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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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유, 해방, 민주주의 하면서

몹시도 그럴싸한 말들을 하는데,

얼굴이 어찌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의의 용사다!"

 

드디어 우리가 할 일을 찾았다.

저 나라 사람들을 해방시켜 줄 거야.

저 나라 독재자를 물리치고,

저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거야.

 

힘 센 나라의 그 정의쟁이들은 자신들이 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독재자를 물리치기 위해 착한 전쟁을 수행하는 거라고 힘주어 얘기합니다.

이 가난한 나라에 사실은 어마어마한 땅속 자원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공공연한 비밀인 걸요.

 

"거기엔 악당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방송국 사람들과 신문기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아프고 병든 사람들,

가장 억울하게 쫓겨나고 빼앗긴 사람들,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구하는 아이들......

 

똑같은 화면을 자꾸자꾸 내보냈습니다.

혹시라도 못 보고 지나칠까 봐 또 내보내고,

본 사람들은 한 번 더 보라고 또 내보내고.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장면에 말만 바꾸어 몇 번이고 내보냈습니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열심히 내보내는 모습은 저 나라만의 일이 아니지요.

 

 

 

 

비록 독재자가 있는 나라이지만, 이 나라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삶을 성실하게, 아름답게 꾸려가고 있었답니다.

한번도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지만 축구 선수가 꿈인 알라위.

밑으로 동생이 여섯이나 있는 이 아이는 아빠를 도와 기름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폭격은 꿈많은 소년의 다리에 폭탄의 파편을 심어버렸습니다.

 

 

 

전쟁의 피해 당사자만 꿈을 잃은 건 아닙니다.

이 전쟁에 참여한 마이클 일병은 초등 교사 임명 직전에 이 전쟁에 자원했습니다.

자신이 떠나온 나라만큼 소중한 이곳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소명을 갖고 말입니다.

이 전쟁이 그 아이들에게 해방을 줄 거라고 믿었던 거지요.

그들의 정치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전쟁은 위대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전쟁을 지켜보는 이웃 나라들도 그랬을 겁니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에게,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은, 미군은 구원이지 않았습니까. 영원한 우방에 지치지 않는 외사랑! 지금도 그걸 신앙처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요.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우리는 얼마나 비싼 도움의 대가를 치르고 있던가요.

 

아프리카를 떠올려 봅니다. 가진 게 많아서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 이라크에 석유가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요?

 

영화 '그랜토리노'가 떠오릅니다.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군인 할아버지 역을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맡았지요. 그는 자신이 죽였던 소년병을 평생토록 잊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의 피를 묻힌 자신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스스로 여기지요.

 

이 책에도 그런 군인들이 나옵니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누군가는 마지 못해 오기도 했습니다. 어떻든간에 그들이 생각했던 전쟁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 겁니다. 그들로 하여금 총을 쏘게 하고, 그리하여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이게 한 그 명령권자는 머나먼 곳에서 이 참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산기를 두드리겠지요.

 

어느덧 이 나라는 저쪽 군복을 입은 사람들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관청 직원도 다시 뽑았고, 이 나라 군대와 경찰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쪽 군대에서 결정했고, 저쪽 군대에서 내거는 규칙대로였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나 보다.

 

과연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 이 나라를 마음껏 쥐고 흔들던 독재자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달라진 거라곤 이 나라 독재자 자리를 저 나라 군인들이 대신학 있다는 것뿐.

독재자 밑에 붙어 있던 이들이 보이지 않는 대신,

저 나라 군인들 밑으로 들어간 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길에는 엄마 잃은 아이들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는 폭발과 총소리.

 

전쟁이 끝났다고, 이긴 전쟁이라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저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정의롭다는 전쟁의 끝에 이곳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던가요?

 

평화가 총칼로 쉽사리 불러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던가요.

수십 년 뒤면 다다를 수 있었던 길을 이 전쟁으로 인해 수백 년 뒤에나 다다를까 말까한 지경에 이르게 한 게 아니던가요?

마치, 우리의 통일을 보는 기분이군요.

 

 

 

이곳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꿈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거기, 그리고 이곳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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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일본군 위안부 만화
안수철 지음, 강효숙 그림 / 형설라이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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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꽃'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우리나라 여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도라지 꽃의 그 곱고 청아한 자태를 떠올려 보니 이분들의 비극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가장 꽃다운 나이였을 때, 내 조국은 힘이 없었다고 고백하던 울부짖음이 살아난다.

 

세번째로 읽은 위안부 만화에서는 두편이 실려 있다. 하나는 성전 열차다. 이때의 성전이 聖戰이 아닌 性戰 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대사가 한마디도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묵직한 울림이 있다.

 

반면 더 긴 지면을 장식한 '야마토 터미네이터'는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어서 은유로서의 매력은 거의 없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직접적인 의미 전달도 필요한 법이지.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 혹은 영상 자료를 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확확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사이 생존자 숫자가 뚝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속도는 점점 가팔라질 테지. 그래서 더 애가 타고 갑갑하다. 우리는 저들을 성토하고, 사과를 촉구하지만 듣지 않을 그들을 알고,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안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와서 말이다. 집나간 정의는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지...;;;;

 

시리즈 세권을 읽으면서 추억의 이름들도 많이 만났다. 이분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다는 걸 확인해서 기뻤다. 어린 시절 보물섬이나 대본소용 만화책에서 보던 그 반가운 이름들 말이다. 작가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하고, 이런 바람직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의무적으로 소장했으면 한다. 물론 개인소장도 환영이다. 상처는 덮어두면 더 곪아버린다. 깨끗이 닦아내고 약을 발라야 한다. 새살이 돋아나도록. 우리 역사에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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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01-01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덕분에 좋은 책이 나온걸 알고 가네요.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많이 해주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

마노아 2015-01-01 21:3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반가워요~ 여행기 잘 보았는데 댓글도 못 남겼네요. 북플은 읽기엔 좋은데 댓글은 자꾸 미루게 되는 성향이 있어요.^^;;;
바람돌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여행기도 계속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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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노래 일본군 위안부 만화
정기영 지음, 김광성 그림 / 형설라이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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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전시작 세권을 묶은 책 중 하나다. 앞서 읽은 '시선'은 카툰 중심이었는데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를 극화로 꾸몄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칭할 때 '나비'로 표현한 경우가 많았다. 소녀 상을 만들 때도 모금을 위해 만든 티셔츠에 보라색 나비가 있었던 게 떠오른다. 긴팔 옷이라 지금 입기 좋은데 이번 계절엔 아직 입지를 못했다. 오늘 저녁엔 찾아 입어야지...

 

이 작품은 픽션이 아니다. 할머니들의 구술 자료집을 토대로 옮긴 내용이다. 이분들의 신산했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할머니는 다행히도 가정을 이루었고 자녀들과 함께, 지금은 제법 여유롭게 사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도 매일밤 찾아드는 악몽 때문에 여전히 같은 꿈을 꾸며 깨어난다. 단 한번도 잊을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족쇄였다.

 

자식들에게도 결코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억누른 채 담아온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수요 집회 때문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수요 집회에서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친구를 발견하였다. 동시에 되살아나는 그 끔찍했던 기억들의 총합...

 

저리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을 날을 받아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죽을 몸, 한맺힌 한마디를 내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 조금이나마 대리 만족이 느껴졌다. 비극적인 용기였지만...

 

어머니의 고백 뒤에 가족이 보이는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철없던 딸래미는 어머니의 아픔에 오열했고, 아들 내외는 왜 그런 걸 이제 와서 밝히냐고 타박을 놓았다. 같은 여자라도 딸과 며느리는 달랐던 것일까. 가족들이 공감을 하고 어머니의 외침에 동참하는 과정이 너무 짧게 묘사되어 감정의 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게 약감의 흠이었다.

 

2011년에 이미 수요집회가 1000회차를 맞이했다. 그리고 또 3년 여가 지났다. 할머니들에게 부디 인권과 명예를! 마땅히 가지셔야 할 그것들을 돌려드리기를!

 

이런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로 만화가 쓰여진 것이 반갑고 기쁘다. 접근의 편안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더불어 '위안부 리포트'도 추천한다. 대체 왜 2권이 안 나오는지 애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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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4-12-3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할머니들께 인권과 명예를 드릴수있길 바랍니다

마노아 2014-12-31 10:41   좋아요 0 | URL
예, 부디 그분들께 인권과 명예를!!!

순오기 2014-12-3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그분들이 다 스러지기 전에 이루어지기를...

마노아 2015-01-01 21:34   좋아요 0 | URL
오늘 영화를 한편 보았는데 거기에서 이산가족이 천만 명이 생겼고, 지금은 오만명 수준으로 살아 계시다는 표현이 나오더라구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는 그보다 더 척박하죠. 부디 시간이 이분들 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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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일본군 위안부 만화
고경일 외 지음 / 형설라이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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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만화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이 프랑스 앙굴렘에서 개최되었다. 그 전시 작품들을 묶어서 세권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도서관에 신청해서 책 도착한 당일에 빌려본 책이다.

 

 

 

'천황의 선물'이란 제목이다.

마치 보급품 보내 주듯 여성들을 전쟁터에 강제로 떨궈놓고 소모품으로 사용했다. 이 행위에 인간의 'ㅇ'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소녀가 된 할머니는 그 또래의 소녀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것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작품 제목 83은 그동안 흘러버린 시간 83년을 의미한다.

 

이 숫자를 인식하고 나니 할머니들의 연세가 밟히고, 이분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각인된다. 저들은 시간이 그들의 편이라고 안심하고 있겠지.

 

 

 

모래가 다 떨어지면 뒤집어서 다시 시작하는 모래시계를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아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여성이고 어머니이다. 대지를 상징하는 강이 흐르고 그 대지는 모래시계의 곡선을 따르며 휘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할머니의 얼굴. 할머니의 얼굴에 고통이 가득 퍼진다. 이 표정이 곧 역사다. 그분들이 온몸으로 받아낸... 

 

얼굴이 사라진 자리가 까맣게 재가 되어 가라앉는다. 그 흙을 양분 삼아 꽃이 피어난다. 이분들의 의지가,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바람이 그대로 꽃이 되어 피어난 듯 보인다. 이 전시회의 제목이 '지지 않는 꽃'이었음을 상기해 본다.

 

 

 

영화 '한공주'를 보기 전에 굉장히 우려했다. 소재 자체가 말도 못하게 끔찍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후폭풍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슬픈 이야기를 슬프게 담아내지 않았다. 핵심을 이야기하지만 부러 자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 절제가, 가끔 유머감각도 보여주는 여유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본다. 할머니들의 투쟁도 그러했다. 1994년도의 첫 집회는 통곡 소리와 울부짖음 밖에는 없었다고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 김동희 씨는 고백한다.

 

그러나 그렇게 눈물과 통곡 만으로 20년을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흘렀고 할머니들은 통곡 대신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로 시위를 이어가고 계시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고발할 때, 흔히 그렇듯 진보적 메시지를 전할 때 너무 장엄하거나 비장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싸움은 언제나 오래 가기 마련이고, 결국은 버티는 일이 중요할 테니까.

 

누군가는 이제 잊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한다. 그 어두운 기억을 들추어서 무엇하냐고. 무엇이 달라지냐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심지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족들도 할머니들의 이런 과거 고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인생마저도 영향을 끼칠 거라고 걱정부터 한다. 왜 공감이 아니 가겠냐마는, 그렇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피해자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기를 바라며 웃고 있는 가해자들의 오만함을 부서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 청산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고 제대로 정리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서로가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현대사가 이렇게 꼬이고 꼬이고 또 꼬였던 것도 결국 첫 단추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에서 시작한 게 아닌가.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게 마땅하다.

 

 

 

국내에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에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오키나와에서, 타이완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이 있어 왔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참으로 독하고 무섭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 이 작품들이 전시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 극우 만화가와 시민들이 이 전시회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전시회를 주관하는 프랑스 측의 행보는 무척 성숙했다. 오히려 일본 측의 이런 방해 작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냈다. 의도하지 않은 노이징 마케팅이랄까.

 

불과 나흘 간의 짧은 기간이었으나 전시회는 대성황이었다. 70평 남짓한 공간에 연인원 2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컷의 만화에서 그들이 받고 돌아갔을 깊은 울림을 상상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다. 그런 역사적 상흔이 유럽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전시회를 더 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일본은 패전 7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비극적인 역사에서 이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해서 더는 사과하고 싶어도 사죄할 수 없을 때까지 버티지 말고, 이제는 제발 역사 앞에 당당히 서기를... 그래야 서로가 미래를 내다보며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평.화.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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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4-12-3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 꽃이 피어날수는 없지만 역사앞에 당당하게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릴수있길 바랍니다

마노아 2014-12-31 10:42   좋아요 0 | URL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정의는 바로 세워야지요. 암요!!

순오기 2014-12-3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노력을 이어갈 땐 정의가 살아나고 역사 바로세우기가 되겠지요~~감동입니다!!

마노아 2015-01-01 23:07   좋아요 0 | URL
그치요? 이런 노력들이 더 모이고 그래서 결실을 제대로 보았으면 좋겠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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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고등학교 때 가정 선생님이 사진으로 보여준 청화백자를 보고 크게 놀랐다. 내가 짐작하기에 고려청자가 훨씬 화려할 것 같았는데 하얀 바탕 위에 푸른색을 입힌 청화백자가 훨씬, 훨씬 더 화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사스럽게 보일 정도로. 지금 생각해 보면 고려청자는 화려한 것보다 우아한 멋이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당시 사진으로만 접했던 내 머리 속에서는 화려함의 비중이 그러했다. 


이번에 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를 재밌게 보고 왔다. 전시 공간이 좁은 편이 아님에도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진열해서 좀 지치는 감이 있었다. 좀 걸러낼 필요도 있지 않았을까?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준 건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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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자가 성에 안 찼던 건 아닌데, 솔직히 현대작가의 작품들이 내게는 더 탐이 났다. 이쪽은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당장 사용이 가능한 실용성과 디자인에서 오는 탁월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무척 갖고 싶었지만 아마도 굉장히 비쌌으리라. 가격 모르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았던 게 아닐까?


관람 마치고 나올 때 도자기 색칠놀이를 할 수 있게 꾸며놓은 게 재밌었다. 하얀 백자 위에 본인이 원하는 무늬나 글씨를 적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열심히 표현하고 돌아왔다. 스캔해서 벽에 띄워주기까지 하는데 혼자 막 뿌듯해하고 그랬음..ㅎㅎㅎ



작은 그림 아랫줄 두번째가 나의 그림이다. 잘 안 보이긴 한데 내 님의 이름과 로고가 그려져 있다. ㅎㅎㅎ









한글이 들려주는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을 간 김에 한달 여 전에 오픈한 국립 한글 박물관도 같이 다녀왔다. 

광화문의 세종이야기가 워낙 내 취향에 잘 맞아서 이쪽은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나름 뜯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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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커다란 스크린이다. 감히 밟을 수가 없었던 우리 문자였다.



우리 말의 어원을 알려주는 글들이 화면에 계속 나왔다. 우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구나!



한글의 발자취가 보인다.



한글의 자모음을 모아서 만든 탑이 경이롭다.



뭐든, 일단 인구 1억은 되어야 뭐가 되도 되겠구나... 싶었다. 국가 경쟁력이나 내수의 흐름이나 등등등...



들리는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니, 지극히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의자의 등받침이 님의 침묵으로 되어 있다. 시에 기대어 앉는다-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의자란 말인가!



영상체험관에 글자가 후두둑 떨어지는데, 나 혼자 감상했기 때문에 더 벅찬 기분이었다.



발자국 표시에 서서 잠시만 기다려 보자.



잠시만 더 기다려 보자.



잠시 후 내 실루엣에 맞춰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나온다. 손을 흔들어 보고 고개를 갸웃해 보고 만세도 불러본다.

내가, 나를 따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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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 보던 날에는 엄니와 함께 국립 고궁 박물관에 다녀왔다.

교황 방한 기념으로 전시를 연장한 "천국의 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고궁 박물관은 늘 무료로 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입장료 12,000원...ㅡ.ㅡ;;;;

그나마 엄니가 우대 나이이기 때문에 50% 할인 받아 다행~


내가 천주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전시회에서 크게 감흥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냥 개신교에서 부르는 이름과 천주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는 정도?

천국의 문도 떼어올 수가 없으니 복제품이 온 것이다. 복제품이라 해도 번쩍번쩍 황금으로 공을 들인 티는 충분히 났다.

문에 새겨진 성경의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한 몫!

그렇지만 입장료 대비 만족도는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다리 아프다고 아우성이신 엄니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해서 전시회를 한편 더 봤다.


미리 예매해 둔 "세바스치앙 살가두 전"이다.

일단 전시관 찾느라 주변을 몇 바퀴 돌았던 이야기는 속상하니까 패쓰하자..;;;


사진이 엄청 많았다. 정말, 토나올 정도로 많았다. 사진이 워낙 크고 모두 흑백이라 강렬해서 좀 멀리서 보고 싶은데 공간이 너무 좁아서 시야 확보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안 일인데, 난 동물 사진이나 정글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때 과학 영역 네가지 중 지구과학과 화학을 좋아하고 물리와 생물을 싫어했는데, 물리는 어려워서 싫었고, 생물은 징그러운 사진이 많이 나와서 싫어했다. 


최근에 내가 혹시 '환공포증'이 있나?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것도 살가두 사진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 대단한 사진인 건 분명한데, 뭐랄까... 나는 좀 많이 징그럽고 무섭고 그랬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토나올 것 같은 울렁증이 도졌다. 그러니까 나는 인물사진이나 건물사진... 이런 건 좋은데 동물이나 원시림 같은 자연사진은... 취향에 맞지 않아...


아마존의 눈물은 무척 재밌게 보았는데, 거기서도 등장하는데 입술에 접시를 넣어서 턱을 늘려놓는 그런 풍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아찔한 것이다. 이게 또 영상과 멈춰있는 사진의 느낌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정지되어 있는 사진으로 보고 있자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들 문화의 한단면이 너무 고통스럽게 보인 것이다. 문화적 차이라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심리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법 비싼 표였는데 역시 실패! 나는 퓰리처 사진전이나 라이프 사진전이나 매그넘 쪽이 더 맞다. 내 취향을 확인하고 돌아온 전시회였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보고 온 이야기를 했던가?

한 것 같기도 한데 왜 했지? 아니, 한 게 맞나???



레베카와 엘리자벳을 만든 팀의 작품이었고, 출연배우도 옥주현 윤형렬로 마음에 들었고, 소재도 관심이 가서 무척 기대가 됐는데 작품은 아주 꽝이었다. 아, 일일드라마 막장 컨셉이 나온다.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초연 공연은 이래서 복불복이다. 할인을 받기 위해서 조기 예매를 하지만, 그래서 입소문을 못 들어서 잘못 고른 작품들이 나오기도 한다. 뭐, 그래도 카르멘 보다는 나았다고 할까...;;;;













친구까지 동원해서 응모했던 이승환 미샤 콘서트에는 똑! 떨어졌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간 것은 덕수궁. 엄니와 함께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난잎으로 칼을 얻다"에 다녀왔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전시회다. 


어마무시한 전재산을 정리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생은 가난하게 살았다. 그럴 때마다 난을 쳐서 받은 돈을 다시 독립운동에 쏟아냈다. 그리하여 나온 이름이 '난잎으로 칼을 얻다'이다. 


을사늑약이 강요된 자리 덕수궁 중명전에서 선생의 전시회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하나 남은 사진이 너무 작아서, 벽에 붙어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갔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보았다. 가슴 속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이 전시회는 3월 1일까지 한다. 더 많은 분들이 다녀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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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과 저 자그마한 사진이 보이는가. 가로 4.5에 세로 6.8cm다.



역사에 이들 육형제가 남긴 족적은 어마어마하지만, 정작 당신 자신의 흔적은 이리도 작게만 남겨놓으셨다. 

그 희생에 절로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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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씨 카드에서는 프로모션으로 공연을 할인해 주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하는데 11월에는 무려 '지킬 앤 하이드'가 있었다. 

80%까지 할인해 주는 공연도 있건만 이 초초초 인기작은 20%를 할인해 주는 것에서 그쳤다. 그렇지만 몇번을 재관람해도 할인을 안 해 주는 이 공연에서 20%가 어디인가. 




예매 당일 나의 후진 컴은 뻗어버렸고, 친구가 예매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공연 당일에 조카 돌잔치가 겹치는 바람에 못 가게 되어서 그 표로 직장 동료와 함께 다녀왔다. 아주아주 궂은 날이었는데 그래도 공연을 관람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음.




드디어 조승우 버전의 지킬과 하이드를 만났다. 연기는 역시 발군. 그렇지만 노래는 아직도 류정한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음역대라든가 발성이 확실히 차이가 나는 듯.

조승우 말고 다른 배우들도 매력적이었다. 소냐보다 나은 루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린아가 제법 괜찮았고, 엠마도 프랑켄슈타인 때보다 괜찮았다. 근데 배우 이름이 뭐였더라? 이지혜였던가? 찾아보니 이지혜 맞다. ㅎㅎ


이번에 박은태도 새로운 지킬로 합류했는데 그의 공연도 보고 싶다. 그렇지만... 너무 비싸. 인간적으로 뮤지컬 너무 비싸... 제일 싼 좌석이 6만원이라는 게 말이 돼? 이건 정말 폭력이라고..ㅡ.ㅡ;;;;;


어떤 공연은 한 번 보고 그걸로 충분할 때가 있는데,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 중 넘버 1은 항상 지킬 앤 하이드였다.

그건 부인할 수 없음. 그러니까, 자꾸 보고 싶으니까 할인 좀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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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01-2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킬 앤 하이드 2월 공연은 재관람 할인이 있더라구요. 딱 10%~ ㅎㅎㅎㅎ
구정 연휴는 20% 할인이래요.

이번에 런던에서 뮤지컬 보고 한국 뮤지컬 극장에 대해 불만 폭발했어요.
2층 맨 앞좌석 가운데줄이었는데, 무대가 과장 하나 안보태고 바로 코 앞이었어요.
배우들 얼굴 하나하나 잘 보였구요.
동행이 이제 우리나라에서 돈 아까와서 뮤지컬 못보겠다고 하네요.
어떻게 뮤지컬 전용극장이라는 곳들조차 1층 6~7열에 앉아도 무대 위 배우들 얼굴 표정이 잘 안보이냐구요.
가격도 우리나라가 훨씬 비싸면서.
물론 런던 극장들은 세계를 소비시장으로 하고 있지만서두요...

마노아 2015-01-28 00:50   좋아요 0 | URL
티몬에서 40% 할인하는 티켓 잡아서 목요일에 류정한 걸로 한 번 더 가요.
진주에서 나의 파트너가 올라오거든요. 박은태 것도 보고 싶다능...ㅜ.ㅜ

아, 40%가 아니라 3만원 할인이네요. 그럴 리가 없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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