키기 싫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나 그것들 중 단서로 집어낼 만 한 게 거의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문제다. 정황에 의해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제인의 죽음이 고요한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수사는 다시 원점에서, 제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어째서 집을 숨겨야 했을까. 왜 그림을 이제서야 보여주려고 했을까. 집과 그림. 제인이 추수감사절 박람회 날에 그렸다는 그림 <박람의 날>로 시선을 옮기자 쓸만한 단서들이 우루루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아주아주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먼저 클라라가 그림의 비밀을 눈치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싸워온 진실을 향한 열망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살인의 방식과 이유가 궁금한 거라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내밀한 그림 한 편을 영상처럼 감상하는 방법으론 안성맞춤이다.  

퍼즐은 내가 맞추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퍼즐이 되어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는 것. 그게 바로 열쇠다. 제인이 죽어간 이유. 제인이 죽은 이유. 제인을 죽인 이유는 사소하다. 범인에게는 필사적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아주 미묘한 이유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죽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범인은 진실을 가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 일이 오히려 또렷하게 진실을 엿보여주는 꼴이 되었다. 진실을 뒤집으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을 뒤집어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마치 하트 퀸 카드처럼.  

   
  "아무것도요. 어쩌면 제가 바뀌었겠죠. 그게 가능할까요? 제인의 하트 퀸 카드 트릭처럼 그림도 변하는 게 가능할까요? 사실 저도 작품이 끝난 날 밤에 보면 그게 위대한 작품 같아 보이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면 쓰레기 같거든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 거죠. 어쩌면 제인의 죽음 때문에 제가 너무 변해서 전에 이 그림에서 보았던 뭔가를 지금은 보지 못하는 거겠죠. (pp.401-402) 
 
   


 
사실 이 작품이 가르친 건 살인과 광기, 탐욕과 도덕 같은 것이 아니라 인내와 관찰이다. 1000피스짜리 그림퍼즐을 맞추는 데에 드는 노력과 시간을 인내와 관찰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하면 꽤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 따를 것이고, 패배를 맛볼 수도 있듯이. 가마슈 경감이 가르친 것 또한,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한사코 숨기려 한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 드러내 보인 것이 중요한 것을 감추어줄 수도 있고, 숨기려고 애쓰다 결국 숨기려 한 것만 들통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인내와 관찰 앞에 모두 무너진다는 것. 하지만 사람들은 나아가려고만 하지 인내와 관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결말을 향해 치닫는 건 영화에서나 멋지면 그만이다. 실제 삶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이상이다.  

   
 

"그때 한 가지 인성 유형에 대해 설명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체된' 삶을 사는 사람들 말이죠.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나요. 성장하지 않는, 발전하지 않는 사람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이죠. 좀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  

"예, 바로 그거였습니다." 가마슈가 말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구원해 주길 기다려요. 치유해 주길 기다리지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 (p.445) 

 
   

 

뭔가 해야겠다. 여름과 잘 이별하고 다가올 가을을 잘 맞이하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정체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우린 이다지도 힘겹게 움직이는 것일까. 신나게 칠하던 그림을 완성한 후 붓을 내려놓으니 시원함보다 허탈감이 먼저 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때면 언제나 쓸쓸해진다. 이 소설처럼. 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로 인해 이 모든 것을 배웠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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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자그마치 다섯 개!! 가마슈 경감 시리즈가 있다는 건 어디서 들었는데, 읽어본 적은 없어요. 이 참에 한 번 빌려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저는 뭔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방학 다 보낸 것 같아요. 이제 개강하면 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죠. 시간표를 아주 꽉꽉 채웠거든요. 좀 걱정되긴 하네요. ( '')~

아이리시스 2011-08-24 21:44   좋아요 0 | URL
자극적인 거 싫어하잖아요, 모두들. 저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긴 하는 편인데 취향이 좀 변했나봐요. 잔잔하고 잔혹하지 않은 [스틸 라이프]가 괜찮았어요. 예쁜 색칠을 하고 났으니 기지개 켜고 공부 좀 할까요, 이제? 수다쟁이님.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지는 거 그리워요. 대학 때 저는 그렇게 치열하진 않았던 것 같거든요. 학교가 멀었는데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 지쳐서 쓰러지곤 했어요. 맘은 늘 밤새 책을 읽고 고민하고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요. 글도 쓰면서. 저는 늘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을 지도 몰라요. 치열한 건 예쁘고 소중한 거예요. 해야 하는데 하면서 보내는 방학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다른 것도 해봐요, 더 늦기 전에요. 알았죠?^^

2011-08-24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8-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에 의하면 이 소설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아이리시스님도 별이 다섯 개군요.
근데 전 왠지 읽을 자신이 없네요.
아, 나라는 인간은 기계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그 좋다는 소설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5 19:46   좋아요 0 | URL
네, 스텔라님 별 다섯 개예요. 그런데 저는 별점에 후한 편이고 사실 최근 읽는 책 중에서 제 기준으로 평가해요. 또 꼭 읽고 싶은 것만 읽다보면 엄청 실망하는 적이 없어요. 누구나 한 번씩 소설에 대한 정체기가 있잖아요. 뭘 읽어도 재미없고 싱겁게 느껴지는..... 지금 스텔라님이 그런 건지도 몰라요.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막상 읽으면 감흥 안가는 단계를 몇 번 겪고나면 읽고싶은 마음마저 사라져요. 기계는 얼른 적응하시고, 소설 대신 영화 보시는 건 어때요? 스텔라님 영화리뷰 좋은데............^^

stella.K 2011-08-25 21:15   좋아요 0 | URL
헙, 정말요!
저 귀가 얇아서 그말 믿습니다.룰루라라~!ㅎ

아이리시스 2011-08-25 22:22   좋아요 0 | URL
그럼 많이 써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어의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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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럼요. 그녀의 동기는 살인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배신해서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원한 건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 같이 살 수 있는 남자라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 말했죠." (p.477)

  

사람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이유에 관해 생각해봤다. 아, 일단 '고통스럽게'는 빼고 말하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남는다. 엄청난 장르소설과 범죄시리즈, 공포,호러,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이유'에 관한 것인데 이 원초적이고 신랄한 이유를 내가 과연 대답할 수 있을까. 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다. 그래서 스릴러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인 살인은 보통 단계를 거친다.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서 그 사실이 트라우마가 되고, 상처로 인한 결핍이 타인에 대한 반항이나 광기로 나타나고, 그로인해 당한 만큼 갚아주자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하고, 마침내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죽인 다음 그 행위가 타당하다고 자인하는 것. 그쯤이면 대충 사이코패스의 살인사건 하나가 발생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추측,해결,단죄하기 위해 범인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형사뿐 아니라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할만큼 연쇄 살인범의 수법이 교묘하고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Wire in the Blood]라는 시리즈로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던 토니 힐 시리즈는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 중 범죄양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범인의 심리상태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통해 사건을 추리해서 범인을 잡는데에 일조하는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이다. 토니는 남자, 동맹자인 형사 캐롤은 여자. 물론 기존 스토리가 보여주는 로맨스를 살짝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경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속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소화불량처럼 배가 따끔따끔하게 뭉쳤다. 뭔가 사악하고 극적인 일을, 저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p.391)   
   

 

게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몇 군데 장소에서 잔인하게 고문당한 끔찍한 모습의 사체가 차례로 발견되면서 토니는 사건해결을 위한 특수팀으로 발령받는다. 그는 끔찍한 사건특징들을 통해 연쇄살인범으로 추정하고 캐롤과 함께 수사를 시작한다. 둘의 동맹자적 관계가 아마도 범죄의 단서를 찾고 또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중요한 소통점일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전문가라도 혼자서는 비정상적인 범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힘들다. 함께 일하며 그들은 서로의 필요성과 각자 할 일들을 잘 분담해간다.

   
  "그러나 때로 우리 프로파일러는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시각이 모든 다름을 만들어 내지요. 죽은 사람은 말을 합니다. 우리 프로파일러에게 말을 하는 죽은 사람들은 경찰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p.22)   
   

 

   
  "당신과 저 둘 다, 함께 있으면, 우린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프로파일링에 처음 직접적으로 입문한 건은 연쇄방화범이었습니다. 대여섯 건의 대형 화재 끝에 전 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지르는지, 왜 저지르는지, 그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됐지요. 그라는 미치광이를 정확히 알게 됐지만, 그에게 이름을 붙인다든지 얼굴을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그러나 저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당신이 할 일이었던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올바른 방향으로 당신을 이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p.98)   
   

 

사방으로 뛰는 경찰들과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사체는 다시 발견되고, 토니와 캐롤은 각자의 역할과 직업적 고통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바탕에 깔린 직업적 동맹관계다. 작업중 토니의 방에 함께 있을 때 걸려온 정체불명의 여자 전화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서로에게 충분히 빠져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캐롤은 그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토니의 비밀은 어쩔 수 없이 캐롤을 밀어내지만 그 또한 캐롤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각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직업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그렇죠. 최고의 도둑을 잡는 형사는 악당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잖아요. 제가 일을 잘 하려면 나쁜 놈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짓을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예요." (p.276)   
   

 

언론으로 흘러드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에 당국은 비상이 걸리고, 토니의 프로파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점점 미궁으로 빠질때즈음, 토니가 사라진다. 캐롤은 불길한 낌새를 눈치채고 사건파일을 들여다보며 더 큰 그림을 그려낸다. 토니의 방에서 비로소 단서를 발견한 그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토니는 엄청난 상황에 처해있었다.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버려졌던, 자신이 게이라는 걸 밝히기 싫었던 이들의 사체는 범인에 대한 충분한 단서였음에도 웬만한 프로파일에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토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가두자, 그 사실을 언론으로 접한 살인마는 자신의 범죄행각이 모욕 받았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토니를 노려온 것으로 판명난다. 자신 또한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희생자가 될 뻔했지만, 프로파일의 핵심이자 자신의 장기인 차분한 대화를 통해 범인 핸디 앤디를 무장해제 시킨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살아돌아온 그는 핸디 앤디에 대한 마지막 프로파일과 진실에 대한 해명을 준비한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 시포드 출신의 크리스토퍼 소프를 압니다. 여기 오기 전 시포드에서 성범죄과 소속이었잖아요. 기억나세요? 이 매춘 두 건 다 제가 체포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소프는 당시 성전환 수술을 한창 하던 중이었어요. 젖꼭지랑 이런 게 다 있었고, 수술을 마저 받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매춘할 때 이름이 뭐였는지 아세요? 경위님, 크리스토퍼 소프는 안젤리카 소프랑 결혼한 게 아닙니다. 그가 바로 안젤리카 소프예요." (p.444)   
   

 

이미 벌어진 사건을 두고, 한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가 어떤 생각으로 왜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곡차곡 따라가보는 일로서 범인을 잡아들이고 죽은 자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토니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직업적 지식을 잘 활용해 사건을 푼 셈이고, 연쇄 살인범의 목표물을 그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인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점은 긴장과 두려움을 높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토니 힐 시리즈는 연쇄 살인범의 잔인한 고문일지를 빼고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범죄현장이 생생하다. 독자는 경찰과 프로파일러를 따라 좇아가는 한편, 불행한 연쇄 살인범의 범행현장을 목격하듯이 그의 독백을 통해 찬찬히 읽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 끔찍한 경험을 당한 기억이 드문드문 나겠지만 토니는 이 일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한층 벗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때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토니가 당한 납치는 아무리 전문적인 사람이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지는 않다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한다. 핸디 앤디의 끔찍한 고문전략과 범죄일기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다. 행여 그가 이 모든 사건들을 한 번쯤 경험해본 피해자였다 해도. 그렇더라도 이 작품의 출발점은 사랑과 존재다. 사랑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한 인간의 광기와 분노가 발생하는 지점은 결국 결핍이고, 그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당신은 날 원했고, 이제 날 가졌어."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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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결핍의 반대말은 소통인 듯 하죠.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전, 쫌 힘들었어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3 14:15   좋아요 0 | URL
아아악, 이거 써서 그런가봐요. 체했어요. 아파요.ㅠㅠ
너무 적나라한 고문묘사 땜에요, 아님 지루해서? 제가 프로파일러가 나오는 미드를 종종 봤는데 [멘탈리스트]도 그렇고 [크리미널 마인드]도 그렇고 비슷한 것 같아요. 책은 별로 본 적이 없.. 흑흑. [wire in the blood]는 못 봤지만 프로파일 방식은 다 비슷한 것 같아서 이 시리즈가 쭉 이렇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차별화된 건 고문일지 뿐인 것 같아요.

나무꾼님, 장르소설 리뷰 어쩜 그렇게 잘쓰시는 거예요? 이거 해보니까 정말 장난 아니에요. 결국 줄거리 나열하고 있잖아요, 저. 이번에는 둘 다 장르소설이어서 한 권은 [스틸라이프]인데, 나무꾼님이 벌써 보신 거. 책 다 읽고나면 리뷰 다시 읽어봐야죠. 호호. 오전 아니 점심 때 보니 더 반가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가 상담 전공이잖아요, 가끔 앞으로 분야를 무엇을 정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프로파일러> 또는 <범죄심리학> 전공은 다들, 수업 한번 듣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요. ㅠㅠ.
책으로 읽는 것과 실전은 영 다른거 같더라구요, 진짜 벌어진 일들을 읽고 있으면 구역질도 나요.
저는 <한국의 연쇄살인범>이라는 책을 읽고 아주 기겁했어요... ^^

그럼에도 장르 소설을 엄청 좋아하니 모순이죠, 아마 장르 소설의 경우, 사람이 아닌 목적물, 사물로 치부하나봐요.
그냥 퍼즐만 보는거죠, 내 뒤통수를 치냐 아니냐 등의.

그리고.......... 인정하기 싫고 무섭기도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못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환경으로 완전하게 바로잡지 못 하고, 꼭 살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지 모른다는. 그런 경우는
환경 열악으로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배웠네요. 무거운 주제예요, 정말. 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4 11:15   좋아요 0 | URL
아까 신창원이 자살기도 전날 어떤 여자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었어요. 죄를 미워해야 할지 사람을 미워해야 할지 그런 딜레마에 빠지는거죠. 내가 피해당사자이거나 유족이라면 그럴 수 없겠지만 아니라고 믿고 사니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나 봐요.

아.... 저 봄에 형소법 강의 듣는데 변사자 검시 부분에서 끔찍한 사체에 관한 예를 여러차례 들었어요. 실제 사건을 대하는 것과 소설을 대하는 것에는 분명 마음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공포영화나 스릴러,범죄물 보면서 두렵거나 끔찍해하지는 않거든요. 만약 그렇다해도 그냥 소설에 이런 게 있구나 정도지 현실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두려울 필요가 없는 거겠죠.

마고님 말씀처럼 끔찍한 현장사진만 보여줘도 보통의 일반사람들은 모두 구역질하거나 토하거나 고개를 돌린대요. 호기심과 관심과 실전은 분명 다른 거죠.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요인도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살인사건이나 범죄자를 대할 때 환경만 가지고 탓하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에따라 해결방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마고님 덕분에 저 책 급관심이 가요. 소설은 소설이고 이론은 이론이다,라는 말이 딱 제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나는 밖에서는 배우지만 집에서는 그냥 딸이다,와 같은.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드라마나 장르소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파일러들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중학교 아이들 중에도 장래 희망 직업이 프로파일러인 아이들도 봤구요.

이 사회 모든 문제들, 혹은 역사 속 모든 일들은 결국 소통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도 같구요. 제 생활만 봐도 소통이 잘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그래도 가장 치명적인 건 저렇게 어렸을 적 소통의 부재가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죠. 부모로서, 항상 그런 부분이 신경 쓰여요.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이런 소설 읽으면 밤에 잠 잘 주무세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8-24 11:43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소설의 나름 반전인데, 여기서 프로파일러가 잡혀가요.ㅠㅠ

저는 읽고나서 까먹나 봐요. 일단 문단속을 다시 하고 잠은 잘자요. 제가 원래 잠은 되게 잘자요. 실제 일이 아니고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나 봐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잠은 잘자고. 하여튼 저 좀 이상한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 보는 거랑은 확실히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걸 며칠동안 헤매고 다녀도 양동이를 못 찾았을 때 느꼈어요.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나뿐일 경우 세상은 별로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범죄자들의 환경 또한 무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슬픈 걸 대하기 싫은 현맘 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고, 이해하면서도 저는 무서운 걸 즐기고, 밤에는 문단속에 목을 매고 그러나 봐요. 아이러니 해요. 여름 뿐이지 저 또한 가을에도 장르소설을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냥 트릭 써서 범인 밝혀내는 정도의 가벼움이 좋아요. 학문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적이 저도 몇 번 있지만 그러기에 저는 비위도 약하고, 겁도 많아요.
 

 

 

중학교 때다. 조별로 돌아가며 하는 발표수업. 전지에 시해석을 해서 조장이 발표하는 국어시간. 그날 발표자는 나였다. 남 앞에서 떠드는 건 딱 질색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조장이 되었고 반드시 발표를 해야 했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또 막상 닥치면 떨지는 않는 편이라서 좋든 싫든 멍석 깔아주면 곧잘 했는데 그날은 선생님께 된통 혼이 났다. 읽지 말고 다 알아듣도록 설명하듯이 하란 말이야. 나는 다시 했다. 거기부터 다시. 나는 또다시 했다. 몇번 실랑이가 반복된 끝에 짜증이 났다. 그러자, 아아, 안 되겠다. 다음 시간까지 더 보충하고 연습해서 다시 하자. 에잇, 그럴꺼면 자기가 하든지. 내가 선생이야? 짜증이 왈칵 솟고 쪽팔림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그냥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는 [청포도]였다.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지금은 배경지식이 널널하니까 이 시에 대해 혼자서 세 시간도 떠들 수 있지만 중3 때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다 내용보다 발표력에 더 문제가 있었으니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읽고 또 읽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면서 다음 국어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발표를 끝냈을 때,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선생님 해도 잘 하겠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흠, 그렇게 잘 했나?ㅋㅋㅋ 앞시간의 쪽팔림을 만회한 건 뛸듯이 기뻤지만 선생님이라니 세상에, 나는 전혀, 네버!!! 선생님 할 생각이 없다고!!! 쳇!!! 흥!!!  

하지만 나는 종종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의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낭송을 하지는 못했다.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슴 뛰는 일이었다. 시대를 빼고도 흰색과 푸른색의 시각적 대비, 알알이 열린 청포도 같은 행의 풍성함이 청량하고 따뜻한 기운을 주는 시다. 예쁘고 아름답다. 청포도라니, 청포도. 꺄악!!! 3=3=3=3=3=3 나는 청포도맛 사탕을 엄청 좋아한다.

 

 

그것도 최근엔 영 드문드문, 잊고 있었던 이 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준 건 어제 방영한 김동완이 이육사 역할로 열연한 광복절 특집 드라마 [절정].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그가 이토록 격렬한 독립운동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인은 책상에서 글만 다루는 줄 알았지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옥중에서 고문을 감내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역사 속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글과 시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시대였음에도 내게는 무지한 면이 있었다. 

드라마를 첨부터 본 건 아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유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안락함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의 절절한 고민과 방황이 드러났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지만 자식의 죽음소식 앞에서도 울음과 함께 밥을 삼키고 하나밖에 없는 여인을 두고 떠날 때에도 뼈저리는 눈물을 참을 줄 알았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고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목숨과 미래를 부지할 수 있음을 알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뒤에서 눈물을 삼킬지언정 앞에서는 당당하고 진중한 남자로 남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훌륭한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의 목숨과 피와 눈물을 조국 앞에 바쳤다. 

자신들을 좇는 친일파 일당을 쏠 기회가 있었건만 그는 한 번 망설이고 두 번 망설이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동지를 잃는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오래도록 시를 쓰자 했고 누군가는 폐병을 앓는 자신에게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 소리쳤지만 그는 순응하지 않았다. 후반 그의 인생은 늘 쫓고 쫓기고 잡혀가고 고문 당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로인해 얻은 폐병은 동지들에게조차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고 스스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자신의 꿈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핍박받던 시절, 한순간 사랑해주고 일평생 떠나버리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란 어떨까. 여인에게도 분노와 열정은 있는 법. 그녀에게도 세상은 바꾸고 싶은 대상이었고, 그녀 안에도 자유를 갖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을 것이란 점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하지만 여인이란 어떤 존재던가. 남자의 기둥, 남자의 쉼터, 남자의 보금자리 아니던가. 여자는 오래도록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떠나버린 남자의 빈자리를 지키며 그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혼자 그의 아이를 낳고, 투정부리는 아이 입안에 밥을 넣어주고, 아프면 들쳐업고 한달음에 의원으로 뛰어가 동동거린다. 그렇게 한순간의 폭풍같은 일상이 지나면 기약없던 남자가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새처럼 자유로운 비상을 시도했다 절망과 체념의 상처로 지쳐 돌아온 남자에게 그녀는 그까짓 일상의 고단함을 단 한톨도 토로할 수가 없다. 없어서 또다시 검은 울음을 삼킨다. 붉은 투지를 불태운다. 살아야 한다고.

이번에는 오래일까 기대와 불안에 휩싸이면 남자는 다시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인사만 없는 게 아니라 기약도 없다. 떠남을 알지만 기약이 없어 붙잡지도 애원하지도 못한다. 잠든 척 울먹인다. 애원할 때도 있었다. 고문을 견뎌내고 석방돼 돌아온 남편을 잠시나마 돌보는 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그와의 시간 전부였다. 조심스럽게 둘의 미래를 꿈꾸자면 남자는 제 작은 가슴 안의 터질 듯한 열망으로 미쳐버릴 듯하다. 그녀와 같은 행복을 꿈꾸지만 조국의 독립이라는 자유에 대한 열망 또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열병으로 아이를 잃고나도 남자는 멈출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원동력이 된다. 그는 피와 울음으로 꾸역꾸역 밥을 삼킬 뿐이다. 여자는 안다. 남편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떠나는 발걸음은 물론이고 그의 안에 든 열망과 분노, 욕망 또한 자신이 붙잡아 매어둘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그는 북경에 있는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죽을 때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발설하길 거부했고 죽기 직전 옥중에서 피로 시를 썼다. 인생 대부분이 그랬듯 완강하고 고고하게.  

 

시를 읽는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맞다. 이 때에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온다는 초인을 기다렸었다. 목놓아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는 기다렸다, 오랫동안, 간절하게. 산맥과 산맥을 넘어 들판에서 들판으로 또 하늘로 세상으로 막 날아오르는 듯한 이 시가 나는 좋았다. 씩씩해서 좋았다. 울컥해서 좋았다. 기다림이 즐거울 것 같았다.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랬었다. 하지만 정말 좋았던 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바로 이 시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하는 행에선 특히 손에 잡힐 듯한 절묘한 묘사력에 전율이 일어난다. 그의 절정도 이 시를 쓸 때였을까. 그렇다면 무엇의 절정이었을까. 이 시에는 분노와 절망으로 얼룩진 패배감에 몸서리치는 남자의 모습이 절절하기만 한데. 물론 모든 것을 간단히 눌러버리는 불타는 투지도 함께 읽힌다. 우리가 절정이라 부르는 것들은 보통 아주아주 행복할 때가 아니던가. 그에게 있어 절정이란 분노와 슬픔의 최고조였단 말인가. 아아, 다 이해할 수 없겠다. 다 이해할 수 없다고만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이렇게 말해도 내가 뭘 얼마나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슬픔, 분노, 절망, 패배, 아픔, 가슴벅참, 미래, 희망, 꿈에 대해서.  

어제는 66주년 광복절이었다, 교과과정에 버젓이 한국사가 있음에도 삼일운동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데 광복절 또한 어린 세대에게 그저 그런 쉬는 날 이상은 아닐 듯. 또한 광복은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의 식민지였다 풀려난 날을 66주년이나 기념한다니,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잊을 수도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얻어냈는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칭찬 일색, 내용 또한 흠잡을 데 없다. 나는 기념일 특집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진부하다고 생각함) [절정]의 몰입도는 최고였다. 엄마가 거실 컴퓨터로 조용필 노래를 듣고 맞고를 치는 와중에도 나는 꿋꿋이 볼륨을 높여가며 봤다.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고민했고 그의 결단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는 그가 사랑한 단 한 명의 여인처럼 기다렸다. 그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때에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그의 고통에는 함께 아팠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리의 자랑스런 독립투사들은 역사 속에 셀 수 없을만큼 많다. 그중엔 잊혀진 이도 있고 기억되는 이도 있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그들의 지난하고 붉었던 삶을 기억해줘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누구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운좋게 그들이 꾸려놓은 세상에 들어와 내가 만든 세상인양 잘 살고 있지만 조금만 빗나갔으면 내가 겪을 수도 있었던 내 인생이다. 소리내어 그의 시를 읽는다. 절정에서 꽃은 꺾인다는 진리를 곱씹으면서.  

 

 

 

 

 

 

 

 

 

+ 김동완은 더 멋있어졌다. 에릭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이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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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8-1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내내 생리통으로 뒹구느라 TV를 못 봤는데, '절정'... VOD가 올라오면 꼭 봐야겠어요. 그런데 김동완이라면... 예전에 아이돌 그룹 가수였죠? 요새는 연기를 하나 보네요?

아이리시스 2011-08-16 12:23   좋아요 0 | URL
제가 TV를 보면서 썼더니 오타에 비문장 천지인데 조선인님이 계셨군요. 되는데로 고쳤어요. 드라마 괜찮았어요. 김동완은 예전에도 연기를 했었는데 크게 빛을 보진 못했죠. 키가 좀 컸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좀 아쉬워요. 어제보니 연기는 물이 오른 것 같았는데, 전역하고 처음이니까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봤어야 했어요.
그 끈적끈적 비오는 캠핑장에 있지 말고..ㅠㅠ
저 잘 다녀왔어요. 정말 이제는 노는거 끝이예요. 여행다니는게 이렇게 지겨웠던 적이 없네요.
집에 돌아와보니 일년에 한 번 있는 광복절날 태극기도 안 달고 놀러갔었다는게 좀 기분 안좋았어요.
애국자는 아니지만...ㅎㅎ
다시보기로 봐야겠네요.

아이리시스 2011-08-16 13:03   좋아요 0 | URL
저는 [절정] 보지말고 그 캠핑장에 있어야 했어요.ㅠㅠ 재밌었죠? 말은 이렇게 하셔도 완전 즐거우셨을 거예요. 하하하하. 저희집엔 태극기도 없어요. 국경일 올때마다 태극기 제대로 그릴 수 있나 그려보거든요. 정말 맨날 헷갈려요. 이거 좋아요. 저는 몰입이 잘됐어요. 그런데 다른 분도 아니고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특집드라마가 신기하긴 했어요~ 사진 보여주세요, 사진. 얼마나 즐거웠는지 구경하게요.ㅋㅋㅋ

stella.K 2011-08-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괜찮았나요?
예전에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을 드라마로 했다 말아 먹은 걸 봐서
아예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저 청포도 시 보니까, 저는 얼마 전 이정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청포도 사랑>이나 생각하구...ㅜ
캬~! 전 이렇게 문학적 소양이 없으니 뭐에다 써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엉엉~

아이리시스 2011-08-16 15:39   좋아요 0 | URL
기대를 안하고 봐서인지 더 좋았어요. 제가 김동완을 원래 좀 좋아하고, 아마 [청포도]에 관한 추억이 있어서였을 거예요. 이육사 드라마라기에 더 집중하고 봤거든요. 언론기사에서도 좋은 평 받는 걸 보면 무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무난했어요. 이미륵은 누구예요? 아아, 스텔라님이 문학적 소양이 없다고 하시면 저는 어쩌라구요. 저는 전공도 이쪽인데, 엉엉엉.

마녀고양이 2011-08-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너무 좋아요..
이육사 님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예요 (하기사 싫어하는 시인이 있긴 할까요? ^^)..
저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에서 시작하여 '하얀 모시수건'까지 몽롱하게 읽곤 해요.
가장 중요한 해방에 대한 염원이 가득한 시들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향에 대한 꿈 같아서 좋아해요.

하지만..... 그 시절에 살았던 분들, 참 서글퍼요. 그죠?
자의가 아닌 타의와 시대에 의해서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서글프고 속상해요.
어제 드라마 <공주의 남자> 연속 방송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ㅡㅡ;;

아이리시스 2011-08-17 00:17   좋아요 0 | URL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 시인, 우리 작가들이 좋아져요. 지금이야말로 한국문학전집을 빠뜨림 없이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해요. [무진기행]이랑 [광장], [무정]은 정말 좋아하는데 이제 다른 작품을 발굴할 때!

참, 저도 그래요. 이상향에 대한.. 시대와 연관짓지 않아도 시가 굉장히 멋져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그러면서도 또 신비롭고.

저는 이상하게 [공주의 남자]도 그렇고 [무사 백동수]도 그렇고 요즘 사극이 왜 이렇게 뻔한가 싶어요. 사도세자는 이제야 뭘 좀 할 줄 알았는데 뒤주에서 도망치다 칼에 맞아죽고, 계유정난은 싱겁더라구요. 애들 말투가 어색해서 몰입도 잘 안돼요.ㅠㅠ 그 조신하고 예뻐보이던 문채원이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역사를 살아낸다는 자체가 원래 슬프고 서글프고 속상한 건가 봐요, 마고님.

비로그인 2011-08-1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드라마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놓쳤네요 ㅠㅠ
저는 서정주의 시를 더 좋아했지만 가끔가다 이육사 시를 읽으면 번쩍하니 번개 맞은 듯한 기분이 들곤 해요. 시에 담긴 결연한 정신이 체감되는 그런 느낌이요. 저는 예고편 보면서 신성록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8-17 00:20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 님은 전공차원에서 드라마 보시면 좋을 듯. 서정주도 좋죠. 이상화도 좋고. 저는 서정시인도 좋지만 저항시인도 좋아요. 어릴 때는 전투적이고 강한 시들을 쓰는 시인들이 별로였는데 크면서 오히려 그런 걸 쓰는 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니 그런가 봐요. 시대를 넘어 전해오는 열망과 의지가 멋져요. 물론 그들이 멋져 보이려고 쓴 시들은 아니지만..

예고편 볼 때 김동완이 신성록처럼 보였나 봐요. 아님 나왔는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1부 초중반은 거의 못본 것 같은데.. VOD 다시 한 번 돌려보려구요.

blanca 2011-08-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드라마 칭찬이 많더라고요. 꼭 보고 싶었는데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읽으니 어떻게든 봐야 겠습니다. 뭉클하네요. 이육사 시 너무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1-08-17 00:31   좋아요 0 | URL
제가 유독 이육사 시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자 어제 그 드라마 하는 줄도 몰랐는데 우연히 틀어서 보는 내내 이 페이퍼를 써야지 하고 맘 먹었답니다. 블랑카님도 꼭 보세요. 시를 자막으로 처리해줬음 좋았을텐데 내내 낭독만 하더라구요. 그게 좀 아쉬웠답니다.

cyrus 2011-08-1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봤어요. 전 왠만해서 기념일 특집극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아무래도 너무나 유명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라 안 볼 수가 없었어요. 이육사 평전도 있었네요. 시인의 삶이 더 알고 싶어졌는데 읽어봐야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1-08-17 00:32   좋아요 0 | URL
평전 재밌겠죠? 시루스님이랑 딱 어울리는 책이에요. 드라마 봤으니 이제는 평전?ㅎㅎ

꿈꾸는섬 2011-08-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드라마 봤어요. 예고하는 것 보고 시간 기억해두었다가 보았죠. 아이들 점심 주는 시간에 2부가 시작되어 앞부분 약간 놓쳤지만 감동 그 자체였어요. 제가 막 울었더니 우리 현수가 엄마 눈물을 닦아주더라구요. 드라마보며 감정이입해서 눈물이 주르륵~~~

아이리시스 2011-08-18 10:44   좋아요 0 | URL
우와, 현수가 귀엽군요. 그 모습이 더 가슴 찡하네요. 드라마도 뭔가가 철렁하면서 가슴이 찡하던데, 아이들 보여주며 역사공부 시켜도 참 좋았겠더라구요. 저는 어릴 때 이런 드라마 싫었는데, 시대상 다루고 인물 일대기 다루는 거요. 위인전도 최고로 싫어하고. 그런데 엄마가 잘 인도해주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텍스트가 워낙 많아서 금방 이해하고 배울 것 같아요. 김동완이 더 좋아졌어요. 어쩌면 좋아요?ㅎㅎ

블루데이지 2011-08-1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이리시스님...처음인사드려요~
안그래도 못봐서 후회하던 드라마였는데...아이리시스님께서 쓰신 페이퍼를 읽게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되네요!
오랜만에 이육사님의 시도 읽고...보기만 해도 가슴따끔따끔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청포도맛 사탕 좋아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1-08-18 10:55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안녕하세요? 이름이 정말 예뻐요. 요즘 컨텐츠는 다 돈을 담보로 하니 저는 다운 받아놨는데 다시 볼 시간이 없네요. VOD도 좀 있음 결제 풀리겠지만.. 시도 좋고, 드라마도 감동이고, 혼자만의 감동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들 공감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예요. 모처럼 청포도맛 사탕 사먹으러 가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블루데이지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공포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닌데 등골이 서늘하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세요? 다가오지 마세요. 찌를 거예요. 퍽. 했는데 정신 차렸더니 내가 나를 찌른 형상의 필름이 오래도록 계속된다. 아무도 없는 밤에 만나는 거울 속의 나처럼 낯섦과 낯익음의 반복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비교적 주제가 뚜렷한,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기차같다. 돌아나올 수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순간순간이 몽롱함과 모호함의 지존이다. 수식어를 이 따위로 붙일 생각은 없었지만 [읽고 있을 때보다 읽고나서 더 두려운] 소설임이 분명하다. 새벽에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을 잇지 못해 조용히 잠이 든 내가 과연 나였을까? 이쯤하면 알 수 있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 되겠지. 맞다. 우리의 현실은 모두 공포다.  

이야기는 남자 K가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깨는 데에서 시작한다. 절대 맨몸으로 자는 법 없는 남자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깬 자신을 발견한 것. 뿐만 아니다. 매일 쓰던 스킨이 다른 제품으로 바뀌어 있질 않나, 심지어 아내의 얼굴과 딸의 얼굴, 딸이 키우는 강아지조차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쨌거나 토요일이다.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남자는 오늘 처제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결혼식장에는 지금껏 돌아가신 걸로 알았던 장인이 떡하니 앉아 있고, 어젯밤의 기억이 한 시간 반 정도 사라져 있다. 휴일을 앞두고 친구 H와 만나 진탕 한 잔 했던 게 문제였다. H에게 전화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면 휴대폰이 있어야 하는데 휴대폰조차 잃어버렸다.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였다. 아내가 아내 같지 않고 타인의 카섹스 장면에서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휴대폰을 주웠다며 돌려주러 나온 대머리 남자에게서 낯익은 향기가 느껴지는 일련의 하루. 어제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겼던 것일까. 남자는 아내와 딸을 결혼식 뒤풀이에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와 친구를 만나러 간다. H는 의사다.  

   
 

"어째서 실제의 아내는 가짜처럼 느껴지고 통화를 한 아내의 목소리는 진짜로 느껴지는 걸까. 이런 이중성이 자네의 고민이 아닐까. 자네는 가족을 제외한 모든 풍경, 인물, 사물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분별력을 갖고 있어. 마릴린 먼로를 알고 있고, 이순신을 알고 있어. 그런데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거리에서 만난 몇몇의 특별한 사람은 가짜고, 가상현실이라고 느끼고 있지. 혹시 지금 나도 가짜라고 느껴져." (pp.144-145) 

 
   

모든 문장에 물음표가 사라져 있다. K의 고민에 친구 H는 이어 말한다.  

 

"자네의 망상은 매우 특이해. 일찍이 인도 출생의 세계적인 뇌연구가인 찬드란이란 사람이 카프그라 증후군에 대해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환자는 자네보다 훨씬 증상이 심각해서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가짜고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극심한 망상에 빠져 있었지. 이런 특이한 증세는 찬드란이 논문으로 발표한 후 유명해졌지만 실제로는 아주 극소수에게만 일어나는 희귀병이니 자네의 망상과는 종류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런데 한 가지 다시 묻겠는데, 자네 혹시 어젯밤 가벼운 교통사고나 어딘가에 부딪쳐서 머리에 충격을 받은 거 아냐." (p.145)

 
   

아내와 딸, 자신과 스킨, 자명종 울림소리, 휴대폰을 주운 남자, 죽은 줄로 알았던 장인, 그리고 공기. 평소와 달리 낯설게만 느껴지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혼란스런 남자는 자신의 휴대폰을 주웠다는 대머리 남자가 말한 휴대폰을 처음 주운 장소로 탐험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어젯밤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를 기대하면서.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체온을 느낄 겨를도 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던 남자들은 생면부지의 여자와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나는 너를 사랑해. 그것은 하소연이자, 애원이자, 절규이자, 비명이며, 타는 갈증이자, 목마름이며, 결핍이자, 상처이며, 통곡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낯익은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의 익사 상태에 이르렀을 떄 심폐기능을 소생시키는 인공호흡과 같은 것이다. 낯익을 사람들이 거식증에 걸려 영양결핍으로 죽어갈 때 식도 속에 관을 집어넣고 액체로 된 유동식을 흘려 넣어 영양분을 공급하는 구명호스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관계이며, 소통이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탈출이며, 존재의 증명이며, 해방이자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어둠이며, 죄악이며, 자해이며, 허무이며, 절망이며, 폭력이며, 파괴이자 자살행위인 것이다. (pp.159-160)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헤매던 남자는 정체모를 남자의 전화를 받고나서 성인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코스프레한 예쁜 여자를 만난다. 위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없이 성인방이 등장했을 리 없고, 오늘날 성인방의 역할론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곳은 굉장히 낯익은 이 도시의 단면이기도 하니까. 애초 목적이 있어 들어간 곳이 아니므로 달의 요정 세일러문과 남자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인방을 나온 남자는 또다시 오래 전에 헤어진 누이를 찾기 위해 전 매형을 찾아가기로 한다. 전 매형과 누이를 차례로 대면한 후, 누이를 향해 느낀 욕정을 참회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간 남자가 마지막으로 대면한 것은 바로 K2 자신이었다. 어젯밤 자신의 끊긴 행적을 찾아 나서 3일간 돌아돌아 찾은 것이 본인인 셈. K2는 K와 같으며 또한 같지 않았다. K는 혼란을 느낀다. 

아내는 돌아온 K를 나무랐다. 딸과 강아지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아내 말에 의하면 자신이 한 달만에 돌아온 거라고 했다. K는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찾은 것이다. 낯선 아침을 시작으로 낯선 자신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다 비로소 낯익은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참 오래, 많이도 돌고 돌아서. 아내는 반가워했다. 그것만으로도 K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원래의 자신이라는 걸. 

   
 

레인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한 달 이상 K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별거로 보류했던 부부간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강제로 성폭행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K는 레인저의 아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성적 행위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부부간의 인연은 우표와 같아서 처음에는 혀끝의 침만으로도 잘 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를 따로 발라야만 봉투에 붙일 수 있듯이, 이렇게라도 성행위를 해야만 부부간의 접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국 K와 아내는 서로 육체적 물물교환을 나누고 있는 것이며, 날마다 수금을 하는 고리대금업자의 외상 장부에 일수 도장을 찍는 재계약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 K가 아파트의 또 다른 아내에게서 느꼈던 냉동된 시체와 같은 차가움, 해부실의 시체를 시간하는 변태성욕자 같은 섬뜩함, 세일러문처럼 살아 있는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 실리콘으로 모조한 말랑말랑한 인조피부의 감각, 무화과 잎으로 엮어 가린 사타구니 속에 매달린 K의 위축된 성기와는 달리 세탁소 아내의 몸은 따뜻하였고, 친밀하였으며, 익숙하였다. (pp.352-353)

 
   

그는 정말로 돌아온 것일까. 이 낯섦을 향한 여행이 다시 시작되지는 않을까. 누구세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할 날들이 오는 건 아닐까. 언젠가 남편이, 아내가, 엄마가, 아버지가, 옆집 아저씨가, 옆집 아줌마가, 온통 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까. 세상에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존재할 뿐. 그것도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내가 존재하는 것일뿐. 

그런 의미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가사는 절묘하다. 이런 가사였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살며시 너에게로 다가가 

모든 걸 고백할 텐데. 

전화도 할 수 없는 밤이 오면 

자꾸만 설레이는 내 마음 

동화 속 마법의 세계로 

손짓하는 저 달빛 

밤하늘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꿈결 같은 우리의 사랑. 

세일러문의 목소리는 의외로 맑고 청아하였다. 야밤에 창문 밖에서 부르는 세레나데와 같은 sweetheart의 mood를 띠고 있었다. 세일러문의 노래 소리는 이어졌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p.267)  

다정히 감싸오는 저 달빛은 

나를 보는 당신의 눈빛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p.376)

 
   

내가 누구처럼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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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7-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내용의 소설이었군요. 섬뜩하면서도 아주 예리한 칼날 같아요. 세일러문의 가사도 다시 되짚어 보니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정작 먼 것들은 익숙하게 느끼면서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갑자기 낯설게 인식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사실은 그렇게 이미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리시스 2011-07-02 09:1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내용입니다. 쓰다지쳐 흐지부지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대강 이런 내용의 소설이랍니다. 블랑카님. 주제가 명확하고 문체가 쉬워서 읽긴 편했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쉬운 내용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 문체 자체는 아주 사실적이고 명확한데 말이에요. 내용이..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7-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드네요.
내용은 약간 섬뜩하지만, 그래도 결국 돌아 돌아 나 자신을 찾았다니 다행이예요...

그리고 저는 아이리시스님이 김태희처럼 보여요...
이건 왜 그런걸까요?~

아이리시스 2011-07-02 09:21   좋아요 0 | URL
현맘님. 다시 시작되는 걸로 끝났어요. 영화에서 마지막 결말을 되풀이되는 한장면 삽입하듯이요. 그리고 현맘님. 어떻게 아신 거예요, 대체. 저는 김태희예요~ 김태희 맞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께 김태희가 광고하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샀어요. 김태희가 광고하는 냉장고도 사고 싶었지만 그건 그냥 S사껄로 엄마랑 동생이 골라왔더라구요. 우린 옛날부터 S사 매니아예요. 다 크고나서야 그러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지 뭐예요. 따라가기 싫어서 버텼더니 둘이 가서 골라왔지 뭐예요. 새 냉장고를 무려 18년만에 샀대요. 이 집에 무려 18년을 살았다네요. 흐흐. 구식 냉장고가 끌려나가서 좀 슬펐어요. 꺼이꺼이. 울어주진 못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루쉰P 2011-07-0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도 그렇고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도 그렇고 마치 카프카의 아우라가 느껴지네요. ^^ 뭐랄까 저는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작가가 그 이야기를 이끌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면 읽다가 손을 놔 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카프카도 하루키도 읽고 팽개치고의 반복이었죠. ^^ 암튼 리뷰를 이렇게 열심히 올리시다니 요즘 문장의 혼이 살아나신 듯 합니다. ㅋ 그러나 저러나 아이리시스님이 누굴까요? 전 단편적인 정보 밖에 없어서 대답을 못 하겠네요. 정말 누구신거죠?

아이리시스 2011-07-02 09:24   좋아요 0 | URL
루쉰님. 저는 카프카를 안읽어서 모르겠어요. 소설평가단 한 분이 하루키 같다는 리뷰를 쓰셨던데요. 저는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누구랑 비슷하다고도 못 느꼈고 딱히 제 스타일의 소설이라고도 못 느꼈지만 최인호 작가님이 시도한 새로운 소설이라는 것만 알았어요. 예전에 [상도]는 읽었는데 워낙 어렸어서 기억이 안나네요. 그건 정말 엄청났었죠. 루쉰님 말대로 읽고 팽개치고를 반복하며 취향을 찾아가는 거겠죠. 소설은 다분히 취향적이니까요. 또 어떤 작가의 한 작품이 좋다해서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말이에요. 제 경우엔 애정이 좀 더 가긴 하지만 모두 좋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7-0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장애)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내 안에 여러명의 내가 있다면, 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일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기억을 잃은 나는 예전의 나와 동일한 나인가 부터
대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으로 깊게 연결이 되네요. 아, 공포란 말, 딱 공감해요.

아이리시스님은,,, 꽃다운 아이리시스 님처럼 보여요, 아님 혹은 지렁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1-07-02 09:28   좋아요 0 | URL
지렁이라니, 버럭!!! 나쁜 의미가 아닌 건 알겠는데 제가 왜 지렁입니까? 꿈틀꿈틀합니까, 제가?ㅎㅎ
해리성 장애, 도플갱어, 인지 장애 등등 여러 이론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작가가 딱 뭘 얘기하는지는 감을 못 잡았어요. 저는 개성없이 비슷비슷해져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고랄까, 그렇게 읽혔어요.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소설들도 재밌는데 말이에요.

마녀고양이 2011-07-02 11:02   좋아요 0 | URL
지렁이는 땅에 숨을 쉬게 해주잖아요.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분홍색이 얼마나 이쁜지..

(머, 아이리시스님을 놀리려는 의도 맞습니다.. ㅋ)

아이리시스 2011-07-02 20:52   좋아요 0 | URL
핑크. 핑크. 으흐흐. 그러네요! 지렁이도 핑크였어요. 핑크 좋아하지만 지렁이가 핑크라니. 핑크 싫어질라 그래요.ㅠㅠ

VERTIGO 2011-08-2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하에서 상품화되는 과정에 너무 많이 노출되서 생긴 병이 아닐까요? 과장하기,낯설게 만들기의 상품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을 표현한 소설이던지,아니면 공황장애 아닐까 싶네요. 비현실감은 공황장애의 특징이니까.

아이리시스 2011-08-27 15:22   좋아요 0 | URL
VERTIGO님 반가워요. 맞는 말이에요. 상황에 맞게 다른 자아를 만들고 대처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비애이기도 하구요. 공황장애 또한 맞을지도 몰라요. 이 소설은 틀림없이 현대사회에 병들어가는 개인의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두렵구요.
 

 

 

어제 저녁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에세이 두 권.  

하나는 프랑스 여자들을 말하고, 또 하나는 동유럽 여행기인데 둘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동시에 읽어줘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유와 구속이 공존하고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손꼽는 1순위 대륙 유럽. 중에서도 동유럽. 더불어 문화, 예술, 자유를 표방하는 파리지앵의 도시 파리는 참기 힘든 궁합이 분명하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지만 정작 제3자인 나는 둘 사이에서 널을 뛰는 멜로의 여주인공 즉, 양다리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은 어젯밤 모래 한 줌을 억지로 움켜쥐고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안쓰러운 나를 다독여주었다. 동유럽으로의 여행과 프랑스 여자들과의 만남이라니. 죽기 전 마지막으로 빌어도 좋을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곧 죽어도 좋았다.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적 외사랑과 천재적인 예술적 소양 그리고 로댕으로부터 배신당한 후 억눌린 재능으로부터 나온 광기가 다시 태어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라면, 작가이자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자유와 살아있는 나비의 대명사였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로망이다.   

[슬픔이여 안녕]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 것보다 그녀에게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를 동경해서라기 보다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자유로움 그 자체를 동경해서인 것 같다. 열아홉에 쓴 단 하나의 소설로 일약 스타작가가 된 그녀는 어린나이에 모든 고독과 영광을 경험해서인지 죽을 때까지 마약과 도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담배 한 개비 피워보지 못하는 나와는 정반대라야 정반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클로델이 동경이라면 사강은 더 동경이고, 영부인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날아간 세실리아는 더더 동경이다. 손아귀 권력과 타인의 동경을 위해 불행마저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평생 알 수도 없겠지. 나는 영부인이 아닐 테니까. 에잇.   

 

 

 (프랑수아즈 사강 作)

 

 

하지만 더 대박은 세실리아의 자리에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 모델이자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가 왔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지금도 뉴스에서 간혹 사르코지 대통령 옆 또는 한걸음 뒤에 조신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여자가 평생 사회생활을 안 해도 먹고 살 만큼의 경제력을 갖춘 부모 아래 유명세를 노린 테러를 피해 프랑스에서 명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어서 잠시 팽하다 말았다. 윌리엄 왕자의 케이트 미들턴처럼 신데렐라는 아니었구나. 언젠가 조지 부시는 사르코지 부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브루니를 본 순간 사르코지가 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데,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시작은 누구나 그렇다지요. 사르코지 대통령도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그들의 마지막은 과연 처음보다 아름다울까요? 저의 밤이 당신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또한 이자벨 아자니. 난 줄리엣 비노쉬를 더 좋아하기에 가볍게 패스하려 했지만 워낙 대단한 이 여자의 필모그래피가 한 줄로라도 그녀를 저장하고 싶게 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리. 워낙 유명한 영화들이니 존재만으로도 장악의 기운이 뻗치는 듯. 개인적으로 [여왕 마고]는 거의 10년을 벼르던 거라 다음 기회에. 응? [카미유 클로델]은 정말 좋았어. 그래, 좋았지. 자자, 다들 영화 보세요. 

특히 빅토르 위고의 숨겨진 둘째 딸 아델의 일대기를 다룬 [아델 H 이야기]는 줄거리만으로도 사로잡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너무 잘난 부모를 둔 자식은 많은 걸 누리는 것과는 반대로 본인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진다. 아버지의 명성을 넘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을 아델이 오늘날 부모의 영광 아래 덕 보려는 자식들이나 부모 등골 빼먹는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여배우가 몇 나오고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를 썩 즐기지는 않는 관계로 여기까지. 차라리 목숨 걸고 투쟁하다 죽어간 잔다르크 페이지가 난 훨씬 맘에 든다. 아름답자고 만들어져 카메라 앞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을 혁명가와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법. 그 외에도 보부아르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무엇보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따로 평가받기를 바라지만 여자로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동맹자적인 관계와 사랑을 빼먹을 수 없다.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고 소유하고 나면 갖고 싶어지고 가졌다 싶으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이들은 남과 여, 음과 양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재로서 진정 이해받고 이해했으니 죽어서도 부러울 게 없을 듯. 커플이라는 건 한 사람만 변해도 깨지기 마련인데. 이 커플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부럽다, 부러워.

 

애초에 제자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로댕은 그녀의 개성과 뛰어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제자를 받아들인다. 카미유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존경심과 더불어 사랑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하던 카미유는 스물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로댕에게서 아버지 같은 강력한 존재감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로댕에게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로즈 뵈레라는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 동안 열렬한 사랑을 하는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다. 카미유는 그의 제자였지만 협력자였고 동시에 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였다. 이때 그녀를 모델로 한 많은 작품과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pp.34-35)

 

나도 누군가에게 뮤즈가 되고 싶다. 이제보니 로댕은 주몽 다음으로 여자 등쳐먹어 성공한 남자 되시겠다. 물론 자신의 성공이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은 누군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못한다. 그 절반의 성공은 오로지 카미유의 희생과 눈물과 외로움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정신병원 감금 30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어쨌거나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겠다고 약속하는 남자의 마음은 거짓이라는 걸. 물론 로댕은 카미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도 없다. 그에게 카미유는 특별하긴 했어도 그저 그의 곁에 있는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를 믿지 말아야 한다. 믿었으면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카미유가 고독과 광기에 몸부림 치다 가족들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감금돼 생을 마감한 것처럼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 남자에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해야 한다. 남자는 자기가 가진 그 무엇과도 여자를 바꾸지 않는다. 그의 곁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그 반대인 것 같아 슬프다.  

이렇게 쓰는 지금 나는 또 하나 알겠다. 남자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는 걸. 아니, 예술가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고 해야 말이 맞나. 

 

 

 

 

이건 현재 첫 번째 챕터 [프라하] 편만 읽었다. 유럽여행 당시 나는 프라하에 대한 다분한 갈망이 있었고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 버스로 다섯 시간이 채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있었지만 체코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국가라 과감히 패스했다. 동유럽권은 솔직히 두렵고 겁도 났다. 왠지는 모르겠다. 프라하는 슬펐다. 먼 훗날 그곳에 가면 카를교에 서야 할 텐데 뛰어들어 죽고 싶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차라리 안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슈타트와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는 아쉬웠지만. 그런데 바로 첫 챕터에서 프라하를 온통 훑어준다. 앗싸, 프라하 갈 필요 없네.  

난 그냥 프라하 성을 상상하다 시간이 되면 카프카와 흐라발을 읽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장은 크로아티아인데 기대된다. 이상하게 동유럽은 슬프다. 역사를 많이 알지도 못하고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그나마도 온전히 마음으로 전해지니 이상한 일이다. 기운이 다르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어딘지 모르게 고독의 향기가 묻어있는 지명의 도시들 아닌가. [굴라쉬 브런치]는 워낙 유명했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에세이지만 동유럽에 관한 일기라는 점에서 이곳저곳 섞인 발랄한 여행일기보다는 애틋하다.  

 

 

 (흐라발 作)   

 

 

 

 (카프카 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나처럼 쿤데라가 최고.  

 

 

 (쿤데라 作) 

  

 

예술은 넓고 읽을 책은 많고 볼 영화도 많다. 그보다 더 많은 게 할 일이고 그보다 더 하고 싶은 게 글쓰는 일이고 그보다 더더 하고 싶은 게 뭘까. 우선 책을 쌓았다. 높을 수록 좋았다. 배가 고팠다. 읽어 치운다. 내 안에 쌓이는 건 분명 양식인데 그보다 먼저 위안을 얻는다. 정체모를 것들을 자꾸 배워간다.  

책을 읽으면 배가 든든해지진 않지만 세상이 자꾸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특히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쓴 글들이 좋다. 그들은 내가 겪는 감정들을 다 겪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위로다. 책을 몇 박스 사고나면 해소되는 지랄맞은 물욕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장바구니를 한가득 채워둔 걸 보면.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꿈꿨던 프랑스 여자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없는 것. 자의식. 너무 강해도 본인을 망가뜨리고 약해도 본인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것. 실체없는 그것을 향해 똑바로 서서 배워야 할 것이다. 어째서 프랑스 여자라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려면. 말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 모른다. 일도 사랑도 투쟁도 가정도 모두 같은 농도로 필요한데 그걸 체득하고 지킬 줄 모른다. 그걸 찾아가는 법을 동유럽으로 떠난 한국 여자에게서 배웠다. 멋진 번역가를 꿈꾸는 그녀에게서 엿봤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그리고 오늘은 또 지나가고 있다. 바싹한 토스트에 싱싱한 방울 토마토와 시원한 우유를 곁들여 먹는 것 말고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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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5-1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올해의 여름휴가는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려구요.
 라고 - 아주 태연하게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택도 없지요. 헤에.
 프랑스 소설은 별로이지만 사강은 좋아요, 영화도 무척 좋아해요.
 연휴 내내 프랑스 영화만을 보기도 했는걸요. 그런데 난, 외국배우의 얼굴을 분별해 낼 수가 없어요.
 그 배우가 그 배우같아요. 그래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배우가 있는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나쁜 피의 남자 주인공이예요. 아아, 그러니까 그의 얼굴은 수 천가지의 표정이 존재해요.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든 그를 기억해낼 수 있어요. 이름 대신에 그의 얼굴을 난 아주 잘 외울 수 있어요.
 그리고 벨벳 골드마인은 정말 최고였어요. 아직 보시지 않았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성이 짙고 드라마틱도 하거든요.
 남자 주인공은 너무 멋지구요. 락앤롤은 매춘이라는 그 대사는 정말 최고였어요!
 

June* 2011-05-18 17:48   좋아요 0 | URL
 
 몰락의 에티카는 아직 읽지 못했어요.
 여기저기 괜찮다고, 좋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느낌의 공동체 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
 

아이리시스 2011-05-18 17:55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나쁜피]랑 [벨벳 골드마인] 꼭 볼게요.
당분간은 여유가 없지만 예전부터 좋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실망하지 마요, 여름휴가를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는 사람 몇 있겠어요?
꿈꾸다 보면 언젠가 가 있을 거예요. 그럴 거예요.

평론공부 하고 싶던 적 있어서 특히 영화평론집 보면 저는 너무 설레요.
근데 저는 많이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라서 직업으로 삼으면 못했을 거예요. 다행이죠.
이 담에 책 주문할 때 넣어야 겠어요. 좋다고 하니까.^^;;

June* 2011-05-19 11: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평론이라는 것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거지요 ?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더라도 평론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아무렴, 달라지지 않겠어요 ? ^^
 
 여름 휴가는 전국일주로 정했어요. 아이리시스님이 머무는 곳은 빼놓구요.
 그곳엔, 시댁이 있거든요. 헤에.
 

아이리시스 2011-05-19 12: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댁이 있단 말이죠? 여기 부산에?
부산남자랑 서울여자랑 사는 거예요? 서울에서?^^

전국일주 멋지네요. 저도 꼭 해보고 싶은 건데, 특히 전라도와 강원도 그리고 섬마을에 가고 싶어요.
어제 문화기행을 떠나는 여행에세이를 발견했는데 꼭 들고 가고 싶은 책이었어요. 평소 생각한 여행지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저는 산으로 꽃보러 가는 거 그런 거 싱거워서 별로였는데, 나이가 들긴 들고 있어요. 산도 좋고 절도 좋아요. 지난 여름엔 하동으로 갔는데 올 여름에도 짧지만 다녀와야 겠어요.^-^

June* 2011-05-19 16:06   좋아요 0 | URL
 
 네, 서울에서요.
 부산 남자와 소박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도에서 살구요. 명절때마다 부산을 다녀오는데 기회가 되면 꼭,
 부산에서 살겠노라고 매번 다짐을 하고 올라와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7:00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부산이 맘에 들어요? 저는 생의 전부를 여기서 살고 있어요. 좋거나 싫다고 말할 수가 없을 만큼 오래 살아서 별 감흥이 없어졌어요. 전에 책 받을 때 주소가 서울이어서 서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건 사무실 주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Forgettable. 2011-05-20 09:13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나쁜피]에 젊은 시절의 줄리엣 비노쉬 나와여 ㅋㅋㅋ 진짜 장난아니게 이쁨 ㅠㅠ 그리고 남자 배우는 드니 라방인데 최고에여. 하하

저 아직 파일 있는데 혹시 원하시면..... 메일로 쏴드릴까여? ㅎㅎ

아이리시스 2011-05-20 13:56   좋아요 0 | URL
뽀님. 우리 오랜만이죠?
아참, 맥북이 말썽이예요. 메일에 저장해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지 않나요?
제가 구해보고 없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때 보내주세요.^^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다고 들어서 당시 손꼽아둔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예뻐요?
꼭 봐야겠군요, 히히히히히.

잘잘라 2011-05-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병원 감금 30년!!!
할 말을 잃어요.
ㅜㅜ

아이리시스 2011-05-19 12:13   좋아요 0 | URL
로댕의 냉대에 실망해서 혼자 서보려 했지만 여자라 잘 안됐대요. 로댕과도 싸우고 사회의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나봐요. 여자가 나체조각을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웃긴다, 여자 나체가 없으면 자기들이 어떻게 종족번식을 할 거라고. 체쳇.

그러면서 서서히 미쳐갔어요. 로댕이 그녀를 사랑하고 감싸줬으면 그녀는 괜찮기도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무너져가는 걸 가족들이 못 봐서 정신병원으로 보냈대요. 아참, 카미유는 아들을 지독히 편애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대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육시킨 건 아버지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결핍과 로댕의 사랑결핍에 늘 힘들었을 거예요. 로댕과 카미유는 정말로 유명한데 1:100에서 문제로 나왔을 때 한 개그맨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해서 충격 받았어요.

음.. 모를 수도 있죠. 저는 야구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걸요. 이런 것도 어찌 보면 오만이예요.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르면 무식한 거고 남이 아는 걸 내가 모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요. 반성중이었어요..

pjy 2011-05-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아, 가고싶군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6:45   좋아요 0 | URL
저두요. 유럽 도시들을 밤새도록 줄줄이 비엔나로 댈 수 있어요. 아이슬란드랑 아일랜드가 요즘은 좋아요. 참, 친구가 아일랜드에 갔는데 엽서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공부하러 간 거라 바쁠텐데 제가 생떼를 썼어요. 이주나 걸린다니까 한참 후가 되겠지만요. 그 엽서에 유럽공기가 묻어오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이지만 생소한 일이라 그애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애가 미니홈피에서 쪽지로 [난 지금 원스의 나라 아일랜드에 와 있어.]라고 했는데 막 두근두근 했어요.^^

pjy 2011-05-20 01:13   좋아요 0 | URL
영화취향도 편협하고 음악도 별루라 원스는 잉? 이러지만 아일랜드라~ 성질 좀 드러운 다혈질사람 많은 곳? 이러구 있습니다ㅋ 유럽공기라......아........

아이리시스 2011-05-20 13:44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에 승질 드러운 사람들이 사나요? 저는 그저 풍광만 떠올렸을 뿐이랍니다.. 아무렴 어떻고, 어디면 어때요, 흐흐흐, 갈 수만 있어도 좋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다올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5-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홋, 프랑스 여자처럼 말이죠
느낌이 우아하고 날씬한 프랑스 여자처럼 되고 싶어서 샀다가
20페이지 읽고 때려치웠다는거 아녜요. 그렇게 못 될거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여행 가고 시퍼요. 저도 런던 관련 여행 에세이 읽다 말다 하는 중인데. ㅠㅠ

저는 프랑스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네들은 한마디로 할 수 있는 문구를 10페이지로 꼬아놓을 수 있는 섬세함(재주)를 가졌다 싶기 때문이구요, 또 하나는 그렇게 말 많이 다다다다~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사벨 아자니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정말 멋져요.

음, 그런데 케이트 미들턴이 신데렐라인가요? 엄청 부자 집안이던데, 다만 귀족 작위만 없구요.
저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를 절대 거부합니다! ㅋㅋ, 그건 하나의 책임 같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5-20 13:53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구나. 귀족 작위가 없어서 그 여자를 신데렐라라고 난리를 피운 거예요? 하긴 설마 나처럼 서민이기나 할라구, 라고 생각하긴 했었어요. 근데 브루니가 더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대단한 집 딸인지 몰랐어요. 대단하다기보다는 돈 많은. 그래서 이 책에 브루니와 사르코지는 순진한 커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너무 잘 안다,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하더니 브루니 임신했다잖아요. 적어도 임기 후 헤어지진 않겠어요! 성폭행 미수 저지른 IMF 총재가 다음 대권에 나갈 후보였다는데 까였으니 한 번 더 사르코지에게 기회가 갈 지도 모르구요. 프랑스 여자들처럼 못될 것 같다에 저도 동감.

프랑스 문학과 영화에 대한 마고님 생각에 저도 동의하는 것 같아요. 너무 재밌다면서 본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의 속행이나 한국의 통속성과는 차별화 된다고 생각하며 저는 본 것 같아요. 저도 다다다다 거리는 어감의 불어 싫어해요.

뮤즈는 책임이기도 하군요, 전 그저 팜므파탈이고 싶단 얘기였는데~ 역시 마고님의 시야란 역시^^

cyrus 2011-05-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요즘 영국 여자들의 글에 푹 빠져 있어요, 최근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재미있게 읽었구요,
지금 읽고 있는게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집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영국이라는 나라가 습한 기후라서 그런지
이 두 작가의 글에도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더라구요,, 오늘과 같이 비가 오면서 습한 기운이라고 해야되나요? ^^

아이리시스 2011-05-26 18:2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제인 에어>에 빠져있는 글 읽었는데 좋아요. 버지니아 울프는 나도 전에 [자기만의 방] 샀어요. 에세이집도 보고 싶어요. 영국적인 색채 그거 좋네요. 저는 정원 펼쳐져 있고 팔랑거리는 치마, 그런 거 떠올라요. 근데 대체 그런 건 어디있는 거예요? 영화가 학습시킨 것 같아요.ㅋㅋㅋ 그러니까 [제인 에어] 읽고 싶어요. [테스]도 읽고 싶고. 그냥 책 펴서 읽으면 되는 거죠, 참?ㅎㅎ

버지니아 울프가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완전한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당신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믿어주시겠죠. 하지만 나는 이걸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당신의 삶을 소모시키고 있어요. 이 광기가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병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거예요. 모두 당신 덕이에요. 아무도 당신만큼 잘해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맨 처음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라고 쓴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요. 방금 검색했다가.. 되게 예쁜 마지막 사랑이예요. 그죠?

루쉰P 2011-06-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서 검색이 돼서 이렇게 글을 뒤늦게 찾아서 봅니다. ^^ 당선되신 것 축하드려요. ㅋ

로댕과 카미유의 얘기는 여기서 보고 알았어요. 카미유의 인생이 너무나 처연해 비 오는 이 날 왜 마음이 애잔한지를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님의 남자에 대한 분석이 어찌 보면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은 버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배신하는 남자라..좀 밥 맛 없어요. 아 물론 저도 남자지만 말이죠. 저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여성도 없어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말이죠. ㅋ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도 알아 가는 것도 너무 힘든데, 제발 원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차라리 사랑을 한다면 상처를 받아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에 제가 상처 줬던 사람으로 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사실 프랑스와주 사강과 다른 프랑스 배우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식의 극치죠. ^^ 체코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전 여행은 항상 용기도 없고, 겁이 많아서 가지를 못해요. 우리 동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센스를 자랑하죠. 그래서 경기도 북부의 이 위성도시에서 산지 무려 27년을 살았지만 동네를 잘 몰라요. -.-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곳에 대해 생의 전부를 사신 아이리시스님의 말씀에는 저 역시 똑같아요. 다만 편한거죠. 이곳이 익숙하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여행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부러워요. 그런 활달함이요.

아이리시스님과 팜므파탈이라 어울려요. 크흑!! 근데 글을 쓰시는 걸 무척 좋아하시는 아이리시스님이 꼭 자신이 원하시는 것을 쓰쎴으면 좋겠어요. ^^

쿤데라는 저도 읽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존재의 밑바닥까지 쓴 글이 좋으시다는 말이 제 감슴에 확 와 닿아요. 전 인간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글을 좋아하거든요. 자신이 자신을 모를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1-08-13 15:05   좋아요 0 | URL
루쉰님, 이 때 댓글 쓴 줄 알았는데 일부러 빼놓은 건 아닐 거예요. 당시 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나 봐요. 예전 글 다시 가끔 보는데 이달의 당선작인 거 읽다가 발견했어요. 카미유 클로델과 사강은 꼭 알고 넘어갈 만한 여류 예술가인 것 같아요. 저도 작품구경이나 작품읽기는 거의 못했지만 저도 여자인 만큼 그런 삶들이 동경스러운 것도 사실이예요. 루쉰님은 지금도 충분히 멋진 글을 쓰시잖아요. 진심 부러워요. 우리 더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