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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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의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여름을 삼킨 소녀'. 더군다가 '여름을 삼킨 소녀'는 타우누스 시리즈가 아니고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라 시리즈로는 한권밖에 보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그 한 권은 아주 뚜렷이 잘 기억하고 있다. 어디선가 읽었고 기억이 나지 않아  선물로 받은 책을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독일문학이다. 정확하게는 독일 스릴러. 처음에는 지명이나 사람 이름들이 눈에 익지 않아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두번 읽기를 마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 같은 다른 독일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서서히 물들어 갔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독일에서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독일에서 일주일정도 머무르면서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읽혀진 편이다. [오버우어젤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쿠키를 만들러 간다] 글을 보면서 나도 거기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반가웠고 (실제로 동생집이 그곳에 있다) '레베수퍼마켓'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레베 갔었는데 하고 반가와했다. 독일어로 레베라고 읽지만 그냥 스펠링대로 읽으면 영어로는 다른 발음이 나오게 된다. 레베는 그나마 큰 매장이고 다들 일찍 문을 닫는 그곳에서 밤 12시까지 하는 레베 매장을 일부러 구경 가본 적이 있다. 이렇게 직접 생활하던 곳을 책에서 보니 나도 아는데 하면서 신나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사람은 간접적인 경험과 더불어 직접적인 경험도 필요하다는 것인가보다.

 

프란츠의 시리즈에서는 율리아라는 여형사가 나온다면 넬레의 책에서는 피아라는 여형사가 등장한다. 같은 형사이긴 하지만 피아는 율리아보다 조금은 더 능동적이다. 일에 파뭇힌 여자다. 일 때문에 신혼여행 가는 것도 남편 혼자 보내 버린 그런 여자다. 가정보다 일이 더 중요한 그런 여자다. 그럼으로 인해서 독자들은 훨씬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읽을수 있다. 피아를 통해서 직접 사건에 맞부딪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겨냥을 해서 명중시킨 단 한발의 총알. 그 총알로 인해 산책을 하던 할머니 한명이 죽음을 당한다. 경찰이 겨우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아직 용의자도 잡지 못한 시점에 또다른 할머니가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당한다. 경찰은 이제 연쇄살인으로 규정짓고 자신들이 조사를 하는 것보다는 제보를 받기로 결심하고 방송에 이 사건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증거는 없고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여행을 미룬 피아가 합류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와중에 이제는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닌 이십대의 청년이 같은 방법으로 죽는다. 나이 많은 사람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고라는 명칭으로 앞선 두건의 사건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 피해자들이 잘못한 것이 아닌 그들의 가족의 잘못으로 인해서 이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세번재 피살자가 발생하면서 밝혀진 세 사람의 인연은 언뜻 보기에는 '살인마잭의 고백'이라는 책을 생각나게 했다. 비슷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네번째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또 이건 뭐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들 덕분에 넬레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훨씬 더 쉽게 읽어내려 갈수 있었다. 죽은 자의 원을 풀어준다는 이유로 산 자를 처벌하는 단 한명의 사람.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여자는 아니라는 전제하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는 피아 형사. 그리고 그들의 팀. 피아는 요네스뵈의 해리처럼 단독으로 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의 사계절'에 나오는 말린처럼 팀을 꾸려서 이 팀 전체가 하나의 사건에 매달리는 식이다. 그래서 각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사건이 아닌 개인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보는 재미이다. 얇지 않은 이야기가 순식간에 읽힌다. 가독성 하나는 끝내주는 넬레의 이야기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이번기회에 읽어봐야겠다. 백설공주 이후로 순서에 맞춰서 차례대로 읽어본다면 일찍 찾아온 이 더위를 식히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더위에 서늘함을 주는 넬레의 책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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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있어요, 지금도 - 소설처럼 살아야만 멋진 인생인가요
서영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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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내가 과연 잘 살아온 것인지 그렇지 못하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되새겨 볼 기회가 반드시 한번쯤은 있다. 그것은 스물아홉이나 서른아홉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게 되는 때일수도 있고 또는 직장을 바꿔야 할때 또는 인생에서 위기가 왔다고 생각할때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면 여유가 없었거나 아니면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돌아보다가 자신에게 위안을 한다.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라고 말이다. 누구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어떨까. 잘하고 있어, 지금도 라고 말이다. 아마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내가 하는 혼잣말 보다 말이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런 면에서 든든한 친구같은 느낌을 준다. 티아 하우스라는 곳에서 티아 할머니를 만나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티아 할머니는 실제로 할머니일까 아닐까. 그저 모두들에게 그렇게 불리울뿐이다.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 티아할머니. 누구나 여자라면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한번쯤은 입어보고 싶다는 웨딩드레스. 그러 드레스를 만드는 할머니. 왠지 연관성이 없을것 같으면서도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드레스는 아무나 입는 드레스들과는 다를 것 같아서 입어보고 싶은 느낌도 든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라고 했던가. 할머니가 되어도 드레스를 입고 싶은 마음은 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티아하우스는 정확하게는 그런 공간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공간. 하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알고 있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신랑들은 밖에서 초조한 듯이 기다리고 신부들이 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우와 하면서 과도하게 큰 액션을 하면서 반겨줘야 하는, 드레스를 한번 입어보기 위해서 한벌당 가격을 내야 하는 그런 웨딩샵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드레스를 입어보는 공간 및 드레스는 보는 공간도 되지만 그곳은 그보다 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나 또는 결혼을 한 사람들 또는 그앞으로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 아니 결혼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모여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늘어 놓는 그런 공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갑론을박하는 공간도 아니다. 단지 여자들이 모여서 다음번 이야기 할 주제를 누군가 정하고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맛난 것을 만들어 먹고 고민하고 공감하는 그런 공간인것이다.

 

티아할머니가 실제로 할머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티아하우스도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곳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강하게 들었다.  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한장의 사진과 글을 적어 놓은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그곳에서 간다면 나는 어떤 모습의 사진이 찍힐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티아할머니의 노트가 어떤 느낌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파랑의 색으로 쓰여진 할머니의 노트에는 내가 듣고픈, 읽고픈 말들도 가득했다.

 

작가는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라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인생을 이야기할수 있는 자격은 얻은셈이다. 아니 그 자격을 이미 얻었다. 그런 내가 그들과 함께 이야기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까 아니면 어떤 조언을 받을까. 사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울때라 시샘이 나고 질투가 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그들을 본다면 또 너그러이 봐 줄수 있지 않을까. 그래 한창 이쁠때다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니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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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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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미여사님. 그녀의 작품은 어느 누구도 손 댈수 없을만큼 멋집니다. 더불어 내용에 아주 잘 들어맞는 표지가 환상적인 궁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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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에바 2015-05-19 03: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자꾸 자카란다가 키우고 싶어지는 표지다요.
 
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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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랑, 벚꽃말고...라는 노래 말고도 해마다 봄이 되면 들려오는 노래, 벚꽃엔딩. 그만큼 벚꽃은 일본인들 뿐 아니라 한국 사람에게도 인기가 많은 꽃임에는 틀림없는 듯 합니다.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면서 피어나는 벚꽃은 흰색도 아닌 분홍빛도 아닌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색을 띄면서 한꺼번에 확 피어서 그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한 그루씩 따로 있을때보다 여러 그루가 줄지어 나란히 있는 모습이 더욱 이쁜 꽃, 벚꽃, 한번 바람이 불거나 또는 봄을 시샘하는 봄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언제 피었냐싶게 다 져버려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꽃이 벚꽃일지도 모르죠. 즐길수 있는 시간이 짧기에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벚꽃.

 

이 책은 그런 벚꽃이 피는 이른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계절상으로 봄을 그리고도 있지만 제목인 '사쿠라호사라'는 또 다른 의미로 본문에서 다가옵니다. '사쿠라호사라' 한국말로는 제일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인 '벚꽃박죽'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네요. '뒤죽박죽'이라는 단어의 일본식 사투리 표현인 사사라호사라'.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 말의 어감이 너무나 이뻐서, 그리고 '사사라'라는 말이 '사쿠라'라는 벚꽃을 칭하는 단어의 어감과 비슷해서 미리부터 머리속에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벚꽃이 배경이 되는 작품을 쓰겠노라고 말이죠. 자신의 생각 그대로 작가는 벚꽃이 피는 배경으로 이런 아름다우면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네요.

'뒤죽박죽'이라는 의미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것이 섞여 있는 혼란스러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일이 있어 힘들었다는 표현을 그렇게 쓴답니다. 주인공인 쇼노스케가 뒤죽박죽이라는 표현을 쓰자 이제는 그의 짝이 될지도 모를 와카가 대답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엔 '벚꽃박죽'이라고 말이죠. 벚꽃나무 밑에 있는 와카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녀를 찾았고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응원을 얻게 되고 힘을 얻고 또 그럼으로 인해서 인연이 될지도 모를 사람을 만났으니 말입니다.

 

미미여사의 에도이야기를 오랜만에 봅니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는 작품으로 북스피어에서 여러 책의 시리즈가 나온 이후로는 오랜만인듯 합니다. 이번에 비채에서 펴낸 에도시리즈는 이전에 나온 이야기들과 다른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이야기인 '납치'는 감쪽같이 사라진 이웃집 처녀를 찾는 장면이 '미인'이라는 전작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작의 원제가 '천구풍' 일본어로는 텐구카제 이렇게 읽는데 본문에서 천구가 데려가지 않고야 이렇게 감쪽같이 없어질수 없다는 표현이 나오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죠. 미인에서는 실제로 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한편 이 이야기의 중심은 오롯이 사람입니다. 그것도 가족이지요. 같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르지요. 조금 오싹함을 느끼게 되기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억울한 오해를 받고 할복을 해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둔 쇼노스케 . 그는 고향을 떠나서 혼자서 에도에 정착을 하며 무사이긴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을 함으로써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해서 만나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얽힌 이야기들이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지요. 아버지를 닮아서 조금은 마음이 약한 쇼노스케를 어머니는 못마땅해합니다. 그리고 큰 아들을 편애하지요. 분명 같은 아들인데 어머니는 그렇게 차별을 합니다. 부모들도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나 덜 아픈 손가락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먼저 이야기한 '납치'에서도 가족이라는 태두리는 모호하게 걸려있습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아침에 사라져버린 무남독녀. 그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더 잘 알고 있음에 분명할듯한 딸은 아무런 말도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쪽지가 하나 오죠. 당신의 딸을 데리고 있으니 돈을 내 놓으라는. 겁에 질린 어머니는 쇼노스케를 대동하고 나서서 돈을 건네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색이 된 엄마는 다 죽어 갈 지경이지만 그에 비해 같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는 무언가 다른 표정입니다. 나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가족이라는 것이, 부모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아버지의 필적을 흉내내서 서류를 위조한사람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던 쇼노스케는 드디어 모든 일을 해결합니다. 자진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대필자도 찾았고 그것이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은 그렇게 한가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은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었죠. 비록 그 결론이 조금은 가슴 아플지라도 말입니다. '사사라호사라', 뒤죽박죽이었던 쇼노스케의인생이 조금은 평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와카와의 인연도 잘 연결되어 이쁜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쇼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무언가 색다른 일이 또 일어나서 쇼노스케 2탄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수 없네요. 봄의 벚꽃이었으면 가을의 국화로 이어지는 꽃 연작은 어떨까 하고 미리 미미여사님께 연서를 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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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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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시인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요약이나 함축이 많고 그러다보니 자신의 나라 말로 쓰여진 단어들조차도 어색할때가 많은 것이 '시'라는 장르가 아닐까. 요즘은 산문같이 긴 시들도 많이 나오고 편하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로 쓰여진 시들도 많지만 일단 시에 대한 기본적인 감상은 그러하다. 그런데 하물며 다른 나라 말로 쓰여진 시를 번역을 해서 읽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그래도 많은 시들이 번역되고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그런 것을 보면 시라는 장르가 꼭 딱히' 글'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올 읽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이름은 낯설면서도 그렇지 않다. 얼마전 이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 읽어주는 예수'라는 시집에서 언급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편의 시를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두었던 시집, 그 속에서 이 책에서 실려있는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는 시를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더 쉽게 다가갈수 있는 듯 하다. 이 시집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같은 시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해 두었는지 알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번역자 마저도 독특하다. 작가인 신경림의 감수를 거치긴 했지만 번역자가 일본이름이다. 어떻게 일본사람이 한국말로 번역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찾아본다. 한국에서 공부한 일본인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번역자인 요시카와 나기는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가장 양국간의 언어의 입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자유로운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탁월한 번역자의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감수자인 신경림 시인이 말한 것처럼 다니카와 상의 시의 세계는 어느 것 하나로 한정적이지 않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은 잔인하게 느껴지는 시들도 있고 우리나라 시처럼 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들도 있다. 가령 말의 어미를 맞추어서 같은 말이 반복되게 들어간다거나 아니면 한 문장은 다른 말을 쓰면서 같은 말을 하나 건너 반복하는 식이다. [평범한 남자가 있었대/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팔다리] '평범한 남자'(40페이지)는 그렇게 시작하면서 말하는 단어마다 '평범한'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말하고 있다. 이런식이면 나도 이 뒤에 계속 연결해서 쓸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발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시인의 생각인 것이다. 평범하게 끝날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시는 결코 평범하지 않는 맺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남자는 평범한 줄을] 이렇게 시작하는 마지막 3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궁금하다면 직접 시를 찾아볼 일이다.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듯한 전개. 짧은 시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전개를 펼칠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12월 15일'이라는 제목의 시는 [나는 이날에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호적과의 요다씨가 말합니다]라는 지극히 아이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생각지 못한 발상으로 깜짝 놀라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신고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 것을 시로 쓸 생각은 어떻게 했을가.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머리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글들을 잡아두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사소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글'이라는 존재가 바꾸느냐가 평범한 사람들과 시인의 차이가 아닐까. [고마워요 요다씨/ 축하해요 나/누군가 뭔가 줘] 라는 마지막 행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그 나이가 되어도 생일날 무언가 받기를 좋아하는거구나. 그런 생각은 누구나에게 일반적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일수도 있고 이런 말을 자유롭게 펼쳐보이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이 보이는 듯 해서 그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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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은 '자기소개'라는 시에서 좀더 발전된 형식을 띠고 있다.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분명 자신의 소개를 하고 있다. 그것도 짧은 한문장 한문장으로, 그러면서도 함축적인 말들을 포함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를 말하고 마지막 연에서는 [여기에 쓴 것은 다 사실인데 / 이런 식으로 말로 표현하니 왠지 수상하네요] 라는 말로 약간은 수줍음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할 말 다해 놓고 나중에 조금은 몸을 사리는 형식이다. 왠지 시인의 당당함과 약간은 소심함을 동시에 엿볼수 있는 듯 해서 역시나 재미있다. 이 시집의 제목인 '사과에 대한 고집'은 말 그대로 사과다. 표지에도 사과를 큼지막하게 그려놓았다. 왜 사과에 대해서 고집을 부리는지 궁금하면 얇지만 시적인 표현이 풍부하다 못해 넘치고 위트가 속속들이 숨어있는 시인의 고집을 직접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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