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월요일
이른 아침이라기 보다 월욜 이라서 아이들 아빠 일찍 보내야 하는 부담감도 있고 일욜밤 일찍 잠든 탓에 새벽 두시에 일어나 더 이상 잠들지 못하고 알라딘만 서성거리고 다녔었다. 쌓인 적립금으로 어떤 책을 사볼까 하고..
새벽 다섯시 반에 아이들 아빠 출근하고 아이들 깨워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려 밥먹이고 있는데 소라가 핸폰울리는 소리에 켜서 그런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신가봐요.." 그 때가 아침 7시 42분었다.
지현이가 보낸 핸폰 문자는 의사선생님이 오늘밤 넘기시기 힘드시겠다고 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믿어지지 않고 뜨거운 눈물만 흘러 나온다. 다시 동생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니 아침 회진의사선생님 말씀이 그런단다..그러면서 자기도 서둘러 내려가려는 중이란다.
아이들 아빠에게 연락을 하니 저녁에 찾아뵙자고 한다..소라 아빠도 저번처럼 다시 회복하실줄 알았던가 보다.. 난 저녁넘기시기 힘드시다는데 저녁은 무슨 저녁이냐고 투정을 부린다음 혼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불안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다.
어제 사온 화초들을 옮기며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내 주여,,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무래도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 하고 있는 언니랑 통화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숨이 막힐 것 같다..
언니는 그런다..아직 연락 못 받았느냐고...아빠 돌아가셨어..하며 흐느끼는데 가슴이 무너진다는게 이런거구나 싶다..
4월 16일 아침 8시 22분에 천국으로 향하신 내 아버지..뭐가 그리도 급하셨답니까..회진하는 의사가 가족들에게 연락하라고 한지 삼사십분 도 안된 시간에 그리도 급하게 가시다니요..
임종을 지킨 두 언니랑 엄마 ..그 와중에 엄마는 편안하게 주무시더란다..세상에..평소에는 엄마를 그리도 힘겹게 하시더니만 가실땐 그리 인사 한마디 없이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이 가셨다니..언니의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정신도 멀쩡하셨다는데 가실때도 그렇게 편안하게 가셨다고 하니 임종을 못뵌 우리들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두 언니는 아버지께 언제나 각별하시더니 임종을 지킨걸 보면 효녀들인것은 확실하다.그 많은 딸들중에 한명도 마지막 가시는길 배웅을 못해 드렸더라면 얼마나 한이 되었을텐데..두 언니가 지켜 드렸다니 천만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주일정도의 짧디 짧은 신호만을 알린채 천국문을 향해 가셔버렸다.지금도 믿어지지 않지만 가셨다.
위독하셨다가도 다시 회복하시길 두번이나 그러셨기에 곧 회복하실줄 알았다지만 서둘러 천국문 향해 가시는 발걸음을 붙잡고 또 붙잡아도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아주 편안하게 그렇게 가셨다.
차마 더 붙잡지 못한 우리들은 그저 아쉽고 또 아쉬운 맘뿐이다.
서둘러 가족들이 모두 모인시간은 저녁시간이었다..소라 아빠도 서울에서 다시 내려와 원주에서 만나내려가는데 부들 부들 떨리고 추웠다..
휴게소 한군대를 들러 라면이라도 먹고 가자는데 춥기만 하고 입이 벌려지지 않았다.
해남까지 가는 시간은 다섯시간이 걸렸다. 다른날은 보통 일곱시간을 걸려 가는길었기에 엄청나게 빠른시간에 도착하였건만 참으로 길게만 느껴진 시간이었다...언니들에게 아버지 가시던 길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감사한 맘과 홀로 남겨진 엄마를 보니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그리고 조금있으니 큰언니네가 오고 둘째언니네가 왔다 조카들과 조카며느리도 함께 왔다. 정말 이쁘고 고마운 조카들이다.
우리집 하나밖에 없는 내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의 하나뿐인 며느리..그리 이뻐하시더니 어찌 두고 가셨는지...손님들이 몰려오고 정신이 없이 저녁을 넘겼다.
그 와중에도 잠이 오다니..한숨 자고 일어나니 목이 너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