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1단계 퀴즈: 5지선다형 및 단답형 문제

 

I. 1단계 문제: 5지선다형 및 단답형 문제(총 10점)



1. 지난 해 10월 9일 타계한 철학자와 관계가 없는 항목을 고르세요(^^*).


① 주요 저작으로는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조종],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등이 있다.

② 그는 1981년 체코슬로바키아 재야운동을 도와주다가 체코 당국으로부터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미테랑 대통령 등의 도움으로 석방되기도 했다.

③ 그는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전총리의 현재 부인이기도 한 철학자 실뱅 아가친스키와의 사이에 혼인외 출생자를 두기도 했다.

④ 그가 태어난 곳은 현재의 가봉공화국이다.

⑤ 그의 철학은 주로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 힌트: 너무 어렵다고(ㅋ)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의 마이페이퍼 중 [단상들] 항목을 참조하세요.^-^



2. 스피노자와 관계가 없는 것은 무엇인가?


①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생했다.

②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③ 어머니가 고려인이라는 설이 있다.

④ 주요 저작으로는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신학정치론], [윤리학](또는 [에티카]라고도 함) 등이 있다.

⑤ 그는 당대 네덜란드 공화파의 지도자였던 드 비트 형제와 교분을 맺고 있었다.



3. 다음 작가와 작품 연결이 잘못된 것을 있는 대로 고른다면?(윽, 너무 쉽잖아~~~ )


① 괴테 → [친화력]

② 에리히 캐스트너 → [하늘을 나는 교실]

③ E.T.A. 호프만 → [모래사나이]

④ 소포클레스 → [아가멤논]

⑤ 장 라신 → [오라스]


4. 철학자와 저서의 연결이 잘못된 것을 있는 대로 고른다면?(이것도 너무 쉬워 ... )


① 칸트 → [순수이성비판]

② 베르그손 → [창조적 진화]

③ 데카르트 → [팡세]

④ 주희 → [근사록]

⑤ 들뢰즈 → [차이와 반복]



5. 제 서재 이름인 ‘하늘 받든 곳’의 뜻은 무엇일까요?

 

호호호, 한편으로는 너무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아리송한 문제지요. 특히 지방에 계신 분들에게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ㆍ래ㆍ서, 지방에 계신 분들에게만(!) 결정적인 힌트를 드립니다!!! 지방에 계신 분들은 저에게 [주인장에게만 보이기]로 질문해 주시면 힌트를 드릴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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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922
숫자가 재미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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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 월계동

월계라는 동명은 밤에 높은 곳에서 월계동 지역을 내려다 보니 맑은 시냇물에 말이 비치고 중량천과 우이천으로 둘러쌓인 모양이 마치 반달모양 이므로 달월(月)에 시내계(溪)자를 붙여 월계동이라 하였다.

녹천(鹿川)

녹촌은 녹천(鹿川)이라고도 하는데 월계동 근방의 야산 사이의 계곡들이 월계동 767번지 근방에서 하나로 합쳐지는데 이 모습이 마치 사슴머리에 난 뿔 같다하여 녹촌이라 불렀다.

연촌(硯村)

연촌은 월계동 513, 534번지 일대를 말하는데 132번지 일대에 연못이 있어서 전체적인 모양이 벼루같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벼루말, 안골이라고도 부른다.

능골

능골은 월계동 760 ~ 780번지 일대를 말하며 능리·능안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산55번지에 이명의 신도비가 있고 750번지에 그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 공릉동

공릉동은 경기도 영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에는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고 그안에 능골이라는 큰 마을이 두개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릉동으로 정하였다가 공릉리 주민들의 반대로 동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두 마을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자연부락인 공덕리의(孔)자와 태릉의(陵)자를 따서 공릉동이라 하였다.

 

범다미마을

범다미 마을은 육군사관학교 정문앞 일대를 말하는데 이 일대에 기르던 말을 호랑이가 물어가서 학교 뒷편 골짜기에서 잡아 먹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시울

무시울은 공릉동 172번지 일대를 말하는데 무수울, 모시울, 무수동으로도 부르는데 무당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중계동(산104번지)지역에 있는 무시울과도 혼동이 되는데 공릉동 무시울이 훨씬 오래되었다.

비실골

비실골은 서울여자대학교 근방을 말하는데 태·강릉이 있어 이곳에 하마비(夏馬碑)가 세워져 있어 붙여졌으며 비선골, 비스리골 이라고도 한다.


◆ 상계동

상계동은 원터, 간촌, 당고개, 온숫골, 갈월, 샛말등의 마을이 한천(漢川)의 윗쪽에 위치하여 윗상(上)자에 시내계(溪)자를 붙여 지어진 것이다. 상계동을 둘러싸고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은 서울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의 덕릉고개 일대는 전망이 아름답다. 수락산의 지명은 옛날에 사냥꾼이 산속에서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그 후로 바람이 불때마다 "수락아 수락아" 하는 소리가 들려 수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원터

원터, 혹은 원기둥은 이곳에 옛 역과 원(院)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수동

온수동은 보람APT, 주공14단지 주변일대를 말하는데 이곳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갈울

갈울은 갈바다 또는 칡바다라고도 하며 칡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운동

상계동 1240번지 일대를 말하며 바위가 곳곳에 허옇게 드러나 수락산의 절경이 골짜기의 계곡과 어우러져 마치 흰구름이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재울

장재울은 의정부시화 경계지역을 말하며 학문의 거장이면서 인품됨이 관후장사(寬厚長子)한 서계 박세당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고개

상계동 111번지,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이 있는 곳으로 원래 미륵당이 있어 당현(堂峴)으로 부르던 곳으로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돌멩이를 쌓아올리고 기도를 하는 성황당으로 변하면서 당고개로 변하였다.

.
◆ 중계동

중계동은 한천의 중간에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의 일부지역으로써 납대동, 광석리, 은행리, 전주리, 오목리, 양재동이었다. 1911년에는 양주군 노원면 광석리로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으로 하면서 노해면 중계리로 하였다.
 

납대울

납대동이라고도 하여 조정에 바치는 조공을 모아 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석마을

광석동, 광석골이라고도 하며 이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개울에 석영질과 동(銅)성분이 많은 돌이 있는데 해가 뜰 때 돌에서 광채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시울

무수동이라고도 하며 산104번지 일대를 말한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앞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하계동

하계동은 한천의 제일 아래쪽에에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가좌동 용동리, 상곡, 상곡리, 오목리, 양재동, 공덕동의 각 일부가 해당되었는데 1911년에는 양주군 노원면 용동리로 되었고 1914년 4월 1일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하계리로 되었다.

 

가재울

가재울은 하계동 12번지 일대를 말하며 하천이 깨끗해서 가재가 많이 잡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졌으며 가좌동, 가재동, 개잘리 등으로 불렸다.

상곡

경춘선철도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읏골, 웃골 또는 하겟굴이라고도 한다. 마을위에 골짜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용동

되룡골 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살던 미꾸라지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봉구

◆ 쌍문동(雙門洞)

조선시대 계성동, 쇠죽골, 해등천 등 자연부락이 합쳐져 쌍문동으로 형성된 곳으로, 동이름의 유래는 쌍문동에 살고 있던 계성과 그 부인이 이름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부모가 살아계실 때 정성껏 모시지 못했다고 후회하면서 부모의 묘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해 살다가 죽자, 마을사람들이 그 아들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그의 묘 근처에 효자문 2개를 세워서 쌍문이라 하였다.

  • 변천사 : 경기도 양주목(->한성부 양주군 -> 경기도 양주군)해등촌면 -> 경기도 양주목(해등촌면 소사리 -> 노해면 쌍문리) -> 성북구 쌍문리 -> 도봉구 쌍문동

◆ 방학동(放鶴洞)

종래 해등촌면의 방학굴과 도당말, 원당리를 합하여 방학굴(방아골)의 유사음을 따서 방학리라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동이름은 도봉동에 있는 도봉서원의 창건과 관련이 있는데, 조선조의 왕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앉아 중다리 (지금의 도봉폐차장)를 내려다 보니 학이 평화스럽게 많이 앉아 놀므로 이곳을 방학굴(골)이라 하였다는 것과 또,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방학이라 하였다.

  • 변천사 : 경기도 양주목(-> 한성부 양주군 ->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 경기도 양주목(해등촌면 임회리 -> 노해면 방학리) -> 성북구 방학리 -> 도봉구 방학동
  • 원당천 ------- 방학동 547번지
    수량이 풍부하여 수 백년 동안 마을의 식수로 이용된 우물로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어 붙는 일이 없으며 마을 이름을 본따 원당천으로 부르게 되었음

◆ 창동(倉洞)

동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양곡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창동초등 학교 옆 공터에 오랜 옛날부터 창동리라는 돌로 제작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던 것을 95.9.1 창5동사무소 옆으로 옮겨 세웠으며, 조선시대 창동의 자연부락을 살펴보면 창골을 비롯하여 유만.말미.모랫말 등이 있었으며, 이들이 합쳐져 현재의 창동이 되었다 한다.

  • 변천사 : 경기도 양주목( -> 한성부 양주군 -> 경기도 양주군) 해동촌면 -> 경기도 양주목(해등촌면 창동리 -> 노해면 창동리) -> 성북구 창동리 -> 도봉구 창동
  • 초안산 ---------- 창동 산 192번지 일대
    낮으막한 야산으로 조선시대 내시들의 무덤이 100기 정도 있었으나 돌보는 후손이 없어 봉분에 나무가 자라고, 비문.상석 등이 버려진 상태로, 이곳에 내시들의 무덤들이 모여있는 이유는 알 수 없음.

◆ 도봉동(道峰洞)

도봉동은 마을이 서울근교의 명산인 도봉산 이래에 있어서 얻어진 이름으로 일제가 1914.4. 우리나라의 부.군.현을 없애고 합치면서 도봉산 아래의 다락원.서원말. 무수울 등 마을을 합하여 도봉리라 하여 도봉이라는 마을이름이 시작되었다.

  • 변천사 : 경기도 양주목( -> 한성부 양주군 ->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 경기도 양주목(해등촌면 상누원리 -> 노해면 도봉리) -> 성북구 도봉리 -> 도봉구 도봉동
  • 누원점 ----------- 도봉1동 340번지 일대
    북쪽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곡식과 옷감등을 나르는 길목으로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물건을 사고 팔거나 상인들과 연결이 쉬워 상인들의 중심활동 지역이었음.

》강북구

미아동(彌阿洞)

미아동이란 이름은 조선말 고종 2년(1865)에 편찬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미아리계라고 공식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그 유래는 획실하지 않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되너미고개(돈암현)을 일명 미아리고개라고 부르는 까닭에 고개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미아 7동에 있는 불당(佛當)골에서 미아사(彌阿寺)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여하간 미아리라는 한자 뜻 그대로 언덕에서 쉬어간다는 마을 이름인 만큼 동명과 고개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 수유동(水踰洞)

수유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동부에 속했으며, 그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수성책자 [도성삼군분계총록]에 동부 숭신방(성외) 가오리계, 수유촌계, 우이계로 되어 어영청 전영에 소속되어 도성방어에 일익이 되기도 하였다.

수유동명의 유래는 북한산 골짜기에서 물이 이 마을로 넘쳤기 때문에 물 수(水)자와 넘칠 유(踰)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 빨래골

수유동 486번지 일대의 이곳은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고 부르게되었다.

물이 많아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쉼터와 빨래터로 이용되었고, 당시 대궐의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라는 명팅이 유래되었으며 지금도 널리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지명이다.

◆ 번 동(樊洞)

번동이라는 이름은 18세기 중엽 정선 그린[도성대지도]와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 벌리(罰里)로 표시되어 왔으며 갑오개혁때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번리로 되어 있다.

이때 벌리(伐里)가 번리(樊里)로 바뀐 것 같다. 번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를 살펴 보면 고려 시대에 씌여진 [운관비기]라는 책에 "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기설이 있어,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이 설에 의거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李)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李氏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는데 이로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칭하다가 번리(樊里)기 되었다고 한다.

◆ 우이동(牛耳洞)

우이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는 동리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소 귀 같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으므로 소귀봉 즉 우이봉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진다.

우이동은 도성에서 꽤 먼 거리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서울의 성외 지역의 한 마을로 되어 있었으며, 고종 4년(1867)에 발간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우이동계가 있었고 또 갑오개혁 당시에 문서에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에 우이리가 있다.

◆ 가오리(加五里)

가오리는 현재 수유동 우이초등학교 등이 있는 곳으로 옛날 미아리 고개에서 장사를 지내는 소리가 임금에게까지 들리자 번잡스러우니 오리(五里)를 더 가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북구

◆ 성북동

혜화동고개에 위치해 있던 도성 4소문의 하나인 혜화문을 나서면 성밖이 되는데 바로 왼쪽일대의 계곡에 있는 마을이 성북동이다. 이곳만이 성의 북쪽을 의미하는 성북동이란 지명을 갖게 된 것은 이 지역의 산수가 매우 아름답고 조선시대의 도성수비를 위한 어영청을 북쪽에 두었기 때문이다. 성북동은 당시 비록 성밖에 있었으나 한성부에 속해 동부 숭신방 동소문외계 성북동이라고 불리우던 곳으로 많은 도성인들이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하는데 이 마을에는 복숭아, 앵두가 많아 홍도동, 도화동, 복사동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해진다.
 

◆ 동소문동

서울의 4소문의 하나인 동소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동명이다. 동소문이란 혜화문의 속칭으로 조선말 19세기에도 동소문외계라는 동명이 있었다. 그러나 갑오개혁때 기록을 보면 이동의 일대는 한성부에 속해 동서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라 칭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명칭도 오래 계속되지 못했는데 1911년 일제는 한성부를 격하시켜 경기도 산하 경성부로 칭하여 이곳도 경기도 고양군 숭신면에 소속되기도 하였으나 1936년에 다시 경성부의 확장으로 경기도에서 경성부로 재복귀 편입되었다. 광복후 1949년 8월 15일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이 지역은 돈암동으로 불리워졌다.

 

삼선동

혜화문밖의 평평한 들판인 三仙坪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늘날의 동소문동, 동선동, 삼선동 일대를 말한다. 원래 삼선평이란 이름은 삼선동 남쪽의 옥녀봉에서 하늘에 내려온 세 신선이 옥녀와 더불어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전해지는데 삼선이란 지명으로 보아 통일신라때 화랑도를 국선도라 칭하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화랑들이 심신단련한 곳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돈암동

돈암동은 동소문밖에서 미아리고개까지 그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그 구역은 매우 넓었다. 그러나 현재는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고지대 지역만 돈암동으로 되어있다. 돈암동의 명칭은 되너미고개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고개는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병자호란시 오랑캐 즉 되놈이 서울을 침입할 때 이 고개를 넘어왔다하여 되너미재, 되너미고개 狄踰嶺이라 칭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옮기어 돈암현이 된 것이다. 이 돈암현은 돈암동명의 유래가 되었는데  그때의  돈암현은 현재 미아리고개로 불리워지고 있다.

 

◆ 동선동

미아리고개로 잘 알려진 오르막길을 중심으로 양편에 있는 마을로 동선동의 동명은 인접해 있는 동소문동과 삼선동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따서 이루어진 것이다.

 

안암동

서울의 동명중 가장 오래된 동명 가운데 하나인 안암동은 조선초기 태조5년 서울의 5부 방명을 정하기전 부터였다는데 흥미를 끄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암이라는 동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문헌상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안암동 3가에 있는 대광 아파트단지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 20여명이 앉아 편히 쉴만한 바위 이름이 앉을바위라 하였는데 한자로 安岩으로 옮겨쓴 것이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보문동

보문동3가 168번지에 있는 普門寺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보문동은 1949년 8월 대통령령 제 159호로 동대문구에서 성북구를 분리할 때 신설동의 일부지역을 편입하여 설치된 것으로 당시 관내에 있는 보문사의 이름을 따서 그 명칭을 제정한 것이다.

 

정릉동

조선태조 이성계의 둘째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陵인 貞陵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이곳 지명이 사을한리라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말의 살한이를 한자음으로 옮긴 것이다. 이것이 정릉이라는 지명으로 된 것은 아마 현종때에 다시 정릉을 수봉하고 奉祀守護(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지킴)으로 거행한 후 부터라고 생각된다.

 

종암동

고려대학교 뒷산에 종 또는 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하여 한문으로 古岩이라고 부른데서 연유되었다. 고종2년에 편찬된 육전조례에 의하면 종암동은 한성부 동부 숭신방의 종암동계로 되어있었으나 일제때에 잠시 경기도 고양군으로 편입되었다.

 

길음동

길음동은 기리묵골을 한자음으로 고쳐쓴데서 연유한다. 기리묵골은 의정부방면에서 도성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미아리고개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의정부쪽에서 도성쪽으로 넘어오는 이 고개느 경사가 완만하고 또 정릉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골짜기가 길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골짜기가 길게 놓여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는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아주 맑고 고와서 물소리르 들으면 저절로 기분이 맑아지므로 좋은 노래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길음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하월곡동

하월곡동의 유래는 두가지로 전혀 내려온다. 하나는 지금의 월곡3동의 산지형이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월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조선후기 미아삼거리에 신근솔이라는 솔밭이 많아 풍경이 수려했기 때문에 당시 이곳에 주막이 밀집하여 있었는데 소장수들이 지방에서 소를 몰고 서울로 들어올 때는 신근솔에서 숙박하며 이곳에 소를 떼어 놓았다가 장위동주변 도살장에서 소를 팔아넘기도 돌아갔다.  대개 소장수들이 달밤에 도착하여 잔월아침에 흥정을 했기 때문에 월곡이라는 동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 상월곡동

천장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 같다하여 그 산에 연해있는 마을을 다릿굴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되었다. 갑오개혁때는 행정구역 변천으로 한성부 동서인차앙 동소문외계의 월곡상리, 월곡하리로 나누는데 이로써 이웃 다리골인 월곡상리는 상월곡동 지역이 되었다.

 

장위동
이 마을이 조선시대초에도 장위리라고 불리어온 것으로 보아 고려조때 명신(名臣)이 이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하며 마을뒤에 장위산이 있으므로 이 산 이름을 따서 동명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석관동

마을 동쪽에 있는 청장산의 한맥이 검정돌을 꽂아 놓은 즉,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꽂이에 꿰어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이라 부르다가 조선왕조 20대 경종의 능인 의종이 이곳에 안치된 뒤부터 돌곶이에 능자를 붙여 돌곶이능말(마을)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 돌곶이란 이름을 한자로 표기기하여 석관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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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퀴즈 이벤트 한 시간전 ... 다들 준비는 하고 계시죠?^^

퀴즈 이벤트가 드디어 한 시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잘 준비하고 계시죠?? 시간은 좀 걸리는데 쉬운 문제들이니까 모두 다 잘 풀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한 시간 후에 뵐게요.^^ (뭐야, 아무 내용도 없는 이런 페이퍼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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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5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6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 택배 올것이 없었는데 택배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전북 익산이라는 말에 더 놀랐고요.

전 서울에 계시는 분인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보내주신 책 정말 잘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신의 책이라 좋아라 합니다,



이책도 읽지 않은 책인데 정말 잘 읽겠습니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오늘은 기분이 너무 너무 좋은 날입니다.

이은혜를 어찌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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