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작은 책방의 먼지와 햇빛이 구워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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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ㅣ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절판
전에 아영엄마님의 리뷰를 읽고 사두었던 책인데, 며칠 전 조선인님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들었던 책이라 쓰신 걸 보고, 설에 조카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선물하기 전에 나도 읽어야지, 하고 이틀 동안 읽었다. 아, 전에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서 무철이와 희야가 이야기하던 동화 "보리와 임금님"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구나.
책머리의 "작은 책방 이야기"는 지은이 엘리너 파전(1881~1965)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먼지 가득한 "책방"을 소개한 글이다. 집안의 서재와 심지어 식당에까지 그 방에 어울리는 책들이 가득 정돈되어 있었지만, 청소 한번 하지 않은 채 온갖 책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던 그 작은 책방에서 지은이는 꿈과 마법과 환상과 진실을 만나, 이 책에 실린 여덟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여덟 편 모두 재미있고, 마음에 울림이 남아 후딱후딱 읽고 넘기기 아까웠다. 한 편 한 편,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그림, 에드워드 아디존(1900~1979)이라는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이 좋아서 여기 사진을 찍어둔다. 책더미를 배경으로 책에 코 박고 있는 여자 아이 그림, 참 좋다.
전에 옆지기가 가을, 익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들판을 실제로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없다. -.- 옆지기는, 들판 가득 바람에 출렁이는 누런 벼이삭을 보면 정말 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보리와 임금님"은 본 적도 없는 그 풍경이 그리워지는 이야기다.
이 그림도 좋다. 하늘의 달을 따고 싶어 궁전에서 가장 높은 굴뚝에 매달려 우는 공주.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교과서에도 달이 가지고 싶어 병에 걸린 공주 이야기가 나왔다. 희곡으로 된 이야기였던 듯싶다. 그 이야기보다 훨씬 기발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왜 이 나라에선 요리는 모두 여자가 할까? 남자들은 배가 고파도 음식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의 그림 중 가장 좋은 것 세 개를 꼽으라면 "작은 책방" 그림과 "달을 갖고 싶어하는 공주님" 그림, 그리고 이 "꼬마 케이트" 그림을 꼽겠다. 다락방 창문 멀리 들판과 골짜기와 언덕배기의 숲을 바라보는 케이트. 아무도 하지 않은, 작은 모험을 시작한 케이트.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무조건 금기시하고 위험하다 하는 건, 사실은 아주 아름다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걸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작고 상냥한 아가씨.
"서쪽 숲 나라"에서도 비슷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일곱 번째 공주님"까지 보고 나면, 지은이는 여자에게 부과된 인습의 굴레가 갑갑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금붕어"는 참 재미있고 기막힌 이야기인데, 글쎄, 넓디넓은 바다에서 스스로 작은 세계에 갇혀 버린 금붕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길고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일벌레 나라 사람들과 북쪽의 얼음 나라, 남쪽의 더운 나라, 동쪽의 난폭한 진흙 나라는 서로 교류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럼 임금님의 어머니는 어느 나라 공주였을까? 그림에 나오는 임금님의 시가 참 재미있고 아름답다. ^^
"일곱 번째 공주님"을 읽고 참 유쾌했지만, 한편으로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 하고 간단히 이야기해버리는 건, 닫힌 구조를 그냥 인정하는 듯해서 조금 찜찜했다. 아니,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다는 뜻일까?
그럼 수잔은 어떻게 살았을까. 가슴이 짠해지면서 궁금증이 생긴다. 어린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