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에 끌리게 되는 이유는 영웅적인 면모라고는 찾기 힘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주인공이 그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 내면의 힘을 키워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 때문이다.'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가 처음 접했던 작품이라 판타지 소설가라고만 생각했으나 '헤인 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이전 판타지 소설 작가임을 잊게 될 정도로 SF작가로의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서부해안 연대기'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이야기는 '어스시의 마법사'와는 결이 다른 세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이다. 기프트를 제외하고 청소년기에 집중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부모의 기대와 다른 자신만의 미래를 선택하게 되는 '기프트'와 자신의 내면에서 자기만의 재능을 알아가게 되는 '보이스', 그리고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파워'라는 세가지 연작을 통해 구조적이거나 환경적인 장애들을 극복해나가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다. 그녀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주인공의 환경으로 주어져 단순한 성장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참여적 비판의 날을 벼린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외부의 조언이나 멘토인 어른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걸음을 내딪게 하는 자기 자신만의 '용기'이다.'어스시의 마법사'가 삶을 바라보는 '성찰'에 대한 어른의 이야기라면 '서부해안 연대기'는 미래의 성장을 위해 가져야할 '용기'에 관한 청소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