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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2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3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1-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뜻 보기엔 서울의 국철 구간 어느 역 주위 풍경같아요.
흐린 하늘까지도.

벳부에 가셨군요.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요.

마노아 2015-01-23 09:44   좋아요 0 | URL
진짜 우리나라 풍경 같아요. `국철`구간 같고요.
생김새도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라 더 그렇게 느껴져요.
후쿠오카-벳부-후쿠오카, 그리고 지금은 서울입니다.^^

하늘바람 2015-01-2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벳부
~
저도 궁금해요

마노아 2015-01-23 09:44   좋아요 0 | URL
어제는 여행지, 오늘은 개학! 지금은 직장입니다. 피곤하네요.(>_<)

하늘바람 2015-01-23 10:45   좋아요 0 | URL
아 벌써 개학인가요?
진짜 피곤하시겠어요

서니데이 2015-01-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지금 여행중이시군요.^^

마노아 2015-01-23 09:45   좋아요 0 | URL
짧디 짧은 2박 3일의 여행이 후다닥 끝났어요.^^

BRINY 2015-01-2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벌써 개학했나요?? 저는 이번 주까지는 방학이네요.

마노아 2015-01-28 00:47   좋아요 0 | URL
저는 지난 주 금요일에 개학했습니다. 딱 3주 간의 방학이었어요...;;;;;;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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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다. 수록된 소설들의 제목 하나를 표제작으로 삼았는데 전체 이야기들이 모두 '신중한 사람'으로 수렴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단점이 있다면, 신중하다 못해 복장 터질 수 있다는 점. 표제작인 신중한 사람의 자평을 들어보자.


신중한 자는 저지르거나 부수거나 걷어차지 못한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46쪽 

맞는 말 같다. 신중한 사람들의 저 설명은 누구에게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들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인공의 신중함이란 과연 마땅한가? 자신이 지어놓은 전원 주택을 해외 근무하는 3년 동안 이웃에게 관리비를 주고 관리를 맡겼는데, 그 이웃이 전세를 놓고는 잠적했다. 전세는 얼마 전에 자동갱신되었고, 집주인은 제 집에 들어와 마음대로 집의 경관을 바꿔놓으며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하루 만원씩, 그것도 한달치 선입금을 한 뒤 다락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집주인 혹은 자본가의 횡포 내지 유세에만 익숙해 있어서인지, 자기 집에서 이렇게 빌붙어(?) 겨우 살아가는 '신중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속에 천불이 일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흥분하는 건 곤란하다. 이렇게 혈압 오르게 만드는 인물들이, 혹은 상황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많.이.


그래서 이상의 '권태'가 떠올랐다. 정말, 읽는 내내 어찌나 지루하던지, 이보다 더 잘 지은 제목은 없을 것이라고, 제목이 책 내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고등학교 때 생각했다. 아마도 단편이었던 것 같은데, 짧은 글인데도 그랬다. 이제 그 지위를 이 책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혹은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작가는 설명에 설명을 계속 보태고 있다. 의도적인 늘여쓰기, 의도적인 중복 설명들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말에 갇힐 것 같은 어지러움!


그는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인가를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고 특이한 일도 아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을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113쪽 <이미, 어디>

결국엔 첫문장 하나를 계속 반복하는 이야기이다. 경제적으로는 말의 낭비가 심하지만, 그걸 문학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어찌 됐든 저 길고 긴 문장들을 다 읽고 나면 강조했던 첫 문장의 의미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의 손톱은 자랄 수가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물어뜯을 손톱이 있는 한 언제나 물어뜯기 때문이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손톱을 물어뜯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손톱을 물어뜯는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물어뜯을 손톱이 남아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는데, 물어뜯을 손톱이 없으면 더 불안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물어뜯을 손톱을 찾는다. 그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어뜯을 손톱이 없어져야 하고 또 있어야 한다. 그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손톱을 물어뜯고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을 제거함으로써 다시 불안을 만들어낸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는 물어뜯을 손톱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하고 있으면 있어서 불안하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지만, 그가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그가 손톱을 물어뜯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손톱을 물어뜯음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만들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불안도 만든다. -120쪽 <이미, 어디>


어떤가? 손톱을 물어뜨는 사람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마저도 불안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맛볼 수 있지 않은가. 하아, 책에 무슨 영기가 서려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어디에도 없는>이었다. 그가 걸어온 답답한 인생 행보에 대한 성토는 둘째 치고, 그를 덮어놓고 의심하는 여관주인을 납득시키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했던 그의 막연한 기다림, 그리고 이어지는 불운들이 안 그래도 요새 심장 안 좋은 나의 가슴을 더 조이고 말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 했다. 그곳에 가는 것이 이곳을 떠나는 방법이었다. 그는 그곳에 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기 위해 그곳에 가려고 했다. 이곳을 떠나는 일 없이 그곳에 갈 수도 없지만, 그곳에 가는 일 없이 이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241쪽 <어디에도 없는>

얼마나 간절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지가 역시나 절절하게 다가온다. 계속되는 이런 반복된 문장들은 독자를 지치게도 하지만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가장 열받게 한 것은 이 작품들이 아니었다. <하지 않은 일>이란 단편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오해를 받고, 해명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대체 어떤 하지 않은 일이 했다고 포장되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받은 그 억울한 감정이 폭풍이해가 되는 것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읽다가 열이 받은 채 잠이 들었는데, 당시와 관련된 꿈을 꾸고 말았다. 그야말로 악몽. 다시 떠올려도 열받네. 


졸지에 재산과 자식을 잃고 온몸에 종기가 생겨 재 속에서 뒹구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이 왜 욥을 만족시키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욥은 친구들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못했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 상황에 맞지 않는 신학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이라니.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병문안 온 자리에서 병문안 온 사람과 병문안받는 사람 사이에 그렇게 심각하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는 건 위로가 불가능한 고통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혹은 하는 자에게나 받는 자에게나 어차피 불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위로의 본질이라는 걸 시사한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욥은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위로의 과제를 수행하러 왔을 뿐이라는 걸, 처음에는 몰랐을지라도, 결국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위로의 모양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속으로는 자기의 우연한 불행을 은근히 고소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의 우연한 불행에 필연을 첨가하기 위해 인과응보와 신의 징벌이라는 관념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리하여 친구들이 자기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고통을 보고 즐기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 친구들을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욥에게 당신을 투사했다. 욥이 되어 그 친구들을 고발했다. -297쪽 <하지 않은 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 욥의 친구들은 욥이 아주 잘 나갈 때, 그의 복을 함께 기뻐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랬기에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런 그를 향해 사실은 네가 잘못 살아왔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받은 거야!라고 지적질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중학교 때 교회 전도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새로 오픈한 가게에 가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문구 액자가 많이 걸려 있는데, 이 문장은 욥의 친구들이 욥을 비웃으면서 했던 말이기 때문에 오픈 선물로 적당하지 않다고. 그게 진짜인지 내가 꼼꼼히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친구들의 저런 지적질에 욥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뛰겠는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지 않은 걸 증명하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고 얘기한 것도 같이 떠올랐다.


요새 애청하는 드라마로 '피노키오'가 있다. 오늘 마지막 방송인데 본방 사수는 힘들 것 같다ㅜ.ㅜ

암튼, 드라마는 언론 보도로 희생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과, 언론을 장악해서 수사 방향을 돌리고, 애꿎은 사람을 희생자로 만드는 권력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는데, 주인공 이종석(최달포)은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늘 빵점을 맞아와서 별명이 '올빵'인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어떤 목표가 있어서 고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에 참가 자격을 얻으려고 시험을 백점 맞았다.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믿고는 달포가 컨닝을 했을 거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네가 컨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당연히 달포는 자신이 왜 그런 증거를 대야 하느냐고 따지지만 선생은 요지부동이다. 그러자 이 똑똑한 학생은 눈빛을 달리 하며 이렇게 엄포를 놓는다. 


제가 지금 이 교무실을 나가는 순간, 선생님과 옆의 여 선생님이 바람이 났다고 소문을 낼 겁니다. 두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십시오!


선생은 노발대발하며 "내가 왜 그런 걸 증명해야 해!"라고 소리지르며 자신이 저지른 모순을 깨닫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린데도 아주 똑똑했고 스스로를 제대로 방어해 냈지만 그게 가능하거나, 그게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 중 최고는 '슬픔'이 아니라 '억울함'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한다. 저 진도 바다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라도 알 수 있었더라면 그 마음의 한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짧은 소설 한편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똬리를 틀었다. 정말, 끝까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각 이야기들의 연계성이다. A단편과 B단편이 사실은 같은 주인공 같고, A단편 속 인물 a와 b가 사실은 a와 a' 같은 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꼭 같지는 않지만 은희경 작가의 '다른 모든 눈동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가 떠올랐다. 그 작품집에서는 각각의 단편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사실은 시간 차를 두고 인물들이 겹친다. 이 작품도 그런 연결 고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주 드러내놓고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들을 주는 것이다. 


작품은 역시 이승우구나!라며 감탄하며 읽었지만 다소... 아니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했기 때문에 두번은 못 읽을 것 같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므로, 내 성질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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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세계 작가 그림책 9
존 로코 지음, 이충호 옮김 / 다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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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여덟살 정도였다. 눈이 아주 많이 왔더랬다.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었는데 그 바람에 양옆에 쌓인 눈높이가 어마어마해서 어리던 내 키를 넘을 정도였다. 언니들 모두 학교 가고 심심했던 나는 마당에서 눈 한바가지를 퍼서 햇볕 쏟아지는 마당에 뿌렸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송이가 몹시 예뻐서 혼자서도 지루해하지 않고 아주 재밌게 놀았더랬다. 어쩌면 반사도가 높은 눈 때문에 얼굴이 탔을지도 모를 그날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오랜만에 그때 기억이 불려온 까닭은 이 책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내리던 눈은 귀가 시간에는 무릎 높이까지 쌓여버렸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눈은 그치지 않고 왔다. 덕분에 다음 날은 문이 열리지 않아 창문으로 드나들어야 했다. 어린 친구들은 온 세상을 덮어버린 눈이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지치도록 뛰어놀던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난로 앞에서 추위를 녹이자니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수요일에 아버지는 길을 내기 위해서 눈을 치우느라 열심이셨다. 하지만 제설차가 오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눈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걱정에 사로잡혔다. 


목요일, 이 책속의 주인공은 자체제작한 이글루 속에서 추위를 피하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책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들 말이다! 


금요일, 아이는 테니스 라켓을 이용해서 눈장화를 만들었다. 자기처럼 무게가 가벼운 아이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썰매도 끌고 왔다.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서 실어올 장비다. 


토요일, 마침내 아이는 길을 나섰다. 지혜롭고 착하기까지 한 아이는 이웃집까지 모두 들러서 각각의 집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모두 접수했다. 테니스 라켓으로 만든 일종의 '설피'를 신고 1.5km를 걸어간  아이는 눈에 갇힌 집들이 필요로 하는 필수품들을 구해서 무사히 귀가한다. 지혜롭고 착하고 용감하기까지 한 아이다.


그리고 일요일! 제설차가 왔다. 아이들을 잔뜩 신나게 했던 그 눈은, 사실 위험하기도 한 자연의 흔적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까지는 몰라도 일주일 이상 되면 치명적일 수 있던 이 하늘의 흔적! 작품 속 이야기는 작가가 실제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내용이다. 저 소년처럼 테니스 라켓을 썰매처럼 만들어 먼 길을 다녀왔던 것이다. 


아이의 행보가 재밌고 놀라운 아이디어에 박수를 치고 싶고, 용기 백배, 봉사심 만배 모험에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고 싶다.

각각의 날에 화면에 낙서하듯 써준 요일들에서 시간의 변화를, 긴장의 증폭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읽은 세 권의 그림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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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14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은. . 소리없이 강한 자연 현상의 지존이죠^^ 실제로 눈은 소리를 흡수한다고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ㅎㅎ

마노아 2015-01-15 02:10   좋아요 0 | URL
소리없이 강한 자연 현상의 지존! 광고 카피같이 인상적인 걸요. 소리를 흡수한다라, 와, 역시 내공이 대단한 눈입니다.^^
 
꽃과 나무의 사랑 이야기
조콘다 벨리 지음, 바바라 슈타이니츠 그림,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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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에는 꽃이 하나 살았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왕자 있었다네


꽃과 어린왕자-라는 제목의 노래다. 어린 시절 듣고는 노래 가사가 너무 슬퍼서 가슴에 콕 박혔던 노래다.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 노래가 생각났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꽃과 나무의 사랑 이야기라니, 뭔가 낭만적이지 않은가!


주인공 꽃은 부겐빌레아라는 이름의 덩굴 식물이다. 덩굴 식물은 알다시피 혼자서는 설 수가 없다. 누군가의 몸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부겐빌레아의 곁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다. 부겐빌레아가 기대기에 충분히 튼튼하고 컸다. 게다가 마음씨까지 착하기도! 


부겐빌레아는 소나무의 격려를 받으며 자라났다. '정열'이라는 꽃말을 가진 부겐빌레아는 정열적으로 소나무를 감싸 안았다. 사랑이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부겐빌레아가 지나치게 꽉 조이는 바람에 소나무는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 포옹을 풀어달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소나무가 너무 착했다. 이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같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소나무는 버텼다. 마침내 소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잎이 말라간 것이다. 정원사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 덩굴 식물을 잘라내야 한다고 중얼거리더니 정원의 주인을 찾아갔다. 이들의 중얼거림을 들어버린 부겐빌레아는 덜컹 겁이 나고 말았다. 소나무 곁을 떠나는 것도 무섭지만 자신이 소나무를 괴롭게 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소나무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하는 이 정열적인 식물!


마침내 진실을 알게된 부겐빌레아는 선택해야 했다. 홀로 서는 것은 두렵지만, 지금 잡은 이 손을 풀지 않으면 여태껏 나를 일으켜준 소나무를 죽게 만든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심호흡 끝에 조금씩 덩굴을 풀어낸 부겐빌레아. 그때 기적이 생겼다. 온전히 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새로 싹이 올라오는 녀석들만 옆으로 퍼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능력을 알게 된 것이다. 부겐빌레아는 넓게 덩굴을 펼쳐서 아름다운 잎사귀들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소나무의 숨을 막지 않고도, 소나무를 온전히 떠나지 않고서도 말이다. 결국은 '공생'의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면 땅바닥을 기면서 낮은 보폭으로만 움직여야만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이 지나쳐 구속이 된다면, 그것이 상대방을 숨막히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르기 어렵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이기적일 수 있는 사랑과, 너무 희생적이어서 서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여줬다. 함께 숨쉬며 함께 이어갈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그림도 인상적이고 글도 쉽다. 가을 느낌 물씬 나는 책을 한겨울에 만났다. 고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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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죽음과 순환에 대한 작지만 큰 이야기 도토리숲 그림책 2
대니 파커 글, 매트 오틀리 그림, 강이경 옮김 / 도토리숲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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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열자마자 압도적인 그림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시작은 여리디여린 어린 나무에서 출발했다. 아주 작은 나무가 거대한 나무의 곁에서 싹을 튀우고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어린 나무가 자라는 동안 거대한 나무는 어린 나무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안락한 보호막이 되어주던 거대한 나무도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꺾이어 스러지고 말았다. 보호자가 사라진 세상에서 어리던 나무는 겁이 났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어리던 나무는 더 이상 어리지 않게 되었다. 큰 나무의 보호 아래 어느덧 크게 성장했던 것이다. 제 옆의 거대한 나무가 너무나 늠름해서, 그 우뚝 선 모습을 동경했을 뿐, 그 나무를 닮아 그 나무만큼 자라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고개를 돌려본다. 어리디 어렸던 나무, 이제는 어리지 않은 그 나무의 곁에, 자신만큼 어리고 어린 싹이 돋아나고 있다. 이제 자신이 받아온 그 사랑을, 보살핌을 되물려줄 차례다. 언젠가는 내 옆에서 스러져 갔던 그 나무처럼 비바람에 꺾이어, 시간이라는 마모제에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그때가 되면 이 작은 나무가 자신만큼 크게 자라 또 다른 어린 나무의 기둥이며 동경이며 보호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명은 순환할 것이고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상징도 쉽다. 손쉽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고,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사라지는 모든 관계도 대입해볼 수 있다. 손쉽게 읽을 수 있고 그림이 주는 만족감도 크다. 다만 너무 직접적이어서, 적은 페이지 안에서 함축과 상징,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은 다소 부족했던 게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책을 보고 나니까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가 떠오른다. 참 영롱한 영화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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