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2279 호/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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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세 개의 알람과 엄마의 쩌렁쩌렁한 고함 그리고 아빠의 호루라기 소리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태연. 마무리로 강아지 몽몽이가 시끄럽게 짖어줘야 간신히 바위만 한 눈곱을 떼고 기상을 한다.

“아빠, 도저히 못 참겠어요! 우리도 9시까지 등교하는 그 도시로 이사 가면 안 돼요? 어디는 고등학교는 9시까지 가는데, 저는 초등학생인데 왜 8시 10분까지 가야 하느냐고요. 네?!”

“잔말 말고, 호루라기 더 불기 전에 빨리 안 일어날래?”

“공부를 잘하려면 잠을 푹 자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단 말이에요!”

“그거야 그렇지. 사람의 뇌는 잠을 잘 때 낮 동안 학습했던 정보들을 정리하거든. 그날 학습한 내용을 스스로 반복해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데, 잠을 깊이 푹 자면 장기 기억 저장이 훨씬 더 잘 되기 때문에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단다. 밤새 벼락치기를 하면 다음날 시험에는 도움이 되지만 며칠 지나면 몽땅 까먹어버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거 봐요. 제가 많이 자겠다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성적 향상을 위해서 라고요.”

“아이고, 입만 살아가지곤. 암튼, 너는 매일 9시간씩 꼭꼭 자니까 괜찮지만, 보통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걸 보면, 고등학생은 하루에 겨우 5시간 27분, 중학생은 7시간 12분, 초등학생은 8시간 19분을 잔다는구나. 의학적으로 최소한 7~8시간 이상은 자야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잠이 부족한 상황이지. 일부 교육청의 ‘9시 등교 정책’에 대해 아직 찬반 논란이 팽팽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만은 사실이야.”

“헐, 그럼 저도 고등학교 가면 5시간밖에 못 자는 거예요? 그러기 진짜 싫은데…. 외국 청소년도 저희처럼 수면 부족이에요?”

“우리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더구나.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도 얼마 전 청소년의 수면 시간을 늘리기 위해 등교 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는데, 청소년기에는 수면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저녁에 일찍 재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침에 늦게 깨우는 게 낫다는 거야.”

“수면 패턴이 바뀌어요? 어떻게요?”

“사춘기가 되면 여러 생물학적 변화와 함께 생체리듬도 바뀐단다. 수면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성인보다 최대 2시간 정도 늦게 분비되기 때문에 어른들은 잠이 쏟아지는 밤 11시에 청소년들은 잠이 안 와서 말똥말똥 깨어있고, 어른들이 활기를 되찾는 오전 8시쯤에는 반대로 비몽사몽이 되는 거지. 몸은 깨어있으나 뇌는 잠자는 상태인 거야. 미국소아과학회 주장은 청소년의 수면 패턴이 이렇게 올빼미형으로 바뀌게 되니, 차라리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 있게 등교 시간을 늦추자는 거란다. 우리나라 일부 교육청의 주장도 마찬가지고. 실제로 등교 시간을 늦췄더니 출석률과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고, 수업 시간에 조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요.”

“거봐요, 늦게 등교해야 한다고요!”

“이외에도, 얼마 전 피츠버그 대학 연구팀은 수면이 부족한(6시간 이하) 고등학생의 경우 체내 염증도가 높아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고, 을지대학교에서는 7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이 그 이상 잠자는 경우보다 자살 생각과 우울한 감정 모두 1.4배 높다는 발표를 했단다. 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하루 평균 5시간 이하를 자는 청소년이 7시간 이상을 자는 아이들보다 비만 위험이 2.3배나 높다는 조사결과를 내놨어요. 모두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지.”

“아침에 늦게 등교하면 밥도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그것도 중요한 얘기야. 등교 시간을 늦추면 아무래도 아침밥을 먹는 아이들이 더 늘어나겠지. 현재는 아침밥을 굶는 청소년이 무려 전체의 1/4이나 되는 상황이거든. 밥을 먹으면 두뇌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잘 공급돼, 학습 능률도 향상되고 성적도 올라간단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아침밥을 먹는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5%가량 높다는 구나.”

“아니, 그럼 더 이상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건강에도 좋고 공부도 더 잘한다는데 왜 저는 일찍 등교 하냐고요!!”

“물론 과학적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아침잠을 더 자도록 하는 게 맞아. 그런데 9시 등교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다. 맞벌이 부모님들은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해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아침밥을 먹이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며, 장거리 통학하는 학생들 교통편도 문제고,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도 어렵고…. 풀어야 할 문제가 아주 많단다.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 서로의 생각을 잘 조율해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너 좋은 대로만 할 수는 없어요.”

“아, 몰라요. 일단 저는 자체적으로 9시 등교를 결정할래요. 선생님께 전화하셔서 ‘태연이는 자신의 수면권 보호를 위한 24시간 수면 투쟁에 들어갔다’고 꼭 전해주세요. 아셨죠?”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 이번엔 나팔 분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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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2-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어야할 문제들이 많기는 하지만, 학교 등교시간 늦추는것, 야자금지 이런것들은 꼭 좀 성사되었음 좋겠어요.

마노아 2014-12-10 08:53   좋아요 0 | URL
저는 선행학습 금지요. 그런데 지금같은 구조에선 택도 없는 일 같아요. ;;;;
 
미생 4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정수 미생 4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미생 드라마에 꽂히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언니가 열심히 시청하고 있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계속 못 보고 있다가, 내가 애정하는 82쿡 게시판에 "어제 김희원 연기가 갑이지 않았어요?"란 글이 있는 거다.

그런데 마침 언니 방에 갔다가 김희원 나오는 부분을 재방송으로 보고 있는 언니를 발견했다. 그 장면에서 김희원은 여자가 타주는 커피가 제맛이라며, 커피 타주는 여직원 다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잘 빠졌다~라고 희롱을 던지며 자동차 카달로그 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 재수 똥!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연기'로만 따지면 너무 리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는 영화 '카트'에서 알바생 임금 떼먹으려고 수작부리던 재수 없는 편의점 주인을 연상시켰다. 그 인물이 바로 파란을 일으킨 4권의 주인공이다.


제목에 소제목으로 '정수'라고 붙었는데 표지만 봤을 때는 그게 등장 인물 이름인 줄 알았다. 기풍, 정수.. 모두 이름처럼 들렸다. 그런데 책날개 안쪽을 보니 바둑 용어라고 설명이 붙어 있다. '정수'란 바둑에서 속임수나 홀림수를 쓰지 않고 정당하게 두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라면 오과장같은 인물이 정수에 해당하겠고 그 반대편에 박과장이 있다. 


내부고발자가 되는 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올바른 일을 해내고도 욕을 먹기 일쑤고 사필귀정이 되지 않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이번에도 영업3팀은 황금호흡, 드림팀임을 증명해 냈지만 내상이 있을 것 같다. 여긴 대한민국이니까.


바둑 덕분인지, 성정이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장그래는 무척 직관이 날카롭다. 그의 비상한 머리가 순간순간 번뜩이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줄 때가 많다. 이렇게 빛나는 인물이 끝내 정규직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결말을 미리 일고 지켜보는 건 참으로 착잡하다. 헛된 기대감은 줄일 수 있지만... 


학력운운하는 게 얼마나 천박한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의 벽을 쉬이 넘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김대중 대통령보다 훨씬, 훨씬 더 우습게 보였던 것은 그가 고졸 출신 인사여서가 컸을 것이다.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장그래를 보니 한숨이 나와서 같이 떠올랐다. 뭐, 고졸 아니라 대졸, 석사, 박사 출신 실업자, 비정규직도 쎄고 쎈 이곳 대한민국이지만...


즐겁게 기대하며 보고 있는데 그 끝은 이렇게 쓰기만 하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잔인할 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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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2-1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생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그 쓴 뒷맛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마노아 2014-12-10 08:55   좋아요 0 | URL
어제 드라마로는 6편을 보았는 친구 사이에서 저지르는 갑질에 대해서 나왔거든요. 참으로 더럽고 치사한데 현실은 그보다 더 심할 테지요. 재벌 2세 3세에 신데렐라나 캔디가 나오지 않고도 빛나는 드라마가 나워서 반가워요. 웰메이드 원작이 있는 덕분이겠죠^^

Mephistopheles 2014-12-1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생의 인기는 ˝현실적˝ 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어요.

그것을 가감하며 순화시키는 건 윤태호 작가의 역량이고요.

설마 작가가 모르겠어요 미생 속 환경에 비하면 현실의 환경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라는 걸.

마노아 2014-12-10 11:5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명대사가 나왔나봐요.
본인은 직장 경험도 없다면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했길래 이런 리얼리티가 나올까요.
근데 재밌는 게 어제 본 6편의 박대리는 만화를 너무 고스란히 옮겨놔서 재미가 덜했어요.
만화는 만화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취할 것은 취하고 덜 것은 덜어야 하나 봐요. ㅎㅎ
 
미생 3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기풍 미생 3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피티를 통과하고 정식 사원이 된 장그래. 아직 정규직의 길은 멀고 멀었지만, 적어도 인턴의 옷은 벗게 되었다. 그렇게 사원의 이름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회사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 미소가 지어졌다. 본인이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렇게 조직 안으로 한발자국 더 들어섰을 때 보이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여러 캐릭터들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준 느낌이다. 장백기는 일을 시켜주면 좋아한다.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낸다. 안영이는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일을 한다. 너무 빼어나서 오히려 상사들이 불편해 한다. 동기들이 밥먹으러 나가자고 하면 눈치 보던 상사들이 기뻐한다. 오죽하면 법인카드 쥐어줄까 생각을 다 하나. 그래서 생기는 불협화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안영이의 스킬이 놀랍다. 그조차도 너무 잘나서 또 불편해질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고 호흡을 챙길 것이다. 자원2팀도 문제 없다. 


한석률은 아직 좌충우돌. 무척 친화력 높은 성격이지만 조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 안에서는 도리어 마이너스가 될 요소가 많다. 약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아무렴, 장그래만큼 시행착오가 필요할까 싶지만...


김선주 부장을 그림만 보고서 남자인 줄 알았다. 뒤에 나오는 그림 보고서 여자구나! 하고 화들짝. 그러고 보니 이름도 여자 이름이었구나. 안영이의 2,30년 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큰코도 잠시 다쳐 보고, 그렇게 더 성장하겠지.


도전하는 일에서 더 큰 희열을 느끼는 오과장 캐릭터도 선명해졌다. 그래서 나이보다 승진이 늦었구나. 그걸 걱정하며 챙겨주는 김대리 캐릭터도 좋다. 영업3팀은 그야말로 황금 궁합이다. 장그래, 인복 있구나!


소제목이 '기풍'인데, 이거 바둑 용어인가? 

바둑을 둘 줄 알았더라면 훨씬, 훨씬 더 재밌게 다가오고, 잡아내고 찾아내는 것도 많겠지만, 바둑의 'ㅂ'도 모르는 지금도 이 작품은 충분히 재밌고 훌륭하다. 그리고 드라마도 못지 않게 잘 만들었다. 웰메이드 드라마다. 올해의 드라마는 '미생'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올해의 드라마가 생겨서 살짜쿵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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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2-0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각 권의 제목은 바둑과 관련된 것일거 같은데요

마노아 2014-12-09 10:35   좋아요 0 | URL
검색하면 뜻이 나오겠죠? 찾아봐야겠어요. 궁금하네요.^^

아이린 2014-12-09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정가제전에 샀어야 했어요 ㅜㅜ

마노아 2014-12-09 10:35   좋아요 0 | URL
정가제 직전에 미처 못 산 뒷권 3개를 부랴부랴 구매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판형이 또 나오네요..;;;;;

아이린 2014-12-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정가제 시작되구 미생 세트가 3만원이나 뛰어있는 모습보군 물러났답니다 ㅜㅜㅋㅋ

마노아 2014-12-09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각권 사고 나니까 세트 도서 40% 할인하더라구요. 저도 싸게 사진 않았지만 일단 소장한 걸로 만족을!!

바람돌이 2014-12-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둑 하나도 모르는데 미생 각 장 시작부분에 나오는 기보가 너무 좋더라구요.
진짜 대가의 대국을 눈앞에 마주보며 손에 땀이 고이는....

마노아 2014-12-09 16:20   좋아요 0 | URL
기보를 이해할 수 있으면 더 재밌겠죠? 엄청 숨막힐 것 같아요. 고수의 싸움! 두둥!!!
드라마 3편에 조훈현이던가? 고수 두명이 잠깐 출연했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임에도 막 벅차더라구요.
 

1. 더 데빌

 

윤형렬과 한지상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갔더니 너무 난해해서 이해하느라 애먹었다.

 

악마의 유혹을 던지는 한지상은 흰색 수트와 검은색 수트를 번갈아 입고 나오는데, 그때그때 역할이 바뀌는 설정이었다. 악마의 속삭임일 때는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이다. 그걸 뮤지컬 다 끝나갈 때쯤에야 알아차렸다...;;; 미리 눈치를 채고 봤으면 좀 더 몰입이 되었을 것을...


 

윤형렬의 울림 가득한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그런 목소리 성향상 발음이 너무 부정확하게 들려서 아쉬웠다.

배우는 딱 세명 나오고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고정되어 있다. 세트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근래의 화려한 무대 스타일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언뜻 영화 '데블스 어드버킷'이 떠올랐다. 캬, 그 영화 정말 명작이었는데.... 인간은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존재지...









 

2. 친구와 함께 뮤지컬 레베카를 보았다. 쿠팡이었나? 40% 할인에 프로그램북도 준다고 했다. 오우케이!

캐스팅은 오만석과 리사였다. 뮤지컬 소개에 삽입된 곡이 리사 곡이어서 미리 맛보기를 했는데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작년에 보았던 신영숙 못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

 

리사는 내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었지만 오만석은 생각보다 많이 별로였다. 보증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귀족 역할 배역에 많이 안 어울렸음,,, 아무래도 포도밭 그 사나이의 농촌 총각 역할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나보다.ㅎㅎㅎ

 

가장 하일라이트가 되어줄 '칼날같은 그 미소'조차도 너무 얌전하게 불러서 격정으로 치닫는 맛이 없었다. 2주 뒤에는 알라딘 B님이 주신 표로 오만석-신영숙 버전으로 한 번 더 보았는데, 역시나 오만석이 아쉬웠다. 작년에 류정한 캐스팅으로 보고 홀딱 반했고, 음반으로 들은 유준상이 참 좋았던 게 떠올라 오랜만에 음반을 꺼내 들었다. 오 마이 갓! 작년에 오만석도 캐스팅이었어? 그랬다면 작년에 음반을 들었다는 얘기인데, 머리 속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음반이 별로여서 스킵했다는 것이다.ㅋㅋㅋ 레베카에서 오만석은 내 마음에 참 안 찼구나. 작년에도 올해에도... 오만석은 역시 헤드윅이 짱!

 

여러 번을 보았음에도 레베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 작품은 나중에 캐스팅 바뀌면 또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극이 좋고 노래가 좋으면 역시나 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이 작품의 연출자에다가 노래 만든 콤비를 신뢰했는데 몇달 뒤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로 크게 뒷통수 맞았지...ㅡ.ㅡ;;;;;









 

3. 9월 달에는 일년에 한 번 돌아오는 '19금'이 있다. 19일인데 무려 금요일인 이 날, 개구쟁이 공장장님은 '19금' 공연을 내3걸었다. 첫번째 19금 공연이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아, 늙었어. 늙었어. 날짜 생각이 안 나. 내가 날짜에 얼마나 집착하는 인간인데...ㅜ.ㅜ

 

하여간, 두번째인 만큼 많이 정리가 되었다. 오버하지 않고, 적당히! 이 정도면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수준으로~

볼거리 많고 즐길 것 많고 재미도 가득하지만, 언제나 노래의 퀄리티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늘 기본으로 깔고 들어감.

 

'클럽의상'이 드레스 코드였는데, 클럽을 가봤어야 그걸 알지....;;;;

내가 가본 클럽은 공장장님이 공연하는 콘서트뿐...

하여간 블링블링 나름 섹시 의상 갖춰 입고 갔는데, 해진 저녁 밖에서 줄 서기엔 많이 추웠다능....

 

이날의 최고 아찔한 순간은 티켓 찾을 때였다.

일찍 끝난 날이어서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한 시간이나 책을 읽고 있다가 뒤늦게 표찾으러 갔더니 표는 집으로 배송됐다는 것이다.

화들짝! 그제서야 책꽂이에 숨겨두고 온 표가 생각났다. 입장 30분 전이었다.

집에까지 갔다 오면 공연 끝날 시간. 오 마이 갓!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아니 표가 생겨날 구멍이 생겼다.

주최측에 문의했더니 실물 티켓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면 입장시켜 주겠단다.

집으로 전화 거니 세현군이 있다. 앗싸!

영상통화로 티켓의 위치를 알려주고, 조카는 티켓을 사진 찍어서 보내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내 순서에 입장 완료. 아, 심쿵 제대로 했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현란한 영상들이 공연의 온도를 마구 높여 놓았는데, 이후 등장하는 선곡 리스트들이 제대로 빵 터졌다.

 

천일동안 >>> 천 번 동안

내 맘이 안 그래 >>> 내 몸이 안 그래

그대는 모릅니다 >>>그대는 오릅니다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 후배 위하는 선배의 자세

멋있게 사는 거야 >>> 멋있게 사랑하는 거야

소통의 오류 >>> 고통의 조루

A/S >>>After sex

물어본다 >> 깨물어본다

체념을 위한 미련 >>> 체념을 위한 체련

붉은 낙타 >>> 굵은 낙타

슈퍼 히어로 >>> 슈퍼 혀로
사랑하나요 >>>4랑 하나요

 

거의 모든 노래들의 제목이 바뀌었는데 이 정도 생각난다.

그리고 마지막 앵콜 곡으로 실로 수년 만에 들려준 '변해가는 그대'에 관객 모두 얼음!

아, 전주 나오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들은게, 잠실대전이었던가?

그게 2007년이었떤가? 하여간 정말, 정말 오랜만에 듣게 된, 반가운 곡이었다.

내년에도 19금 공연은 쭈욱 이어진다고 하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닐 수 있으랴~

 


 




 

4. 9월 27일은 조이 올팍 콘서트를 예매했다. 22,000원이었던가? 무척 착한 금액으로 하루종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무척 가족적인 분위기의 축제였다. 가족 단위로 모여서 돗자리 펴고 먹고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좋았다. 아, 나도 올림픽 공원 주변에서 살고프다!

 

그런데 하필, 센스 없게도 청치마 입고 갔던 나. 돗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

입성이 불편해서 고문이 되어버렸지만, 그걸 빼곤 다 좋았던 날. 무척 추웠지만 그 추위를 다 날려버릴 울 보스의 뜨거운 무대가 있었잖아~

 

착한 가격의 공연 원츄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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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4-12-1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트와네트 보셨군요. 후기들이 안좋아서 패스하길 잘 한 거 같아요.
LG아트센터에서 라카지 봤는데, 역시 노래는 남자는 남자노래, 여자는 여자노래하는 게 듣기좋은 거 같아요. 초대권으로 간 거라서 후회는 없었어요.

마노아 2014-12-16 15:49   좋아요 0 | URL
조기할인예매는 이게 문제예요. 복불복이거든요. 출연진도 그렇고, 제작진도 그렇고, 소재도 그렇고, 충분히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빈수레 요란일 줄이야..ㅜ.ㅜ
말씀하신 대로 남자는 남자 노래, 여자는 여자 노래가 낫네요. 헤드윅이 예외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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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루시(뤽 베송, 2014)

뤽베송 감독이라니 굉장히 속도감 있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만 출연해도 참으로 핫했던 스칼렛 요한슨 주연이니 또 기대가 됐고, 한국배우가 우리말로 연기한다고 하니 최민식의 출연도 반갑기만 했다. 그래서 무척 시너지 효과가 좋을 거라고 여겼던 작품 루시는 그야말로 졸작이었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너무 황당무계해서가 아니라, 좀 급이 맞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루시가 무협으로 치면 60갑자의 갑절의 갑절로 힘이 뛰고 있지만 인간 최민식은 그에 비하면 너무 먼지 같지 않은가.

루시가 우주와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판에 80년대 느와르를 연상시키는 맞불 캐릭터는 격이 맞지 않는다.

가볍게 보기에도 많이, 많이 실망스러웠다.

 

 

 

 

 


 

 


61.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2014)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부랴부랴 책을 읽었다. 너무 많이 갈고 닦아서 자연스러운 멋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가 원작 소설을 넘어서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았지만 역시나...;;;;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몫을 해내고 원작에도 없던 힘을 실어준 것은 김갑수 옹 뿐이었다. 대사 없이도 표정만으로도 능히 제몫을 해냈다. 명불허전!

 

 

아이보다 더 아이같은 강동원은 예뻤다. '군도'의 그 서늘한 눈매는 온데간데 없었다. 송혜교는 열일곱 날나리로 보일 만큼 예뻤다. 그러나 거기까지.

아름이 역할을 어린 아이가 80대 분장을 하고서 할 게 아니라 노인 배우가 맡았더라면, 관객 반응은 더 별로였을까? 이 영화 개봉하기 얼마 전에 생을 달리 한 로빈 윌리엄스가 떠올랐다. 그가 성장 속도가 네배나 빨라 열살 나이에 40대 외모를 가진 아이 연기를 했던 '잭' 말이다.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이 떠나간 한해였다. 갑자기 급 슬퍼지네...

 

 

 

 

 



 


62. 타짜 : 신의 손(강형철, 2014)

타짜 1편이 너무 강렬했다. 아무리 김윤석이 여전히 카리스마를 보여주어도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기울고, 솔직히 배우도 기울지 않았던가.

아주 빠르게 화면이 변하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뒷통수를 치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내쏟지만,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그런 눈속임이 작품의 함량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 결판을 1편과 똑같이 가는 건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이 작품에서 놀랐던 것은 신세경이었다. 평소 그녀의 별명이 베이글인 것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번에 제대로 인증. 아, 진짜 글래머였네. 몰랐어, 몰랐어!!

 

 

까메오 급으로 잠시 나온 여진구. 그렇다면 3편엔 여진구가 주연???

 

 

 

 

 



 

 

63.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봄(안재훈, 한혜진, 2014)

애니메이션 세편을 엮었다. 고딩 시절 읽었던 단편들이다. 추억에 젖어볼까나~ 하고 찾아갔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좀 많이 걸었다. 땡볕에. 어찌나 노곤하던지...

영화는 제목과 달리 메밀꽃 다음에 봄봄 그리고 운수좋은 날의 소개로 진행되었는데 제일 궁금했던 '봄봄' 편에서 그만 졸고 말았다. 아뿔싸.ㅜ.ㅜ

 

 

 

 

 

 

운수좋은 날의 인력거꾼 연기를 배우 장광 씨가 했다. 성우 시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64. 자유의 언덕(홍상수, 2014)

9월은 다른 달보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다. 홍상수 감독은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초기작의 언짢음과 불편함들이 근래에는 많이 옅어져서 기분 좋게 관람할 때가 많다.

이 작품에선 카세 료가 보낸 편지가 순서 없이 흩어지는 바람에, 편지를 받은 서영화가 읽는 순서에 따라 내용이 전개된다. 게다가 떨어뜨리고 줍지 못한 한장이 있기 때문에 극의 전개에는 비어버린 시공간이 생긴다. 이게 굉장히 특별했다. 그 바람에 마지막에 전개된 내용은 진짜 진행된 것인지, 꿈인지, 상상인지 여러 갈래로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는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여지를 준 것이 참 좋았다. 루시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여러모로 '시간'의 강력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많았다. 이 작품 굿굿!!

 

 

 

레스트리스에서 처음 보았던 카세 료. 참으로 선한 인상이다. 그리고 우리 선희에 이어 또 찌질하게 나온 이민우..ㅎㅎㅎ

권 역할을 맡은 서영화 씨는 아파보이는 배우에 참으로 적격! 화이에서도 병색 짙은 엄마 역을 했는데 깡말라서 그런지 그게 무척 잘 어울렸다. 실제로도 아프신 건 아니겠지?

 

 

 

 

 

 


 


65. 60만 번의 트라이(박사유, 박돈사, 2013)

가네시로 카즈키가 떠올랐다. 재일교포이지만 흔히 침작되는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과 서글픔 대신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작품을 썼던 그 작가 말이다. 이 작품의 아이들은 재일조선인으로서 국적을 지키느라 믿기지 않을 만큼의 열악함을 딛고서 꿈을 키워나간다. 국제 경기에서 한국 학생과 만났는데 쟤는 진짜 한국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오리지널이라고 말한 한국 학생 때문에 상처 받은 이야기조차도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 밝은 분위기에 문정희의 목소리가 너무 무거워서 조화롭지 못했던 게 약간의 흠!

고백하자면, 이 작품 보기 직전에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영화 시간이 다가와서 치료 도중에 부랴부랴 극장으로 달려갔더니, 여지 없이 졸고 말았다. 작품이 재미 없었던 건 결코 아니다. 많이는 아니고 살짝 졸았지만 왠지 저 열심히 뛰는 아이들에게 무척 미안했음...;;;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터라, 이 아이들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마치 그 어깨 위에 60만 명의 기대를 짊어지고 달리는 것처럼. 그런데도 소년다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여전히 씩씩하고 여전히 꿈꾸는 얼굴들이다. 보는 사람이 다 미안해질 정도로...

 

 

건강한 영화였다. 그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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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12-0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두근 내인생....흥행을 위해 캐스팅한 배우가 흥행을 말아먹어버렸죠.

(S여배우의 탈세, 탈루가 이때 터지는 바람에..)

(K남배우는.....너무나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 영화가 거의 동시에 걸리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기도 하고요.)

마노아 2014-12-09 10: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타이밍이 딱 그 때였죠. ;;;;;;
상반된 캐릭터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요. 몰입도가 확 떨어지잖아요. 그래도 눈은 즐거웠다능...;;;;