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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언을 한 것 같다.

 

난 이상하게도 못된 버릇이 있다.

 

상대방을 쿡쿡 찔러보려는 나쁘고 못된 버릇 말이다.

 

상대방의 핵심을 쿡쿡 찔려보는 게 왠지 모를 <희열>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는 일단 입을 굳게 다문다. 입술을 깨문다. 침묵한다. 머뭇거린다. 말을 아끼고 2초의 정적이 흐른다.

 

그게 상대방의 핵인지 핵심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런 같잖은 실언으로 상대방에게 상처와 부담감을 안겨주지 않았나.하는 것이 이 대화의 본질이고 출발점인 것이다.

 

오늘도 상대에게 직설적으로 내가 한 번, 두 번 주시하고 미리 앞서 예단하고 섣부른 판단만으로 상대방의 핵을 쿡쿡 찔러보았던 것이다.

 

 

순간, 아. 또 실언을 했구나. 내가 왜 시궁창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거지라고 좌절했다.

 

근데 돌아보니, 그런 경험은 실제로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주 가끔이다. 그런 경우는 내가 상대방에게 호감과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고 나아가 관계를 발전시킬려고 조금 스무스하게 대화를 풀어나가려는 일종의 나만의 제스처인 셈이다.

 

명절 풍경 들이 자연스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들은 상처를 타인에게 배려나 존중없이 손쉽게 아무렇지않게 줄려고 하면서

자신은 (이기적으로)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자신을 무수한 말들로 감싸고 자신을 보호 아닌 보호를 한다.

 

그건 아주 이율배반 적이고 모순된 행위의 전형이다. 

 

 

이런 불편한 관계 맺음의 경험치가 쌓여간다.

 

가볍게 대하고 다루면 안 된다.

 

내가 상대에게 선의든 악의든 상처를 주면,

그 상처가 언젠가는 나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오는 법이다.

 

나는 그걸 확신하고 분명한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해봤다.

 

교훈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최우선적으로 <직업>에 대해서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면 <생존>에 대해서 <밥벌이>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오고 그걸 자신만의 임의적으로 재단하고 판단이나 결론이 들어오면 거부감을 느끼고 부담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가장 깊숙이 대지에, 비옥한 땅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믿음이나 신념이 자신만의 바운더리에 누군가 돌멩이를 내던지면 뛰는 개구리도 죽게 마련인 것이 인지상정이다.

 

 

 

 

겨우 한마디 실언에 대한 반응에 내가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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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수첩을 만들고 있다.

꿈의 갯수를 13가지 정도 적었다.

 

겨우 이것 밖에 안 되나?.하고 화들짝 놀랐고 창피했다.

 

내가 너무나 욕심이 없는 건가?하고 물었다.

 

갯수가 중요한 거 보다는 질이 더 중요한 거지라고 다짐했다.

 

꿈 보다 더 크고 큰 <비전>을 가진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앞으로 꿈과 <비전>이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기려고 한다.

 

꿈의 갯수가 50개를 넘어서 100개에 도달하면 좋겠다.

 

 

 

 

 

꿈 부자가 되는 거다.

 

시간 부자가 되는 거다.

 

사랑 부자가 되는 거다.

 

행복 부자가 되는 거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설레이고 충만하고 흥분되고 행복한 기운으로 넘쳐날 것 같다. 매일매일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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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쇼핑을 자제하려고 한다. 줄줄 새는 돈의 줄기. 돈의 흐름. 을 파악했다.

 

그래서

첫 번째. 실천으로,

한 달에 한 번 열심히 생활했다면

한 달을 옳게 올바르게 버텼다면

한 달을 정직하게 바르게 살았다면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하기로 했다.

 

줄줄줄 흐르는 돈의 흐름도 막고

동기부여 //// 의미부여도 되고 

왠지 기부니도 좋아지고

궁극적으로 <선물>이 <선물>의 의미가 의미를 더해서 가치(값어치. 액면 그대로의 가격을 뛰어넘는 무형의 가치가 더해지는 셈이다.)를 다르게 부르게 된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선물>하기.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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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고 싶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시>가 쓰여지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다.

 

조급함부터 앞선다. 

 

그래서 모두 내려놓고 조용히 <시> 수첩을 꺼내든다.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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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노력했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인 것 같다.

 

근데 누군가 그런다. '최선' 과 '노력'은 아주 손쉬운 자신에 대한 하나의 변명거리와 핑계거리 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자기 방어 기제가 발동해서 하는 아주 손쉬운 자기 합리화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아주 직설적으로 그리고 잔인하게 자문자답 해보고 있다

 

 

 

 

"너는 최선과 노력의 <<임계점>> 까지 가 보았느냐고? "

 

"한계를 설정하거나 설정하지 않고 한계를 경험하고 그걸 깨부술려고 노력다운 노력은 해보았는지?"

 

"너는 크리티컬 매스를 경험해보지 않았잖아? 그것이 바로 너가 아직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는 방증이요 증거잖아."

 

"높은 산을 오르고 오르고 있어. 정상이 보인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지? 그리고 너는 미친듯이 미친듯이 달려든 적이 있어? 아직 없잖아? 그건 너가 노력을 안 하고 있고 최선을 다했다고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아주 이유 중의 이유야."

 

조정래 선생님이 하신 유명한 명언(조언)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 노력했다는 말은 진정으로 자신을 감동시킬 만큼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들였을 때) 하는 거라고."

 

가끔 스포츠 스타들이 올림픽에서 제일 높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때 그리고 대회에서 우승을 했을 때 자연스럽게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릴 때, 우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동시에 짜리한 백만볼트짜리 전기(전율)를 맛보는 것일 터이다. 

 

아리고 아픈 과정과 고통과 좌절의 시간은 길고 길다. 반면에 성공과 환희와 감동의 순간은 너무다 짧고 또 짧다. (그것이 삶의 방정식이 아닐까.)

 

아주 흔한 예로 우리가 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 몇 시간의 시간을 견디고 견디고 오른 과정을 묵묵히 견디고 견디며 산에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에 산에 정상에 오르게 되면 그 환희와 기쁨은 아주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여러모로 마음이 급하다.

 

나에게 진지하게 충고한다. 함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 <최선>을 다했다." "<노력>했다. 지금도 <노력>히고 있다."라는 자기 합리화 / 변명이나 핑계거리를 내뱉지 말지어다.

 

누군가가 너에게 "너, 요즘 뭐해?" "너 그래 갖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라고" (악의없는) 질문으르 들어도 그때는 차라리 침묵을 (선택)해라. 내면으로도 <최선> 과 <노력>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떠올리거나 사용하지 마라.

 

<최선> 과 <노력> 이라는 단어는 너가 정상에 마침내 올랐을 때,

너 자신을 포함해서 너의 주변인 모두들이 인정하고 평가해 줄 때 하는 것이라고. 

 

 

한계의 끝까지 가려고 몸의 자세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임계점>>까지 자신의 몸을 던진다는 자세로

 

 

 

 

모든 걸 남김없이 한 줌이 에너지도 남기지 않고 쏟아붓는다는 자세로 자신을 밀어부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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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Dream) 수첩을 샀다.

 

 

꿈이 적으면 어떡하지.

꿈이 생생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꿈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꿈을 넘어서 비전이 아직 설정되어 있지 않다면 어떡하지. 라는 의문 부호들이 생성되고 있다.

 

 

 

 

 

 

 

 

꿈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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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다고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진지하다고 손가락 질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근데 살아보니 그 진지함(사유한다라고 칭하고 싶다)이라는 덕목은

참으로 고귀하고 어쩌면 모든 것들의 시작점이자 출발점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20~30 대는 거의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던 기억밖에 없다.

 

근데 

그 고통들이 나를 생각하는 사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

나아가 사유하고 사색하는 사람으로 탈바꿈 (변모)시킨 것이었다.

 

이제는 습관으로 굳어져버려서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무슨 업무으 처리하면 불안감 부터 엄습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예민한 촉수 와 촉이라는 것도 길렀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났다고 성공만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한마디로 실패에 대한 맷집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액면 그대로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않고 두러움의 뒷면(=기회=)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계랑하고 측정해서 <성공>으로 매도하는 통념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평균적인 삶이나 일상이 성공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도 잘라내야 하는 통념인 것이다. 진짜배기 진짜라고 칭할 수 있는 <성공>은 아마도 상위 0.01%의 범위에 들었을 때 바로 <성공>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근데 이 대목에서 <성공>을 돈으로 측량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바로 상위 0.01%라고 못 박는 건 모순이지 않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건 나의 기준이나 수준이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품고 있고 생각하는 바에게 살아가고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이 지금껏 건설하고 이룩해놓은 사회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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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원격 근무>는 시작됐다.

 

이미 <원격 근무>는 시작됐다.

 

이미 <원격 근무>는 시작됐다.

 

이미 <원격 근무>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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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시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그냥 1시간(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을 흘려보내는데 너무나 억울하고 크게 빚지는 기분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흐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또렷이 들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전긍긍 했다.

 

지금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나의 평소 일상 생활에서 거의 새나가고 있는 시간 들을 꼼꼼이 빈틈없이 파악할려고 노력 중이다.

 

그 첫 걸음마가 <<적기>> <<관찰 일기>>를 빠짐없이 메모하고 기록 중이다.

 

시간의 정복자. 러시아의 류비셰프 까지는 아니지만 그분을 그대로 모방하고 닮아갈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끝으로, 자투리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투리 시간이 대략 하루 24시간 중에서 2시간 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면 책을 몇 페이지, 수 십개의 영어 단어. 간단한 자기계발 등등등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투자(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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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사와 뉴스 등을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최근에는 아예 보지 않을려고 노력하고 아예 보지 않고 있다.

 

그 기사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겪어보니 그 수많은 기사들과 뉴스 들이 일종의 공통된 일관된 특징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윤색되고 가공된 거의 80%~90% 이상 을 차지하는 일반 대중들.을 위한 

다수를 위한 기사를 위한 기사를 (작위적으로) 작성하고 만들어진다는 자체적인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사들 대부분이 그 기사를 읽는 대중들의 욕망들이 투영되고 / 반영된 기사를 위한 기사가 도처에 널브러져 쓰레기처럼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다수를 위해 다수의 관심과 욕망을 위해서 작성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만천하에 드러나는 대중들에게 읽히고 대중들에게 표출되는 기사 들은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 한마디로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기사에 불과했다. 반면에 돈이 되는 투자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그런 가진 자들을 위한 기사들은 은밀히 비밀스럽게 숨어서 그 모습을 쉽게 드러자니 않고 은밀히 꽁꽁꽁꽁 (비밀 아지트에 그 본체를 장막에 드리운 듯) 숨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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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스포츠에 미친듯이 빠져서 모든 스포츠는 빠짐없이 다 챙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이제는 스포츠가 너무 시시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스포츠에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스포츠와 이별했다. 스포츠와 이혼했다. 

 

 

 

 

 

그래도 내년도 평창 동계 올림픽과 러시아 월드컵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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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낀 하루였다.

 

뭐랄까? 살짝 센치하고 살짜기 쓸쓸하고 적당히 외롭고 알맞게 공허하고........

 

일전에도 말했지만 가을은 모든 것이 또렷해지고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계절인 듯 싶다.

 

가을 단풍이 빨갛게 물들고

가을 단감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가을 낙엽들이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뒹굴 거리고

그리고 강렬하게 내려쬐는 가을 햇살이 어느 계절보다 분명하고 쨍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오늘은 거리를 정처없이 걷는데 소리가 유실된 여백의 미가 짙은 <침묵>과 <정적>이 유난히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맞는 <침묵>과 <정적>은 그 존재만큼이나 아주 강한 임팩트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침묵>과 <정적>을 글로써 표현해내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건 글로써 표현하고 전달 할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건 단지 느낄 뿐이고 할 뿐이다.

 

 

 

 

문득, 법정 스님이 기거하셨을 적막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오두막 집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침묵>과 <정적>만이 온전히 나를 감싸고 있고

존재의 유의미를 더 존재답게 가꾸어주고 보살펴주고 돌보아주는 듯 했다.

 

 

 

 

 

 

참으로 호젓한 가을다운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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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 쇼핑. 했다. 처음으로 해외 직구 쇼핑.이란 걸 했다.

 

해외 쇼핑에 물들면 곤란한데.

 

해외 직구 쇼핑이란 신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이다.

 

처음으로 해외 직구 쇼핑을 했으니 이제는 봇물 터지듯 해외 쇼핑을 하겠지.

 

역시나 쇼핑이 체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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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1년을 더 지켜보자고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1년을 더 유예하고 연장시키자는 말인데.

 

제자리걸음을 1년을 더 하라는 말은 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다. 앞으로 1년도 길다. 나는 당장에 이 자리에서 중단하고 싶을 따름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중단하고 나의 걸음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

 

 

 

 

1년을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나는 하루하루 매일매일 고군분투하고 악을 쓰고 기를 쓰고 발악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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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으로 3달 동안 매일 한의원에 침과 부항을 맞으러 가야겠다.

 

고장난 수도꼭지 때문에 오늘도 낭패를 보았다.

 

실수가 반복되고 반성이 결여된 실패가 반복되는 건 분명 바보가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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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장 중요한 글)

 

 

 

 

예쁜 간호사 누나랑 썸 타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착각이 절대 아닙니다. 오늘 그 누나와 미묘하고 짜릿저릿한 전기가 오고 갔습니다. 호감은 그 누나가 더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저의 잘난 혼자만의 착각 아닙니다. 예민하고 예리한 저의 레이더 망에 그녀가 걸려들었습니다. 

 

키는 저가 쥐고 있습니다. 열쇠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패는 제가 쥐고 있습니다.

 

저의 연애 세포가 아직 죽지 않았다니 경이롭고 가슴이 둑흔둑흔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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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페르소나  >>

 

가난한 자들은 기본적으로 <<부끄러움>> 나아가 <<수치심>>을 모르고 사는 집단(사람들)이다.

 

시인 윤동주는 그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부끄러워했다.

 

반복되는 일상.

 

늘어나지 않는 통장 잔고.

 

또 반복되는 소비 패턴.

 

나는 왜 저런 부자가 되지 못하지? 나는 왜 저런 부자처럼 살지 못하고 이렇게 이런 꼴로 매일매일 살아가지?

 

아. 벗어나지 못하고 왜 자꾸만 맴맴 돌지? 왜 나는 돌고돌고 돌아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그에 대한 정답과 최고의 태도는 아마도 이 <<부끄러움>> <<수치심>>을 최우선적으로 느끼는 것이 제일 첫 번째, 첫 걸음일 터이다. (자기반성. 자아성찰. 통념에 대한 용기있는 질문. 상식을 뒤집는 용단있고 깨어있는 의문(부호))

 

 

 

 

 

오늘 자신에게 스스로 잔인하게 직접적으로 자문하고 질문해봐라

 

 

 

 

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지?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겠지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마인  게다.

 

어떻게 돈을 벌지?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지? 어떻게 돈을 굴리지? 어떻게 하면 돈이 질질 줄줄 새나가게 막지?

이런 질문들은 차후에 다음에 해야 할 질문인 것이다. 나중에 해도 상관없는 지금은 쓰잘데기 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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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다툼이 있었다. 고성이 오고 갔고. 작은 언쟁이 있었다. 이건 자존감이 높아서 낮아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인간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평등하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라(=역지사지).정신이 발현되면 모든 부정적인 감정 싸움. 사소한 문제에 대한 집착. 작은 일에 대한 판단 미스. 작고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들에 대해서 집착이 사라지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방향을 제대도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 흔한 시간 낭비도 줄어들고 관계의 효율성도 극대화 된다.

 

삶은 시시하게 보내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짧디 짧다. 나쁜 말. 부정적인 감정 싸움. 내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주의 등등등에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의 그 고착화된 색안경을 벗어던져라. 낮은 자세로 임하라. 인간을 낮은 자세에서 굽어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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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20 의 파레토 법칙을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유레카).

 

알았다고. 발견했다고. 그것이 너의 뇌에 너의 몸에 너의 육체에 탑재되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걸 다음으로 행동으로 옮기는지 오늘을 바꾸어야 말겠다는 의지에 직접적으로 접목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것이다.  

 

 

80 : 20 의 파레토 법칙을 접목시키고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서 움직여라!!!! 두드려라!!!!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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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것 대 효율적인 것.

 

 

 

 

'효과적'이라는 것은 당신의 목표에 가까워지도록 일을 하는 것인 반면, '효율적'이라는 것은 그 일이 중요하건 그렇지 않건 가능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과적인지 아닌지도 고려하지 않은 채 효율적으로만 일하려고 한다.

 

 

 

 

 

 

(중략)

 

 

 

 

 

 

여기서는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자명한 이치가 있다.

 

1.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한다고 해서 그 일이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2.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말을 기억하라.

"무엇을 하느냐가 어떻게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효율성도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적절한' 일에 적용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자, '적절한' 일을 찾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 볼까.

 

 

 

 

 

(밑줄_ 티모시(팀) 페리스. <4시간> p 96. 97.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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