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애무 `낯뜨거운 캠퍼스`
[속보, 사회] 2003년 10월 17일 (금) 10:45
(::학생들 애정표현 정도 지나쳐 "공개장소 지킬건 지켜야" 씁쓸 ::) 캠퍼스가 갈수록 야해지고 있다. 최근 캠퍼스를 걷다보면 커플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커플들이 눈에 띄며 사 랑의 표현도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어두운 곳이나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즐겼던 사랑을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앞에서도 당당하게 즐기고 있는 것 이다. 서로의 몸을 민망할 정도로 밀착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흔히 볼수 있는 일이 되었고 일부 커플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 하지 않고 키스를 주고 받기도 한다.

외국에서 공부하다 온 한국외대 오수영(24)씨는 “처음에는 캠퍼 스에서 연인들의 사랑표현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어떻게 보면 한국 젊은이들이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보다 더욱 성개방이 된 듯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얼마전 모 스포츠신문 인터넷사이트에서 ‘이라크 파병 하루전 애인과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남자 60%이상은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으며 여자들도 51%이 상이 같은 대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필자가 ‘대학생 성의식’에 관한 과제물을 위한 조사 에서도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교에서 이성교제를 제일로 하고 싶 다고 했으며 이들은 실제 ‘남자친구 군대가기전’ ‘MT등 여행 중’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계를 가진 학 생들 대부분이 “이성을 좋아하지만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 답해 기성세대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경희대 함윤라(22)씨는 “이성친구와의 성관계가 더 이상 부끄럽 거나 비밀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개방된 성의식은 인정 하면서도 “그러나 공개된 장소에서 지켜야 할 도덕까지 잊어버 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오유정(경희대)yoocarol9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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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62% "이성간 동거가능"
[속보, 사회] 2002년 10월 14일 (월) 10:42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 우리나라 대학생 10명중 6명은 이성간의 동거가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중 절반은 동성애자와 동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대학신문이 지난 9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전국 19개 대학 961명의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14일 발표한 '대학생 성의식 조사'에 따르면 이성간 동거에 대해 '상황에 따라 가능'(53.9%)하거나 '찬성한다'(8.0%)는 긍정적 의견이 '반대한다'(38.1%)는 의견에 비해 많았다.

동거를 하는 이유로는 '대학가의 자유분방함'(59.8%)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생활비 절약'(23.7%) '생활공간 확보 용이'(16.5%) 등 현실적 이유를 드는 응답도 많았다.

동성애자와의 동거에 대해서도 '사랑하는 사이면 가능하다'(34.7%)는 응답이 '절대 반대'(28.5%)보다 많아 눈길을 끌었다.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사이면 가능'(43.2%)하거나 '결혼을 전제하면 가능'(21.6%), 혹은 '무조건 가능'(8.5%)하다는 응답이 전체 73.3%를 차지한 반면 '불가하다'는 응답은 16.9%에 그쳤다.

배우자 선택시 '육체적 순결'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39.3%)는 답변이 '중요하다'(30.2%)는 의견보다 많았으며 30.5%는 '모르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 조사대상 학생들 중 23.4%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동거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5%로 조사됐다.

lilygardener@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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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따로 결혼따로…사랑은 異중주?
[속보, 생활/문화] 2003년 11월 28일 (금) 12:10
요즘 젊은이들의 性의식

혼전동거는 YESㆍ임신은 NO
배우자 선택 경제적 조건 우선
현실과 이상 사이서 갈팡질팡

“난 자신 있어.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 결혼 전 양다리는 그나마 낫다.

결혼 전 사귀었던 애인과 결혼 후에도 가끔 만나 섹스를 즐긴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들키면 간통일 뿐 아 니라 사회의 돌팔매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엄정화가 당돌하게 내뱉은 위 의 대사는 왠지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정말로 섹스와 사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섹스와 결혼 사이에서 현대인 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나.

섹스와 사랑 그리고 결혼의 ‘경계인’으로 살고 있는 이 시대 남녀들의 성의식과 결혼관은 설문을 통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한국대학신문이 중국 일본 한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혼전 동거와 성관계 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혼전 동거 및 성관계에 대한 물음에 한국 학생들의 57.1%가 ‘대체로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 른바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섹스는 별개가 된 것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관련되고 결혼이 직접 결부되면 또다시 달라진다는 것이다.

점점 이기적이며 이중적인 성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 결 혼전문 잡지가 결혼을 앞둔 20대 중반~30대 초반 남녀 1200명을 대상으 로 조사한 결과, 혼전 임신에 대해서 51.5%의 응답자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혼전 성관계는 다다익선이지만 혼전 임신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설문대상의 35.3%가 ‘바 람을 피우면 즉시 이혼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달라진 성의식은 결혼을 앞두고 경제·사회적 ‘조건’까지 만들어 낸 다.

결혼정보회사 좋은만남선우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 에서 ‘조건은 좋으나 권태기를 느끼는 남자와 다시 사랑하게 된 옛 남 자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남자 2 9%, 여자 60%가 ‘권태기에 있더라도 좋은 조건의 남자’를 선택했다.

경제·사회적 헤게모니가 육체적 욕정을 밟고 일어선 것이다.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합리적인 배우자 선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며 “이러한 의식 속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성의식과 경제·사회적 조건이 혼재된 우리의 성과 결혼은 타자와 상관없는 ‘절대적 개인’으로서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절대적 개인’이 가져온 결론은 명확해졌다.

혼전 성관계는 괜 찮지만 애는 낳을 수 없다.

나는 바람을 피워도 되지만 스와핑은 절대 못한다.

내가 하면 되지만 남이 하면 안된다.

이게 전부다.

물론 남녀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더욱이 결혼 앞에서는 현실성과 변 수를 고려하게 마련이다.

어쩌면 섹스와 사랑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 사 이에서 위험스러운 줄타기를 하는 남녀가 현명할지도 모른다.

다만 조건 이 필요할 뿐이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장창민 기자(cmja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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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폰 | 자유게시판? 2004/04/07 14:52
http://blog.naver.com/museye/1663510
IT]
건강 체크 `웰빙 휴대폰` 뜬다
[디지털타임스 2004-03-30 11:56:00]

LG경제연 보고서

검사자료 의료센터 바로전송 장점

바이오ㆍ당뇨ㆍ다이어트폰 잇단 출시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이 강조된 제품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의 라이프 스타일이 휴대폰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고 있어 모바일 헬스케어 시대가 본격 개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인 `휴대폰에 부는 웰빙 바람(박팔현 연구원)'에서 최근 바이오폰, 당뇨폰, 스트레스폰, 다이어트폰 등 웰빙 기능이 강조된 신개념의 휴대폰이 개발, 출시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휴대폰은 이미 우리나라 전체인구 10명당 7명 꼴인 3360만 명이 사용하는 가장 밀착된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어 웰빙 기능이 부가될 경우 활용도가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언제, 어디서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검사자료를 곧바로 병원이나 의료검진센터에 전송할 수 있는 것이 휴대폰의 장점이라며, 웰빙 기능은 휴대폰의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이자 고부가가치화의 컨셉트로 활용도가 높아져 휴대폰 업체간에 웰빙 제품을 통한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LG전자는 헬스피아와 공동으로 당뇨폰을 개발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휴비딕과 바이오폰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세원텔레콤은 일본 의료기기 업체인 옴론과 체온측정용 바이오폰을 개발하고 있다.

이동통신사의 움직임도 활발해 SK텔레콤은 휴대폰으로 측정된 자료를 비만클리닉이나 다이어트 포털 사이트로 전송해주는 모바일 헬스케어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고, KTF는 휴대폰 소리와 진동을 통해 소화촉진 및 변비 치료를 도와주는 콘텐츠, 응급상황 시 맥박 등 신체 상태와 동영상을 실시간 제공하는 응급조치 서비스를 준비중이며, LG텔레콤은 혈압과 혈당, 비만도를 측정할 수 있는 건강 패키지 상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팔현 연구원은 "웰빙 휴대폰의 등장은 의료벤처 등 의료업계와 휴대폰 업체간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휴대폰을 활용한 다양한 웰빙 기능, 웰빙 콘텐츠, 웰빙 서비스 상품이 개발됨에 따라 머지않아 모바일 헬스케어 시대가 본격 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동식기자

강동식 ds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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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엔 대학생이 없다? - 대학 4학년, TV를 볼 수 없는 이유 | 신문,TV, 세상읽기 2003/06/22 22:33
http://blog.naver.com/jaydreaming/80000023413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러고서 방송전문웹진에서 글을 쓴다니, 자기 모순이다. 아니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TV 보는 것을 생리적으로 꺼려한다기보다 TV를 보는 와중에 TV를 봐선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낀다고 해야겠다.

그건 아마 어렸을 무렵부터 TV 보지말고 공부하라는 어머님의 엄명에 길들여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머리가 커지면서 TV 대신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내 지적 허영심이 빚어낸 성향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방송전문 웹진 기자인데 TV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 대상을 깊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TV를 잘 보지 않는 게 나만의 성향인가 싶어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한때 열심히 상형문자같은 이론서들을 붙잡고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다. 주로 내 또래의 20대 중반 복학생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사극 정도뿐, 역시나 대부분의 친구들의 반응은 TV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TV를 볼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정말 이 친구들이 TV를 자주 보지 않는 건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TV를 자주 본다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우리 또래 사이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대학 4학년, 졸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TV를 볼 여유는 없다"라고 스스로 외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TV를 보지 않는 것이 나와 같은 복학생들만의 현상은 아닐 성싶다. 대학 1,2학년 때를 생각해 보아도 TV는 또래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대학생활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금 그 동안 대학의 가치를 고민하며 느꼈던 TV와의 갈등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나 스스로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TV를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진짜) 대학생들(자신이 정체성과 진리에 대해서 고민하는)이 TV를 보지 않는 건 TV 속 세계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소위 N세대들과 20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회인들을 위한 오락, 대중문화, 광고들만이 존재한다.

현재 이러한 TV 속 세계는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즉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대학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모두들 자신들이 왜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를 고민할 공간이 TV 속에는 없다는 말이다. 이는 20대끼리의 세대 차이가 생겨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각각의 다른 우리 속에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N세대'의 허구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N세대니 산소 학번이니 하는 말들이 TV를 경유해 우리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허위의식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중반 X세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대중문화, TV의 전 영역에서 '규정할 수 없는 세대'니 어쩌니 해가며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X세대라는 이름으로 (역설적이게도) '규정'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에 어떤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느냐고? 그렇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소비욕구를 극대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너희들은 X세대야, 자 이건 너희들(만)을 위한 물건이라구, 멋지지 않니?" 자, 세월이 흘러 20대 중반이 된 우리 세대들에게 이제는 아무도 X세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더라도 기성세대의 소비 패턴에 익숙해졌기(혹은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TV속 세계는 소비욕구가 왕성한 20대의 젊은이들을 열심히 한데 묶어놓으려 하기 때문에 고상한 '대학생'따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많이 팔아주기만 하면 되지 뭘, 사회가 어쩌니, 진리가 어쩌니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더욱 현란하게, 더욱 화려하게 젊은이들의 오감을 사로잡아버리자! 그래서 TV 속 세계의 주인(?)은 막 소비주체의 단계에 들어선 20대의 젊은이들이다. 20대의 젊은이들은 무궁무진한 천연자원을 가진 신대륙으로 자본 제일주의의 사회에서 솟아난다.


'우리'가 사라져 간다

자, 그렇다면 TV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대학생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최근 들어 가끔씩 보게 된 '뉴논스톱'을 가지고 얘기해 보는 것이 재미있겠다.

우선 '뉴논스톱'의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박경림의 캐릭터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대학생의 모습을, 양동근의 캐릭터는 유희와 예술을 좋아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조인성의 경우는 모든 젊은 여성들을 만족시켜 줄 만한 이상향을, 장나라의 경우는 조금은 어리버리하고 편안한 친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성역할에 있어서도 남자같은 여자상(김정화), 여자같은 남자(유빈)상을 드러냄으로써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성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해도 등장 캐릭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 그리고 시트콤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이러한 캐릭터화의 성공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의 유치함을 비판하는 건 시트콤이라는 형식적 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관점이다.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캐릭터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의도하고 있느냐 하는 부분인 것이다.

단언하건대 뉴논스톱의 캐릭터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는 '개인주의'이다. 자세히 살펴 보면 등장 인물들의 행동의 제1원칙은 자신의 욕구 해소이다. 본래 시트콤 캐릭터들의 생명력이 과도한 욕구를 잘 표현하느냐에 달려있기는 하다. 하지만 뉴논스톱의 경우 항상 문제의 틀이 개인의 영역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할 일이다.

나는 이러한 경향이 현재의 개인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보지만 또한 이러한 개인주의를 암묵적으로 긍정하는 분위기가 그 배후에 숨어있다고 본다. 즉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원자화된 인간상들을 대학 내에서부터 양성하기 위한 음모가 아닐까 하는 오버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현재 대학이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거창한 학생운동의 틀은 제쳐놓고라도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는 모임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대학이 '삼성 사관학교', 'SK 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가 아닐까?


현실을 이야기하자!

유감스럽게도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인기몰이를 한 '겨울연가'를 한번 보고 전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아마 절박한 대학 4학년생의 메마른 감성이 빚어낸 결과이리라. 내가 처한 현실의 고민과 드라마 속의 고민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그 드라마를 비판하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의 고민을 가진, 토익 점수가 안 나와 고민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자신의 종교관으로 군대문제를 고민하는, 무엇이 옳은 것일까 친구들끼리 모여서 고민하는... 이런 사람들을 TV앞에서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갑자기 이런 모습들을 TV로 보는 것은 현실의 괴로움을 자극할 수도 있기에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 나의 현실, 사회, 이 세 꼭지점들을 연결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TV에서 위와 같은 담론(다큐멘터리, 드라마, 뉴스, 어떠한 영역에서든)들을 소화하는 것은 분명 몸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나는 이제 오랫동안 동거해온 TV와 화해하고 싶은 것이다.


- 덧붙이며
2002년 3월경인가 zime(http://zime.fbc.or.kr)에 실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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